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릴 스트립
1. 개요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대배우이자 '''영화 역사상 최고의 배우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는 명배우 이며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3회, 노미네이트 21회 라는 대기록을 자랑하는 인물.
1970년대부터 명연기로 주목받았으며, 지금까지도 자주 노미네이트가 되는 등 할리우드의 아이콘 중 하나이다.
2. 젊은 시절
1949년 미국 뉴저지 주 서밋의 약품회사를 경영하는 아버지를 둔 중산층 가정에서 출생했다. 성악가를 목표로 12살 때 부터 성악 트레이닝을 받았다가 진로를 배우로 결정한 그녀는 바사 대학교(Vassar College)를 졸업하고 예일 대학교 연극대학원(Yale School of Drama)에 진학한다.
메릴 스트립은 데뷔하기까지 쉽지 않은 삶을 살았다. 어떤 때에는 숙박비가 없어서 런던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기도 했다.[2] 거리에서 공연을 하며, 하루하루 생활비를 벌기도 했고, 대학 졸업 후에는 호텔의 웨이트리스로도 일을 하였다. 1971년에 《세비야의 플레이보이》라는 작품에서 데뷔했고 1977년 TV 영화인 《치명적인 계절》(The Deadliest Season)으로 영화에 들어섰다.
스트립의 필모그래피에 중요한 초석이된 작품은 1978년에 나온 영화 《디어 헌터》로 이 영화로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 조연상에 지명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아카데미 시상식 최다 후보지명 기록도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3. 영화 활동
1979년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는 스트립의 초기 필모그래피에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더스틴 호프먼과의 열연으로 그녀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1982년 영화 《소피의 선택》으로 생애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소피의 선택》에서의 그녀의 연기는 현재까지도 영화 역사상 최고의 연기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1985년에는 그 유명한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출연하여 할리우드 최고의 남자배우인 로버트 레드퍼드와 호흡을 맞추기도 하였다. 이 영화로 5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해 무려 7개부문에 수상하며 주인공이 되었다. 이후 스트립은 꾸준하게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 되며 활동을 이어간다.
1999년에는 원 트루 씽 (One true thing)이라는 감동적인 스토리로 열연을 펼쳐 아카데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가 되었지만 기네스 펠트로에게 여우주연상이 돌아갔다.
2006년엔 앤 해서웨이와 함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출연하였다. 젊은 세대들에겐 아마 이 영화가 메릴 스트립하면 가장 떠오르는 작품일 것이다. 전설적인 패션 편집장인 "미란다" 역을 맡았으며 정말 소름돋는 연기력을 보여줬다. 소설만큼 악독하지는 않았지만..... 얼마나 대단한 연기력을 보여줬는지 상업영화임에도 불구하고 7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된다. 해서웨이는 같이 연기하면서 메릴 스트립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2008년엔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맘마미아》에 출연했다. 예순에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40대 초반의 주인공 '도나' 役을 맡아 열연했다. 더이상 말이 필요없는 연기와 탁월한 노래 실력을 뽐내며 전세계적으로 큰 흥행을 이끌었다.
2008년엔 필립 시모어 호프먼, 에이미 애덤스와 《다우트》란 영화에 출연하였고, 배우들의 열연으로 8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된다. 이듬해엔 《줄리 & 줄리아》에 출연하여 다시한번 에이미 애덤스와 호흡을 맞추기도 하였다. 이 영화로 8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2012년엔 영국 총리였던 마거릿 대처 역을 맡으며 실제 대처 총리인 줄 착각하게 만들 만한 메소드 연기를 선보이며 8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2번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게된다. 사실 오랫동안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지만, 이미 오스카 위너였기 때문에 '''일부러 안 주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들도 있었는데, 드디어 수상하게 된다.
