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H.O.T.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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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대상 대상'''
임창정
'''그때 또 다시'''
(1997년)

'''H.O.T.

(1998년)'''

조성모
'''For Your Soul'''
(1999년)

'''가요대제전 대상'''
김건모
'''스피드'''
(1996년)

'''H.O.T.
행복
(1997년)'''

H.O.T.
김종환
'''빛
사랑을 위하여'''
(1998년)
H.O.T.
'''행복'''
(1997년)

'''H.O.T.'''
김종환
''''''
사랑을 위하여
'''(1998년)'''

조성모
송대관
'''For Your Soul
네박자'''
(1999년)

'''가요대전 대상'''
클론
'''꿍따리 샤바라'''
(1996년)[133]

'''H.O.T.
행복
(1997년)'''

H.O.T.
'''빛'''
(1998년)
H.O.T.
'''행복'''
(1997년)

'''H.O.T.

(1998년)'''

핑클
'''영원한 사랑'''
(1999년)


'''음반 대상'''
김건모
<김건모>
(1996년)

'''H.O.T.
<행복>
(1997년)'''

김종환
<사랑을 위하여>
(1998년)

[image]
'''서울가요대상 대상'''
클론
<꿍따리 샤바라>
(1996년)

'''H.O.T.
<We are the Future>
(1997년)'''

H.O.T., 젝스키스
<, 커플>
(1998년)
H.O.T.
<We are the Future>
(1997년)

'''H.O.T.''', 젝스키스
<'''''', 커플>
'''(1998년)'''

조성모, 핑클
<슬픈 영혼식, 영원한 사랑>
(1999년)

'''MTV VMA
비디오 뮤직 어워드
'''
[image]
'''International Viewer's Choice For Korea'''
'''16회
(1999년)'''
'''"Make A Line(열맞춰)" - '''H.O.T.


(위) 토니 안장우혁문희준
(아래) 이재원강타
<colbgcolor=#FFFFFF><colcolor=#000000> {{{#!wiki style="margin:-10px -10px"

'''H.O.T.'''
에이치오티
}}}
'''그룹명'''
'''H.O.T.'''
'''에이치오티'''
'''H'''igh-five '''O'''f '''T'''eenagers (약자)
'''장르'''
댄스, 발라드
'''리더'''
문희준
'''활동 기간'''
1996년 9월 7일 ~ 2001년 5월 13일
2018년 2월 17일 ~
'''데뷔'''
1996년 정규 1집
We Hate All Kinds Of Violence
(데뷔일로부터 '''10304일'''째)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 (1996년 ~ 2001년)
'''팬덤'''
Club H.O.T.
'''공식색'''
'''하얀색'''
'''사이트'''

1. 개요
2. 상세
2.1. 그룹명
2.2. 멤버
4. 평가
4.1. 장르
4.2. 실력
4.2.1. 보컬/랩/라이브
4.2.2. 댄스/퍼포먼스
4.2.3. 작사/작곡/편곡
4.3. 표절 논란
5. 영향과 파급 효과
6. 해체
6.1. 노예계약
6.2. 개인 활동 및 이슈
6.3. 재결합
7. 단독 콘서트
8.1. 팬픽 문화의 시초
9. 수상 경력
9.1. 시상식
9.2. 가요 프로그램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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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녕하세요 H.O.T. 입니다. 키워주세요!'''

1996년 9월 7일에 SM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데뷔한 대한민국의 5인조 보이그룹이다. 2001년 5월에 해체되었다가, 2018년 2월에 재결합했다.

2. 상세


사실상 96년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 이후, 대한민국 최고의 이슈메이커이자 대중문화계 아이콘 그 자체였으며 당시 대한민국에서 이들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인기가 상상을 초월했다. 음악과 멤버 구성에서부터 패션, 활동 방식, 팬클럽 등 H.O.T.가 하는 모든 것들이 유행이 되면서 가요계의 판도를 바꾸었다.
데뷔하자마자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1990년대 후반 대한민국 대중가요계를 평정한 아이돌 그룹'''으로 중화권 시장까지 사로잡아 한류의 문을 연 그룹이다.
[출처: 중앙일보] 중국서도 H.O.T 열풍…베이징콘서트 표 동나
아이돌 그룹 최초로 연간 최다 음반 판매량을 달성하였고, 방송 3사 가요대상 그랜드 슬램 달성, 자작곡으로 대상 수상, 국내가수 최초로 잠실 주경기장 공연 매진, 역대 최대 팬클럽 등 전설적인 아이돌답게 수많은 기록을 남겼다.
1996년 9월 7일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서 첫 데뷔하여 1집 타이틀곡인 학원폭력을 주제로 한 갱스터 랩 '전사의 후예'로 주목을 받았다. 1996년 10월 중순경부터 KBS 가요프로에서 10위권, MBC에서는 4위에 안착했으며 1996년 11월 17일 SBS TV가요20에서는 3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이어서 후속곡인 '캔디'[1]가 메가히트급으로 대박이 나면서 최정상의 인기를 거머쥐게 되었고, ‘행복[2], ‘We are the Future[3], ‘열맞춰’, ‘[4], ‘아이야’ 등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90년대 후반을 대표하는 아이돌 그룹으로 자리 잡았다.

'''데뷔곡 ‘전사의 후예’ MV'''

'''1집 후속곡 ‘캔디’ 무대'''

'''2집 '행복' MV'''

'''2집 'We are the Future' MV'''

'''3집 ''[5] MV'''

'''4집 '아이야' MV'''
2020년 현재는 다양한 컨셉의 아이돌 그룹들이 춘추전국시대를 이루고 있지만 1990년대 후반은 그냥 H.O.T.로 10대들이 단결할 수 있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나마 유일한 라이벌로 젝스키스가 활동했지만, 실질적인 인기는 H.O.T.의 적수가 될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었다. H.O.T.의 대성공으로 한국 대중가요계는 빠른 속도로 아이돌이 주도하는 가요계로 재편됐다. '''당장 젝스키스부터가 ‘타도 H.O.T.'를 기반으로 등장한 그룹이다.''' 그외의 수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대중음악을 다루는 프로그램엔 아이돌 그룹들이 거의 점령하게 되었다.[6] 1990년대 후반 대중가요계의 판도를 바꾸는 변화의 시초격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돌 그룹이다.[7]
1987년에 데뷔한 소방차가 한국 아이돌의 태동이었고 1992년에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이 대중문화와 가요계의 판도를 바꾼 K-POP의 시발점이라면, H.O.T.는 아이돌 그룹의 정의를 완성하며 본격적인 아이돌 시대를 연 그룹이다. 현재 거의 모든 아이돌 그룹들이 담당하고 있는 구성들인 메인 보컬(강타), 리드보컬(문희준, 토니 안), 래퍼(장우혁, 이재원) 등의 구성이나 성격적/캐릭터적 설정들인 만능 재주꾼 리더(문희준), 대표 비쥬얼(강타), 댄디한 귀공자(토니 안), 쿨한 카리스마(장우혁), 순수한 막내(이재원) 등 현재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에게 등장하는 기믹과 컨셉적 역할들을 최초로 완벽히 구현한 그룹이다.
실제로 2집의 수록곡인 Go! H.O.T.! 의 가사에서 멤버들의 이미지를 위트 가이 희준, 섹시 가이 강타, 무드 가이 토니, 와일드 가이 우혁, 샤이 가이 재원이라고 칭했으며 1집 캔디 때부터 멤버 각자에게 고유 번호[8]와 고유 컬러[9]를 부여했다.[10] H.O.T.의 아이돌 그룹의 구성은 나중에 거의 모든 아이돌 그룹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당장 H.O.T.가 데뷔하고 바로 데뷔한 '''젝스키스, NRG, 클릭비, 신화, god''' 등 다른 1세대 남성 아이돌 그룹들도 H.O.T.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나 당시 아이돌 업계에서 나름 선구자였던 DSP의 이호연 사장은 '''H.O.T.의 성공을 보고 급하게 듀엣에서 6인조 그룹으로 노선을 수정해''' 젝스키스를 데뷔시켰다.[11]

2.1. 그룹명


이 그룹의 정확한 이름은 'H.O.T.'로 쓰며 High-five Of Teenagers의 약자로 '10대들의 승리'를 의미한다. 앨범 재킷에 확인해보면 Teenagers 하고 확연히 표시되어 있음에도 복수가 아닌 Teenager 단수로 사용하는 이들이 간혹 있다.[12]
초창기에는 너도 나도 '핫'으로 읽는 통에 난감했던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첫 데뷔 무대에서 김혜수는 H.O.T.와 '핫'을 동시에 사용하기도[13]. 당시엔 H.O.T.를 어떻게 읽느냐로 신세대와 구세대를 판단하기도 했다. H.O.T.가 한창 인기 있었을 땐 핫이라고 읽으면 구세대, 에이치오티라고 읽으면 신세대였으나 H.O.T.(.빼먹지마세요)가 해체된 후에 태어난 아이들이 군대에 가 있는 2021년 현재는 에이치오티라고 읽으면 구세대, 핫이라고 읽는 쪽이 신세대라고.

2.2. 멤버


<rowcolor=#000000> '''이름'''
'''출생'''
'''포지션'''
'''상징색'''
문희준
1978년 3월 14일[14]
'''리더''', 리드댄서, 리드보컬, 리드래퍼
'''노란색'''
장우혁
1978년 5월 8일
'''메인댄서, 메인래퍼'''
'''파란색'''
토니 안
1978년 6월 7일
리드보컬, 리드래퍼(메인 영어래퍼)
'''빨간색'''
강타
1979년 10월 10일 (음력)
'''메인보컬'''
'''초록색'''
이재원
1980년 4월 5일[15]
리드래퍼
'''주황색'''
H.O.T. 멤버들의 포지션을 현재 기준으로 정확히 구분하기는 어렵다. 아이돌 1세대는 활동 당시에 멤버들의 포지션을 메인,리드 등으로 세세하게 구분하지 않았다. 주로 강타를 리드보컬, 문희준과 토니안은 서브보컬, 장우혁, 이재원은 래퍼라고 소개하였는데 당시의 리드보컬은 현재 기준으로 메인보컬이며, 서브보컬은 지금의 리드보컬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H.O.T.는 다른 그룹들과 달리 보컬 멤버인 토니안과 문희준이 대다수 곡에서 랩 파트를 함께 맡아 불렀다. 토니안은 H.O.T. 노래의 모든 영어랩을 담당한 메인 영어래퍼이기도 하다. 강타 역시 전사의 후예, 푸하하, NBK 등에서 랩파트를 부른 적이 있다. 따라서 위의 포지션은 현재의 기준에 맞춰 임의적으로 구분한 포지션이며 그룹의 특성상 포지션 구분이 유의미하지는 않다. 센터 또한 고정되지 않았다. 강렬한 노래에는 주로 장우혁, 발라드는 강타, '환희'에서는 토니안이 센터를 하였듯이 곡의 이미지에 따라 센터도 변화를 주었다.
참고로 원빈이 데뷔 전에 SM에 오디션을 본 적이 있었는데, 당시 이수만이 원하던 컨셉과는 이미지가 안 맞아서 탈락했다고 한다.[16] 만약 붙었다면 십중팔구 H.O.T. 멤버가 되었을 거라고. 또한 김종민 역시 이 당시에 오디션을 봤었는데 '''"백댄서부터 시작하라"'''는 말을 듣고 탈락인 줄 알고 스스로 그만뒀다고 한다.[17] 하지만 이후 문희준이 밝히기로 '''그게 합격 통보였다고'''. 만약 김종민이 그대로 남았다면 김종민 역시 H.O.T. 멤버가 되었을 확률이 높다. 이외에 개리[18], 앤디[19], 황대균, 장용진[20] 등 여러 후보가 있었다.[21]

데뷔 전 연습 모습[22]

3. 음반 목록



총 판매량: 6,604,058장
H.O.T. 19주년 : 2nd Listen[23]

