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푸가
정식 명칭: 대 푸가 B플랫장조 작품 133
(Große Fuge B-dur op.133/Great Fugue in B flat major, op.133)
▲ 아르테미스(Artemis) 현악 사중주단의 실황 연주 영상.
1. 개요
베토벤의 현악 4중주 작품으로, 제목 그대로 크고 아름다운 푸가 작품이다. 다만 이 곡이 단독 구상된 적은 없었고, 사실 현악 4중주 13번의 마지막 악장으로 계획되었던 것이 이런저런 이유로 따로 떨어져 출판된 것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1] 이 곡은 카핑 베토벤이라는 영화의 오프닝 곡으로 쓰이기도 했다.
교향곡 9번을 완성한 뒤 베토벤은 말년에 주로 현악 4중주의 작곡에 매달렸는데, 물론 현실적으로는 러시아의 부유한 귀족이었던 니콜라이 갈리친 공작이 베토벤에게 의뢰해 왔다는 점도 있었지만 이 분야에서 자신의 마지막 걸작들을 남기겠다는 의지도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갈리친 공작을 위해 작곡한 현악 4중주는 12번과 15번, 그리고 13번 세 곡이었는데, 첫 12번은 전통적인 4악장제였지만 15번에서 5악장, 13번에서 6악장 식으로 점차 규모가 확대되도록 구성되었다. 특히 13번의 경우 마지막에 15~18분이나 걸리는 대규모 푸가 악장을 넣어서 전체 연주 시간이 40~50분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작품이 되었다.
하지만 이 거대한 4중주가 1826년 3월에 슈판치히 4중주단에 의해 초연되었을 때는 간주곡 격인 독일 춤곡 풍의 4악장과 느리고 감동적인 카바티나인 5악장 정도만이 대중적으로 호평을 받았고, 특히 6악장으로 설정된 이 푸가의 경우에는 당대 비평가를 비롯해 모두가 이해할 수 없는(...) 괴작 취급을 받았다. 베토벤 자신도 이런 여론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긴 것 같은데, 초연 후 베토벤을 찾아온 슈판치히 4중주단의 제2바이올린 주자 칼 홀츠가 4~5악장이 앙코르를 받았다고 하자 "왜 푸가는 앙코르가 안됐는데?! 그게 됐어야지! 바보같은 놈들 같으니!!"라고 불평했다고.
여하튼 이 곡의 난이도와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이 곡을 출판하겠다고 나선 이가 악보 출판업자였던 마티아스 아르타리아였는데, 다만 아르타리아도 그 당시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푸가 악장이 너무 복잡기괴해서 그대로 출판하면 안팔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르타리아는 이 늙고 괴팍한 작곡가한테 자기 의도를 그대로 털어놓으면 야단만 맞을 것 같아서였는지(...), 1826년 4월에 '푸가가 점차 인기를 얻고 있으며, 피아노 연탄용 편곡의 의뢰가 들어 왔으니 푸가만 출판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보기 식의 요청을 했다.
베토벤은 이 제안에 응해 마지막 현악 4중주를 작곡하면서 동시에 푸가 악장을 직접 편곡했고, 이 편곡판은 작품 번호 134번을 부여받고 따로 출판되었다. 하지만 아르타리아는 아직까지 현악 4중주를 원본 그대로 출판하기를 꺼리고 있었고, 결국 자신보다는 베토벤과 훨씬 면식이 있던 홀츠에게 '님 베토벤횽한테 이야기 잘 좀 해주셈'하고 부탁해야 했다. 물론 홀츠도 베토벤의 기분이 상할까 봐, 가능한한 외교적으로 돌려서 말했는데, 특히 새 악장을 써준다면 그건 그거 대로 아르타리아가 작곡료를 지불할 것이고 푸가와 4중주의 악보에 별도 인세가 매겨지므로 저작권 수입이 늘 것이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결국 베토벤은 이 제안에 응했고, 1826년 10~11월에 조카 칼을 데리고 그나이센도르프에 있는 동생 요한의 집으로 가서 요양하면서 새롭고 좀 더 평이한 6악장을 작곡해 아르타리아에게 보냈다. 아르타리아는 계약 대로 베토벤이 죽은 지 두 달 뒤에 새 6악장을 덧붙인 4중주와 푸가의 악보를 따로 출판했는데, 이 과정에서 푸가는 그 규모에 걸맞게 '대(大)'라는 수식어가 붙어 제목으로 고정되었다.
2. 곡의 형태
당시 현악 4중주의 마지막 악장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대규모에 치밀한 구성과 드라마틱한 면모로 점철되어 있는데,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정도다.
