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량

 

'''項梁'''
'''? ~ 기원전 208년 9월'''
1. 개요
2. 생애
3. 평가
4. 대중매체에서
4.1. 시바 료타로의 항우와 유방
4.2.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항우와 유방
4.3. 드라마 초한쟁웅
4.4. 드라마 초한전기


1. 개요


초한쟁패기의 인물. 항연의 아들로, 항연의 손자인 항우에게는 숙부가 된다. 진승이 초한쟁패기의 계기가 된 인물이라면 항량은 초한쟁패기를 실질적으로 연 인물이라 할 수 있다.

2. 생애


항우의 숙부로 전국시대 말기 초나라의 마지막 명장 항연(項燕)의 아들이라고 한다. 항백은 동생. 살아 생전에 전국시대의 종언과 진나라의 천하통일과 몰락을 본, 극적인 일생을 보냈다. 하상(下相) 출신[1]으로 초나라 멸망 후에 어떤 성장과정을 보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초나라 멸망 후 그 행적이 기록되는 곳이 관중 일대의 역양으로[2] 아예 어린 시절을 유랑하며 살았던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역양에서 사람을 죽여 옥에 갇힐 뻔하나 친분 있는 옥리 조구, 옥연의 연줄로 책임자 사마흔과 닿을 수 있었고, 그 덕에 도주할 수 있었다. 다만 <초한지> 등의 창작 매체에선 시황제의 행렬을 본 항우가 "저놈 죽이고 내가 황제가 되어야지."라고 사고치는 바람에 도주한 것으로 그려진다.[3]

도주하여 회계 오중지역 일대에 정착하여서 그 지역에서 제일가는 명사가 되어 신망과 명성을 두루 얻었다. 시바 료타로는 자신의 저작 항우와 유방에서 항량은 관과 향촌 사이의 이해를 잘 조율하고 관리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라고 묘사하는데 사기에서 항량이 오중일대의 요역과 상사(喪事)를 관리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대체로 그런 조정능력이 뛰어났던 것 같다. 이러면서 항량은 그 일대의 선비, 호걸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준군사적인 무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시황제가 죽고 전국이 혼란해지자 기회가 온다. 각지의 난리에 회계군수(會稽郡守) 은통(殷通)도 역심을 품게되고 일대의 명사 항량을 불러 자기 휘하로 포섭하고자 했다. 이때 초청된 항량에게 은통은 같이 포섭하려 하는 환초의 행방을 묻게되고 이에 항량은 조카 항우만이 안다고 나가 항우를 불러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항우의 첫번째 참살극이었다. 은통을 죽이고 자신의 명망과 항우의 무용으로 좌중을 압도해 항량은 회계를 접수한다. 이후 1년간 항량은 회계에 웅거해 화북으로 진출하지 않았다. 이는 세력을 다지려는 것일 수도 있고 당시 제일 반군 세력으로 장초(張楚)를 건국한다던지 진왕(陳王)을 자칭한다던지 하는 진승과의 관계에서 고심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던 중 기원전 208년, 진승 세력의 소평이란 인물이 와서 항량에게 초의 상주국 관직을 내린다는 진승의 령을 내리고 이에 항량은 북진을 결심한다. 이 과정에서 항량은 진영, 포장군[4], 영포 등의 세력을 흡수해 강성해진다. 그러나 항량군이 진출할 즈음 상황은 크게 바뀌어 있었다. 천지를 호령하면 진제국을 멸망시킬 것 같던 진승은 대패해 세력은 분열되고 진승은 살해되어 경구(景駒)[5]가 초왕이 되어 팽성에서 웅거하던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때 항량에게 범증(范增)이 가담하는데 범증이 제시한 방략에 따라 항량은 옛 초왕국을 재건하는 방침을 정한다. 그 방침에 따라 구 초나라의 왕족 웅심을 회왕으로 옹립하고 경구의 세력을 격파한다. 이후 우이에 새 도읍을 정하고 자신은 무신군(武信君)에 올라 설현[6]에 근거를 두게된다. 이때 경구의 신하 비슷한 처지였던 유방은 이렇게 되자 옹치를 족치기 위해서 곧바로 항량 쪽으로 편을 갈아탔고, 항량은 그를 크게 마음에 들어하여 5천에 달하는 군대를 빌려주어 풍읍을 치도록 도와주었다.
진승군 와해 후 최대세력으로 부상한 항량군은 회왕을 옹립한 후 초나라 재건이라는 명분을 얻어 유민세력들의 호응과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이어 항량군은 서진해 동아 전투에서 장한을 연달아 대파하는 큰 승리를 거둔다. 여기까진 좋았지만, 너무 크게 이겼던 게 문제였는지 이 즈음의 항량은 진승이 그랬던 것처럼 오만함에 젖어 김칫국부터 마시기 시작했고, 곧 여러가지 문제를 저지른다.
항량은 제왕을 자처한 전담 사후 내분으로 도주해온 제왕 전가[7]를 보호하고 있었는데, 그를 몰아낸 전영[8]이 그 제거를 요구했다. 항량은 이를 거절했고, 그리하여 제의 원군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승을 거두긴 했지만 장한의 군대가 완전히 섬멸되지 않았는데도 항량은 병력을 분산해 동아 전투와 추격전에서 앞장서서 활약한 항우와 유방의 군을 더 멀리 떨어진 옹구, 외황으로 진출시키고 자신은 정도로 나아가 양군의 연계를 어렵게 만들었다. 총사가 이러니 초군 전체도 나태해져 갔다. 송의의 말에 따르면 "장수는 교만하고 병졸은 게을러 지고 있다."라고 할 정도였다. 창작매체에선 한신이 이 상황을 지적하지만 면박 당하면 씹힌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장한은 진 조정에 추가적인 군사를 요청하여 승인을 얻어냈고 금세 군세를 복구하는 걸 넘어 아예 그 전보다 더 규모를 키워버렸다.
이런 문제를 회왕의 사자로 온 송의(宋義)가 지적하지만 자신감 과잉상태인 항량은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한편으로 병력부족이 조금이나마 걸린 탓인지 송의를 제로 사신으로 보냈다.[9] 제로 가던 송의는 마침 초나라로 사신으로 오던 고릉군 현을 만나게 되는데 송의는 여기서 고릉군에게 늦게 가라고 조언하면서 이리 말한다.

