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성씨)

 


1. 弼
1.1. 대흥 필씨
2. 畢
2.1. 실존 인물
3. 기타


1. 弼


대흥, 여주, 배음, 추자 4개의 본관이 있다. 인구는 2015년 기준 121명으로 매우 적다[1]. 정작 중국에서는 이런 글자로 성씨를 삼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1.1. 대흥 필씨


대흥필씨(大興弼氏)는 고려시대 때 처음으로 등장한다. 前 부호장(副戶長) 필인(弼仁)이라는 인물이 이의민에게 살해 당한 고려 왕 의종을 관에 옮겨서 물가에 묻었다 라고 되어 있다. 고려시대의 시조는 알 수가 없고 조선시대에 들어서 필몽량(弼夢良)이 무과에 급제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의 후손인 필두만(弼斗萬)이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냈으며, 증손(曾孫) 필성뢰(弼聖賚)는 1798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사성(成均館司成)에 이르렀다. 필성뢰(弼聖賚)의 조부는 필흥방(弼興邦)이며, 증조부는 필두만(弼斗萬)이며 외조부는 이춘발(李春發)이라고 기록되었다. 필성뢰(弼聖賚)의 아버지는 학생(學生) 필은상(弼殷相)이고 형은 필성려(弼聖礪)가 있다.[2]

2. 畢


시조나 본관이 밝혀진 바 없다. 인구는 2015년 기준 53명으로 弼씨 보다 적다.
알려진 인물로는 독립운동가 안창호의 동문선배로 평양에서 만민공동회 관서지부 발기에 함께한 필대은(畢大殷)이 있다.

2.1. 실존 인물



3. 기타


사실 이런 류의 성씨는 날이 갈수록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여느 희귀 성씨가 그렇듯이 2008년경 호주제 폐지 이후 다수가 아버지의 성씨를 포기하고 어머니의 성씨를 선택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부분 성씨 때문에 놀림받은 경우이기 때문이라고.

[1] 1930년 국세조사 당시에, 대다수가 함경남도 함흥시에 많이 살고 있었다.[2] 국조방목(國朝榜目)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