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근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황보근은 1882년 11월 17일 경상도 신녕현 지곡면 구전동(현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구전리)에서 계유정난 때 참살된 영의정 황보인의 17세손으로 태어났다.
그는 1906년 3월 고종황제의 밀명을 받은 정환직과 그의 아들 정용기가 이한구(李韓久)·정순기(鄭純基)·손영각 등과 함께 산남의진(山南義陣)을 결성하자 이에 가담하여 권규섭·성낙희(成樂熙)·성낙호(成樂皥)·이하수(李河秀)·양석용(楊錫溶) 등과 함께 신녕 지역의 연락 책임자를 맡아 활동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 24세이었으므로 군중 내에서 그를 24장(將)이라 하였다.
그후 선봉장이 되어 영덕·영덕군 강구면·흥해 등지에서 수차례 일본군과의 교전에 참전하여 그들을 격퇴시켰으며 곧 포장(砲將)으로 임명되어 맹활약하던 그는 1907년 8월 정용기를 비롯한 산남의진 본진 100여 명과 함께 죽장의 매현리로 들어가 9월 초 강릉으로 북상을 준비했다.
그러나 일본군 영천수비대의 역습을 받고 입암(立巖)[2] 전투에서 적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다가 의병장 정용기는 순국하고, 황보근은 부상을 입고 귀향하여 치료하던 중 체포당했다.
체포되었을 당시 17번이나 형틀에 포승줄로 묶였는데도 불구하고 조금도 굴복하지 않았고, 이후 석방되자 은거하다가 8.15 광복을 맞았다.
이후 1963년 5월 3일 별세하였다.
사후 198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