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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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홍기를 흔드는 중화인민공화국 인민들
청천백일만지홍기를 흔드는 대만 국민들
홍콩 내부의 시장을 걷는 홍콩인
마카오의 거리를 걷는 마카오인
1. 개요
2. 상세
2.1. 중화인민공화국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
3. 한족과 중화권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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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대륙중화권에서 살아온 동아시아민족. 중국어를 사용하며 중국, 대만,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의 주류 민족이다. '한족'이라는 민족명은 중국 문화를 정립한 한나라()에서 유래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민족이다.

2. 상세


중국 전체 14억 인구의 약 91.5%를 차지한다. 산아제한 정책에 의해 한족이 중국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아래 섹션 참조) 여전히 대다수를 차지한다. 중국에서 한족 다음으로는 좡족(莊), 회족, 만주족, 위구르족이 제일 많고 그 다음이 묘족, 이족, 토가족, 티베트족, 몽골족 등이 다음 순위를 차지하지만 한족 인구가 워낙 많아서 각 소수민족의 인구는 중국 인구의 1% 가량이다. (좡족, 회족은 1%가 넘었고, 만주족은 0.8%정도 된다.)
그 숫자는 중화인민공화국의 한족 인구와 그 외 중국 국외의 화교들의 인구를 합해 대략 15억 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중국 본토뿐만 아니고 4천만 명 이상의 해외 한족 이민자, 즉 화교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 퍼져있다. 대표적으로 싱가포르화교가 인구의 70~80%이고 화교가 건국한 국가이며, 말레이시아도 전체 인구 중 화교가 20~25% 정도이다.
한족의 본류는 중국티베트어족의 한 갈래로서 섬서성의 농경민족이었으나, 주나라하남성 부근에 있던 상나라를 정벌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중국 대륙 전역으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이민족을 차례차례 흡수했다.
한족은 오랫동안 중국이라는 역사 공동체 속에서 수많은 종족을 흡수하면서 만들어진 민족이다. "중국에 한족은 없다" 란저우 대학 연구팀 "현존하지 않는 혈통" 장기간 여러 민족 융합 … 문화적 개념 불과[1] 다만 이런 식으로 따지면 지구상에 어지간히 고립된 집단 빼고는 단일 혈통 민족이란 있을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즉, 한족은 그저 합쳐진 종족의 수가 다른 민족보다 많을 뿐, 이렇게 다종족이 융합되어 하나의 민족이 되는 현상은 보편적인 것이다. 유럽의 대부분의 민족들만 해도, 선사 시대부터 여러 종족의 혼합으로 형성되어 각각 "영국인"[2], "프랑스인"[3], "독일인"[4]이라는 구분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국인과 일본인과 중국 한족의 유전적 차이는 전체 유전적 다양성의 1% 미만으로, 이는 다른 집단과 비교했을 때도 매우 작은 차이이다.[5] 몽골인과 한족은 유전적으로는 상당히 유사하지만, 특이하게도 Y 하플로그룹의 구성은 거의 극과 극 수준으로 다르다고 한다.[6]
100% 정확한 연구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국인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민족은 만주족(정확히는 여진족)과 일본인이고, 그 다음이 사모예드족 > 시버족 > 코랴크인 > 다우르족[7] > 몽골인 > 한족(북중국인) > 이텔멘족 > 한족(남중국인) 순으로 나타난다.[8] 만주족, 사모예드족, 시버족, 코랴크인, 디우르족 등은 현재 주류 민족으로서 존재하는 국가가 없는 소수 민족들이다. 그렇기에 현대에 존재하는 국가 기준으로 따진다면 일본인, 몽골인, 중국 한족만이 남는다.
