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aea/스토리

 




1. 개요
2. 메인 스토리
2.1. 히카리
2.1.1. 해금 조건
2.1.2. Eternal Core
2.1.3. Luminous Sky
2.2. 타이리츠
2.2.1. 해금 조건
2.2.2. Eternal Core
2.2.3. Vicious Labyrinth
2.3. Adverse Prelude
2.3.1. 해금 조건
2.4. Black Fate
2.4.1. 해금 조건
3. 사이드 스토리
3.1. 사야
3.1.1. 해금 조건
3.1.2. Absolute Reason
3.2. 코우
3.2.1. 해금조건
3.2.2. Crimson Solace
3.3. 레테
3.3.1. 해금조건
3.3.2. Ambivalent Vision
3.4. 시라베
3.4.1. 해금조건
3.4.2. Scarlet Cage
3.5. 앨리스 & 테니얼
3.5.1. 해금 조건
3.5.2. Ephemeral Page


1. 개요


Arcaea의 스토리를 기록한 문서.
2.0 업데이트로 스토리 열람 방식이 개편되었다.
스토리가 거의 추상적인 단어로만 이루어져 있는데다가, 번역의 퀄리티가 저조하여 읽기가 굉장히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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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메인 스토리



2.1. 히카리



2.1.1. 해금 조건


'''스토리 #'''
'''진행 순서'''
'''해금 조건'''
1-1
Eternal-1
[image]
[image]
히카리Lumia 클리어
1-2
Eternal-2
[image]
히카리memoryfactory.lzh 클리어
1-3
Eternal-3
[image]
히카리PRAGMATISM 클리어
1-4
Luminous-1
[image]
히카리Maze No. 9 클리어
1-5
Luminous-2
[image]
히카리Halcyon 클리어
1-ZR
Luminous-3
[image]
[image]
히카리ZeroEther Strike 클리어
1-7
[image]
Luminous SkyAnomaly곡 해금
1-8
Luminous-4
[image]
히카리Luminous SkyAnomaly곡 클리어
1-9
Luminous-5
[image]
히카리FractureLuminous SkyAnomaly곡 클리어
V-1
Luminous-6
[image]
히카리FractureVicious LabyrinthAnomaly곡 클리어

2.1.2. Eternal Core


=====# 1-1 #=====

그녀는 주변에 날아다니는 나비들과 함께 깨어났다.

"아름답다. 줄이 없으면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릴 수도 있겠는데."

무릎에 앉은 나비와 함께 그녀는 옷매무새를 고치며 줄을 찾아봤지만 줄은 없었고, 자세히 보니 그것들은 나비가 아닌 작은 유리 조각들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던 것이었다. "우와!"

유리 조각에는 그녀가 지금 있는 하얀 세상이 아닌 또 다른 세상의 바다, 도시, 불, 빛 등이 비춰지고 있었으며, 그녀는 유리 조각들을 날리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 유리 조각들에게 '아르케아'라는 이름이 있는지는 몰랐다.

사실은 그 아름다움에 취해 이름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로지 유리 조각들을 가지고 노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을지 모른다.

그녀가 지금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질문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어떠한 질문과 답도 원하지 않았고,

그저 아르케아에 비춰지는 빛을 보며 즐기고 있었을 뿐이며,

그것이 그녀와 새로운 세상의 첫 만남이었다.

=====# 1-2 #=====

하지만 그 질문들은 그녀에게 필연적이었다.

그녀는 흩날리는 유리 소용돌이 한가운데 서서 생각했다. "이건 정말 뭘까?"

'차원'? '창문'? '기억'?

순간 마지막 단어인 '기억'이 그녀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고, "그래, 이건 기억들이야..."라고 속삭이며 생각을 멈췄다.

어떠한 이유로 이 장소에 어떠한, 누군가의 기억들이 가득 차 있는지 확실하게 단정 지을 수 없었지만, 그쯤에서 질문을 멈췄다.

유리 조각들이 계속해서 그녀를 따라왔지만 손으로 잡을 수 없었으며, 그녀에게 다가오지도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조각들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 조각, 한 조각.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 1-3 #=====

얼마나 많은 시간을 걸어왔는지조차 알 수 없었지만, 문뜩 그녀의 머리에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다...

'아름다운 기억', 그녀가 찾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애초에 모든 기억은 확실하지 않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지만, 과거와 가장 가깝다는 것은 분명하고, 그것이 괴로운 또는 행복한 기억이건 간에, 떠올릴 수 있게만 된다면 그녀에게 도움이 될 것임이 확실하다.

지금부터 그녀는 다른 장소들과 여러 인물들을 통해 기억을 되찾게 될 것이며, 또한 그 아름다움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첫 번째 장소이자 파괴된 흔적과 함께 이상한 기운이 감도는 이곳에서 갑자기 아르케아가 반짝이며 흩날렸다. 마치 더욱 쉽게 기억을 더듬어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았다.

그녀는 손을 들고 흥얼거리며 천천히 부서진 길을 걸어 내려갔다. 반짝이는 빛의 흐름을 따라 걸으며, 그녀는 이 세상과 어떤 기억이 어울릴지 생각해 본다. 괴로운 기억, 아름다운 세상...

"정말 멋지다..."

그녀가 깊게 심호흠을 하고 미소를 짓는다. 너무 평화로워 보이는 게 아닐까 생각되지만,

걱정거리는 없어 보인다.

'즐거움', 지금 그녀에게는 오직 이 한 단어만 필요할 것이다.


2.1.3. Luminous Sky


=====# 1-4 #=====

즐거워 보이는 풍경, 그녀는 파괴된 세상을 꽤 오랫동안 걸으며 계속해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기뻐했다.

오랜 시간 동안 유리 조각과 함께 하고 있는 그녀의 여행길에서 갑자기 하늘은 그녀가 가장 멀리 볼 수 있는 만큼 빛을 비춰주었다. 마치 안내자처럼 말이다. 환상적으로 빛나는 하늘은 그녀를 떠나지 않았으며, 그녀의 주변에는 오직 행복하고 좋은 일들만이 일어나고 있었다. 세상의 것들은 그녀에게 결코 끝나지 않은 행복을 주었다.

그녀는 어느 저택으로 연결되어 있는 나선형 계단을 터벅터벅 내려오고 있었는데, 갑자기 모든 벽이 무너지며 기억들이 그곳을 매꾸었다. 그녀는 빠르게 그곳을 빠져나와 기억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고, 아르케아가 그녀에게 빛을 비추고 있었다. 그녀가 그것들을 발견하자 곧바로 빛나는 하늘로 돌아갔으며, 황홀함에 취한 그녀는 환호와 함께 미소를 지었다.

꽃, 입맟춤, 사랑, 탄생, 유리 조각들로 가득 찬 강가에서 그녀는 생명이 곧 또 다른 생명으로 이어지고 나머지는 다시 흡수되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녀는 유리 조각들에 비춰진 수많은 시간들을 살펴보았고, 그녀는 계속해서 기뻐했다.

그녀는 벽 위를 응시하였고, 그것들은 하나로 합쳐져 더욱 생기가 넘쳐흘렀다. 그녀에게 새로운 호기심이 채 생기기도 전에, 그녀는 단지 만족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여전히, 결과에는 별달리 신경쓰지 않았다.

=====# 1-5 #=====

세상에는 이런 격언이 있다. "무엇이든 과분하면 독이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사실을 몰랐으며,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소녀는 어떠한 강력한 힘이 그랬던 것처럼 보이는 완벽하게 둘로 나누어진 거대한 콘서트장을 가로질러 걸었고, 춤, 공연, 희망, 승리 등 그날의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그녀는 입을 씰룩거리기 시작했다. 지루해지기라도 한 걸까? 그녀가 팔을 올리자 아르케아는 그녀에게 다가왔고, 부드럽게 그녀의 손바닥과 손가락을 따라 춤을 추었다. 그녀는 그것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녀는 은퇴하는 밴드를 향한 환호성을 몇 번이나 들었을까? 그녀는 두 형체가 껴안는 장면을 몇 번이나 보았을까? 그녀는 사랑의 형태를 수없이 보았고, 그것은 분명히 오래되어 잊힌 세상에서 흔하게 있었던 일들이다.

그녀는 그 기억들을 그냥 내버려 두었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것들은 흩날리기 시작하며 그녀가 계속해서 모으고 있는 기억들에 흡수되었다. 그녀가 기억을 모으기 시작한 이후로 기억들을 점점 더 빛나며 커져만 갔다. 매일매일 더 빛나는 듯하다...

얼마나 많은 날들이 지났을까? 그녀는 움찔하며 얼굴을 찌푸렸지만, 금방 떨쳐버렸다.

그녀에게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고, 그러면 잊힌 모든 것들이 생각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녀는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지만, 자신을 괴롭히는 아르케아를 밀어낼 수는 없었다.

=====# 1-ZR #=====

"천국"은 지옥의 일종이다.

한가로운 평화와 걱정 없는 기쁨도 사실 열정에 대한 저주와 같은 것이다. 끝없이 행복을 느끼는 것은 감각을 둔하게 하고 "행복"을 희미하게 만들며, 최종적으로는 목적을 없어지게 만든다. 지금은 아무 목적이 없으며, 그녀 또한 목적을 가져본 적도 없다.

하늘이 눈이 부시게 빛나고 있다.

그녀는 도중에 헤맬 수도, 계속 가만히 서있을 수도 있다. 그녀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별로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그녀가 만든 하늘은 계속해서 그녀의 주의를 끌었지만, 그렇다고 그 안에 있는 기억들은 분류할 수는 없었다. 그것들은 갑자기 불투명해지며 두꺼운 안개로 변했고, 알 수 없는 공허함으로 변했으며, 그녀는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정신을 잃어갈수록, 그녀의 감각은 점점 무뎌져만 갔다. 그녀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녀가 직접 이 기쁘고 숨막히는 새장을 불렀다. 그녀는 이제 자기 스스로에 의해 그곳에 갇히고 말았지만, 여전히 걱정은 없어 보였다.

