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미(쿠물)

 

1. 개요
2. 역사


1. 개요




하미
哈密
قۇمۇل


하미 지구는 중화인민공화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동부에 위치한 지구이다. # 하미 시는 그곳의 중심도시인데, 위구르어로는 "쿠물"이라고 한다.# 하미과라고 불리는 하미 멜론이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시 인구는 58만여 명이며 이 가운데 68.4%가 하미 철도 건설 이후 대거 이주한 한족이다.

2. 역사


흉노에 의해 몰락한 월지족의 일파 소월지족이 잔류한 지역의 하나로 한나라 때는 “이오”라고 칭해졌다.
9세기 말 고창회골의 위구르인이 둔황의 중국인 지방정권으로부터 이 지역을 탈환하고 정착하면서 하미의 소그드인, 토하라인과 위구르인이 혼혈되며 오늘날의 하미의 위구르인들의 조상이 되었다.
청나라 때부터 중화민국 시기까지 하미는 신장 지역과 위구르인들의 역사의 격변을 이끄는 도시이기도 했다. 이 지역의 위구르인 왕족들은 원래 모굴리스탄 칸국의 귀족들이었으나 16세기 하미를 중심으로 한 카라 델 왕국의 불교를 믿는 위구르인들을 정복하고 불교도 위구르인들을 반강제로 이슬람으로 개종시켰다. 이슬람으로 개종을 원치 않았던 위구르인 상당수는 난민이 되어 명나라의 감숙성 영토로 이주했다가 17세기 무렵 한족과 동화되면서 소멸되었다.
원래 불교도였던 하미의 위구르인 농부들과 모굴계 토후들 사이의 갈등은 하미 주민들이 전부 이슬람으로 개종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18세기 청나라가 준가르 칸국을 정벌할 때 하미의 술탄들은 청나라 조정에 적극 협력하여 자치권을 보장받았으며, 자치권을 남용하여 위구르인 농부들을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수탈하였다. 19세기 말 청나라 팔기군들이 몰살당하고 야쿱 벡이 신장 지역에 토후국을 세우자 하미의 술탄은 위구르인 농부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면서까지 좌종당이 이끄는 한족 민병대에게 군량을 제공하여 좌종당 군의 승리를 도왔다. '''만약에 하미 술탄의 도움이 없었다면 좌종당의 군대는 야쿱 벡을 무너트리더라도 돌아오는 길에 군량 부족으로 대부분 굶어죽거나 얼어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미 술탄의 공로를 인정한 좌종당은 신장성 일대의 위구르인 왕족들의 자치권과 특권을 대부분 철폐하고 한족 관료들로 대체하는 와중에도 이들의 권리만은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19세기 말 이후 하미의 왕족들은 위구르인 농부들을 지나치게 가혹하게 수탈하며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사치품을 구입하는데 돈을 낭비하고, 좌종당이 데려온 한족 입식자들은 위구르인 농민들보다 훨씬 더 적은 세금만을 납부하자 분노한 하미의 위구르인 농부들은 자신들의 처우를 한족 농민들과 함께 평등하게 해줄 것을 요구하며 여러차례 봉기를 일으켰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통치했던 주요 군벌 세 명 양쩡신, 진수런, 성스차이 모두 하미의 위구르인 봉기로 인해 권력을 얻거나 잃었다. 양쩡신은 하미의 위구르인 봉기군들을 별 다른 전투 없이 유화책과 기만책을 써서 투항시킴으로써 신장의 군권을 장악했으며, 양쩡신의 뒤를 이은 '''진수런은 어리석게도 하미의 위구르인 농민들과 왕족들을 동시에 탄압했다가 분열되어 힘을 못쓰던 위구르인들이 대거 봉기하게 만들며 신장에서 권력을 상실했다.''' 진수런의 실각 이후 하미의 전임 재상이었던 니야즈 호자는 카슈가르의 부유한 위구르인 상인들과 힘을 합쳐 동투르키스탄 제1공화국을 건설한다.
현대에는 중국과 감싸는 위치로 한족 이주민 인구가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