중화(中華)라는 단어가 고대부터 쓰이기는 하였으나 이 단어가 혈통적 개념 비슷하게 쓰였던 것은 청나라와 중화민국 사이의 혼란기 동안 삼민주의의 원형이 등장하면서 청조의 지배 세력이었던 만주족을 정치적으로 배제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주나라 시절에 형성된 "중화사상(中華思想)"의 초기 개념은 "천자의 영향력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이들은 문명인이고 나머지들은 야만인이며 문화가 없다"라는 식의 주장에 더 가깝다. 이마저도 당장에 주나라의 형성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누가 이 천자로서의 자격이 있느냐는 질문 또한 혈통적인 것과는 분명한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일반화할 수는 없는 게, 예를 들어 한 흑인이 중국에서 태어나 자라왔고, 중국의 모든 것에 익숙했다고 치자. 그럼에도 이 흑인을 한족으로 인정 못 하는 사람들도 꼭 있다. 한족이 문화적 개념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외모가 가까운 동아시아인의 틀 안에서나 해당될 뿐, 겉모습이 대놓고 다르다면 그건 또 별도의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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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링·우이 산맥을 경계로 북중국과 남중국을 나눈다. 단, 저렇게까지 세분하지 않고 유전자 분화도(fst)로 보면 세계적인 기준에서는 한족은 절대다수의 유전자를 공유하는 편인 단일 민족이다. 사실 북중국과 남중국으로 나누기는 했어도 절반으로 딱 나눈 게 아니라, 중국 대륙 전체로 보면 남중국인(남방 한족)이 있다고 보는 지역은 난링·우이 산맥 이남 지역으로, 매우 일부분이다. 난링·우이 산맥 이남 지역은 역사적으로 존재감이 없던 지역이었고(역사적인 중국의 주요 도시는 전부 이북에 있고 양쯔강 이남에 자리잡았던 세력도 난링·우이 산맥 이북을 근거지로 삼았다), 이북 지역에서 북중국인이 매우 많이 유입되었기 때문에 명확히 분류하고 비교하는 게 어렵다고 한다.
상고시대부터 돌궐-몽골-퉁구스 계통의 유목민족들이 침략하거나 대거 이주, 정복 정착해 위진남북조 시대부터 당·송시대에 이르기까지 선비족거란족이 대거 정복 정착하였고 이들은 기존의 한족들과 통혼하고 한족의 문화를 받아들이며 한족에 동화되었다. 선비족은 아예 한족에 동화되어 수·당제국을 건국했고, 금나라 시기에는 여진족이 화북 지역을 차지했으며, 원나라 시기에는 몽골인이 중국 대륙을 전부 차지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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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중원 지역의 영역
언어적으로는 크게 7가지 정도의 발음이 꽤 다른 사투리를 쓴다. 다만 발음만 다르고 문법은 거의 비슷하다. 요즘에는 보통화(표준중국어가 대부분의 중국 지역에서 통하며 중화인민공화국 영역이 아닌 곳 (홍콩, 마카오, 대만, 싱가포르) 에서도 표준중국어는 모두 통한다. 현재 한족 중에서 표준중국어, 즉 보통화를 전혀 못하는 사람은 중공정권이 초등학교 의무교육을 제정하기 전인 1940년대생 이하에 한정된다. 중화인민공화국 뿐만 아니라 중화민국도 민남어를 쓰던 대만 본성인들은 장제스 정권 아래에서 보통화를 억지로 사용했고, 홍콩인들은 원래 보통화를 못했으나, 중국으로 귀속하면서 사용하고 있다. 중국어 방언 화자들은 어떤 한 지역 방언을 모어로 쓴다면, 다른 지역 방언은 그 지역에 이주해서 몇 개월이면 대부분 습득하는데, 최근에는 중국 내의 방언 및 타 언어가 보통화에 밀려 사라진다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2.1. 중화인민공화국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