이후 줄리아 로버츠, 크리스 쿠퍼와 《어거스트 : 가족의 초상》에 출연하였고 가족들에게 독설을 내뿜는 "바이올렛 웨스턴" 역을 맡았다. 얼핏보면 막장 드라마지만, 좋은 연출력을 선보이며 작품성에서 인정받기도 하였다. 어찌보면 가장 현실적인 가족이야기 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 스트립의 연기력이 가장 돋보였다. 스트립과 로버츠는 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2014년에는 영화 《숲속으로》에 출연하여 뮤지컬 형식의 연기를 하였다. 뮤지컬 장르 영화로 유명한 롭 마샬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조니 뎁, 에밀리 블런트, 애나 켄드릭등도 출연하였다. 이 영화로 스트립은 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하지만 이번 후보 지명에 대해서는 이해 할 수 없다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메릴 스트립은 35년 가까이 예술영화에 헌신해 왔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대표하는 배우다. 그녀가 기록한 21번의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기록은 사이 영의 500승처럼 불멸의 기록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미국 영화 역사를 통틀어 배우중 그녀에 비견될 만한 커리어를 쌓은 사람은 할리우드 초중기의 전설적 배우였던 캐서린 헵번[3] 이 유일하다. 캐서립 헵번은 아카데미에 12번 노미네이트되어 여우주연상으로 4회나 수상하였다. 현재 아카데미의 여배우 계보는 캐서린 헵번-메릴 스트립-조디 포스터-케이트 블란쳇, 줄리앤 무어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7년 제74회 골든글로브 공로상을 수상했는데, 수상 소감(내지는 연설)이 상당히 화제가 되었다.# 아래는 수상 소감을 한글로 해석한 전문이다.
할리우드 외신 기자협회 여러분 감사합니다. 아까 휴 로리가 하던 말을 이어서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미국에서 가장 큰 비난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생각해보세요. 할리우드, 외국인, 기자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누구고 대체 할리우드가 뭔가요? 다른 지역에서 건너온 사람들의 무리에 불과합니다. 저는 뉴저지에서 태어났고 공립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바이올라는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농장에서 태어나서 로드아일랜드의 센트럴폴즈로 이주했고요. 사라 폴슨은 플로리다에서 태어나 싱글맘과 함께 브루클린에서 자랐습니다. 사라 제시카 파커는 오하이오 출신으로 7~8명의 형제가 있었죠. 에이미 아담스는 이탈리아의 비첸자에서 태어났습니다. 나탈리 포트만은 예루살렘 출생이고요. 이들의 출생증명서는 어딨습니까? 아름다운 루스 네가는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아니 제가 알기로 아일랜드에서 자랐을 거예요. 그리고 버지니아 출신의 소녀를 연기해 오늘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보통 좋은 사람들이 그렇듯 라이언 고슬링은 캐나다 사람이고요. 데브 파텔은 케냐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자랐고 태즈메이니아에서 자란 인도인을 연기해 이 자리에 있습니다. 할리우드는 외부인과 외국인으로 가득 찬 곳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모두 쫓아낸다면 우리는 평생 미식축구와 격투기만 보면서 살아야 할 겁니다. 그것들은 예술이 아닙니다. (기립박수)
말할 시간에 3초 밖에 안 남아서 계속할게요. 배우가 하는 일은 다른 사람의 삶으로 들어가 관객들이 그 사람의 인생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도록 하는 겁니다. 올해는 그런 훌륭한 연기들이 참 많았습니다.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답고 인간적인 연기들이요. 하지만 저를 깜짝 놀라게 한 연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연기는 제 가슴에 흔적을 남겼습니다. 좋은 연기여서가 아닙니다. 좋은 점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효과적이었고 제 역할을 했죠. 일부 관객들을 웃게 했고 그 진면목을 드러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자리에 오르길 자처하는 사람이 '''장애인 기자를 따라했던 그 순간'''입니다. 그에 비해 특권도, 권력도, 맞서 싸울 능력도 모자랐는데 말입니다. 저는 그걸 보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왜냐면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였으니까요. 이처럼 다른 사람을 모욕하는 행위를 공적 자리에 서는 사람이 행할 때, 권력이 있는 사람이 행할 때 그 행위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 행동을 해도 된다고 승인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무례함은 무례함을 낳습니다. 폭력은 폭력을 부릅니다. 그리고 권력자가 다른 사람을 괴롭힐 때 우리는 모두 패배합니다.