4. 평가


현재는 아이돌 시장이 케이팝 시장을 견인하며 나름의 영역으로 존중받고 있지만, 아이돌이 처음 등장했던 90년대 후반만해도 ‘아이돌’이란 단어조차 생소했으며 개념이 정립되지 않아 아이돌 그룹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24] 그중에서도 한국형 아이돌의 시초이자 얼굴격이었던 H.O.T.는 언론과 평론가들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10대들은 왜 이들에게 열광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이들의 인기요인을 분석하는 칼럼이나 뉴스 보도도 등장하였다.
부정적인 평가로는, ‘기획사의 철저한 전략으로 만들어진 상품이다’, ‘10대 청소년들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이 아닌가 염려가 된다’, ‘기획사에서 만들어주는 음악을 한다.’ 등이 주요 비판 내용이었다. 한 방송사에서는 학업에 충실해야할 학생들이 돈벌이에 이용돼서는 안된다며 고교생 가수의 출연을 금지한다는 방침을 발표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기사[25] H.O.T.의 대성공으로 아이돌 그룹들이 가요계를 장악하게 되자 성인층 가수들의 설 자리가 없다는 비판도 많았다. 하지만, 성인층 가수들이 설 자리가 없어진 실질적인 이유는 H.O.T.가 데뷔하기 이전부터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이후 한국 대중가요계의 판도가 변했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분석도 있었다. 라디오 음악PD들이 집필한 <에쵸티 즐거운 반항>이란 책에서는 이들의 인기요인을 ‘차별화와 일체화’ (각기 개성이 뚜렷한 멤버구성으로 ‘다름’을 내세우면서도 집단 유행에 뒤쳐지지 않는 10대들의 특성을 충족), ‘재빠른 변신’ (곡마다 달라지는 빠른 컨셉 변화로 급변하는 젊은이들의 취향에 기민하게 대응), ‘착한 이미지’(H.O.T.에 열광하는 자녀들을 걱정하는 부모들을 안심시키고 좋아해도 무해하다고 허락하게끔 만든 모범생 이미지)라고 분석하였고 이전까지 이런 지위를 누린 가수는 없었다고 평하였다.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성장기에 영향을 줬던 것들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 위안과 스스로의 격려는 세월이 흘러도 잔존하게 마련이다. 당시 돈을 타쓰며 눈치 보던 세대는 이제 고가의 콘서트 티켓을 당당히 구매하는 문화의 핵심 소비자가 됐다. 1990년대의 음악이 세월을 견디는 까닭이다.","화려한 귀환을 시도하고 있는 1세대 아이돌 그룹은 오늘의 K팝 한류 기반을 만든 초석이 됐다. 당시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차별화가 만들어낸 성공한 콘텐츠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돌 그룹 H.O.T.의 자존감은 우리 대중문화계 지형도에서 혁혁한 성과다."

-강태규 대중문화 평론가-

사실 H.O.T.는 대중들의 선입견과는 달리, 음악이나 컨셉, 안무 등의 창작 전반에 많이 참여한 아이돌이기도 하다. 안무는 문희준장우혁이 거의 다 만들었고, 데뷔 초부터 멤버들이 스스로 작곡 공부를 하였으며[26] 3집부터 모든 멤버가 앨범제작 전반에 참여하여 타이틀곡[27]이나 후속곡[28]도 자작곡으로 활동하였다. 데뷔 초반의 '기획형 그룹' 이미지가 강한 탓에 이런 크리에이터적인 면모는 많이 저평가되었고 현재도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4.1. 장르



간단하게 보는 주요 활동곡들.
활발히 활동하던 당시에는 일종의 패턴이 있었다. 앨범 발표 시 첫 타이틀곡은 사회비판적인 가사와 강렬한 사운드의 SMP(SM Music Performance)가 인상적인 곡으로 활동한 뒤, 후속곡으로는 밝고 귀여운 곡이나 얌전한 발라드곡으로 활동했다. 차후 같은 회사의 후배 가수들도 이어 받게 되는 SM이란 기획사 전체의 패턴이 되는데, S.E.S.의 경우는 사회비판적이라곤 할 수 없지만 상대적으로 비대중적인 장르의 곡[29]을 첫 번째 타이틀로 내세운 뒤 후속곡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의 노래[30]로 활동했다.
이렇다보니 보통은 타이틀곡보다 후속곡이 대중들에게 더 많은 인기를 얻는 경우가 많았다. 캔디, 행복, 빛 등이 대표적. 이 패턴화된 것을 두고 각종 평론가들이 지적하자[31] 4집에 이르러서는 타이틀곡 '아이야'에 이어 후속곡인 '투지'까지 SMP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10대들의 우상', '10대들의 대변인'이란 수식어가 생기면서 끊임없이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고자 했다. 이 부분에서 서태지의 경우는 아티스트적인 면모로 부각되었으나 H.O.T.는 기획사의 상술로 치부[32]당했다. 하지만 H.O.T.는 메시지의 포커스를 10대에 더 맞춰내고 더 적극적으로 "이제는 모든 세상의 틀을 바꿔버릴거야!"[33]라고 외침으로써 서태지와 아이들의 빈자리를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1집 '전사의 후예'는 학교 폭력, 2집 '늑대와 양'은 전쟁, 3집 '열맞춰'는 서열주의, 성과주의에 대한 비판, 4집 '아이야'는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고의 추모곡으로 인기를 얻었다.[34][35] 4집은 H.O.T.의 음반 중 가장 명반으로 손꼽히는 음반이기도 하다.[36] 5집 '아웃사이드 캐슬'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주제로 삼았다. 이 외에도 교육 문제, 물질만능주의 비판('We are the future', 'Korean Pride', '홀로서기'), 자살 방지('Monade'), 이산가족('파랑새의 소원'), 소년소녀가장('내가 필요할 때', '버려진 아이들'), 안티('You got gun', 'Pu Ha Ha'), IMF경제위기 극복 응원송('빛', 'H.O.T.-아빠 사랑해요'), 어머니('My mother'), 독립('8.15'), 마약중독('Illusion')[37] 등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면서 10대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공감을 받았다.

'''1집 메들리 <널 사랑한 만큼> • <내가 필요할 때> • <오늘도 짜증나는 날이네>'''

'''2집 타이틀곡 <늑대와 양> MV'''

'''2집 커플링곡 <자유롭게 날 수 있도록>'''

'''3집 타이틀곡 '열맞춰' MV'''

'''3집 커플링곡 <우리들의 맹세> MV'''

'''4집 후속곡 <투지>[38] MV'''

'''4집 후속곡 <환희>[39]'''

'''4집 수록곡 <8.15>[40] short ver.'''

'''4집 수록곡 <Do Or Die>[41]''' 라이브

'''5집 수록곡 <파랑새의 소원>[42]'''

'''5집 수록곡 <버려진 아이들>[43]''' 라이브

'''5집 수록곡 <N.B.K.>[44]''' 라이브
매 앨범마다 기대치와 주목도가 높았던 만큼, 활동 당시에 굉장히 트렌디하고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였다.
  • 얼터너티브 락/클래식/댄스 크로스오버(SMP): 아이야, 열맞춰, 투지, NBK, Outside castle, Age of Peace
  • 갱스터 랩: 늑대와양, 전사의 후예, Monade, Korean pride
  • 힙합: Puhaha, You got gun, Do or die, 버려진 아이들, 8.15, My mother, Tragedy, Good-bye 이젠, in I, 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 홀로서기, 열등감
  • 테크노: op.t, 영혼, 투혼, 테크노러브[45]
  • 드럼 앤 베이스: 환희, 신비, the Best, illusion
  • R&B: The way that you like me, 자유롭게 날 수 있도록, 후에, 우리들의 맹세, Time will tell, 널 사랑한 만큼, 내가 필요할 때
  • 발라드: 축복, For 연가, 꿈의 기도, 늘 지금처럼, 하나라는 아름다운 느낌, 너와 나
  • 트립 합/팝: Wedding X-mas
  • Funky 댄스: 빛, 캔디, 행복, 파랑새의 소원, H.O.T.(House of trust, 부제: '아빠 사랑해요'), 그래 그렇게, 다시 시작해, 12번째 생일
  • 유로비트 댄스: We are the future

4.2. 실력



4.2.1. 보컬/랩/라이브


1집에선 강타에게 파트 비중이 치중되었고[46] 데뷔곡인 전사의 후예에서는 강타도 랩을 하는데 그러다 보니 노래의 80% 정도를 강타가 다 부르고 나머지 멤버들은 거의 한 파트씩 부르곤 했다.[47] 그러나 1집 후속곡 '캔디'는 문희준토니 안이 보컬 파트를 함께 담당하고 장우혁이 랩파트를 담당했으며, 특히 이 노래의 킬링파트라 할 수 있는 후렴구 '단지 널 사랑해'는 토니 안이 불러[48] 다른 멤버들의 파트가 많아졌다. 또한 1집 수록곡 중 '널 사랑한만큼' 등에선 문희준이 미성 보컬을 뽐내고, '넌 fast 난 slow' 등에선 토니 안이 고음파트를 맡아 로우톤의 음색을 뽐내는 등[49] 보컬파트 담당 멤버들의 준수한 보컬 실력도 감상할 수 있다. 2집부터 파트 정리가 되면서 파트가 애매했던 이재원이 래퍼로 굳혀지고, 리드보컬인 문희준토니 안의 보컬비중이 더욱 상승하였고 3집부턴 두 사람이 강타보다 더 많은 파트를 맡기도 했으며 이때부턴 대부분 노래의 보컬파트를 보컬멤 세 사람이 똑같이 분배받았다.[50] 토니 안캔디의 킬링파트인 후렴구를 부르는 것을 시작으로 다수의 노래에서 후렴구 보컬파트를 담당했고, 문희준 역시 캔디 등 다수의 노래에서 보컬을 맡았는데 '행복','빛' 등의 히트곡과 수록곡 '후에...','하나라는 아름다운 느낌','너와나' 등 다수의 수록곡에서 이 둘의 매력적인 보컬을 들을 수 있다.[51] 3집부터 모든 자작곡의 랩들을 멤버들이 직접 메이킹하였고 '환희'를 비롯한 멤버들 자작곡의 영어랩은 토니 안이 메이킹하였다. 장우혁은 랩파트 중 주로 샤우팅랩을 담당하여 짐승랩의 원조가 되었으며 이재원은 상대적으로 라이트한 랩파티를 담당했는데 랩톤이나 딕션이 괜찮은 편이다.
SMP의 원조로서 카리스마있는 퍼포먼스를 잘 소화하였다. 퍼포먼스를 중시하다보니 립싱크 무대를 주로 하였다. 90년대만해도 헤드셋 음향 기술이 발전되지 않아 라이브를 하려면 손에 마이크를 들어야했고 춤을 생략해야했기 때문에 퍼포먼스를 다 보여주기 위해서는 립싱크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52] (이건 H.O.T.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9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대부분의 가수들이 립싱크를 하던 시절이었다. [53])그렇지만 콘서트 영상이나 라이브 영상들을 찾아보면 안정적인 라이브를 하는 영상을 찾을 수가 있다.1집에 비해 2집 이후 라이브 영상을 보면 급성장한 실력들을 볼 수 있고 ‘늑대와양’, ‘열맞춰’, ‘we are the future’, ‘너와 나’, '우리들의 맹세', '후에', 'The way that you like me', 'Pu Ha Ha' 등의 라이브 무대들이 존재하며 2집 ‘행복’은 지상파 음악방송의 거의 대부분을 라이브로 활동했다. 라이브무대뿐만 아니라 메들리 무대도 많이 했는데 라이브일 때는 일부러 추임새를 넣었으며 그건 이후 솔로무대에서도 계속되었다. 2집부터 매년 개최했던 콘서트들에서도 대부분 립싱크 없이 라이브로 소화했다. 토니 안이재원jtL시절 각각 메인보컬과 서브보컬을 담당했다. 토니 안은 타고난 음색을 바탕으로 jtL의 모든 수록곡들과 솔로곡에서 상당한 보컬실력을 뽐내는데 특히 jtL의 'Without Your Love'와 솔로곡 '유추프라카치아'의 고음 애드리브가 인상적이다. 이재원 역시 jtL의 '오랫동안'과 스티비원더 리메이크 곡 'one night lover'에서 꽤 준수한 보컬 실력을 들을 수 있다.

2018년 10월 17년만에 연 H.O.T. 콘서트에서는 멤버들이 빡센 춤을 추며 모든 곡을 밴드 라이브로 소화하였다.

