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플라자

 


1. 개요
2. 흥망성쇠
3. 원인
4. 결과
5. 관련항목

아카이브

1. 개요


인터넷 쇼핑몰의 '''흑역사'''이자, 한국 인터넷 사상 최초의 대규모 '''먹튀'''를 저지른 쇼핑몰. 쇼핑몰 먹튀의 레전드라고 할만하다.

2. 흥망성쇠


2002년 8월 19일, 유혁수가 운영하는 토비즈그룹은 문제의 쇼핑몰 하프플라자를 오픈했다. 하프플라자는 오픈 초기부터 상당히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는데, '''모든 물품을 반값에 판매'''한다는 것이었다. 거기다 한 술 더 떠 재고 부족으로 판매가 불가능할 경우에는 '''1.5배의 금액을 환불'''한다는 정책을 펼쳤다. 당연히 여기에 혹한 많은 사람들은 여기서 너도나도 물건을 구매했고, 오픈 4개월만인 2002년 12월에는 하루 방문자 20만명을 기록, 인터넷 쇼핑몰 순위 8위에 등극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허상이었으니....
다음해인 2003년 2월 4일, 소비자보호원은 하프플라자에 대해 소비자 경보를 발령했다. 이미 2002년 11월부터 결제 후 제품이 배송되지 않고, 취소를 해도 환불이 되지 않는 등의 소비자 피해가 잇따랐던 것이다. 문제 건수도 2002년 11월에는 109건, 12월에는 176건, 2003년 1월에는 615건으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어서 2월 13일에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허위광고 혐의로 하프플라자에 과징금 5천만원을 부과했다. 그리고 같은 날 검찰 수사까지 시작되었다. 수사가 시작되자 소보원에만 900여건의 신고가 접수됐고, 공정위에도 50여건, 소비자연맹에는 130여건, 청와대 신문고에는 300여건의 신고가 접수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사장인 유혁수는 도망쳤다. 말 그대로 먹튀를 했던 것이다. 검찰은 2월 20일에 토비즈그룹 이사 두 명을 사기 혐의로 검거했고, 21일 도망친 유혁수도 붙잡았다. 이 하프플라자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만 15만명이었고, 피해액은 무려 300억원에 달했다. 이중 일부 소비자들이 민사소송을 제기하여 44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이끌어내기는 했지만 이걸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3. 원인


당시 인터넷 쇼핑몰은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있었고, 이에 따른 거품이 많이 끼어 있던 시기였다. 요즘처럼 오픈마켓 같은 서비스도 없던 시절이었고, 쇼핑몰은 모두 개개의 홈페이지로 구성되어 무한경쟁을 펼치던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출혈경쟁도 서슴치 않았다.
하프플라자는 엄청난 출혈경쟁을 통해 반값 판매에 1.5배 환불을 조건으로 내걸었고, 반값이라는 것에 혹한 소비자들은 당연히 하프플라자로 몰릴 수 밖에 없었다. 하프플라자는 반값인 대신 배송이 늦어질 수도 있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소비자들은 이 말을 믿었다. 실제로 배송이 된 소비자들도 있었고 이들이 배송된다고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면서 이 쇼핑몰이 사기라는 사실이 더욱 가려졌다. 사실 이 배송건은 반값판매를 통해 금액이 모이면 반값보다 높은 가격에 사서 몇명에게만 배송하는 방식이었다. 이 때문에 초반에는 배송이 이루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금이 고갈되자 배송이 중지되고, 겉으로는 계속 물건을 팔아 먹튀할 자금을 마련한 것이었다.
그리고 쇼핑몰 초창기였기 때문에 사기 위험이 있다는 소비자들의 인식이 없었던 탓도 컸고, 안전거래 장치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었다.

4. 결과


이 사건은 한국에서 '''에스크로 서비스'''[1]가 대중화되는 원인이 되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었지만...
이 사건 이후로 쇼핑몰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이 크게 늘었고, 수많은 중소 쇼핑몰들이 문을 닫게 되었다. 또한 이 사건을 벤치마킹(...)하여 유사한 사기 사례가 규모는 작았지만 계속 나왔고, 이런 현상은 쇼핑몰에 대한 불신을 키우게 만들었다. 이후 2000년대 중후반에 쇼핑몰은 믿을 수 있는 브랜드를 내세운 오픈마켓 중심으로 재편되는 결과를 낳았다.

5. 관련항목



[1] 소비자가 물건을 구입 후 따로 승인해야 대금이 전달되는 시스템이다. 승인을 거부하면 돈은 다시 소비자에게 돌아온다. 2013년 이후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시스템이지만 2003년 초까지만 해도 한국에선 찾아볼 수 없던 시스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