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철의황후
1. 개요
청나라 제10대 황제인 동치제의 황후.
2. 상세
몽고 정람기인[1] 숭기와 정친왕 단화의 딸 애신각라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숭기는 몽골인 출신으로 과거에 장원급제한 유학자였고, 외조부인 정친왕 단화[2] 와 외종조부인 숙순은 정치적으로 서태후와 대립하여 신유정변 때 서태후에 의해 숙청되었다.
동태후의 추천과, 동태후를 따랐던 동치제의 선택으로 황후가 되었다.[3] 가순황후로 알려져 있으며 시호는 효철가순공단헌천창성의황후(孝哲嘉順恭端憲天彰聖毅皇后)이다.
동치제가 병상에 있을 때 서태후와 가순황후가 다투었는데, 자신은 대청문을 통해 들어온 황후라 하여 서태후가 진노한 일이 있었다.
대청문이란, 현재의 마오쩌둥 기념당 자리에 있었던 자금성의 정문이었는데 이곳의 중앙문은 황제와 대혼 때의 황후만이 들어올 수 있는 문이었다.
서태후는 후궁 출신으로 동치제가 즉위하며 황태후가 되었기 때문에 정궁 황후가 아닌 것에 유감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이 후궁 콤플렉스를 건드린 것이었다.
동치제의 죽음 이후, 서태후는 황제의 죽음이 황후의 잘못이라며 음식을 주지 않았고, 처소인 저수궁에 유폐시켰다. 황후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도와달라 하였으나 '황후께서 아실겁니다'라는 답을 받고 자살을 하였다.
[1] 황후로 책봉되면서 만주 양황기로 옮겨졌다. 황후는 만주 상3기에 속해야했기 때문이다[2] 동태후의 고모가 정친왕 단화의 처이다. 즉, 동태후와 효철황후는 5촌간이다[3] 서태후의 정적이었던 정친왕 단화의 외손녀가 며느리가 되는 것에 대해 서태후는 매우 큰 불쾌감을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