첫 24마디는 이탈리아어로 서주(Overtura)라고 되어 있고, B플랫장조 으뜸화음의 어느 음에도 해당하지 않는 솔(G)음을 기세좋게 켠 뒤 다소 무조 풍으로 거칠게 시작한다. 이어 다소 가라앉은 분위기를 유지하며 두 번째 단편적인 악상이 나오고, 여기에 비올라와 바이올린이 번갈아 가며 대선율을 붙여 반복한 뒤 또 중단된다.
첫 푸가는 2중 푸가로, 바이올린이 조용히 제시하는 주제로 시작된다. 하지만 주제가 끝난 뒤 곧 부점 리듬으로 격하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대선율이 붙으면서 격렬하고 복잡하게 진행된다. 여기에 셋잇단음표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또 다른 대선율이 붙는데, 이어 크로스 리듬, 당김음 등 리듬까지 복잡해지면서[2] 기존의 대위법 체계를 거의 붕괴시킬 정도로 대담하게 진행된다.
이 격한 푸가가 한 차례 클라이맥스를 이루고 진정된 뒤 속도가 다소 느려지는 세 번째 대목으로 들어간다. 서주의 두 번째 악상에 대선율을 붙인 형태가 기본 악상이 되고 G플랫장조로 조가 바뀌어 진행되는데, 이 부분에서도 물론 푸가의 주제가 교묘하게 얽히는 등 대위법 기교를 포기하지 않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더 편안하고 때로는 명상적인 분위기까지 풍긴다.
이렇게 완만한 분위기로 나가다가 갑자기 서주 첫머리에 나온 격한 리듬의 악상이 갑툭튀하면서 네 번째 대목이 시작된다. 분위기는 첫 푸가와 비슷하지만 엄밀한 의미의 푸가는 아니고, 오히려 푸가 주제를 드라마틱하게 변형시키는 소나타 형식의 발전부 분위기다. 게다가 여기에는 세 번째 대목에서 나온 서정적인 악상이 같이 얽히기도 하고, 첫 부분보다는 Bb Major에 더욱 가깝기도 하다. 자체적인 재현부까지 두는 등 사실상 소나타+푸가의 이종교배 격인 복잡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마지막 종결부는 첫 푸가에 나온 대선율이 갑자기 튀어나왔다가 끊기고, 이어 서주에서 제시된 가라앉은 분위기의 악상이 나오다가 맨 첫머리의 무조풍 악상이 또 튀어나오는 등 악상 제시 순서를 거꾸로 뒤집은 식으로 시작된다. 이어 다시 푸가 주제가 잠시 나온 뒤 짤막한 이행부를 거쳐 푸가의 첫머리를 변형한 악상을 연주하며 활기있게 끝맺는다.
이렇게 푸가라고는 해도 그 안에 교향곡이 압축된 듯한 엄청난 응집력을 갖고 있고,[3] 18세기의 대위법 논리를 완전히 초월한 무지막지한 전개와 4중주단에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팀워크, 연주자 개개인의 기교 수준까지 모든 것을 시험하는 듯한 곡이라서 지금도 현악 4중주단들에게 최대 난곡으로 손꼽힌다.
3. 사후의 재평가
여타 후기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 곡도 베토벤 사후 한참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후배들인 펠릭스 멘델스존이나 로베르트 슈만도 대 푸가가 워낙에 복잡난해한 작품이다 보니 '아, 그거 대선배님의 걸작이죠'라는 요식 행위성 찬사만 보냈을 뿐이고 곡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이런 넘사벽스러운 난이도가 연주 기술과 음악 어법의 발달로 조금씩 극복되기 시작한 19세기 후반에도 이런 경향은 크게 나아지지 않을 정도였고, 20세기에 와서야 아르놀트 쇤베르크[4] 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5] 등이 곡을 분석하고 연구하면서 본격적인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또한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베토벤의 모든 작품 중 가장 위대한 걸작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뉴욕 타임스에 기고하는 음악평론가 Alex Ross는 "대푸가"를 "음악학의 성배(a musicological Holy Grail)"라 칭하면서 "역사상 가장 강력한 작곡가의 가장 급진적인 작품(the most radical work by the most formidable composer in history)"라고 서술한 바 있다.
다만 베토벤이 아르타리아의 제안을 받아들여 6악장을 교체한 것에 대해서는 지금도 찬반 의견이 분분하다. 비록 베토벤 자신이 이 결정을 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자신의 진정한 의지라기 보다는 조카 칼의 자살 기도에 의한 멘붕이나 수입 개선을 위한 궁여지책이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대 푸가가 진정한 6악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대로 이 푸가가 그 자체로 완성도를 갖고 있고, 베토벤이 오페라 피델리오를 위해 두 번째로 작곡한 서곡인 레오노레 서곡 제3번처럼 이전 1~5악장의 존재감마저 압도할 정도이므로 곡의 균형을 깨뜨렸다고 여기는 이들은 새로 들어간 6악장을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1960년대를 전후해 베토벤의 원래 의도대로 카바티나 5악장 다음에 이 대 푸가를 6악장으로 연주하는 4중주단이 나오기 시작했고, 도이체 그라모폰이 1990년대에 내놓은 베토벤 전집 앨범의 현악 4중주 파트에서도 대 푸가를 6악장으로 놓고 새로 작곡된 6악장은 보너스 트랙처럼 뒤에 실어놓는 등 초연 당시의 모습 그대로 연주/녹음하려는 경우도 많아졌다.