''''우리들의 맹세'[54], '후에'[55] 라이브'''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 공연에서 ‘열맞춰’ 라이브'''

'''2집 ‘행복’ 라이브 무대'''

'''4집 'The way that you like me' 라이브'''


'''4집 'Pu Ha Ha' 라이브''' [56]

4.2.2. 댄스/퍼포먼스


안무와 컨셉 등에있어 많은 부분들을 스스로 창작하였다.
문희준은 데뷔 전 부터 '송파구 노란바지'로 유명한 춤꾼이었고, 장우혁은 문화부장관배 제 3회 전국 청소년 창작댄스 대회 왕중왕전에서 SM에 스카웃 되었다. 이 둘이서 콘서트 곡 까지 H.O.T.의 거의 모든 활동곡의 안무를 만들었는데,[57] 비교적 쉬우면서 포인트 안무를 잘 만들었던 문희준에 비해[58] 장우혁의 안무는 어려운 기교가 많이 들어가 안무 지분은 문희준장우혁보다 더 많았다고 한다.[59]
댄스 트레이닝도 문희준장우혁이 직접 멤버들을 가르쳤고 매니저가 연습 결과를 검사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60]
대표적으로 '캔디'의 안무는 당시 전국의 초중고 학생들이 춤을 외울 정도로 유명하며 문희준이 바닥에 앉아 엉덩이를 튀기는 '파워레이서춤'과 장우혁의 '망치춤'은 그들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늑대와양', 'We are the future'의 고난이도 안무와 '진공관춤' 역시 많은 청소년들이 따라하였다. 비보이 출신 연기자 박재민은 수많은 춤꾼들과 댄서들이 H.O.T.의 춤을 보고 댄서의 꿈을 키우게 되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2집 ‘We are the future’ 무대'''

'''2집 타이틀곡 '늑대와 양' 컴백 무대'''

'''4집 ‘환희’ 무대'''[61]

'''4집 '투지'[62] 무대'''
또한 자신들의 의상 컨셉 및 타이틀곡 선정 등의 작업을 회사의 의견에 일방적으로 맡기지 않고 주도적으로 했으며 작사/작곡 작업을 시작한 후에는 직접 앨범 프로듀싱을 맡기도 했다. 회사에서는 '캔디'를 데뷔곡으로 하려고 했으나 멤버들이 '전사의 후예'를 강력하게 밀어 데뷔곡이 바뀌었다고 한다. '캔디'의 의상 컨셉도 멤버들의 의견이 반영되어 만든 컨셉이며, 장우혁이 직접 구상한 의상을 그림으로 그려 코디에게 주면, 그 그림대로 코디가 의상을 제작하여 주었다고 한다. 4집 ‘아이야’와 ‘투지’ 활동기에는 멤버들이 머리를 샛노랗게 염색하였는데, 두발규제 방침이 있었던 KBS에서 H.O.T.에게 두건을 쓰고 출연해달라고 요청하였으나 H.O.T.멤버들이 ‘두건 유행은 이미 지났고[63] 팬들에게 방송사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며 거절하여 4집 때는 아예 KBS에 출연하지 않았다. 4집 활동 중간에 SMSBS의 마찰로 인해 투지 활동부터 4집 활동 마감때까지 지상파는 MBC만 출연했다. (SBS가 H.O.T. 컴백쇼를 MBC에 뺏겼기 때문이라는 말이 돌았는데 다음 5집땐 SBS에서 마련한 한시간짜리 컴백쇼로 컴백을 했다.)

'''4집 콘서트 중 ‘아이야’ 공연'''

4.2.3. 작사/작곡/편곡


3집부터 '''멤버 전원이 작곡, 작사 뿐만아니라 편곡, 믹싱, 마스터링, 스크래치'''[64]까지 직접하며 뮤지션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했다.[65]
3집의 후속곡인 '빛'은 강타가 작사/작곡/편곡한 노래며, 4집의 후속곡인 '투지'는 문희준이 작사/작곡/편곡했으며, 4집의 세번째 활동곡인 '환희'는 강타가 작사/작곡/편곡한 곡이다. 또한 5집 타이틀곡인 'Outside Castle'은 문희준이 작사/작곡/편곡한 곡이며, 5집의 후속곡인 '그래! 그렇게!'는 강타가 작사/작곡/편곡한 곡이다. 모든 자작곡의 영어랩은 토니 안이 메이킹하였다. 백미중에 백미로 뽑히는 '환희'의 영어랩 역시 토니 안이 작사.[66] 문희준은 ‘Outside Castle’의 오케스트라 선율을 샘플링이 아니라 직접 작곡해 만드는가 하면 ‘투혼’, ‘영혼’, ‘op.t’ 를 통해 ‘스페이스테크노’[67] 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드는 등 특출난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68]
수록곡 중에는 3집 'You got gun'(이재원 자작곡)[69], 'Wedding X-mas'(강타 자작곡), '홀로서기'(토니 안 자작곡), 4집의 '영혼'(문희준 자작곡), 'Do or die'(장우혁 자작곡), 5집의 'NBK'(토니 안 자작곡) 가 숨은 명곡으로 인기를 끌었다.
H.O.T.의 데뷔 시기는, 아티스트 이미지의 서태지와 아이들이 인기가 있었던 바로 직후였고 이로인해 선배뮤지션들, 특히 서태지와 자주 비교 당하였으며 아이돌로서 충분히 거대한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안티 및 평가절하에 시달려야 했다. 이제 갓 데뷔한 고교생에 불과한 이들에게 '작사, 작곡, 연주, 프로듀싱 등 의 모두'를 소화해내는 뮤지션이 아니라고 깎아 내렸던 것은 과도한 흠집 내기 였다.[70][71]
H.O.T.는 아티스트로서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데뷔초부터 작곡을 배웠고[72]3집부터 자작곡을 앨범에 싣기 시작하여 '''5집은 멤버들 만으로 올 프로듀싱'''을 하였다. '''20년이 지난 현재에도 모든 멤버가 편곡까지 직접 하는 그룹이 흔치않음'''[73]을 감안할 때, "완성형으로 성장한 뮤지션"이라고 충분히 더 큰 찬사를 보낼만 했지만 당시에는 안티 세력과 편견도 만만치 않아 저평가되었다.
해체 후 문희준은 락, 강타는 재즈와 발라드, 장우혁, 토니 안, 이재원jtL을 결성하여 댄스음악과 힙합을 추구하며 자작곡을 꾸준히 창작하였다. 문희준의 솔로 초반의 곡들은 락매니아들과 안티들에게 집중공격을 받았으나 SM을 나가고 ps엔터테인먼트를 직접 설립한 후 낸 앨범인 'triple X' 부터는 서서히 호평을 받기 시작하였다. 문희준은 2001년 그룹 밀크(걸그룹)의 앨범 프로듀싱을 담당하여 프로듀서로서의 역량을 발휘하기도 했다. jtL역시 'A better day'(이재원 작사/편곡), '행복했던 기억들은'(토니 안 작사), 'Without your love'(장우혁 작사/작곡), 'Enter the dragon'(jtL 공동작사/작곡) 등으로 활동하며 작사작곡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jtL 2집 수록곡 'My leçon'[74](토니 안 작사/작곡/편곡)은 인도네시아에서 국민가요급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재원2017년 태국 오디션프로의 음악프로듀서를 맡았다. 강타는 '북극성', '상록수', '프로포즈', ‘그 해 여름' 등 다수의 자작곡들을 히트시켰고 이지훈, 신혜성 듀엣의 ‘인형’, BoA의 '늘', 소녀시대의 '7989' 등 후배가수들에게도 곡을 주거나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음악감독을 맡는 등 싱어송라이터로서 자리잡았다.
[자작곡]
3집 (Resurrection)
1. '''빛 (Hope)''' : 작사/작곡/편곡 강타 (후속곡)
3. 투혼(鬪魂) : 작사/작곡/편곡 문희준
4. '''우리들의 맹세''' : 작사 강타, 유영진 작곡/편곡 유영진 (커플링곡)
6. In I -이세상에 버려진 모든 아이들을 위하여 :작사/작곡/편곡 문희준
8. Techno Love : 작사/작곡/편곡 강타
9. You Got Gun? : 작사/작곡/편곡 이재원
10. 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 : 작사/작곡/편곡 장우혁
11. 홀로서기 (All Alone) : 작사/작곡/편곡 토니 안
12. 후에... (Since, You've Gone) : 작사/작곡/편곡 문희준
14. Wedding X-Mas : 작사/작곡/편곡 강타
4집 (I Yah!)
1.'''투지(鬪志) (Get It Up!)''' : 작사/작곡/편곡 문희준 (후속곡)
7. 나의 너 (My Girl) : 작사/작곡/편곡 강타
8. 8.15 (제 2의 독립을 위하여...) : 작사/작곡/편곡 문희준
10. Korean Pride : 작사/작곡/편곡 토니 안
12. Do Or Die : 작사/작곡/편곡 장우혁
14. 축복 (Celebrate) : 작사/작곡/편곡 강타
16. 영혼 (Soul) : 작사/작곡/편곡 문희준
18. Pu Ha Ha : 작사/작곡/편곡 이재원
20. '''환희''' : 작사/작곡/편곡 강타 (후속곡)
22. 다시 시작해 : 작사/작곡/편곡 이재원
24. 고마워, 미안해 : 작사/작곡/편곡 강타
평화의 시대 O.S.T (Age Of Peace)
1. Age Of Peace(Instrumental) : 작곡/편곡 문희준
2. '''OP.T''' : 작사/작곡/편곡 문희준 (타이틀곡)
3. OP.T#1-사투 : 작곡/편곡 문희준
4. OP.T#2-ZEUS : 작곡/편곡 문희준
5. THE BEST : 작사/작곡/편곡 강타
6. TTTRACK#1 : 작곡/편곡 강타
7. TTTRACK#2 : 작곡/편곡 강타
5집 (Outside Castle) [75]
1. '''Outside Castle''' : 작사/작곡/편곡 문희준 (타이틀곡)
2. 신비 (Delight) : 작사/작곡/편곡 강타
3. '''그래! 그렇게! (We Can Do It)''' : 작사/작곡/편곡 강타 (후속곡)
4. My Mother : 작사 장우혁 작곡 장우혁, 강타 편곡 장우혁, 송광식
5. 꿈의 기도 (Pray For You) : 작사/작곡/편곡 강타
6. 파랑새의 소원 : 작사/작곡/편곡 문희준
7. Time Will Tell : 작사/작곡/편곡 이재원
8. One Last Love : 작사 토니 안 작곡 토니 안, 윤치웅 편곡 토니 안, 윤치웅
9. Good-Bye 이젠 : 작사 장우혁 작곡 장우혁, 강타 편곡 장우혁
10. '''For 연가(姸歌)''' : 작사/작곡/편곡 문희준 (커플링곡)
11. Illusion : 작사/작곡/편곡 강타
12. Natural Born Killer(NBK) : 작사/작곡/편곡 토니 안
13. 버려진 아이들 : 작사/작곡/편곡 이재원
14. 늘 지금처럼 : 작사/작곡/편곡 강타

'''5집 타이틀곡 "Outside Castle"[76]'''

4.3. 표절 논란


  • 전사의 후예 : 앨범의 자켓사진은 밴드 랜시드의 앨범자켓 표절 의혹을 받았다. 다만 이 곡의 경우, 곡의 사운드나 분위기가 흡사할 뿐 랩이 두 마디 이상 유사한 부분은 없어 표절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고[77] 단지 레퍼런스를 한 것으로 보인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백홈’ 역시 싸이프레스 힐 표절의혹을 받았으나 마찬가지로 장르의 특성상 창법이나 사운드가 유사했을 뿐 랩이나 멜로디가 같은 부분은 없었다. 두 경우 모두 당시 갱스터란 장르가 생소한 탓에 생긴 오해다. [78]
강타는 2017년 임진모와의 인터뷰에서 '몇 년 후에 미디를 접하면서 알게 됐는데, '전사의 후예'에 있는 베이스 루프가 당시 갱스터 랩 하는 뮤지션들이 많이 쓰던 샘플 시디에 있던 루프였다.’라고 해명한 바 있다.
  • We are the future : 댄스 브레이크 간주 부분이 크라프트베르크의 'Tour De France', 슬레이어즈 넥스트 오프닝 Give a Reason 등의 짜깁기 표절 의혹을 받았다. 다만 해당 샘플은 당시 작곡가들 사이에서 샘플 CD로 구매할수 있었다는 얘기도 있다. [79][80]
  • 행복: 프랑스 캐롤이자 찬송가인 Angels We Have Heard On High(한국 번역명 '천사들의 노래가')와 똑같아 표절 의혹을 받았다#. 사실 이는 표절이 아닌 샘플링으로, 당시 샘플링에 대한 대중의 이해도가 낮아 표절로 의심을 받은 케이스이다. 2집 앨범 부클릿의 행복 설명 부분에도 샘플링이 언급되어 있다. 이렇게 유명한 클래식곡의 멜로디라인을 차용하는 일은 가요계에서 흔하며, 기본적인 반주의 모티브로 원곡을 사용하고 있을 뿐 전혀 다른 주제를 중심으로 곡이 전개되므로 표절은 아니다. 비슷한 사례로는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 헬로비너스의 차 마실래?, 악동뮤지션의 오랜날 오랜밤 등이 있다.
  • 열맞춰: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Killing In The Name'의 표절 의혹을 받았다. 당시 유명 실용음악과 학생들을 상대로 표절 여부를 의뢰했을 때 표절이라 판정한 사람이 과반수가 넘을 정도였다.[81] [82]
  • 나의 너: '나의 너'의 후렴부는 재닛 잭슨의 'Together Again' 후렴부와 멜로디 진행이 흡사하여 논란이 있었다.
행복의 작곡가는 장용진이고 나의 너의 작곡가는 강타다. 상기된 나머지 곡들은 유영진의 작품.

