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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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미고 몽키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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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중신 브라더스의 파워히터
대만 프로야구 리그 중신 브라더스에서 활약 중인 내야수. 대만 현지에서도 많은 인기를 보유하고 있는 스타 선수이며 뛰어난 타격 능력을 가지고 있고 유격수를 비롯해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다. 다만 수비시에 포구와 송구 모두 다소 불안하다는 게 단점이다.[5]
2015년 6월 20일부터 다음 시즌인 2016년 6월 16일까지 109경기 연속 출루에 성공, 세계 최다 연속 경기 출루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6]
2020시즌까지의 통산 성적은 1444경기 타율 .314, 출루율 .386, 장타율 .542, 1667안타 286홈런 160도루 1116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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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라뉴 베어스(현재 라미고 몽키스)에 입단해 2019년까지 16시즌 동안 통산 타율 .315에 통산 홈런 283개로, 역대 CPBL 타율 및 홈런 부분 2위다[7] . 2015시즌에는 타율 .380 31홈런 30도루로 CPBL 사상 최초로 30-30 클럽에 가입했다. 시즌 OPS도 1.0을 돌파하며 괴물같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리그 MVP는 물론이고 타이완 시리즈 MVP에 선정되었다. 린즈성 통산 기록(CPBL 공식 홈페이지)
이렇듯 천진펑, 장타이산, 펑정민 등을 잇는 대만을 대표하는 강타자로 2006년 WBC, 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3 WBC, 2015 WBSC 프리미어 12 대만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출전했다. 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는 일본을 상대로 끝내기 2루타를 때려내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8] .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는 결승전에서 우리나라 팀과 맞붙기도 했다. 물론 결과는 알다시피 한국 팀이 금메달을 가져갔다. 2015 WBSC 프리미어 12 때는 팀이 일찍 탈락하는 바람에 한국 팀과 만날 기회는 없었지만, 홈런 4개를 치면서 대회 홈런왕이 됐다.
흑역사가 있다면 2008년 4월 1루심의 판정에 불복해 후속타자 타석 때 벤치에서 뛰어나와 몸통박치기로 1루심을 쓰러뜨려 퇴장당한 일이 있다. 이로 인해 15경기 출장과 벌금 18만 위안을 처분받았는데, 당시 대만 야구팬들은 징계 수위가 너무 낮다며 비판했다.
2011년 라미고 몽키스와 맺은 5년 계약이 2015년부로 끝나면서 리그에서의 괴물 같은 성적을 바탕으로 이후 행보에 관심이 쏠렸다. 한때는 KBO 리그 진출 의사를 적극 밝히기도 했다. 기사. 만약 린즈성이 한국 야구 진출에 성공할 경우 대만판 제한맨, 혹은 야구계의 쯔위가 탄생할 수 있는 소식이었다. 사실상 KBO 리그가 상위리그 경험이 없는 선수를 받는 첫 케이스가 되기 때문이었다.[9]
직전 시즌에 KBO 리그에 비해 비교적 하위 레벨이라 평가받는 리그(마이너리그 제외)에서 뛰다 온 선수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06년 라뉴 베어스에서 뛰다가 2007년 SK 와이번스로 이적해 17승을 거두며 SK의 창단 첫 우승에 공헌한 케니 레이번, 2011년 대만의 라미고 몽키스에서 뛰다가 2012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한 쉐인 유먼이나, 2012년까지 호주의 시드니 블루삭스에서 뛰다가 2013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면서 KBO 리그로 다시 돌아온 크리스 옥스프링의 예가 있다. 하지만 이들은 짧게나마 메이저리그 경력이 있는 선수들이었다는 점에서 분명히 다른 케이스에 속한다.[10]
국내 팬들도 슬슬 KBO도 하위 리그에서 선수를 받아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린즈성의 한국 진출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아직 대만리그 출신 선수들이 한국에서 검증되지 않은데다 대만리그가 극도의 타고투저 성향을 보여 타격 성적에 대한 의구심과 나이에 대한 걱정이 있기에, '리그에서는 보고 싶은 선수지만, 내가 응원하는 팀에 오는 건 글쎄?' 정도의 반응이었다. 말 그대로 계륵. 그런 의미에서 야갤 등지에선 흔히 '''느그셩'''이라고 불렸었다. 엠팍 등에서는 대놓고 정훈 수준밖에 못된다면서 무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여러가지 추측이 나왔지만 최종적으로 KBO에서 신분요청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진출 가능성은 사실상 무산.# 결국 대만 최초의 KBO리그 진출은 2018년에 투수 왕웨이중이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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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2016년 1월, 3년 계약 총액 3,600만 NTD(원화 12.6억원)에 옵션 달성시 4,500만 NTD(원화 15.8억원)라는 특급 대우[11] 를 받으며 중신 브라더스와 계약했다.[12] 비록 KBO 진출은 무산됐지만 대만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FA 제도를 통해 타팀으로 이적한 선수가 됐다.[13][14]
7월 26일 주간야구에서 린즈성에 대한 언급이 나왔는데, 린즈성이 한국리그로 오고 싶어했던 이유가 조폭들이 승부조작을 자꾸 제의하면서 가족에게 까지 손을 대서 오고 싶어했다고 나왔다.
