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카 호라이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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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CA - Chrysler - Talbot Horizon'''
'''Dodge Omni / Plymouth Horizon'''
크라이슬러가 프랑스의 생카와 영국의 루츠 그룹을 통해서 개발하고 생산한, 그리고 푸조-시트로엥 그룹이 탈보를 통해 생산, 판매한 소형 해치백[1] 으로, 1977년부터 1987년 사이에 판매되었다. 크라이슬러가 "월드카"로서 야심차게 개발했던 차량으로, 미국에서는 닷지 옴니/플리머스 호라이즌으로서 1990년까지 판매되었다.
참고 자료1 참고 자료2참고 자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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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에 유럽 시장을 위해 생카와 루츠 그룹을 인수한 크라이슬러는 유럽에서 생카 1100의 존재 덕분에 한동안 흥행을 달려 왔지만, 생카 1100은 1970년대 중반부터 르노 14와 폭스바겐 골프 등이 등장하면서 판매량이 한풀 꺾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크라이슬러 180을 비롯한 기존의 신차 프로젝트가 실패했고, 영국에서는 루츠 그룹이 어마어마한 손실을 입고 있었다. 반면 생카는 1100이 히트를 쳐준 덕분에 나름대로 성장새를 이어 갔고, 크라이슬러에서는 훨씬 유럽적인 차가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영국의 루츠 그룹과 프랑스의 생카가 차량을 공동 개발하도록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크라이슬러가 준비한 유럽시장용 제품 프로젝트는 루츠 그룹이 디자인을, 생카가 기술개발 및 설계를, 생산은 유럽에서 담당하도록 되어 있었으며, 한 차종이 두 업체의 차량을 모두 커버할 예정이었다. 크라이슬러 C2, C6, C9의 3개 프로젝트가 승인되었고, 이 세 프로젝트는 각각 생카 1100과 생카 1500, 크라이슬러 180의 후속으로 개발되어 호라이즌과 크라이슬러 알파인/생카 1308, 탈보 타고라로 출시되었다. 다만 결점이 있었다면 영국에서는 뒷바퀴굴림 중형차인 힐만 어벤져와 힐만 헌터의 직접적인 후속이 없었고, 힐만 임프와 생카 1000도 그렇다할 후속이 없었다.[2]
C2 프로젝트의 경우는 1974년부터 개발이 시작되었고, 로이든 액스(Royden Axe)의 디자인 팀이 신중하게 디자인을 진행해 C6(알파인/1308)과 맥을 같이하는 디자인으로 만들었다. 1974년 중반에 경영진 평가가 있기 전까지 총 4가지의 디자인을 제안했고, 이 중에는 폭스바겐 골프를 연상시키는 현대적이고 꽉 차 보이는 디자인이나 생카 1100의 맥을 일부 따르는 디자인도 있었다. 평가 당시에 경영진들은 북미 시장에서도 판매될 것을 감안해, 훨씬 깨끗하고 현대적인 디자인을 선택했다. 미국에서는 석유파동으로 유럽과 일본의 소형차들이 흥행을 타기 시작했고, 포드와 GM도 그럴싸한 소형차가 준비되어 있는 상황인데다가 미국 정부에서는 연비 규제를 강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북미 크라이슬러도 소형차가 필요했고, 따라서 경영진들은 미국에서의 안전규정을 최대한 따르면서도 디자인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디자인을 필요로 했다. 따라서 C2 프로젝트의 디자인에서는 미국의 차량 높이 규정에 맞추기 좋게 펜더를 대폭 키웠다.
그렇게 해서 1974년 11월에 디자인이 확정되었고, 1976년에는 C2를 기반으로 하는 숏바디 버전이나 세단 버전을 개발해 유럽과 미국 시장에 대응하려고 했다. 개발 과정에서는 생카 1100의 엔진과 변속기, 서스펜션 등을 그대로 끌어다 사용했고, 알파인/1308에서도 부품을 끌어다 사용했다. 가령 생카 1100의 1118cc 58마력 및 1294cc 64마력 엔진이나 알파인/1308의 1442cc 82마력 엔진이 C2로 건너온 것이 대표적인 사례였으며, 변속기도 생카 1100의 4단 수동변속기가 그대로 따라왔고 휠베이스도 그대로 유지되어 실내공간을 넓게 잡을 수 있었다. 또한 개발 과정에서는 폭스바겐 골프의 흥행으로 여러 회사들이 골프의 레시피를 따라가고 있었으며, C2 프로젝트도 골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었다.
