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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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rence Foster Jenkins'''
1868.7.19 ~ 1944.11.26
미국의 소프라노 성악가.
1868년 펜실베니아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음악 레슨을 받고 외국으로 유학을 가고 싶어했으나 아버지의 반대가 극심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의사인 프랭크 손튼 젠킨스(Frank Thornton Jenkins)와 눈이 맞아 1885년 필라델피아로 사랑의 도피를 하여 결혼에 골인했지만 남편에게서 임질을 옮은 후 부부관계는 싸늘하게 식고 17년 후인 1902년 이혼.[1] 그 후 피아니스트와 교사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다가 1909년, 그녀의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남긴 많은 유산을 물려받게 된다.[2] 그녀는 이 재산으로 필라델피아에서 성악 레슨을 받으며 베르디 클럽(Verdi Club)을 설립하고, 1912년에는 첫 리사이틀을 열며 성악가로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그녀의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난 1930년부터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유산까지 합쳐 더욱더 음악 활동에 매진하게 된다.
'''일단 들어 보자.''' 노래는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2막 중 밤의 여왕의 아리아. 급하면 가장 많이 알려진 부분인 54초부터 들으면 된다
이쯤 되면 제 아무리 음악적 지식이 전무한 사람이라도 플로렌스가 음악에 대한 감이 얼마나 없는지를 본능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3] 음의 높낮이나 리듬은 고사하고 악보의 음표조차 따라가기 벅찬 수준이다. 이런 가창력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은 마님'''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주변에는 항상 아부하는 사람들이 넘쳐났고, 그 탓에 젠킨스는 자기 자신이 노래를 매우 잘 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어느 정도냐면 '''자신의 노래를 듣다가 웃는 사람들은 자신의 재능을 시기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주장할 정도였다. 그녀의 노래를 듣고있던 녹음기사의 표정이 썩는 것을 보고는 "왜 그러죠? 더할 나위 없이 좋았는데"라고 한 적도 있다. 그 외에도 무대에 오를 땐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화려한 무대 의상을 입었는데, 요란한 장식이 되어 있거나 날개가 달려있기까지 했다고 한다.
여기까지라면 그냥 '분수도 모르고 설치는 정신 나간 부잣집 마님' 정도로 끝났을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플로렌스는 말년에 기어이 대형 사고를 치고 만다. '''바로 뉴욕 제일의 클래식 음악 전당인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한 것이다.''' 사실 젠킨스는 주로 자신의 클럽에 소속된 사람들과 초청객들 앞에서만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었고, 공연이라고 해봤자 매년 뉴욕의 리츠칼튼 호텔 연회장에서 하던 정기 공연이 전부였다. 그리고 이 공연마저도 초청장을 받은 사람들만 입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럼에도 불구하고 알음알음 퍼지는 그녀의 악명은 대중의 호기심을 끝없이 자극했고, 결국 대중들의 요청에 못 이겨 개최한 것이 바로 1944년 10월 25일의 카네기 홀 공연. 공연날 몇 주 전에 입장권이 매진되었다는 것은 그녀의 노래 실력에 대한 대중들의 호기심을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리고, 그 공연이 끝나고 이틀만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져서 한 달 후에 사망했다.'''
성악가로서의 평가는 일단 굉장히 좋지 않다. 그래서 혹자는 젠킨스가 32년간 성악가로 활동한 것은 단지 사람들을 재미있게 하려는 장난에 불과했다고 주장하기도 하며, 카네기 홀 공연 후 한 달 만에 사망한 것은 비평가들의 혹평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4]
그러나 이것들은 근거가 희박한 주장이다. 우선, 젠킨스가 단지 장난으로 활동을 했다고 하면 감히 그 유명한 카네기 홀에서 공연할 생각을 했을 리가 없다. 또한, 비평가들의 혹평에 충격을 받고 사망했다는 주장도 생전에 그녀가 남긴 ''' "사람들은 내가 노래를 못한다고는 할 수 있어도, 노래를 안 한다고는 할 수 없을 것"'''[5] 이라는 말로 미루어 볼 때 잘못된 주장이다. 적어도 젠킨스가 혹평을 한 번도 안 들어본 사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실력이야 어쨌건 그녀는 자신이 성악가라는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으며(죽는 순간까지도), '''심지어 아홉 개의 아리아를 수록한 다섯 개의 레코드판을 내기까지 했다.''' 이 레코드판은 후에 세 개의 CD로 재발매 됐는데, 그 레코드의 타이틀은 다음과 같다.
그래도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일화도 있다. 1943년에 택시를 탔다가 택시가 다른 차와 충돌하는 교통사고가 일어났는데, 평소같으면 택시 회사를 상대로 배상금을 청구했겠지만 사고 당시에 우연히 비명을 질렀다가 높은 파(High F) 음을 잘 낼 수 있게 되었다고 하며 오히려 택시기사에게 고급 담배를 선물했다고 한다. 사고로 충격을 받은 거보다 음악을 더 우선시했다는 증거이다.