여담으로 삼성 라이온즈 팬들 사이에선 린즈성 영입을 진지하게 원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아무래도 용병타자가 너무 못해서인듯.
2016년 34홈런을 때려내며 홈런왕(공동 1위)에 올랐다.
2017년 현재 2할 7푼으로 타율이 매우 낮다. 그러나 홈런은 8개를 치면서 여전히 파워는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중. 현재 홈런 4위를 달리고 있다. 1위는 12홈런을 친 중신 브라더스의 장즈셴. 그러나 낮은 타율로 인한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5월 말에 잠깐 2군으로 쫓겨나서 3경기를 치르고 1군으로 복귀했다. 2군 타율은 3경기 11타수 5안타 타율 .455
결국 2017 시즌은 56경기 타율 .288 12홈런 40타점이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마쳤다. 거기다가 다른 아미족 선수들과 함께 플레이오프 명단에 탈락했다. 아미족 선수들의 외국인 감독에 대한 내부 항명으로 의심간다고 한다.
2018 시즌은 스프링캠프 명단에도 빠졌다. 왕성웨이[15] , 장즈셴, 린즈성 등 2017년 외국인 감독에 대해 단체 항명한 아미족 선수들은 스프링캠프에서 제외되며, 관련 굿즈 판매도 모두 중단되었다. 일본 위키에 따르면 이번 시즌은 해당 아미족 선수들을 1군에 올리지 않겠다고 적혀 있는데 사실이라면 커리어에 매우 큰 타격이 갈 듯. 심지어 장즈셴의 경우는 아예 본보기로 방출까지 당했다(...)[16]
2018년 현재 2군에서 .385의 고타율임에도 불구하고 감독에게 찍혀서인지 1군에 올라오지 못하였으나 5월말 1군에 복귀하였다. 1군 복귀 후 성적은 8월 17일 현재 타율 .244에 30경기 3홈런 11타점으로 전성기의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하는 중이다.
2018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266에 4홈런 24타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모두 데뷔 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고 원래 강점이었던 좌투수 상대 성적이 타출장 .200 .280 .333으로 곤두박질쳤다.
2019년에 눈부시게 재기에 성공, 9월 21일 기준 25홈런으로 홈런 3위를 달리고 있다. 타율은 .297, OPS는 .916으로 FA 기간이 끝나자마자 다시 부활했다. 그러나 프리미어 12 국가대표에는 선출되지 못했다.
2020년에는 부상과 부진으로 홈런을 3개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2020시즌 종료 기준 286홈런을 기록하였으며 장타이샨이 갖고 있는 홈런 1위 기록까지는 4개가 남아 있다. 걸리적거리는건 그의 나이. 82년생인데다가 노쇠 기미가 뚜렷하여 경기 출전 빈도가 급격하게 줄고 있다.
2021년에는 기존 3번에서 25번으로 등번호를 변경했다.
