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앙반타이
1915년 5월 1일 ~ 1986년 7월 2일
호앙반타이는 베트남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그리고 베트콩의 창설자이다. 그는 1938년, 공산주의에 눈 뜨게 되었고 반제국주의, 반자본주의 성향을 띄게 된다. 공산주의자에 입문한 그 해부터 꾸준히 프랑스 식민제국,일본 제국에 맞서 베트남인들의 독립을 위해 싸웠고,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발발 당시에는 베트민에 가입하여 프랑스군과 혈전을 벌였다.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는 베트남 전쟁 때에도 은퇴하지 않고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즉, 베트콩을 창설하여 100만 명의 베트콩들을 이끌고 남베트남군, 한국군, 호주군, 뉴질랜드군, 태국군, '''미군'''에 맞서 싸운다.
하지만 그는 전쟁의 최종 승자 쪽 주요 인사였기에 미화된 측면이 매우 강하다. 베트남의 공산주의자 세력들은 1957년부터 전쟁 기간 내내 정권과 아무 상관도 없는 민간인들, 특히 여자들과 어린아이들 같은 약자들을 상대로 조직적이고 잔혹한 테러를 자행했으며, 베트콩이 설립된 이후 그들의 행태는 해가 갈수록 심각해져서 나중에 미군이 제대로 된 지원을 해주자 순식간에 수십만의 사람들이 민병대에 자원해서 저들과 싸울 정도로 민심이 심각하게 나빴다. 이런 베트콩의 행태는 어디 특정 지역이나 특정 하급 간부의 잘못 같은 게 아니라 베트콩과 그에 지령을 내리는 북베트남의 의도였음이 분명하기 때문에, 호앙반타이 역시 잔혹한 전범, 학살자로 인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한 마디로, 중공군의 삼대기율 팔항주의와 마찬가지로 그가 속한 정권이 그 나라의 최종 승자가 되었기에 충공깽스러울 정도로 미화된 인물로 보면 될 것이다. 전쟁 당시에 조사된 자료만 이 정도인데, 만약 현 베트남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된 국가가 들어서서 추가 연구가 진행된다면 더 많은 만행들이 나올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