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1세(프로이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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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가족사항


1. 개요


Friedrich I
1657년 7월 11일 ~ 1713년 2월 25일
프로이센 공작(1688년 4월 29일 ~ 1701년 1월 18일) / 프로이센 초대 왕(1701년 1월 18일 ~ 1713년 2월 25일)

2. 생애


프리드리히 빌헬름 선제후의 아들.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신성 로마 제국황제 레오폴트 1세에게 원군을 제공한 공으로 공작에서 왕으로 승격했다.(1701) [1] 전쟁과 행정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낭비벽이 심했으나[2] 예술과 학문을 좋아하여 라이프니츠의 헌책을 받아들여 1700년 베를린에 과학아카데미를 창설하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
무엇보다 아들, 손자를 잘 뒀다. 아들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때는 부국강병을 적극 추진하였고, 손자 프리드리히 2세 때로 오면 부국강병정책을 바탕으로 영토를 마구 넓히면서 프로이센은 북부 독일의 절대강자로 자리 매김하게 된다. 다만 아들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아버지의 낭비벽을 매우 혐오해서 사후 부왕의 사치품을 죄다 팔아치우고 국방비에 부어버렸다. 물론 프리드리리 1세의 호화스러운 소비는 처음으로 왕을 자칭한 군주였으로 다소 위엄을 과시할 필요가 있었다는 평가도 있다.

3. 가족사항


  • 두번째 아내: 하노버의 조피 샤를로테(1668년 10월 30일 ~ 1705년 2월 1일)[3]


[1] , 프리드리히는 참전의 대가로 신성로마제국의 봉신인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령을, 폴란드의 봉신이었다가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선제후 시절 독립한 프로이센 공작령에 통합시켜, 프로이센 왕국을 건설한다. 하지만 원래 신성로마제국 법상 왕호는 오직 보헤미아의 국왕만이 칭할 수 있었기 때문에 프리드리히는 외왕내제 비슷한 형식으로 "König '''von''' Preußen"(프로이센'''의''' 왕) 대신 "König '''in''' Preußen"(프로이센'''에서의''' 왕)를 칭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프리드리히의 프로이센 왕호는 그의 영지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으며, 국제 무대에서 여전히 프리드리히는 프로이센 국왕이 아닌, 신성로마황제의 일개 선제후 봉신이었다. 그러다가 손자인 프리드리히 2세 대왕에 이르러 정식으로 "König von Preußen"를 칭한다. 그러나 프로이센 국왕은 이후에도 신성로마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의 지위도 역시 유지하며 황제 선출에 계속 참여하였다.[2] 그 유명한 호박방도 원래는 프리드리히 1세가 아내를 위해 지은 것이다.[3] 조지 1세의 여동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