기자 이야기가 남았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책임을 물을 고결한 기자들이 필요합니다. 사건이 있을 때마다 그를 비판할 기자들이요. (기립박수) 그게 우리의 선조들이 헌법에 언론의 자유를 새긴 이유입니다. 그래서 저는 부자로 유명한 할리우드 외신 기자협회와 헐리우드의 명사들에게 요청합니다. 저와 함께 언론인보호위원회를 후원해주세요. 우리는 앞으로 그들이 필요합니다. 그들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 우리가 필요할 겁니다.
한 가지 더요. 한 번은 촬영장에서 괜한 불평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촬영이 저녁까지 지연됐나 그랬을 거예요. 토미 리 존스가 말하더군요. 메릴, 배우로 산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특권이지 않아? 맞아요. 우리가 가진 특권과 또 의무를 서로에게 상기시켜 줍시다. 공감을 전할 의무요. 오늘 할리우드가 기념하는 우리의 직업을 자랑스러워합시다. 저의.. 제가 사랑하는 친구이자 최근 세상을 떠난 레아 공주가 말했습니다.
"'''아픈 마음을 간직하고 예술에 쏟아부어라'''"
감사합니다. 할리우드 외신 기자협회 여러분.
- 메릴 스트립
거의 나들이 가는 수준(...)으로 매댓년 시상식 후보는 물론 상까지 받아가는 스트립이지만 이 자리에서만큼 평소 답지 않게 진중하면서도 긴장한 상태였는데, 스트립의 이러한 무겁고 날카로운 연설은 각종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되면서 많은 지지를 받았다. 특히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도널드 트럼프를 디스한 것이 임팩트가 컸는지,[4] 트럼프는 스트립의 수상 소감을 보고 트위터에 '''''가장 과대평가 받는 배우''''' 라고 맞디스를 했다(...)출처 [5]
특히 '무례함은 무례함을 낳고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 라는 말은, 현 시국을 가장 긴밀하게 관통하는 뼈 아픈 발언임과 동시에 소수자 혐오를 반대하고, 예술의 다양성을 촉구하던 스트립의 행보와 맞아 떨어지는 품격있는 발언이라 할 수 있다. 어느정도 발언의 자유가 보장된 헐리우드라지만 이렇게 공식적인 석상에서, 그것도 공로를 우수히 여겨 상을 주는 공로상 수상 자리에서 위와 같은 연설을 한 스트립의 용기는 세계적으로 큰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이런 메릴의 수상 소감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는 반응도 있었다. "우리가 외국인들을 쫓아낸다면 미식축구나 격투기를 볼 수밖에는 없을 것이며 이것은 예술이 아니다"라는 발언은 문화의 다양성과 제노포빅에 대한 일종의 조크였으나, 다른 측면으로 보았을땐 풋볼이나 격투기 비하로 들릴 만한 발언이기 때문. 때문에 데이나 화이트를 비롯한 격투기 스포츠계 인사들은 메릴 스트립의 말에 반발했다.[6] 이 외에도 더 가디언에선 MMA 무대는 다양성을 매우 존중하는 환경이라면서 그 예로 아일랜드인 코너 맥그리거와 레즈비언 아만다 누네스를 들었고 MMA가 여성도 주연을 장식할 수 있는 스포츠라는 것을 설명하며 스트립의 말을 지적했다. #
또한 아동 성범죄자인 로만 폴란스키를 옹호한다는 의혹이 있어 비판 여론이 생성되었다. 자세한 항목은 논란 항목을 참조.
4. 아카데미 시상식 기록
- 1978년: 《디어 헌터》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노미네이트.
- 1979년: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노미네이트. 여우조연상 수상.
- 1981년: 《프랑스 중위의 여자》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첫 노미네이트.
- 1982년: 《소피의 선택》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여우주연상 수상.
- 1983년: 《실크우드》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1985년: 《아웃 오브 아프리카》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1987년: 《엉겅퀴꽃》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1988년: 《어둠 속의 외침》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1990년: 《할리우드 스토리》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1995년: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1998년: 《원 트루 씽》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1999년: 《뮤직 오브 하트》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2002년: 《어댑테이션》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노미네이트.