(인구센서스 결과)

3. 한족과 중화권


중화권이라하면 해당 지역의 인구 대부분이 한족(화교)이고, 한족 문화권인 지역을 말한다. 국가급 단위로는 중화인민공화국, 홍콩, 마카오, 대만, 싱가포르 등이 있다.

중국의 법률에 따르면 화교(華僑), 외적 화인(外籍華人), 귀교(歸僑), 교권(僑眷), 교속(僑屬)은 각각 다른 개념이다. 화교는 국외에 거주하는 중국인 또는 그 후예로서 여전히 중국 국적을 가진 사람을, 외적 화인은 중국인 혈통을 갖고 있되 거주국의 국적을 취득한 사람을, 귀교는 중국 대륙으로 귀국한 사람을, 교권은 화교․화인․귀교의 직계 친속을, 교속은 화교․화인․귀교의 비직계 친속을 뜻한다(丘立本, 2002:42). 문헌의 기록에 따르면 이 다섯 가지 개념의 근간이 되는 ‘화교’라는 말은 1883년에 처음으로 사용되었고, 그 이전에는 주로 ‘한인(漢人)’ ‘당인(唐人)’‘화민(華民)’ 등의 말이 사용되었다고 한다(庄國土, 2001: 20).

영어에서는 화교와 화인 각각에 대응하는 개념은 없고 단지 화교․화인을 다 포괄하는 개념만 있을 뿐이다. 해외 중국인이라는 뜻의‘overseas chinese'가 그것인데, 최근에는 이산 중국인이라는 뜻의‘chinese diasporas’라는 개념도 사용되고 있다. 이 ‘diaspora'라는 말은 본래 박해받던 유태인의 강요된 탈출, 공통의 고통, 생명력이 강한 자기 정체성, 고국에 대한 동경 등과 연관되어 있지만, 최근에 와서는 그 같은 부정적인 의미보다 운동에 의한 분산과 집중, 이동과 전환 등 적극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Cohen, 1995: 515). 혹자에 따라서는 diaspora가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고 또 홍콩과 대만의 중국인까지 다 포괄하는 뜻을 내포하고 때문에 화교․화인을 설명하는 데는 기존의 overseas chinese라는 개념이 diaspora보다는 낫다고 하고(Wang, 1995: 275), 혹자에 따라서는 가속화하는 탈 국민 국가적 인구 이동과 초 국민국가적 네트워크까지 포함하는 diaspora 개념이 좀 더 적합하다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한다(MeKeown, 1999).

사서(史書)의 기록에 따르면 이들 화교․화인의 역사는 한대(漢代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중국인들이 해외로 대규모로 이주해 간 것은 근대시기 때이다. 명 롱칭(隆慶) 황제가 1567년 해상무역 금지를 해제한 뒤부터 1842년 아편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해외거주 중국인은 약 1백만 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아편전쟁이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약 1백 년 동안 1천만 명의 중국인이 해외로 빠져나갔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특히 1970년대 후반 들어 약 4백만 명이 해외로 나갔다(丘立本, 2002: 41-49). 따라서 화교․화인의 역사의 본류는 최근 1백 50년이고, 이 기간 동안 화교․화인은 거주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환경에 적응하면서 각 국가마다 독특한 화교․화인 사회를 형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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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남아시아에서 화교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동남아시아 상류층의 대부분은 화교라고 봐도 될 정도로 정치·경제적으로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경제 장악 정도는 매우 심해서, 동남아시아 각 국가의 자산가 대부분이 화교이며, 규모 있는 기업은 대부분 화교 자본 소유이다. 사실 근대 이후에 이주한 화교가 아니라 그 이전에 이주했던 중국계 혈통 전체로 확장한다면 정도는 더 심해진다.

화교는 전 세계 각지에 정착해 살아가는 중국계 혈통을 말한다. 최근 발간된 화교화인(華僑華人)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 분포한 화교는 6000여만 명이며, 이 중 동남아 화교가 4264만명으로 전체 화교의 73.5%를 차지했다. 화교 중에서도 동남아 출신이 가장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셈이다. 올해(2019년)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가 발표한 동남아 10대 부자를 살펴보면 9명이 화교 기업인이었다. 동남아 화교자본만 1조 달러를 훌쩍 넘는다. 화교가 운영하는 기업들이 동남아 지역 주식시장 상장사의 70%를 차지한다는 통계도 있다.

화교 인구만 1000만 명에 육박하는 태국이 대표적이다. 태국 총자산의 최대 90%를 화교가 장악한다는 연구조사가 있을 정도다. 포브스가 올해 발표한 전 세계 500대 부자 순위에 이름을 올린 태국 부자 7명 중 4명이 화교다. 그러니 화교 없이는 태국 경제도 없다는 말도 나온다. 최대 소매유통 그룹인 CP그룹을 운영하는 다닌 치아라와논드 회장이 대표적이다. ‘태국의 국민맥주’로 불리는 창(Chang) 맥주그룹을 운영하는 짜런 시리와타나팍디도 화교다. (에너지 음료 레드불로 유명한 태국 화빈그룹의 옌빈 회장도 화교)

인도네시아도 20대 기업 중 18개가 화교 기업이다. 1, 2위는 인도네시아 최대 민간은행 BCA은행과 인도네시아 대표 담배기업 자룸(Djarum)을 운영하는 화교인 하르토노 형제가 차지했다. (인도네시아 살림그룹의 기틀을 마련한 린샤오량도 대표적인 화교 기업인) 말레이시아 10대 갑부 중 8명도 화교다. 말레이시아의 호텔왕, 설탕왕으로 불리는 곽씨형제그룹을 운영하는 로버트 콱은 2006년부터 1위를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싱가포르에서도 화교 출신 갑부가 1, 2위를 차지한다. 1위는 부동산개발업체인 파이스트을 운영하고 있는 로버트와 필립 응 형제가 꼽혔다. 2위는 페인트 재벌 고청량이다.

