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담
1. 개요
북한의 정치인 겸 외교관. 오랜 기간 조선로동당 대남비서, 국제비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외무상 등을 역임하면서 대남정책을 담당하였다.
2. 생애
평양 태생이며, 아내가 김일성의 사촌동생인 김정숙이였기에 북한 권력층에서 계속 머무를 수 있었다. 또한 수완이 매우 영리하여 김일성의 후계자였던 김정일의 비위를 척척 잘 맞춰서 매우 높은 신임을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3. 경력
1948년 모스크바 대학을 졸업한 이후 외무성 참사로 외교업무를 시작했다. 이후 외무성 부상에 오르는 듯 외교 분야에서 승승장구하였으며, 김정일에게 보위부 창설을 제안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후 김영남이 외무상 부상직을 가져갔고, 허담은 조선로동당 대남비서를 맡게 되었다. 1972년 정무원 부총리 겸 외무상을 맡았다.
허담은 1985년 9월 남한을 극비리에 방문하여 전두환 대통령에게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하였다. 당시 보안 문제 때문에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의 경기도 가평 별장에서 만났다고 한다. 이러한 허담의 방남 이후 장세동 안기부장이 다시 평양을 방문하여 첫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을 시사하였으나, 팀 스피릿 훈련 중단에 대한 부정적인 대한민국의 입장으로 흐지부지되었다.
현재까지 알려지기로는 이것이 한국전쟁 휴전 이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 시도였다. 그러나 허담은 이러한 정상회담의 불발에 불구하고 여전히 승승장구하였으며, 국제비서를 하면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을 겸했다. 89년 3월 방북한 문익환 목사와 공동성명을 발표했으며 같은 해 6월 김영삼 민주당 총재와 모스크바에서 회동했다. 그 해 8월에는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한전대협 대표 임수경을 만나기도 했다.
그의 승승장구는 계속 이어져 90년 5월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1차 회의에서 신설된 외교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지만 건강 악화로 인해 비서업무를 수행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형식상 맡고 있던 외교위원회 위원장도 신병 치료 때문에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1991년 5월 오랜 병환 끝에 사망하였다.
4. 가족
아들인 허철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외무성에서 근무하였으나, 2019년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 대리 조성길의 망명 책임을 지고 외무성 당위원장 직책에서 철직되었다고 전해진다. 딸인 허영희도 자택에서 외화뭉치가 발견되어 구속되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