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머스 릴라이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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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1989년식 닷지 에어리즈 쿠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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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1989년식 플리머스 릴라이언트 웨건
'''Plymouth Reliant / Dodge Aries'''
1981~1989년 사이에 미국의 자동차 업체인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이 생산한 중형차 라인업이다. 흔히들 플랫폼 이름을 따서 "K-카"라고 불리기도 하며, 플랫폼 자체는 1980년대 내내 크라이슬러의 여러 차종들을 개발하는 토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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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1985년식 플리머스 릴라이언트
1970년대에 들면서 크라이슬러는 경영진들의 무능한 모습과 함께 1950~60년대에 쌓아둔 명성을 잃어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1970년대의 석유 파동이 불어닥치고 있을 때, 그나마 제너럴 모터스와 포드, 그리고 AMC가 그럴듯한 대비책이 준비되어 있는 동안에도 크라이슬러는 포드 핀토나 쉐보레 베가, AMC 그렘린등의 소형차들보다 한 등급 더 큰 닷지 다트와 플리머스 밸리언트가 가장 작은 라인업이였으며, 그나마 유럽 지사를 통해 영국에서 들여온 플리머스 크리켓은 1971년에 데뷔해 고작 2년만에 판매부진으로 미국에서 철수해버렸다.[1] 기존에 있던 다트/발리언트의 대안이였던 닷지 애스펀과 플리머스 볼라레조차 품질 문제로 인해 대규모 리콜을 실시해야 했고, 판매하던 차들의 엔진을 손봐 배기가스 규정에 대비하려는 대책조차도 공인연비의 하락으로 인해 판매량이 계속 줄어들어 일이 더 꼬여버렸다. 일본 미쓰비시 차량으로 이를 메꾸는 것도, 수입 비용 등의 여러 비용들을 고려하면 수익성에 큰 도움이 되진 못했다.
그래도 크라이슬러에게 다행이라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으니, 1978년에 포드와의 불화로 크라이슬러를 찾은 리 아이아코카의 등장이였다. 아이아코카는 정부로부터 필요한 비용을 대출받은 뒤 직원들을 일시 정리(lay off)하고, 수익성이 떨어지던 유럽 지사를 푸조에 넘겼으며, 포드에 있던 자신들의 동료들을 불어모으는 식의 방법으로 크라이슬러를 회생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총동원했다. 이때 유럽 지사에서 가져온 닷지 옴니/플리머스 호라이존이 아리스/릴라이언트의 기반이 될 K바디 플랫폼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되어, 미국 시장을 위한 앞바퀴굴림 소형차를 만들기 위한 계획에 착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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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1985년식 닷지 에어리즈
1981년에 닷지 에어리즈와 플리머스 릴라이언트의 이름으로 출시된 첫 K카는 앞바퀴굴림 구조가 선사하는 좋은 연비와 소형차답지 않은 넓찍한 실내 공간이라는 이점, 그리고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호흥을 얻었다. 당시 준비되었던 라인업은 기본형[2] 과 SE, Custom의 3개 트림과 세단, 왜건, 쿠페의 3개 바디, 크라이슬러제 2.2리터 4기통과 2.5리터 직렬 4기통, 미쓰비시제 2.6리터 직렬 4기통[3] 의 3개 엔진 라인업이였다. 왜건의 경우는 SE 트림부터 선택할 수가 있었으며, 원한다면 모조 우드그레인 옵션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위에서 서술한 장점들과 인기 덕분에 1981년 "모터 트렌드" 지에서 선정한 "올해의 차" 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1982년에는 릴라이언트의 플리머스 로고가 크라이슬러의 5각별 로고로 교체되었으며, 바깥으로 밀어서 열던 쿠페의 뒷창문을 소위 "닭다리식" 레버로 여는 형태로 바꾸었다. 또한 2,2리터 4기통 엔진의 벨브 색상을 파란색에서 검정색으로 바꾸었다. 1983년식은 그릴을 검게 칠하는 정도의 선에서 머물렀으며, 1984년에는 보닛 위에 설치된 로고를 그릴 안으로 밀어넣고 후미등에 크롬 장식을 추가했다. 또한 인테리어에는 패드가 들어간 대시보드와 원형 게이지, 검은색 계기판을 추가했다.
