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소나타 29번(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9번 "함머클라비어"(op. 106)
Piano Sonata No. 29 "Hammerklavier"(op. 106)
1. 개요
피아노 소나타 29번은 베토이 작곡한 B♭에 작품번호 106인 작품이다. 부제는 Hammerklavier인데 한국에서는 함머클라비어로 발음하고 있다. 하지만 원음은 '''하머'''클라비어에 가깝다. 독일 표준 발음에 따르면 받침이 반복될 때(mm)도 복수 처리하지 않고 1번 발음하기 때문이다.#원어민 발음 하지만 일본식 발음(ハンマークラヴィーア)에서 영향을 받은 탓에 한국에서도 복수 처리하여 '''함머'''라고 발음하는 관행이 정착하게 됐다.
이 함머클라비어라는 부제는 베토벤이 직접 붙였지만, 사실 베토벤은 28번 Op.101 이후의 모든 피아노 소나타에 대해 함머클라비어라는 부제를 붙였기에 상징적인 의미로만 알아두면 된다. 현재로서는 Op.101과 이 곡 외에는 거의 붙지 않는 부제이기도 하다. 이 부제가 붙은 이유와 부제의 어원은 함머클라비어 피아노에서 따온 것이며, 피아노의 역사는 함머클라비어를 기점으로 기존 에라르 피아노에 비해 또한번 음역을 크게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즉, 베토벤은 단순히 '''이 피아노로 연주한 자신의 모든 소나타에 피아노의 종류를 부제로 붙인 것이다.'''
- 함머클라비어 소나타, 연주자는 프리드리히 굴다(Friedrich Gulda).
물론 기교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객관적으로 이 소나타보다 더 어려운 곡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그런 곡들은 대부분 기교적으로만 어려울 뿐이며 음악성 측면에서 이 작품을 넘어선 작품은 '''아직까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때문에 현재까지도 메이저 작곡가의 피아노곡 가운데 명실상부한 최고의 난이도를 가진 작품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어느 정도로 어렵냐면 21세기 현재도 월드 클래스의 피아니스트들조차 섣불리 콘서트 레퍼토리나 레코딩 목록으로 올리기를 꺼려하는 작품이며 기획사나 주최측에서도 이 작품을 레퍼토리에 올리는 것을 가급적 권하지 않을 정도이다. 일반 대중들의 환호를 불러 일으키기에는 너무 난해하고 이 작품에 열광하는 소수의 클래식 매니아들을 만족시키기에는 정말 많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2. 작곡 배경
이 작품은 대략 1817년 6월 경에 작곡을 시작해서 이듬해 초 경에 첫 두 악장이 먼저 완성되었다. 이후 잠시 작곡이 중단되었다가[1] 같은 해 여름 자신의 조카 카를과 휴가를 떠났을 때 다시 작곡에 착수하여 가을 쯤에 완성되었다.
한편 베토벤은 휴가를 떠나기 직전에 런던의 피아노 제조업자인 브로드우드(Broadwood)로부터 최신식 피아노 한대를 선물 받았다. 이 악기는 영국에서는 포르테피아노(Fortepiano)라고 불렀고 독일에서는 함머클라비어(Hammerklavier)라고 불렀는데, 오늘날의 피아노처럼 건반을 누르면 일종의 나무망치가 현을 두들겨서 소리를 냈기 때문에 '''망치 + 피아노(Hammer + klavier)'''라고 부른 것이다. 이 피아노는 당시의 다른 피아노에 비해 음량도 크고 울림이나 서스테인 등의 음향 효과도 진일보한, 당시 기준으로 보면 최첨단의 악기였다. 그래서 베토벤이 이 피아노의 성능에 걸맞는 작품을 쓰고 싶은 야심 때문에 '함머클라비어'라는 대작 소나타를 구상했다는 설도 있었다. 하지만 전술한 것처럼 29번 소나타는 이 피아노를 선물 받기 전에 이미 두 악장이 완성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 시기의 베토벤은 안타깝게도 귀가 거의 완전히 멀어서 아무리 좋은 악기가 있어도 실제로 음향을 들을 수는 없었고 머리 속으로 상상만 해야 했다.
