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기도감의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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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내용
2.1. 불랑기
2.2. 현자총통
2.3. 백자총통
2.4. 삼안총
2.5. 소승자장가
2.6. 쾌창
3. 바깥고리


1. 개요


火器都監儀軌. 조선 광해군 6년인 1614년부터 동왕 7년인 1615년까지 약 1년간 화기도감을 설치하여 군용 화기를 제작하면서 이와 연관된 모든 내용들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여 남긴 조선왕실의궤.
강화도 사고본 화기도감의궤 1질이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으며, 2016년에 다른 의궤들과 함께 대한민국 보물 제1901호로 일괄 지정되었다.

2. 내용


광해군 6년인 1614년 7월 15일에 임시 기구인 화기도감을 설치하고 1614년 7월 21일 철물공장(鐵物工匠)의 요미(料米)는 호조에서, 가포(價布)는 병조에서 마련하게 하였다. 이후 1615년 4월 28일까지 약 1년간 화약 무기를 제조하여 시험 발사에 모두 성공하였고, 5월 30일까지 완성된 화기를 각지에 공급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을 모두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여 남긴 의궤이다.
이 의궤에는 1600년대 초 당시 우리 나라에서 제작한 불랑기 4호, 불랑기 5호, 현자총통(玄字銃筒), 백자총통(百字銃筒), 삼안총(三眼銃), 소승자장가(小勝字粧家), 쾌창(快鎗)의 7종의 화약 무기를 제조한 과정과 무기의 모습을 그린 그림, 제작 방법, 제작 내역, 재정 운영, 제작된 화기의 분배 내역, 제작에 참여한 도제조 이하에 대한 포상 내역 등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당시 1614년 7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약 9개월 동안 불랑기 4호 50문, 불랑기 5호 50문, 현자총통 50문, 백자총통 20문, 삼안총 203자루, 소승자장가 306자루, 쾌창 724자루 등 약 1500여문의 화포를 제작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2만 5천근이 넘는 구리와 쇠를 사용했음을 밝히고 있다.
책의 의궤사목에는 화포를 제조하는데 참여한 관원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고, 도설에는 이때 제조한 화포들의 모습이 각 화기의 재료, 제작 수량, 제원, 소모품 등과 함께 그려져 있다. 좌목에는 화기도감을 지휘한 높으신 분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고, 계사에는 화포 제조에 든 재원과 원료의 확보 과정, 물품의 종류와 수량, 조달처, 화포의 주조 과정, 화포의 주조 방법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화기도감의 규정 또한 기록되어 있는데 야장 1인은 승자총통을 2일에 1자루, 삼안총은 4일에 1자루씩 제작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세종 때 기록된 총통등록, 선조 때 기록된 신기비결 등과 함께 조선 초, 중기 우리 나라 화약 병기의 발전 과정과 제조 방법, 각 화기의 제원 및 장전 방법과 사격법 등을 연구하는데 도움이 되는 기록물 중 하나이다.

2.1. 불랑기


1614년 당시 불랑기 4호 50문, 불랑기 5호 50문이 제작되었다. 모포는 동철(銅鐵)로, 폭발시의 높은 압력을 견뎌야 하는 자포는 강도와 점성이 높은 정철(正鐵)로 제작하였다.
4호 모포의 무게는 90근(斤 : 1근은 약 600g), 길이는 3척(尺 : 1척은 영조척으로 약 30.65㎝) 1촌(寸) 7분(分)이었다. 불랑기 5호 모포의 무게는 60근, 길이는 2척 6촌 5분이었다.
불랑기에 사용한 화약의 양은 1호가 10냥, 2호가 7냥, 3호가 4∼5냥의 화약을 사용하였고, 화기도감의궤에 나오는 불랑기 4호는 3냥의 화약을, 불랑기 5호는 2냥의 화약을 사용하였다.
우리 나라에 현존하는 불랑기는 불랑기 4호 6점, 불랑기 5호 3점이 있는데, 현재 불랑기 5호에 대한 기록은 화기도감의궤에 남겨진 기록이 전부라고 한다.우리역사넷 : 불랑기

2.2. 현자총통


1614년 당시 현자총통 50문이 제작되었다. 동철로 제작되었으며, 무게는 70근, 길이는 2척 3촌 5분이었다.
철환(鐵丸) 100개를 넣어 동시에 발사하거나, 차대전(次大箭) 또는 은장차중전(隱藏次中箭)이라는 큰 화살 1개를 넣어 발사하게 하였다.

2.3. 백자총통


1614년 당시 현자총통 20문이 제작되었다. 동철로 제작되었으며, 무게는 28근, 길이는 2척 7촌이었다.
철환(鐵丸) 15개를 넣어 동시에 발사하게 하였다.

2.4. 삼안총


1614년 당시 삼안총 203자루가 제작되었다. 정철로 제작하여 폭발 시에 총신의 파열을 방지하였다. 무게는 7근 반, 길이는 1척 4촌 8분이었다.
불씨를 손으로 점화하는 개인화기로 세 개의 총신(銃身)이 하나의 손잡이에서 뻗어 나간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2.5. 소승자장가


1614년 당시 소승자장가 306자루가 제작되었다. 정철로 제작하였으며, 무게는 7근, 길이는 2척이었다.
기존의 승자총통을 개량한 것으로 조총의 여러 장점을 채택하여 조성(照星 : 조준 장치)을 정밀하게 만들었고, 장가(粧家 : 개머리판)도 부착하였다.

2.6. 쾌창


1614년 당시 쾌창 724자루가 제작되었다. 정철로 제작하였으며, 무게는 8근, 길이는 2척 4촌이었다.
조총과 비슷하게 불씨를 손으로 점화하는 개인 화기로, 성능은 일반적인 조총보다 좀 떨어졌지만 대신 유사시 타격 무기인 곤봉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3. 바깥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