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시

 



[image]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 및 성급시
北京市(Běijīng Shì'''
베이징시 | Beijing Municipality


'''시정부 소재지'''
베이징시 퉁저우구 윈허둥대가 57번
(北京市通州区运河东大街57号)
'''지역'''
화베이
'''면적'''
16,412km²[1]
'''하위 행정구역'''
16구
'''시간대'''
UTC+8 (한국과 1시간 차이)
'''인문 환경'''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5px -13px"
'''인구'''
21,431,309 (2020)
'''인구밀도'''
1,310명/km²
'''민족 구성'''
한족 96% | 만주족 2%
회족 1.6% | 몽골족 0.3%
'''HDI'''
0.887 (2017)

'''서기'''
차이치(蔡奇)
'''시장'''
천지닝(陈吉宁) (대리)[2]
'''GRDP'''
'''전체'''
$5,040억 4,050만 (2020)
'''1인당'''
$23,519 (2020)
'''상징'''
'''시화'''
장미, 국화
'''시목'''
측백나무, 고삼나무
'''행정구역 약칭'''
'''京'''
'''행정구역코드'''
'''11'''0000
'''지역전화번호'''
'''10'''
'''우편번호'''
'''1000'''00 ~ '''1026'''00
'''ISO 3166-2'''
'''CN-BJ'''
홈페이지
베이징 내성의 남문인 톈안먼(天安门, 천안문)[3]
2008 베이징 올림픽이 열린 베이징국가체육장
가운데 높이 올라가는 건물은 베이징에서 가장 높은 중국존
1. 개요
2. 이름
3. 특권
4. 땅값
5. 역사
6. 자연 환경과 기후
7. 행정구역
8. 교통
9. 베이징의 코리아타운
9.1. 우다오커우(五道口)
9.2. 왕징(望京)
10. 경제
11. 문화
12. 베이징 성
13. 교육
14. 베이징의 랜드마크
15. 자매결연도시
15.1. 프라하 - 베이징 자매결연 단절
16. 여담
17. 출신인물
18. 둘러보기


1. 개요



'''베이징(Beijing)''' / '''북경(北京)'''
국립국어원 북경/베이징(외래어)의 바른 표기
중국수도로, 역사적으로 연나라, 금나라,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중화민국[4],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다. 인구는 2020년 말 기준 약 2,1543만 명. 그러나 통계상으로 2017년부터 인구 감소세를 겪고 있다. 2016년 최대 2,195만명을 찍었다가 2018년 2,154만, 2020년 2,143만명으로 감소하였다. 베이징의 인구가 감소세에 접어든 이유는 베이징이 중국에서 선진화된 도시인 만큼 고령화, 저출산, 만혼이 전국 최고라는 특징 때문이다. 실제로 구글링해서 중국의 행정구역별 중위연령,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을 보면 천진, 상하이, 강소성과 함께 가장 높은 축에 속해 있다.
중국에서 상하이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자, 상주 인구가 무려 2,000만 명이 넘는 그야말로 대도시다. 한국 수도권에는 못 미치는 인구이긴 하지만, 단일 도시 인구로는 많다. 면적은 16,801km²로, 군사분계선 이남의 강원도와 크기가 거의 같다.[5] 인구 970만의 서울특별시 면적은 605km²다. 서울보다 약 27배 큰 면적에 2배의 인구가 상주한다.
그러나 도심지가 연속적으로 이어진 실질적인 유기적 생활권을 기준으로 봤을 때 좁은 뜻의 시 개념보다는 베이징시 자체가 대도심권 즉 광역권에 대응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한국의 경우 수도권, 일본의 경우 도쿄[6]권과 비교할 수 있다. 이 경우 베이징의 면적이 더 크긴 하지만 한국 수도권 면적 약 11,704km², 도쿄권 면적 약 13,500km²로 차이는 줄어든다. 아래에도 나와있듯이 실제로 미국의 브루킹스 연구소와 같은 세계 유수의 싱크탱크 기관에서도 베이징시를 협의의 시(city proper) 개념으로 보지 않고 그 자체를 대도심권(metropolitan area)으로 간주하여 비교하고 있다.
주변 톈진시, 허베이성과 합쳐 징진지(京津冀)로 묶인다. 2시1도를 묶는 한국의 수도권과 의미는 유사하지만 범위는 훨씬 크다.
서울에서 베이징까지의 거리는 직선거리로 약 950km, 남북통일 후 육로 이동이 가능하게 되면 1,300km 정도가 된다.

2. 이름


'''다국어 표기'''
한국어
베이징 / 북경
중국어
北京
Běijīng (한어병음)
Pei³-ching¹ (웨이드-자일스 표기법)
Peking (우정식 병음)
영어
Beijing, Peking (/'''피'''킹/이라고 읽는다)
일본어
北京(ペキン, ''Pekin'', 페킨)
프랑스어
Pékin, Beijing
독일어
Peking, Beijing
스페인어
Pekín, Pequín, Beijing
라틴어
Pechinum, Pekinum, Xuntienum
러시아어
Пекин
에스페란토
Pekino
한자 표기를 한국어식으로 읽으면 '''북경'''이 된다. 한국식 한자 독음인 북경도 자주 쓰이고 원어발음인 베이징도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요즘엔 한국식이 아닌 원어 독음이 많아지면서 베이징으로 쓰는 경우가 더 많다.
한어병음 표기는 Beijing이지만 Peking이라는 표기도 볼 수 있는데, 고어 발음과 프랑스어 표기 Pékin을 참고해서 만든 우정식 병음이다. 요즘에는 잘 안 쓰지만 베이징대학(Peking University) 등 아직도 이 표기를 쓰는 경우가 있다. 또한 베이징 수도 국제공항의 IATA 코드 역시 Peking에서 따온 PEK이다.
우정식 병음은 과거에 썼던 로마자 지명 표기 방식인데[7], 거의 웨이드-자일스 표기법을 쓰지만, 베이징처럼 고어 발음이나 방언 발음을 참고해 케바케로 정한 경우가 많아 체계성은 떨어진다.
참고로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선 현재 중국 본토에서는 더 이상 우정식 병음으로 지명을 표기하지 않는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 한어병음을 제정하고 외국에서도 한어병음 기준 표기를 쓰도록 요구하면서 20세기 후반에 가면 영어권에서는 Peking보다 Beijing을 더 많이 쓴다. 우정식 병음은 중화민국이 통치하는 대만이 꿋꿋히 써 왔으나 대만은 마잉주 집권기 한어병음을 도입하면서 거의 중국 본토와 동일하게 대체되었다. 그러나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에서는 각각 Pékin, Peking, Pekín(Pequín) 등 우정식 병음에 기초한 표기가 좀 더 우세하다.
일본어에서는 페킨(ペキン)이라 읽는다. 우정식 병음 표기인 Peking을 옮긴 것이다. 그래서 실제 중국어 발음과도 괴리되고 일본 한자음과도 괴리된 발음이지만 관행으로 굳어져서 쓰이고 있다. 현재의 베이징이 아닌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다른 北京 또는 일반 명사로서 쓰는 北京의 경우 일본 한자 발음 그대로 ほっきょう(Hokkyō)라고 읽는다.
라틴어 이름이 별도로 있다. 페키눔(Pechinum)이 그것이다. 페키눔(Pekinum)은 페킨에 도시를 나타내는 어미 -um을 붙인 표기다. 또 하나의 라틴어인 순티에눔(Xuntienum)은 명나라·청나라 대 베이징이 속했던 행정구역명인 순천부(順天府)의 '순천[8]' 부분에서 유래한다. 과거에 순천이라는 말을 그대로 베이징을 가리키는 말로 쓰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순천'에 도시 어미 -um을 붙인 순티에눔(Xuntienum)이 베이징의 라틴어 표현 중 하나가 되었다.
중국 본토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중화민국(대만) 측에서는 공식적으로는 베이징(北京)을 베이핑(北平, 북평)으로 부르고 있다[9]. 베이핑(북평)은 베이징의 옛 이름으로 중화민국이 대륙을 지배하던 시절(1928년 이후)에는 수도가 난징이고, 베이징은 민국 정부가 적대하는 북양군벌의 본거지라고 수도 경(京)자를 쓰지 못하게 해 베이핑이라는 이름을 썼고 1949년 국공내전 이후로도 바꾸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명목상으로만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는 대부분의 대만인들도 베이징이라 부른다. 과거 한국에서도 언론사들이 북경과 북평을 혼용했으나 1972년 이후로 더 이상 북평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1992년 한중수교 후 원어 발음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냥 우리가 알듯 베이징이라 부른다.

