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지이 류조

 

이름
히지이 류조 (肘井竜蔵/Ryuzo Hijii)
출생
1995년 11월 13일, 효고현 카토시
국적
일본
포지션
외야수[1]
투타
우투좌타
학력
효고현립호죠고교
프로입단
2013년 NPB 육성선수 드래프트 1라운드
소속팀
치바 롯데 마린즈 (2014~2018)
등장곡
영화 '소림축구' 오프닝 테마[2]
SNS
인스타그램
1. 개요
2. 고교 시절
3.1. 2018 시즌
4. 플레이 스타일
5. 연도별 성적
6. 기타


1. 개요


치바 롯데 마린즈에서 뛰었던 전 일본프로야구 선수. 포지션은 원래는 포수였지만 외야수로 전향했다.

2. 고교 시절


고교 통산 46홈런을 친 거포 유망주였지만, 학교가 지금까지 단 한 명의 야구선수도 배출한 적 없는 최약체 학교였기 때문에 고시엔은 지역 대회 준결승에서 탈락한 것이 최고 기록이었다. 즉 고시엔 본선 출전 경험이 없다.
학교 자체가 워낙 약체였기 때문에 팀에서는 당연히 주장 겸 주전포수 겸 최고 중심타자를 맡아 활약해왔고, 이 활약 덕분에 2013년 육성선수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치바 롯데 마린즈에 지명되어 계약금 3천만원에 연봉 2400만원[3]에 육성선수 계약을 맺었다. 여담으로 그가 효고현립호죠고교 사상 최초의 프로야구 선수라고 한다.

3.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2014년에는 2군에서 포수와 외야수를 왔다갔다 했는데 여기서 좋은 평가를 받아서 2015년에 지배 등록이 되었다.
2015년에는 시범 경기에서 종종 중용되었으나 1군에서는 거의 출장하지는 못했다. 공교롭게도 이 해에 친 안타는 모두 2루타였다. 시즌 막판 2군 경기에서 안면 사구를 맞고 수술을 하면서 시즌아웃.
2016년부터는 공식적으로 외야수로 전향하여 간간이 백업으로 나왔으나 무안타를 기록하며 타율 .000으로 시즌을 마감. 하지만 2군에서는 11홈런을 치면서 거포 유망주로써의 첫 발을 내딛었다.
2017년에는 간간이 백업으로 출장하여 커리어 최초로 2할 타율을 찍었다.

3.1. 2018 시즌


2군에서 주전으로 나오고 있으나 18경기 40타수 7안타 타율 .194로 부진.
5월 14일 기준 타율 .237로 올라갔다.
이구치가 너무 안 쓴다 싶더니 1군에 한 번도 못 오르고 끝내 10월 1일 방출당했다. 올 시즌 마린즈 팬들에게 가장 의아한 방출로 꼽히고 있다.
정확한 거취 발표는 없지만 SNS를 보면 은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12월 말에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하고 프로야구 선수회 사무국에서 근무할 것을 선언했다.

4. 플레이 스타일


고교 통산 46개의 홈런을 친 슬러거 스타일의 공격형 포수였다. 그러나 프로에서는 강한 어깨에 주목하여 외야수로 전향하였다.
1군에서 크게 기회를 못 받아서 아직 홈런은 없지만 통산 7안타 중 3안타가 장타이다. 2군에서는 첫 2년간은 똑딱질만 했지만 16년에 두자릿수 홈런을 처음 기록했고, 16년과 17년 모두 두 자릿수 2루타를 기록하면서 중장거리 타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군에서 보여주는 모습만 보자면 두자릿수 홈런에 20~30개의 2루타를 칠 수 있는 중장거리포로 충분히 성장할 능력이 있다.

5.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도루
사사구
출루율
장타율
2014
치바 롯데 마린즈
1군 기록 없음
2015
6
14
.143
2
2
0
0
2
0
0
.143
.286
2016
8
9
.000
0
0
0
0
0
0
1
.100
.000
2017
18
21
.238
5
1
0
0
0
0
0
.238
.286
2018
1군 기록 없음
'''NPB 통산(3시즌)'''
30
44
.159
7
3
0
0
0
0
1
.178
.227

6. 기타


  • 입단 당시 사토자키 토모야를 롤 모델로 꼽았다.
  • 입단 당시 이노우에 세이야의 부하가 되겠다는 말을 해서 모두를 웃겼다. 개그끼가 좀 있는 듯.
  • 입단 직후 13년 드래프트 동기들과의 훈련에서 다들 어색해 하는 사이일 때 제일 막내임에도 불구하고 혼자 말을 많이 하면서 분위기를 이끌어냈다고 한다.[4] 성격이 매우 밝고 활발하다는 듯. 물론 '맨날 달라붙어서 힘들다.'는 말도 나왔다고 한다.
  • 성인 肘井(히지이)는 일본에 단 700명 정도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인터뷰에 의하면 자신이 야구선수로 성공해서 肘井씨의 인지도를 높이고 싶다고...
  • 지배 선수로 등록된 후 인터뷰 첫 마디에서 지배 등록이 됐으니 연봉이 오를 테니까 후타키[5]랑 밥 먹으러 가고 싶다고 인터뷰했다(...)
  • 데뷔 첫 해에 얼굴에 사구를 맞는 바람에 얼굴 전체에 대수술을 받았고, 사구의 영향으로 신경이 손상되는 바람에 후각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 은퇴하고 나서 영어도 못 하고, 고졸이고, 컴퓨터 등 기술도 하나 없어서 막막한 차였는데 입사 제의가 오히려 이곳저곳에서 들어와서 놀랐다고 한다.[6] 결국 NPB 사무국을 선택. 현재는 NPB 사무국이 주최하는 여러 행사를 기획하고 현장에서 진행하는 일을 한다.
  • 2019년 꽤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고 한다.

[1] 원래는 포수였다. 그러나 2015년에 지배 선수로 등록되면서 1군에서는 외야수로 출장했고, 2016년부터 공식적으로 외야수로 전향.[2] 린즈성 응원가와 똑같다.[3] NPB 최저임금. KBO 리그보다도 적다. 단 NPB 1군 최저임금은 KBO 1군 최저임금의 2배가 넘는다.[4] 참고로 13년 드래프트 동기는 1차지명자 이시카와 아유무, 2라운드 요시다 유타, 3라운드 미키 료, 4라운드 요시하라 쇼헤이(2016년 이후 은퇴), 5라운드 이노우에 세이야, 6라운드 후타키 코타. 육성선수는 히지이 혼자였다. 이때 후타키와 히지이만 고졸이었다.[5] 6라운드에 지명됐던 드래프트 동기. 유일하게 고졸이라 둘이 붙어다니는 것 같다. 후타키는 2017년 현재 선발 로테이션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6] 일본에서는 운동부 출신이 조직생활을 많이 해왔기에 사회생활을 잘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어서 전문적이지 않은 사무직이나 영업직 등의 전공무관 직종의 경우 운동부 출신을 매우 선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