프랑수아 가스통 드 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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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장성. 7년 전쟁 시기 북미 전선에서 영국군과 맞섰다.
2. 일생
2.1. 초기 경력
레비는 1720년 8월 23일 랑그도크의 리무 근처 아작 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프랑스 귀족 가문 중 가장 오래된 가문으로 손꼽히는 집안 출신이며, 그의 아버지 장 가스통은 아작 남작이었다. 1735년, 레비는 중위가 되었고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에서 라인강 전선에 활약해 1737년 6월 1일 대위로 승진했다.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시기, 레비는 1741년 보헤미아 전역에 참가해 1742년 프라하 공략전에서 활약했다. 또한 1743년 6월 27일 데팅겐 전투에 참여했고 1747년 이탈리아에서 군의관으로 활동했다. 이후 1748년, 레비는 대령과 성 루이 기사단에 임명되었다.
2.2. 7년 전쟁
1756년경 캐나다로 보내진 레비는 1757년 7월과 8월 루이 조제프 드 몽캄 장군이 이끄는 윌리엄 헨리 요새 원정에 참가했다. 그리고 1758년, 레비는 모하크 강과 허드슨 강에 대한 급습을 준비하던 중 영국군이 조지 호수를 거쳐 카리용 요새를 공격하려 한다는 소식을 접한 몽캄 장군의 소환 명령을 접수받고 즉시 달려와 7월 7일에 합류했다. 이후 레비는 7월 8일 카리용 요새 전투에서 활약해 프랑스군의 대승에 크게 기여했다. 이후 그는 공적을 인정받아 소장으로 승진했고 10월 말에 몬트리옹에서 겨울을 보냈다.
1759년, 영국이 퀘벡을 상대로 한 대규모 원정군을 파견했다. 이에 레비는 보포르 해안을 방어하는 프랑스 좌익 부대의 지휘를 맡아 7월 31일 보포르 전투에서 제임스 울프 소장이 이끄는 영국군을 격파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인 8월 9일, 그는 제프리 애머스트 장군의 영국군이 몬트리올을 노리는 것을 막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생 로랑 강의 방비를 강화했다. 그런데 9월 13일 아브라함 평원 전투에서 몽캄 장군이 제임스 울프의 영국군에게 패배한 직후 전사했으며 퀘벡이 함락당했다는 급보를 접한 레비는 우선 퀘벡에서 패주한 아군을 수습한 뒤 적의 증원군이 오기 전에 가능한 빨리 퀘벡을 탈환하기로 결심했다.
1760년 4월 20일, 레비는 퀘벡을 재탈환하기 위해 7,000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몬트리올에서 출발하여 4월 28일 생트푸아 전투에서 제임스 머레이 대령의 영국군을 격파한 뒤 퀘벡을 포위했다. 그러나 5월 9일 영국 함대가 해안에 모습을 드러내자, 레비는 어쩔 수 없이 포위를 풀고 몬트리올로 퇴각했다. 이후 영국군은 몬트리올에 대한 공세를 개시했고, 레비는 최선을 다해 저항했으나 끝내 승산이 없자 9월 8일 항복했다. 이후 그는 10월 18일 퀘벡을 떠나 11월 27일 프랑스로 돌아왔다.
비록 지긴 했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분전한 공로를 인정받은 그는 1761년 2월 18일 중장으로 승진했다. 그 후 1762년 독일 전선으로 투입된 그는 8월 30일 니우하임 전투에서 영국-하노버-헤센-브라운슈바이크 연합군을 상대로 분전했다.
2.3. 말년
7년 전쟁이 끝난 후, 레비는 1765년 아르투아 주의 주지사가 되었다. 1771년에는 프로방스 백작[1] 의 경비대장이 되었고, 1776년엔 '슈발리에 데 오르드레 뒤 루이'의 칭호를 수여받았다. 1783년 6월 13일, 레비는 프랑스 원수로 진급했고 1784년 4월 24일에는 세습 공작이 되었다. 이렇듯 말년에 승승장구하던 레비는 1787년 11월 26일 아라스에서 사망했다. 향년 67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