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은(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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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오승은 (吳承恩)
'''출생일'''
1980년
'''출생지'''
서울특별시
'''학력'''
한성과학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물리학 / 학사)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물리학 / 석사)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물리학(생물물리학 전공) / 박사)
'''현직'''
하버드 대학교 병원 쿠쉬너연구소 연구원
'''약력'''
하버드 대학교 병원 시스템생물학과 박사후연구원
1. 개요
2. 상세
3. 여담
4.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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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물리학자(생물물리학). 국가 주관 대입 시험 역사상 최초의 만점자가 된 인물로 유명세를 치렀다.

2. 상세


1968학년도 예비고사 도입 이후, 학력고사를 거쳐, 1994학년도 수능으로 변경된 입시 체제까지 30년 이상, 전국 단위로 국가가 주관하여 실시하는 대학입시에서 최초로 만점을 받은 인물이다. 199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98년 11월 시행, 12월 성적 발표)에서 만점을 받았다. 그 당시 만점은 '''400점.'''(언어 영역(국어) 120점, 수리 영역(수학) 80점, 외국어 영역(영어) 80점, 과학/사회탐구영역 120점, 총 230 문항)
수능 최초 만점의 상징성에다 문/이과 계열만 나뉠 뿐 선택 과목도 거의 없던 시절이고, 수시같이 비정형화된 모집 방식도 별로 없다시피하던 시기이기 때문에 정시 모집에서 수능 총점이 굉장히 중요했으며, 70~80만명에 달하는 수험생의 종합 성적 전국 석차까지 나오고, 그에 근거해 수능 응시자들의 학업성취도를 직접적으로 비교가 가능했던 시기였기에 수능 수석은 언론에서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녀의 이름을 딴 "오승은의 수능 노트"(1999년 출간) 등 참고서/교재 등이 출간되기도 했었다.
당시 만 18세의 한성과학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으며,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에 거주했던 것으로 세간에 알려져 있다.
오승은은 인터뷰에서 "1학년때 잠깐 과외를 한 적이 있지만 그 이후에는 하지 않았다." "다만 언어영역사회탐구 영역은 수학 등에 비해 다소 약해 주말을 이용해 학원을 다녔다고 언급했다". 또한 소립자 물리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또한 오승은은 부유한 가정 출신이다. 오승은의 아버지 오형환 씨는 1969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70년 행정고시 8회 수석 합격자 출신'''으로, 1998년 당시에 행정자치부 지방행정연수원장이었으며, 어머니 이우인 씨는 당시 서울 송파구 방산중학교 사회교사였다. 오승은은 1남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당시에 1년 연상인 오빠인 오석준 군(당시 19세)은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1학년에 재학중이었다고 한다.#
이렇듯 부모 모두 인문계열 출신으로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던 집안이었는데, 오승은은 자연 계열를 선택해 탁월한 성적을 냈다는 점이 특이하다면 특이한 사항이다. 클래식 음악 감상과 독서가 취미였고, 지능지수 (IQ) 150[1]영재였다.
오형환 씨는 당시 오십이 넘은 나이에도 한양대 행정학과 대학원 석사 과정을 준비하는 등 학구열이 넘쳤다고 한다. 오승은 역시 "공부에 흥미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깊은 학구열 때문이었다"고 언급하며, "아버지를 닮으려고 노력했으며 교사이신 어머니의 영향도 컸다"고 말했다. 또한 오형환 씨는 딸에 대해 "공부는 스스로 알아서 했기 때문에 일일히 간섭할 필요가 없었다"고 언급했다.
당시 한성과학고 3학년 주임이었던 송도찬 교사의 언급에 따르면, "머리가 총명한데다, 노력파여서 모의고사에서 항상 390점대를 얻어 전교 1등을 했고, 이미 수석 졸업이 확정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오승은은 중학교수학 경시대회에서 입상하고, 또 강남교육청 주최 영어 듣기 대회서 은상을 타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고교 내내 성적 석차 1등 자리를 지켰고, 은 7시간 이상 잤다고 한다.

중학교때는 반에서 5등 정도의 석차였다고 한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초·중학교때 영어와 수학등 기초과목만큼은 뛰어났으나 성적은 반에서 5등 안팎. 고교 진학때 음악과 체육등 예능과목 성적이 저조한 탓에 중학 졸업성적이 전교 상위 3.7%로 과학고 지원자격인 3%이내에 들지 못했지만 전국수학경시대회에서 장려상으로 입상한 경력을 인정받아 겨우 지원자격을 얻는 행운을 안았다."고 한다.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부 물리학과에 99학번으로 수석 입학했으며, 7학기(3년 6개월)만에 조기졸업했다. 2003년 8월 12일, 미국 MIT 대학원 물리학과로 유학을 떠나# 이학박사 학위를 받고, 이후 하버드 의대로 건너가 박사후연구원 (Post-Doc.) 신분으로 시스템 생물학 ( system biology )을 연구했다. '동물 성장판의 세포와 뼈 길이 사이의 관계'에 논문을 2013년에 발표하며, ‘네이처 (Nature)’지의 논문에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수능 만점 천재 소녀, 15년 후 ‘뼈 성장의 비밀’ 풀다
2020 수능 성적 발표…수능 만점자들은 뭐하고 지낼까

3. 여담


이 문서에 서술되어 있는 그녀 및 그 가족들의 행적은 공부 쓴소리의 일종이면서 흔히 자기개발서에 많이 나오는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이다."'''라는 말의 모티브로 여겨진다.
모티브일 수 있는 이유는, 당시 또래 여고생들은 응답하라 1997성시원처럼 H.O.T.젝스키스 오빠들을 걱정하였고, 이들의 콘서트가 열릴때마다 정부에서도 조퇴금지령을 내리는 등 여러 대책을 세웠던 시절이었는데, 수능 만점 후 "H.O.T. 멤버 중 누구를 가장 좋아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H.O.T.가 뭐죠?"'''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2]
이렇듯 H.O.T.를 모르고 살았을 정도로 공부에 매우 열정적이었고, 자기 앞가림을 잘하는 그녀 및 가족들(특히 아버지)의 행적이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었고, 이에 교육계와 경제계 그리고 서울특별시 강남8학군 지역 학부모 등이 면학 및 워라하 분위기 조성을 위해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이다"란 말을 만들어냈던 것으로 사료된다.
다만 나중에 어떤 연예인의 팬인 수능 만점자[3]들도 여럿 알려지면서, 위와 같은 명언이 어느 정도는 무색해진 감이 있다.

4. 관련 기사


오승은의 인생 노트 수능 사상 첫 만점자 14년 뒤 뼈 성장의 비밀 풀다
[1] IQ 150은 멘사 가입 커트라인이다.[2] 혹은 에이치오티가 이니라 '''핫'''이 뭐냐고 물어봤다는 설도 있다.[3] 대표적인 케이스가 전소미의 팬이였던 울산학성고의 이영래가 있다. 심지어 최근에 WIZONE인 수능 만점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