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왕 성

 



'''18제후왕(諸侯王)
한왕 성
韓王 成'''

'''작위'''
한왕(韓王)
''''''
(姬)
''''''
(韓)
''''''
(成)
'''사망지'''
팽성(彭城)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206년
'''재위 기간'''
기원전 ?년 ~ 기원전 206년
1. 소개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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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초한쟁패기한(韓)나라의 왕. 본명은 한성(韓成)이다.

2. 생애


한나라의 살아남은 왕손 중 한나라의 왕위 계승 순위가 제일 높았다. 왕위에 오르기 전에 장량이 횡양군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원래 한나라의 신하였던 장평(張平)의 아들 장량(張良)이 그를 찾아냈으며, 이후 항량(項梁)의 허락을 받고 군대를 빌려가서 성을 한왕으로 모셨다.[1] 이후에는 장량의 도움을 받으며 예전의 한나라 영토를 수복하기 위해 힘썼다.
그러나 항량이 진나라와 싸우면서 전사하고, 항우가 실권을 이어받고 나서부터 항우와의 관계가 꼬이기 시작한다. 한나라 영토 수복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군사력이 소모되었기 때문에 항우(項羽)의 싸움을 돕지 못했던 것이다. 항우가 함곡관(函谷關)으로 들어갈 때에도 여전히 도와주지 못하고 있었다. 항우가 18제후왕에게 분봉할 때에도 밉보였는데, 장량이 한고제에게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결국 한나라 왕의 자리를 박탈당하고 제후에 봉해진다. 한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항우의 부하 정창(鄭昌)이 대신하게 되었다.
이후에 성은 한나라 땅에 있지도 못하고 항우 근처에서 지내는 것으로 나오는데, 사실상 신병을 구속당한 것으로 보인다. 장량은 마지막까지 곁에 남아 성을 도와 한나라를 다시 일으키려고 힘썼지만, 항우는 얼마 가지 않아 한왕 성을 죽여버렸다. 이를 계기로 장량은 파촉 땅의 한고제를 찾아가 그의 모사로서 활약하게 된다. 한편 유방은 한성의 조카 한왕 신을 한왕에 봉해 한나라는 일단 좀 더 이어진다.
[1] 형식상 초의제(楚義帝)의 군대를 빌린 것이지만, 군사적 실권은 항량이 쥐고 있었기에 이렇게 서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