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역대 대학수학능력시험'''
1998 수능

'''1999 수능'''
(1998.11.18.)

2000 수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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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시험의 상세


1. 개요


6차 교육과정 세대의 첫 수능으로, 총 지원인원은 86만 5천명이고 응시인원은 총 84만명으로 집계되었다.[1] 대부분의 1980년생과 빠른 1981년생 및 n수생이 응시하였다.
1998년 11월 18일에 실시되었다. 처음으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에서 주최한 시험이며, '''69년 예비고사 첫 시행 이래 30년 대입 시험 사상 첫 만점자가 나오기도 하였다.''' 그 만점자의 주인공은 한성과학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오승은 양.[2][3][4] 또한 이 해부터 선택과목이 처음 도입되기도 하였다.

2. 시험의 상세


교시
영역
계열 구분
문항
배점
시간(분)
1
언어 영역
공통
65
120
90
2
수리 · 탐구 영역(Ⅰ)
인문, 자연, 예체능
30
80
100
3
수리 · 탐구 영역(Ⅱ)
사회탐구 영역
인문, 예체능
48
72
120
자연
32
48
과학탐구 영역
인문, 예체능
32
48
자연
48
72
4
외국어 영역
공통
55
80
80
합계
230
400
390
6차 교육과정이 적용된 1999학년도 수능부터 사회/과학탐구영역에 수능 사상 처음으로 선택과목 제도가 도입되었다. 수리탐구영역(Ⅱ)에서 인문계는 공통사회(57점)+선택사회(15점)+공통과학(48점), 자연계는 공통사회(48점)+공통과학(48점)+선택과학(24점)의 시험을 치렀다.
또 최초로 선택과목 제도가 도입되면서 선택과목의 유불리를 보완하기 위하여 표준점수라는 것도 최초로 도입되었으나, 6차수능에서는 표준점수가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았다. 왜냐하면 선택과목이 하나밖에 없는 데다 그것도 10문제(인문계)/16문제(자연계)밖에 안 되었고 무엇보다도 원점수가 성적표에 찍혀 나왔으며,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상위권 대학에서 원점수를 많이 반영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95 수능부터 이어지고 있었던 예체능계열도 여전히 유지되었다. 예체능계열 시험 응시자들은 언어와 외국어는 다른 계열 응시자들과 시험을 똑같이 보고, 수리탐구1에서는 공통수학 100%, 수리탐구2에서는 선택과목 없이 공통사회(72점)+공통과학(48점)의 시험을 봤다.