라미고 몽키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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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중신 브라더스의 파워히터
1. 개요
대만 프로야구 리그 중신 브라더스에서 활약 중인 내야수. 대만 현지에서도 많은 인기를 보유하고 있는 스타 선수이며 뛰어난 타격 능력을 가지고 있고 유격수를 비롯해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다. 다만 수비시에 포구와 송구 모두 다소 불안하다는 게 단점이다.[5]
2015년 6월 20일부터 다음 시즌인 2016년 6월 16일까지 109경기 연속 출루에 성공, 세계 최다 연속 경기 출루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6]
2020시즌까지의 통산 성적은 1444경기 타율 .314, 출루율 .386, 장타율 .542, 1667안타 286홈런 160도루 1116타점.
2. 선수 생활
2.1. 라뉴/라미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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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라뉴 베어스(현재 라미고 몽키스)에 입단해 2019년까지 16시즌 동안 통산 타율 .315에 통산 홈런 283개로, 역대 CPBL 타율 및 홈런 부분 2위다[7] . 2015시즌에는 타율 .380 31홈런 30도루로 CPBL 사상 최초로 30-30 클럽에 가입했다. 시즌 OPS도 1.0을 돌파하며 괴물같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리그 MVP는 물론이고 타이완 시리즈 MVP에 선정되었다. 린즈성 통산 기록(CPBL 공식 홈페이지)
이렇듯 천진펑, 장타이산, 펑정민 등을 잇는 대만을 대표하는 강타자로 2006년 WBC, 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3 WBC, 2015 WBSC 프리미어 12 대만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출전했다. 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는 일본을 상대로 끝내기 2루타를 때려내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8] .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는 결승전에서 우리나라 팀과 맞붙기도 했다. 물론 결과는 알다시피 한국 팀이 금메달을 가져갔다. 2015 WBSC 프리미어 12 때는 팀이 일찍 탈락하는 바람에 한국 팀과 만날 기회는 없었지만, 홈런 4개를 치면서 대회 홈런왕이 됐다.
흑역사가 있다면 2008년 4월 1루심의 판정에 불복해 후속타자 타석 때 벤치에서 뛰어나와 몸통박치기로 1루심을 쓰러뜨려 퇴장당한 일이 있다. 이로 인해 15경기 출장과 벌금 18만 위안을 처분받았는데, 당시 대만 야구팬들은 징계 수위가 너무 낮다며 비판했다.
2.2. 중신 슝디로 이적
2011년 라미고 몽키스와 맺은 5년 계약이 2015년부로 끝나면서 리그에서의 괴물 같은 성적을 바탕으로 이후 행보에 관심이 쏠렸다. 한때는 KBO 리그 진출 의사를 적극 밝히기도 했다. 기사. 만약 린즈성이 한국 야구 진출에 성공할 경우 대만판 제한맨, 혹은 야구계의 쯔위가 탄생할 수 있는 소식이었다. 사실상 KBO 리그가 상위리그 경험이 없는 선수를 받는 첫 케이스가 되기 때문이었다.[9]
직전 시즌에 KBO 리그에 비해 비교적 하위 레벨이라 평가받는 리그(마이너리그 제외)에서 뛰다 온 선수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06년 라뉴 베어스에서 뛰다가 2007년 SK 와이번스로 이적해 17승을 거두며 SK의 창단 첫 우승에 공헌한 케니 레이번, 2011년 대만의 라미고 몽키스에서 뛰다가 2012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한 쉐인 유먼이나, 2012년까지 호주의 시드니 블루삭스에서 뛰다가 2013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면서 KBO 리그로 다시 돌아온 크리스 옥스프링의 예가 있다. 하지만 이들은 짧게나마 메이저리그 경력이 있는 선수들이었다는 점에서 분명히 다른 케이스에 속한다.[10]
국내 팬들도 슬슬 KBO도 하위 리그에서 선수를 받아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린즈성의 한국 진출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아직 대만리그 출신 선수들이 한국에서 검증되지 않은데다 대만리그가 극도의 타고투저 성향을 보여 타격 성적에 대한 의구심과 나이에 대한 걱정이 있기에, '리그에서는 보고 싶은 선수지만, 내가 응원하는 팀에 오는 건 글쎄?' 정도의 반응이었다. 말 그대로 계륵. 그런 의미에서 야갤 등지에선 흔히 '''느그셩'''이라고 불렸었다. 엠팍 등에서는 대놓고 정훈 수준밖에 못된다면서 무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여러가지 추측이 나왔지만 최종적으로 KBO에서 신분요청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진출 가능성은 사실상 무산.# 결국 대만 최초의 KBO리그 진출은 2018년에 투수 왕웨이중이 기록했다.
