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인황후 위씨

 


'''남송의 추존 황후
顯仁皇后 | 현인황후
'''
'''시호'''
현인황후(顯仁皇后)
''''''
위(韋)
'''출생'''
1080년
'''사망'''
1159년
'''재위'''
남송의 황태후
1142년 ~ 1159년
'''배우자'''
휘종
'''아버지'''
위안도(韋安道)
1. 개요
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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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顯仁皇后 韋氏
(1080년~1159년)
중국 북송시대 휘종의 황후로, 송나라가 임안으로 천도한 이후에 즉위한 고종의 모후였다.

2. 상세


위황후는 휘종이 단왕이었을 때, 단왕의 시녀로 있었다. 이때 같은 시기에 시녀로 있었던 귀비 교씨와 자매처럼 지냈으며, 훗날 휘종에 의해 현비로 책봉되었다. 이때 휘종과 현비 위씨 사이에서 조구를 낳았다.
1125년에 요나라가 멸망한 이후, 송나라의 약조 불이행으로 인해 금나라가 개봉으로 침공하였다. 이때 송나라의 수도였던 개봉이 함락되고 휘종과 흠종이 포로로 잡히는 사태가 발생하였는데, 현비 위씨도 이때 금나라로 끌려간다. 그 사이에 아들이었던 조구는 강남에서 황제로 즉위하여 송나라의 명맥을 간신히 이어나갔으니 이 인물이 바로 남송의 초대황제인 고종이 되었다. 고종은 그녀에게 선화황후라는 존호를 내렸다.
현비 위씨가 금나라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동안, 휘종과 현숙황후가 세상을 떠났으며, 이후 1141년에 남송과 금나라 간의 화의가 체결되어 다음 해에 휘종과 현숙황후는 관에 실려 돌아왔고, 고종의 모후였던 선화황후도 남송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만 이때 금나라로 끌려갔던 흠종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고 결국 1161년에 타국 땅에서 사망하였다.
위황후는 남송으로 돌아온 이후 고종의 황태후로 추앙받아 윤택한 말년을 보내다가 1159년에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현인(顯仁)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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