- 함머클라비어 소나타 작곡 당시 베토벤이 사용했던 브로드우드사의 피아노[* 이 피아노는 베토벤이 직접 받았던 브로드우드사의 피아노를 후대에 복원한 것이다.]
초연에 대한 기록은 불확실한데, 베토벤 생전에 공식적인 초연이 있었는지, 연주자는 누구였는지 등에 대해서는 기록이 전혀 없으며 작곡가 본인이 지인들 앞에서 시범적으로 연주한 정도의 정황만 남아 있다. 사실 베토벤 당시의 건반악기 연주 기술로 이런 난해한 곡을 제대로 연주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기 때문에 이 작품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위해서는 리스트를 비롯한 피아노의 거장들이 본격 활약하는 낭만주의 시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3. 작품 해설
총 4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주 시간은 연주자에 따라 대략 40~50분 정도 되는데, 이렇게 큰 규모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각 악장에 몇 가지 공통된 음악 수법을 사용하여 곡이 산만해지는 것을 막고 견고한 구성미를 구축하고 있다. 이하 설명하는 음정관계나 악장별 분석은 이 작품의 복잡난해한 구조의 극히 일부에 대한 설명에 불과하다. 이 작품에는 실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실험적 수법이 난무하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연주와 분석을 위해서는 끊임없는 탐구가 필요하다. 이 항목은 소개 차원으로 작성된 것이므로 좀더 전문적인 지식을 얻고 싶다면 관련 책자나 논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3.1. 3도 음정
베토벤의 소나타 작품은 3도 음정 및 단 2도 음정과 인연이 상당히 많은데, 이 함머클라비어 소나타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이 소나타는 4개의 악장이 모두 3도 상승하는 음정으로 시작되고 있다. 특히 3악장 첫 부분의 3도 음정은 출판 직전에 급하게 추가했을 정도로 이 3도 음정에 의한 구성의 통일성에 신경을 많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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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부터 차례로 1,2,3, 4 악장의 시작 부분. [3]
예를 들어 1악장에서 제 1주제는 B♭장조인데 2주제는 여기서 단 3도 아래인 G장조, 발전부는 다시 장 3도 아래인 E♭장조, 그리고 재현부가 나타나기 직전에 D장조로 전조했다가 즉시 단 3도 아래인 B장조로 전조하고 있다. 3악장의 경우 F♯단조로 시작하는데, 주 조성인 B♭장조와는 감4도의 관계이나, F♯단조를 이명동조인 G♭단조로 볼 경우에는 역시 장 3도 관계가 되므로 3도의 특징이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후에도 3도 관계를 갖는 D - B(단 3도) - E♭(D♯으로 볼 경우에 장3도) 장조로 계속 전조가 이루어진다. 4악장의 푸가도 주 조성인 B♭ 장조와 단 3도 위인 D♭장조나 장 3도 아래인 G♭ 장조로 계속 전조가 이루어진다.
이 외에도 선율선에서도 지속적으로 3도씩 하강하는 부분이 자주 등장한다.
3.2. 단 2도 음정
베토벤은 3도 음정 이외에도 단 2도 음정을 작품에 많이 활용하였다.[5] 이 단 2도 관계는 주로 네아폴리탄 6화음을 활용할 때 사용되는 관계인데, 이에 대해서는 항목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 소나타에서는 선율의 흐름에서 단 2도 관계가 꽤 많이 사용되었는데, 예를 들면 2악장의 마지막 부분에 B와 B♭음이 교차해서 등장한다. 다만 바로 이어지는 음이 아니라 2옥타브의 도약이 있고 쉼표로 각 음이 단절되기 때문에 타악기가 쿵쾅 거리는 듯한 분위기가 난다. 그리고 3악장의 종지음인 F♯ 음과 4악장 시작음인 F 음도 단 2도 관계에 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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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악장 종결부의 단 2도 진행 부분
실제 악보를 보면 이 3도와 단2도는 따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혼용 되어서 사용된다. 예를 들어 앞서 설명한 4악장 푸가에서 E♭에서 D로 단 2도 관계로 전조된 부분은 다시 장 3도 관계인 B♭으로 전조가 된다.