3. 특권


아직까지 정치체제로 일당제를 유지하는 국가답게 베이징은 정치적으로 굉장히 중요하다. 같은 일당제 국가인 베트남하노이를 중요시하듯 중국도 베이징을 중요시한다.
과거에는 북한평양처럼 '''출신 성분이 좋은 사람들만 거주가 허가'''된 적이 있기 때문에 베이징 시민이라는 것 자체로 자부심을 갖는 사람이 많다. 매체에서는 베이징 후커우[10]로 누릴 수 있는 복리 혜택 가치가 100만 위안[11]이 넘는다고 보도할 만큼 베이징 후커우를 갖고 있다는 건 특혜를 받는 신분 계급의 상징이며 심지어 '귀족 신분증'으로 불릴 정도였다.
중국의 후커우 제도는 무척 엄격한데 그중에서도 수도 베이징의 후커우는 취득하기가 매우 까다롭고 어려웠기 때문에, 중국인들에게 베이징 출신은 선망과 부러움의 대상이다. 베이징에 가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사판 인부, 건물 경비원, 청소부, 파출부[12] 등의 단순 노동직 종사자 중에는 베이징 출신이 많이 없다. 대부분이 타 지방에서 돈 벌러 온 사람들. 베이징 출신이거나 베이징 거주가 허가된 사람들은 그런 일에는 거의 종사하지 않는다. 다만 집 1채씩 가지고도 그냥 건물 청소하는 사람들도 은근히 많다. 완벽한 베이징어를 사용하면서 청소하는 사람들의 경우, 말을 걸어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내가 산 집이 어디에 있는데 지금은 얼마더라"라는 말을 하곤 한다. #베이징 후커우에 대한 자세한 설명 관련 기사
후커우로 인한 베이징 시민과 외지인 사이의 극심한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중국 정부는 지속적으로 베이징 후커우의 혜택을 축소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앞으로 후커우의 위세가 낮아질 것으로 보이고 점차 내려가고 있다. 정확히는 후커우의 혜택을 줄이면서 외지인도 거주 허가를 받는 경우 베이징 시민과 비슷한 혜택을 주는 정책도 같이 사용한다. 현재 가장 후커우를 얻기 쉬운 방법은 개발 중인 몇몇 베이징 외곽지역의 집을 취득하는 것이다. 베이징이라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살지도 않을 거면서 지방 부자들이 후커우를 얻기 위해 집을 사는 경우도 은근 많다. 베이징 땅값이 잘 안 떨어지는 이유이다.
단 베이징 후커우를 가진 사람 중 비교적 잘 사는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과거만큼 후커우가 초상위계층을 말하진 않는다. 그리고 앞으로 이러한 구분도 없앨 예정이다. # 그럼에도 아직은 후커우가 없다면 통계에서 베이징시 시민으로 집계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베이징 호적을 갖고 있지 않은 하층계급(低端人口) 사람들이 모여있는 슬럼이 문제가 되어서 베이징시 전체에 지령을 내려 집을 아예 불도저로 밀어버린다든가 합법적으로 빌릴 수 있는 아파트의 가격을 갑자기 확 올리는 등의 방식으로 완전히 쫓아내버렸다. 그리고 간판들을 국가차원에서 모두 떼어가버려서 도시경관이 굉장히 깨끗해진 건 덤이다. 기사.

4. 땅값


땅값이 비싼 걸로 홍콩을 제외하고는 최대도시 상하이와 정치수도 베이징이 세계 최고라고 불릴 정도로 악명이 높아졌다.[13]
거주시설은 그나마 조금 덜 비싸지만 회사나 가게 등의 상용시설은 가차없다. 상용시설의 경우, 외곽지역이라 할 수 있는 5환 지역들 가격조차도 한국의 3대 상권이라는 홍대거리 및 그 주변보다 비싸다. 거주시설의 경우 월세가 최소 몇 백만원부터 시작해서 최대 몇 천만 원까지 수두룩하며, 아파트는 중심부도 아닌 4환 지역 아파트 1채 가격으로 서울의 강남 아파트 1~2채는 살 수 있다[14].
이렇다보니 중심 지역인 2환, 3환[15]의 땅값은 얼마를 상상하건 그 이상이며 차라리 모르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지경(…)이다.
다만 살인적인 집 값에 비하면 월세가 신기하게도 싼 편이긴 하다.
어찌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중국의 평균적인 노동자가 330여 년(...)을 한 푼도 안 쓰고(...) 일해야 집 1채를 살 수 있는 베이징에서 월세까지 올린다는 건 다 같이 죽자는 얘기밖에 안 된다. 물론 어디까지나 집값에 '비해서는' 월세가 싸단 얘기고, 왕징 같은 한국인 거주구역은 방 2-3개짜리 가족 단위 아파트 월세가 2-300만 원은 가뿐히 넘어간다.[16] 이런데도 2016년만 해도 4월 말 기준으로 연초대비 이미 10% 이상은 올랐다.
그러다 보니 월세비를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지하방[17]에 세들어 사람들도 많은 편. 한국의 반지하옥탑방, 고시원 등과 비슷한데, 당연히 비좁고 환기가 안 되기 짝이 없기 때문에 주거 환경이 나쁘기로 악명이 자자하다. "지하방에서 몇년 살면 골병이 든다"라는 말이 나올 지경인 수준이다.

5. 역사


호모 에렉투스 베이징 원인의 흔적이 발견될 만큼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던 지역이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전국 7웅이었던 연나라의 도읍으로 이후로도 '연경(燕京)'이라 불렸다. 또한 계(薊)라고도 불렸다.[18] 그래서 북경 대표 맥주의 이름이 옌징맥주(燕京啤酒)이기도 하고, 장비가 만날 삼국지연의 소설 속에서 외쳐대는 말이 "나는 연인(燕京) 익덕 장비다! 싸우고 싶은 놈은 튀어나와라!"다. 스스로를 연나라, 즉 연 지방 사람으로 지칭했다는 말. 참고로 삼국지에서 유비의 사형으로 유명한 공손찬의 근거지가 바로 북평, 정확히는 우북평이다.
역사적으로도 중국 왕조들의 북방 요충지였으며, 전연, 후연, 북연 또한 베이징이 소속한 허베이성(河北省) 일대를 근거지로 하였다.[19]
수양제가 건설한 대운하의 북쪽 종점이자 고구려 원정에서 최후방 보급기지였던 탁군은 현재 베이징 근처였고, 당나라 대에는 북방 방위의 거점으로 중시되어 안사의 난에서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킨 범양 또한 현재의 베이징 근처에 있다.
거란이 세운 요나라 때에는 남경석진부로 불리는 행정중심지였다. 요나라의 도읍은 요서 쪽의 상경이었으며 남경은 주로 한족들이 살았다.
그러나 본격적인 수도로서의 역사는 중흥대흥부라는 이름으로 불린 여진족 완안부 금나라 때부터이다.[20]
그리고 금나라서하를 멸망시키고 북중국에 들어선 키아트부 몽골족원나라 역시 이 근처에 수도를 정하고 '대도(大都)', '칸 발리크'라고 불렀는데, 이민족 왕조이지만 이로서 베이징은 처음으로 통일 왕조의 수도가 된다. 그러나 이후 한족들의 반란, 특히 주원장명나라에 밀려 원은 점점 후퇴하고 도시의 이름은 북평부가 되어 연왕부가 설치된다. 참고로 자금성 중 우리가 흔히 자금성으로 아는 명대 자금성이 아닌 원대 자금성은 현재 북해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으며, 티베트 불교 식 백탑이 떡하니 서 있어서 금방 알아볼 수 있다.[21] 애석하게 한국에서 출발하는 패키지 상품에선 잘 안 간다..
최초로 이곳에 도읍한 한족 통일 왕조는 명나라인데, 건문제몰아내고 황제가 된 영락제가 연왕 시절 정치적 기반으로 삼았던 곳이기 때문에 명은 수도를 남경에서 이곳으로 옮기고 자금성도 이때 조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자성의 난으로 명이 멸망한 이후에도 만주족 청나라가 도읍을 선양시에서 옮겨와 그대로 수도가 되었고,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난 뒤 중화민국 북양정부도 여기에 자리잡았다.
처음에 위안스카이가 이곳에서 대총통에 취임했으며 이어 안휘군벌의 수령 돤치루이의 지배를 받았고 1920년 안직전쟁 이후 차오쿤, 우페이푸직예군벌이 중앙정부와 베이징을 차지했다. 1924년 2차 직봉전쟁펑위샹북경정변을 일으킴에 따라 관내진출을 단행한 봉천군벌 장쭤린의 지배 하에 들어갔다.[22]
그런데 1926년 장제스중국 국민당국민당의 1차 북벌을 선포하면서 북양정부국민정부 사이의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1928년 국민당의 2차 북벌이 시작되자 북양정부는 베이징에서 철수했고 국민정부가 베이징을 점령했다. 이후 북방을 평정했다는 뜻으로 베이핑(北平)으로 다시 격하되었다.[23] 북양정부는 황고둔 사건으로 장쭤린이 암살당한 후 장쭤린의 뒤를 이은 장쉐량동북역치를 통해 국민정부에 합류하기로 정함에 따라 소멸되었고 이때부터 중국의 수도는 난징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1933년 열하사변이 발생함에 따라 코앞까지 일본군이 들이닥치게 되었고 1937년 루거우차오 사건을 빌미로 중일전쟁이 발생하자 베이핑-톈진 전투일본 제국에게 점령당해 8년 간 일본 제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일제가 패망하면서 중화민국에게 반환되었다.
1946년 국공내전이 재개된 이후 화북토비총사령관 푸쭤이가 투항을 결정하면서 공산군에게 무혈점령되었고, 최종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가 되어 베이징으로 이름이 돌아와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1989년 6월 민주항쟁인 천안문 사태가 일어났던 천안문광장이 이곳에 있고, 2008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그 후 올림픽을 계기로 건설붐이 일어 도시가 대규모로 정비되고 있다.
이름답게 중국 기준에서는 북쪽, 특히 북동쪽에 있다. 이전 중국 왕조의 수도였던 뤄양이나 시안에 비하면 정말 눈에 띈다.
이는 중국의 농경상 변화에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24], 이 때문에 만주몽골계 왕조의 공격을 자주 받은 곳이기도 하다.
고구려 또한 전성기에 일시적으로 이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했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25]
금나라, 원나라는 아예 이 곳에 도읍을 정했다. 오고타이 칸이 금을 멸망시킨 후 이 곳의 이름을 중도에서 '''위대한 도읍'''이라는 뜻의 대도(大都)로 개칭했으며 이후 중국 대륙 전체를 통일한 쿠빌라이 칸이 국호를 원(元)이라 하여 중국 천자임을 선포하면서 대도를 수도로 삼으면서 개발이 대거 시작되었다. 지금도 몽골어에서 유래한 지명들이 곳곳에 남아 있으며, 티베트 불교 교세도 강한 편이다.