5. 영향과 파급 효과


당시 영세 기획사였던 SM엔터테인먼트를 한국 최고의 기획사로 키워낸 그룹으로[83], 서태지와 아이들의 혜성같은 등장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10대 팬덤을 타켓으로한 기획형 아이돌의 시작이다. 이때부터 대형기획사가 철저하게 사전분석하고 조립한 아이돌의 댄스뮤직이 대중문화를 석권하고 한류의 시작이 된다.[84]
이 때 중화권에서의 인기도 엄청나서, 1998년 한국가수 최초로 중국에서 음반발매를 하였으며 한류현상의 시초가 된다. 2000년초에는 중국에서 한국가수 최초로 베이징단독콘서트를 개최하였고[85] 중국언론에선 한류가 몰아치고 있다고 보도했다.[86] 관련기사 인기의 영향으로 중국에서 한국상품들이 특수를 누리기도 했다.기사 2000년말에는 중국에서 농심의 광고모델을 하였으며영상 '당대가단'이라는 중국음악잡지에서 해외인기가수 순위 1위를 장기간 유지할 정도로 인기가 상당했다.기사 중국 언론과 매체에서는 한국은 김치와 H.O.T.의 나라라고 소개하기도 하였으며 당시 중국의 H.O.T. 팬 수가 800만명이었다는 설이 있을 정도였다.
따로 활동하지 않던 일본이나 북미와 유럽권에서도 매니아층이 있었으며, 미국 MTV VMA에서는 1999년에 'international viewer's choice'라는 부문에서 H.O.T.의 '열맞춰' MV가 수상하였다. 관련기사
해체 후에도 jtL이나 솔로 활동으로 중화권을 비롯해 인도, 싱가폴, 베트남 등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를 누리며 오늘날 글로벌한 KPOP 인기의 기반을 닦게된다.

[image]
베이징콘서트

'''1999 MTV VMA 수상 장면'''
[image]
<시사저널>에서 발표한 문화 • 스포츠인 영향력 순위에서 1999년에 종합 5위로, 배우, 가수를 통틀어 연예인 중에서는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하였다.[87]
서태지 문화를 향유하기에는 조금 어렸던 사람들 대부분(통상적으로 1996년~2000년경 초등학생~중고등학교 학생이었던 사람들)은 H.O.T.에 관한 추억들이 남아있을 것이다. 1992년~ 1995년 당시 유치원생 ~ 초등학생 때 서태지와 아이들 또는 현진영[88] 신드롬을 본 그 유치원생 및 초등학생들이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 1세대 아이돌 문화의 주축이 되었다. 실제로 서태지 세대보다 어린 사람, 1996년~2000년경에 초등학생~중고등학생이었던 사람들이 자기자신을 "H.O.T. 세대"라고 칭하는 것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흔히 서태지 세대는 70년대생(X세대)이며 H.O.T.세대는 80년대생(N세대)로 구분된다. 2010년대에 들어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을 시작으로 90년대가 재조명 되었고, <무한도전 토토가>를 비롯해 <온라인 탑골공원> 등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뉴트로'의 영향으로 새롭게 입덕하는 10대 20대팬들이 생기면서 현재는 세대통합팬덤의 형태를 띠고있다.
음반판매량은 1집 100만장으로 시작해서 2집이 150만장[89], 3집이 110만장에 4집 138만장, 5집 88만장으로 네 개의 밀리언셀러 앨범 기록을 세웠다.
“돌멩이에 H.O.T.이름만 새겨도 팔린다.”는 말이 생길정도로 H.O.T.관련 상품들이 불티나게 팔렸다. 1집 캔디 무대에서 착용했던 장갑, 가방, 모자, 먼지인형집게 등을 착용한 학생들을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그외에도 H.O.T. 사진이 들어간 공책, 지우개, 편지지, 저금통 등 온갖 학용품과 팬시상품들이 팔렸다.
1999년에는 H.O.T.자서전도 출간되었다. 출간 열흘만에 20만권이 팔려 역사상 최단 기록으로 베스트셀러 1위를 달성하며 화제가 되었다.
한불 화장품과 손을 잡고 H.O.T. 향수도 발매하였는데 출시 이틀만에 10만개가 매진되었다. 이 무렵엔 DNA 목걸이도 판매되었다.
H.O.T. 캐릭터를 그려넣은 ‘틱톡에쵸티’라는 음료수도 발매되었다. '''출시 5개월만에 4500만캔이 팔려 폭발적인 판매량으로 당시 음료업계 1위였던 코카콜라의 판매량을 앞질렀다.''' H.O.T.세대라면 소풍 날 이 음료수를 마셔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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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는 핑크, 블루, 그린 세종류. 디자인은 3종 모두 밝은 형광색으로 한것이 특징. 광고영상
2000년엔 '평화의 시대'라는 한일합작 3D입체 영화에도 출연했는데 흥행 실적 약 2만4천이라는 성과로 묻혔다.[90] 보다 보면 정말 열심히 연기하는 멤버들이 불쌍할 지경. 아이러니하게도 멤버들이 프로듀싱한 평화의 시대의 OST 음반은 30만장이 팔렸다고 한다.[91]

'''영화 평화의 시대의 사운드트랙 'OP.T' MV. 문희준이 작사/작곡/편곡을 맡았다.'''

1998년, IMF외환위기에 해외관광객 유치를 위한 국가홍보CF에 대중음악 보이그룹으로는 유일하게 출연하였다. 해당영상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대선후보 시절에도 좋아하는 가수로 H.O.T.를 꼽았고기사참조, 1998년 10월에는 H.O.T.를 청와대에 초청하여 오찬을 함께하였다. 오찬 소감 영상(30초 부터)
그 외에도 당시 해외가수에게만 대관되던 '''잠실주경기장에서 최초로 단독콘서트를 한 국내가수'''이며 콘서트를 이유로 '''지하철 막차 시간을 바꾸고 교육청에서 조퇴금지령을 내린''' 가수였다. 그리고 조용필 다음으로 많은 잠실주경기장 단독콘서트를 한 가수이기도 하다.
2018년 10월 13일~14일에 행해진 재결합 콘서트의 영향으로 명절보다 더 많은 인원이 기차를 이용하여 SRT이용객 수 최고치를 경신하였다. 기사참조

6. 해체



2001년 2월 27일, 해체 전 마지막 콘서트의 KBS 뉴스 방영 장면이다.
해체 원인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발표도 없고 관련 인물들의 말도 다 다른지라 정확한 정보는 없다. 알려진 것은 먼저 계약만료를 앞둔 멤버들이[92] 재계약 협상과정에서 일방적인 해체통보를 받았다는 것 정도[93]. 멤버 간 각각 상이한 계약 문제로 인해 일부 멤버가 반발하기 시작하고 멤버들간 불화가 생긴 것이 원인이라는 것이 중론.

6.1. 노예계약


당시 멤버 개개인이 받았던 인세가 평균 20원[94] 밖에 안 되었다는 사실이 해체 후에야 뒤늦게 드러나면서(참조)이수만은 당시 H.O.T.의 열렬한 팬이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욕을 먹게 된다. 심지어 현진영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20원이 어디냐'고 한 적이 있다.[95]
장우혁해피투게더에서 H.O.T.로 활동하며 번 돈은 거의 없었고 jtL로 활동하며 번 돈이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토니 안, 문희준 역시 H.O.T.로 활동할 때보다 이후 활동으로 번 돈이 훨씬 많았다고 밝혔다.

6.2. 개인 활동 및 이슈


문희준은 그룹 해체 이후 SM 엔터테인먼트에 남아 2001년 1집 'Alone'으로 솔로 데뷔를 했다. 주로 록음악으로 활동했다. 2집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음악방송 1위를 했다. 하지만 록커 전향 후 안티가 극심하여 기사에 악플 30만개가 달리는 유일무이한 기록을 세웠다. 당시 문희준의 모든 말과 행동이 네티즌들의 표적이 되었다. 이후 SM을 떠나 PS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여 활동하다 2005년 현역으로 군에 입대하였다. 현역제대 후 네티즌들의 여론이 바뀌었고 악플러들을 처벌하지 않고 용서하여 '문보살'이란 별명을 얻었다. 자신을 비난했던 김구라와 예능프로절친노트를 같이 찍기도 했고 간간이 음악활동을 하며 예능 MC(불후의 명곡 등)와 라디오 DJ(뮤직쇼)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2016년 결혼 발표를 하는 과정에서 팬들의 불만이 속출했고 갈등이 폭발했다. H.O.T. 팬들은 성명문을 내 그동안 문희준이 멤버들과 팬덤에게 잘못했던 일들을 모두 밝히고 4인지지[96]를 선언했다.[97] 2018년 아이오케이컴퍼니로 이적하여 토니 안, 이재원과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98] 최근 딸 잼잼이와 함께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고 있다. 문희준의 팬클럽명은 주니스트(Junist).
강타는 H.O.T. 5집 후속곡 활동 중 음주운전에 걸려 면허가 취소되었고 이로 인해 H.O.T.는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H.O.T.의 마지막 활동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게 한 강타를 원망하는 팬들도 상당히 많았다. H.O.T. 해체 이후에는 문희준과 함께 SM 엔터테인먼트에 잔류하여 2001년 1집 '북극성'[99]으로 솔로데뷔를 했고 79클럽 멤버이자 절친인 신혜성,이지훈과 함께 그룹 'S', 중화권 가수 '바네스'와 함께 '강타 앤 바네스' 등을 결성하여 그룹 활동도 했다. ‘북극성’과 ‘사랑은 기억보다’로 음악방송 1위를 했다. 아시아 활동에 매진하던 중 SM의 이사가 되었다.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쳤고 현재는 SM에서 고위 임원직을 겸임하고 있다. 한국보다는 중국에서 주로 배우 활동을 하였다.[100] 중국에서는 본명인 안칠현으로 활동했다. 2018년 에 뮤지컬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출연했다. 이어 2019년 '헤드윅'에 캐스팅되며 뮤지컬 배우로 활발한 활동이 예견되었으나 8월 양다리 논란[101]이 터져 사과문을 발표하며 뮤지컬에서 하차했고 H.O.T. 콘서트를 마친 후 현재는 활동중지 상태이다. 강타의 팬클럽명은 K.I.T(Kangta in H.O.T.)[102].

SM과 결별한 장우혁, 토니 안, 이재원은 'jtL'이라는 그룹을 결성하고 활동을 시작. 'A better day', 'Enter the dragon' 등이 히트하여 1집이 초동 약 48만장을 기록하였고 [103] 유료팬클럽 회원수 6만 5천명을 기록하며 잠실주경기장에서 팬미팅을 하였다. 비록 전소속사로부터 보이콧 등의 활동방해를 받아 국내 시상식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해외 시상식인 MTV Asia 에서 2년 연속 Favorite Korean Artist상을 수상하고 토요일 저녁 지상파에서 단독 예능 프로그램이 론칭되는 등[104]그 해 최고의 이슈메이커이자 대세 그룹이 된다. 2003년까지 활동하다 계약 종료 후 솔로의 길을 걷는다.