하늘은 더욱 밝게 빛나며 그녀는 점점 더 의식을 잃어만 갔고, 겨우 조금의 시간만이 남겨진 그녀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밝게, 더 밝게, 행복함과 아름다움이 그곳에 있었고, 눈부신 기억들은 그녀를 덮쳤다.

그녀의 마음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그리고 의미없이, 빛은 사라져버렸다.

의미 없이, 시간이 흘렀다.

소녀는 공허한 하늘만을 쳐다보았고, 그녀의 마음은 끝났으며, 따라서 그녀의 이야기도 여기서 끝나는 듯했다.

=====# 1-7 #=====

그녀는 무릎을 꿇고 턱을 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창조물이 그녀를 망각의 빛으로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그녀의 위에서 느껴지는 빛과 압력은 부드러웠지만 견디기 힘들었다.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그녀 가까이로 끌어왔다.

그리고 거대한 공허 속에서 무언가 그녀의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홀로 떨어짐으로 인해 그녀의 평화는 깨지기 시작하였고, 그녀의 시선은 무언가로 향했다. 조금은 붉어 보이는 특별한 유리 조각 하나가 보였고, 분명히 눈에 띄기 시작했다. 아마 현실 또는 그녀의 마음을 통해 하늘의 남은 부분이 빠져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더 확실하게 볼 수 있었으며, 역시 깊게 생각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하늘이 흔들리며 왜곡되고 있으며, 균열이 그들을 통과하는 듯하다. 새로운 기억에 의한 창조물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뒤틀리고 있다. 기억의 조각은 존재해서는 안 됐었다. 그것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 하늘을 파괴한다.

격렬하고도 고요하게 천장이 무너져 내리고, 산란한 빛이 숨을 막히게 만들었다. 알 수 없는 현상은 그녀에게 웅장하게 보이기만 했다. 하지만 그녀는 즐거운 기억들의 무서운 혼돈 앞에 떠오르고 있는, 최근에 발견한 기억의 조각에 머물러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 기쁜 기억이자 그녀가 잃어버린 자기 자신이었다.

"내가 어디에... 있던 거지...?"

그녀는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고, 마치 오랫동안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것처럼 들렸다.

무로 돌아간 그녀는 그 이상한 조각을 쥐고 있었고, 그것을 통해 그녀가 깨어있던 시간을 살펴보았다. 시간 속 그녀는 유리 조각과 함께 춤을 추며 거울 세상을 여행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행복이 오래전에 그녀 곁을 떠났다는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 1-8 #=====

반짝이는 유리 조각이 죽은 세상을 비추며 비처럼 쏟아지고 있다. 그 중심에 선 소녀는 그 조각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비출 수 있도록 집중하였지만, 그 세상은 아직까지 비춰지고 있었다.

눈물이 흐른다. 그녀도 이유를 알고 있다. 그녀의 마음은 회복 중이며, 그녀가 전에 가졌던 모든 것에 대한 상실감에 대해 아파했다. 모든 것이 그녀의 주변으로 쏟아졌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열정에 대해서도 떠올랐다. 반사된 기억들은 그녀에게 더 좋은 시간들을 보여주었고, 그녀가 스스로 창조시킨 함정에 빠져버린 것도 보여주었다. 그것이 그녀를 어디로 인도할지 알고 있었더라도, 무의미한 것은 계속해서 무의미했다. 하지만 그녀라면 행복을 위해 그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했을지도 모른다.

유리 속에 붉은 형체는 그녀가 입었던 붉은 옷이었다. 그녀의 손도 붉게 만들기 위해 조각을 꽉 쥐어잡자, 과거와 현재의 경계가 흐려지고, 반짝이는 표면이 따뜻해졌다. 그녀는 다시금 느끼게 되었으며, 전보다 더 많이 느끼게 되었다. 그녀는 너무나도, 후회했다.

그녀는 그냥 자신감만을 가지고 의미 없이 앞으로 나아갔을 뿐이다. 그녀는 단지 아르케아를 모으는 것에 즐거워했을 뿐이며, 이유 같은 건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녀는 자신을 스스로 눈부신 감옥에 가두고 쾌락주의적 존재로 타락시켰었다. 그녀에게는 목적이 없었으며, 그녀 자신조차 거의 잃을 뻔했다.

"왜?"라는 질문에 뚜렷한 답은 없었다. "그냥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는 말도 위안이 되지 않는다. 무릎을 꿇고 가슴 안에 있는 기억과 함께 울기 시작했다. 그녀도 무엇이 잘못된 거였는지는 알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주변을 너무 많은 사랑과 생명으로 채워 되려 역겹게 변하였다. 그리고 그 사실이 그녀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슬픔에 잠긴 소녀는 계속해서 울었고, 일어난 모든 일들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 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최대한 생각해 보았다.

=====# 1-9 #=====

고요하다.

오래된 시간의 작은 조각들 몇 개가 떨어져 이 정적을 깼지만, 소녀는 안정을 되찾은 듯하다. 그녀는 더 이상 울지 않았고, 손 위에 말라버린 피와 함께 유리 조각 위에 앉아 있었다. 두려움, 걱정, 후회는 이제 끝난 듯하다. 그리고, 그녀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그녀가 무엇을 했건 간에, 잘못된 것이었다.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모든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더 행복한 생각을 하면 나아질 수 있어"라는 생각과 함께, 좋은 기억들로 하늘을 채워나갔다. 수상한 조각들이 다른 조각들과 뒤섞여 위험해질지도 모른다는 것은 걱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 걱정들이 그녀를 삼키려고 위협하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 걱정들을 이겨내려면, 반드시 이유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녀에게는 이 오래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필요할 것이다. 이 세상은 무엇을 의미하며, 그녀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할까? 때로는 그녀가 거부한 조각을 통해 그녀가 시련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따뜻한 기억들이 계속해서 그녀를 따라갈까? 그녀는 누구였을까?

그녀가 다리를 떨며 다시 일어서자, 그녀의 눈에 빛의 생기가 다시 찾아왔으며, 아르케아가 다시 그녀의 주변을 감쌌다. 그녀는 무언가 궁금한 듯 손을 올려보았고, 그것들 또한 따라 올라갔다. 그녀는 잠시 곰곰이 생각한 후에 그녀와 그것들에게 전과는 다른 변화가 있음을 깨달았다.

아르케아는 멋대로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았고, 그녀는 이제 스스로를 가두는 일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피가 묻지 않은 순등으로 눈물을 닦고, 조각이 새로운 길을 나아갈 그녀의 뒤를 따를 수 있도록 하였다. 그녀는 아르케아를 기억인 채로 간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이 괴상한 세상에서 새로운 것들과 또 마주치게 될 것이며, 그리고 그것이 좋은 나쁘든 모두 찾아낼 것이다.

이것이 그녀가 한 맹세이며, 그녀는 확신했다.


2.2. 타이리츠



2.2.1. 해금 조건


'''스토리 #'''
'''진행 순서'''
'''해금 조건'''
2-1
Eternal-1
[image]
[image]
타이리츠cry of viyella 클리어
2-2
Eternal-2
[image]
타이리츠Essence of Twilight 클리어
2-3
Eternal-3
[image]
타이리츠Sheriruth 클리어
2-4
Vicious-1
[image]
타이리츠Iconoclast 클리어
2-5
Vicious-2
[image]
타이리츠conflict 클리어
2-D
Vicious-3
[image]
[image]
타이리츠Axium CrisisAxium Crisis 클리어
2-7
[image]
[image]
Vicious LabyrinthAnomaly곡 해금
2-8
Vicious-4
타이리츠Vicious LabyrinthAnomaly곡 클리어
2-9
Vicious-5
[image]
타이리츠Grievous LadyVicious LabyrinthAnomaly곡 클리어
V-1
Vicious-6
[image]
히카리FractureVicious LabyrinthAnomaly곡 클리어

2.2.2. Eternal Core


=====# 2-1 #=====

파괴된 탑에서 깨어나게 된 그녀가 첫 번째로 본 것은 공중에서 희미하게 흩날리고 있던 유리 조각들이었으며, 조각들은 곧 하얀 세상으로 그녀를 인도하였다.

모두 하얗고, 더 많은 유리 조각들이 있다. 그녀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이였지만, 곧장 그녀는 의문과 함께 조각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치 열차의 창문을 통해 세상 밖을 내다보는 것처럼, 조각을 통해 무언가가 희미하게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번의 반짝임에는 비를, 다른 한쪽에서는 햇빛, 그리고 죽음을 목격하게 된 그녀는 그만 얼굴을 찡그리며 살펴보는 것을 멈췄고,

손을 뻗은 그녀의 손에서 부서진 조각들이 자연스럽게 세어 나갔다. 찡그린 그녀의 얼굴에 갑자기 무언가가 반짝거리자 그녀는 흐린 하늘의 그 무언가를 응시했다. 확실하게 보일수록 그녀는 놀라기 시작했고, 조각들이 그녀를 흔들기 시작해 입을 열 수조차 없었다.

그곳에는 유리 조각들이 빛나며 빠르게 흩날리고 있었다. 마치 그녀가 폭풍의 아래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두려워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유리 조각들은 인사를 하기 위해 그녀를 덮었다.

=====# 2-2 #=====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녀를 감싼 거센 유리 조각들이 얼굴을 비추거나 공격했으며, 그녀를 보다 강하게 과거로 밀어 넣었다.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똑바로 서서 어딘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기억...?

...더렵혀진 세상의...

"이게 뭐야...!?"

그녀는 손을 뻗었다.

"이건...!"

'질투', '배신', '고통'의 기억.

그녀는 그것들을 저지하려 했지만, 여전히 그녀 주변을 맴돌며 차가운 냉기를 유지했다. "이건 그냥..."

어둠? 오직 어둠뿐인 건가? 유리 조각들이 어디를 비추든 간에... 반짝이는 작은 빛들이 보였지만, 그것들은 다시 곧바로 사라졌다. 그녀는 입술을 깨문 후 끝내 미소 아닌 미소를 지으며, "이게 무슨 장난이지?" 라고 투덜거였다. "온통 불길한 단어들 뿐이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미소는 점점 사라져만 갔다.

=====# 2-3 #=====

그녀가 얼마나 오랫동안 기억의 조각들을 모았는지는 모르지만, 많은 시간이 지난 것만은 확실하다.