게다가 자신의 부를 가지고 자기 음악 활동만 한 게 아니고 다른 어려운 음악인들도 후원해 주었고 자선사업도 많이 했다고 한다.
일부 사람들은 그녀의 목소리가 최악이고 작곡가에 대한 모욕, 귀 테러라고 말한다. 하지만 플로렌스가 소프라노로서는 자격 미달일수는 있어도, 노력하는 음악인으로서는 만점을 받을만하다. 또한 가난한 음악인들을 후원까지 해주었으니, 자신의 한계보다 너무 큰 꿈을 꾸는 바람에 약간의 흑역사를 생성했을 뿐 그저 음악을 지극히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플로렌스 본인도 한 때는 피아노 교사로 활동했었고, 어렸을 때는 백악관에서 피아노를 연주한 적도 있었다는 걸 보면 음악가로서의 자질은 충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왼손에 문제가 생기면서 더 이상 피아노를 제대로 칠 수 없는 몸이 되었고,[9] 음악의 길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플로렌스는 자신이 유일하게 음악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인 성악으로 눈을 돌렸던 것이다. 만약 손에 문제만 없었더라면 아마 준수한 실력의 피아니스트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2015년에 전기영화는 아니지만 프랑스에서 이 사람의 캐릭터를 빌려와 만든 영화 마가렛트 여사의 숨길 수 없는 비밀이 개봉했으며, 2016년 메릴 스트립 주연의 전기영화가 또 개봉했다. 두 번째 남편이자 매니저인 클레어 베이필드 역은 휴 그랜트가 맡았고, 반주자 맥문 역은 사이먼 헬버그가 맡았다. 재미있는건, 플로렌스를 연기한 메릴 스트립은 음치가 아닌 것은 물론이고 어렸을 때부터 성악을 배웠으며 노숙하던 무명 시절에는 길거리의 각종 극단을 전전하며 노래를 한 적이 있기 때문에 배우들 중에서도 노래 실력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그것의 단적인 예를 볼 수 있는 영화가 바로 '''맘마미아'''이다.) 즉, 작중 메릴 스트립의 노래 실력은 말 그대로 '연기'이다.
레드넥 램페이지의 에피소드 2 두번째 맵은 '''정신병원'''인데, 아무리 들어도 이 사람의 노랫소리를 샘플링한 걸로 추정되는 목소리와 이상한 피아노 반주가 어우러진 기괴한 음악이 짧은 환경 효과음으로 배경인 정신병원 건물에서 내내 울려퍼지고 있다. 효과음(?) 들어보기.
던전 앤 파이터의 배경상의 인물 히만 스텔라는 심한 음치로 그녀의 노래 실력보다 얼굴을 보러 오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하는데, 이 사람에게서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일화는 MBC의 타임머신에서 "사상 최악의 소프라노(E54, 2003. 01. 12. 방영)"라는 에피소드로 극화하기도 하였다.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메인 미션중 역마차를 터는 미션에 체스터 댐슨이라는 여성이 나오는데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의 오마주이다. 미션 도중 받는 쪽지에서 나오는 부유하고 야심차지만 끔찍한 오페라 가수라는 설명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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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Florence Foster Jenkins'''
1868.7.19 ~ 1944.11.26
미국의 소프라노 성악가.
2. 상세
1868년 펜실베니아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음악 레슨을 받고 외국으로 유학을 가고 싶어했으나 아버지의 반대가 극심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의사인 프랭크 손튼 젠킨스(Frank Thornton Jenkins)와 눈이 맞아 1885년 필라델피아로 사랑의 도피를 하여 결혼에 골인했지만 남편에게서 임질을 옮은 후 부부관계는 싸늘하게 식고 17년 후인 1902년 이혼.[1] 그 후 피아니스트와 교사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다가 1909년, 그녀의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남긴 많은 유산을 물려받게 된다.[2] 그녀는 이 재산으로 필라델피아에서 성악 레슨을 받으며 베르디 클럽(Verdi Club)을 설립하고, 1912년에는 첫 리사이틀을 열며 성악가로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그녀의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난 1930년부터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유산까지 합쳐 더욱더 음악 활동에 매진하게 된다.