3.3. 1악장 알레그로(Allegro)
연주시간이 약 10~13분 정도 되는 악장이다. 교향곡 5번 '운명'처럼 처음부터 강력한 중첩화음을 제시하면서 시작되었다가 바로 여린 음이 등장하는데, 작품 내내 이와 같은 강음과 약음 및 빠른 진행과 느린 진행이 반복적으로 대비되면서 변화무쌍한 음향을 만들어낸다. 1악장을 몇 분만 들어봐도 이 작품이 상당히 교향악적인 음향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악장은 1,2주제 제시부 - 전개(발전)부 - 재현부로 구성되는 통상적인 소나타 양식에 비교적 충실하게 작곡되었다. 하지만 전술했듯이 1주제와 2주제가 통상적인 5도(또는 4도)의 관계가 아니라 3도 관계를 갖고 있으며, 발전부에서 푸가적인 진행이 등장하고 재현부에서 발전부에 버금가는 주제의 변용이 나타나는 등 각종 파격이 등장하고 있다.
3.4. 2악장 스케르초: 아사이 비바체(Scherzo: Assai vivace)
연주 시간이 3분이 안되는 짧은 악장으로 길고 심각한 다른 악장들과 대조를 이루는 익살과 유머러스함을 보여주고 있다. 짧은 악장답게 복잡한 전개과정이 없고 좀더 단순하면서도 리드미컬하게 진행된다. 주제가 제시된 후 나란한조(B♭장조 => B♭단조) 로 전조하면서 분산화음이 등장하고 이어 프레스토의 짧은 악구와 카덴차가[7] 등장한 후 다시 주제가 반복되고 코다로 이어진다.
코다는 단2도 옥타브가 주어진 다음 급격하고 5-4-6 으로 박자가 무너진 b 옥타브가 등장, 다시 단2도로 내려와서 주제와 같은 조성으로 들아온 다음, 주제의 일부분이 날아가듯 올라가며 종결 없이 여운을 주며 마무리.
3.5. 3악장 아다지오 소스테누토(Adagio sostenuto)
연주시간이 15~20분 정도로 네 악장 가운데 가장 연주시간이 길며 대단히 심오한 악장이다.[8] 베토벤 특유의 격정과 강렬함 대신 시종일관 느리고 조용하게 전개되며 마지막에는 거의 들릴듯 말듯 약한 음으로 진행되다가 코다 시작부에서 잠시 분위기가 상승한 후 다시 약한 음으로 마무리된다.
구조적으로 보면 일단 소나타 형식의 외관은 갖추고 있으나 제시부에서 1주제 2주제가 제시되는 대신 일단 긴 주제가 제시된 후 이 주제가 일종의 변주 형태로 전개된다.[9] 이처럼 메인 주제를 변화시킨 새로운 주제가 3번 정도 제시된 후, 발전부와 재현부는 딱히 구별되지 않고 주제의 제시와 발전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다.
베토벤 후기의 느린 피아노곡 중에는 이 3악장처럼 명상적이고 카타르시스를 주는 작품이 많은데, 피아노 소나타 32번의 2악장이나 디아벨리 변주곡의 29~31번 변주가 대표적인 예다. 이 3악장에 나타나는 비극성에 대해 많은 연주자들과 음악 평론가들의 논평이 있으니 관심이 있으면 참고하도록 하자.