6. 자연 환경과 기후


위도는 북위40도로 평양보다 고위도이고 함흥시와 비슷하며 미국필라델피아, 터키앙카라와 동위도에 있다. 이 중 앙카라와는 기후도 비슷하다.

내몽골 고비 사막이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황사의 피해가 심한 편이다.
기후냉대동계건조기후 (Dwa)에 해당하여 일단 여름에는 엄청 덥고 비가 내리며 겨울에는 엄청 춥고 건조하며 바람도 강하다. 냉대 기후와 건조기후 중간에 있다고 봐도 되며 사실상 스텝기후다.[26]
위키피디아에 있는 1981년-2010년 기준 최한월 1월의 평균 기온은 -3.1도이다.[27][28], 최난월 7월 평균 기온은 26.7도이며, 연 평균 기온은 13.2도로 숫자만으로는 한국의 남부 내륙지역과 비슷하다.
21세기 들어 가장 심한 한파는 2021년 1월 7일의 '''-19.7°C'''이고, 그 다음에는 2016년 1월 23일, 영하 '''17.4도'''였으며 최고기온은 '''-11도'''에 불과했다.[29]
폭염은 더 심한데 5월부터 폭염 수준 더위가 찾아오기 시작하고 한여름엔 40도 이상 올라가기도 한다. 2017년 7월 14일 아프리카에서 온 관광객이 베이징의 더위에 탈진한 일도 있었는데, 당시 온도계는 무려 '''42.5도'''를 나타냈다.[30][31] 다만 여름에 끈적이는 습기는 없어서 견딜 만한 편이다.
1951년 이후 기록된 역대 최저기온은 -27.4도 이며 역대 최고기온은 41.9도 이다.물론 이는 베이징 시내 중심부의 기온이며 외곽 지역인 화이러우구 등은 겨울철 영하 30도까지도 떨어지는 등 기온편차가 심하다. 이는 도심 열섬현상이 원인으로 보인다.
즉 겨울에 확실히 서울보다는 추우며 여름은 서울보다 덥다.
연간 강우량은 500~700㎜이다. 생장기의 농업용수 수요치는 200~300㎜가 부족하다. 재해성기후로 남부는 가뭄과 황사 등이 많이 발생하는 편이고, 서북쪽 산간지역은 여름에 흙·모래·돌이 섞인 물사태가 쉽게 발생한다.
겨울에 춥지만[32] '''눈이 아예 안 오며[33]''' 차량 통행도 많은 데다 베이징 외곽에 잔뜩 자리한 공장들로 인한 대기오염이 심각하다. 황사와 대기오염 때문에 공기가 매우 안 좋으며, 이곳의 공기에 비한다면 서울의 공기는 훨씬 나은 편이다.
다음은 대망의 스모그. 초미세 먼지 농도에 대한 자료이다. #세계 주요도시 초미세 먼지 농도 ...그리고 베이징 결국 2013년 1월에 들어 사상 최악의 스모그가 발생해 베이징을 뒤덮었다. 스모그가 뒤덮었다지만 사진만 보면 안개로 뒤덮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미묘.[34] 이 대기오염 등이 문제로 지적되자 2008 베이징 올림픽 때에는 아예 '''올림픽 기간 동안 베이징 근교 공장 올 스톱'''이라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어쩌겠는가, 정부에서 닫으라는데... 덕분에 공장 노동자들은 '''8월 내내 유급휴가를 받았다.'''[35] 현재는 '''정상회담/엑스포 등 국가 중요 행사가 열리면 닫아라 공장을 시전한다.[36]'''
베이징을 여행할 때 혹시 모르니 민감한 사람이면 상당히 고생할 수 있으므로 마스크는 필히 챙겨가자. 3M 9001 마스크가 현지인들 사이에도 제일 인기있다.
베이징 어학연수를 가는 사람들이라면 단기[37]라도 공기청정기, 못해도 필터 달린 마스크는 꼭 구비해 놓도록 하자. 장난이 아니라 돈 아낀다고 둘 다 안 샀다가 기침하면서 피 나온 경우도 직접 봤다.
한 가지 팁이라면 대기오염의 주 원인 중 하나가 보일러를 땔 때 쓰이는 저퀄리티의 석탄이다. 보일러를 때기 시작하는 11월 중순 쯤이다. 공산국가답게 도시 전체 단위로 중앙난방을 하여 도시 모든 시설이 다 같은 시기[38]에 보일러를 틀게 된다.[39]
그래서 대기오염을 피하고 싶다면 여름학기에 가는 것이 좋다. 참고로 중국은 냉방비가 우리나라에 비해 넘사벽으로 저렴하다. 풍부하다 못해 넘쳐흐르는 원자력 발전소들 덕분이다. 게다가 중국은 한국, 일본과 달리 탈원전 이슈도 없어 원전을 마구마구 돌리니 전기값이 싸질 수밖에 없다. 싼샤 댐 등 중국 내 대형 댐에서의 수력발전 비중도 높다. 거기에 베이징의 여름은 서울이나 도쿄와 달리 건조한 편이라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해진다.
그리고 2016년 12월부로 석탄 보일러가 금지[40]되면서 현재 스모그는 차차 나아지고 있지만, 그래도 초미세먼지 농도가 100이 넘어가면 마스크를 쓰는것이 낫다.
거기다가 베이징시 당국에서는 2018년 춘절 기간부터 '''5환 도로 이내 지역에 모든 폭죽놀이를 금지시켰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한해서는 개/폐막식장만 일시로 풀어줄 듯하다. 사실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 새해만 되면 폭죽소리로 잠을 설치는 사람들이 널렸다(...)
그런데 겨울도 겨울 나름이다. 난방을 하긴 하지만 대륙성 기후의 엄청난 한겨울 추위로 인하여 상상 이상의 칼바람이 몰아닥치는데[41] 이 바람이 계속 불어서 미세먼지를 공기 중에 모이기도 전에 다 날려버린다. 특히 중앙난방을 시행하는 아파트는 중앙난방기간이 아닌 3월 초에 실내가 매우 춥다.
그러나 2018년 미중 무역 전쟁의 영향으로 중국 정부가 지역 가리지 않고 공장을 풀가동시키기 시작했기 때문에 결국에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안습. 그 와중에도 베이징만은 대기오염에서 지켜내려고 별짓 다하는 중이다. 심지어 차량 상태가 안 좋은 어느 노선은 '''폐선시켰다.''' 이외에도 전기버스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버스를 T-34마냥 대량으로 찍어내서 멀쩡한 차들마저도 전기차로 바꿔버리는 대륙의 기상을 보이고 있다.
이렇다 보니 냉대기후임에도 '''눈 보는게 평생 소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숱하게 볼 수 있다. 그리고 눈이 오면 '''서설(瑞雪)'''이라 하여 복권에라도 당첨된 듯한 표정을 보인다. 참고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해 취소선 드립이 있었는데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제주도와 기후가 비슷한(...) 소치에서 문제없이 잘만 시행된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별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소치의 경우처럼 대부분 실내경기이고 스키장 등은 헤이룽장성지린성에 많은 스키장들을 이용하면 된다.

7. 행정구역



[image]
영어 위키백과에서 북경의 행정구역 보기
16개의 구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베이징 이환로(二环路) 내의 둥청(东城), 시청(西城) 이 2개의 구역은 전통적으로 내성구(内城区)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특별시 행정구역 내에서도 중심인 사대문안과 비슷한 포지션이다. 실제로 2환은 구 베이징 성곽과 해자를 따라 건설된 순환로이다. 참고로 1환은 자금성(청나라 당시에는 내성이었던) 둘레 성벽으로 본다.
계획 중인 베이징시 구역의 범위는 베이징 오환로 내외다.
근래에는 진행이 빠르게 발전하여 도시화가 진전되고 있다. 또한 몇몇 근교의 현이 구로 바뀌기 시작해 2020년 기준으로 현은 모두 사라진 상태다. 과거엔 퉁현 등이 있었으나 모두 구로 승격되었다. 지도에 보이는 옌칭현은 미윈현은 모두 구로 전환되었다.
보다시피 베이징의 구들은 전부다 인구가 어마어마하다. 특히 베이징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구인 차오양구는 2010년 기준으로 무려 354만 명[42]이 넘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대륙의 스케일을 보여주고 있다. 이 말고도 하이뎬구도 인구가 300만이 훌쩍넘어서 이 2개 구 인구수만 합하더라도 거의 700만 명에 육박한다.
물론 이 통계자료도 2010년 총인구조사 자료를 참조한 것이여서 현재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것이다. 그나마 구 가운데 인구가 가장 적은 옌칭구 또한 30만명이 넘는 수준으로, 한국 광역시 자치구로 치면 중급규모는 되는 정도다.
때문에 베이징은 정치, 문화 중심의 정립, 공업 중심 도시로 점차 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둥청(东城), 시청(西城), 차오양(朝阳), 펑타이(丰台), 스징산(石景山), 하이뎬(海淀)의 6개 구는 도심 지역으로 여겨진다. 베이징 16개 구의 전반적인 개황은 아래와 같다.
한국어
중국어
인구(2010)
면적(km²)
둥청구
东城区
919,000
42.0
시청구
西城区
1,243,000
51.0
스징산구
石景山区
616,000
89.8
차오양구
朝阳区
3,545,000
470.8
펑타이구
丰台区
2,112,000
304.2
하이뎬구
海淀区
3,281,000
426.0
다싱구
大兴区
1,365,000
1,012.0
먼터우거우구
门头沟区
290,000
1,331.3
순이구
顺义区
877,000
980.0
창핑구
昌平区
1,661,000
1,430.0
퉁저우구
通州区
1,184,000
870.0
팡산구
房山区
814,000
1,866.7
핑구구
平谷区
416,000
1,075.0
화이러우구
怀柔区
373,000
2,557.3
미윈구
密云区
468,000
2,335.6
옌칭구
延庆区
317,000
1,980.0

