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쿨라우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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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drich Daniel Rudolf Kuhlau (1786~1832)
독일 출신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이다. 나폴레옹 전쟁 때 징병을 피해 덴마크로 가서 귀화했으며, 피아노 교사와 작곡가로 활동했다. 특히 그가 작곡한 소나티네는 무치오 클레멘티와 함께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쿨라우 소나티네 Op.20 No.1 전악장. 유년 시절에 피아노를 배워 보았다면 한 번쯤 쳐 보았을 유명한 곡이다.
2. 생애
1786년 9월 11일 독일의 하노버 부근 웰첸 (uelzen)에서 군악대 연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집안이 넉넉지 못한 이유로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잘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4세때부터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음악 활동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체계적인 음악교육은 받지 못해서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했다고 한다.
학교를 다닐 때 학교 오페라의 단원으로 참여하변서 당시의 명 연주자들의 오페라를 감상하러 다니면서 독일 음악계에서 영향을 받게 된다.
젊은 시절은 정치적으로 불안했던 시기라 그런지 1810년에 일어난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한 징병을 피하기 위해1806년 덴마크로 갔으며, 1811년 왕립극장에서 자작 피아노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1813년 덴마크 시민권을 획득함으로써 독일 음악을 덴마크에 알리는데 노력하였고, 그 결과 바흐, 모차르트, 하이든, 슐츠, 글룩 등의 독일 출신의 저명한 음악가들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쿨라우는 왕실 실내음악가로 상주하면서 칸타타와 오페라 음악을 많이 작곡했는데, 그 중에서도 누구나 쉽게 연주할 수 있는 소나티네, 론도 등의 소품을 작곡해 덴마크 최고의 인기스타 작곡가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1817년 그는 2번째 오페라인 '마술피리'를 왕립극장에서 발표했다. 대본 제작에 참여한 '올렌슐러(Oelhenschler)'와 '옌스 바게젠(Jens Baggesen)' 두사람은 당시 덴마크에서 가장 인기있는 작가였는데, 그만큼 두 작가를 지지하는 열성 팬들이 극장을 거의 차지하고 소란을 피우고, 당시 덴마크 국왕 프레데릭 5세가 금지했던 민주주의적 사상이 반영되었다는 지적이 나와서 상연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그 후 1년동안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여행을 가면서 안정을 취하게 된다. 여행 후 작곡한 오페라 '룰루(Lulu)'가 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32번이나 상영되는 영광도 누린다. 그 후 1825년에 베토벤을 만나게 되면서 그의 음악 세계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이 때 베토벤은 쿨라우의 이름을 딴 캐논을 작곡해서 선물했다고 한다.
1830년 그의 부모가 세상을 떠나고 1831년 집에서 일어난 화재로 인해 작곡 중이던 작품이 불에 타버려서 여러가지로 쇠약해진 쿨라우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1832년 세상을 떠난다.
특히나 연주 여행을 많이 한 것으로 유명하다. 덴마크에 있는 동안 7회에 걸쳐 대형 투어 음악회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3. 여담
그의 초상화를 보면 오른쪽 눈이 실명되었는데, 어렸을 때 눈길을 걷다가 미끄러져 사고를 당해서 그렇게 된 것이며, 오랜 기간 병상에 있으면서 침대 곁에 있던 피아노를 갖고 논 것이 음악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