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트나
1. 개요
피트나(Fitna,فتن)는 유혹, 내전 등의 뜻을 가지는 아랍어 단어이다. 이 문서에서의 피트나는 이슬람 내전(1~4차 피트나)에 대해 다룬다.
2. 피트나 목록
2.1. 1차 피트나(656~661년)
3대 칼리파 우스만의 암살 이후 벌어진 알리와 아이샤 빈트 아비 바크르, 무아위야 1세 간의 내전.
자세한 것은 알리 문서 참조.
시핀 전투는 현재 시리아 라카 부근 유프라테스 서안에서 벌어졌다. 657년 9월 21일, 쿠파에서 출정한 알리는 무하지룬과 안사르로 구성된 정규군을 이끌고 시핀에 당도하였다. 무아위야는 8만에 달하는 시리아 군을 이끌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착 이틀 후부터 알리는 무아위야 측에 무슬림 사이의 화합을 요구하였다.[1] 이후 양측은 가을, 겨울이 지나는 동안 서로 대치하며 대화 시도를 이어갔다. 결국 658년 2월, 대화가 결렬되자 전투가 개시되었다. 초반에는 다수인 무아위야 진영이 승기를 잡는 듯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노련한 베테랑으로 구성된 알리 진영의 반격이 성공하였다. 패색이 짙어지자 무아위야는 부관 아므르 이븐 알 아스의 조언대로 쿠란을 창 끝에 달고 '쿠란의 심판에 따르자'고 외치며 협상에 나서는 계책을 실행하였다.
무력이 아닌 신의 뜻에 결정을 맡기자는 이 호소는 알리의 경건한 성품을 겨냥한 계락이었고, 고지식했던 사하바들은 속임수이자 지연술이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협상 제안을 수용하였다. 주전파와 주화파의 대립 속에 알리는 권력의 핵심층인 후자의 뜻대로 협상에 나섰다. 아제르바이잔 총독이자 쿠파 주민들의 대표였던 아쉬아스 빈 카이스가 후자에 있었기에 쿠파를 수도로 삼았던 알리는 그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던 것이다. 승리를 목전에 두고도 취하지 않은 알리의 태도에, 주전파로서 선두에서 분투하던 열성파들은 알리 진영을 이탈하였다. 이들은 '떠난 자들'이라는 의미의 '카와리지'로 불렸다.
659년 1월, 메디나와 다마스쿠스의 중간인 두마트 알 잔달에서 협상이 열렸다. 무아위야는 아므르 이븐 알 아스를 전권대사로 보내었고, 알리 측은 아부 무사 알 아쉬아리를 파견하였다. 다만 알리 본인은 협상 대표에 별로 만족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슬람 정치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이 협상에 대해 많은 기록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 그럼에도 한가지 확실한 점은 회담 결과, 아므르와 아부 무사는 무아위야와 알리를 둘다 퇴위 (칼라)시키기로 했다 것이다. 그리고 두 대표들은 합의 사항을 공표하였다. 아부 무사는 아므르가 먼저 발언하기를 희망하였으나 아므르는 그의 특기인 달변으로 아부 무사가 먼저 발언하게 만들었다.
알라께선 신앙과 히즈라에 있어 나보다 당신을 앞서게 했습니다. 그대는 예멘인들이 라술 알라 (무함마드)에게 보낸 대표였고, 또한 라술 알라가 예멘인들에게 보낸 대표였습니다. (중략) 일어서십시요, 그리고 먼저 말씀해 주십시오.
ㅡ 아므르 이븐 알 아스가 아부 무사 알 아쉬아리에게
아므르는 아부 무사의 발언 중 유리한 부분만 취하여 그들이 알리를 칼리파에서 해임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무아위야에게 유리한 상황을 조성한 것이다. 이에 아부 무사는 분노하였다.신께 영광이 있기를. 아므르와 나는 알리와 무아위야를 해임하기로 하였습니다. (아부 무사)
오 여러분, 이 사람 아부 무사는 무슬림들의 셰이크요, 이라크 사람들 중의 현자입니다. 그는 알리를 해임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무아위야를 확실히 지지하였습니다. (아므르)
무어라?! 네게 알라의 저주가 있길! 너의 행실이 개와 같구나! (아부 무사)
너는 흡사 경전을 지고 가는 당나귀 같다! (아므르)
2.2. 2차 피트나(680~692년)
무아위야가 죽으면서 선출이 아닌 아들 야지드에게 제위를 물려주자,
이에 반발하여 일어난 반란이다. 알리파들은 알리의 아들 후세인 이븐 알리를 초청했지만 그는 카르발라에서 사망한다.(카르발라 참극) 한편 메디나의 이븐 주바이르도 반란을 일으켰으며, 칼리파를 칭하고 이라크와 이집트 등 제국의 상당 부분을 장악하기도 하였다. 이 반란은 5대 칼리프 아브드 알 말리크의 대에 와서야 진압되었다.
2.3. 3차 피트나(744~750)
우마이야 왕조 말에 일어난 봉기로, 호라산의 아부 무슬림이 주도한 반군이 칼리프를 격파하고 아바스 왕조의 성립을 불러왔다. 이때 우마이야가와 사이가 나쁜 시아파와 하와리즈파 등도 참여했지만, 아바스 왕조 설립 이후 이들은 그대로 팽당했다.
2.4. 4차 피트나(811~827)
하룬 알 라시드가 죽고 그의 두 아들 알 아민과 알 마문 사이에 일어난 내전을 의미한다.
2.5. 알안달루스 피트나(1009~1031)
코르도바 칼리프국 말기에 일어난 내전으로, 최종적으로 칼리파국이 해체되고 1차 타이파시대가 열린다.
[1] 쿠란 49장 알 후자라트 장에선 무슬림 간의 내분이 일어날 시에 양측의 화해를 도모하라는 구절에 따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