그녀는 잠시 동안 행복한 기억들도 찾아보려고 노력했고, 마침내 몇 가지는 발견했지만 불길한 기억의 조각들이 그녀를 계속해서 놓아주지 않았으며,

그녀는 끝내 자신이 혐오하는 몇 가지 장소들을 알게 되었다.

주변을 돌고 있던 유리 조각이 갑자기 우주와 흡사하게 변했고, 그녀는 그 폭풍 속에서 생각을 시작하며 이 상황을 두 가지 가능성으로 간추렸다. 불행한 기억 밖에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이 세상 또는 조각을 통해 보이는 세상은 완전히 불행할 것이다' 라며...

어느 쪽이든, 그녀는 그것을 모두 없애기로 결심하였다.

그러자 그녀의 안에서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괴로운 기억을 볼 때마다 즐거워하는 그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런 기억만 찾기 시작했으며, 신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이 쓰레기들을 모두 처리할 수 있다면... 아니면 아예 이곳을 없애버릴 수 있다면 좋겠군..."

이곳에는 빛과 동시에 혼돈이 공존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계속해서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다.


2.2.3. Vicious Labyrinth


=====# 2-4 #=====

시간이 지나고 그녀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그것들은 그녀의 목 주변에 목걸이 같은 고리를 형성하고 그녀를 계속해서 따라다녔다. 그녀는 셀 수 없이 많은 유리 조각을 모아 세상을 살펴보았고, 그녀는 이제 무너진 탑 위에 올라서서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다른 장소에서의 불행한 기억들이 그녀의 뒤에서 위협적으로 감돌고 있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눈에 밟혔던 한 장소를 응시하였지만, 그곳으로 향하지는 않았다. 그곳은 마치 기하학적인 지형과 함께 하늘로 향하는 미로와도 같았다. 계속해서 더 많은 조각들이 모아졌으며, 아직까지 더 많은 쓰래기들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아직까지 그곳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몰랐다. 단지 그녀를 따라오고 있는 불행한 기억의 조각들을 한 번에 처리하기 위해 계속해서 모았고, 한곳에서 나쁜짓을 단 한 번만 해도 된다는 것을 최소한의 위안으로 삼았다. 그렇게 하면 언젠가는 더 쉽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미로에는 특별히 더 나쁜 기억들이 많아 보였으며, 그럴수록 더 많은 조각을 모을 수 있다는 그녀의 자신감은 커져만 갔다.

미로는 빛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좋은 기억의 바다로 둘러싸여 있었다.그녀가 미로로 향할수록 바다는 갈라졌으며, 어느샌가 몇 개의 조각만이 그녀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계속해서 길을 나아가며 좋은 기억을 흩날리던 그녀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망설였다. 희망에 휩싸이기 전까지만 해도 절망에 빠졌었던 그녀는 입술을 물며 갈등하기 시작했다.

=====# 2-5 #=====

예전에는 확실하게 모든 것이 지금보다 나았을 것이다.

소녀는 유리 조각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깨어난 이후로 아무것도 기억하질 못하며, 아는 것이라고는 다른 기억 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녀는 다양한 생각과 함깨 수많은 결과들을 그려보았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유리 조각 안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이 세상에 가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쓰래기와 두려움, 눈물과 고통, 쓴웃음, 그리고 죽음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라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예전에는 확실하게 모든 것이 지금보다 나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간단한 원칙이 종종 사실이 되곤 한다.

빛으로부터 그림자가 생기고, 그림자가 그녀의 뒤에 드리우고, 또한 그녀는 이제 빛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녀가 즐거움과 순수함에 발은 내디뎠을 때, 그녀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악에게 너무 흡수되어 단순하게 좋던 것들을 잃어버렸고, 그녀의 마음은 흔들림 이상이었으며, 마침내 압도당했다. 복잡한 미로로 향하는 길에서 그녀의 눈에 보이는 반짝거리는 모든 희망을 그대로 두고, 그녀는 잠시 멈춰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빛과 혼돈이 공존하는 이곳에서 인정하기 싫은 답이 나왔고, 그녀는 더 이상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 싫어졌다. 그 답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정말 그러기 전에, 그녀는 나갈 수 없어 보이는 미로의 입구에 서서 충동적으로 더 나은 유리 조각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꽃이 만발한 들판의 기억이 그녀 주위에 고리를 형성해 따라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도움이 될만할 것 같지는 않았다.

=====# 2-D #=====

그녀 자신은 모르고 있었지만, 사실 그녀에게는 이름이 있었다.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녀는 아마 복잡한 검은 미로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의미가 있는 그 이름은 그녀의 의구심을 증폭시켰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몰랐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자신의 신념을 다시금 확인했다. 뒤에서 빛나고 있는 빛들은 그녀의 마음을 흔들지 못했으며, 꽃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는 빛도 그녀를 흔들지 못했다. 그녀는 어둠 속으로 들어갔고, 그것들을 찢기 시작했다.

삐져나온 미로의 벽들은 불행으로 만들어졌으며, 각 면들은 공포를 나타냈고, 모퉁이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성으로서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며, 간단히 말해서 기괴했다. 너무나도 음산한 미로.

그리고,다시 소녀에게 미소가 찾아왔다. 이것이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미로를 오르고, 달리고, 이것은 첫 번째 장소에서 그녀가 행동하도록 떠밀어버렸던 역겨운 비석이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잘못한 것은 없다. 유리는 반드시 깨져야 했으며, 조각들은 반드시 흩날려져야 했을 뿐이다.

그녀는 즐겁게 거대한 미로 속 통로들을 밀어내었고, 갑자기 새로운 길들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 미소가 사라지며 그녀는 움찔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머리 위에 무언가 있기 때문이었다. 미로의 중심에는 어떠한 기억보다 더 최악인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무언가는 계속해서 그녀에게 속삭이며 그녀의 열정을 빼앗고 속도를 늦추게 했다. 그녀는 그것이 지금 가까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속도를 늦추고 세상의 종말을 의미하는 기억을 포함하고 있는 사악한 유리 조각이 날아다니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녀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거울에 반사된 세상을 보았다. 그녀는 그녀 아래에 있는 즐거운 현실의 바닥을 떠올렸고, 꽃들이 그녀 주변을 맴돌았다. 그녀가 미로의 천장 부분에서 쓰러지자 벽들이 하나씩 붕괴되었다. 어두운 유리 조각들이 천천히 그녀를 향해 쏟아졌으며, 저 멀리에서는 좋은 기억들이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손가락 사이로 세상의 종말을 보고 말았다. 두려움을 느꼇지만 새로 발견한 힘과 함께 천천히 그곳으로 손을 뻗어 곧 세상의 종말도 그녀의 기억 수집함에 넣어버렸다. 그 역겨운 비석을 없애버리자 그녀는 행복을 느끼기 시작했으며, 앞으로 어떠한 괴로운 기억과 마주쳐도 그녀에게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그녀는 이제 자신에게 무엇이 잘못됐었는지 깨달았으며, 그것을 모두 파괴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조금 지친 모습과 함께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내려왔고, 탑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 2-7 #=====

그녀는 갑자기 마음속에서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두 배는 거대한 미로 탑 어느 곳에 서 있다가 뒤로 물러나 입을 가렸고, 눈은 혼란으로 가득 찼다. 그녀는 무릎을 꿇기 시작했으며, 무릎이 땅에 닿기도 전에 탑이 먼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모음 우울한 날들의 기억은 그녀의 주변을 맴돌았고, 천천히 쏟아지고 있던 탑의 기억들은 폭우로 변해버렸다.

그녀와 미로는 마치 떨어지고 있는 잔해 같았으며, 그녀는 떨어지고 있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마침내 그녀는 다른 세상의 행복한 기억의 조각들로 이루어진 바다로 떨어졌으며, 그녀와 부서진 미로는 거대한 파도를 일으켰다. 떨어진 유리 조각들이 다른 유리 조각들을 밀어버리는 모습은, 추악하기도 했지만 아름답기도 했다. 그녀는 그 폭풍의 한가운데서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마음속에서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그녀의 주변에 있던 기억들은 기괴하게 생긴 구체로 변하여 다시금 그녀 주변을 맴돌았다.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하얀 세상에는 이제 흉측한 것들 밖에 남지 않았다.

온몸이 떨리며 불안하고 식은땀이 흘렸다. 그녀가 다시 유리 조각, '아르케아'를 들여다 보자 그녀의 마음이,

그녀의 온전한 정신이 파괴되고 있었으며,

이전에 보았던 세상의 종말이 천천히 그녀의 시야에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 2-8 #=====

소녀는 파괴된 하얀 세상에서 깨어난 이후로부터 수많은 감정들을 느껴왔지만, 그중 대부분은 '분노'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 분노를 이상한 희망으로 바꿀 수 있었다. 사실 많은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였다. 그녀는 단지 그녀의 발걸음 끝에는 무언가 좋은 것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을 뿐이다. 희망을 가졌었고, 이 혼돈이 곧 빛으로 바뀌리라 확신했었다. 많은 시련이 그녀를 괴롭혔고, 두려움으로 사로잡힌 그녀는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었다.

그녀는 매우 감정적이었다. 그녀가 무언가와 마주칠 때마다 확실히 그랬다. 이유조차 모른채... 그녀는 고통받기 시작했다.

잔인하기 짝이 없는 운명은 희망을 품은 채 눈앞에서 부셔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녀는 죽음의 원 안에서 무릎을 꿇고 단지 세상이 끝나는 것만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느낀 첫 번쨰 '슬픔', 그리고 그것은 곧 빠르게 '절망'으로 변해갔다.

아르케아의 세상은 무의미했고, 이는 단지 세상이 사라지는 과정을 보여줬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실체가 없는 형태로 비춰왔던 것이다. 그녀는 가끔 기쁘고 즐거운 기억들도 마주치긴 했지만, 이제는 과거로만 남았다. 긴 밤이 끝나고 새로운 아침이 밝아 오듯이, 그것들은 자연스럽게 끝을 맞이했고, 그녀는 천천히 그녀의 뒤에 맴돌고 있는 그것들을 바라볼 뿐이다.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그녀가 꺠어난 이후로 수많은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즐거웠고, 즐거움은 그녀를 떠나버렸다.

