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VUS

 

'''AVUS'''
'''Automobil-Verkehrs- und Übungs-Straße'''
[image]
1967년까지의 서킷 레이아웃
'''서킷 정보'''
'''위치'''
독일 베를린
'''개장'''
1921년
'''개최 경기'''
1926, 1959년 독일 그랑프리(포뮬러 1)
포뮬러 3
ETCC
독일 투어링카 마스터즈(DTM)
그룹C
'''길이'''
8.300km
'''코너'''
4개
'''랩레코드'''
2:04.5 (토니 브룩스, 페라리, 1959)

풀 코스 레이아웃 주행
독일의 수도 베를린 시내에 있었던 서킷. 약어는 'Automobil-Verkehrs- und Übungs-Straße', 자동차 운행 및 주행시험용 도로를 뜻한다. 현재는 A115 아우토반 노선의 일부분이다. 1921년 정식 개장한 세계 최초의 자동차 전용 도로이다.

1. 역사


베를린 남서쪽의 샤를로텐부르크(Charlottenburg)와 니콜라스제(Nikolassee) 사이의 그루네발트(Grunewald) 숲에 자리잡고 있다. 1913년 모터스포츠 경기장과 자동차산업을 위한 테스트 트랙으로 건설이 시작되었고, 자금 부족과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일정이 늦춰지다가 1921년에야 개장하였다. 당시 서킷 겸 도로 길이는 19.5km였고, 전 구간 1회 통행 요금은 10마르크였다. 포뮬러 원(F1)의 독일 그랑프리가 이 도로에서 1926년 최초로 개최된 이후 다음 해 뉘르부르크링(Nürburgring)으로 옮겨 갔다. 그러나 근대적인 레이싱 서킷보다는 도로에 가까운 설계였기 때문에 속도 기록을 내는 데에는 좋았지만 코너 반경이 좁아서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 때부터 지적받고 있었다. 따라서 어떤 의미로 보자면 몬자 서킷을 능가하는 역대급 초고속 서킷이다. 1936 베를린 올림픽 당시 마라톤 코스의 일부에 포함되기도 했다. 1937년에는 속도 기록을 위해서 북쪽 회전 구간을 뱅킹이 들어간 도로로 새로 건설했다. 1940년에 A10 아우토반과 연결되면서 레이싱 서킷으로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레이싱이 다시 시작된 것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인 1951년이었다. 원래는 남쪽에도 회전 구간을 건설하려고 부지까지 마련해 두었으나, 남쪽 끝이 시내 도로와 연결되고 회전 구간 부지를 미군의 사격 연습장으로 쓰게 되면서 계획이 변경되었다. 결국 중앙 분리대를 일부 철거하여 남쪽 회전 구간을 마련하고, 도로의 절반 정도인 8.3km 정도만 레이싱 서킷으로 사용했다. 당시의 코너는 고작 4개. 1959년 여기에서 다시 F1 독일 그랑프리가 열렸다. 베를린 장벽이 지어지기 불과 2년 전이었고, 독일 분단이 고착되려는 시기에 동독을 향해서 던지는 정치적인 메시지도 있었기 때문에 뉘르부르크링이 레이싱에는 더 적합함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다시 열렸다. 대회 기간 중에 코너 부분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하는 바람에 한동안 레이싱 경기용으로 사용되지 않은 적이 있었다. 독일 분단 시기에는 독일투어링카 DTM과 F1의 하위 레이스인 ‘포뮬러 3(F3)’ 등도 열렸다. 1937년에 건설된 뱅킹 구간은 1967년에 철거되었고 평지에서 도는 코너로 바뀌었다. 직선 주로 레이싱이 인기를 잃어버리자 1989년 DTM에서는 직선 주로의 거리를 4.8km, 1992년 DTM에서는 2.6km로 줄이고 시케인을 더 추가하였다.
구조 자체가 레이싱 서킷보다는 고속도로에 더 가까웠고, 레이싱 트랙에서의 사고와 독일 통일 이후 베를린 시내 교통량 증가 때문에 레이싱 서킷으로는 사용하기 어려워졌다. 1998년 마지막 정식 경기가 열리고 1999년 고별전이 열린 다음 2000년 이후로는 서킷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레이싱 서킷은 브란덴부르크로 이사갔다. AVUS 시절의 흔적으로는 북쪽에 둥근 경기관리탑이 남아 있고 오래된 목조관람대는 역사기념물로 지정, 보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