- 2006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2008년: 《다우트》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2009년: 《줄리 & 줄리아》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2012년: 《철의 여인》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여우주연상 수상..[7]
- 2014년: 《어거스트》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2015년: 《숲속으로》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노미네이트
- 2017년: 《플로렌스》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 2018년: 《더 포스트》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5. 출연작
- 1976년: 《줄리아》
- 1977년: 《치명적인 시기》
- 1978년: 《디어 헌터》 : 린다 역
- 1978년: 《홀로코스트》
- 1979년: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 조안나 크레이머 역
- 1979년: 《맨하탄》 : 질 역
- 1981년: 《프랑스 중위의 여자》 : 사라 역
- 1982년: 《소피의 선택》 : 소피 역
- 1982년: 《살의의 향기》
- 1983년: 《실크우드》
- 1983년: 《아메리칸 마스터즈》 : 본인 역
- 1984년: 《폴링 인 러브》 : 몰리 길모어 역
- 1985년: 《아웃 오브 아프리카》 : 카렌 역
- 1985년: 《프렌티》
- 1986년: 《제2의 연인》
- 1987년: 《엉겅퀴 꽃》
- 1988년: 《어둠 속의 외침》
- 1989년: 《그녀는 악마》
- 1990년: 《헐리웃 스토리》
- 1991년: 《영혼의 사랑》 : 줄리아 역
- 1992년: 《죽어야 사는 여자》 : 매들린 애쉬턴 역
- 1992년: 《고모론》 : 게스트 역
- 1993년: 《영혼의 집》 : 클라라 역
- 1994년: 《리버 와일드》
- 1994년: 《세기의 영화》
- 1995년: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 프란 역
- 1996년: 《비포 앤 애프터》 : 캐롤린 역
- 2001년: 《A.I.》 : 블루 메카 역
- 2002년: 《디 아워스》 : 클라리사 본 역
- 2002년: 《어댑테이션》 : 수잔 올린 역
- 2004년: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 : 조셉핀 숙모 역
- 2004년: 《맨츄리안 켄디데이트》 : 엘리노 프렌티스 쇼 역
- 2005년: 《프라임 러브》 : 리사 메츠거
- 2006년: 《앤트 불리》 : 여왕개미 역
- 2006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 미란다 역
- 2008년: 《맘마 미아!》 : 도나 역
- 2008년: 《다우트》 : 알로이시스 수녀 역
- 2009년: 《줄리 & 줄리아》 : 줄리아 차일드 역
- 2009년: 《판타스틱 Mr. 폭스》 : 폭스 부인 역
- 2009년: 《사랑은 너무 복잡해》 : 제인 역
- 2011년: 《철의 여인》 : 마가렛 대처 역
- 2012년: 《호프 스프링즈》 : 케이 소아메스 역
- 2013년: 《어거스트 : 가족의 초상》 : 바이올렛 웨스턴 역
- 2014년: 《걸 라이징》 : 나레이션
- 2014년: 《더 기버: 기억전달자》 : 수석 원로 역
- 2014년: 《숲속으로》 : 마녀 역
- 2014년: 《더 홈즈맨》 : 알타 카터 역
- 2015년: 《어바웃 리키》 : 리키 역
- 2015년: 《서프러제트》 : 에멀린 팽크허스트 역
- 2016년: 《플로렌스》 :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 역
- 2017년: 《더 포스트》 : 캐서린 그레이엄 역
- 2018년: 《맘마 미아! 2》: 도나 역[8]
- 2018년: 《메리 포핀스 리턴즈》 : 톱시 역
- 2019년: 《작은 아씨들》 : 조세핀 마치 고모할머니[9] 역
- 2020년: 《더 프롬》 : 디디 앨런 역
- 2022년: 《돈 룩 업》
6. 기타
- 현 남편인 돈 거머 이전에 대부 시리즈의 프레도 콜레오네로 유명한 배우 존 커제일과 연인 사이로 유명했다. 1976년 연극무대에서 처음 만난 둘은 이후 커제일이 골수암 진단을 받았음에도 약 3년간 뉴욕에서 같이 살았다. 두 사람은 이후 영화 《디어 헌터》에 같이 출연하게 되었는데, 스트립은 극 중 역할에 대해 다소 의구심이 있었으나 몸이 아픈 연인을 옆에서 지켜준다는 사실에 먼저 기뻐했다고 한다. 또한, 감독인 마이클 치미노와 각본가와의 협의 하에 폐암 말기까지 겹쳐 극도로 허약해진 커제일의 촬영을 먼저 할수 있도록 재조정했을 정도로 지극정성이었다. 촬영 직후 커제일은 골수암으로 78년 3월에 세상을 떠났는데, 스트립은 죽을 때까지 옆에서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고 한다. 또한, 2009년에 제작된 단편 다큐멘터리(I Knew It Was You[10] : Rediscovering John Cazale)의 제작과 재정 지원에 참여하였고, 다큐에는 직접 출연해서 그를 회고했다.