그녀는 두려웠고, 두려움도 곧 그녀를 떠났다.

분노가 그녀를 떠났다.

희망도 그녀를 떠났다.

슬픔과 절망도 이젠 그녀를 떠나버렸다.

그녀의 눈은 어둠으로 향했으며 유리 조각의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 주변을 맴도는 기억들이 갑자기 부서지며 퍼져 나오기 시작했고, 그녀는 그곳을 빠져나와 눈부신 빛 아래에 섰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 2-9 #=====

기름으로 오염된 바다와 같이, 저주받은 미로의 기억과 그녀가 가져온 모든 기억들이 그녀의 주변으로 쏟아져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것들은 회색 덩어리로 변하며 일부는 가시처럼 돋아나기 시작햇다. 그녀는 계속 어둠으로 향하며 천천히 모든 조각들을 살펴보기 시작했고... 수를 세어보았다. 심지어 눈 주변까지 날카롭게 날아와도, 그녀는 무시한 채 단지 수를 세기만 했다.

마침내 그녀는 단순한 생각과 함께 손가락을 들어 앞에 있는 조각의 일부에 신호를 보냈고, 조각들은 깨지기 쉬운 나비로 변했다. 그녀는 하얀 세상을 비출 수 있도록 나비들을 하늘로 보냈고, 다시 그녀에게 돌아왔을 때는 무엇을 보았는지 그녀에게 보여주었으며, 그녀는 또한 단순한 생각과 함께 그 날개를 찢어 버려버렸다. 그녀가 계속해서 더럽혀진 바다를 걷는 동안, 그녀의 길 앞에 나타난 모든 잃어버린 시간의 기둥들이 하나같이 부서지고 흩어져 버렸다.

시간이 지나고, 그녀는 변했다.

그녀는 더 이상 기억을 모으려 하지 않았고, 멍하니 세상 속을 걷기만 했다. 그녀 자신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지만, 이미 의지를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녀는 파괴의 잔해 속에서 발견한 파라솔을 빙빙 돌리며 탑의 잔해 옆을 걷고 있었다. 우울한 날들을 비추고 있는 유리 조각들은 아무 말 없이 하늘에서 그녀를 향해 비끄러져 내려와 반짝이는 까마귀로 변하였으며, 그녀는 그것을 도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날이 지나고, 부서진 타워에서 그녀는 이제 이런 형상의 원인일 만한 혼돈의 아르케아와 더욱 잘 어울리게 되었다. 그것은 빛나는 하얀 세상속의 그녀가 닿지 않는 곳에서 계속해서 그녀를 향해 속삭였다. 너무 부신 나머지, 그녀는 그것을 파괴시켜버리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이 까마귀들은 계속해서 그녀를 병들게 했다. '이 세상은 공허하다'라고 반복할 뿐이었으며, 그녀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여기에서 다른 누군가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 암울한 운명을 같이 짊어질 누군가를 발견할 희망을 품었지만, 결국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절망감을 살아있는 무언가에게 표출하고 싶었다. 즉, 누구를 다치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 V-1 #===

폐허는 다른 광경처럼 매우 흔하게 보였지만, 빛의 소녀는 발걸음을 옮기며 주의를 기울였다.

그녀는 무엇이 파괴되었으며 왜 그곳에 있는지,

지금 그녀가 헤매고 있는 세상이 과거를 가지고 있는지,

또는 처참한 광경들은 단순한 우연일 뿐인지 궁금해졌다.

그녀는 알지 못하는 행복감에 굴복하지 않고 이 의문에 대해 생각해야만 한다고 느꼈다.

만약 그녀가 이유를 원한다면, 그마저도 이 세상을 알아가는 것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건 또 다른 세상인 걸까?

그녀는 아르케아를 통해 보이는 것들을 그렇게 생각했고,

탑과 건물들이 부셔지지 않은 상태의 이 세상은 어떨까라는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런 세상을 볼 기회가 생긴다면...

파괴된 흔적을 보아 강력하고 거대한 힘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녀는 파괴되기 전의 이곳은 분명히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아름다운 장소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과거가 있다면, 이는 유감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곳에는 오직 그녀뿐이었고, 그녀는 의자와 부서진 양초 사이로 걸어갔다.

그러다 그녀는 갑자기 느껴진 인기척 때문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녀의 왼편에 있는 부서진 벽 뒤에 누군가 서 있었던 것이다.

예전의 그녀라면 순진하게 미소를 지었겠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그림자에 가려진 소녀를 바라보는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기쁨을 감출 수는 없었다.

기억이 아닌, 여기 이 세상과 그녀의 눈 앞에 다른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혼자 걸어온 그녀의 앞에,

다른 생명체, 숨을 쉬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그 소녀는 그녀를 눈치채지 못했도. 소녀는 파라솔 아래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어두운 형상은 세상과는 확연히 달랐고, 먼곳에서도 밝게 빛났으며,

그래서 그녀는 그 소녀가 아마 꿈 아니면 걸어다니는 기억이라고 착각을 했다.

그녀는 입을 열고 말을 걸어보았다. 그러자 그 소녀도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슬픔과 악을 잊어버리고 잠이 들었던 그녀가 꺠어나,

그녀 앞에 있는 새하얀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 빛나는 숨결에서 새어 나오는 안도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고,

어둠의 소녀는 눈이 부신 상태로 질문을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질문 대신 눈썹을 추켜올렸고, 파라솔 손잡이를 더욱 힘껏 잡았다.

그녀의 마음으로부터 뒤틀린 기쁨이 흘러나왔고, 멈출 수 없었다.

기쁨은 그녀의 얼굴을 타고 올라갔으며, 혼돈의 소녀는 빛의 소녀에게 숨길 수 없는 미소를 보였다.

To be continued...


2.3. Adverse Prelude



2.3.1. 해금 조건


'''스토리 #'''
'''진행 순서'''
'''해금 조건'''
V-2
Adverse-1
[image]
[image]
타이리츠Particle Arts#Arcaea 클리어
V-3
Adverse-2
[image]
[image]
히카리Vindication 클리어
V-4
Adverse-3
[image]
히카리Heavensdoor 클리어
V-5
Adverse-4
[image]
[image]
타이리츠Ringed Genesis 클리어
=====# V-2 #=====

벽도 지붕도 없는, 남아 있는 거라곤 앙상한 의자의 뼈대와 꺼져버린 하얀 초들 뿐인 교회에 검은 옷의 소녀가 오래된 문 가까이 서서 방금 만난 한 사람을 쳐다보고 있다.

생각해보면 그리 복잡한 상황도 아니다. 오랫동안 홀로 방황했던 그녀 앞에 마침내 따뜻한 피가 흐르는 진짜 인간이 나타났을 뿐. 그러나 그녀는 설레지도, 흥분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짓는다. 가식적인 미소다. "만나서 반가워요." 라고 그녀가 흰옷을 입은 소녀에게 말을 건다. 진심은 하나도 담기지 않았다.

"이름이 어떻게 돼요?" 그녀의 메마른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제서야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오랜만에 말을 하는 건지 깨닫게 되었다.

"내... 이름? 나는... 잘 모르겠어." 빛의 소녀가 대답한다. "너는? 너는 이름이...있어? 음... 내 말은..."

그녀는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특이하네..." 라고 그녀는 화려하게 장식된 벽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흰옷을 입은 소녀의 얼굴에는 귀찮다는 표정뿐이다.

이상한 만남이었다. 빛의 소녀는 어둠의 소녀가 얼마나 열정적이지 못한지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정작, 어둠의 소녀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차가운 바람을 만난 불처럼 그녀의 희망이 깜박거리며 희미해져 가는 느낌이다. 이제 그녀 안에는 불편함, 걱정 그리고 경계심만 커져간다. 두 소녀 사에 감도는 섞일 수 없는 불편한 분위기를 두 사람 중 하나는 틀림없이 느꼇을 것이다. 그녀에게 그들의 만남은 마치 하늘이 내려준 인연이라고 생각되었을지도... "뭔가 잘못됐어." 지금까지 줄곧 여기에 있었던 유리 조각이 불규칙적으로 흩어져 그 기묘한 느낌을 비췄다.

유리 조각들은 그녀들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먼저 다가왔다. 흰옷의 소녀에겐 "행복"이, 검은 옷의 소녀에 "비극"이. 그랬던 유리 조각들이 지금은 하늘 위에 가만히 떠있을 뿐이다. 백 개의 거울들 중 반은 얼어붙은 듯이 그녀들을 에워싸고 있고, 나머지 반은 그녀들이 있는 세계의 나머지 '공간'을 비추고 있다. 흰옷의 소녀가 거울들을 불러보았지만, 조금의 미동도 없다. 공포와 행복이 공존하고, 똑같이 반짝거리며 똑같이 정지되어 있다. 이는 그녀들을 동요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단 한 조각, 그녀의 부름에 응답하고 그녀가 만질 수 있는 것이 그녀를 자유롭게 해줄 것이다.

그녀는 어둠의 소녀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만약, 우리가 한 배를 탄 거라면, 같이 지내는 건 어떻게 생각해?" 라며 히카리가 용기를 내어 다가간다. "서로를... 서로를 도와줄 수도 있고, 아마도... "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춘다. 다른 소녀는 한 폭의 그림 같은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듣고 있지 않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검은 옷의 소녀는 흰옷의 소녀가 하는 모든 말에 온갖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아마도..." 라고 검은 옷의 소녀가 끝말을 되풀이한다. 희미하다... 이 비참한 세계로 환생한 후로, 검은 옷의 소녀는 자신의 영혼이 따분하고 깊은 심연에 빠진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흰옷을 입은 소녀의 말을 들었을 때, 그녀는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어떤 무언가가 매우 짧고 매우 약하게 아른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 작은 무언가가 깨어난 이후로 그녀를 끊임없이 숨막히게 했던 좌절감의 장막을 찢어낼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계속 든다.

이 세계에서 먼저 눈을 뜬 소녀, 타이리츠의 남은 기억 속에는 "종말"에 반기를 들고 포기라는 걸 모르던 소녀가 아직 남아있다. 그녀는 두 번째 기회를 원했다.

