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국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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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과 관련된 이야기로, 200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만점자로 거론되었으나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진 학생이다.
2010년대 들어서야 수능에 대한 내공이 쌓이고 난이도도 좀 쉬워져 매년 수능 만점자 몇 명 정도는 나오지만, 2000년대 후반까지 수능의 전반적인 수준이 높은 편이라 만점자는 2001학년도(66명)를 제외하면 한 명 나올까 말까한 매우 희귀한 사건이었다.[1] 200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그 전해의 시험과 마찬가지로 비교적 어려웠으며, 그 해의 모의평가 또한 꽤나 어려운 편으로 출제되었다.
2. 가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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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한밭고 이과에 재학 중이던 김치국 학생은 3학년 1학기까지만 해도 원점수 총합 290점 정도로 중상위권 정도였으나, 9월 모의평가에서 만점을 받으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어진 수능에서도 그는 수능 만점을 받으며 언론과 인터뷰까지 하게 된다.
그런데...
3. 성적 발표 이후
'''수능 성적표 발표 이후 김치국 학생의 행방은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져버렸다.'''
전국 수석은 김 군이 아닌 394점을 득점한 분당 서현고의 윤재희 군이었다. SKY와 의치한은 물론이고 '''전국의 어느 대학에서도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면 모평 점수는 어떻게 된 것인고 하니 이것도 정확한 정보는 구할 수 없으나, 풍문에 따르면 학교 실적을 올리려 한 한밭고가 모평 정답을 미리 학생에게 주었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것도 확실하지는 않았고, 김치국 학생에 대한 말은 이후 전혀 보도되지 않아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버렸다.
실제 점수는 만점에 훨씬 못 미쳤다는 것이 대부분의 당시 대전지역에 살았던 학생들의 이야기이기는 한데, 그 점수의 폭이 워낙 커서 마킹실수 수준의 점수부터 250점대의 택도 없는 점수까지 다양하다. 이것 또한 오리무중이다.
후에 당시 한밭고에 재직 중이었던 선생님을 통해 소식을 들은 결과 김치국 학생의 수능 성적은 '''급격하게 성적이 오르기 전 성적과 비슷'''했고, 삼수 후에 대전에 있는 모 대학에 입학했다고 한다.[2] 수능성적 발표 후 본인의 성적이 틀릴리 없다며 확인을 요청했고, 확인결과 가채점 표와 김치국 학생이 수능날 제출한 답안지의 답이 완벽하게 일치했다고 한다.
모의고사 성적에 관한 이야기는 말이 많은데, 반장이었던 탓에 교무실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고 모의고사 종료 후 교무실에 들어가 OMR카드를 바꿔치기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이 역시 확실한 이야기는 아니다.[3]
수험생 사이트인 오르비에도 수능 역사상 가장 미스테리한 사건이라고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심지어는 생각보다 잘 나오지않은 성적에 비관해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자살했다는 설도 있고, 그가 중증 리플리 증후군에 걸린 망상병 환자란 말도 나왔었다. 진실은 저 너머에...
[1] 국가 주관 대학입시에서 처음으로 만점을 받은 사례는 199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나왔다. 이후에도 수능 만점자는 곧잘 등장해서 만점자 인터뷰가 학원 홈페이지나 신문광고에 나올 정도로 흔해진 편. 하지만 과거 악명 높도록 어려웠던 대학입학 학력고사 시절에는 만점자는 단 한 번도 없었고 전국 수석 합격자가 1~2명 정도 나오다보니 '''중앙 언론사 기자가 학생을 직접 인터뷰한 뒤 언론사로 송고된 정식 기사'''로 보도되었고 심지어 '''TV 뉴스'''에 방송되기도 했었다. 1982학년도 학력고사 전국 수석으로 TV 뉴스를 탔던 제주제일고 3학년 원희룡(現 제주특별자치도지사)이 대표적 사례.[2] 그런데 정작 그 모 대학에서도 김치국 학생을 찾을 수 없었고, 대전 소재 모든 대학 모든 학과에서도 한밭고 출신 김치국 학생이란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돌연 수능이 지나고 사라져버린 것.[3] 사실 2007학년도 이전에는 생년월일 입력을 하지 않는 등 개인정보가 포함되지 않았다. 그래서 한때 이 시기의 모의평가 성적표는 평가원에서 재발급해주지 않았다. 관련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