8. 교통


베이징 지하철베이징 버스 등이 대중교통으로 운행 중이다. 항목 참조.
[image]
5환로까지 표기되어 있다.
천안문 광장을 중심으로 시내를 원형으로 도는 도로들이 있다. 삼환로(三环路, 싼환루), 사환로(四环路, 쓰환루), 오환로(五环路, 우환루), 육환로(六环路, 리우환루)라고 부르는 도로들인데, 이 도로들을 경계로 베이징시내를 이환(二环, 얼환) ~ 육환(六环)으로 나눠 부르기도 한다. 보통 베이징에서 도심이라고 부르는 건 사환(四环)까지로, 이 밖인 오환~육환은 사실상 외곽 취급. 위치마다 조금씩 달라지지만 자금성을 기점으로 직선거리상 2환로는 약 3~5km, 3환로는 약 6~8km, 4환로는 약 10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외곽의 5환로는 15km, 6환로는 25km 정도 떨어져 있다.[43]
  • 2환: 삼환로 안쪽을 일컫는다. 어째서 1환이 아니냐면, 1환은 자금성 쪽을 가리키는 걸로 치기 때문.[44] 3환로가 제일 먼저 지어졌고, 그 안에 지어졌기 때문에 2환로가 되었다. 2환로 내에는 중국 공산당 당사가 있는 관계로 베이징시 등록 차량[45]이나 외교관 차량, 군 차량을 제외한 모든 차량의 출입이 금지되어있다.[46][47] 2환로 순환 버스로 200번이 있다.
  • 3환: 삼환로 ~ 사환로 사이의 구역. 남부 지역은 여기까지 시내로 쳐준다. 3환로 내의 구역은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만 타지역 차량의 통행이 허용된다. 그러니 오후 8시 이전에 이에 해당하는 차량은 다 나가야 한다. 더해서 일체의 경적이 금지되어있다. 300번이 이 도로 순환버스이다.
  • 4환: 사환로 ~ 오환로 사이의 구역. 한국 사람이 많이 사는 동네인 왕징(望京)은 이 4환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참고로 중국인에게 4환 안에 산다고 말하면 그 당사자를 정말 부자 내지 권력자로 생각할 것이다.[48] 4환구역까지는 2018년 춘절부터 춘절 폭죽이 금지되었다.[49] 400번이 이 도로를 순환한다.
  • 5환: 오환로 ~ 육환로 사이의 구역.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이 이 쪽에 자리하고 있다. 이쯤 되면 점점 베이징이라도 중국 시골 농촌 풍경과 소규모 읍내 같은 풍경이 섞여 있고, 가로수 밑둥에 흰색 페인트칠(...) 을 해서 가드레일 역할을 하는 중국 특유의 풍경도 나타난다. 다만 중국/경제가 어지간히 발전하면서 웬만한 길은 포장과 회전교차로 등이 완비되어 있는 상태. 한국 관광객들 우르르 몰고 가서 현지 업체가 뭐 사라고 쇼핑시키는 창고가 대개 이쯤에 있다(...)
  • 6환: 육환로 너머. 이쯤 되면 행정구역상 같은 베이징이라 해도 완전히 딴 동네다.[50]
  • : 공식 명칭은 수도지역순환고속공로(首都地区环线高速公路)이며, 2016년 12월에 개통했다. 6환로 밖에 있다고 하여 7환로라는 별명이 붙여졌으나 정식 명칭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쪽은 아예 고속도로이므로 별개의 체계로 봐야 하고, 베이징 외곽 지역과 허베이성 장자커우시, 줘저우시, 랑팡시, 청더시를 잇는 도로이기 때문에 이 도로를 기준으로 어느 지역이 베이징 시내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는지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맨 윗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베이징은 하루 중 대부분 시간대에 극심한 교통체증에 시달린다. 1990년대까지는 소득수준이 낮아 자전거를 타는게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흔히 생각하는 교통체증은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2000년대 들어와서는 차량의 수가 베이징의 도로망과 주차시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당국에서는 차량 5부제 시행, 출퇴근 시간대 혼잡 유발차량(트럭) 통행 제한, 타지 등록 차량의 출근시간대 통행 제한 등의 방법을 쓰고 있고 또한 교통체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노선이 2개 정도에 불과했던 베이징 지하철의 노선도 속속들이 늘어나 현재는 노선 수가 서울의 그것보다 더 많으며, 일 평균 510만 명에 총 노선 길이 442km의 크고 아름다운 규모를 자랑하며 현재도 건설중이다.
현재 북경공교집단에서 시내버스를 운영중이고, 미세먼지와의 전쟁의 일환으로 전기버스[51]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베이징 전역에서 1,000개 이상의 노선을 보유중이다. 베이징 버스 문서 참고. 새벽에 실내등 다 꺼놓고 시내도로에서 80km/h 이상의 질주를 벌이는 버스[52]가 종종 발견된다고 한다(...)[53]
베이징역베이징시역을 통해 중국 각지와 러시아, 몽골, 베트남, 북한으로 가는 국제열차가 운행한다.

9. 베이징의 코리아타운


중국의 수도인 만큼 많은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왕징(望京), 우다오커우(五道口)는 대표적인 코리아타운으로 불린다. 우다오커우에는 다른 외국인들이 보기에는 한국인이 중국인보다 많다는 느낌도 든다고 할 정도.

9.1. 우다오커우(五道口)


[image]
우다오커우의 거리
베이징대학을 비롯한 칭화대학, 베이징어언대학 등등 수많은 대학교들이 근처에 둘러쌓인 상권이며 한국식 한자 독음을 따라 '''오도구'''라고도 불린다.
지도에서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근처에 별별 대학들이 정말 많다. 한국인 고등학교 유학생들이 목표로 하는 대학이 많고[54], 입시에 성공한 대학 유학생들이 주변에 머물게 되면서 자연스레 유학생 가족들이 모여들어 차츰 코리아타운을 형성했다. 자녀들을 뒷바라지하러 왔다가 혼자 온 유학생들을 상대로 홈스테이 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러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인들이 조선족들과 합작하거나 혼자서 만든 여러 한국 식당, 술집, 노래방, 카페 등 편의시설이 많아서 베이징에 처음 온 유학생들이 놀기에 큰 불편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인들 사이에 사건사고도 많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중국어를 배우러 어학연수오는 여러 외국인들이 많아서 그런지 서울이태원동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상술한 바와 같이 주변에 대학들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한국과는 다르게 중국은 밤 늦게까지 술 먹을 곳이 별로 없기 때문에 밤에 나가서 놀고 싶은 외국 유학생들에겐 유일한 선택지이다.[55]
참고로 차량 유동량에 비해 도로가 좁아 저녁 시간만 되면 우다오커우역 사거리는 그야말로 헬게이트가 펼쳐진다(...)

9.2. 왕징(望京)


왕징(望京)에는 우다오커우보다 규모가 큰 코리아타운이 존재한다. 사실은 이쪽이 진정한 코리아타운에 가깝다.
한국인들이 왕징에 많이 살기 시작한 이유는 공항과 한국 대사관, 대부분의 한국 회사 사무실이 있는 량마챠오(亮马桥) 혹은 궈마오(国贸)와 가깝기 때문이다. 유학생들보다는 주로 가족 단위의 회사원, 주재원, 공무원들이 많이 산다.
부동산중개업소, 마트, 식당, 병원부터 주재원 자녀들이 다니는 학원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이나 조선족이 운영하는 가게들이 많아, 중국어를 하지 못해도 생활에 큰 불편함이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한국 프랜차이즈 식당들이 중국에 처음 들어오는 곳도 바로 여기다. 계획상으로는 다싱 국제공항이 개항하면 스카이팀을 보내버릴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대한항공과 현지 교민들에게 엄청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때마침 중국남방항공2019년 1월 1일부로 스카이팀 탈퇴를 선언하여 스카이팀을 다싱으로 보낼 계획이 크게 어그러짐과 동시에 원월드가 대신 다싱으로 가게 되면서 한숨 돌리게 되었다.
베이징에서 한국 음식을 먹는다면 왕징을 추천한다. 우다오커우에 비해 종류가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고 맛도 좋다.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 한국 음식 거의 대부분을 여기서도 먹을 수 있다. 맛도 외국에서 먹는 것을 감안하면 꽤나 괜찮은 편. 대부분 음식점들의 사장이 한국인이나 조선족이기 때문이다. 우다오커우의 한국 식당들은 왕징이 본점이고 우다오커우가 분점인 경우도 많고 아무래도 유학생들보다는 가족 단위의 주재원들이 경제사정이 좋기 때문에 이쪽이 시장 자체가 크다.
근처에 북한에서 운영하는 옥류관, 해당화, 삼송각, 대성산관 등도 있다. 가면 북한인 여성들이 주문을 받고 음식을 서빙한다. 종업원들은 대체로 평안도 사투리 억양을 사용한다. 서비스는 괜찮은 편이다. 물론 같은 한식이거니 해서 음식 맛을 기대하고 간다면 별로일 것이다. 왜냐면 현지 사람들의 입맛에 맞췄기 때문에 좀 느끼하고 짜다(...). 식당에서 공연도 하는데, 은근 볼만하다. 솔직히 음식보단 북한 노래를 부르는 공연을 보러 가는 사람들이 많다.
2016년에는 대북제재의 일환으로 해외 소재 북한 국영식당 이용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옥류관이나 삼송각 그리고 해당화 등과 같은 북한식당을 드나드는 남한 사람들이 적지 않고, 남측 관광객들이 정말 많이 간다. 가게 된다면 평양냉면은 꼭 맛보도록 하자. 더구나 2018년 3차례나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화해 무드가 조성되어 이젠 별 문제 없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왕징은 아직 미개발구역이었기 때문이 집값이 비싸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모여살기 시작하면서 개발이 시작되었고, 현재 왕징의 집값은 베이징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 지속적으로 비싸지고 있다. 한국인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상대적으로 중국 평균보다 수준 높은 편의시설 및 음식점, 가게들이 많기 때문. 이는 중국인들에게도 좋아 보이고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도 아직은 거주(住)할 만한 가격이다. 베이징 집값에 비해 월세는 그리 비싼 편이 아니라서 그렇다.
당연히 구매하려고 하면 엥간한 '''강남아파트 가격으로도 못 산다.''' 왕징뿐만이 아니라 베이징 5환 이내의 아파트나 집은 같은 평수라면 '''한국 어디를 팔아도 거의 못 사는 수준'''으로 비싸다. 일반적으로 왕징의 아파트 가격은 위치와 단지 규모에 차이가 있지만, 2017년 1월 기준 1㎡당 5만 RMB[56]에서 비싼곳은 10만 RMB[57] 정도 된다.[58]
'강남에 16억 넘기는 아파트 넘치는데 팔아도 못 산다고?' 라고 할 수 있겠지만 중국인들을 기준으로 하면 그렇지 않다.[59]
신한은행#s-5.3,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지점도 있다. 한국어가 통하므로 편리하다. 단, 중국 현지법인이므로 한국에서 개설한 계좌를 이용한 거래는 할 수 없다.
한국 강남 이상으로 성매매 전단지를 흔히 볼 수 있다. 20대 초반의 시골에서 상경한 중국인 여성들이 영업한다. 물론 성병 위험도 있고 공안의 뜨끔한 맛을 보기 싫으면 안 하는 게 좋다.
왕징에서 2환로 내의 시내구간으로 직통하는 시내버스130, 132, 404, 409, 416, 421, 547, 567, 701, 966 등이 있다. 이중 시청구로 가는 차는 409와 701 둘뿐이다. 나머지는 130[60], 421[61], 547[62], 567[63] 등을 제외하고는 전부 둥즈먼역 착발이다.