그러나 그녀의 그런 성의 없는 태도는 그녀 앞에 서있는 소녀에게 신뢰감을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들의 만남에는 여전히 조심스럽고 신중한 기운이 감돈다. 이 세계에서 다시 깨어난 히카리는 아르케아는 아주 이쁘지만, 생각보다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러나 두 소녀는 아르케아가 자신들을 더 좋은 곳으로 데려가 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 V-3 #=====

대화는 계속 이어진다.

"서로 불러줄 수 있는 이름이라도 있었으면 좋을 텐데."라고 갈라지는 목소리로 타이리츠가 말한다. 그녀의 눈에서 다시 삶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히카리가 조금의 불편함과 함께 타이리츠의 반응을 눈치챈다. "그것으로 가득 찬 세상에 대한 아무 기억이 없다는거, 생각하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고는 말 못 하겠어."라고 타이리츠가 털어놓는다.

마침내 그들은 같은 자리에, 그러나 그리 가깝지 않게 함께 앉는다. 두 소녀는 원래 맨 앞줄이었던 자리에 앉았고, 그들 앞에는 넓고 평평한 바닥이 펼쳐져 있다. 흰옷의 소녀는 구부정하게 앉아 그녀가 새롭게 알게 된 사람을 걱정되는 눈으로 가만히 응시한다. 검은 옷의 소녀는 그들 앞에 있는 빈 공간을, 하늘을, 거창하기만 한 건축물을 하나하나 찬찬히 쳐다보고 있다. 그러나 흥미가 있어서 쳐다보는 건 아닌 것 같아 보인다.

멍하니 건축물들을 쳐다보면서, 그녀가 입을 연다. "이 유리 조각... 이걸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뭐? 아... 왠지 모르겠지만, 뭐라고 부르는지 알고 있어.'아르케아'야."라고 히카리가 대답한다.

"나도 그래. 잘 모르겠지만, 그냥 알 것 같아."라고 말하며 히카리 쪽을 쳐다보며 타이리츠는 말을 이어갔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다른 건데? 다른 존재라던가..."

히카리는 미안한듯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생김새가 다른 거 빼고는 그다지..."

"그럼 한번 찾아보자. 유리 조각을 들여다보면 무슨 기억이 보여?"

"대부분 행복한 기억들이야."라고 히카리가 대답하자,

타이리츠가 한숨을 내쉰다. "그럼 우리는 반대의 존재야..."라며 그녀는 씁쓸하게 그녀의 발끝만 바라본다. "우리 둘만 이 세계에 존재한다고 쳐보자. 만약 우리 생각이 맞는 거라면, 우리 둘이 만날 때는 뭔가 이뤄지는 게 아닐까?"

"너는 '아르케아'를 보면 행복한 기억이 안 보인다는 거지?"하고 히카리가 다른 소녀 쪽으로 약간 몸을 기울이며 묻는다.

"응 맞아. 미안해..."

"...원래 그런 건가 봐."타이리츠가 대답한다. 잠시동안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잠시 후 타이리츠가 그 침묵을 깼다.

"그런데 네 말은... 너의 그 행복한 기억들조차 여기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거야? 응? 내말이 맞아?"

히카리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상처 줄 맘은 없었어. 단지 내가 깨어난 뒤로 조금 힘들었거든. 그던데...들어봐. 내가 예전에 이 하늘을 다 가릴 만큼의 조각들을 모은 적이 있어. 그런데 그때, 새로운 하늘이 나를 거의 죽일 뻔했지... 빛이 내 정신을 서서히 망가뜨리는 것처럼 느껴졌어... 솔직히 말하자면, 내 잘못이 크긴 하지만 말이야."

두 소녀는 서로에게 좀 더 솔직해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히카리가 그녀의 빛으로 가득 찬 천진난만하고 위험한 여행에 대해서 얘기한 후, 타이리츠는 어둠의 소용돌이를 통해 그녀의 비극적인 투쟁을 냉정하게 되짚어본다. 두 소녀는 여러모로 다르다. 그러나 확실한 공통점은 둘 다 무의미한 세계에서 의미를 찾는다는 것. 그녀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는 아름답지만, 잔인하다.

히카리는 굳게 다짐했지만 낯설고 무정한 이 세계는 히카리가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고, 그녀도 곧 이 세계의 무서움을 느꼈다. 이 세계는 타이리츠에게 상처만 남겼다. 끊임없이 강요되는 폭력과 분노가 그녀 안에서 거센 파도처럼 일렁였다. 타이리츠는 히카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지만, 그들이 대화를 하는 내내 그녀 안에서 뿜어져 나오려는 다양한 충동을 억누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녀 옆에 있는 이 소녀에게, 매혹적이지만 순진무구한 그런 소녀에게, 온갖 감정을 쏟아내고 버리고 싶어 한다. 타이리츠는 자꾸 손에 힘이 풀리는지 반복해서 양산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히카리는 그런 그녀의 행동을 놓치지 않는다.

오히려 눈에 띄었다. 두 사람 모두 떨리는 손에 신경이 쓰였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간다.

"난 그저... 나 말고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었어."라고 타이리츠가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며칠 전만 해도 내가 원했던 건 그거 하나뿐이었어. 그런데... 내가 저 검은 껍질을 깨고 나오는 순간부터 그런 순수한 갈망을 감당할 수가 없었어.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고. 내가 조금의 감정이라도 느낄 땐, 순수한 바람같은 건 품고 있을 수 없게 돼버려. 내게 허락된 건 불쾌하고 사악한 충동들뿐이야. 역겨워. 난 망가져 버린거야..." 타이리츠가 히카리를 바라본다. "지금도 봐, 너를 해치고 싶은 나 자신을 주체할 수가 없잖아."

"괜찮아..."라고 히카리가 다독인다. "만약 내가 그런 끔찍한 기억들을 봐왔더라면, 나도 똑같았을 거야. 그런데 말이야, 네가 틀린 게 하나 있어. 내 생각에 네 마음은 네가 생각하는 만큼 고장 나지 않았어."

타이리츠는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는 질문 어린 눈으로 히카리를 바라본다.

"봐, 지금도 망설이고 있잖아."라고 히카리가 설명을 이어간다. "날 지금 죽이지 않고 망설이는 네 모습이 좋은 사람이란 걸 말해주고 있다고. 너는 강해."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너는 나보다 훨씬 강해." 화창한 하늘을 바라보며 말한다.

그녀는 타이리츠의 눈을 다시 바라보며 "네가 날 살려줬어."라고 이어간다. "그런데 넌 네 자신이 살려냈지."

타이리츠의 마음속 떨림은 희미한 빛을 띄고, 고통은 그녀 안에서 서서히 퍼진다. 히카리는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타이리츠가 생각한다. 그녀는 실패했다. 미로가 무너진 그날, 예전의 타이리츠는 죽고 말았다. 그 후 그녀는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감정이란 것이 돌아왔을 때, 그녀에게는 경멸밖에 남지 않았다. 흰옷의 소녀를 만났을 때조차, 반가움 대신 검을 쥐고 달려가 그녀를 베고 싶었다.

그녀를 구한 건 그녀 자신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단지 해칠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게 아니었나 보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한 줄기 희망을 선물해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닐까. 히카리는 직접 위로하기에는 너무 온화하고 아직 의심스럽지만, 그녀의 존재와 부족한 공격성은 그녀가 아마 마지막 한 줄기 희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타이리츠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바로 저 순수한 자각이다.

타이리츠의 상태가 조금 이상하다. 히카리는 그녀의 상태를 눈치채고 그녀 쪽으로 향한다. 그러나 히카리 역시 그녀에 대한 의심이 조금 남아 있었기에 완전히 다가가진 못한다. 하지만 히카리는 타이리츠 앞에 서서 손을 반쯤 뻗어 어둠의 소녀를 일으켜 세운다. 히카리는 손을 내리고 뒤로 한 발짝 물러난다. 그러자 유리 조각들은 그녀들을 둘러싸고, 그녀들의 행동에 반응하며 각기 다른 색으로 빛나기 시작한다. 유리 조각에 비친 상을 어디선가 본 듯했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처음 보는 광경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가장 이상하고 비정상적인 기억들이 아주 짧게, 그리고 사악하게 깜빡였기 때문이다.

=====# V-4 #=====

두 소녀는 조금 떨어져 서있다. 타이리츠는 자신의 가슴 위에 손을 올려 주먹을 꽉 쥐고 거친 숨을 몰아쉰다. 그러나 그녀가 생기를 되찾았을 때, 그녀의 얼굴엔 흰옷의 소녀에게 표할 고마움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히카리가 마지막으로 타이리츠를 안심시킨다. 이것이 마지막일 필요는 없다. 이 눈부신 순백의 지옥을 빠져나갈 방법은 여전히 존재한다.

타이리츠는 숨을 내쉬며 희미하지만 환한 미소를 짓는다. "우리 뭐라도 해보자."라고 그녀가 말한다.

"이 터무니없고 빌어먹을 세계가 뭔지 알아내보자고."

"비.. 빌어먹을만한.. 건 아냐."라며 히카리는 약하게 반항하며 살짝 힘주어 웃는다. 히카리는 다른 소녀에 대해 다 알지는 못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한다. 보이는 것만이 사실이 아니며, 그녀는 사악하지 않다고... 사실 그 반대라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 서로의 손을 잡는 데 충분하다. 결국 '좋은 사람'이란 단어는 그녀를 표현할 정확한 단어는 아니다.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단어이다.

히카리가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타이리츠의 분위기가 변한다. "뭘 보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라고 타이리츠는 헐떡거리는 숨을 넘기며 비난에 찬 목소리로 묻는다. 상대방을 매몰차게 파고드는 그녀의 눈은 생기가 거의 없다. "하긴 넌 나보다 더 잘 알겠지? 이곳은 즐거움과 기쁨에 둘러싸인 여자애를 눈 하나 깜빡 안하고 뻔뻔하게 망가뜨려버릴 수 있는 그런 곳이라는 걸 말이야." 그녀는 똑바로 서서 숨을 천천히 내쉰다. 시선을 히카리에게 고정시킨 채 손을 가슴팍으로 가져와 양산을 꼭 쥔다. "그건 불공평하잖아. 안 그래?"