1977년 12월 7일, 크라이슬러와 루츠 그룹, 생카는 유럽 전역에다가 C2 프로젝트를 "크라이슬러 호라이즌", 혹은 "크라이슬러-생카 호라이즌"이라는 이름으로 공개했다. 북미에서는 "닷지 옴니"와 "플리머스 호라이즌"이라는 이름으로 공개했으며, 유럽 사양이 앞바퀴에 토션 바를 서스펜션으로 쓰는 것과 달리 북미 사양은 맥퍼슨 스트럿 서스펜션을 쓰고 있었다. 기술적으로는 생카 1100과 거의 똑같았지만 유럽에서는 "Anglo-French triumph"라는 문구까지 써 가면서 호응을 받았고, 실내 구성과 디자인이 매우 좋다는 평을 들었다. 비록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호라이즌에는 트립컴퓨터까지 장착되어 있었다.
또한 1979년에는 "유럽 올해의 차" 선정 과정에서 피아트 리트모를 살작 재끼고 최고 점수를 얻었고, 지난해의 크라이슬러 알파인/생카 1308에 이어 크라이슬러차로서 두 번째로 수상한 기록이었다. "유럽 올해의 차" 수상단들에 의하면 "생카 1100의 후속으로서 실용적이고 가식 없는 가족용 차"였으며 "예전 생카 차량이 지닌 견고함과 편안한 승차감, 안전한 로드홀딩을 잘 물려받았고, 다만 뻣뻣한 스티어링과 차량 중량이 단점"이라는 평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크라이슬러의 새 회장이었던 리 아이아코카도 이에 대해 "기술적인 혁신들이 모여 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다만 미국 기술진들이 모두 개발했으며 생카는 그 설계를 사용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반면 언론에서는 반응이 미지근했고, 승차감을 호평하는 반면에 언더스티어가 있었던 핸들링과 변속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가령 영국의 오토카 지에서는 "다소 보수적이며, 형편없는 핸들링과 불안정한 고속주행이 발목을 잡고 있다"고 평가했다. 크라이슬러 산하에서 호라이즌은 알파인/1308보단 잘 팔렸고, 영국에서는 포드 에스코트, 복스홀 비바, 모리스 마리나, 오스틴 알레그로 등의 경쟁차들보다 5도어 해치백을 먼저 도입[3] 한 차들 중 하나라는 점이 강점으로 지목되었다.
생산은 생카 1005/1006을 단종시킨 1978년 5월이 되어서야 본격화되었고, 이때 1118cc 엔진을 얹은 LS 트림이 1005/1006의 빈 자리를 매꾸었다. 프랑스 시장에는 생카 1006GLS 트림이 남긴 공백을 매꾸기 위해, 접히는 뒷좌석과 범위가 넓은 주행등, 썬팅된 유리창, 라디오, 범퍼 가드, 측면 몰딩, 메탈릭 페인트, 썬루프 옵션 등이 제공되는 고급형도 제공되었다. 영국에서는 1978년 10월부터 1118cc와 1294cc 엔진으로 LS와 GS 트림이, 그리고 1294cc 엔진 전용의 GLS 트림이 제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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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호라이즌의 비교적 좋았던 시작은 크라이슬러 북미 지사의 빠른 몰락으로 인해 빛을 제대로 발하지 못했다. 워낙 미국에서 죽을 제대로 쑤고 있던 크라이슬러에서 유럽 지사를 매각하기로 결정이 났고, 푸조-시트로엥 그룹이 유럽 크라이슬러를 매입함에 따라 루츠 그룹과 생카도 그 밑으로 편입되었다. [4] 따라서 1979년 8월 1일부터 판매되는 호라이즌은 탈보(Talbot) 브랜드 하에서 "탈보 호라이즌"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다. 또한 이 해에는 3월부터 1979년 한 해가 다 갈때까지 GLS 트림에 투톤 페인트를 칠한 쥬빌리(Jubilee) 에디션이 추가되었고, 1442cc 엔진이 라인업에 추가되었다. 1979년 9월에는 영국 시장에 트립컴퓨터와 자동변속기를 얹은 SX 트림이 도입되었으며, 1980년에는 루츠 그룹을 통해 영국 현지 생산이 시작되었다.
프랑스 시장에서는 1.1 LS, 1.3 LS 및 GL, 1.5 GL 및 1.5SX Automatic으로 라인업이 구성되어 있었고, 1980년부터 "탈보-생카 호라이즌"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어 판매되었다. SX 트림에 1442cc 엔진과 자동변속기, 트립컴퓨터, 파워 윈도우, 헤드램프 워셔를 추가해 판매했다. 그해 3월에는 GLS 트림을 기반으로 전용 페인트 마감과 1442cc 엔진을 얹은 SPL이 라인업에 추가되었다.