필리핀 경제도 마찬가지다. 필리핀 전체 인구에서 화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1%가 조금 넘지만 현지 경제의 70%를 장악하고 있다. 올 1월 94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필리핀 최대 재벌 SM그룹 헨리시 회장이 대표적이다. 신발가게로 시작해 오늘날 필리핀 소매유통시장의 절반을 장악했다. SM의 이름은 말 그대로 신발가게(Shoe Mart)에서 따왔다. 2위인 식품회사 JG서밋홀딩스의 존 고콩웨 회장도 필리핀의 리카싱(홍콩 최대 갑부)으로 불리는 거부다. (필리핀에서 패스트푸드로 유명한 졸리비토니 탄 칵춍이 세운 화교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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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남아시아의 화교라 하면 경제적인 부분만 생각하기 쉽지만, 정치적인 장악도도 그에 못지 않게 심하다. 동남아시아의 거물급 정치인은 대부분 화교 출신이거나 중국계 혈통이 많다.
태국의 총리는 화교 혹은 중국계 혈통이 많이 차지했고, 대표적인 예로 탁신 친나왓 총리와 잉랏 친나왓 총리 남매가 화교이다. 필리핀의 독재자였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도 중국계 혈통이었고, 2021년 기준 필리핀의 대통령인 로드리고 두테르테의 할아버지가 중국인이다. 이 외에 건국 초기부터 현재까지 정치적으로 매우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4. 여담


중국의 한족들이 동시에 뛰면 지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농담이 있다. 주로 중국 대륙인들이 대만인을 놀릴 때 쓰는 말이다.아이러니한것은 대만도 국민의 압도적인 비율이 한족이라는 것
한족 중에는 자연적으로 새끼발톱이 갈라지는 특성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속설이 있다. Accessory nail of the fifth toe 이를 일명 '며느리 발톱'이라고 하는데, 아직 의학적으로 밝혀진 것은 아니다. 당연히 한족에게만 생기는 건 아니고, 다른 민족에게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작은 신발을 신으면 후천적으로도 생길 수 있다고 한다.
중국사 중 한족 왕조 시대에 한반도를 침공한 예는 거의 없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는 엄밀히 따지면 과장은 아니다. 한나라는 한족이라는 말의 어원이 될 만큼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한족 왕조다. 그리고 한나라는 기원전 108년 고조선을 침공했으므로 한족 왕조가 한반도를 침공한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위나라의 경우 공손연 정벌때 고구려와 협력하긴 했지만 이후 국경이 맞닿아 급격히 관계가 흐트러지고 나중에 이런저런 사정으로 전쟁이 발발해 관구검에 의해 고구려의 전 국토가 피해를 입었다.[9]
한반도를 침공한 수나라당나라는 '통일 중원 제국'은 맞지만 왕조와 정권 핵심부가 모두 선비족인 탓에 '순수 한족 제국'이란 점에 대해서는 매우 애매하다.[10] 물론 문벌귀족[11] 세력이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이들 정권은 훗날 등장하는 요나라, 원나라, 금나라, 청나라 정권처럼 뚜렷하게 민족색을 드러낸 적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어찌어찌 '한족 통일 제국'으로 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그 문벌귀족들은 한반도 침공을 반대했고, 별 이득도 없는 전쟁을 강행한 건 엄연히 그 선비 혈통의 정권 핵심부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또한 매우 애매한 부분이다.
당나라가 쇠락한 이후 등장한 송나라는 300년 역사 동안 고려와 접경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며, 고려를 침공한 요나라의 경우 엄연히 거란족의 나라였고 그 후에 원나라의 침공이 있긴 했지만 원나라 또한 엄연히 몽골 제국의 색채가 매우 강한 몽골족의 '정복 왕조'였으며 무엇보다 요나라와 몽골의 침입 당시에는 중원에 송나라가 아직 생존한 상태였었다. 명나라는 고려 및 조선과 접경하긴 했지만 오이라트북원, 여진족의 동향에 더 관심을 기울였으므로 큰 갈등은 없었던 고려나 조선에 무력으로 침공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명나라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원병들을 보내주기까지 했었다. 청나라의 경우에도 조선을 침공하기는 했지만 엄연히 산해관 입성 전의 침공이었으며 청나라는 엄연히 만주족들의 나라였었고 무엇보다 청나라의 침공 당시에 중원에는 명나라가 아직 생존한 상태였었다.
중화민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당시 일본 제국에 맞서 같이 항일 운동을 전개하던 사이였기에 '혈맹'으로까지 불릴 정도였다. (특히 장제스가 윤봉길의 성과에 매우 감명받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물론 장제스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지원한 것은 전후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이유였다고 봐야겠지만, 일본 제국이 무너지고나니 정작 장제스의 국민당도 국공내전에서 패배하여 대만으로 이주했고, 중국 대륙에는 공산당의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섰다. 이 중화인민공화국은 이후 6.25 전쟁에서 북한을 지원하여 한국과는 적대적인 관계를 형성했다.