확신에 찬 타이리츠의 강인함이 히카리를 잠시 주춤하게 만들었지만, 히카리는 더 이상 움츠려 들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자신감을 가지고 똑바로 서서 그녀의 생각을 똑똑히 전한다.

"우리는 살아있는 존재야."라고 운을 뗀다. "그리고 세상이 이걸 허락한다면, 최악은 면한 거잖아?"

"뭐...?" 타이리츠가 진심을 다해 히카리를 노려본다. "아니야... 세상이 우리에게 삶을 허락한다면, 그 삶을 해악과 슬픔으로 괴롭힐 생각뿐이라면, 그런 세상은 공평하지 않아."

"그... 그런 게 아닐 거야. 단지..."

"단지?" 타이리츠가 따지며 묻는다.

"단지, 그건 좀 단편적인 생각인 것 같아! 네가 정확히 하고 싶은 게 뭐야?"

"파멸. 이 세계, 유리 조각, 모든 것을 파멸시킬 거야. 모든 것을 파멸시킬 방법을 찾아낼 거야. 그래야 공평한 거 아냐?"

타이리츠는 진심이다. "너도 이 말에 공감할 텐데? 나에게 이 세계는 감옥이였어. 너에게는 이 세계가 값비싼 감옥이 아니고 뭐였니?"

"파멸시킨다고...? 만약에... 만약 정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해도, 그건 모든 걸 소멸시켜 버릴 거라고! 이 세계는 우리가 확실히 '존재'한다고 알고 있는 세계잖아. 그런데... 왜... 하... 그래, 우리가 여길 어떻게 해서 없애버린다고 쳐. 그렇게 되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해? 아니, 너 설마... 여기서 살아있는 것보다 죽는 게 낫다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맞아. 죽는 게 훨씬 나아." 타이리츠의 대답에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다.

이런 답을 예상하지 못한 히카리는 말을 잃는다. 타이리츠의 말은 너무 무서웠으나 동시에 슬프게 다가왔다.

히카리가 아무 말도 못 하는 동안, 타이리츠는 계속해서 질문을 쏘아붙인다. "다른 방법이라도 있는거야? 계획이라던가?"

"아니야... 그런 거 없어. 난 그저 너와 함께... 함께 방법을 찾고 싶었어."라고 히카리는 대답했다. 그녀의 말투에는 실망감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타이리츠가 마지막으로 깨어났을 당시, 깨달은 게 하나 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 그녀를 멈추게 만든다. 새롭게 동료가 된 이 소녀를 마구 몰아 세우는 것은 너무나도 쉽다. 그녀도 말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단지, 그녀는 다시 커져가는 희망을 보면서 서로를 만나기 전까지 자신이 얼마나 차가웠는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희망을 직면할 때 그녀는 이해가 아닌 비난만 쏟아붓는다. 그녀가 이렇게 옹졸한 존재였나? 과거에는 그녀의 신념이 전혀 그녀에게 만족감이나 평화를 가져오진 않았다. 하물며 해결책도 아니였다. 그녀의 의지는 그녀를 암울함으로 얼룩진 어두운 가시밭길로 끌어내렸을 뿐이다. 이 기억을 떠올리고, 그녀는 이제 타올라도 좋다고 확신하며 지폈던 가슴속에 그 불을 다시금 꺼버린다.

만약 그녀가 히카리의 손을 다시 잡고 싶다면,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미... 미안해." 타이리츠는 사과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잠시 동안 고개를 푹 숙인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나도 새로운 걸 찾고 싶어."

히카리는 타이리츠를 만나고 난 후 낮았던 자신감을 다시 조금 되찾고 있다. "괜찮아. 너는 내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시간을 여기에서 보냈잖아."라고 그녀가 새로운 친구를 위로한다.

그러나 타이리츠의 가슴속에 맺힌 그 의로운 불길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그 불길은 섬광처럼 짧은 순간 동안만 타올랐고, 어느새 멈춰진 채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유리 조각의 분열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유리 조각이 하나둘씩 깨어나고, 원래 그들이 숨어서 보이지 않았던 곳으로 서서히 떠내려가기 시작한다.

"희망을 잃지 마."라고 빛의 소녀가 말한다. "괜찮을 거야."

빛바랜 색깔을 비추며 유리 조각이 그들 사이로 곧장 다가온다. 조각들은 두 소녀의 시선을 사로잡았지만, 검은 옷을 입을 소녀에게만 기억이 보인다.

=====# V-5 #=====

끝이다.

어둠만으로 가득한 그녀가 깨진 유리창을 통해 다른 시간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녀가 다시 미소를 짓는다.

그녀는 정말 바보가 아닐 수 없다. 흰옷을 입은 소녀가 아닌, 검은 옷을 입은 소녀 말이다.

유리 조각에 비친 것은 기억이 아니다.

그럴 리가 없지. 그녀가 보고 있는 건 미래다. 그녀가 미리 예상 했어야 하는 미래, 바보, 어리석은 공상가.

유리 조각은 그녀를 비췄고, 비춰진 그녀는 날카로운 유리 조각에 찔려 있다. 상처는 불에 타는 듯한 아픔으로 그녀의 옷과 몸을 고통스럽게 태우는 것 같다.

그녀 뒤로는 텅 비어 황량할 뿐인 아르케아의 땅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고, 그녀 앞에는 왠지 모르게 익숙한 모습의 흰옷을 입은 소녀가 서있다. 비록 소녀의 감정은 알 수 없지만, 두 눈을 감고 한 팔로 기둥을 감싸며 서있는 그 소녀의 후광은 눈이 부실 정도다.

그 소녀가 지금 그녀 앞에 서있다. 그녀가 지금 막 만난 그 소녀. 이건 기억이 아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이다.

이를 마주한 타이리츠는 자신을 더욱 숨긴다. 그리고 그동안 못 본 척 지나쳤던 단 하나의 진실과 맞선다.

그녀의 신념은 상관이 없었다. 이 세계에서 그녀는 마음에 드는 걸 찾을 리가 없다.

그 마지막 희망은 이제 검게 물들어 절망에 빠졌고, 잊혀졌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그녀가 바라던 건 무엇이었을까? 어리석음. 귀찮음, 눈먼 어리석음.

귀찮은 노력. 귀찮은 기억. 귀찮은 존재.

귀찮아. 최악이야. 지겹다. 지겹다. 그녀 자신이 싫증난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어디서 본듯한 지긋지긋한 상황들이 싫어진다.

기적? 없어...

그녀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 세계는 지옥이라고. 그리고 그녀는 알고 있다. 오래 전 사라진 세상의 깨어져버린 신념들, 천사들도 언젠가 타락하여 악마의 모습으로 깨어 날 수 있는, 그런 세상이라는 것을.

빛의 소녀가 딱 그렇다. 빌어먹을 마지막 순간에, 그녀의 가슴속 작은 구덩이는 점점 커져간다. 그 구덩이는 순식간에 모든 것을 헛되이 낭비하고 소멸시킨다. 그리고 그곳에는 차갑고 끝없는 균열만이 남는다.

어둠이 살며시 그녀의 내면을 덮고 그녀의 생각을 집어삼켜 버리려 할 때, 그녀의 눈에 다른 소녀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도 아주 선명하게.

유리 조각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그러나 그녀의 눈은 불안함으로 가득하다.

그녀는 알고 있다. 지금 그녀는 상대방의 눈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뻔히 보이면서도 한마디도 못 할 것이다.

불안한가? 긴장되나? 태연하군. 용서할 수 없다.

분노는 증오와 혐오로 변하여 눈에서 넘쳐 흘러버린다.

사악한 배신자, 사악하고 사악한 세계. 그녀는 유리 조각을 통해 그곳에 가만히 서 있는 히카리를 바라보며 양산을 쥔 손에 힘을 더 준다.

타이리츠의 악한 의도가 들켜버렸다. 그녀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린다. 우습다.

타이리츠는 눈을 찡그리며 자신 안에 키워왔던 남은 감정들을 없앤다.

결국 그녀에게는 아무 감정도 남지 않게 되고, 그 순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닫게 된다.

그러나 거울은 한곳만 향해 있다. 혐오스럽고 황량한 운명만을. 히카리는 이 이상한 유리 조각을 볼 수 없다.

타이리츠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지만 히카리는 혼란 속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녀는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나 실은 어둠이 두 소녀의 손길에 의해 하늘로 밀려 올라가며 소멸되는 것처럼 보인다.

어둠이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녀의 호흡은 점점 짧아진다. 그녀는 뒷걸음질 친다. 그녀는 그녀의 눈을 믿을 수가 없다. 아니, 전혀 믿고 싶지 않다.

그녀는 끔찍한 시련과 눈을 멀게 만들 만큼 눈부신 하늘 아래에서도 살아남았지만,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언가가 또다시 그녀를 무시무시한 모험 앞에 데려다 놓았다.

그러나 그녀는 살아남았다. 이제야 그녀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생존을 위한 투쟁에는 타협이 없다는 것을.

이런 생각을 가슴에 품고도 히카리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다.

가장 바닥이었던 순간, 그녀에게 안정감을 주고 삶의 방향을 알려주었던 유리 조각을 향해 하얀 손을 뻗어본다.

그녀가 그것을 가슴 언저리까지 가져왔을 때, 타이리츠의 온몸에도 소름이 돋는다.

다시는 비극을 마주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타이리츠는 히카리에게 예고도 없이 다가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그녀의 삶을 잡아볼 준비를 한다.

[1]

[2]


2.4. Black Fate



2.4.1. 해금 조건


'''스토리 #'''
'''진행 순서'''
'''해금 조건'''
VS-1
Black-1
[image]
[image]
Equilibrium 클리어
VS-2
Black-2
[image]
[image]
타이리츠Antagonism 클리어
VS-3
Black-3
[image]
[image]
히카리Equilibrium 클리어
VS-4
Black-4
[image]
히카리#1f1e33# 클리어
VS-5
Black-5
[image]
[image]
타이리츠Dantalion 클리어
VS-6
Black-6
[image]
타이리츠Lost Desire 클리어
VS-7
Black-7
[image]

Black FateAnomaly곡 해금
???
'''스토리 #'''
'''진행 순서'''
'''해금 조건'''
VS-???
Black-8
[image]
[image]
히카리,Fracture,Black FateTerminal곡 해금

=====# VS-1 #=====

히카리.