1981년 3월에는 영국 시장에 기본형인 1118cc LE, GLS 수동변속기 사양이 라인업에 추가되었으며, 경제운전을 유도하는 Econometer[5][6] 를 추가한 경제형 라인업인 1500 GL[7] 을 추가했다. 비슷한 시기에는 LS와 GL 트림에도, 82마력 버전의 1442cc 엔진과 3단 자동변속기를 묶어서 옵션으로 제공했다. 탈보(크라이슬러) 선빔을 고성능 사양으로 밀어 주고 호라이즌을 일반 승용차 시장에 집중하도록 시키느라, 예전의 생카 1100 Ti나 미국의 닷지 옴니 GLH-S와 같은 고성능 버전은 출시되지 않았다.[8] 다행히도 출시 초반에는 꾸준한 수의 판매량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등장한 1979년의 3세대 오펠 카데트/복스홀 아스트라와 1980년의 3세대 포드 에스코트 등의 경쟁차들은 호라이즌의 입지를 약화시키기 시작했고, 이 와중에도 호라이즌이 그럭저럭 팔리자 푸조-시트로엥에서는 후속 차량을 준비하는 한편, 호라이즌의 상품성을 개선하 나가는 방량을 택했다. 1982년 10월부터는 1905cc 65마력 XUD 디젤엔진이 추가되었으며, 휘발유 엔진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성능과 디젤 특유의 높은 연료효율을 동시에 잡은 덕분에, 그리고 디젤엔진이 유럽에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 덕분에 호흥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탈보 브랜드가 생각보다 실적이 부진하자, 이번에는 5단 변속기와 헤드레스트를 1.1 LE 트림을 뺀 모든 라인업에 추가하고 라인업을 대폭 손본 "시리즈 2"를 등장시켰다.
라인업도 대폭 손을 봐 SX 트림을 삭제하는 한편, 1100 LE와 1300 LS, 1500 LS Automatic, 1500 GL, 1900 LD로 라인업을 다시 정리했으며 특별 사양으로는 갈색과 금색 투톤에 금색 알로이휠을 더한 풀만(Pullman), 그리고 파워스티어링과 휠커버를 더한 울트라(Ultra)를 추가했다. 1985년에는 라인업을 다시 손봐 1100 LE와 1300 GLE, 1300 LX, 1300 GLX로 라인업을 대폭 줄였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1980~1985년 사이에 고작 15만대 정도만 판매되면서 흥행에 실패했고, 탈보 브랜드도 실적이 시원찮자 1986년에 푸조 309가 후속으로 도입되면서 단종되었다. 프랑스에서는 1985년 봄에 단종되었으며, 핀란드의 우시카우풍키(Uusikaupunki)의 발메(Valmet) 사에서는 사브 96의 대안으로서 1987년까지 생산, 판매했다. 핀란드 사양에서는 사브 차량의 부품을 실내와 전자계통에 대폭 도입하고 사브식으로 페인트 마감을 했으며, 1294cc 엔진과 1442cc 휘발유 엔진 및 1905cc 디젤엔진을 얹어 판매했다.
단종 때까지 프랑스의 포아시(Poissy) 공장과 영국의 라이톤(Ryton) 공장에서 생산되었으며, 핀란드의 우시카우풍키와 스페인 마드리드의 비야바르데(Villaverde)에서는 1987년까지 생산을 담당했다. 100만대 가량이 유럽 전역에서 판매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영국에는 2015년 12월 기준으로 총 4대가 등록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핀란드에서는 2358대가 생산되었다. 단종 당시에는 탈보 승용차의 마지막을 장식한 차로 기록되었고, 푸조 309가 그 자리를 대신 매꾸었다.
북미 지역에서는 플리머스와 닷지 브랜드를 통해 판매되었다. 외양상으로는 미국의 안전 규정에 맞게 범퍼를 키우고 헤드램프를 바꾼 뒤 훨씬 화려하게 꾸미는 정도에서 마무리된 정도인 반면, 75마력짜리 1.7리터 OHC 폭스바겐 4기통 엔진[9] 이 기본으로 쓰이는 등, 서스펜션과 엔진을 비롯한 기술적인 부분들도 유럽 사양과 크게 달랐다. 변속기로는 폭스바겐제 4단 수동변속기를, 앞바퀴 서스펜션으로는 기존의 토션바 대신 맥퍼슨 스트럿 서스펜션을 사용했고, 라디오를 중앙에 두는 반면에 에어컨 및 히터 제어판도 중앙 대신에 스티어링 휠 왼쪽으로 옮겼다.[10]
작아봐야 준중형차 이상 수준의 차들과 일본차 라인업들로 구성된 크라이슬러의 라인업 내에서 플리머스 호라이즌/닷지 옴니는 유럽 및 일본의 소형차들과 겨룰 만한 카드였고, 유럽 지사인 생카에서 연구해 온 앞엔진 앞바퀴굴림 설계를 미국에 도입한 첫 크라이슬러 차종이라는 의미까지 가지고 있어 새 앞바퀴굴림 중형차인 K-카 플랫폼의 개발에도 영향을 주었다. 심지어 호라이즌/옴니는 프랑스나 영국에서 수입해오는 대신, 미국 현지에서 직접 생산되었다. 북미 생산은 주로 일리노이의 벨베디어(Belvedere)에서 이루어졌으나, 1985~1987년의 짧은 기간 동안에는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AMC의 위스콘신 주 케노사(Kenosha) 공장에서 생산하기도 했다.