따라서 '한족 정권일 때는 한반도를 침공한 적이 거의 없었다'는 주장은 한족과 한민족이 서로 접하게된 2000년이 넘는 역사에서 한나라와 위나라 단 두차례 밖에 없었으므로 크게 틀린 표현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반대로 송나라, 명나라, 중화민국 처럼 서로 동맹에 가까운 적도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족 정권이든 북방 유목민들이든 외부 세력들이 쳐들어 올 때마다 한반도가 크게 굴곡진 운명을 겪어야 했다는 점은 서로 동일하다.
'한반도 = 한민족의 땅'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고려시대 이후로는 그 자리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다시피 한 한반도의 역사와는 달리, "중국 = 한족의 땅"이라기엔 무척 애매한 부분들이 많다. 역사적으로 한족이 명확하게 현대 중국 영토를 전부 차지한 것 자체가 얼마 안된다. 애초에 신장 위구르 자치구나 간쑤성, 내몽골, 티베트, 북만주 일대는 청나라 때 편입된 영토이며, 간도는 조선이 일제에 강점+한국 전쟁을 치루면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게 된 땅을 차지한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중원 본토(황하~양쯔강 일대)는 명확히 한족의 땅이냐 하면 그것도 애매하다. 한족이 형성된 한나라 건국 기원전 200년대 이후만 쳐도 한나라(약 400년), 삼국지 시절과 이후의 위~서진(약 100년), 송나라(약 300년), 명나라(약 300년), 중화민국(약 30년)[12], 중화인민공화국(약 70년)으로 절반도 채 안되는 약 1100년 언저리 밖에 안된다. 그 외에는 오호십육국, 송/요 또는 송/금으로 서로 나뉘어있었으며, '비한족 통일 정권'도 수(약 30년)[13], 당(약 300년), 원(약 100년), 청(약 300년)으로 그에 버금가는 무려 730년이나 중원을 지배했었다.[14]

[1] "중국 한족, 단일 혈통 아니다" 난링·우이산맥 경계로 남북 차이 뚜렷[2] 원주민인 이베리아인들과 이주민인 켈트족, 나중에 쳐들어온, 게르만게 앵글로색슨인, 그보다 조금 더 늦게 온 데인(덴마크)인 [3] 원주민 켈트계 외에 로마로부터 온 라틴인, 그리고 고대 말기에 진출한 게르만인(프랑크족), 이외에도 영국에서 밀려난 영국 켈트족 등등.. 프랑스는 지방어가 따로 있을 정도이다. [4] 독일민족의 상당수는 게르만계뿐만 아니라 슬라브인들이나 발트족들도 섞여있다. 독일 통일을 이끈 프로이센 자체가 튜튼 기사단이 발트족들의 땅을 점령하면서 해당지역에 살고있던 발트인들과 슬라브인들을 정복-동화시켜 만든 나라이다.[5] #[6] Y-chromosome lineage in five regional Mongolian populations[7] 거란족(요나라를 새운 그 민족)의 후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8] ##[9] 물론 선제공격은 고구려가 했으나 위나라가 공손연 토벌 이후 합의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 고구려의 잘못이라 하기는 어렵다.[10] 수의 황족 양씨와 당의 황족 이씨는 모두 선비족 혈통이 있었다. 그래서 당대의 돌궐에서는 수, 당을 모두 선비족이라는 뜻의 타브가치(선비족의 탁발부)라고 불렀다.[11] 서진의 황족이던 사마씨 같은 이들이 살아남았거나 아니면 그런 가문들을 계승했다고 우기는 세력들이 있었다. [12] 중화민국의 경우 대만으로 퇴각한 현재까지 합치면 약 100여 년이다.[13] 지배정권인 양씨가문이 탁발부선비족 혈통이었다.[14] 물론 수, 당은 한족화된 선비족 왕조이므로 혼합 왕조 시기라고 볼 수도 있으나, 그렇다고 순수한 한족의 지배시기라고 보기에도 매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