3. 경력
'''일단 들어 보자.''' 노래는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2막 중 밤의 여왕의 아리아. 급하면 가장 많이 알려진 부분인 54초부터 들으면 된다
이쯤 되면 제 아무리 음악적 지식이 전무한 사람이라도 플로렌스가 음악에 대한 감이 얼마나 없는지를 본능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3] 음의 높낮이나 리듬은 고사하고 악보의 음표조차 따라가기 벅찬 수준이다. 이런 가창력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은 마님'''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주변에는 항상 아부하는 사람들이 넘쳐났고, 그 탓에 젠킨스는 자기 자신이 노래를 매우 잘 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어느 정도냐면 '''자신의 노래를 듣다가 웃는 사람들은 자신의 재능을 시기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주장할 정도였다. 그녀의 노래를 듣고있던 녹음기사의 표정이 썩는 것을 보고는 "왜 그러죠? 더할 나위 없이 좋았는데"라고 한 적도 있다. 그 외에도 무대에 오를 땐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화려한 무대 의상을 입었는데, 요란한 장식이 되어 있거나 날개가 달려있기까지 했다고 한다.
여기까지라면 그냥 '분수도 모르고 설치는 정신 나간 부잣집 마님' 정도로 끝났을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플로렌스는 말년에 기어이 대형 사고를 치고 만다. '''바로 뉴욕 제일의 클래식 음악 전당인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한 것이다.''' 사실 젠킨스는 주로 자신의 클럽에 소속된 사람들과 초청객들 앞에서만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었고, 공연이라고 해봤자 매년 뉴욕의 리츠칼튼 호텔 연회장에서 하던 정기 공연이 전부였다. 그리고 이 공연마저도 초청장을 받은 사람들만 입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럼에도 불구하고 알음알음 퍼지는 그녀의 악명은 대중의 호기심을 끝없이 자극했고, 결국 대중들의 요청에 못 이겨 개최한 것이 바로 1944년 10월 25일의 카네기 홀 공연. 공연날 몇 주 전에 입장권이 매진되었다는 것은 그녀의 노래 실력에 대한 대중들의 호기심을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리고, 그 공연이 끝나고 이틀만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져서 한 달 후에 사망했다.'''
4. 음반
성악가로서의 평가는 일단 굉장히 좋지 않다. 그래서 혹자는 젠킨스가 32년간 성악가로 활동한 것은 단지 사람들을 재미있게 하려는 장난에 불과했다고 주장하기도 하며, 카네기 홀 공연 후 한 달 만에 사망한 것은 비평가들의 혹평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4]
그러나 이것들은 근거가 희박한 주장이다. 우선, 젠킨스가 단지 장난으로 활동을 했다고 하면 감히 그 유명한 카네기 홀에서 공연할 생각을 했을 리가 없다. 또한, 비평가들의 혹평에 충격을 받고 사망했다는 주장도 생전에 그녀가 남긴 ''' "사람들은 내가 노래를 못한다고는 할 수 있어도, 노래를 안 한다고는 할 수 없을 것"'''[5] 이라는 말로 미루어 볼 때 잘못된 주장이다. 적어도 젠킨스가 혹평을 한 번도 안 들어본 사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실력이야 어쨌건 그녀는 자신이 성악가라는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으며(죽는 순간까지도), '''심지어 아홉 개의 아리아를 수록한 다섯 개의 레코드판을 내기까지 했다.''' 이 레코드판은 후에 세 개의 CD로 재발매 됐는데, 그 레코드의 타이틀은 다음과 같다.
- The Muse Surmounted: Florence Foster Jenkins and Eleven of Her Rivals (Homophone Records)[6]
수록된 곡은 그녀의 반주자이기도 했던 코스메 맥문(Cosmé McMoon, 1901~1980)이 작곡한 곡밖에 없지만, 작곡가의 인터뷰도 수록되어 있는 레코드. 참고로, 이 사람은 1944년 카네기 홀 공연에서 가장 고생한 사람이기도 하다. 어느 정도냐면 젠킨스가 박자나 리듬을 실수하면 그에 맞춰 틀리게 연주해 줘야 했다.[7]
- The Glory(????) of the Human Voice (RCA Victor)[8]
나머지 여덟 곡의 아리아가 수록된 레코드. 반주자는 위에서도 언급했던 코스메 맥문. 참고로, 이 레코드의 표지에 있는 아리따운(?) 여성분이 바로 공연 의상을 입고 있는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다. 2013년 12월 Sony에서 이 음반을 리마스터링해서 재발매했다.
- Murder on the High C's (Naxos Records)
아홉 곡의 아리아가 전부 수록된 레코드. 다만, 맥문의 인터뷰는 빠져있다. 앨범 이름의 유래는 미국영화 Murder on the High Seas.
5. 음악에 대한 그녀의 열정
그래도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일화도 있다. 1943년에 택시를 탔다가 택시가 다른 차와 충돌하는 교통사고가 일어났는데, 평소같으면 택시 회사를 상대로 배상금을 청구했겠지만 사고 당시에 우연히 비명을 질렀다가 높은 파(High F) 음을 잘 낼 수 있게 되었다고 하며 오히려 택시기사에게 고급 담배를 선물했다고 한다. 사고로 충격을 받은 거보다 음악을 더 우선시했다는 증거이다.