"무신군은 필히 패할 것입니다."

결국 동아 전투의 대승 후 겨우 2달이 지난 어느날, 항량은 야밤을 노려 깃발을 숨기고 기습을 가한 장한의 진군에게 정도에서 패사(敗死)하고 만다.

3. 평가


보통 항량은 항우와 유방의 들러리 취급을 받아왔다. 항우의 무용에 가려져 초한쟁패기 스타터 정도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사기의 기록처럼 갈등이 큰 관민 사이를 상당히 원만히 조율했고 도주해온 회계에서 금세 신망을 얻은 것을 보아도 범상치 않은 데가 있다. 특히 안목이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회계 접수후 아는 지인, 호걸들에게 한자리씩 내렸는데 어느 한사람에게만 별 자리를 주지 않았다. 그 사람이 항의하자 항량은 "당신은 지난 제사 때 내가 시킨 직무를 잘하지 못했소. 그래서 지금 그대를 임용하지 않은 것이오" 라고 답했다. 이에 사람들이 그 기용에 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항우의 자질을 잘 길러낸 것만 보아도 상당한 인물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항우의 오만함과 잔학함을 생전 통제하지 못한 것만 보아도 그 한계 또한 분명했던 것 같다. 항량이 항우의 학살에 진짜로 비판적이었는지도 불확실하다.[10] 항우에게 진나라에 대한 증오를 주입시킨 장본인은 항량 외에 있을 수가 없으며, 자신을 포섭하려는 은통을 즉시 척살하고 고을을 접수하는 것을 봐도 항량이라고 딱히 온화한 인물이었던 것은 아니다. 물론 진나라군에게 부친과 형이 살해당했고, 나라와 가문이 모두 망하는 걸 두 눈으로 보고 겪었으니 항량 입장에서는 증오심을 품는 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그렇지만 초의제 시해로 인해 당대나 후대나 욕먹었던 항우와는 달리 초의제를 옹립한 항량은 별 욕을 안 먹은 모양인데 대표적으로 김종직의 조의제문에서 김종직은 항우는 양흔낭탕하다는 사기의 평을 그대로 썼지만 항량은 '왕위를 얻되 백성의 소망을 따랐다.', '인의를 따랐다.' 라고 평가했다.