10. 경제


[image]
▲ 2012년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조사한 세계 대도시권의 경제 규모에서 베이징은 GDP(국내총생산)가 4,272억 달러로 총 13위를 차지하였으며 워싱턴 D.C. 경제 규모와 비슷하다. 이 정도면 소위 중국의 경제수도라는 상하이와 비교해도 크게 뒤쳐지지 않는 경제력이라고 볼 수 있다.
수도이고 대도시이기 때문에 월급이 높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칭화대학 졸업에 고소득 전문직의 평균 월급이 130만원밖에 안 된다. 즉 그 이하의 수준의 대학을 졸업하는 사람은 월급이 더 적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월세는 비싸서 65만원을 내면 쓸 돈은 확 줄어든다.[64]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은 시민들의 월급 저축율이 높은 편이며, 베이징에서 거주할 때 적은 월급을 아끼고 아낀 베이징 시민들이 대한민국, 일본, 홍콩 등으로 여행가서는 화장품이나 옷을 구입하는데 돈을 다 쓰는 편이다. 유커들의 화끈한 소비가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심지어 여행갈 때 대출을 받은 돈을 사용하기도 한다.

11. 문화


베이징 경극은 남방경극과 대비되는 중국 유수의 전통을 자랑한다. 베이징 경극은 노래와 대화, 몸짓, 움직임, 싸움, 그리고 곡예와 같이 요약된 행동의 연속의 조합을 통해서 공연된다.
예로부터 중국 교육의 중심지였으며 한국 유학생들의 목표인 베이징대학, 칭화대학, 중국인민대를 비롯하여 어학연수로 유명한 북경어언대, 북경사범대학 등 유수의 대학들이 존재하고 있는 곳이다.

11.1. 요리



이곳은 역사적으로 문화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궁중요리와 귀족의 요리가 발달했다. 청나라가 세워진 후 한족의 전통음식과 결합되어 만한전석이라는 유명한 요리를 낳았고 그 외 유명한 요리로는 북경 오리 구이(베이징 카오야, 北京烤鸭)가 있다. 또 외부 유입이 많은 만큼 다양한 지방의 요리를 맛볼 수도 있다. 베이징이 세계적 대도시로 떠오르고 나서는,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유명 셰프들의 음식점이나 세계 각국의 음식점들이 많아지고 있다. 돈만 있다면 다른 나라 음식을 즐기기에는 서울보다는 베이징이 낫다.

12. 베이징 성


[image]
지도의 빨간 줄이 성벽이다.
[image]
1915년에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사진. 흑백사진에 채색한 것이다.
베이징에는 궁궐인 자금성 외에도 서울한양 성곽과 같은 대규모 성벽이 있었다. 둘레 23km의 내성[65], 내성 남쪽 둘레 14km의 외성, 그리고 둘레 9km의 황성이 명나라청나라를 거치며 지어졌다. 또한 47개의 성문과 전루 및 각루가 있었다.
전체적인 모양이 (...)인데, 영락제 때 만든 베이징 성은 내성만 있었다. 외성이 축조된 건 가정제 때. 그런데 외성 공사가 진행되자 내성 바깥을 전부 감싸려면 공사비가 너무 많이 소모된다는 계산이 나왔고, 결국 외성의 성벽을 내성 남쪽과 연결시켜 마무리지었다. 이 때문에 평면 형태가 모자처럼 생겼다 해서 속칭 '모자성'이라고도 불렸다.
지금은 정양문과 덕승문의 전루, 그리고 동남각루 등 고작 3개와 2군데 수백m의 성벽 잔해가 남아 있을 뿐이다. 성벽이 있던 자리에 대신 들어선 것은 큰 규모의 도로들과 그리고 전국에서 처음 건설한 베이징 지하철이다. 현대의 베이징 사진을 보면 성벽이 있던 자리 그대로 도로가 된 것을 알 수 있다.사진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따져보려면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당시 막 중국을 장악한 중국 공산당과 베이징의 시민들은 1950년부터 베이징성의 해체를 두고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해체와 보존 두 파로 나뉘었지만, 이 유구한 성을 그저 계급과 압제의 잔재로만 보는 원리주의자들의 세력이 압도적으로 강했다. 심지어는 보존파가 하다못해 해체하기 전에 사진촬영과 설계도를 만들려고 하였으나 그마저도 이루지 못했다.
숭문문, 서직문이 파괴되기 시작하자 보존파의 대표 량쓰청[66]은 공산당의 고위 관계자들에게 사정 사정해서 겨우 공사 보류 동의를 얻어 냈다. 그러나 이미 숭문문은 남은게 없었고, 남은 게 좀 있던 서직문은 불과 10년 뒤 문화대혁명 와중에 마저 파괴된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 더 이상 베이징 성의 파괴를 막을 수 없게 되었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된지 1년 뒤인 1967년부터 서직문이 결국 해체됐고, 이어 안정문, 조양문, 영정문 등이 사라져 갔다. 1969년부터는 "방공호를 파라"는 마오쩌둥의 명령으로 성벽 하부 허물기가 시작됐다. 모든 베이징시민들이 베이징 성의 벽돌을 파해치고 방공호를 짓기 위해 들고가기 시작했다. 량쓰청은 성벽의 해체에는 83년이란 세월이 걸릴 것이라 생각하고 시간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인해전술에는 무력했다. 베이징의 모든 사람들이 불과 5~6년 만에 성벽을 모두 무너뜨리면서, 중국에서 가장 큰 도시 성벽이었던 베이징 성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현재는 철거된 외성터에는 베이징시 제2환도로가 생겼고 내성터에는 베이징 지하철 2호선이 자리를 잡았다. 외성 성곽 자리는 제3순환로가 생겼고 그 서부 일부구간과 동부구간 지하에 베이징 지하철 10호선이 들어섰다. 베이징 지하철 10호선의 북부구간에는 성이 있었긴 한데 문화대혁명 때 부서진 베이징 성이 아닌 원나라시절 베이징성이었다. 10호선 북부구간에서 좀 남쪽에 제3순환로가 있는데,그곳이 문화대혁명 중 부서진 베이징 성이었다고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그리고 베이징 지하철 10호선은 베이징 지하철 중 이용객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10년 후에 중국은 예산을 써서 시안 등에 남아있는 성벽을 보수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2012년에는 량쓰청의 집도 헐리고 말았다. 기사
김홍도의 그림인 연행도 등에서도 베이징 성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13. 교육


수도인만큼 대학이 엄청 많다.
  • 칭화대학 (淸華大學)[67]
  • 베이징대학 (北京大學)[68]
  • 중국인민대학 (中國人民大學)
  • 베이징외국어대학 (北京外國語大學)
  • 베이징사범대학 (北京師範大學)[69]
  • 베이징항공항천대학 (北京航空航天大學)
  • 베이징어언대학 (北京語言大學)
  • 베이징공업대학 (北京工業大學)
  • 베이징이공대학 (北京理工大學)
  • 베이징화공대학 (北京化工大學)
  • 베이징우전대학 (北京郵電大學)
  • 대외경제무역대학 (對外經濟貿易大學)
  • 중국전매대학 (中國傳媒大學)
  • 중앙민족대학 (中央民族大學)
  • 중국광업대학 (中國礦業大學)
  • 중앙재경대학 (中央財經大學)
  • 중국정법대학 (中國政法大學)
  • 중국석유대학 (中國石油大學)
  • 중앙음악학원 (中央音樂學院)
  • 베이징체육대학 (北京體育大學)
  • 베이징교통대학 (北京交通大學)
  • 베이징과기대학 (北京科技大學)
  • 베이징임업대학 (北京林業大學)
  • 중국농업대학 (中國農業大學)
  • 베이징중의약대학 (北京中醫藥大學)
  • 허베이전력대학 (華北電力大學)
  • 중국지질대학 (中國地質大學)
  • 수도사범대학 (首都师范大学)