1985년에는 맨 처음에 제시된 사진에서처럼 앞뒤를 둥글리는 형태의 페이스리프트가 있었다. 또한 기존의 2.2리터 엔진을 카뷰레터(기회기)식에서 연료 분사식으로 바꾸었으며, 칼럼 시프트식 3단 자동변속기나 플로어 시프트식 4단 수동변속기와 배합했다. 미쓰비시제 2.6리터 엔진은 인기가 좋아 계속 존속했으나 품질 문제로 인해 1986년에 크라이슬러제 2.5리터 엔진으로 교체되었다. 또한 일본 시장에서는 에어리스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닷지 미시건"으로 판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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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89년식 플리머스 릴라이언트 아메리카 LE 세단
1987년에는 쿠페 버전의 뒷창문에 중앙 벤트를 설치했으며, 기본형의 이름을 "아메리카(America)"로 바꾸는 등의 소소한 변화들이 있었다. 1989년 한 해 동안에는 기본형만 존재했으며, 1989년 12월 9일에 아리스 978,460대, 릴라이언트 1,114,618대의 생산 기록을 뒤로 하고 은퇴했다. 이후에는 닷지 스피릿/플리머스 어클레임이 바통을 이어받았으며, 플랫폼 자체는 1990년대 중반까지 여러 형태로 변형되어 크라이슬러의 여러 승용차 라인업을 커버했다.
많은 판매량과 인기, 플랫폼의 높은 활용도[4] 덕분에 미니밴과 더불어 위기의 크라이슬러를 살린 구세주라는 평가를 받는 동시에, 1980년대 내내 크라이슬러의 거의 모든 라인업에 플랫폼이 남발된 점을 이유로 크라이슬러의 이미지를 "싸구려"로 만들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1985~1989년식 닷지 에어리즈 쿠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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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1989년식 플리머스 릴라이언트 웨건
'''Plymouth Reliant / Dodge Aries'''
1. 개요
1981~1989년 사이에 미국의 자동차 업체인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이 생산한 중형차 라인업이다. 흔히들 플랫폼 이름을 따서 "K-카"라고 불리기도 하며, 플랫폼 자체는 1980년대 내내 크라이슬러의 여러 차종들을 개발하는 토대가 되었다.
2. 상세
2.1.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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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1985년식 플리머스 릴라이언트
1970년대에 들면서 크라이슬러는 경영진들의 무능한 모습과 함께 1950~60년대에 쌓아둔 명성을 잃어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1970년대의 석유 파동이 불어닥치고 있을 때, 그나마 제너럴 모터스와 포드, 그리고 AMC가 그럴듯한 대비책이 준비되어 있는 동안에도 크라이슬러는 포드 핀토나 쉐보레 베가, AMC 그렘린등의 소형차들보다 한 등급 더 큰 닷지 다트와 플리머스 밸리언트가 가장 작은 라인업이였으며, 그나마 유럽 지사를 통해 영국에서 들여온 플리머스 크리켓은 1971년에 데뷔해 고작 2년만에 판매부진으로 미국에서 철수해버렸다.[1] 기존에 있던 다트/발리언트의 대안이였던 닷지 애스펀과 플리머스 볼라레조차 품질 문제로 인해 대규모 리콜을 실시해야 했고, 판매하던 차들의 엔진을 손봐 배기가스 규정에 대비하려는 대책조차도 공인연비의 하락으로 인해 판매량이 계속 줄어들어 일이 더 꼬여버렸다. 일본 미쓰비시 차량으로 이를 메꾸는 것도, 수입 비용 등의 여러 비용들을 고려하면 수익성에 큰 도움이 되진 못했다.
그래도 크라이슬러에게 다행이라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으니, 1978년에 포드와의 불화로 크라이슬러를 찾은 리 아이아코카의 등장이였다. 아이아코카는 정부로부터 필요한 비용을 대출받은 뒤 직원들을 일시 정리(lay off)하고, 수익성이 떨어지던 유럽 지사를 푸조에 넘겼으며, 포드에 있던 자신들의 동료들을 불어모으는 식의 방법으로 크라이슬러를 회생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총동원했다. 이때 유럽 지사에서 가져온 닷지 옴니/플리머스 호라이존이 아리스/릴라이언트의 기반이 될 K바디 플랫폼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되어, 미국 시장을 위한 앞바퀴굴림 소형차를 만들기 위한 계획에 착수하게 된다.