4. 대중매체에서



4.1. 시바 료타로의 항우와 유방


시바 료타로의 항우와 유방에선 사기에서의 행적을 따른다.[11] 보통 현인에 가깝게 묘사되는 기존 매체에서 좀 더 디테일하게 묘사된다. 풍파를 다 겪은 은사 분위기의 인물 그러면서 깊은 야심의 소유자. 그런 한편 조직 조율 능력과 기지가 탁월한 지도자이고 구 6국과 진제국 사회를 냉정히 분석하는 안목도 있다.
그러나 하루에 자기만의 사색시간을 갖지 못하면 정신이 황폐화되며 간혹 장시간 몽상과 공상에 빠져사는 촌로. 회왕 옹립 후에 그에 따른 왕실과 귀족들에한 갈등, 권력욕도 잘 묘사된다. 한편 각지의 자기만의 여자를 두고 있는데 말없고 배시시 잘 웃는 여성을 좋아하는 듯. 다만 불임자 . 이것과 방랑벽에 때문에 가정을 꾸리지 않았다고 한다.[12]

4.2.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항우와 유방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항우와 유방에선 전형적인 항량의 이미지. 건방진 아들을 돌봐주는 현명한 아버지같은 인상. 하지만 한신의 간언을 무시하고 장한과의 싸움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그를 유인하려고 연일 주연을 열다가 진짜로 전군이 방심에 빠지게 만드는 사태를 초래한다. 그리하여 결국 장한의 기습으로 병졸의 칼에 죽음을 당한다.

4.3. 드라마 초한쟁웅


중국드라마 초한쟁웅에서도 마음씨 좋은 아버지 같은 모습으로 등장. 그러면서도 야심있는 모습도 보이는 등 시바 료타로의 항우와 유방에서 등장한 모습과 비슷. 장한에게 패해 사망하는 전투에서도 항량이 교만해져 패한 것이 아닌 장한의 끈질긴 유인책에 넘어가 패하는 걸로 나온다.

4.4. 드라마 초한전기


중국드라마 초한전기에서는 1화부터 등장하며 항백, 항우와 함께 함양성에서 숨어서 지낸다. 숨어지내는걸 못 마땅해 하는 항우를 다독이면서 '''"진왕은 천추만대를 무력으로 다스리려 하지만, 그건 꿈에 불과하다".'''[13] 라고 말하며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고 때를 기다리라고 한다. 항백의 말에는 토를 달면서 버럭하는 항우도 항량의 말이라면 수긍하고 숙인다. 2화에서는 초의 부흥을 위한 회합 자리에서 한 명이 함께 하길 거부하면서 고변은 하지 않겠다고 하자 칼로 찌르고 이로 인해 사마흔 에게 추궁을 받는다. 사마흔은 추궁하는 도중 항량과 그 옆에 있는 항우의 비범함을 눈치채고 말까지 준비해주며 함양성을 빠져나갈수 있게 도와준다.[14] 도망 중에 계속 검문과 추격을 받자 항백과는 헤어지고 항우와 함께 오월로 향한다.

4.5. Fate/Grand Order


작중에서는 과거 시점의 인물이라 직접 등장하지 않고 설정으로만 언급되는데, 범인류사에서는 시황제 사후 회계에서 어느 안드로이드를 노획하고 자신의 조카 항적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써먹었다고 한다.
[1] 지금의 장쑤성. 삼국지의 회남 일대.[2] 진시황의 구 6국 출신 부호, 귀족 강제 이주책에 의한 것 같다.[3] 이 사건은 창작이 아니라 사기에 그대로 실려있다. 다만 이것 때문에 항량이 도망치지는 않았다.[4] 포씨 성만 알려져 있고 이름은 남아있지 않다.[5] 경씨(景氏)는 초나라 방계 왕족이기에 추대된 것이다.[6] 지금의 산동성. 전국시대 맹상군의 근거지.[7] 전담 사후 비(非) 전담파벌이 옹립한 왕.[8] 전담의 아우.[9] 송의가 상황이 막장인 걸 알고 일부러 사신으로 자원했다고 보통 그려진다.[10] 가령 항우가 항량 생전 양성에서 적군 포로를 학살해 버리자 이에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결국 항우는 얼마 가지도 않아서 장한을 추격하는 도중 성양에서 또 학살을 저질렀고 의제 파벌에게 완전히 살인마로 찍혔다. 의제 측에서 항우가 가는 곳마다 전부 주멸을 당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을 기록되지 않은 학살 행위에 대한 암시로 볼 경우엔 항우의 학살은 항량 생전부터 자행되던 일상적인 일에 불과하게 되며 항량이 항우를 제대로 제어했다고 보기엔 어렵게 된다.[11] 다만 역양사건은 다루지 않는다.[12] 혹은 조카 항우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일부러 결혼하지 않는 것으로 나올 때도 있다.[13] 항우의 차후 행보도 이와 비슷하다. 훗날 항량이 양성학살 이후 이와 비슷한 말을 또 한다.[14] 여기서 항량은 사마흔에게 은혜를 꼭 잊지 않겠다고 하지만 이후 항우가 사마흔에게 했던 대접을 생각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