3.6. 4악장 서주와 푸가: 알레그로 리솔루토(Introduzione und Fuga: Allegro risoluto)
연주시간은 대략 11~15분 정도. 음악 감상의 측면에서 3악장이 가장 인상적이라면 이 4악장은 해석과 연구의 측면에서 정말 무수한 과제를 던져준다. 그만큼 난해하고 많은 논란을 일으키는 악장이다.
이 4악장의 서주는 사라지듯이 조용하게 종료된 3악장의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 받아서 매우 느리고 약한 음으로 시작된다. 이어 서서히 분위기가 고조되다가 갑자기 강렬하고 빠른 알레그로의 선율이 잠시 등장하며, 이어 다시 느리고 조용한 분위기로 되돌아간 후 점점 음량과 속도가 고조되다가 긴 트릴로 연결되면서 이윽고 연주자들에게 본격 헬게이트를 선사하는 장대한 푸가가 시작된다.
이 푸가는 베토벤식 대위법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데, 베토벤의 푸가는 기본적으로 각 성부가 엄격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바흐 스타일의 푸가보다는 각 성부가 서로 눈치보지 않고 좀더 자유롭게 진행되는 헨델식 푸가에 가깝다. 사실 이 푸가는 '푸가를 응용한 대위법 양식의 음악'이라고 이름을 붙이는게 더 어울릴 정도로 통상적인 푸가 양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예를 들면 주제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제시되고 있고, 나중에 제시된 주제가 먼저 제시된 주제와 뒤섞이기도 하고, 종종 베이스 쪽에서 주제와 관계 없이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성부가 등장하고, 고성부나 저 성부에서 긴 트릴이 나타나는 등, 통상적인 푸가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기괴한 수법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와 같은 변칙 푸가의 수법은 이후 대 푸가(op. 133)와 같은 작품에서 다시 등장한다.
일단 첫 주제가 제시된 후 85마디에서 G♭ 장조로 전조되면서 두 번째 주제가 제시되고 250마디에서는 다시 D장조로 바뀌면서 세 번째 주제가 제시된다. 이 세 번째 주제는 278마디에서 다시 주 조성인 B♭ 장조로 등장하는 첫 번째 주제와 합쳐지면서 일종의 베이스 또는 정선율(Cantus Firmus) 역할을 하다가 소멸된다. 이후 첫 번째 주제를 바탕으로 한 푸가가 계속해서 전개되다가 길고 강렬한 끝맺음을 갖는 코다로 이어진다.
한국의 피아니스트 임현정은 자신의 에세이에 이 4악장의 불가해함과 신비로움에 대해 다음처럼 묘사했다.[10]
이상의 해설은 정말 대략적인 것만 다루었으니 좀더 전문적인 분석이나 미학적 고찰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관련 문헌을 참고하도록 하자.".....이 거대한 푸가의 주제는 한 개의 음표가 트릴로 나아가면서 시작되는데, 이것은 마치 이 자극이 발화점이 되어 신성한 불꽃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 후 이 푸가의 주제는 소용돌이처럼 끊임없이 터져 나오면서 우리로 하여금 프로메테우스적인 불을 나타내는 모티프를 떠올리게 만들며, 이 영적인 불꽃은 끊임없이 발전하면서 장대하고도 우주적인 불꽃으로 이어진다. 그 후 달래고 위로하는 듯한 노래(D장조의 중앙부 푸가)가 흘러나오는데, 곧 stretto(스트레토)[11]
가 등장하기 전까지의 짧은 휴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스트레토는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거세게 휘몰아치는 음악이자, 우주의 불가해함의 형태로 발작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푸가의 주제는 곳곳마다 프로메테우스적인 불꽃이 다시 되살아나 영웅적이고 환희로 가득한 분위기 안에서 인류의 내면에 있는 영성을 일깨워주는 숭고한 사명을 부여한다. 베토벤은 ‘함머클라비어’ 소나타를 완성한 다음 ‘이제는 작곡하는 법을 알 것 같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실 베토벤은 이 작품에서 역행(retrogression), 역진행(contrary motion), 카논(canon), 모방(imitations), 자리바꿈(inversions) 등 거의 모든 음악적 기교를 구사했으며....."