이때는 크라이슬러가 경제적으로 위기에 빠져 있던 시기였고, 유럽 및 일본의 현지생산 소형차들과 미국 업체들의 경제 속에서 파산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1978년에 처음 출시되었을 당시에는 대형차가 다시 인기를 얻어가느라 실적이 부진했지만, 적어도 크라이슬러가 적절한 경제형 소형차를 만들수 있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서 미국 정부와 의회로부터 돈을 빌려갈 수 있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11] 게다가 소비자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호라이즌/옴니를 사러 줄을 서기 시작했고, 1978년 한 해동안 18만 9천대의 호라이즌/옴니가 판매되었다.
'''SIMCA - Chrysler - Talbot Horizon'''
'''Dodge Omni / Plymouth Horizon'''
1. 개요
크라이슬러가 프랑스의 생카와 영국의 루츠 그룹을 통해서 개발하고 생산한, 그리고 푸조-시트로엥 그룹이 탈보를 통해 생산, 판매한 소형 해치백[1] 으로, 1977년부터 1987년 사이에 판매되었다. 크라이슬러가 "월드카"로서 야심차게 개발했던 차량으로, 미국에서는 닷지 옴니/플리머스 호라이즌으로서 1990년까지 판매되었다.
참고 자료1 참고 자료2참고 자료3
2. 역사
2.1.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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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에 유럽 시장을 위해 생카와 루츠 그룹을 인수한 크라이슬러는 유럽에서 생카 1100의 존재 덕분에 한동안 흥행을 달려 왔지만, 생카 1100은 1970년대 중반부터 르노 14와 폭스바겐 골프 등이 등장하면서 판매량이 한풀 꺾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크라이슬러 180을 비롯한 기존의 신차 프로젝트가 실패했고, 영국에서는 루츠 그룹이 어마어마한 손실을 입고 있었다. 반면 생카는 1100이 히트를 쳐준 덕분에 나름대로 성장새를 이어 갔고, 크라이슬러에서는 훨씬 유럽적인 차가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영국의 루츠 그룹과 프랑스의 생카가 차량을 공동 개발하도록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크라이슬러가 준비한 유럽시장용 제품 프로젝트는 루츠 그룹이 디자인을, 생카가 기술개발 및 설계를, 생산은 유럽에서 담당하도록 되어 있었으며, 한 차종이 두 업체의 차량을 모두 커버할 예정이었다. 크라이슬러 C2, C6, C9의 3개 프로젝트가 승인되었고, 이 세 프로젝트는 각각 생카 1100과 생카 1500, 크라이슬러 180의 후속으로 개발되어 호라이즌과 크라이슬러 알파인/생카 1308, 탈보 타고라로 출시되었다. 다만 결점이 있었다면 영국에서는 뒷바퀴굴림 중형차인 힐만 어벤져와 힐만 헌터의 직접적인 후속이 없었고, 힐만 임프와 생카 1000도 그렇다할 후속이 없었다.[2]
C2 프로젝트의 경우는 1974년부터 개발이 시작되었고, 로이든 액스(Royden Axe)의 디자인 팀이 신중하게 디자인을 진행해 C6(알파인/1308)과 맥을 같이하는 디자인으로 만들었다. 1974년 중반에 경영진 평가가 있기 전까지 총 4가지의 디자인을 제안했고, 이 중에는 폭스바겐 골프를 연상시키는 현대적이고 꽉 차 보이는 디자인이나 생카 1100의 맥을 일부 따르는 디자인도 있었다. 평가 당시에 경영진들은 북미 시장에서도 판매될 것을 감안해, 훨씬 깨끗하고 현대적인 디자인을 선택했다. 미국에서는 석유파동으로 유럽과 일본의 소형차들이 흥행을 타기 시작했고, 포드와 GM도 그럴싸한 소형차가 준비되어 있는 상황인데다가 미국 정부에서는 연비 규제를 강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북미 크라이슬러도 소형차가 필요했고, 따라서 경영진들은 미국에서의 안전규정을 최대한 따르면서도 디자인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디자인을 필요로 했다. 따라서 C2 프로젝트의 디자인에서는 미국의 차량 높이 규정에 맞추기 좋게 펜더를 대폭 키웠다.
그렇게 해서 1974년 11월에 디자인이 확정되었고, 1976년에는 C2를 기반으로 하는 숏바디 버전이나 세단 버전을 개발해 유럽과 미국 시장에 대응하려고 했다. 개발 과정에서는 생카 1100의 엔진과 변속기, 서스펜션 등을 그대로 끌어다 사용했고, 알파인/1308에서도 부품을 끌어다 사용했다. 가령 생카 1100의 1118cc 58마력 및 1294cc 64마력 엔진이나 알파인/1308의 1442cc 82마력 엔진이 C2로 건너온 것이 대표적인 사례였으며, 변속기도 생카 1100의 4단 수동변속기가 그대로 따라왔고 휠베이스도 그대로 유지되어 실내공간을 넓게 잡을 수 있었다. 또한 개발 과정에서는 폭스바겐 골프의 흥행으로 여러 회사들이 골프의 레시피를 따라가고 있었으며, C2 프로젝트도 골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었다.