장우혁2005년 [105] 1집 ‘지지않는 태양’으로 솔로데뷔를 했고 X맨, 연애편지 등으로 신비주의를 깨고 왕성한 예능활동을 했다. 2집 ‘폭풍 속으로’로 음악방송 1위를 했다. 턱관절 문제로 인해 멤버들 중 유일하게 공익근무 후 제대했는데 [106] 훈련소 퇴소(기획사의 거짓해명이 불씨를 더 키웠다)와 공익 판정으로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제대 후에 가수 활동을 재개하고 독특한 안무들[107]을 선보이기도 하였으나 주로 중국에서 배우 활동을 하였다. 공백기동안 망원동에 '지능계발'이란 카페를 만들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한때 Newest 댄스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운영하기도 했다. 소속사 wh creative를 설립하여 연습생들을 키우기도 했는데 Mnet 프로듀스101 프로그램 출신 프로젝트 그룹 레인즈서성혁이 소속되어 있다 나갔다. 2019년에 신곡을 내고 다시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장우혁의 팬클럽명은 우혁35(Woohyuk35).
토니 안2004년에 자작곡 '사랑은 가질 수 없을 때 더 아름답다'로 솔로데뷔를 했고 상상플러스 등으로 왕성한 예능활동을 했다. 2006년 2집 ‘유추프라카치아’로 음악방송 1위를 했다.[108] TN엔터테인먼트[109], 스쿨룩스 등 사업 성공으로 많은 돈을 벌었고[110] 젊은 CEO 캐릭터로 좋은 반응을 얻었으나 정작 이 시기에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다고 한다.[111] 해체 직후 영주권을 포기하고 2008년현역으로 입대했는데 연예병사 동료들의 도움으로 우울증을 극복했다.[112] 제대 후 싸이 자작곡 '탑스타'로 컴백했고 엠카운트다운 등 각종 예능에서 MC로 활약했다. 2013년걸스데이혜리랑 공개 연애를 했으나 몇개월만에 결별했고 불법도박으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현재는 방송에 복귀해 예능 MC(동물농장 등)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토니 안의 회사 TN네이션엔터테인먼트가 아이오케이컴퍼니에 흡수합병 되면서 아이오케이컴퍼니의 사내이사가 되었다. 배윤정과 'STAGE631' 아카데미를 설립해 아이돌 후배 양성에 힘쓰고 있다. 2019년 배우 기획사 '우리들 컴퍼니'를 설립하였다. 토니 안의 팬클럽명은 프롬토니(From Tony) .
이재원2005년에 'No Pain, No Gain' 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2008년 지망생에 대한 성폭행 의혹 사건으로 준비 중이던 정규 2집은 중단되었다. 조사를 받는 중에, 이재원은 범인이 아니고 일행 중에 한 명이 피해자에게 성희롱을 했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사전 구속 영장이 발부되기 전에 고소 취하가 되지 않아 합의를 거치게 되었다. 피해자는 일행 중 한명에게 성희롱을 당한데다가 당시 상황에 대해 정확히 기억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진범이 누구인지 알 수 없기에, 사건 전 자신과 같이 있었던 일행원들 모두에 대해 일방적인 오해를 하여 일행 모두를 고소하였다고 한다. 이재원의 경우 성폭행범이 아닌 사실이 밝혀져서 고소가 취하되었으며, 피해자에게 사과를 받았다고 한다. 참조참조 이후 2009년 5월, 군대에 현역으로 입대하게 하였고 이후 2011년 3월 제대하여 중국아시아권을 위주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토니 안의 지원을 받아 예능에 조금씩 나오고 있다. 이재원이 전역하는 날, H.O.T. 전 멤버들이 이재원의 전역을 축하해주기 위해 한자리에 모여 화제가 된 바 있다. 토니 안의 도움으로 예능 활동을 재개하였고 함께 '톡라이브' 유투브 토크쇼를 진행했다. 'J want' 란 예명으로 디제잉 활동도 겸하고 있다. 이재원의 팬클럽명은 리스타일(Lee Style).
H.O.T. 는 한류의 시초로 중국에서도 인기가 많아 국내 활동이 없는 공백기에 멤버들은 중국에서 많은 활동을 했다.

6.3. 재결합


2004년 3월 21일 SBS 신사옥 이전 기념 특집 방송 '스타의 전당'에서 해체 후 2년 11개월만에 다섯 멤버가 한 자리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핸드 프린팅을 하였으며 핸드프린팅은 서울 목동 SBS '스타의 거리'에 전시되어 있다. 기사참고
2010년 7월 7일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강타가 그룹이 해체된 것은 멤버 간에 계약과 관련하여 서로 오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으며 오해는 1년 정도 후에 각자 다 풀었다고 한다. 문희준 역시 3:2 분열 당시 사이가 좋지 않았음을 인정한 바 있다.
2010년 6월 24일SM 엔터테인먼트 이사인 강타가 재결합을 천명하겠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오보임이 밝혀졌다. 그날 기자의 이메일, 전화, 팩스는 모두 불통이 되었다고.
핫젝갓알지의 은희상담소에서 재결합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던 중 문희준이 밝힌 바로는 해체 이후 재결합 이야기가 몇 번 오갔지만 전설은 전설로 남기자는 데에 멤버들이 모두 동의를 했고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후 1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과연 전설로 남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다고.. 이재원 역시 라디오 스타에서 재결합에 대한 입장을 밝힌 바 있는 데 이재원이 제대하던 날 멤버들 전원이 모여 재결합 시기를 밝힐 계획이었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결국 불발되었다고 한다.
2014년 11월 무한도전 토토가에서 H.O.T.의 섭외를 위해 강타가 출연했는데,[113] 강타는 H.O.T.의 재결합을 조심스럽게 보고 있는 시각이 비춰졌고 결국 토토가 출연은 불발되었다.[114] 하지만 토토가 본편에서 무한도전 멤버들이 H.O.T. 코스프레를 하였고 이후 '''토토가에 출연했으면 싶은 가수''' 설문조사에서 H.O.T.가 1위로 뽑히기도 하였다.
꾸준히 제기되던 재결합설이 2016년 데뷔 20주년을 맞아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있다. 특히 2016년 4월, 당시 라이벌이었던 젝스키스무한도전 토토가2 - 젝스키스를 통해 재결합을 공식화함에 따라 H.O.T. 재결합에 대한 관심과 기대도 증가하게 된다. 또한 토토가2 - 젝스키스 말미에 유재석하하토토가 3를 예고했던 장면을 통해 사실상의 최유력 후보로도 거론되었던 상황이었고, 멤버들과 이수만 프로듀서가 비밀리에 회동을 가졌다는 기사를 통해 더욱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이후 재결합에 관한 구체적인 논의는 거의 90%까지 진행되었으나 최종적인 협의 과정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 내부 측의 주장. 이로 인해 그동안 소문만 무성하게 나돌았던 20주년 프로젝트는 오랜 설왕설래 끝에 무산되고 만다. 이후 라디오 스타 젝스키스 편에서 김구라가 H.O.T. 재결합 무산의 원인이 어느 한 명에게 있다는 찌라시를 폭로한 이후 대다수는 여러 정황상 장우혁일 것이라 추측하기도 했으나 장우혁은 방송을 통해 수차레에 걸쳐 의혹을 일축한 바 있다.
15년 동안 빈번하게 논의와 무산을 거듭해온 재결합설과 문희준의 결혼에서 비롯된 일련의 사건으로 인한 팬덤 내 갈등이 팽배했던 가운데 2018년 1월 23일,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시즌 3 기획 차 멤버 전원이 회동을 열었다는 공식입장을 발표하였고 6일 뒤, 마침내 토토가3 - H.O.T.방송이 확정되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때문에 2주 내내 토요일 밤 10시대에 방송하였다. 무한도전과 동시간대 방송중에 문희준이 출연 중인 불후의 명곡 2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긴 하지만 이건 겸사겸사...
그리고 토토가에서 말했던 팀원들과의 상의 끝에 17년만의 재결합 콘서트가 확정되었다. 해당 콘서트의 정식 명칭은 FOREVER HIGH-FIVE OF TEENAGERS이다. 본래는 팀 이름을 따서 그대로 FOREVER H.O.T.로 정해졌으나 현재 상표권 문제로[115] 자신들의 영어 약자를 풀어서 표기했다. 다만 해당 표기도 팀명의 상표권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 콘서트 명칭이 바뀌자마자 이 풀어서 표기한 명칭에 대해서도 상표권 출원을 시도하면서 향후 팀명과 관련한 상표권 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커지게 되었다. 상세는 H.O.T. 상표권 분쟁 문서 참조. [116][117]
2018년 10월 13일과 10월 14일, 무한도전 토토가에 이어, 양일간 잠실 주경기장에서 콘서트를 개최했다.
그리고 2019년 9월 20일 ~ 22일 3일간 고척돔에서 단독 콘서트가 개최되었다.# 작년 2018년 콘서트의 #NEXT_MESSAGE2019 떡밥은 이 콘서트였던 것. 해당 콘서트까지가 공연 기획사와 계약한 회차였다고 하므로 2020년에도 이들을 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때 문희준은 콘서트를 위해 몸무게를 감량했다고 한다. 다만 2018년 콘서트에 이어 2019년 콘서트에서도 계속해서 기존 앨범 수록곡과 솔로 신곡으로 콘서트를 진행하였는데, 멤버들도 향후를 생각하면 당연히 그룹 신곡을 내야 한다는 대전제에 대해 공감하고 있으나 여러 가지 사정상 신곡을 내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2019년 콘서트에서는 기존에 단체 안무를 단 한 번도 공개한 적 없는 Do or Die의 안무를 신규 레퍼토리로 선보여 팬들의 아쉬운 마음을 대신했다. 하지만 아직 무대를 보지 못한 그룹 수록곡들과 솔로곡들도 매우 많고 그저 콘서트만 해줘도 감지덕지라는 팬들도 많다.

7. 단독 콘서트


<rowcolor=#000000> '''날짜'''
'''콘서트명'''
'''장소'''
'''비고'''
'''1998년'''
1월 23일 ~ 1월 25일
1998 H.O.T. 1st CONCERT
올림픽체조경기장
첫 단독 콘서트
1월 30일
사직실내체육관

2월 21일 ~ 3월 31일
1998 USA Live Tour
미국 뉴욕, 워싱턴, LA, 하와이
[118][119]
'''1999년'''
1월 22일 ~ 1월 28일
1999 H.O.T. THE 2ND CONCERT
세종문화회관
1일 2회 공연으로 총 14회 공연
1월 31일
사직실내체육관
2월 3일
염주종합체육관
9월 18일
1999 LIVE IN SEOUL
서울올림픽주경기장
[120]
'''2000년'''
2월 1일
2000 H.O.T. LIVE CONCERT IN BEIJING
중국 북경공인체육관
[121]
'''2001년'''
2월 27일
2001 H.O.T. LIVE CONCERT - H.O.T. FOREVER
서울올림픽주경기장
[122]
'''2018년'''
10월 13일 ~ 10월 14일
2018 Forever High-five Of Teenagers Concert
서울올림픽주경기장
[123][124]
'''2019년'''
9월 20일 ~ 9월 22일
2019 High-five Of Teenagers
고척 스카이돔
[125][126]
[127]

8. 팬덤




8.1. 팬픽 문화의 시초


나우누리, 천리안, 하이텔 등의 pc통신 팬 동호회에서 H.O.T.의 팬들이 멤버들이 등장하는 소설을 처음으로 쓰면서 ‘팬픽(fan+fiction)’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다비도프 쿨워터 쓰는 남자 주인공의 원조가 되었다. 초기에는 이성애를 소재로 한 팬픽도 있었지만 점차 동성애를 소재로 한 팬픽이 대다수가 되었고 대표적인 커플로는 톤혁(토니 안X장우혁), 준타(문희준X강타) 등이 있었다.[128] 당시 ‘H.O.T. 5대 팬픽(샤콘느, 파애, 360도, 관계, M.I.X)’이라고 불리며 입소문을 통해 pc통신상에서 팬픽 문화가 퍼지게 되었다.
또한 실제 팬픽이 서적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 제목은 '협객기'로 무협 소설이다.
[image]
작가는 이지련. 이후 이 작가는 '새디'라는 H.O.T.의 또다른 팬픽도 출간한다. 당시 H.O.T.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는지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2012년 11월 17일 SNL 코리아장우혁토니 안이 출연했다.[129] 망가지거나 짤방이 될 만한 H.O.T.의 팬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H.O.T.를 재현하기 위해 SNL의 크루인 권혁수, 김민교, 박상우가 나머지 멤버 대역을 맡았다. 이를 역이용해 이미테이션 상황극에서 가짜 멤버들이 진짜 멤버들을 구박했다.[130] 결정타는 팬픽의 BL을 소재로 그대로 재현한 드라마. 팬픽의 오글거리는 대사[131]와 사랑의 방해꾼 난입, 키스까지 그대로 재현했다.

9. 수상 경력


1998년도 당시 방송 3사 모든 연말 가요프로에서 대상을 수상한 대기록을 가지고 있다.