4. 평가와 영향
이 함머클라비어 소나타는 고전주의 시대에 확립되었던 건반악기에 대한 관념을 벗어 던지고 교향악적인 표현수단으로서 피아노의 가능성을 제대로 확인시켜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피아노라는 악기의 영역을 확장하려는 실험은 21번 발트슈타인 소나타(op. 53) 때부터 본격화되었는데, 이 29번 소나타에서는 피아노가 단순한 선율 악기의 수준을 완전히 벗어나서 과장을 좀 보태면 오케스트라와도 맞짱을 뜰 수 있는 수준의 궁극의 독주악기로 거듭나게 되었다.
낭만주의 시대는 피아노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피아노 음악이 크게 융성했고 악기 자체도 큰 발전이 있었는데, 이런 시대적 흐름의 바탕에 바로 이 함머클라비어 소나타가 있었다. 베토벤을 통해 피아노라는 악기의 무한한 가능성이 확인되자 재능 있는 많은 후배 음악가들이 피아노 음악에 매진하였고, 이런 분위기 덕분에 쇼팽, 리스트, 브람스, 슈만 등 피아노 분야의 거장들이 대거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낭만주의 비르투오조의 산파역할을 한 작품.
'피아노 소나타'라는 명칭이 붙어 있는 음악 중에 이 작품의 작품성과 음악적 성취에 필적할만한 음악은 사실상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베토벤 이전에도 많은 피아노 소나타가 작곡되었고 베토벤 이후에도 쇼팽, 리스트[12] , 라흐마니노프,스크리아빈, 프로코피에프[13] 등 다수의 피아노 대가들이 훌륭한 소나타를 남겼지만 이들도 함머클라비어 소나타가 남긴 임팩트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다. 다만 이런 배경에는 낭만주의 이후 많은 작곡가들이 교향곡이나 소나타 작품에 대해 좀 더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것도 있고 또한 소나타 이외에도 큰 규모의 작품을 구성할 수 있는 장르가 많이 생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전통적인 소나타 양식에 충실한 작품의 창작이 줄어든 탓도 있다.
한편으로 이 작품은 베토벤 후기의 창작 방향을 엿볼 수 있는 레퍼런스로서 베토벤 본인에게도 상당히 중요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나타난 교향악적인 음향과 대위법적인 스타일, 2악장이나 4악장 서주 등에서 드러나는 즉흥곡 풍의 경향, 파격을 넘어 해체에 가까운 소나타 양식 등등은 함머클라비어 소나타 이후에 작곡된 베토벤의 중요 작품들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특히 즉흥곡과 대위법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요소의 조합은 디아벨리 변주곡에서 제대로 빛을 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태생 미국 피아니스트인 발렌티나 리시차는 음악잡지 <'''피아노 음악''' The Piano> 2020년 2월호 인터뷰에서 함머클라비어 소나타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견을 밝혔다.