4. 편곡
위에 쓴 것처럼 베토벤은 아르타리아의 제안에 따라 현악 4중주에서 피아노 연탄용으로 직접 편곡판을 만들었지만[6] , 활로 현을 켜서 연주하는 현악기와 건반으로 현을 때려 연주하는 건반악기의 기술적인 차이점 때문에 너무 기계적이고 딱딱한 음악이 되었다고 그다지 만족스럽게 여기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이 편곡판도 피아노 듀오들이 종종 선곡해 연주/녹음하고 있다. 이 편곡판의 자필 악보는 베토벤 사후 100여 년 동안 행방이 묘연했다가 2005년 가을에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한 신학교 도서관에서 자료 정리 중 발견되어 공개되었고, 같은 해 12월 영국 런던의 소더비 경매장에서 112만 파운드에 낙찰되어 익명의 독지가에게 팔렸다.
현악 4중주 편성에 콘트라베이스를 더해 대규모 현악 합주로 연주하는 경우도 있는데, 펠릭스 바인가르트너가 만든 편곡판이 많이 쓰인다. 바인가르트너 편곡판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7] , 오토 클렘페러, 칼 슈리히트, 피에르 몽퇴, 에르네스트 앙세르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지휘자들이 녹음을 남겼고, 지금도 수준급 현악 합주단이나 관현악단이 종종 연주/녹음하고 있다.
이외에도 현악 4중주나 현악 합주가 아닌 정규 편성 관현악단을 위한 편곡도 시도되고 있는데, 1999년에는 스페인의 작곡가 마누엘 이달고가 베베른 식의 점묘법 스타일 관현악 편곡으로 마개조한 버전이 나오기도 했다. 이 편곡판은 2009년에 오스트리아의 현대음악 전문 음반사 카이로스(Kairos)에서 나온 이달고 작품집 CD에도 로타 차그로세크가 지휘한 쾰른 서부독일 방송 교향악단의 연주로 수록되었다.
5. 창작물에서의 사용
베토벤의 교향곡(5번, 7번, 9번 등)에 비해 이 곡은 창작물의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상대적으로 적다. 영화 카핑 베토벤에서는 인상적인 오프닝의 배경음악으로 또한 후반부에는 음악적인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비록 극중에도 이를 이해하지 못한 당대 사람들로부터 "귀가 얼마나 나빠졌길래 이런 걸 곡이라고 쓴거냐"라는 혹평을 들었지만.
[1] 이와 비슷한 경우는 피아노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의 안단테 파보리(Andante favori), 원래는 2악장에 넣으려고 했으나 소나타가 너무 길어져서 지루해 질 수 있다는 친구들의 의견을 참고하여, 이 곡은 단일곡으로 편성되었고 2악장은 짧은 서주가 있는 소나타 형식으로 대체되었다.[2] 중간 쯤부턴 아예 성부 몇 개가 엇박으로 연주하기도 하는데, 심지어 악보 없이 처음 듣는 사람에겐 이 첫 푸가의 중간 쯤부터 연주자들이 '''박자를 놓친 것처럼''' 들린다. 거꾸로 말하자면 이런 배배 꼬인 대목을 연주하는 것이 연주자 입장에서는 무진장 어려운 일일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3] 덧붙여서, 서주와 첫 푸가는 (비록 소나타 형식은 아니지만) 영락 없는 교향곡 1악장 역학을 하고 있고, 세 번째 대목은 느린 악장에 대응한다고 볼 수 있다. 네번째 부분은 위에서 말했듯이 소나타 형식을 품고 있지만 처음 부분의 느낌은 마치 스케르초의 그것처럼 들린다.[4] 쇤베르크의 예술적 지우였던 표현주의 화가 오스카 코코슈카가 "당신의 음악적 요람은 베토벤의 대푸가였다." 라고 말한 적도 있다.[5] 사실 그다지 열광적인 베토벤 지지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푸가에 한해서는 지금도 현대적인,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현대적일 작품이라고 유보없이 극찬했다.[6] 피아노연탄용 편곡판은 대푸가(Op.133)의 다음 작품번호로 Op.134이며 대푸가와 마찬가지로 루돌프대공에게 헌정됐다.[7] 푸르트뱅글러 본인의 편곡버전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