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역대 대학수학능력시험'''
1997 수능

'''1998 수능'''
(1997.11.19.)

1999 수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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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시험의 상세


1. 개요


1997년 11월 19일에 실시되었다. 제5차 교육과정 세대의 마지막 수능이다. 대부분의 1979년생, 빠른 1980년생과 n수생이 응시했다.
쉬운 수능 시대를 여는 첫 시험이었다. 수능시험이 처음 도입된 94학년도부터 직전 시험인 97학년도까지가 "어려운 수능" 시대였다면, 98학년도부터 대폭 난이도가 쉬워졌고 이후로도 수능 난이도는 꾸준히 내려가게 된다. 97수능이 워낙 어려워서 비교된 탓에 물수능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나 이후의 난이도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어려운 편이라 2010년 이후에는 물수능이라고 하지 않는다.
전국 수석은 398.5점을 받은 서울과학고등학교 출신의 한상형 군[1]. 처음엔 공개되지 않았다가 1년 뒤 뒤늦게 공개되었다.

2. 시험의 상세


교시
영역
계열 구분
문항
배점
시간(분)
1
언어 영역
공통
65
120
90
2
수리 · 탐구 영역(Ⅰ)
인문·예체능, 자연
30
80
100
3
수리 · 탐구 영역(Ⅱ)
사회탐구 영역
인문, 예체능
48
72
120
자연
32
48
과학탐구 영역
인문, 예체능
32
48
자연
48
72
4
외국어 영역
공통
55
80
80
합계
230
400
390
[2]

3. 난이도


전체 평균 점수는 221.8으로 199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비해 41.8점 상승한 수준이지만, 만점자는 없었다. 97학년도에 비해 웬만한 과목은 다 쉽게 출제되었다.[3]
과목별로 언어영역(국어)은 평균 점수 120점 만점에 77.68점(100점 만점에 64.73점)이었으며 인문계는 원점수 114점 정도가 1.3퍼정도였다. 원점수 110점 이상이 인문계 16642명(4.04%), 자연계 13640명(3.75%)으로 평균이 이과가 근소하게 높았으나, 110점 이상의 상위권 기준으로 문과가 우세한 시험이었다. 이 당시 등급의 개념은 없었으나, 만약 평가원 식으로 등급을 매기면 문과,이과 모두 5개 틀리면 1등급에 들 수 있는 정도로 7차 이후 기준으로 어려운 수준을 선보였다. 물론 5차 교육과정 기준으로는 꽤 쉬운 수준.
수리탐구Ⅰ(수학)은 100점 만점에 인문계 평균 35.69점, 자연계 평균 42.15점이었다. 원점수 80점 만점에 75점 이상이 인문계 3810명(0.92%), 자연계 4070명(1.12%)이었고 만점 비율 이과, 문과 각각 '''0.21%'''로 같게 나와 작년보다 쉬워졌다. 97수능은 75점 이상이 자연계는 100명 이하, 인문계는 10명 내외였다. 원점수 70점 이상은 인문계 8191명(1.98%), 자연계 9796명(2.69%)였다. 65점 이상 인문계 14325명(3.47%), 자연계 17646명(4.86%)이었다.
외국어영역은 80점 만점에 45.08점이 평균 점수였다. 원점수 75점 이상 인문계 17330명(4.20%), 자연계 16990명(4.68%)으로 쉬운 편이었다.
수리탐구Ⅱ(사과탐)는 100점 이상이 인문계 12065명(2.93%), 자연계 13455명(3.70%)였다. 110점 이상이 인문계 1314명(0.319%), 자연계 1731명(0.47%)으로 역시 작년보단 쉬웠다. 작년은 110점 이상이 인문계 5명, 자연계 13명이었다. 6차 교육과정의 사탐, 과탐과는 교육과정이 달라 비교하기 어려우나 비교하자면 6차 교육과정의 시험보다 다소 어려운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적인 수준은 원점수 300점 이상이 110832명으로 '당시 기준' 사상 최대의 인원을 보였다. 원점수 350점 이상은 인문계 9200명대(2.2%정도), 자연계 9800명대(2.7%정도)였으며 360점 이상 인문계 5100명대(1.2%대), 자연계 5200명대(1.4%대), 370점 이상 2200명대(0.54%), 자연계 2100명대(0.58%), 380점 이상 인문계 600명 내외(0.14%), 자연계 500명 내외(0.12%)정도였다. 원점수 390점 이상은 인문계 33명, 자연계 30명뿐이었다. 사실 이 정도 수준은 6차 이후 시험에서는 어려운 편에 속한다. 단지 97수능이 너무 어려운 편이라 비교되어서... 그리고 전체적인 점수 분포가 상위권, 중상위권이 늘어나 항아리형 분포를 보였는데, 이는 97수능에 비하면 정상적인 분포를 보였다.[4]
한편 이 해부터 수시모집이 본격 시행되는데, 수시모집에서는 수능 성적을 그다지 많이 고려하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예컨대 서울대학교의 경우 수시모집 예비 합격생은 수능 성적이 상위 10% 안에만 들면 최종 합격 통지서를 받을 수 있었다. 1997년 12월 2일에 서울대학교 사상 최초의 수시모집 예비 합격생 348명의 명단이 발표되었고 이 가운데 330명이 최종 합격을 하였다.


또한 이 수능이 치러지기 80여일 전에 EBS 위성방송 강의가 시작되기도 했다.

[1] 현재는 부산지검 검사 재직중으로, 서울대 산업공학과에 98학번으로 입학했으나 자퇴 후 다시 수능을 치뤄 서울대 법대에 00학번으로 재입학했다.[2] 200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까지 이 포맷으로 유지되었다.[3] 사실 97학년도 수능은 본고사 폐지 영향 때문에 변별력을 가려내기 위해 수준을 올렸다는 분석이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4] 97학년도 수능은 상위권이 작고 중하위권이 많은 '''꽃병형''' 분포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