2.2. 출시 및 판매: 유럽
1977년 12월 7일, 크라이슬러와 루츠 그룹, 생카는 유럽 전역에다가 C2 프로젝트를 "크라이슬러 호라이즌", 혹은 "크라이슬러-생카 호라이즌"이라는 이름으로 공개했다. 북미에서는 "닷지 옴니"와 "플리머스 호라이즌"이라는 이름으로 공개했으며, 유럽 사양이 앞바퀴에 토션 바를 서스펜션으로 쓰는 것과 달리 북미 사양은 맥퍼슨 스트럿 서스펜션을 쓰고 있었다. 기술적으로는 생카 1100과 거의 똑같았지만 유럽에서는 "Anglo-French triumph"라는 문구까지 써 가면서 호응을 받았고, 실내 구성과 디자인이 매우 좋다는 평을 들었다. 비록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호라이즌에는 트립컴퓨터까지 장착되어 있었다.
또한 1979년에는 "유럽 올해의 차" 선정 과정에서 피아트 리트모를 살작 재끼고 최고 점수를 얻었고, 지난해의 크라이슬러 알파인/생카 1308에 이어 크라이슬러차로서 두 번째로 수상한 기록이었다. "유럽 올해의 차" 수상단들에 의하면 "생카 1100의 후속으로서 실용적이고 가식 없는 가족용 차"였으며 "예전 생카 차량이 지닌 견고함과 편안한 승차감, 안전한 로드홀딩을 잘 물려받았고, 다만 뻣뻣한 스티어링과 차량 중량이 단점"이라는 평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크라이슬러의 새 회장이었던 리 아이아코카도 이에 대해 "기술적인 혁신들이 모여 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다만 미국 기술진들이 모두 개발했으며 생카는 그 설계를 사용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반면 언론에서는 반응이 미지근했고, 승차감을 호평하는 반면에 언더스티어가 있었던 핸들링과 변속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가령 영국의 오토카 지에서는 "다소 보수적이며, 형편없는 핸들링과 불안정한 고속주행이 발목을 잡고 있다"고 평가했다. 크라이슬러 산하에서 호라이즌은 알파인/1308보단 잘 팔렸고, 영국에서는 포드 에스코트, 복스홀 비바, 모리스 마리나, 오스틴 알레그로 등의 경쟁차들보다 5도어 해치백을 먼저 도입[3] 한 차들 중 하나라는 점이 강점으로 지목되었다.
생산은 생카 1005/1006을 단종시킨 1978년 5월이 되어서야 본격화되었고, 이때 1118cc 엔진을 얹은 LS 트림이 1005/1006의 빈 자리를 매꾸었다. 프랑스 시장에는 생카 1006GLS 트림이 남긴 공백을 매꾸기 위해, 접히는 뒷좌석과 범위가 넓은 주행등, 썬팅된 유리창, 라디오, 범퍼 가드, 측면 몰딩, 메탈릭 페인트, 썬루프 옵션 등이 제공되는 고급형도 제공되었다. 영국에서는 1978년 10월부터 1118cc와 1294cc 엔진으로 LS와 GS 트림이, 그리고 1294cc 엔진 전용의 GLS 트림이 제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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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호라이즌의 비교적 좋았던 시작은 크라이슬러 북미 지사의 빠른 몰락으로 인해 빛을 제대로 발하지 못했다. 워낙 미국에서 죽을 제대로 쑤고 있던 크라이슬러에서 유럽 지사를 매각하기로 결정이 났고, 푸조-시트로엥 그룹이 유럽 크라이슬러를 매입함에 따라 루츠 그룹과 생카도 그 밑으로 편입되었다. [4] 따라서 1979년 8월 1일부터 판매되는 호라이즌은 탈보(Talbot) 브랜드 하에서 "탈보 호라이즌"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다. 또한 이 해에는 3월부터 1979년 한 해가 다 갈때까지 GLS 트림에 투톤 페인트를 칠한 쥬빌리(Jubilee) 에디션이 추가되었고, 1442cc 엔진이 라인업에 추가되었다. 1979년 9월에는 영국 시장에 트립컴퓨터와 자동변속기를 얹은 SX 트림이 도입되었으며, 1980년에는 루츠 그룹을 통해 영국 현지 생산이 시작되었다.
프랑스 시장에서는 1.1 LS, 1.3 LS 및 GL, 1.5 GL 및 1.5SX Automatic으로 라인업이 구성되어 있었고, 1980년부터 "탈보-생카 호라이즌"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어 판매되었다. SX 트림에 1442cc 엔진과 자동변속기, 트립컴퓨터, 파워 윈도우, 헤드램프 워셔를 추가해 판매했다. 그해 3월에는 GLS 트림을 기반으로 전용 페인트 마감과 1442cc 엔진을 얹은 SPL이 라인업에 추가되었다.