[image]
결국 2016년 1월, 3년 계약 총액 3,600만 NTD(원화 12.6억원)에 옵션 달성시 4,500만 NTD(원화 15.8억원)라는 특급 대우[11] 를 받으며 중신 브라더스와 계약했다.[12] 비록 KBO 진출은 무산됐지만 대만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FA 제도를 통해 타팀으로 이적한 선수가 됐다.[13][14]
7월 26일 주간야구에서 린즈성에 대한 언급이 나왔는데, 린즈성이 한국리그로 오고 싶어했던 이유가 조폭들이 승부조작을 자꾸 제의하면서 가족에게 까지 손을 대서 오고 싶어했다고 나왔다.
여담으로 삼성 라이온즈 팬들 사이에선 린즈성 영입을 진지하게 원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아무래도 용병타자가 너무 못해서인듯.
2016년 34홈런을 때려내며 홈런왕(공동 1위)에 올랐다.
2017년 현재 2할 7푼으로 타율이 매우 낮다. 그러나 홈런은 8개를 치면서 여전히 파워는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중. 현재 홈런 4위를 달리고 있다. 1위는 12홈런을 친 중신 브라더스의 장즈셴. 그러나 낮은 타율로 인한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5월 말에 잠깐 2군으로 쫓겨나서 3경기를 치르고 1군으로 복귀했다. 2군 타율은 3경기 11타수 5안타 타율 .455
결국 2017 시즌은 56경기 타율 .288 12홈런 40타점이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마쳤다. 거기다가 다른 아미족 선수들과 함께 플레이오프 명단에 탈락했다. 아미족 선수들의 외국인 감독에 대한 내부 항명으로 의심간다고 한다.
2018 시즌은 스프링캠프 명단에도 빠졌다. 왕성웨이[15] , 장즈셴, 린즈성 등 2017년 외국인 감독에 대해 단체 항명한 아미족 선수들은 스프링캠프에서 제외되며, 관련 굿즈 판매도 모두 중단되었다. 일본 위키에 따르면 이번 시즌은 해당 아미족 선수들을 1군에 올리지 않겠다고 적혀 있는데 사실이라면 커리어에 매우 큰 타격이 갈 듯. 심지어 장즈셴의 경우는 아예 본보기로 방출까지 당했다(...)[16]
2018년 현재 2군에서 .385의 고타율임에도 불구하고 감독에게 찍혀서인지 1군에 올라오지 못하였으나 5월말 1군에 복귀하였다. 1군 복귀 후 성적은 8월 17일 현재 타율 .244에 30경기 3홈런 11타점으로 전성기의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하는 중이다.
2018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266에 4홈런 24타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모두 데뷔 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고 원래 강점이었던 좌투수 상대 성적이 타출장 .200 .280 .333으로 곤두박질쳤다.
2019년에 눈부시게 재기에 성공, 9월 21일 기준 25홈런으로 홈런 3위를 달리고 있다. 타율은 .297, OPS는 .916으로 FA 기간이 끝나자마자 다시 부활했다. 그러나 프리미어 12 국가대표에는 선출되지 못했다.
2020년에는 부상과 부진으로 홈런을 3개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2020시즌 종료 기준 286홈런을 기록하였으며 장타이샨이 갖고 있는 홈런 1위 기록까지는 4개가 남아 있다. 걸리적거리는건 그의 나이. 82년생인데다가 노쇠 기미가 뚜렷하여 경기 출전 빈도가 급격하게 줄고 있다.
2021년에는 기존 3번에서 25번으로 등번호를 변경했다.