14. 베이징의 랜드마크



14.1. 유네스코 세계유산


둥청구에 있는 천단중국 황제가 풍작을 위해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곳으로, 면적은 자금성의 4배에 달한다. 제사용 제단인 원구단은 한국의 사직단과 유사하며, 원구단의 북쪽에는 사진으로 흔히 볼 수 있는 둥근 고깔 모양의 황궁우 건물도 있다. 물론 대륙의 기상(...)답게 서울의 원구단에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크다. 기단만 5층에 달할 정도이다. 원구단과 황궁우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면적은 보통의 공원 같은 모습. 이 곳에 있는 기년전은 은련카드 뒷면 홀로그램의 모델이다. 참고로 황궁우 앞에 있는 제단에는 천자의 기를 받기 위한 관광객들이 언제나 길게 줄지어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물론 베이징에서 볼 수 있는 건 팔달령(八達嶺, 빠다링) 능선 부분같은 극히 일부다. 거용관, 팔달령 코스가 잘 개발되어 있다.
  • 명십삼릉
명나라 황제들의 무덤군. 베이징 외곽에 있다. 중국에서 규모가 제일 크고 가장 많은 황제의 무덤이 몰려 있는 곳. 이 중 장릉의 능은전은 태화전에 버금가는 크기의 건물로 유명하다. 60개의 커다란 녹나무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14.2. 기타


  • 노동인민문화궁전
본래 한국의 종묘와 유사한 태묘 건물이었지만, 근대 이후 노동인민문화궁전으로 개칭되었다. 태묘의 중심인 전전(前殿)은 자금성의 정전인 태화전보다는 다소 작고 단이 낮지만 크기가 거의 맞먹는 큰 건물이다. 최상급 목재인 녹나무과의 금사남목 기둥 68개로 만들어져 있다. 천안문 바로 오른편에 있지만, 웬만한 관광객들은 잘 가지 않아 한적한 편. 전전 안은 입장 가능하지만 건물만 덩그러니 있는 수준이고 다소 비싸다.
천안문서역과 천안문동역 모두 접근이 용이하지만 비교적 동역이 더 편하다. 이는 자금성도 마찬가지. 거의 중국여행의 필수요소로 꼽힐만큼 유명하다. 때문에 테러위협에 항시 노출된 것이나 다름이 없어서, 광장에 가거나, 천안문에 직접 올라가거나[70], 좀 더 깊숙히 들어가려면 공항 검색대 비슷한 짐 검사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더듬더듬 거리는 몸수색 도중에 돌라고는 하는데 중국어를 모르면 꽤나 까다롭다. 다행히도 못 알아먹으면 영어로 돌라고 하긴 하는데, 그 전에 눈치껏 돌도록 하자. 1989년 이곳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수많은 대학생들과 시민들중국 인민해방군의 탱크와 총탄에 살해당해 시체가 곳곳에 널부러진 곳이기도 하다.
  • 왕푸징(王府井) 거리
자금성 동남쪽에 위치한 번화가로, 유럽식 성당이나 큰 쇼핑몰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관광객들이 경악하는 것은 전갈이나 해마 등을 가지고 만든 꼬치 노점상들이다. 가끔 "이거시 중국 음식이다!" 하면서 도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이건 현지인들도 신기해하는 별종 중의 별종(...).[71] 그러니 꼭 먹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지는 말자. 구경하는 것은 좋지만 사실 관광화가 지나치게 된 왕푸징 거리의 음식들은 그다지 가성비가 좋은 것은 아니며, 입구 쪽은 그냥 비싸고 출구 쪽은 사기꾼에 가까운 바가지 상술이 판을 치기 때문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중국어를 모른다면 그냥 구경만 하거나 경험 삼아 사가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정확히 가격이 고지된 꼬치 정도만 먹고 오는 게 좋다. 어설프게 한국어를 하면서 오라고 유혹하는 상인들이 많은데 그들은 한국에 관심 있어서 그런 말 하는 게 아니니 아예 그런 집은 상대하지 않는 것이 이롭다. 중간중간에 파란색 쓰레기통이 있으니, 기왕 버리리면 그곳에 정확히 넣고 오자. 그리고 왕푸징 거리를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여러 인물들의 초상화가 있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초상화도 볼 수 있다. 게다가 이곳 왕푸징 거리에는 5층 정도의 거대한 서점[72]이 있는데, 그 서점에는 동방 프로젝트 책이나 보컬로이드 등이 꽤 있다. 가장 위층에 가면 한 구석에 외롭게 있는 마법소녀 마도카 마키카의 DVD도 살 수 있다. 왕푸징거리 바로 옆에는 동방신천지라는 싱가포르계 백화점이 있다.[73]
여기서 항상 흘러나오는 2008 베이징 올림픽의 주제가인 北京欢迎你(베이징 환잉니, 베이징은 당신을 환영합니다)가 꽤 흥겨워서 저절로 흥얼거릴 수도 있다.
공장 지역이었으나, 공장을 이전하고 예술가들의 작업 및 전시공간으로 바뀐 곳이다. 왕징에서 가깝다. 달리 말하면 중심부에서 대중교통으로 가기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들러보면 베이징의 젊은이들이 많이 돌아다닌다. 주말에는 사람도 꽤 붐비니 놀러가려는 사람이면 참고할 것.
  • 싼리툰(퇄) 三里屯(儿)
한국의 청담동, 가로수길, 이태원동을 합쳐놓은 느낌의 곳. 상하이의 신천지와 비교되는 곳이다. 외국인도 많고 명품매장도 많고 쇼핑몰도 많다. 베이징에서 가장 유행에 민감한 장소. 이곳에 있는 클럽은 한국 연예인들이 필수로 들르는 곳이다. 특히나 YG 소속 가수들. 베이징의 잘 나간다는 여자 남자는 여기 다 있다. 물론 일부는 왕푸징에도 있다. 클럽 앞 람보르기니와 페라리 숫자에 입부터 벌어지는 곳이다. 왕푸징과 함께 중국 와서 함부로 돈자랑 하지 말라는 말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곳.
싼리툰에는 공인체육관 (北京工人体育馆) 라고 Mix, Vics 등 잘나가는 클럽들이 한 군데 모여있는 곳이 있는데 이 앞 주차장은 람보르기니와 페라리 등 정말 비싼 외제차들은 다 모여있는 곳이다. 물론 이곳뿐만 아니라 주변에도 클럽이 엄청 많이 있는데 호객 행위가 많이 이뤄지며 클럽이 끝나고 난 뒤에는 꽃을 들고 파는 상인을 많이 볼 수 있다.
하이뎬구에 위치한 궁궐. 부속 건물로 서양루가 있다. 하지만 보존 상태가 나쁘다 못해 거의 없는 거나 다름 없어서 대개 이화원 부속으로 들리는 편. 혹은 원명원 이웃동네인 칭화대학북경대학을 방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주의사항]
  • 룽칭샤 龙庆峡
한국어로 용경협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베이징으로부터 차로 1시간 30분쯤 걸리는 외곽 산 속에 있는 관광지이다. 원래 대약진운동 시절 베이징의 식수난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댐이었는데, 담수를 해 놓고 보니 주변 계곡 경관이 물과 잘 어우러져서[74] 유람선을 띄우고 관광지가 되었다. 유람선 투어 도중 계곡 한가운데 공중 까마득한 높이에서 줄타기 묘기를 보여주는 코스도 있으며, 한국인 대상으로는 주로 만리장성 투어 코스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많다.
냉전 시대에 지어진 방공호이다.
  • 난뤄구샹 南锣鼓巷
서울로 치면 종로 같은 곳이다. 북경의 옛거리 후통(胡同) 이 많고 전통 먹거리들이 많은 편이다. 걸어서 관광하려면 꽤 거리가 되는데 인력거를 통해 관광을 하게 되면 좀 더 편하게 해결할 수 있다.
  • 귀신거리 簋街
이 거리 특유의 스산함 때문에 귀신거리라고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기도 하고, 옛날엔 시신들을 담은 관을 이곳을 통해서 운반했기에 귀신거리라고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기도 한다. 그 이름처럼 이 거리엔 수십거리의 홍등이 달려있어서 조금 스산한 분위기를 내뿜는데, 북경의 먹자골목으로 알려져 있어서 현지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찾는 곳이다. 이곳의 명물은 마라롱샤 (麻辣龙虾, 매운 민물가재요리) 이니 매운 음식에 환장하는 위키러들은 한번 방문해 보도록 하자.
  • 만안 공동묘지 北京市万安公墓
천안문 사태 때 총에 맞거나 탱크에 깔려 죽은 사람들을 모아 만든 무덤이다.