"이 작품은 단지 크기만 큰 것이 아니라, 길이가 다른 소나타들보다 두배 이상 길다.(주목해야할 점은 그의 초기 소나타들의 길이가 꽤 길었고, 그 길이가 후기로 올수록 점점 줄어들었으며 심지어 마지막 소나타도 20분을 겨우 넘는다는 사실이다) 크기면에서 보자면 <9번 교향곡>과 유사하기도 하다. 이 소나타는 작곡 당시, 동시에 진행되던 교향곡 스케치 작업이 없다. 베토벤은 <15번 "전원"소나타>를 작곡하면서 <전원 교향곡>을, <12번 "장송행진곡"소나타>를 작곡하며 <3번 교향곡>을 스케치하는 등 소나타 작곡시에 교향곡에 대한 아이디어를 이중적으로 진행시켰다. 베토벤이 소나타 작곡의 아이디어를 스케치하고 있던 교향곡에 담았으리라 예상할수 있으며, <29번 소나타>와 동시에 스케치된 교향곡이 없다는 점에서 이 소나타에 피아노로 연주하는 하나의 교향곡이 담겨있다고 볼 수있다. 실제로 오케스트라를 위한 편곡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우리는 종종 리스트가 피아노를 오케스트라적으로 확장했다고 생각하지만 베토벤이 이 부분에서는 선구자임이 분명하다. 트럼펫의 울림, 처연한 오보에의 솔로, 흐느끼는 바이올린 소리, 팀파니의 천둥소리를 명확하게 들을 수 있다. 첫 두 악장은 전형적인 교향곡 형식인 반면, 영원할 것같은 느린 악장과 이어지는 푸가는 완전히 새로운 시대의 것이다. 피아노를 위해 쓰인 작품 중 가장 어려운 작품인 거 같다."
4.1. 연주와 감상의 어려움
이처럼 이 작품에 대한 각종 찬사와 연구가 쏟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대중적인 인기는 낮은 편이다. 일단 연주 난이도도 베토벤 소나타 중 가장 어려울 뿐만이 아니라 베토벤의 모든 피아노 곡 중 디아벨리 변주곡과 쌍벽으로 어렵다. 또한 당장 같은 작곡가의 월광, 비창 , 열정, 템페스트 등의 부제가 붙은 인기 피아노 소나타들과 비교해 봐도 공연 횟수나 레코딩 수에서 많이 밀리고 클래식 팬들에게도 상대적으로 적게 거론되는 편이다. 그 이유는 간단한데, 음악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작곡자 본인의 다른 유명 소나타들처럼 귀에 착 감기는 멜로디가 있는 것도 아니고 로맨틱함과도 거리가 멀다. 얼핏 들으면 과격하고 기괴한 음향이 난무하는데다 연주시간도 무지막지하게 길다. 때문에 단순히 여흥이나 기분전환을 위해 이 곡을 틀어놓았다가는 충격과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따라서 이 함머클라비어 소나타는 일단 작품에 내재된 구조적인 복잡함과 파격성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어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마음이 아니라 머리로 들어야 하는 작품. 이런 까닭에 클래식 팬들에게도 꽤 진입장벽이 높은 작품이다.
한편으로 이 작품은 연주자들에게도 정말 많은 어려움을 선사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데, 기술적으로도 어렵지만 이 작품에 내재된 음악성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 이 작품에 나타나는 교향악적인 음향과 복잡한 대위법, 쉴새 없이 바뀌는 조성, 그 와중에 뜬금없이 등장하는 즉흥곡 풍의 패시지 등등은 단순히 손가락의 기교만으로 처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베토벤과 음악 전반에 대해 정말 많이 공부하고 연주법에 대해 궁리를 해야 비로소 작곡자의 의도에 가깝게 다가설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이 함머클라비어 소나타이다.
5. 여담
- 전술했듯이 1819년 이 곡은 비인과 런던에서 동시에 출판됐는데, 당시 비인의 아타리아사에서는 그대로 4악장 체제로 출판하였으나 런던에서는 1-3-2 악장 순서로 된 '대 피아노 소나타'와 '서주와 푸가' 라는 제목이 붙은 4악장이 별도의 곡으로 따로 출판되었다. 베토벤의 제자이자 이 작품의 영국 출판을 담당했던 페르디난트 리이스(Ferdinand Ries, 1784-1838)는 베토벤에게 이 작품이 너무 길고 어려워서 그대로 4악장으로 출판할 경우 영국에서는 외면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전했고 작곡자가 이를 받아들여서 별도 출판을 허락한 것.
- 베토벤의 해석으로 정평이 난 지휘자이자 작곡가인 펠릭스 바인가르트너(1863-1942)가 관현악으로 편곡한 버전이 있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나름 재미있는 편곡인데 아쉽게도 오늘날 자주 연주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