- 2015년 타임아웃지와의 인터뷰에서, '당신은 페미니스트냐' 라고 묻는 질문에 '나는 휴머니스트다' 라고 대답했다. (Q. Are you a feminist? A. I am a humanist, I am for nice easy balance.#)
- 현 남편 돈 거머와는 1978년 9월에 결혼했다. 이후 40년 넘게 해로하며, 4명의 자식을 키웠다. 4명 모두 메릴 스트립과 판박이이며 딸들은 모두 모델과 배우로 활동 중이며 아들은 가수로 활동 중이다. 이혼이나 스캔들이 일상인 할리우드에서 보기 드문 사례.[12] 게다가 영화뿐만 아니라, 가정이나 사회활동 등에서 모범적이여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입었던 의상 전부를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도 하였다.[13] 이렇게 뛰어난 연기와 자신의 직업과 가정 그리고 노블레스 오블리주 등에서 언제나 열정적이고 모범적인 메릴 스트립을 이 시대의 수많은 여배우들은 자신들의 롤모델[14] 로 꼽고 있다.
- 메릴 스트립의 팬들은 자칭 Streeper라고 한다(...).
- 2000년대 이후 부터 HBO계열의 드라마에서 호연을 펼치기 시작했다. 엔젤스 인 아메리카(Angels in america, 2003)라는 TV시리즈에서도 메릴 스트립의 연기를 볼수 있는데, HIV바이러스를 앓고 있는 80년대 성소수자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원작(퓰리처수상)을 토대로한 HBO 6부작 미니시리즈이다. 유료 프리미엄 케이블 방송국인 HBO의 막강한 섭외력으로 마이크 니콜스가 연출을 맡았고, 메릴 스트립을 포함한 걸출한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하며(알 파치노, 엠마 톰슨, 패트릭 윌슨, 메리 루이스 파커) 그들의 신들린 연기대결과 배우들 각자 1인 2역에서 심지어 3역까지 달하는 개성 넘치는 연기력을 보여준다. 이듬해 2004년도 에미상과 골든글러브 SAG 등 각종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작품상 등 미니시리즈 부분에 노미네이트와 수상을 하며 평단의 호평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메릴은 이를 통해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또 다가오는 2019년에는 HBO TV시리즈 빅 리틀 라이즈(리즈 위더 스푼, 니콜 키드먼 주연) 시즌2에 출연했다.
-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에 함께 출연했던 선배인 더스틴 호프만과 관계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 아무래도 더스틴 호프만이 연기 도중 메릴 스트립을 몇 대 때리고 결정적으로 메릴 스트립에게 알려주지도 않은 채로 와인잔을 날리는 애드립을 시전해서 완전히 감정이 상한 듯.
7. 논란
과거 인터뷰에서 "로만 폴란스키가 감옥에 있는것이 매우 안타깝다(Roman Polanski, I am Really Sorry That He is In Jail)"라고 발언한 것과 200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로만 폴란스키가 감독상 수상자로 호명받자 일어서면서 박수치던 모습이 재조명 되며 스트립에 대한 비판 여론이 생겼다. 헌데, "감옥에 있는것이 매우 안타깝다" 라고 발언한 영상은 편집된 영상만 떠돌고 풀영상은 보이지 않아 전체적인 맥락을 알 수 없을 뿐더러, 감독상 수상 같은 경우는 실제로 영상을 보았을때 수상을 축하해주는 표정, 박수라고 보기에는 많이 애매하다. 다만 메릴은 서명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과거 유명 영화인들이 로만 폴란스키에 대한 선처 요구에 서명하던 관례가 있었고 또한 위의 논란들에 대해 메릴 본인이 해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비판으로 여겨진다.