게다가 자신의 부를 가지고 자기 음악 활동만 한 게 아니고 다른 어려운 음악인들도 후원해 주었고 자선사업도 많이 했다고 한다.
6. 평가
일부 사람들은 그녀의 목소리가 최악이고 작곡가에 대한 모욕, 귀 테러라고 말한다. 하지만 플로렌스가 소프라노로서는 자격 미달일수는 있어도, 노력하는 음악인으로서는 만점을 받을만하다. 또한 가난한 음악인들을 후원까지 해주었으니, 자신의 한계보다 너무 큰 꿈을 꾸는 바람에 약간의 흑역사를 생성했을 뿐 그저 음악을 지극히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플로렌스 본인도 한 때는 피아노 교사로 활동했었고, 어렸을 때는 백악관에서 피아노를 연주한 적도 있었다는 걸 보면 음악가로서의 자질은 충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왼손에 문제가 생기면서 더 이상 피아노를 제대로 칠 수 없는 몸이 되었고,[9] 음악의 길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플로렌스는 자신이 유일하게 음악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인 성악으로 눈을 돌렸던 것이다. 만약 손에 문제만 없었더라면 아마 준수한 실력의 피아니스트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7. 그 외
2015년에 전기영화는 아니지만 프랑스에서 이 사람의 캐릭터를 빌려와 만든 영화 마가렛트 여사의 숨길 수 없는 비밀이 개봉했으며, 2016년 메릴 스트립 주연의 전기영화가 또 개봉했다. 두 번째 남편이자 매니저인 클레어 베이필드 역은 휴 그랜트가 맡았고, 반주자 맥문 역은 사이먼 헬버그가 맡았다. 재미있는건, 플로렌스를 연기한 메릴 스트립은 음치가 아닌 것은 물론이고 어렸을 때부터 성악을 배웠으며 노숙하던 무명 시절에는 길거리의 각종 극단을 전전하며 노래를 한 적이 있기 때문에 배우들 중에서도 노래 실력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그것의 단적인 예를 볼 수 있는 영화가 바로 '''맘마미아'''이다.) 즉, 작중 메릴 스트립의 노래 실력은 말 그대로 '연기'이다.
레드넥 램페이지의 에피소드 2 두번째 맵은 '''정신병원'''인데, 아무리 들어도 이 사람의 노랫소리를 샘플링한 걸로 추정되는 목소리와 이상한 피아노 반주가 어우러진 기괴한 음악이 짧은 환경 효과음으로 배경인 정신병원 건물에서 내내 울려퍼지고 있다. 효과음(?) 들어보기.
던전 앤 파이터의 배경상의 인물 히만 스텔라는 심한 음치로 그녀의 노래 실력보다 얼굴을 보러 오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하는데, 이 사람에게서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일화는 MBC의 타임머신에서 "사상 최악의 소프라노(E54, 2003. 01. 12. 방영)"라는 에피소드로 극화하기도 하였다.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메인 미션중 역마차를 터는 미션에 체스터 댐슨이라는 여성이 나오는데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의 오마주이다. 미션 도중 받는 쪽지에서 나오는 부유하고 야심차지만 끔찍한 오페라 가수라는 설명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1] 이 후 임질의 여파로 플로렌스는 심한 탈모로 인해 말년에는 가발을 항상 착용하고 다녔다.[2] 처음에는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음악의 길을 따라 사랑의 도피를 한 딸을 유산 상속자 대상에서 제외시켜 버렸으나, 나중에 무슨 계기가 있었던 건지 다시 마음을 바꿔 그녀에게 재산을 상속시키기로 결정했다.[3] 감이 잘 안 잡힌다면 크리스티나 도이테콤, 조수미, 루치아 포프 등의 성악가들의 버전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4] MBC의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그녀의 이야기를 소개할 때 그녀가 카네기 홀에서 공연하기 전까지는 '''자기가 노래를 잘하는 줄 알았다가''' 카네기홀 공연에서 야유와 비난을 듣고 충격을 받아 사망했다고 묘사한다.[5] 이 말은 젠킨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플로렌스에서도 마지막 대사로 나온다. 영화상으로는 거의 유언에 가까운 연출.[6] 해석하면 "뮤즈를 뛰어넘는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와 그녀의 11명의 라이벌".[7] 아일랜드계 아버지와 멕시코계 어머니를 두고 멕시코에서 태어난 멕시코인이었는데 그는 젠킨스 사후에는 피아니스트로는 썩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이후 보디빌더로 전향해 많은 수상을 했다고 한다. 1980년 췌장암으로 사망하였다.[8] 참고로 저 '????'도 엄연한 타이틀의 일부다. 링크.[9] 아마도 첫 남편에게서 옮은 임질의 여파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