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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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함곡관. 물론 근래 관광단지로 조성된 것이라 과거의 함곡관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오른쪽에 물소를 타고 있는 노자의 상이 보인다.
1. 개요
函谷关(Hángǔguān)
허난 성 싼먼샤시 서쪽 링바오 현에 위치해 있으며, 더 서쪽으로 가면 동관이 위치한다. 요동에서 중원으로 들어오는 관문인 산해관, 삼국지로 유명해진 호로관 등과 함께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관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문협(싼먼샤)라는 이름답게 위치상으로도 중요했고 지리적으로도 험하기 이를 데 없었다.
2. 역사
중원#s-1과 관중을 가르는 관문이기에 양쪽 어디로 가려든 이 함곡관을 넘어 가야만 했으므로 천하를 다투는 전투가 많이 일어났던 곳이다.
원래는 괵나라가 이 부근에 있었고[1] , 가도멸괵의 계책을 통해 진(晉)나라의 영토로 귀속되었다.
이후 삼진이 분리될 당시에는 위나라에 속했고 하동과 하서지방을 진나라에 빼앗기면서 진나라의 영토에 속하게 된다. 관문 자체는 진효공 때 처음 세워졌다 하며, 진나라의 동쪽 경계에 위치해 난공불락의 요새로 북쪽은 황허, 남쪽은 효산으로 되어 있어 중간의 길이 마차 한 대 지나갈 정도밖에 안 되어 천하제일험관(天下第一險關)으로 불렸으며 중원으로 진출하는 데 교두보 역할을 했다.
춘추전국시대의 진나라 수도였던 함양을 방어하는 최후의 보루로 있었으며 합종군이 몇 번씩이나 구성되어 진나라를 침공했을 때 번번이 함곡관에서 공세가 돈좌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는 아예 격퇴되거나 장의 같은 변설가들에 의해 함곡관을 넘지 못하고 각국이 흩어지게 되는 등 전국시대 진나라에게는 생명줄으로, 타 국가들에게는 통곡의 벽으로 기능했다.
전국시대와 초한쟁패기가 끝나고 한고조 유방이 함양 옛자리 근처에 장안을 세워 수도로 삼으면서 함곡관도 수도관문으로서 그 중요성을 이어갔다. 이후 후한 광무제가 낙양으로 천도하면서 함곡관도 현재의 링바오현이 아닌 낙양에 가까운 신안현으로 이전하게 된다.
이 때문에 삼국지의 배경인 후한말 기준으로 함곡관은 사실 링바오현이 아니라 신안현 liuwan 일대[2] 이고 전국시대 진나라 관문으로써의 함곡관이 있던 자리는 홍농이란 지명으로 이름이 바뀐다. 따라서 위연이 함곡관을 넘겠다는 계책을 냈을 때의 함곡관은 홍농이 아니라 기관과 육혼관 사이를 얘기한 것이다.
이후로도 여러 왕조들이 장안을 수도로 삼을 때와 낙양을 수도로 삼을 때에 따라 그 사이에서 함곡관의 위치도 여러 번 바뀐다. 즉, 함곡관은 여러 왕조의 수도였던 장안을 방어하는 중요 거점으로 남았다. 수당교체기에도 이세민과 왕세충의 건곤일척의 전투가 이곳에서 벌어졌다.
당나라 말기부터 장안과 관중 일대가 몰락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방어 거점으로서의 중요도가 떨어지게 되었으나 난공불락의 명성은 여전해 안사의 난부터 중일전쟁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요새로 이용되어 왔다.
현재는 전국시대의 위치였던 링바오시에 함곡관을 복원해두었다. 정확히 있던 위치는 아니고 관광하기 좋게 홍농이 있던 시가지 쪽에 자리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삼국지에 등장하는 함곡관과는 다른 위치라고 할 수 있다.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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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함곡관 상상도... 라고 하기엔 왼쪽 가운데 보이는 황금 노자상을 보면 알겠지만 현재 함곡관의 조감도로 보인다. 그러나 주변 지형과 함께 과거의 함곡관이 어땠을지 판단할 수가 있다. 그림만 봐도 옆으로는 강을 끼고 낙양 방향은 좁은 험로로 되어 있어 난공불락의 요새라는 걸 짐작케 한다.