<더 포스트> 프로모션으로 진행된 버즈피드(BuzzFeed)와의 인터뷰에서 하비 와인스틴 성범죄 사건으로부터 촉발된 성범죄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런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예술과 도덕을 분리하는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중인 사안이지만, 위 발언이 하필 성범죄 사건 이야기 도중 나온것이 문제가 된 것. 위에서 말한 '천재들'이 천재이면서 범죄자인 사람들을 포함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셀러브리티의 성 관련 행실에 대한 대중들의 시선이 엄격해진 현재 시국에 다소 엇나간 발언이기에 그녀의 팬들이 적잖게 실망감을 표한바 있다.“We still revere Shakespeare. I mean we haven’t thrown [“The Merchant of Venice”] out and there is no question that that play is antisemitic. There’s no question that ‘The Taming of The Shrew’ is misogynist. Everybody has their blank spots, but the genius that understands about the human experiment is worth safeguarding and shouldn’t be touched. People who are terrible also have terribly clear insights on other subjects, so I don’t think you throw the baby out with the bathwater.”
우리는 여전히 셰익스피어를 숭배한다. 무슨 말이냐면 우리는 '베니스의 상인'을 내다 버리지 않았지만 그것은 명백히 반유대주의적이고 '말괄량이 길들이기' 역시 의심의 여지 없이 여성혐오적이다. 인간은 누구나 허점들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 실험에 대해 잘 아는 천재들은 보호받을 필요가 있고 건드려서는 안 된다. 끔찍한 사람들이 다른 주제들에 대해서는 끔찍할 정도로 분명한 식견을 가지고 있기도 하므로,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기까지 같이 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따지고보면 셰익스피어와 현대의 성 범죄자들과는 엄연히 다른 얘기다. 두 희곡이 유대인이나 여성에 대해 편견이 있다고 해도 이건 시대적 한계로 인한 것이다. 즉, 당시에는 여성이나 유대인에 대한 시선이 사회전반적으로 편협하였고 셰익스피어는 위대한 문학가일 뿐이지 이런 편협한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므로 그런 경향이 작품에 드러나는 것 뿐이다. 당시는 여성이 남성과 대등한 사회구성원이라는 걸 대부분 사람들이 알지 '''못하던''' 시절이다. 유대인 차별도 마찬가지. 현대적 의미에서 남녀평등이 당연한 것이란 개념이 생겨나기 전이니 당연히 남녀평등이란 걸 모를 수밖에 없는데 그걸 갖고 탓할 순 없는 노릇. 여성들이 10대 때 결혼하는게 당연시되던 조선에서 국왕 영조가 60대에 15세 신부를 얻을 걸 두고 "아동성애자 인간쓰레기!"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식으로 치면 고대, 중세의 고위층은 누구든지 크고작건 어떤 식으로든 비난할 수 있다. 최소한 노예들을 부리고나 중혼, 미성년자 성착취 정도는 갖다붙힐 수 있느니.
반면 로만 폴란스키와 하비 와인스틴은 해당 행동이 범죄하는 걸 명확히 알고도 저질렀으며, 계획적이고 상습적이었다. 또한 자신들의 위계상 위력을 남용해 저지른 짓. "범죄가 성립한다는 걸 알고도 악질적인 범죄를 저지른" 자들과, "이게 도덕적으로 지탄받는다는 걸 모르고" 한 행동을 동일선상에 놓을 순 없다. 백번 양보해 셰익스피어를 현대인의 시각으로 판단해 그가 시각이 편협하다고 치더라도, 끽해야 그는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시각을 작품에 반영한 것 뿐이다. 폴란스키와 와인스틴은 '''범죄자''', 그것도 악질 범죄자다.
물론 서두에 나왔다시피 "도덕과 예술을 불리할 수 있느냐"는 끊임없는 논쟁이 이뤄지는 분야다. 그러나 명백히 악질적인 범죄를 저지른 영화인을 논하면서, 역대 가장 위대한 예술가 중 하나의 도덕적 흠, 그것도 엄밀히 따지면 도덕적 흠이라고 볼 수 없는 [15] 부분을 언급하는 건 물타기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