타이리츠.

서로가 만약 서로의 이름을 알았더라면, 적어도 자기 자신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면 그들의 이야기가 조금은 달라졌을까? '빛'과 '대립'... 기이하고 특이한 이 세상에선 너무나 고귀한 이름...

그들은 의미를 이해하고 다른 길을 찾으려 했을까?

적어도 다른 방향으로 향해보거나, 왔던 길을 돌아가거나, 또는 자신의 선택이나 어떠한 환경이라도 받아들였다면... 그 행운의 바퀴를 굴렸다면 그들은 이 필연적인 대립관계가 아닌 여전히 그들은 필연적인 대립관계로 만나게 됐을까?

자신의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히카리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타이리츠도 마찬가지로 운명적인 지식에 저주받았으며, 그들 사이에 충돌이 발생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아무것도...

두 소녀는 영원히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이것이, 이 모든 것들이 오직...

"아!"

적의 검날이 다가온 다는 것을 꺠달은 순간, 히카리의 목소리가 세어 나왔다.

그리고 그녀가 손을 한 번에 들어 올리자 유리들이 서로 부딪혔다.

그것들은 깨지지 않은 채 빛났고, 평화롭던 히카리는 창백한 얼굴로 괴로움과 두려움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진심 어린 대화가 심장이 두근거리는 충돌을 일으켰다.

다른 소녀에 강한 기운에 압도되어 주춤한 그녀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피부는 차가워졌고,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자신을 공격하려는 소녀를 보자 자신이 공격받는 이유가 그녀 내면을 할퀴고 통제하는 공포심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타이리츠의 검날이 그녀의 목을 더 팽팽하게 조여와도 그녀는 저항할 수 없었다.

그보다, 그녀의 손바닥이 땀으로 가득 찼고 숨은 멎는 것 같았다. 그녀 앞의 소녀 때문이었다.

조금 전 비극과 슬픔을 느꼈던 소녀,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변한 것 같았다.

그 소녀는 동료나 친구처럼 다정하게 말하지 않았었다. 감정이 있는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응시는 무언가 목적에 차있었으며, 턱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너무 꽉 쥔 손가락은 이제 붉게 변해 있었다.

마치 검은 짐승 같았다. 악의로 가득 찬 그늘과 함께...

=====# VS-2 #=====

평화롭게 해결해보자.

공통점을 찾아보자.

약해지지 말고, 주춤거리지 말자.

히카리는 이러한 생각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그들은 모두 셀 수 없는 기억 속에서 수많은 전투의 고통을 봐왔지만,

간접적인 회상이 삶과 죽음 사이의 진정한 사투를 대신할 수는 없는 법.

자비 없는 그들의 검날이 다시 부딪혔다. 타이리츠의 공격은 악의로 가득 차 있었으며,

히카리는 필사적으로 움직이며 피하고만 있었다. 그녀는 오직 방어만 하며 반격하지 않았다.

싸우지 않고 해결할 방법이 있다면, 그녀는 당장이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늘 아래 램프와 의자가 놓여진 파괴된 교회에서 그들의 전투는 계속되었다. 둘은 복도 사이로 이동했다.

타이리츠는 놓지지 않으려 히카리의 발을 따라 움직였다.

히카리는 한때 그녀를 도왔던 유리 조각을 들어 올려 다음 공격에 대비했다.

그러나 타이리츠는 공격해 오지 않았다.

대신 검은 우산이 공기를 빠르게 가르며 그녀의 방어를 무자비하게 강타했다.

"크윽...! 하...!" 그녀는 헐떡거리며 신음을 내쉬었다.

불이 마치 그녀의 손과 손가락을 집어삼키는 것 같았으며, 그녀는 손이 부러졌을 거라고 확신했다.

조각이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가며 그녀는 무방비 상태가 되었고, 고통을 느낀 소녀는 즉시 그녀로부터 떨어졌다.

조금 놀란 히카리였지만 그녀의 첫 점프는 흔들림과 추락 없이 깔끔했다.

그녀는 드레스를 펄럭이며 다시 뒤로 점프하였고, 다음 공격을 피하기 위해 의자 위에 서 있었다.

너무나도 가깝다... 대화로 해결할 수는 없을까?

심지어 그렇다 해도, 그녀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말할 기회조차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전하고 싶은 말과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그녀의 목소리를 낼 준비가 필요하다.

소녀로부터 충분히 떨어진 곳에서...

다시 검날이 향해왔다.

이번에는 볼을 노린다. 빠르게.

그와 동시에, 그것은 그녀의 피부를 스쳐 지나갔다.

=====# VS-3 #=====

히카리는 다시 숨이 차올랐다. 그녀의 손이 왼쪽 얼굴로 향했다.

떼어 낸 손바닥과 손가락에는 불행하게도 이젠 너무 친숙한 색깔의 피가 묻어 나왔다.

다시 한번... 그녀는 창백해졌다.

그녀는 다시 뒤로 물러나 양팔을 부여잡고 떨림을 멈추려 노력했고, 무언가 말하려는 듯 침을 삼켰다.

그리고는 조용하게 말했다.

"그만..."

이번에는 조금 더 크게 말했다.

"제발 그만해..."

또 다른 유리 조각이 화살처럼 공중에서 날아왔고, 1초도 채 안될 거리에 있었던 그녀는 가까스로 피했다.

하지만 결국 다시 그녀의 팔을 스쳐 지나갔다.

참지 못한 그녀는 소리쳤다. "이제 그만둬!"

"네가 뭘 하려는지 알아."

타이리츠가 의자 5개 정도 떨어진 곳에 착지했고, 히카리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넌 도대체 뭐지? 세상이 창조한 악마인가?" 타이리츠가 물었다.

"뭐?!"

"아니면 단지 날 사냥하기 위해 죽은 곳에서 온 또 다른 조각?"

"아니야! 난..." 히카리가 소리쳤다.

"너도 네 자신이 누군지 모르는군..." 타이리츠가 혼자 중얼거렸다.

그때 히카리는 수많은 아르케아 조각들이 다른 소녀의 주변을 날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마치 소녀를 감시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것들을 주의깊게 바라봤고, 타이리츠는 말을 이어가며 분노에 찬 목소리를 냈다. "네가 나를 찾았다는 뜻은... 네가 좋은 쪽은 아니라는 뜻이야."

그리고 이 소녀가 과거에 대해 말한 것을 기억하는 히카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음을 여전히 깨닫고 있었다.

"난 그런..." 그녀는 방어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또 다른 유리 조각이 다가오며 그녀의 귀를 스쳤다.

그녀는 눈을 감고 눈물을 흘렸다.

살아남으려면...

...이렇게 포기할 수 없었다.

히카리는 시선을 아래로 떨군 뒤, 이제서야 조각을 만질 수 있다는 이상한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로 [3]

새로운 유리조각을 그녀의 손에 가까이 불러들였다.

한 무리의 조각들도 그녀의 뒤를 감쌌다.

그녀는 머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히카리는 친구로 남았으면 하는 소녀를 다시 한번 마주한다.

=====# VS-4 #=====

그들은 출구에서부터 금속이 아닌 유리처럼 충돌했다.

검은 소녀가 새하얀 소녀에게 달려들수록 기억의 조각들이 조잡하게 그들을 맴돌았다.

둘은 팽팽함을 유지했다. 히카리는 싸우기로 결심했으면서도 마음속 한편에 이 전투가 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를 감싸는 조각이 빠르지 않더라도, 완전한 연습을 거치지 않았어도, 그녀는 항복하지 않았다.

조각들은 히카리를 노리는 타이리츠의 창을 막기 위해 그들의 힘이 닿는 만큼 꾸준히 모양을 변화시키며 히카리를 보호했다. 히카리의 눈은 유리보다 날카로웠고, 강제적으로라도 검은 소녀를 진정시키고 평화롭게 끝내기 위해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러나 간단하지만은 않다.

아르케아의 기형적인 길과 언덕이 펼쳐진 교회의 외부에서 타이리츠를 막을 자는 없었다.

계속해서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며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는 유리 조각들이 넓게 날아갔다.

그녀가 억세게 따라붙을 때마다 히카리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방어했다.

그녀의 맥박은 매우 빨랐고, 손에서 시작됬던 땀은 이제 몸 전체에 끔찍한 소름을 일으키며 흐르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검들이 부딪히고 빠른 조각들이 창으로 변해 그녀의 목에 가까워지기 전까지 날아다녔다.

공격, 공격 또 공격. 그녀는 그들의 전투가 엉망진창의 몸싸움에서 두 개의 가공할 절대 세력의 잔인한 공격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타이리츠의 힘에 대적할 수 없었지만 기지를 발휘하여 위기를 모면하고 있었다.

그녀 앞에 있는 감정의 급류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반격했다. 돌은 풍화되어도 절대 부숴지지 않는다.

그녀는 해낼 것이다. 반드시.

두 사람은 대등한 위치에 서있었다. 각자의 위치를 고수하며 그들이 선택한 아르케아의 매끈한 면이 빛나는 빛줄기를 비췄다.

두 사람은 대등했다... 타이리츠가 시선을 옮기기 전까진. 타이리츠는 다른 소녀의 방어를 겨냥하는 대신 말없이 히카리의 오른쪽에 유리 조각 한 무리를 날려보냈다.

피해는 심각했다. 그 공격은 굉장한 폭발과 함께 히카리를 무릎 꿇게 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둡게 빛나는 타이리츠는 자신의 검은 우산을 들어 상대의 머리를 가리켰다.

그녀는 망설임이 없었다. 공격은 한순간에 이루어졌다.

히카리가 눈을 감았다. 타이리츠가 눈썹을 일그려뜨렸다.

하지만 순간 모든 것이 멈췄고, 그건 둘에 의해 일어난 것이 아니였다. 둘 사이에 무언가였다.

