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1. 개요
2002년 11월 6일 실시되었다. 2002년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인 1991학년도에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1997년도에 초등학교로 졸업한 연령대(1984년 3월생~1985년 2월생) 기준으로 응시했다.[1][2] 총 응시인원 65만 5384명.
수준은 전년도와 비슷한 난이도였으며, 만점자는 2년 연속으로 등장하지 않았다.[3]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떤 도시전설이 있다. 김치국 항목 참조.
2. 9월 수능 모의평가(2002.09.03)
2003학년도 수능부터 수능 모의평가를 실시하여 난이도 적중률을 높이고, 수능 직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미리 표본 추출한 수험생들의 가채점 결과를 발표해 부정확한 사설학원 입시자료에 따른 혼란을 방지하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고3(재학생)을 대상으로 모의평가를 실시하려고 했으나 수험생의 학력수준을 정확히 파악하고, 수능 난이도 조절에 참고하기 위한 것인만큼 재수생과 검정고시생도 모의평가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평가원은 당초 수능 모의평가를 8월 중 실시할 예정이었으나, 9월 3일로 예정됐던 서울시교육청 주관 시·도 교육청 학력평가와 중복돼 수험생의 부담이 클 것을 감안, 전국연합학력평가를 실시하지 않는 대신 모의평가를 실시하기로 했다. 시험 출제는 수능과 같은 방식으로 대학 교수, 고교 교사등으로 출제위원단을 구성해 12일간 비공개 합숙을 통해 출제하고, 채점은 9월 4일부터 23일까지 실시해 9월 25일 성적이 개별 통지되었다. 이번 모의평가에서는 선택과목인 제2외국어는 제외되었다. 고교 재학생은 소속 학교에, 재수생은 사설 학원이나 출신학교에, 검정고시 출신은 사설 학원에 신청하면 응시가 가능했다. 응시료는 고교 재학생은 교육청이 부담해 무료이며, 재수생 등은 5천원의 수수료를 내야했다. 또한, 2003년부터는 모의평가를 5월[4] 과 9월 연 2회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3. 시험의 상세
시험은 다음과 같이 총 5개의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 제2외국어 영역(선택)
언어영역은 작년의 수준을 이어받아 매우 어려웠으며 만점자가 '''1명'''(문과 여자 수험생)밖에 나오지 않았다. [5]
1개를 틀린 수험생이 '''30명(인문계 22명, 자연계 8명)'''이었다. 1등급 컷은 인문계는 '''102점''' 정도였고 자연계는 '''104점''' 정도였다. 인문계, 자연계 다 110점까지의 누적 인원이 각각 1604명(0.452%), 1367명(0.688%)였고 115점 이상은 인문계 86명(0.024%), 자연계 61명(0.031%)정도 나왔다. 문이과 모두 4문제 틀린 것까지는 백분위 100이 확실했고 경우에 따라 5문제도 가능했다.
참고로 언어영역에선 한국 국문학의 최종보스인 '''이상의 오감도'''가 출제되었다. 다행히 문제 자체는 오감도가 국문학계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당시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에 대해 묻는 평이한 수준이었다. 반면 고전문학에서 '창선감의록'이라는 엄청나게 마이너한 작품이 나왔다.
수리영역은 자연계의 경우 '''74점'''이 1등급 컷으로 72점이었던 02수능보다 약간 평이해졌지만 전체적인 분포에 있어서는 02년과 대동소이했다. 만점자는 '''1411명(0.711%)'''이 만점을 받아 만점을 받아도 백분위 99가 나왔다.[6] 한편 인문계는 만점자가 작년(196명)보다 약간 늘긴 했으나 '''285명(0.08%)'''밖에 되지 않았고 65점 이상 누적인원이 3.5%정도, 70점 이상이 5000명 정도로 백분위 99를 받을 수 있었으며 75점 이상이 1400명대(0.41%)로 수준이 여전히 높았다. 참고로 예체능계는 만점자 8명(0.008%)
사회탐구는 인문계는 72점 만점이 '''67명(0.019%)''', 70점 이상이 287명(0.081%)으로 작년과 비교하면 상위권 기준으로 더 까다로워진 편이었다. 65점 맞아도 1700명 이내로 1퍼센트 이내였다. 자연계도 48점 만점이 '''67명(0.034%)''', 45점 이상 1331명(0.669%)으로 45점까지의 누적 인원이 5000명 정도였던 작년 수능보다 어려웠다.
반대로 과학탐구는 꽤 쉬워졌는데 자연계 기준으로 72점 만점이 '''1962명(0.991%)''', 70점 이상이 6467명 정도(3.27%)로 70점 이상이 539명(0.278%)밖에 안되었던 작년 수능보다 많이 쉬웠다. 인문계도 48점 만점이 '''1521명(0.430%)''', 45점 이상이 9968명(2.82%)으로 45점까지 2159명(1.11%)이었던 작년 수능보다 쉬웠던 편이다.
외국어영역은 2002수능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만점자 인문계 '''1767명(0.499%)''', 자연계 '''1826명(0.923%)''', 예체능계 33명(0.033%).
21세기에 치러진 수능 중 평균점수(원점수 기준)가 가장 낮았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2002학년도 수능의 수준이 높아 약간 수준이 낮아질거라 예상했지만 대부분이 멘붕을 경험했다. 이렇듯 총평균점수가 전년보다 하락했다는 점 때문에 일부는 2003학년도 수능이 2002학년도 수능보다 더 어려웠다고 평가하지만, 그 해에 2002 한일월드컵이 치뤄지는 등 학생들의 실력 저하도 점수하락의 원인이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언어, 수리, 외국어 영역의 만점자 비율이 2002 수능보다는 살짝 높은 편이어서 2002 수능보다는 약간 쉬웠던 시험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참고로 이 수능을 끝으로 소수점 배점이 폐지되었다. 소수점 배점 반올림으로 인하여 피해를 본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 이로 인해 소송까지 가는 일이 생겼으며, 그 다음해부터는 정수 배점으로만 표기한다.
[1] 이들이 바로 '''초등학교'''의 첫 졸업세대였다. 물론 N수생은 국민학교를 졸업하였다.[2] 참고로 이시기에 수능을 친 사람들은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2002 한일 월드컵''', 2002 부산 아시안게임을 경험한 세대다.[3] 문과 수석은 394.5점으로 서울대 경영대 진학, 이과수석 394.2점-서울대 의대 진학.[4] 하지만 6월로 연기된다.[5] 서울 휘경여고 3학년 손수아 양, 자세한건 중앙일보 2002-12-09 참고[6] 당시 백분위 산정은 7차 교육과정과 조금 달라 이런 결과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