1981년 3월에는 영국 시장에 기본형인 1118cc LE, GLS 수동변속기 사양이 라인업에 추가되었으며, 경제운전을 유도하는 Econometer[5][6] 를 추가한 경제형 라인업인 1500 GL[7] 을 추가했다. 비슷한 시기에는 LS와 GL 트림에도, 82마력 버전의 1442cc 엔진과 3단 자동변속기를 묶어서 옵션으로 제공했다. 탈보(크라이슬러) 선빔을 고성능 사양으로 밀어 주고 호라이즌을 일반 승용차 시장에 집중하도록 시키느라, 예전의 생카 1100 Ti나 미국의 닷지 옴니 GLH-S와 같은 고성능 버전은 출시되지 않았다.[8] 다행히도 출시 초반에는 꾸준한 수의 판매량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등장한 1979년의 3세대 오펠 카데트/복스홀 아스트라와 1980년의 3세대 포드 에스코트 등의 경쟁차들은 호라이즌의 입지를 약화시키기 시작했고, 이 와중에도 호라이즌이 그럭저럭 팔리자 푸조-시트로엥에서는 후속 차량을 준비하는 한편, 호라이즌의 상품성을 개선하 나가는 방량을 택했다. 1982년 10월부터는 1905cc 65마력 XUD 디젤엔진이 추가되었으며, 휘발유 엔진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성능과 디젤 특유의 높은 연료효율을 동시에 잡은 덕분에, 그리고 디젤엔진이 유럽에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 덕분에 호흥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탈보 브랜드가 생각보다 실적이 부진하자, 이번에는 5단 변속기와 헤드레스트를 1.1 LE 트림을 뺀 모든 라인업에 추가하고 라인업을 대폭 손본 "시리즈 2"를 등장시켰다.
라인업도 대폭 손을 봐 SX 트림을 삭제하는 한편, 1100 LE와 1300 LS, 1500 LS Automatic, 1500 GL, 1900 LD로 라인업을 다시 정리했으며 특별 사양으로는 갈색과 금색 투톤에 금색 알로이휠을 더한 풀만(Pullman), 그리고 파워스티어링과 휠커버를 더한 울트라(Ultra)를 추가했다. 1985년에는 라인업을 다시 손봐 1100 LE와 1300 GLE, 1300 LX, 1300 GLX로 라인업을 대폭 줄였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1980~1985년 사이에 고작 15만대 정도만 판매되면서 흥행에 실패했고, 탈보 브랜드도 실적이 시원찮자 1986년에 푸조 309가 후속으로 도입되면서 단종되었다. 프랑스에서는 1985년 봄에 단종되었으며, 핀란드의 우시카우풍키(Uusikaupunki)의 발메(Valmet) 사에서는 사브 96의 대안으로서 1987년까지 생산, 판매했다. 핀란드 사양에서는 사브 차량의 부품을 실내와 전자계통에 대폭 도입하고 사브식으로 페인트 마감을 했으며, 1294cc 엔진과 1442cc 휘발유 엔진 및 1905cc 디젤엔진을 얹어 판매했다.
단종 때까지 프랑스의 포아시(Poissy) 공장과 영국의 라이톤(Ryton) 공장에서 생산되었으며, 핀란드의 우시카우풍키와 스페인 마드리드의 비야바르데(Villaverde)에서는 1987년까지 생산을 담당했다. 100만대 가량이 유럽 전역에서 판매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영국에는 2015년 12월 기준으로 총 4대가 등록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핀란드에서는 2358대가 생산되었다. 단종 당시에는 탈보 승용차의 마지막을 장식한 차로 기록되었고, 푸조 309가 그 자리를 대신 매꾸었다.
2.3. 출시 및 판매: 북미
북미 지역에서는 플리머스와 닷지 브랜드를 통해 판매되었다. 외양상으로는 미국의 안전 규정에 맞게 범퍼를 키우고 헤드램프를 바꾼 뒤 훨씬 화려하게 꾸미는 정도에서 마무리된 정도인 반면, 75마력짜리 1.7리터 OHC 폭스바겐 4기통 엔진[9] 이 기본으로 쓰이는 등, 서스펜션과 엔진을 비롯한 기술적인 부분들도 유럽 사양과 크게 달랐다. 변속기로는 폭스바겐제 4단 수동변속기를, 앞바퀴 서스펜션으로는 기존의 토션바 대신 맥퍼슨 스트럿 서스펜션을 사용했고, 라디오를 중앙에 두는 반면에 에어컨 및 히터 제어판도 중앙 대신에 스티어링 휠 왼쪽으로 옮겼다.[10]
작아봐야 준중형차 이상 수준의 차들과 일본차 라인업들로 구성된 크라이슬러의 라인업 내에서 플리머스 호라이즌/닷지 옴니는 유럽 및 일본의 소형차들과 겨룰 만한 카드였고, 유럽 지사인 생카에서 연구해 온 앞엔진 앞바퀴굴림 설계를 미국에 도입한 첫 크라이슬러 차종이라는 의미까지 가지고 있어 새 앞바퀴굴림 중형차인 K-카 플랫폼의 개발에도 영향을 주었다. 심지어 호라이즌/옴니는 프랑스나 영국에서 수입해오는 대신, 미국 현지에서 직접 생산되었다. 북미 생산은 주로 일리노이의 벨베디어(Belvedere)에서 이루어졌으나, 1985~1987년의 짧은 기간 동안에는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AMC의 위스콘신 주 케노사(Kenosha) 공장에서 생산하기도 했다.