9.1. 시상식


<rowcolor=#000000> '''날짜'''
'''시상식명'''
'''수상 부문'''
'''작품'''
'''1996년'''
12월 8일
제11회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SKC 신인 가수상
캔디
12월 13일
KMTV 가요대전
인기 가수상
시청자상
12월 29일
SBS 가요대전
신인상
'''1997년'''
12월 4일
제8회 서울가요대상
본상
We are the Future
'''대상'''
12월 14일
제12회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대상'''
행복
12월 14일
KMTV 가요대전
본상
ARS 최고인기상
'''대상'''
12월 29일
SBS 가요대전
10대 가수상
'''대상'''
12월 30일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12월 31일
MBC 한국가요제전
'''대상'''
'''1998년'''
8월 15일
MBC 쇼! 토요특급 '광복절 특집'
최고 인기 가수상

12월 5일
제13회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본상
열맞춰! (Line Up!)
12월 6일
KMTV 가요대전
인기 가수상
빛 (Hope)
ARS 최고 인기상
'''대상'''
12월 16일
한국경제소비자대상
음반 부문
12월 18일
제9회 서울가요대상
본상
'''대상'''
12월 27일
SBS 가요대전
10대 가수상
'''대상'''
12월 30일
KBS 가요대상
청소년 부문 올해의 가수상
'''대상'''
12월 31일
MBC 가요제전
30세 미만의 국민이 뽑은 인기 가수상
30세 이상의 국민이 뽑은 인기 가수상
전국민이 뽑은 인기 가수상
30세 미만의 국민이 뽑은 최고 인기 가요상
'''대상'''
'''1999년'''
3월 16일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남자 부문 청소년 중창 가수상 '''대상'''

9월 9일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Korean Viewers Choice

11월 27일
Mnet 영상음악대상
그룹 부문 최우수 뮤직비디오상
아이야! (I Yah!)
시청자 최고 인기상
최고 인기 뮤직비디오상 '''대상'''
12월 7일
코리아 베스트드레서 스완 어워드
남자 가수 부문
12월 11일
KMTV 가요대전
본상
올해의 노래상
댄스 부문
ARS 최고 인기상
12월 13일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선행연예인

12월 14일
제10회 서울가요대상
본상
아이야! (I Yah!)
12월 16일
제14회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12월 31일
MBC 10대 가수 가요제
30세 미만의 국민이 뽑은 10대 가수상
'''2000년'''
11월 24일
Mnet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최고 인기 뮤직비디오상 '''대상'''
Outside Castle (The Castle Outsider)
12월 13일
KMTV 가요대전
본상
네티즌 최고 인기상
12월 31일
MBC 10대 가수 가요제
30세 미만의 국민이 뽑은 10대 가수상
'''2008년'''
11월 15일
Mnet KM 뮤직 페스티벌
10주년 Remember 1999상


9.2. 가요 프로그램 1위


'''총 76회 1위'''
<rowcolor=#000000> '''날짜'''
'''방송명'''
'''곡명'''
'''비고'''
'''1996년'''
12월 15일
SBS TV가요20
캔디
(5회)
'''데뷔 후 첫 1위'''
12월 22일
1위
12월 28일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KMTV 쇼 뮤직탱크
12월 29일
SBS TV가요20
연말결산 1위
'''1997년'''
1월 4일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캔디
(11회)
1위
KMTV 쇼 뮤직탱크
1월 5일
SBS TV가요20
1월 8일
KBS 가요톱10
1월 11일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1위
(3주 연속, BEST OF BEST)'''
KMTV 쇼 뮤직탱크
1위
1월 12일
SBS TV가요20
1위
1월 15일
KBS 가요톱10
'''1위
(2주 연속)'''
1월 18일
KMTV 쇼 뮤직탱크
1위
1월 19일
SBS TV가요20
'''1위
(왕중왕, 5주 연속)'''
1월 25일
KMTV 쇼 뮤직탱크
'''1위
(5주 연속, 최강자)'''
8월 16일
KMTV 쇼 뮤직탱크
행복
(16회)
1위
8월 23일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KMTV 쇼 뮤직탱크
8월 23일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KMTV 쇼 뮤직탱크
8월 31일
SBS TV가요20
9월 6일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1위
(3주 연속, BEST OF BEST)'''
KMTV 쇼 뮤직탱크
1위
9월 7일
SBS TV가요20
9월 13일
KMTV 쇼 뮤직탱크
'''1위
(5주 연속, 최강자)'''
9월 14일
SBS TV가요 20
1위
9월 17일
KBS 가요톱10
9월 21일
SBS TV가요20
9월 24일
KBS 가요톱10
9월 28일
SBS TV가요20
'''1위
(왕중왕)'''
10월 1일
KBS 가요톱10
'''1위
(3주 연속)'''
11월 9일
SBS TV가요20
We are the Future
(8회)
1위
11월 16일
11월 22일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KMTV 쇼 뮤직탱크
11월 23일
SBS TV가요20
11월 30일
'''1위
(왕중왕)'''
12월 13일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1위
12월 20일
'''1위
(3주 연속, BEST OF BEST)'''
'''1998년'''
10월 17일
MBC 음악캠프
열맞춰! (Line Up!)
(7회)
1위
KMTV 쇼 뮤직탱크
10월 18일
SBS 인기가요
10월 24일
MBC 음악캠프
KMTV 쇼 뮤직탱크
'''1위
(2주 연속)'''
10월 31일
MBC 음악캠프
'''1위
(3주 연속, BEST OF BEST)'''
11월 8일
SBS 인기가요
'''1위
(통산 2주)'''
11월 17일
KBS 뮤직뱅크
빛 (Hope)
(12회)
MVP
11월 28일
MBC 음악캠프
1위
11월 29일
SBS 인기가요
12월 1일
KBS 뮤직뱅크
MVP
12월 5일
MBC 음악캠프
1위
12월 6일
SBS 인기가요
12월 12일
MBC 음악캠프
'''1위
(3주 연속, BEST OF BEST)'''
KMTV 쇼 뮤직탱크
1위
12월 13일
SBS 인기가요
'''1위
(트리플 크라운)'''
12월 15일
KBS 뮤직뱅크
'''MVP
(통산 3주)'''
12월 19일
KMTV 쇼 뮤직탱크
'''1위
(2주 연속)'''
12월 26일
MBC 음악캠프
'''연말결산 1위
(BEST 10 스페셜 MVP)'''
'''1999년'''[132]
1월 2일
KMTV 쇼 뮤직탱크
빛 (Hope)
(1회)
1위
10월 3일
SBS 인기가요
아이야! (I Yah!)
(6회)
10월 9일
KMTV 쇼 뮤직탱크
10월 10일
SBS 인기가요
10월 16일
KMTV 쇼 뮤직탱크
10월 23일
'''1위
(2주 연속)'''
10월 24일
SBS 인기가요
'''1위
(트리플 크라운)'''
'''2000년'''
10월 7일
KMTV 쇼 뮤직탱크
Outside Castle (The Castle Outsider)
(11회)
1위
10월 14일
'''1위
(2주 연속)'''
10월 22일
SBS 인기가요
1위
10월 28일
MBC 음악캠프
10월 29일
SBS 인기가요
11월 4일
MBC 음악캠프
11월 5일
SBS 인기가요
'''1위
(트리플 크라운)'''
11월 9일
KBS 뮤직뱅크
1위
11월 11일
MBC 음악캠프
'''1위
(3주 연속, King of the Camp)'''
11월 16일
KBS 뮤직뱅크
1위
11월 23일
'''1위
(3주 연속, 골든컵)'''