3. 난이도


전체 평균 점수가 249.6점으로 199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비해 전체 평균 점수가 27.8점 올라가 꽤 쉽게 출제되었다고 평가된다. 계열별로 인문계 249.1점, 자연계 263.8점이 평균이었다.
개별적인 수준은 1998학년도 수능에 비해 언어와 외국어영역, 수리탐구Ⅱ(사과탐), 자연계 수리탐구 Ⅰ은 쉽게 출제되었으나, 인문계 수리탐구 Ⅰ(수학)은 비슷한 수준으로 출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언어영역은 120점 만점에 84.7점(100점 만점에 70.6점)으로 지난해의 77.7점(100점 만점에 64.7점)보다 7점(100점 만점 5.9점)올라갔다. 인문계는 115점 이상 인원이 6763명(1.64%), 110점 이상이 37950명(9.23%)이었고 자연계는 115점 이상 5067명(1.50%), 110점 이상이 31188명(9.26%) 이었다. 언어영역 만점자는 계열 통합으로 '''753명(0.09%)'''이었다.
수리탐구 Ⅰ은 인문계의 평균점수가 80점 만점에 30.0점(100점 만점에 37.5점)였으며 작년에 비해 1.4점 정도(100점 만점에 1.8점) 상승했다. 또한 65점 이상이 16842명(4.10%)[5]으로 이 점수권의 수험생 분포는 작년보다 많으나, 75점 이상이 2453명(0.60%)로 1% 이내의 최상위권에겐 작년 시험보다 어려웠고 전체적 수준도 7차 이후 시험 기준으로 꽤 어려웠던 편이다. 반면 자연계는 평균 점수가 36.7점(100점 만점에 45.9점)으로 작년보다 2.9점(100점 만점에 3.7점) 상승하였고, 70점 이상 인원 15385명(4.70%), 75점 이상 인원 6209명(1.84%)으로 전반적으로 작년보다 약간 쉬웠다.
외국어는 계열 구분없이 평균 점수가 80점 만점에 48.7점(100점 만점에 60.9점)으로 전해의 45.1점(100점 만점에 56.4점)에 비해 3.6점(100점 만점에 4.5점) 상승하였다. 인문계는 75점 이상 25778명(6.27%)였고 자연계는 75점 이상이 23439명(6.96%)이었다.
수리탐구Ⅱ는 인문계는 사탐이 평균 47.2점(100점 만점 65.5점)으로 작년에 비해 6점(100점 만점에 8.4점) 상승했다. 65점 이상이 24734명(6.01%), 70점 이상이 1597명(0.39%)으로 과탐은 평균 27.6점(100점 만점에 57.4점)으로 작년보다 7.7점(100점 만점에 15.9점) 상승했다. 45점 이상이 13775명(3.35%)으로 변별력이 낮았다. 자연계는 과탐이 평균 45.5점(100점 만점에 63.2점)으로 작년보다 11.8점(100점 만점에 16.4점) 상승했다. 70점 이상이 3878명(1.15%)로 작년보다 평이했고 어렵지 않았다. 사탐이 평균 31.3점(100점 만점 65.3점)으로 작년보다 5.1점(100점 만점에 10.6점) 상승했다. 45점 이상 7892명(2.34%). 전체적으로 6차 교육과정의 다른 시험들과 비교하면 00,01수능보다는 어려웠고 02~04수능보다는 쉬워 중간 수준은 되었다. 98수능이 더 어려워서 당시 수험생들의 체감수준은 무난했을 것으로 보인다.
전체 점수 분포는 원점수 300점 이상 인원이 20만 3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370점 이상은 인문계 6200명대(1.51%), 자연계 7700명대(2.29%), 380점 이상은 인문계 1900명대(0.47%), 자연계 2300명 정도(0.68%), 390점 이상은 인문계 200명 정도(0.05%), 자연계 250명 정도(0.08%)였다. 398점 이상(1~2개이하로 틀린 수험생)가 전국에 10명 정도 있었다고 한다. 이 분포 역시 1998학년도 수능에 비해 쉬워진 것이다. 또한 1998수능까지는 과거 3년동안 재학생의 평균 점수가 재수생들보다 높았으나, 1999수능부터 재수생들의 평균 점수가 242.7점으로 재학생들의 평균 점수(239.8점)보다 높게 나오기 시작했다.

[1] 200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비해 적지만 그래도 꽤 많은 축에 속한다.[2] 서울대 물리학과 입학. MIT 박사 과정을 거쳐 현재 하버드 의대 박사후 과정 연구원으로 재직 중. 그녀의 이름을 딴 문제집과 책이 나오기도 하였으나, 소송 크리로 절판됨.[3] 당시 언론에서 오승은 양의 수능 만점 소식을 오 양의 사진과 함께 '''중앙 일간지 1면에 대서 특필'''하기도 했다. 기자의 질문 "H.O.T.를 좋아하는가?" 에 대한 대답 "H.O.T.가 뭐죠?" 1.x점짜리 문제 실수로 틀린 10명의 수험생들은 그저 안습...[4] 사족을 하나 붙여보자면 오승은 양의 아버지 오형환 씨는 무려 '''행정고시 8회 수석'''인 분이시다! 또한 총무처, 소청심사위원, 지방행연수원장을 거쳐 국가전문행정연수원 초대 원장에 재임하신 엘리트이다.[5] 이 당시 등급의 기준이 없었으나, 만약 있었다면 100점 만점에 81점 정도가 1컷이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