이때는 크라이슬러가 경제적으로 위기에 빠져 있던 시기였고, 유럽 및 일본의 현지생산 소형차들과 미국 업체들의 경제 속에서 파산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1978년에 처음 출시되었을 당시에는 대형차가 다시 인기를 얻어가느라 실적이 부진했지만, 적어도 크라이슬러가 적절한 경제형 소형차를 만들수 있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서 미국 정부와 의회로부터 돈을 빌려갈 수 있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11] 게다가 소비자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호라이즌/옴니를 사러 줄을 서기 시작했고, 1978년 한 해동안 18만 9천대의 호라이즌/옴니가 판매되었다.
-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자, 크라이슬러에서는 1979년에 3도어 해치백 쿠페인 호라이즌 TC3/옴니 024[12] 를 라인업에 추가했고, 썬루프를 호라이즌과 옴니 양쪽에 선택 사양으로 추가했다.
- 1981년에는 2.2리터 84마력 4기통 크라이슬러 엔진이 5단 수동변속기와 함께 라인업에 추가되었고, 포드 에스코트 등의 새 경쟁차들에 맞대응하기 위해 염가형 1.7리터 사양인 마이저(Miser) 트림도 등장했다. 1981년과 1982년 사이에는 범퍼와 트림을 검은색으로 마감한 유로(Euro) 패키지도 판매되었다가, 마이저와 함께 커스텀(Custom)으로 대체되었다. 또한 크기를 키운 라디에어터와 프로필렌 유리섬유로 만들어진 냉각팬이 장착되면서 전저 냉각팬의 공기 흐름을 개선했다.
- 1982년에는 코너링 때의 바디 롤을 줄이고 승차감을 개선한다는 이유로 링크리스 스웨이 바(linkless sway bar)를 장착했으며, 스웨이 바를 하부 암과 크로스멤버에 고정하기 위해 고무 부품을 사용했다.
- 1984년에는 투톤컬러를 선택 가능한 SE 트림이 등장했고, 디자인을 변경해 계기판 인스트루먼크 클러스터를 손보고 블랙월 타이어를 사용했다. 이때 변경된 디자인은 단종 때까지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고성능 사양인 닷지 옴니 GLH[13] 가 등장했으며, 셸비 코브라로 잘 알려진 튜너 캐롤 셸비의 도움을 받아 2.2리터 엔진에 터보차저, 전용 캠축, 압축비를 손보기 위해 가공한 엔진 블록, 크롬도금된 밸브 커버를 추가해 출력을 110마력까지 끌어올렸고, 적절한 드레스업 부품과 알로이 휠도 장착했다. 반면 호라이즌은 "가격 대비 가치"를 내세우면서 훨씬 일반적인 승용차 시장에 맞추어져 판매가 되었고, 기본 사양에는 5단 수동변속기와 새 타이어, 검은색 트림, 새 계기판을 포함한 디자인 변경, 풀옵션 사양의 계기판, 새 좌석, 4스포크 스티어링 휠이 들어가있었다.
- 1985년에는 닷지 옴니 GLH에 146마력 2.2리터 터보 엔진이 제공되었으며, 알로이휠과 전용 데칼을 부착한 건 물론 0-96km/h까지의 가속 시간이 8.7초에 400m 주행까지 16.7초를 기록했다. 터보 사양과 자연흡기 사양 모두 고급유를 사용할 것이 권장되었다.
- 1986년에는 브레이크등을 뒷창문 하단의 중앙에 설치했으며, 와이퍼와 워셔 기능은 스티어링 휠에 장착된 레버로 조작하도록 설계를 바꾸었다. 리프 스프링을 그대로 고수하는 닷지 캐러밴/플리머스 보이저와 디플로마트/그랜 퓨리나 트레일링 암 독립식 서스펜션을 사용하는 닷지 아리스/플리머스 릴라이언트와 600/캐러벨과 비교했을 때 뒷바퀴 서스펜션을 반독립식으로 사용하는 유일한 차로 기록되었다. 당시 사용하던 라디오 옵션은 상위 라인업과 돌려쓰는 제품이었고, 전자 점화장치와 연료분사 장치가 기본으로 제공되었다. 기본 계기판은 속도계, 전압계, 연료계, 차량 상태등이 적용되었으며 옴니 024\호라이즌 투리스모의 계기판을 선택 사양으로 제공되었다.