15. 자매결연도시


서울특별시

15.1. 프라하 - 베이징 자매결연 단절


체코 수도 프라하시2016년 전임 시장이 맺었던 '''프라하 - 베이징 자매결연 관계를 3년만에 청산'''하기로 했다.
지난해인 2019년 당시 즈데네크 흐르지프(Zdeněk Hřib) 프라하시장은 '''강경 좌파 성향인 해적당 소속'''이었다. 그리고 즈데네크 흐르지프 시장은 대만에서 대학을 나온 대만 유학파 출신이다.
2018년 즈데네크 흐르지프가 프라하시장에 당선된 이후 베이징시한테 자매결연협정에 있는 "하나의 중국을 강요하는 조항"을 폐기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흐리브 프라하시장은 '''프라하 - 베이징 자매결연 자체를 끊어버렸다'''. 기사
참고로 체코 중앙정부는 중국의 맹방 중 하나로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여 대만과의 수교를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프라하시는 하나의 중국을 거부한 것이다.
2019년 10월 10일, 체코 수도 프라하하나의 중국을 거부하며 베이징과의 자매결연 관계를 단절한 것에 대해,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에서 프라하시를 비난했다. 기사
체코 프라하의 즈데네크 흐르지프 시장[75]하나의 중국을 거부하고, 친 대만, 친 티베트, 친 위구르, 친 홍콩 행보를 이어가면서 중국체코의 외교관계가 급격히 악화되기도 했다. 2020년 1월 6일, 중국은 체코로부터 여객 비행기를 사는 협약을 밀로시 제만 체코 대통령과 맺은 바 있는데, 즈데네크 흐르지프 프라하 시장의 반중 성향을 이유로 인수를 거부하고 있었다. 기사
이후 즈데네크 흐르지프 프라하 시장이 2020년 1월 타이베이와 자매결연을 맺어버렸다. 중국은 프라하 시장에 대한 보복으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유행 과정 중인 2020년 4월유럽에 지원단을 보냈는데, 이 때 체코만 쏙 빼고 유럽 지원단을 보내는 등 보복에 나섰다. 2020년 4월 말 중국산 마스크를 체코에 수출할 때, 친중 성향 밀로시 제만 체코 대통령한테 "중국을 찬양하는 시를 써서 중국에 바쳐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기사

16. 여담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이라는 게임에서 중국 미션 1에 이 도시에서 열병식을 거행하다, GLA가 테러를 감행하고 급기야 '''천안문에서 핵이 터지며 완전히 쑥대밭이 된다.''' 이 미션 때문에 중국의 제너럴 발매는 금지당했다.
언어유희로 "이 배가 베이징 가는 배이징?"이라는 드립도 있다. 하지만 베이징은 내륙도시로 배가 들어갈 수 없다. 다만 항구가 있는 가장 가까운 도시인 톈진은 고속열차로 30분 정도 걸린다. 이 정도 거리면 서울역-천안아산역 정도 거리밖에 안 되며, 실제로 톈진의 탕구항에서 배로 베이징을 오가도 된다.
참고로 최대도시로 경제수도이자 유명 항구도시인 상하이까지는 '''350km/h로 운행하는 고속열차로도 5시간 이상 소요된다. 이때 드는 비용은 한국 돈으로 아무리 싸봤자 최소 8만원[76]이 든다.'''
베이징발 괴담으로는 베이징 375번 버스 괴담이 있다. 이 덕에 베이징 버스 375베이징 버스 문서보다 먼저 생성되었다.
2022년 동계올림픽의 개최지로 선정되면서 하계올림픽 및 동계올림픽을 모두 유치한 도시가 되었다.
2013년 7월 1일부터 동성결혼 부부, 파트너와 외국인 동성부부를 포함해서 베이징에 등록하면 베이징 자치법에 따라 체류자격이 주어진다.
삼국지 시리즈에 등장하는 계라는 소도시는 지금의 베이징 시 서부 지역이다. 참고로 북평도 당연히 베이징 강역이다. 연나라 수도 연경 시대부터의 중심지는 북평 쪽이다. 삼국지 게임에서 북평이나 계는 위쪽에 처박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지13에서는 '하북지'란 소리가 나올 만큼 사기스러운 도시스펙을 갖고 있다. 실제 생산력이나 지형을 반영하면 더더욱 밸런스가 안 맞을 것이다(...)
보드 게임마르코 폴로의 발자취에서는 모든 플레이어들이 가야 할 사실상의 목표 도시가 된다. 베이징에 도착하면 의 선물을 받아 높은 승점을 획득하며, 게임 종료 시 상품을 승점으로 교환할 수 있는 혜택을 볼 수 있다. 또한, 이 게임에서 쿠빌라이 칸 캐릭터는 베이징을 출발 도시로 한다.
중화인민공화국 본토인 중국 대륙은 전부 한국인이 갈 때 비자가 필요한 지역이지만 다른 나라[77]와 함께 들르면 베이징 및 그 밖의 몇몇 도시들은 144시간 무비자 체류가 가능하다.
즉 외국 → 베이징 → 또 다른 외국을 모두 사전에 표를 구입한 항공편으로 이용한다면 베이징 수도 공항에서 입국 심사 때 베이징은 물론 톈진, 허베이성에서만 유효한 144시간 체류 허가 도장을 찍어준다. 물론 반대로 톈진이나 스자좡 공항에서도 같은 체류 허가를 받을 수 있으며 거기에서 베이징으로 올 수 있다.
중국/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양안관계홍콩-본토 관계 등을 거론할 때 '''중화인민공화국의 공산당 정권'''을 뭉뚱그려 '베이징'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주로 서구권 언론에서 많이 쓰는 표현이다.[78] 다음은 사용례.

"일국양제 존중과 민주화에 관한 홍콩 주민들의 요구가 거세지는 가운데, 전세계의 이목은 '''베이징'''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반중 성향의 차이잉원 총통이 재선에 성공함에 따라 '''타이페이'''와 '''베이징'''의 관계는 더욱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입니다."


