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지

 





1. 개요
2. 분화
2.1. 소월지
2.2. 대월지
3. 민족


1. 개요


月氏, 月支
타림 분지에서 동서 무역을 독점하던 종족. 고대 인도유럽어족토하라인의 일파로 추정된다. 흉노에게 멸망한 후 서쪽으로 간 세력을 대월지(大月氏)라 하고, 남아 있던 부족을 소월지(小月氏)라 불렀다.

2. 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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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지의 이동과정. 기원전 2세기 흉노족에게 패배한 이후 준가리아로 이동하여 그곳의 샤카족을 밀어내고 정착했으나 바로 몇 년 뒤 오손에게 밀려났다.

2.1. 소월지


타림 분지에 남은 소월지는 누란, 선선, 쿠차 등의 도시 국가를 이루고 살다 1세기경 흉노를 몰아낸 전한에 항복한다. 중앙아시아 연구자 르네 그루쎄에 따르면 타림 분지에서 가장 인구가 많았던 도시 국가였던 쿠차(龜玆國, 구자국)[1]가 소월지와 연관이 있다. 이들은 당나라에 정복될 때까지 실크로드 지역 최동부의 인도유럽어족 국가로 남아 있었다.
간쑤성에 남은 소월지족은 한족과 동화되는 대신 주로 강족이나 흉노와 동화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지》 『위서』 「유사마량''''''온가전」에는 같은 지역에 강족에 동화된 소월지족인 노수호라는 이질적 집단이 등장한다. 이들은 한나라에 흡수되지 않고 한수마등이 반란을 일으킬 때 합류하는 등, 한족과의 동화를 거부하였다. 4세기 오호십육국시대에도 노수호는 한족에 완벽하게 동화되지 않고 북량(北涼)의 저거씨 흉노 아래서 활동한다. 티베트로 이주한 소월지족도 있었는데 이들은 주로 쇠를 다루는 대장장이로 활약했다. 티베트의 가르 가문[2]이 소월지족 조상을 두고 있다고 전해진다.

2.2. 대월지


기원전 130년경에 대월지는 소그디아나로 건너가 박트리아를 정복하고 그 땅을 5명의 흡후[3]에게 다스리게 했다. 이후 장건흉노에 대한 원한을 내세우며 동맹을 맺으러 오지만 실패한다. 세월이 흘러 귀상흡후(貴霜翕侯) 구취각이 5명의 흡후를 통합하고 인도로 진출하여 쿠샨 왕조를 건설하는 등 매우 강력한 국가가 되었지만 3세기경 그 세력이 쇠약해져서 멸망하였다.

3. 민족


대부분의 학자들은 월지족이 인도유럽어족이라고 보고 있고, 고문헌의 토하리인(Tocharians)과 같거나 긴밀히 연결된 종족으로 믿고 있다. 르네 그루쎄는 당시 중국 문헌과 서방 측의 자료를 종합해보면 월지는 토하리인과 함께 인도-스키타이의 일종이라고 주장한다. 한 예로 당시 그리스의 사가 프톨레미는 월지의 영역을 토가라(Thogara)로 기록해 두었다. 또한 그리스의 지리학자 스트라본은 박트리아의 침략 민족을 토하로이(Tokharoi)라고 부르고 있다. 이때는 월지가 대하를 정복하고 대월지를 세운 때와 일치하고 있다.
[1] 삼국시대의 승려 백연이 이 나라의 왕자다.[2] 토번의 명장 가르친링의 그 가르 가문 맞다.[3] 조신 문서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