또한 셸비판 닷지 옴니 라인업에는 가레트(Garette) 터보차저를 장착한 엔진과 새로 튜닝한 2피스 구조의 흡기 매니폴드, 인터쿨러를 장착한 옴니 GLHS[14] 을 등장시켰다. 기본장비로는 고성능 파워브레이크와 썬팅 유리창, 검은색 트림과 스트라이프, 보쉬(Bosch)제 주행등, 화물칸 카펫, 5단 수동변속기, 추가 방음처리, 가죽 스티어링과 변속기 레버, 뒷창문 서리제거장치, 에어컨, AM/FM 스테리어 라디오, 고급형 계기판, 새로 세팅한 랙 앤드 피니언 스티어링 등이 들어가있었고, 훨씬 견고한 안티롤바와 임의 세팅이 가능한 코니(Koni)제 조절식 스트럿 등이 서스펜션에 추가되었다. 검은색 외장과 회색 내장으로 마감된 차량 500대만 한정 생산되었으며, 오일 냉각기와 안티롤바를 선택사양으로 제공했고 최고출력 175마력을 기록했다.[15]
- 1987년에는 새로운 저가 사양인 "아메리카(America. 캐나다에서는 엑스포(Expo))" 트림이 도입되었으며, 품질을 높이고 비용을 낮추기 위해 단일 트림으로 라인업을 통합하고, 타코미터와 유압계, 전압계를 계기판에 달아주는 등으로 가격 대비 사양을 많이 주되 선택 사양의 수를 제한했다. 엔진으로는 2.2리터 크라이슬러 엔진만 제공되었고, 당시 미국에서 가장 저렴한 차량으로 기록되었다.
- 1988년에는 모든 차량에 연료분사 장치를 장착해 엔진 출력이 92->93마력으로 약간 개선되었고, 1989년에는 엔진을 개량해 정숙성을 높였다.
- 마지막 해인 1990년에는 아메리카 트림을 단종시켰으며, 운전석 에어백과 중앙에 위치한 에어컨 및 히터 제어판, 개선된 계기판, 뒷좌석 3점식 안전벨트를 추가했다. 단종 때까지 961,508대의 옴니와 호라이즌이 생산되었으며, 플리머스 버전의 판매량이 더 많은 편이었다. 후속으로는 1987년부터 생산된 닷지 섀도우와 플리머스 선댄스가 자리잡았다.
3. 둘러보기
[1] 위키백과 기준. 차량 크기와 후속 차종으로 판단할 경우에는 준중형차로 볼 여지가 있다.[2] 그나마 크라이슬러는 이 둘이 자리잡았던 소형차 시장에 크라이슬러 선빔을 소개할 순 있었다.[3] 사실 준중형 해치백으로는 오스틴 맥시가 먼저 등장하긴 했지만, 1969년에 출시된데다가 큰 변화 없이 생산되었다.[4] 호라이즌의 경우는 기존의 준중형차 라인인 시트로엥 GSA 및 푸조 305에 비해 몸집이 작아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5] 속도계 밑에 전등 형태로 설치되었으며, 빨간색 점등과 초록색 점등으로 운전 상태를 표시했다.[6] GLS 트림에도 비슷한 장치가 적용되었으며, 수평으로 배열된 전자식 타코미터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7] 엔진 출력을 82마력에서 69마력으로 낮추었고, 5단 수동변속기가 제공되었다.[8] 다만 1984년에는 크림색 가죽 인테리어와 전용 드레스업을 입힌 터보 버전 컨셉트카 영국에서 만들어진 적이 있다. 현제는 영국 코번트리의 코번트리 교통박물관(Coventry Transport Museum)에 전시 중.[9] 폭스바겐 골프의 것과 동일하며, 1980년에 출력이 68마력으로 떨어졌다.[10] 이는 1970년대 당시의 크라이슬러 차량들에서 볼 수 있는 구성이다.[11] 게다가 컨슈머 리포트 지에서 호라이즌/옴니가 거친 운전상황에서 통제력을 잃는다는 발표가 나왔는데, 당시 다른 자동차 매체들이 '실험에서 일반적인 운전 상황을 가정하지 않았다'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어느 정도 커버가 되었다. 크라이슬러 측에서는 스티어링 휠을 가볍게 만들고 스티어링 댐퍼를 추가해 이에 대응했다.[12] 고성능 버전은 플리머스 투리스모와 닷지 차저로 출시되었다.[13] "Goes Like Hell"의 줄임말이다. 본래는 코요테/카이요디(Coyote)로 명명될 예정이었다.[14] Goes Like Hell, Some-more의 줄임말.[15] 참고로 속도계는 당시 법으로 정해져있었던 85mph 속도계에다가 스티커로 눈금을 135mph까지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