17. 출신인물



18. 둘러보기




[1] 우리나라의 강원도 면적과 비슷하다.[2] 본래 부시장이었다.[3] 자금성의 정문은 오문(午門)이다. 하지만 베이징의 성은 바깥의 외성과 안쪽의 내성 그리고 황궁을 둘러싼 황성으로 나뉘었다. 천안문은 이 중 황성의 정문이다. 사실 우리가 자금성이라고 부르는 부분은 본래의 자금성, 황성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경복궁이 일제에 의헤 훼손이 가해진 것처럼 자금성도 중국 공산당 정부를 거치며 크게 훼손된 것이다. 그렇다고 천안문이 황성의 맨 앞에 있는 문은 또 아니었고 그 앞에도 대청문이라는 문이 또 있었다. 베이징성 내성의 정문은 천안문이 아니라 정양문이다.[4] 1912년~1928년, 즉 북양정부 시절[5] 베이징이 비정상적으로 크긴 하다. 그만큼 전체 평균 인구 밀도는 낮은데 서울특별시의 인구 밀도는 징그럽게 높아서 메갈로폴리스 중에서 서울보다 인구 밀도가 높은 곳은 인도델리, 뭄바이, 첸나이, 방글라데시다카, 파키스탄카라치, 인도네시아자카르타, 나이지리아라고스, 필리핀마닐라, 프랑스파리 같은 도시들이다. 여기 도시들은 1km²당 2만 명도 넘게 거주한다.[6] 동경(東京)[7] 영어 등 외국어에서 주로 사용한다[8] 順天, 현대 표준중국어의 한어병음 표기: Shùntiān, 웨이드-자일스 표기: Shun⁴-tʻien¹[9] 영어로는 Peking을 그냥 썼다. 1949년 당시 북평직할시는 면적 706㎢로, 서울보다 약간 큰 정도. 1980년대 이전의 신문기사를 검색해보면 중국을 중공 혹은 북평 정부라고 호칭했다.[10] 戶口, 한국주민등록증이나 대만의 국민등록에 해당된다.[11] 한화로는 약 2억 원 상당[12] 중국어로 阿姨(아줌마)로 불린다[13] 사실 홍콩은 전 세계 No.1을 달릴 정도로 넘사벽으로 비싸다. 그치만 평균적인 홍콩 시민의 소득과 베이징 시민의 소득 차이를 생각해보면 베이징의 땅값도 어마무시하다.[14] 2016년 기준으로 현재는 좀 변했을 수 있다.[15] 베이징 내성 성곽 자리에 지은 순환도로를 기준으로 하는 표현이다. 1환은 자금성이니 의미 없고, 2환은 제일 안쪽 순환도로, 3환은 2번째 순환도로이다.[16] 물론 주재원들은 회사에서 주거비를 일정 부분 지원해 주지만 그래도 부담되는 건 마찬가지.[17] 원래는 지하주차장이나 관리실로 건축되었는데 베이징의 월세비가 하도 비싸지다 보니 돈이 된다고 해서 주거시설로 개조한 경우가 많다.[18] 위키백과에 따르면 한나라 시절에는 '''上谷郡'''과 '''廣陽郡'''이다.[19] 전연, 후연, 북연은 모두 가까운 곳에 거주하던 모용선비가 중심이 되어서 세운 나라들이다.[20] 연나라 시절은 엄연히 주나라의 수도가 따로 있으면서 지방 번국의 지역중심지었을 뿐이기 때문.[21] 이는 몽골의 흔적을 지우려고 한 주원장의 노력이며, 또한 애초부터 유목하던 몽골인들이 상도와 대도를 번갈아가면서 지냈기 때문에 사실 원나라 시절의 대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수도라기보다는 전시용 세트장과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다.[22] 신해혁명 이후에도 자금성청나라 황제의 거처로써 인정받았으나, 이러한 복잡한 과정 속에서 쫓겨났다.[23] 명나라 초와 같이 남방 세력이 북경을 제압했다.[24] 그래서 수도가 점점 동쪽으로 옮겨온 것이다. 서부의 사막화가 아주 심해졌기 때문에 비교적 비옥한 동부로 온 건데 이쪽도 서부보다 아주 조금 나을 뿐 건조한 건 똑같다.[25] 모본왕, 태조대왕 시대에는 우북평, 어양, 상곡을 공격했다는 한서의 기록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베이징을 위협했다고 볼 수 있고, 광개토대왕 시기 후연이 멸망한 영락 17년에 5만의 군사로 대승을 거둔 정복 기록이 광개토대왕릉비에 전하고 있으며, 평안남도 덕흥리 고분 유주자사 진 묘지 묵서명에 따르면 고구려가 베이징이 포함된 유주 지역에 행정구역과 관청을 설치하였다는 기록을 고구려인 스스로가 남겼기 때문. 다만 후연이 멸망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북연이 이 지역에 자리잡게 되므로 고구려가 이렇게 멀리 떨어진 지역을 오랫동안 지배하지는 못하였다.[26] Bsk, Dwa, Cwa의 점이지대[27] -3도를 기준으로 온대와 냉대기후를 구분하므로 Dwa기후 중에서는 겨울이 따뜻한 것이다.[28] 서울은 -2.4도이며 이쪽도 온대기후와 냉대기후 논쟁이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학술적으론 냉대기후라 하지만 원론적인 소리고 일반인들은 4계절이 뚜렷한 만큼 온대 대륙성 기후의 전형으로 인식된다. 그리고 냉대라고 하기엔 서울은 봄, 가을, 여름도 꽤 길다. 진짜 냉대에 한국처럼 대륙성 기후인 하바로프스크이르쿠츠크만 해도 서울보다 작살나게 춥고 봄, 여름, 가을이 짧다. 이런 기후는 열섬 현상이 조금 강해지면 Cwa기후로 바뀐다. 냉대기후는 보통 겨울이 가장 길다. 서울의 경우는 여름이 가장 긴 계절이다. 물론 2010~2013년 한파때는 3월에 추워서 봄이 4월에 시작되었으며 겨울이 여름보다 더 길었다. 사실 동계건조기후 특성상 온대이든 냉대이든 한파 한번 오면 장난 아니게 춥다.[29] 한파 최고기록만 보면 대한민국 중부지방은 더한 적도 있었다. 2018년 1월의 경우 춘천이 영하 21.6도, 파주는 영하 23.5도, 최고기온 영하 12도의 경이적인 한파를 기록했고 서울이 베이징, 모스크바보다 추워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 2018년 1월 26일에는 서울은 영하 17.8도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기록된 최저, 최고기온만으로 따지자면 베이징이 연교차가 더욱 크다고 볼 수 있다.[30] 비공식 기록이다.[31] 흔히 생각하는 ‘매우 더운’ 아프리카는 사하라 사막북아프리카 지역이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여름에 한국보다 시원하고 쾌적한 곳도 많다. 애초 습도가 아시아 동쪽보다 낮다. 오히려 아프리카보다 더 덥고 한국의 여름 수준으로 습도가 올라가는 곳은 우기의 동남아시아이다. 이쪽은 한국 여름 따위와 비교도 안되게 끈적하고 찝찝한 우기를 자랑한다. 홍콩만 해도 아프리카보다 더 덥고, 태국 방콕은 우기에는 아예 관광을 장려하지 않을 정도다.[32] 대략 11월에서 3월까지다. 다만 이른 경우에는 3월 중하순부터 기온이 크게 오르기도 한다. 한반도와는 다르게 11월 기온이 3월 기온보다 낮다. 봄 기온이 가을보다 더 높다.[33] 가끔씩 내리는 눈은 인공 눈이다. 서울경기도냉대동계건조기후에 속하지만 눈이 내리기는 하며 베이징처럼 극단적으로 건조하고 바람이 세지는 않다.[34] http://naridy.egloos.com/4775204[35] 그렇다고 베이징 올림픽을 보기에는 입장료가 너무 비쌌다고 한다..... 겨우 10년 전이지만 당시 중국의 소득수준은 현재의 3분의 1 수준인 3,000달러였다. 이런 소득수준의 나라에서 공장 노동자들이 싸도 며칠치 일당, 비싸면 몇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입장권을 사서 볼 수 있을 리가.[36] 어느 날에는 정상회담을 한답시고 베이징 지하철 1호선 역들 중 절반 이상을 닫아서 시청구/둥청구를 죄다 건너뛰는 초 아스트랄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정상회담이 있어도 지하철역을 이런 식으로는 닫지 않는다. [37] 한 학기 내[38] 11월 15일부터 3월 15일.[39] 칭화대학이나 베이징대학 같은 명문대나 동물을 관리해야 하는 동물원은 추워지면 더 빨리 틀어주기도 한다.[40] 가스 보일러로 교체하는 데 드는 비용은 집주인이 다 내야했다. 이걸 한 번에 하려다가 난방을 못 해 주민들이 당국에 항의해 난리가 날 정도.[41] 어느 정도냐면 몇 분만 노출되도 소위 얼굴이 찢어지는 고통이 오다가, 나중에는 추위로 얼굴신경이 마비가 되고 더 노출되면 동상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엄청난 바람 덕분에 겨울에 중국 북부지방의 마트나 공공기관의 문은 유리문이나 회전문이 아닌 엄청나게 두꺼운 방풍재질의 천으로 만든 찍찍이미닫이 문을 사용한다. 문 자체의 무게가 엄청나게 무거워서 많이 흔들리지는 않지만 틈새가 조금이라도 벌어지면 지옥이 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안 했다가는 바람이 불어 유리문을 깨버리기 때문이다.[42] '''부산광역시'''와 비등비등한 수준시다![43] 서울과 비교하면 내부순환로는 도심에서 약 5km 정도, 그리고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는 20km 정도 떨어져 있다.[44] 자금성 성벽을 1환으로 봐도 좋다.[45] 버스나 택시도 여기에 포함된다.[46] 이 때문에 베이징 시내를 왔다갔다하는 관광버스는 베이징시 등록 넘버인 "京B"로 시작하는 번호판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京A는 공산당 업무차량에만 지정된다), 한국 여행사와 제휴를 맺고 있는 중국 현지 관광업체는 이 넘버를 갖고 있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설명한다. 후술할 각주 보면 알겠지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금성부터 베이징 외곽까지 들락날락할 수 있는 의미이기 때문이다.[47] 천안문 앞을 지나가는 창안제(长安街)는 중국에서 가장 통제가 심한 도로이다. 외국 국빈이 방문했을 때나 주석 공개 연설이라도 있는 시간에는 모든 차들이 서야 한다.[48] 거긴 한국식 실평수가 40평정도인 아파트 월세가 500만원이 넘어간다. 매매가는 거의 20억. 중국이 월세가 싸다고 해도 이 정도는 많이 비싼 거다. 베이징, 상하이 땅값은 어나더레벨이고 전세계에서도 손가락에 꼽힌다.[49] 미세먼지 절감 정책의 일환. 그 결과, 하루는 초미세먼지가 32까지 내려가 당에서 선전을 엄청나게 했다! 원래 정상회담/올림픽 기간에는 공장 전원 내려서 이것보다 낫지만, 이때는 아무런 정상회담도 없었다.[50] 단순히 거리를 대입하면 5환은 대충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주변급이고 6환은 수원시 이남이나 양주시 이북 정도에 포함된다.[51] 일반 전기버스, '''2층 전기버스, 전기 굴절버스'''등을 도입중. 다만 값이 많이 나가는지라 대규모 대차가 끝난 현재는 많이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가 또 대량 대차를 시전중이다. 이제는 한 술 더 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버스도 적극 도입중.[52] 버스는 시내 속도 제한이 아무리 높아도 좌석형 기준 60km/h이다.[53] 사실 이 버스의 정체는 심야버스다. 심야버스 한정으로 속도제한이 없다.[54] 반경 몇 km 이내에 베이징대학, 칭화대학, 인민대학, 베이징외국어대학, 베이징이공대학, 베이징사범대학중국 최고 명문대들이 밀집해 있다.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서울대학교+신촌이라고 할 수 있다.[55] 싼리툰이나 공인체육관(工人体育馆) 근처 클럽들도 밤 늦게까지 놀기 좋은 곳이지만, 거리가 멀다는게 문제.[56] 한화 약 824만원[57] 한화 약 1,648만원[58] 즉 한국 평수 30평 기준 싼 곳은 8억 2천, 비싼 곳은 16억 5천 정도라고 보면 된다.[59] 그치만 중국인들의 평균 소득을 생각하면.. 칭화대학 졸업 후 전문직으로 취직해도 겨우 월 130만원 정도 번다.[60] 베이관팅 착발[61] 다왕루역 인근 다베이야오난 착발[62] 허핑시차오역 착발, 북경한국국제학교 경유[63] 후이신시제베이커우역 착발, 북경한국국제학교를 경유.[64] https://news.joins.com/article/23125334[65] 청대에는 한족은 거주가 금지되어 달단(韃靼, Tatar)성이라고도 불렸다.[66] 梁思成 양사성, 1901∼1972, 중국 전통 건축학의 대가로, 부인 린후이인과 함께 중국 전통 건축을 현대적 학문의 틀로 재정립하였다.[67] 시진핑 주석의 모교[68] 중국 문과 최고봉. 물론 이과도 높다.[69] 인터넷 방송인 대륙남이 나온 대학이다.[70] 유료지만 값은 꽤 싸다. 하나에 30위안도 채 안 되니 말이다.[71] 우리나라로 치면 홍어나 잘익힌 번데기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72] 5층 건물이 통째로 서점이다.[73] 이곳에 베이징에서 유일한 소니 직영점이 있다.[주의사항] 두 학교는 일반적인 대학과 다르게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는데, 관광 목적으로 진입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온라인 실명제 예약을 거쳐야한다. 베이징대학의 경우 관련 문서 참고 바람.[74] 화북 지방에서 찾아보기 힘든, 마치 중국 남부의 산수화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으로 매우 아름답다.[75] 전술했듯이 해적당 소속[76] 최하 등급인 2등석 기준. 상당히 비좁다. CR400 한정으로 타 열차 일등석만하긴 하지만. 일등석은 약 2배, 비즈니스석은 약 4배의 가격으로 이용 가능.[77] 홍콩, 마카오, 대만 포함.[78] 꼭 베이징이 아니더라도 영미권 언론에서는 각국 정부를 수도 이름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미국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에 무언가를 요구한다면 "Washington requests Seoul to ~"이라고 보도된다.[79] 중국 본토 출신의 연쇄살인범.[80] 중화민국 베이핑 시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