[1] 영어로는 Lin Chih-sheng으로 표기한다. 원래 이름은 林智盛으로 똑같이 린즈성으로 읽는다.[2] Ngayaw Ake. 대만 원주민 아미족 이름이다. 그는 아미족 출신으로 자신의 혈통을 잊지 않기 위해 소속팀에서는 이 이름을 등록명으로 쓴다.[3] 強攻智勝 猛轟智勝 乃耀阿給 林智勝中信大勝 兄弟大勝 中信兄弟 林智勝. 한국어로 읽으면 창궁 즈상 멍훙 즈성 나이 야오 아 게이 린즈성 중신 다성 슝디 다성 중신 슝디 린즈성. 뜻은 강하게 공격해라 (린)즈성 맹렬하게 울려라 (린)즈성 Ngayaw Ake(원주민식 이름) 린즈성! 중신 대승 브라더스 대승 중신 브라더스 린즈성![4] 일본프로야구 치바 롯데 마린즈 선수인 히지이 류조의 등장곡이기도 하다.[5] 그러다 보니 2017 WBC에서는 유격수 포지션을 포기하고 2루수로 주로 출전했다. 유격수는 천융지가 주로 봤던 편.[6] 2위 기록은 김태균이 보유한 86경기 연속 출루.[7] 타율 1위는 .339인 펑정민, 홈런 1위는 289개를 친 장타이산[8] 다만 당시 일본 대표팀은 실업팀 선수들로 팀을 꾸렸다.[9] 2010년 SK 와이번스가 퉁이 세븐일레븐 라이온즈의 우완투수 판웨이룬 영입을 시도한 적은 있지만, 부정적인 내부 평가로 무산된 바 있다.[10] 여기서 레이번과 옥스프링의 경우 일본프로야구에서 뛴 경력도 있고, 특히 옥스프링은 이미 KBO 리그에서 준수한 성적을 내며 실력을 검증받은 바 있던 선수였다.[11] 한화로는 약 16억원 정도라 뭐가 특급이냐고 하겠지만, 대만의 경우에는 구단 모기업이 다들 중소기업 수준이라서 리그 전체적으로 선수들 연봉이 낮다.[12] 공교롭게도 2015년 대만시리즈에서 라미고의 상대팀이었다. 다시 말해 맞수의 팀으로 옮긴 셈이다.[13] 참고로 2016년 시즌을 앞두고 대만프로야구의 FA 자격 취득자는 3명이었다. 근데 이 중 두 명이나 동시에 FA를 통해 타팀으로 이적했다. 그리고 최초로 FA 이적을 한 두 선수 모두 중신 브라더스에서 현질했다.(...) 왕보롱이 계약하고 얼마 후, 준족이며 포수와 외야수가 모두 가능한 베테랑 선수 정다홍도 FA로 중신에 왔다. 참고로 정다홍의 몸값은 2+1년 계약 보장금액 1,256만 NTD에 옵션 달성시 2,016만 NTD. 보장금액은 린즈성의 1/3이고 옵션 달성시의 금액도 린즈성의 1/2라 안 된다. 그리고 정다홍은 항명사건 때문에 2년 계약만 하고 옵션 실행을 구단이 거부해서 2년 후에 실업야구로 갔다.[14] 여담으로 중신 브라더스에서는 2016년 시즌이 끝나고 왕성웨이를 내부 FA로 잔류시켰는데, 대만프로야구 최고의 대도 유격수였음에도 불구하고 2년 계약 총액 1,840만 NTD에 옵션 달성시 1,880만 NTD에 계약했다. 1년당 받는 돈은 린즈성이 훨씬 많았던 셈이다.[15] 도루왕만 4번이나 차지했던 준족의 소유자로, 타격력도 유격수임을 감안하면 그럭저럭 쓸 만 했기에 중신 브라더스의 주전 유격수로 뛰어 오고 있었다.[16] 공식적으로는 5명이 참여했다고 하지만 공식 발표만 없을 뿐이지 대만에서는 이미 10명이나 항명했다는 것이 정설. 밝혀진 5명이 주도하고 공공연하게 같이 항명했다고 알려진 5명은 가담급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중 6명이나 방출당했는데, 나이가 너무 많은 정다홍을 제외하고 전부 푸방 가디언즈가 데려갔다.(정다홍은 현역 연장 의지를 밝히고 실업야구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