[1] 행복과 함께 H.O.T.의 최다 1위곡. 음악방송 총 16회 1위를 했으며 캔디 패션이 유행할 정도로 신드롬을 일으킴[2] 음악방송 총 16회 1위곡으로 캔디와 함께 H.O.T.의 최다 1위곡. ‘행복’과 ‘We are the Future’가 수록된 2집 앨범으로 1997년 연간 음반판매량 1위를 달성하여 골든디스크 시상식 대상을 수상했다. 거기에 MBC 한국가요제전, SBS 가요대전에서도 같은 해 대상을 수상하였다. 2007년슈퍼주니어가 리메이크했다.[3] 1997년 서울가요대상은 이 곡으로 대상을 수상했다.[4] IMF외환위기 시대를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곡으로 대중들에게 건실한 청년의 이미지을 각인시키며 각종 시상식을 휩쓸고 다녔다. 총 13회 1위를 하였고 1998년 서울가요대상 대상과 지상파 3사 대상 트리플 크라운그랜드슬램을 동시에 달성했다. 강타는 이 곡으로 당시 최연소(만 19세) 자작곡 대상 수상자로 등극했다.[5] 강타 작사/작곡/편곡[6] 보이그룹으로는 젝스키스, NRG, 태사자, UNO(우노), TNB, OPPA, 신화, 이글파이브, A4, 팬클럽, 클릭비, Y2K, god, 량현량하, 플라이 투 더 스카이, 원타임, UN, 디베이스, K-POP, 블랙비트, 테이크, 악동클럽, 5tion 등(데뷔순) 수많은 그룹들이 쏟아져 나왔다.[7] 김국진의 스타다큐, H.O.T. 2집 다큐.[8] 문희준 - 23, 장우혁 - 35, 토니 - 07, 강타 - 27, 이재원 - 48[9] 문희준 - 노란색, 장우혁 - 파란색, 토니 - 빨간색, 강타 - 초록색, 이재원 - 주황색[10] 이 컨셉은 훗날 직계 후배라고도 할 수 있는 SM의 보이그룹 샤이니EXO에게 각각 닉네임 컨셉과 멤버별 고유번호 및 초능력 컨셉으로 계승되며 이후 고유 컬러 컨셉은 레드벨벳의 마케팅으로 사용되기에 이른다.[11] 원래 젝스키스은지원강성훈이 2인조로 데뷔할 예정이었으나, H.O.T.의 대성공으로 그룹의 계획을 바로 수정해 6인조 아이돌그룹으로 데뷔했다. 이 과정에서 강성훈은 자기는 빠지겠다고 강하게 반발했다고 한다. NRG는 이미 이성진천명훈이 2인조 그룹 가수 하모하모로 데뷔하였으나 H.O.T.의 대성공으로 자극을 받아 NRG라는 5인조 체제로 리데뷔하게 된다. 그리고 god는 본래 남자 5명에 여자 1명이었으나 박진영이 프로듀서를 맡고나서 남자 랩퍼 한명이랑 여자 한명(배우 김선아)을 퇴출하고 메인보컬 김태우를 영입한다. 저 두명을 퇴출한 이유 역시 박진영이 '''혼성그룹이면 망한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멤버 별로 H.O.T.의 멤버들을 한명씩 대응시켰다.[12] 김태우의 말로는 원어민인 박준형이 H.O.T.의 뜻을 듣고 "What?"이라고 되물으며 황당해했다는 후문이 있다. 일단 저 말은 아무 의미가 없다. High-five는 그 하이파이브 말고는 의미가 없으며 "고귀한 5명" 따위의 오그라드는 이름으로 굳이 하려면 the high-five라고 해야하며 그래도 어색한 건 마찬가지.(10대들 중 최고의 5명이라고 하려면 the top five among teenagers라고 하면 되나 원 의도와는 맞지 않는다. 말은 되어도 어색한 표현인 건 마찬가지고) High-five란 단어 자체가 말이 되지 않으니 "of teenagers"는 말이 되어도 도무지 해석이 되지 않는다. 굳이 따지면 진짜 10대들이 하이파이브하는 것 (...)이라고 하면 말은 되긴 된다. H.O.T.란 팀명을 미리 만들어놓고 끼워맞추기로 붙인 역 두문자어이다.[13] 박소현 또한 라디오 진행 당시 "핫"의~ 라고 노래 소개를 했다[14] 화이트데이[15] 식목일[16] 그 후 원빈은 당시 신생 방송국이었던 제일방송(현 MBC 드라마넷)의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게 된다.[17] 그 후 김종민코요태의 멤버로 활동하게 되며 차승민이 탈퇴한 이후 합류하였다.[18] 후에 허니패밀리를 거쳐 리쌍의 멤버로 활동하게 된다.[19] 이후 같은 소속사의 아이돌 그룹 신화의 멤버로 데뷔한다.[20] '''캔디와 행복의 작곡가다.'''[21] 본래 당시 초기에 연습생은 10명이었지만 결국 5명이 나가고 마지막 남은 5명이 데뷔한 게 바로 H.O.T.다.[22] 당시 연습 영상에 나왔던 노래와 안무는 1집 앨범에 수록되기 전인 전사의 후예 데모 버전인 것으로 보여진다.[23] 참고로 이 웹진은 2015년 9월경 H.O.T. 관련 기획기사를 많이 내서 시리즈로 만들었다.[24] 당시에는 '아이돌'보다는 '고교생 그룹', '하이틴 스타', '10대들의 우상' 등으로 불렸다.[25] kbs측은 "10대 그룹이 인기를 얻자 고교생팀 20~30개를 대기시킬 정도로 부작용이 커져서 이를 막아보자는 취지"라는 설명을 하기도했는데, 학업이 아닌 10대의 다른 사회활동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봤던 당시의 보수적인 시대상이 느껴진다.[26] 이수만도 처음에는 H.O.T.를 '엔터테이너'그룹으로만 키울 생각이었지 이들의 작곡 실력에는 큰 기대가 없었으나 강타가 만든 '빛'을 들은 후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27] 5집 Outside castle[28] 3집 빛, 4집 투지, 환희, 5집 그래그렇게, For 연가[29]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뉴잭스윙의 'I'M YOUR GIRL', 외국곡을 번안하여 불렀던 'Dreams Come True' 등.[30] 'Oh, My Love'와 '너를 사랑해' 등.[31] 요즘에야 아이돌 가수들이 다양한 컨셉과 이미지 변신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아이돌의 개념이 잡혀있지 않아 별걸 다 지적 받았다.[32] 더 어이없는 것은 서태지 또한 활동 당시 기성세대에게 사회적 메시지를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며 끊임없이 공격받았다는 거다[33] 'We are the future' 가사 중.[34] 그리고 약 15년 후. 2014년 4월.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로 아이야가 재조명되었다. 음악캠프, 아이야 [35] 한국의 리듬게임 펌프 잇 업에도 아이야가 나온다. 펌프, 아이야 [36] 2007년 12월. 다음 카페에서 투표한 결과 H.O.T.의 4집이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37] H.O.T.는 2000년에 마약퇴치운동 홍보대사로도 활동했다.[38] 문희준 작사/작곡/편곡[39] 강타 작사/작곡/편곡[40] 문희준 작사/작곡/편곡[41] 장우혁 작사/작곡/편곡[42] 문희준 작사/작곡/편곡[43] 이재원 작사/작곡/편곡[44] 토니 안 작사/작곡/편곡[45] 랩 파트는 Prodigy 풍의 리듬이 나오다가 후렴에서 유로비트로 바뀐다.[46] 당시 가요계의 유행이었던 메인보컬 위주의 파트 분배의 영향도 있고 보컬 멤버 중 한명인 토니안같은 경우 미국에서 학업을 다 마치고 오느라 일부 곡의 녹음이 진행된 후에 뒤늦게 팀에 합류하였다.[47] 문희준은 1절에만 파트가 있고 토니 안은 2절에 나오는 영어 랩만 불렀으며, 장우혁은 인트로와 마지막 후렴구 전에 약간에 랩 파트가 있는게 전부. 그리고 이재원은 1절 후렴구 중 딱 한 줄만 불렀다.[48] 보통 메인보컬이 후렴구를 부르는데 이 노래는 작곡가가 토니 안의 음색을 마음에 들어했고 매니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토니 안이 이 파트를 부르지 않으면 이 노래를 주지 않겠다고 해 토니 안이 이 파트를 부르게 됐다.[49] 유영진은 강타에게 토니 안이 (트레이닝을 받지 않고도) 복성을 쓴다며 칭찬했다고 한다.[50] 예를 들어 1절 첫소절 문희준 두번째 소절 강타 후렴구 토니 안이 부르면 2절 첫소절은 토니 안, 두번째 소절은 문희준, 후렴구는 강타 등으로 돌아가며 각 파트를 하나씩 맡는 분배로 멤버들의 보컬을 파트별로 고루고루 감상할 수 있는 아이돌팬들이 환영하는 분배시스템.[51] 그러나 두 사람이 보컬만 담당한 것은 아니고 다수의 노래에서 랩파트도 많이 불렀다. H.O.T.는 메인보컬인 강타도 때에 따라 랩을 했고 보컬담당 멤버들이 랩파트도 함께하는 그룹이었다.[52] ‘열맞춰’와 ‘아이야’의 경우 문희준은 손에 복싱장갑이나 가위손을 끼는데 마이크를 쥘 순 없지않은가[53] 서태지와 아이들, 룰라 등 최정상급 가수들도 립싱크를 했고, 발라드가수들도 립싱크를 했다. 이는 당시 열악했던 음향시설 탓도 있다. 인이어도 2000년대 들어서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진 오로지 환호성에 묻혀 들리는 반주에 의존했었다.[54] 강타가 작사에 참여. 뮤직비디오는 당시 인기 만화가 천계영이 그린 국내최초 애니메이션 뮤비로 제작되었다.뮤직비디오 [55] 문희준 작사/작곡/편곡[56] 1999년은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시기로 이 때 안티나 악플도 급증하였다. 급기야 H.O.T.를 까는 책까지 출간되었는데, 'Pu Ha Ha'는 이를 비판하는 이재원의 자작곡으로, 3집 'You got gun'의 연장선이다.[57] 문희준은 이미 연습생 시절부터 유영진의 '너의 착각'이란 곡의 안무를 만들었다. 문희준, 강타, 이재원은 연습생 때 이 곡의 백댄서를 하였다.[58] S.E.S. I'm your girl의 '둥글게춤'도 문희준이 만든 안무이다.[59] 라디오스타에 문희준이 나와서 한 얘기에 따르면 "전사의 후예" 당시 장우혁과 문희준 둘 다 안무를 짜겠다고 해서 멤버들 상대로 어떤 안무가 좋은지 투표를 했다고 한다. 잘 알려져있지만 멤버들 중 유명한 춤꾼인 장우혁과 문희준에 비해 나머지 셋은 춤실력이 비교적 떨어진다. 그런데 장우혁은 본인이 소화할 수 있는 고난도 안무를 선보였기에 나머지 세명은 엄두를 못 내고 비교적 무난한 난이도였던 문희준의 안무가 채택된 것.[60] 데뷔 직전에는 합숙훈련을 하였는데 새벽에 자다가 매니저가 갑자기 깨워 '전사의 후예'의 아무 부분을 틀면, 그 파트에 맞는 안무를 추는 훈련이었다고 한다. 57:20 부터 [61] 강타의 자작곡으로 컨셉과 퍼포먼스가 여성팬들에게 유독 인기가 많은 곡이다. 간주의 ‘고미사영’응원법을 개그우먼 박지선무한도전 토토가3에서 언급하여 유명해졌다.[62] 문희준 작사/작곡/편곡[63] 2집, 3집까지는 KBS 출연때마다 두건을 써 염색머리를 가렸는데 그 덕분에 두건패션이 유행하였다.[64] 장우혁이 자신의 곡의 디제잉을 직접 하였다. 2014년에는 디제잉앨범을 발표하였고 2017년에는 LA샌프란시스코에서 DJ 투어를 하였다.[65] 덕분에 평균 9개월 정도로 공백기가 길었고 공백기 동안은 곡작업을 하느라 방송출연 등의 활동이 거의 없어서 자연스럽게 신비주의가 되었다.[66] 토니 안은 영어랩을 작사하고 녹음하며 "강타야 (내가 만들었지만) 기가 막히다" 라고 말했다고.[67] space techno 테크노에 공간감을 가미하여 우주를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하는 테크노의 한 종류[68] 문희준은 해체 후 솔로로 데뷔해서 안티의 아이콘이 된 적도 있지만 노래를 만드는 능력은 괜찮았다. [69] 멤버들이 가장 극찬하는 곡이다.[70] 어린시절에 데뷔하였던 마이클 잭슨 역시 10대 시절 자작곡 앨범을 만들었던것은 아니다. 작곡자로서 두각을 나타낸것은 '아이돌(잭슨 파이브 - 잭슨스)'로서 활동 하던 시기가 아닌 성인 솔로 앨범이 나온 다음 부터이며, 비틀즈의 막내였던 조지 해리슨 역시 존 레논이나 폴 메카트니에 가려져있다 중반 이후에야 작곡자로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어떤 천재도 처음부터 잘하지 않는다. 왜 가수가 작곡을 하지않는다고 혹은 나중에야 한다고 비난을 받아야할까?[71] 더 어처구니 없던 것은 그렇게 서태지와 아이들을 위시하여 H.O.T.를 디스하던 기성세대나 일부 평론가들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피가 모자라 사건'에서 보듯이 서태지와 아이들 역시 마구 깠었다는 것이다. 사실 양준일의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당시 기성세대와 방송계는 새로운 가요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을 느끼다 못해 배척하는 분위기 였다. 그나마 H.O.T.가 이들을 이겨내는 엄청난 팬덤과 10~20대의 지지를 받았기에 험한 꼴을 당하지 않았던게 다행일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O.T.도 멤버 문희준이 건달로부터 테러를 당할 뻔 한 걸 경호원이 막은 사건이 있었다. 기사참고 [72] 지금처럼 기획사의 트레이닝으로 작사,작곡을 배운게 아니라 멤버 모두 '''자발적'''으로 악기를 사고 작사,작곡 공부를 해왔으며, ‘전사의 후예’시절 잡지 소개에서 2집에 자작곡을 싣기위해 신시사이저와 화성학 공부를 하고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출처[73] 작곡을 하는 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존재하지만 전문 작곡가들과 공동작업을 한 것이거나 단독작곡이라도 일부 멤버가 담당한 경우가 대부분이며 H.O.T.처럼 '''모든 멤버가 편곡까지 단독작곡'''을 했던 그룹은 2020년 현재까지도 H.O.T.가 거의 유일하다고 봐도 무방하다.[74] 불어 '르쏭'으로 발음[75] 전곡을 멤버들의 자작곡으로 채워 유영진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난 앨범이다.[76] 문희준 작사/작곡/편곡[77] 당시 법적기준으로는 8마디 이상이 같아야 표절이었다. 현재는 원작자가 소송을 걸어 승소하면 표절이 성립된다.[78] “전사의 후예인 경우 모 샘플 회사에서 발매한 룹을 그대로 가져와서 사용했는데 샘플CD는 구매한 사람이 어떻게 사용하든 아무 문제가 없다.