사실 중국에는 훨씬 더 험준한 검문관, 가맹관, 양평관, 면죽관 같은 곳도 있기 때문에 이런 곳의 사진을 보며 등산왕 등애 드립을 치다가 막상 함곡관 사진을 보고 나서 "이게 그 명성 자자한 함곡관인가?" 하고 김 빠진 듯한(?) 감상을 말하는 역덕 뉴비들이 더러 있다. 특히 위성사진으로 보면 산지가 거의 없는 평지처럼 보여서 더 그런데, 함곡관은 평지에 우뚝 솟은 구릉으로 올라가는 좁은 통로를 길막하고 세워진 관문이다. 특히 도보 이동이 아닌 '''짐수레가 이동'''하는 데에는 산맥이 아닌 몇십 미터 높이의 구릉지 절벽일지라도 길이 없다면 매우 고된 여정이 된다. 현대와 같은 토목 기술도 없고 도로사정도 열악하던 그 옛날엔 정말 천혜의 요새였던 셈. 게다가 막강한 농업 생산력, 인구 밀집 지대인 관중을 후방으로 뒀으니, 함곡관을 뚫으려면 관중의 물량을 우직한 소모전으로 갈아버리기 전엔 뚫을 수 없다! 그래서 '힘 들이지 않고서 적의 공세를 막아내는 것'을 일컫는 '일환니봉함곡관'(一丸泥封函谷關)[3] 이란 말이 있거니와, 이 글귀는 이미 그 옛날 후한서에 처음 등장하는 것이다.
본래 함곡관은 관문 3개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낙양에 가까운 하나와 장안에 가까운 2개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장안이나 낙양 어느 한 쪽에 수도가 세워지는 경우 반대쪽 관문을 부숴 없애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중국의 중심이 관중과 중원에서 동쪽 해안지역으로 옮겨가게 되면서 이곳도 자연스럽게 쇠퇴하여 폐허가 되었다가 근래에 관광단지로 조성하게 된 것이다.
맹상군이 진나라에서 탈출할 때 밤이라 이 함곡관 문이 닫혀 나갈 수 없게 되었는데 수하의 식객 중 한 명이 닭 울음 소리를 기가 막히게 내어 수비병들이 동이 튼 줄 알고 문을 열어 탈출에 성공했다는 일화가 있다. 여기서 하찮게 보이는 재주가 크게 쓰일 경우를 의미하는 계명구도(鷄鳴狗盜)라는 고사성어가 생겼다.
또한 노자가 이곳에서 도덕경을 완성하였다 하며[4] , 도교의 성지 중 하나로 관련된 관광자원이 많다. 또한 황금색으로 된 노자의 동상이 서있다.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함곡관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거나, '홍농'이라는 지명으로 장안과 낙양 사이에 위치한다. 호로관 이상으로 악명높은 지형으로 소수의 병력으로 대군을 막아낼 수 있다. 삼국지13(PK)에서는 제갈량 북벌에서 일단 홍농까지 먹으면 정예창병/정예기병 뽑고[5] 농성하며 하북의 그 많은 병력 물량들을 홍농에서 길막하고 다 갈아낼 수 있다. 그런 후에는 텅텅 빈 하북을 향해 낙양, 허창, 하내를 먹고 룰루랄라 천하통일의 길로...
[1] 싼먼샤 시에 링바오시(灵宝市)가 포함되어있는데, 싼먼샤시 중심부가 괵나라의 중심부였다.[2] 전한 시기에 낙양팔관의 하나인 한관으로 불리던 곳이다.[3] 직역하면 '흙 한 덩이로 함곡관을 틀어막는다'라는 뜻이다.[4] 그러나 위에 언급된대로 함곡관은 진효공 때 처음 만들어졌기 때문에 200여 년 전인 노자 시대에는 당연히 없었다. 즉 후대에 지어낸 이야기거나 아니면 노자가 후일에 함곡관이 세워질 자리에 머물면서 도덕경을 저술했을 가능성은 있다.[5] 장수의 통솔과 무력빨에 따라 정예창병/기병이 안 나오는 훈련도라도 동주병이나 서량병으로도 가능하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