2.2. 출시 및 판매(1981~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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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1985년식 닷지 에어리즈
1981년에 닷지 에어리즈와 플리머스 릴라이언트의 이름으로 출시된 첫 K카는 앞바퀴굴림 구조가 선사하는 좋은 연비와 소형차답지 않은 넓찍한 실내 공간이라는 이점, 그리고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호흥을 얻었다. 당시 준비되었던 라인업은 기본형[2] 과 SE, Custom의 3개 트림과 세단, 왜건, 쿠페의 3개 바디, 크라이슬러제 2.2리터 4기통과 2.5리터 직렬 4기통, 미쓰비시제 2.6리터 직렬 4기통[3] 의 3개 엔진 라인업이였다. 왜건의 경우는 SE 트림부터 선택할 수가 있었으며, 원한다면 모조 우드그레인 옵션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위에서 서술한 장점들과 인기 덕분에 1981년 "모터 트렌드" 지에서 선정한 "올해의 차" 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1982년에는 릴라이언트의 플리머스 로고가 크라이슬러의 5각별 로고로 교체되었으며, 바깥으로 밀어서 열던 쿠페의 뒷창문을 소위 "닭다리식" 레버로 여는 형태로 바꾸었다. 또한 2,2리터 4기통 엔진의 벨브 색상을 파란색에서 검정색으로 바꾸었다. 1983년식은 그릴을 검게 칠하는 정도의 선에서 머물렀으며, 1984년에는 보닛 위에 설치된 로고를 그릴 안으로 밀어넣고 후미등에 크롬 장식을 추가했다. 또한 인테리어에는 패드가 들어간 대시보드와 원형 게이지, 검은색 계기판을 추가했다.
1985년에는 맨 처음에 제시된 사진에서처럼 앞뒤를 둥글리는 형태의 페이스리프트가 있었다. 또한 기존의 2.2리터 엔진을 카뷰레터(기회기)식에서 연료 분사식으로 바꾸었으며, 칼럼 시프트식 3단 자동변속기나 플로어 시프트식 4단 수동변속기와 배합했다. 미쓰비시제 2.6리터 엔진은 인기가 좋아 계속 존속했으나 품질 문제로 인해 1986년에 크라이슬러제 2.5리터 엔진으로 교체되었다. 또한 일본 시장에서는 에어리스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닷지 미시건"으로 판매되었다.##
[image]
사진은 1989년식 플리머스 릴라이언트 아메리카 LE 세단
1987년에는 쿠페 버전의 뒷창문에 중앙 벤트를 설치했으며, 기본형의 이름을 "아메리카(America)"로 바꾸는 등의 소소한 변화들이 있었다. 1989년 한 해 동안에는 기본형만 존재했으며, 1989년 12월 9일에 아리스 978,460대, 릴라이언트 1,114,618대의 생산 기록을 뒤로 하고 은퇴했다. 이후에는 닷지 스피릿/플리머스 어클레임이 바통을 이어받았으며, 플랫폼 자체는 1990년대 중반까지 여러 형태로 변형되어 크라이슬러의 여러 승용차 라인업을 커버했다.
많은 판매량과 인기, 플랫폼의 높은 활용도[4] 덕분에 미니밴과 더불어 위기의 크라이슬러를 살린 구세주라는 평가를 받는 동시에, 1980년대 내내 크라이슬러의 거의 모든 라인업에 플랫폼이 남발된 점을 이유로 크라이슬러의 이미지를 "싸구려"로 만들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3. 미디어에서
4. 둘러보기
[1] 반면에 유럽 지사는 생카 1100 등의 소형차를 통해 앞바퀴굴림 기술과 해치백 라인업을 보유하는 등, 본사보다 사정이 훨씬 나았다.[2] 여담으로 크라이슬러 측에서는 기본형의 수요를 낮게 예측하고 고급형 트림의 차들을 많이 준비해 두었으나, 광고에서 기본형의 가격을 강조한 탓에 기본형의 수요가 생각보다 많은 것으로 나와 당황했다고 한다. 이러한 소동 이후에는 기본형 에어리즈/릴라이언트의 제고 수를 넉넉히 준비해두게 된다.[3] 여담으로 이 엔진은, 왕년 크라이슬러의 기술력을 상징하던 반구형 연소실이 적용되어 구조상으로는 일명 "헤미엔진"이라고 할 수 있었다.[4] 일반 세단은 물론 미니밴, 고급차, 스포츠카까지 릴라이언트의 K-바디 플랫폼을 변형해 토대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