(당시 같은 회사에서 발매한 룹질라 샘플 CD 4가 서태지의 Come Back Home에 쓰이기도 하였다) 크리스브라운의 Turn Up The Music 역시 벤젠스라는 샘플 회사가 출시한 샘플과 거의 흡사한 방식으로 곡이 발표되고 리한나의 Umbrella 또한 Logic의 Apple Loops 샘플을 사용하여 발매되었다. 갱스터랩의 유사성은 요즘의 트랩에서 자주 나오는 3연절플로우 등 당시로서 일종의 유행이라 보여진다. 참고) 샘플의 경우 어떠한 뮤지션의 음악이 유명해지면 그와 비슷한 스타일의 샘플들이 대거 제작되어 발매되어진다. 당장 힙합만 하더라도 릴웨인,에이셉라키 부터 일렉트로닉의 체인스모커즈,스크릴렉스 타입 샘플들이 수십 수백개로 제작되어 판매된다. 전문적으로 샘플을 만드는 회사도 있으며 샘플 디자이너 혹은 사운드 디자이너 등을 전문 직업으로 가진 음악가들도 전세계에 수백명이 있다. 그만큼 샘플을 만들고 사용하고 판매하고 구입하여 다시 시장출시되는 과정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외국의 수많은 힙합,일렉트로닉 프로듀서들도 당연히 샘플을 사용한다고 인터뷰 등지에서 밝히고 있다.물론 이러한 샘플을 구입하여 만든 곡들의 크레딧에는 따로 샘플을 만든 회사나 제작자의 이름이 들어가지를 않는다. 처음의 ‘유료’구입이 끝인것이다.” -출처: 유영진 문서[79] 샘플 CD를 정식으로 구매하면 따로 표기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80] 관련장면 독일 노래 Kraftwerk - Tour De France (Remix) 12부분.[81] killing In The Name의 "Now you're under control! Now you do what they told you!" 부분에선 "열맞춰!"와 가사를 바꿔불러도 싱크로가 맞는다. 심지어 한 부분은 정상적으로, 한 부분은 효과음을 넣어서 지직거리는 것까지 유사하다. 또한 이후 "Those who died! Are justified!" 부분은 "모두가! 꿈꿔왔던 세상!"까지 전개되는 부분도 똑같다. 물론 곡 전체로 보면 RATM은 해당 리프가 반복되고 열맞춰는 다른 스타일로 이어지지만 앞서 언급한 분량만 해도 표절 요건으론 충분하다.[82] 공식적인 표절판정을 받은건 아니지만 심한 논란을 겪은 데다가 IMF 금융위기까지 겹쳐 초동 판매량이 2집에 비해 줄어들어서 멤버들은 ‘열맞춰’때 반응이 좋지 않았다가 ‘빛’으로 다시 사랑받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음악방송 1위는 팬덤들의 대결이기 때문에 당시 어떤 팬덤과도 비교불가의 규모를 자랑했던 H.O.T.가 1위를 석권하는 건 당연했다. 막말로 당시 H.O.T.의 팬덤이라면 멤버들이 나와서 염불을 외워도 1위를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맹목적이고, 거대했으며 화력이 강했다. 다만 대중적 선호도에서 빛과 열맞춰는 비교불가다. 게다가 토토가 특집에서 보다시피 빛은 지금도 대표곡 중 하나로 언급되는 곡이다. 문희준이 2011년, 해피투게더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원래 3집 타이틀곡으로 먼저 내정됐던 곡은 T.O.P.(1999년, 신화의 2집 타이틀곡)였는데 1집이 부진했던 신화의 2집을 성공시키기위해 곡을 양보하자고 소속사에서 설득하여 양보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83] 초창기 SM은 제대로 된 연습실이나 트레이닝 시스템도 없었고 이동차량이 없어 매니저의 승용차 트렁크에 일부 멤버가 탑승하여 이동했을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다. 참고로 이들은 안무도 본인들이 직접 짰을 정도다. 영상참조1989년 창립됐고 1995년 법인이 설립된 SM2000년 4월, 국내 엔터기업 최초로 코스닥에 상장했다.[84] 최근에 아이돌 세대 구분을 하면서 나오게된 '1세대 아이돌'이라는 말에 어폐는 있을지언정 소속사에 의해 철저히 멤버 각각의 역할이 분담되고, 10대 팬덤을 타깃으로 하는 등, 현 세대 아이돌의 기본적인 구조를 성립한 그룹으로서 H.O.T.가 선두주자로 군림했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것이다.[85] 당시 콘서트 티켓값이 중국 직장인 월급값과 맞먹을 정도로 비쌌음에도 불구하고 매진이 되었다.[86] 인기의 영향으로 중국 청소년들이 멤버들을 따라 머리색을 염색했다가 퇴학당한 사례들도 있었다.[87] 2001년은 해체를 하여 순위에 등장하지 않았다.[88] 1992년에 X무늬가 그려진 후드티와 힙합바지를 대유행시킴으로써 ‘X세대의 효시’로 여겨진다.[89] 그 해 최고 판매량으로 아이돌 그룹 최초로 음반 대상인 골든디스크 대상을 수상했다. IMF로 위축된 음반 시장의 유일한 밀리언셀러였다.[90] KMDb 자료에 의하면 서울관객기준 23,824명. 당시 유료팬클럽 회원 수가 9만7천이었으니 전국관객수는 이보다 더 많았을 가능성이 높다. 안타깝게도 이 시기에는 서울관객수로만 집계하였다.[91] 여담이지만 이렇게 열심히 앨범이 팔린 덕에 당시 영화의 흥망과 상관없이 역대 OST 부문 누적 판매량에서는 판매량 2위라는 기염을 토해냈다. 참고로 그 당시 OST 누적 판매량 1위는 영화 접속의 OST였다. 사실 따지고보면 이럴 수밖에 없는게, H.O.T.의 음악은 음반판매량에서 보이듯 일반 대중들에게 선호도가 상당히 높았다. 즉, "H.O.T.의 음악"은 어느 정도 퀄리티가 있는 물건인 만큼 정규앨범이 아니라도 구매하는 라이트팬들이나 非팬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저런 핵지뢰작은 정말 광팬 중 광팬이 아니면 보러갈 생각조차 하기 힘들 것이다.[92] 토니 안 2001년 3월, 이재원 2001년 4월, 장우혁 2001년 5월 계약만료를 앞두고 있었고 문희준강타는 2002년초까지 계약이 남아있었다.[93] SM측에서는 이 사실을 부인하였다.[94] 이마저도 멤버 간 인세에 차이가 있었다.[95] 사실 앨범 판매에 의한 수익분배 문제는 H.O.T. 등의 SM 소속 가수들의 문제가 아닌 국내외 음악계 전반에 널리 퍼져있는 문제다. 지금도 곡 하나를 MP3로 사면 가수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20원. 일본도 1000엔짜리 싱글 한장이 팔리면 가수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1%가 안되는 9엔에 불과하다. 음원유통사 46%, 제작사40%, 저작권자(작사, 작곡)9%, 실여자(연주, 가수)5% [96] 5인 H.O.T.- 문희준=4인 H.O.T.[97] 2018년 재결합 후 한동안 5인지지파와 4인지지파의 갈등이 계속되었다. 2019년 강타 양다리 사건이 터진 후엔 강타도 제외한 3인지지파가 등장하여 혼파망...[98] 계열이 달라 완전히 같은 기획사는 아니나 토니 안이 아이오케이 이사가 되면서 소속 연예인이 되었다[99] H.O.T. 멤버 중 가장 먼저 솔로앨범을 발매했다.[100] 한국에서도 드라마에 출연한 적이 있으나 여타 아이돌 출신 배우들처럼 반응이 좋지 않았다.[101] 이때 멤버 이재원이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보고 남긴 감상평 '실망이야...불륜을 저지를 줄이야...'가 재조명받으며 화제가 되었다.[102] 다른 멤버들의 팬클럽이 계속 활동중임에 반해 강타의 팬클럽은 소속사에서 모집을 하지 않은지 오래되었다.[103] 음반협회 2001년 12월 음반판매량 2001년 12월 21일 발매로 2002년 연말 집계로는 총판 70만장을 넘겼을 것으로 추정. 이는 2002년 남자 그룹 중 가장 높은 판매량이다. - god는 연말에 발매한 앨범이 46만장을 기록. (2002년 12월 27일 발매로 2003년 판매량으로 집계된다.) 신화는 36만장을 기록.[104] MBC 목표달성 토요일 <jtL의 개 두마리>[105] 멤버들 중 가장 늦게 솔로데뷔[106] 원래도 평발 때문에 공익판정이었으나, 신체검사를 받기 조금 전에 모 높으신 분 아들의 병역문제가 터져 신검기준이 대폭 강화된 탓에 현역 판정을 받았다는 안습한 스토리가 있다.[107] 목 관절과 몸이 따로 움직이는 ‘넥 아이솔레이션’ 안무와 손가락 웨이브 안무(핑거텃)등[108] "‘유추프라카치아’는 누군가 건드리면 금세 시들어 죽어버리지만 한 번 만진 사람이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애정을 가져주면 살아가는 식물이다."라는 글과 함께 싸이월드 bgm으로도 사랑받았다.[109] 정형돈, 조혜련, 려원, 이휘재, 정지영 등 당대 인기 연예인들이 소속되어 있었다. 가수 후배들도 양성하여 에반, 스매쉬, 어썸베이비 등을 프로듀싱하였다.[110] 스쿨룩스 하나만으로 H.O.T. 로 벌어들인 수익의 4~5배를 벌었다고 한다[111] 무릎팍도사에서 고백. 성공한 니가 무슨 고민이 있냐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 때문에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이 한명도 없어 외로웠다고 한다.[112] 군대 맞선임이 젝스키스김재덕이며 이를 계기로 김재덕은 tn엔터의 이사로 재직. 현재까지 토니 안과 함께 살고 있다.[113] 강타의 절친한 친구들이자 S로도 함께 활동한 바 있는 이지훈, 신화신혜성도 함께 출연했었다.[114] 문희준동시간대 타 방송 프로에 고정패널로 출연 중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운 섭외였다. 워낙 90년대 후반 H.O.T.의 위상이 어마어마하다보니 아예 무시할 수도 없었던 지라 섭외는 불가했지만 근황이라도 전해듣고 싶었던 듯.(이는 역시 비슷한 이유로 출연이 불가능했던 젝스키스도 마찬가지.)[115] 다시 말해서 <H.O.T>라는 약어의 상표권이 엉뚱한 사람이 아직도 보유중이라서 해당 약어의 주인공들인 H.O.T 당사자들은 법적으로 그 약어를 공식석상에서 쓸수가 없다는것.[116] 상표권 사용 문제로 팀명과 기존의 팀 로고 사용이 불발된 상황인지라 팬들의 원성이 큰 편인데, 현재는 이 무리한 출원 시도까지 불거지면서 재결합 무산의 주 원인이 해당 상표권을 가진 인물의 돈 욕심 때문이라는 의견이 커지고 있다.[117] 그리고 2020년 7월 7일 해당 상표권은 특허법원의 판결로 무효가 되었다.https://news.joins.com/article/23820305.[118] 국내 댄스그룹 중 처음으로 미국 단독 콘서트를 하였고, 수익금 전액을 국가실업기금에 기부하였다. 영상[119] [image][120] 국내가수 최초로 잠실주경기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했다. 문희준이 추락사고로 부상을 당해 팬들이 실신한 것으로도 악명높은 918 콘서트. 4만 5천 명이 동원되었다.뉴스참조[121] 중국에서 개최된 콘서트로 10,000명 관객을 동원하였다. 본 공연 개최 후 중국 언론에서 최초로 '한류'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됨으로써 한류의 시작이자 향후 SM 엔터테인먼트의 중국 시장 진출의 첫 걸음이 되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122] 원래 2월 23일 ~ 2월 27일 5일간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 예정이었으나, 폭설로 체조경기장 지붕이 무너지면서 주경기장 1일로 대체되었다. 국내 공연 사상 최단기간 최다판매 기록으로 약 7만장의 표가 티켓판매시작 10분 24초만에 매진되었다.(인터넷예매없이 은행에 줄을서서 구매했던 시절임)뉴스참조 당시 서울시에서 콘서트 관련 사회적 비용을 추산하였는데, 비상사태 대비로 인한 인원 및 장비동원과 공연 끝난 후 예상되는 교통체증에 따른 사회적비용 약 2억 6천만원으로 추산되었다.(지하철 혼잡 최소화를 위해 2호선 삼성역과 성수역에서 임시열차 운행, 지방팬 대절버스 약3백대, 경찰병력 5백명, 경호원 7백명, 119구조대 1백 50명)[123] 17년만에 개최되는 단독 콘서트로, 약 8만석의 표가 티켓판매시작과 동시에 순식간에 매진되었다. 표를 구하지 못한 팬들을 위해 시제석까지 약 2만석을 더 추가하여 총 10만석이 완판되었다. 제목 등을 둘러싼 상표권 잡음이 있었음에도 일단 콘서트는 성황리에 마쳤으며 콘서트의 영향으로 주말동안 SRT이용객 수 최고치를 경신하였다.기사참조.[124] [image][image][image][125] 지난 해 재결합 콘서트 이후 약 1년만에 진행되는 콘서트로 공식 SNS에 #THISISTHEMESSAGEFROM 이라는 해쉬태그와 함께 시작되는 티져가 공개되고 동시에 언론보도를 통해 2019년 9월 고척돔에서 2019 HIGH-FIVE OF TEENAGERS 2019 콘서트가 개최된다고 알렸다.[126] 8월 12일에는 공식 굿즈 온라인 판매를 개시했는데, 7월 중순부터 지속적으로 연기한 뒤 판매를 시작했음에도 수량 부족 등의 문제가 있었다. 당초 6만 6천 석(회당 2만 2천 석)이 7분만에 매진됐으나,뉴스참조 한 멤버의 사생활 논란으로 타격을 받아 3일간 약 6만 관객을 모았다.뉴스참조 [127] [image][image][image][image][128]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성시원이 톤혁 커플을 소재로 팬픽을 쓰는 장면이 나온다.[129] 일명 '톤혁' 커플[130] 아예 본인들이 "믹키유천(토니 안)이랑 슈주 은혁(장우혁) 이미테이션하다 왔어요"라고 한다.[131] 동방신기팬픽인 '가시연'에 등장하는 "너구나, 8반 이쁜이가." 라는 대사도 나왔다. 이는 팬픽을 연상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요소들 중의 하나다.[132] 4집 활동기에는 두발규제 문제로 KBS는 불출연, MBC는 순위제 폐지. 후속곡 '투지' 활동기에는 MBC에만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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