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40형 구축함
1. 제원
2. 개발 배경
이전까지 1차대전기의 군함들을 운용하던 소련 해군은 새로 건조한 프로젝트 1형 구축함과 프로젝트 7형 구축함 등을 통해 새로운 전장에서 구축함의 역할을 배워나갔다. 함대전은 물론이고 대잠, 대공, 호위, 기뢰 부설도 하는 다재다능한 구축함의 역할을 더욱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새로운 구축함의 개발이 1942년 들어 다시 시작되었다. 당시 소련 해군은 빠듯한 예산과 급박한 상황 때문에 실험적인 설계들을 마구잡이로 생산할 수가 없어 굉장히 보수적이어서 프로젝트 7U 이후로 어떤 설계도 최종수용하지 않았는데, 그 중 하나인 프로젝트 35가 해군의 요구사항을 충족하지 못해 거절당한 뒤 1943년 17번 중앙설계국(ЦКБ-17)에서 이 설계의 개량을 담당하게 된다.
3. 설계 세부
첫 해는 함내 구성을 이리저리 옮겨보면서 최적의 배치를 찾으려고 노력했으나, 이 함체로는 답이 없다고 생각한 설계국은 배수량을 3천 톤 전후로 늘리기로 결정했다. 넉넉해진 공간 덕분에 이후의 설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이 설계는 '''프로젝트 40''' 번호를 부여받았다.
해외 구축함들을 유심히 관찰해 영국식 클리퍼 현두(clipper bow)[1] 와 독일식 장갑 구조를 도입했고, 이미 전쟁으로 검증된 방식인 고압보일러 4기 + 샤프트 2개 조합으로 72,000마력짜리 기관부를 설치해 요구사항이었던 36노트의 최고 속도를 달성했다.
해군에 가장 잘 보급된 구경이었던 130mm 함포는 최대 +82˚의 부앙각으로 대공임무에도 적합한 신형 SM-2-1(키릴 문자 СМ-2-1) 양용포탑 3개에 탑재했는데, 이 포탑은 특이하게도 수직 구동부가 포탑 뒤쪽으로 쏠려 있어 좁은 공간에서 더 긴 포신을 확보할 수 있게 설계되었고, 여기에 고압 추진제까지 추가해 프로젝트 40의 최대사거리는 당대 순양함들을 노려볼 정도였던데다,[2] 전투실에서 컴퓨터를 통한 원격 조종도 가능했다. 45mm 2연장 기관포 6문은 독립적인 레이더 체계로 정확도를 높혔다. 40년대 초 당시가 원자력과 핵무기의 태동기였던만큼 멀지 않은 미래에 다가올 핵공격에 대비해 밀폐식 함교와 포탑을 도입하기도 했다.
4. 개발 의의
1944년 완성되어 제출된 프로젝트 40 설계는 해군의 모든 요건을 충족시켰으며, 니콜라이 쿠즈네초프에 의해 프로젝트 30형 구축함과 함께 스탈린에게 제출되었으나, 최종적으로는 스탈린이 대형구축함보다는 표준 구축함의 대량건조를 원해 쿠즈네초프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 40의 건조 계획은 취소되었다. 이후 그 개량형인 40N과, 후에 네우스트라시미급 구축함이 될 41, 30과 그 뒤를 잇는 개선안 30bis가 설계되었고, 쿠즈네초프의 의견이 완전히 묵살되지는 않아서, 사실상 40N 설계의 염가판이라 할 수 있는 프로젝트 41이 딱 한 척 건조되어 기술실증 차원에서 운용되었다. 그 외에도 클리퍼 형태의 현두는 프로젝트 56이 물려받게 되면서, 소련 해군의 발전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설계가 되었다.
5. 미디어에서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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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오브 워쉽의 소련 구축함 트리에 최종형인 40N이 그로조보이(Грозовой, 뇌우)라는 이름으로 10티어에 등장한다.
[1] 선두 끝선이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갑판이 스키 점프대처럼 매끄럽게 올라간 뾰족한 형태의 현두. 이름처럼 19세기 클리퍼의 현두 형태와 유사한데, 고속항행에 적합하고 파도를 튕겨내 갑판에 물이 덜 차게 하는 효과도 있다.[2] 소련 해군은 고장약과 그에 따른 사거리 연장에 이상하리만치 목매달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 이전에 구축함 주포로 많이 사용했던 B-13 함포의 경우 장약이 너무 강해 강선이 갈려나가는 문제가 있어 서로 다른 강선 깊이를 가지는 세 가지 변경안이 함께 생산되었고, 키로프급 순양함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180 mm 주제에 어지간한 전함 사거리를 넘보는 고장약에 고속이었던 대신 강선을 빠르게 소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