전에 히카리의 손에 있던 조각이 둘 사이에 떠 있었고 우산 공격을 상대로 견고한 방어벽 역할을 해준 것이다.

히카리는 눈을 뜨고 쳐다보면서도 믿지 못했다.

"에?!"

"저건..."

타이리츠가 다른 손을 들어 올리자 유리 조각들이 그 주변에 솟아올랐다.

히카리도 망설이지 않고 그 조각에 손을 내밀었고, 그리고 주변의 모든 유리 조각들이 폭풍전야처럼 마구 흔들렸다.

=====# VS-5 #=====

이윽고 폭풍이 시작됐다.

히카리의 명령을 따르던 유리 조각들이 떨어지며 마음대로 사방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조각들은 그녀의 통제하에 있었지만, 잠시 동안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타이리츠의 표정은 심각해졌고, 결국 한발 물러났다.

히카리는 아직 날카로운 기억들의 무리에 웅크려 숨겨져 있었고, 여전히 새로운 힘에 집중해 있었다.

타이리츠는 잠시 땅을 배회하며 히카리의 폭풍이 있는 하늘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녀는 머리 위로 손을 올리며 폭풍에 대항하려면 홍수를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멀리 떨어진 도시와 하얀 산으로부터 수많은 유리 조각들과 기억들이 그녀의 부름에 응해 모였다.

히카리의 길들여지지 않은 폭풍과는 달리 타이리츠의 것은 일정하며 정돈된 느낌이였다.

검은 소녀 뒤에 있는 유리 조각들은 거대한 장비 모양의 형상을 띄었고, 꽃잎이 소용돌이치며 하나씩 떨어져 새하얀 소녀의 폭풍을 깨끗하게 도려내 나갔다.

그리고 히카리는 여전한 두려움과 함께 일정한 공격에만 버텨나갔다.

그들의 혼란스럽고 광적인 전투에서는 매서운 공격들이 지속되었다.

멀리 떨어져서 보면, 그건 마치 타이리츠가 정확하게 원했던 두 폭풍의 충돌처럼 보였다.

전투가 계속되며 '번개'가 번쩍거리며 연이은 '구름' 폭발이 발생하였고, 마치 광기를 일으키는 격렬한 자연의 힘처럼 보였다.

그리고 소용돌이와 은빛 홍수 안에 서있는 두 소녀들의 마음은 점점 불타올랐다.

그들은 가까스로 조각을 피하며 한치도 양보하지 않는 전투를 치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르케아의 평원을 질주하며 유리 조각 폭격과 같은 공격을 펼쳤고, 탄환이 흩어지면서 빛나는 지면을 따라 미끄러졌다. 유리 조각들은 추적하고, 방어하며 계속해서 상대의 발목을 노렸다.

혼란스럽고 광적인 전투가 끊임없이 거듭되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곧 거의 흡사하며 규칙적으로 변했다.

계속되는 회피와 공격.

이 압도적인 아름다움과 파괴 속에서

그들은 다시 한번 서로가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고는 다시 타이리츠가 우위를 점했다.

=====# VS-6 #=====

이 장소에서 그녀의 여정은 마치 지옥 같았다.

그녀의 탄생부터 첫 발걸음까지 모두 지옥이었다. 아니, 첫 발걸음조차도 그녀에게 거부당했을 것이다.

그녀는 처음 깨어난 곳의 밖을 돌아다녔고, 그녀의 여정은 불행과 비극의 급류에 의해 무자비하게 그리고 갑작스럽게 멈춰진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 이후로 두 가지가 그녀의 뒤를 끈덕지게 따랐다.

그것은 농담 같은 말들이었다.

"나는 좋은 사람이야." 그녀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는 약하게 태어나지 않았어." "나는 날 괴롭히는 어두운 기억이 아니야."

"나는 악마가 아니고 그저 악마의 세상에 갇힌 평범한 인간일 뿐이야."

아무 이유도 없이, 아무 말도 없이.

이 세상은 완전하고 끔찍하게도 잔인하며 무자비하다.

깨어날 수 없는 악몽이였다.

그리고 결말은 한심한 죽음 뿐이다.

...

그런 생각은 그녀의 눈에서 수없이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젠 끝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끝이 날 것이다.

그러한 생각과 함께 그녀는 소녀가 그녀를 죽이기 위해 보낸 유리 조각들에 스치며 무언가 이상한 존재에 주목하게 된다.

불과 몇 분 전에 매우 친숙하고 괴상한 존재를 느꼈었다. 느낌은 마치 정확성을 잃은 현실 그 자체 같았다.

불가능한 것이 명백해졌다.

그 불분명한 느낌은 그녀의 뺨 옆에서 느껴졌다.

그녀의 시선은 오른쪽으로 향했고, 보랏빛이 약간 돌며 비정상적으로 뒤틀린 유리가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잠시뿐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모든 것을 말해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비정상적인 조각의 예상대로 그것은 간단한 기억을 지니지 않았으며, 예상을 넘어 불가능한 대답을 가지고 있었다.

순간, 빛나는 표면이 그녀의 눈과 마주쳤다.

그리고 그녀는 뼛속까지 빛으로 정화되는 느낌과 함께 이 세상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과 모든 것들이 그 어느 때보다 절대적으로 생생하게 이해되었다.

그들의 이름.

그들의 과거.

이 세상.

목적.

그녀: '히카리'

그녀: '타이리츠'

'에토' 그리고 '코우' ... '사야' 그리고 '레테' ... '루나', 그 밖에 셀 수 없는 수많은 이름들.

심지어 다른 세상에 대한 사실, 여행자의 목적지, 시작과 끝, 모든 세세한 이유까지...

그리고 진실, 그 모든 진실까지도 알게 되었다.

그녀 앞에서 히카리는 잠깐 멈추어 그녀의 태도에 명백한 변화가 있음을 깨달았다.

변화가 일어났다. 두려움이 생겼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그게 전부였다.

타이리츠는 '현실'이라는 이 감옥의 진실을 엿본 것이다. 그리고 그 진실과 함께 더욱 힘을 갈망했다.

또한 모든 것을 알아버렸다는 것... 모든 것을 알아버렸다는 것이 정확히 어떤 변화를 일으킨 것일까?

그녀는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가슴속으로부터 끊임없는 씁쓸함이 세어져 나와 그녀의 온몸을 휘저었다.

그녀의 입술이 시들며 쓰라린 미소를 짓는다. 침울하지만 이상하게도 웃음이 세어 나왔다.

소녀는 웃었다. 그리고 폭풍우를 불렀다.

이 길은 인류에 대한 최악의 기억으로 불타버렸고 이 길의 끝에는 참혹한 전투의 결말과 이후 남겨진 것들이 이 길을 채울 것이다.

그리고 이 전투의 끝에서, 둘 중 하나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 VS-7 #=====

균등한 조각들의 환상이 부서지며 히카리의 희망은 마침내 흔들리기 시작했다.

경고 없이 히카리의 폭풍이 타이리츠 쪽으로 날아가 어둠과 빛으로부터 다른 소녀를 가렸다.

폭풍이 자신을 감싸자 그녀는 눈을 감았고 잠시 후 눈을 뜬 그녀 앞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기억들이 그녀 뒤에서 6개의 거대한 날개 형상으로 변했다.

그러고는 자연의 이치를 노골적으로 무시하여 하늘을 날며

히카리를 노려보았다.

지금 그녀의 모습에는 승리라는 걸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소녀를 짐승 정도로 생각했지만

이제는 훨씬 압도적인 불가능한 존재로 보였다.

유리 조각들이 거대한 유리창같이 반짝거리며 그녀의 뒤로 올라섰다.

그녀의 아래에 있는 히카리는 이제 앞으로 그녀에 다가오는 공격에 맞서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보이겠지만...

틀렸다... 검은 소녀는 모든 것을 가지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살아남을 수 있다. 할 수 있어!

히카리는 하늘의 창문이 깨질 때 20개의 기억들을 방어했다.

처음에는 고작 몇개의 조각만이 그녀에게 날아왔지만 곧 천천히...

그녀를 향해 쏟아졌다. 하지만 그녀는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의 정교한 공격도 그저 공격일 뿐이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히카리는 자신을 보호하며 흔들리지 않는 초점으로 떨어지는 유리 조각들을 빠르게 방어하였다.

그녀는 재빠르게 눈을 움직이며 날아다니는 조각들을 모두 차단하였다.

자신감마저 붙은 그녀는 단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퍼졌다.

그녀는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던 중 한 조각이 그녀의 가슴 중앙으로 날아와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 조각은 지금까지 그녀가 봤던 아르케아의 조각 중 가장 빠르게 날아왔다.

공중에 떠있는 소녀는 유리 조각을 통해 말했다. "이제 충분해."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마. 그만 포기하고 죽어."

조각들은 그녀의 드레스를 스쳤고, 히카리는 타이리츠의 눈을 쳐다봤다.

검은 소녀의 얼굴에는 슬픔과 분노 대신 미소가 지어져있었다.

미소 지은 그 얼굴은 히카리의 삶과 기억에서 본 것 중 가장 무서운 것이었다.

조각이 그녀의 피부에 닿지 않고 떨어졌다.

부서진 유리창은 회오리바람을 일으켰다. 곧 회오리의 눈이 그녀 위로 내려앉았고,

옷과 피부를 스쳤지만 그저 그렇게 지나갔다.

이는 마지막으로 검은 소녀가 이 충돌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고 싶어 한다는 또 다른 메시지를 의미했다.

두려움이 그녀를 압도했다. 강하게 몰아치는 유리 조각의 회오리 속에서

마치 큰 폭풍에 이끌려 소용돌이 치는, 그녀에 대한 절대적인 두려움.

겁에 질린 그녀는 박차고 일어나 무언가를 응시했다.

그녀는 더러운 세상의 기억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질투', '배신', '고통'의 기억들.

'죽음', '괴로움', '부패'.

'어둠'. 오직 어둠뿐이였다. 이 조각들이 반사되고 있는 곳에서... 그녀는 작은 빛을 발견했다.

작은 불꽃이든 무엇이든 그녀가 본 순간 희미해졌다.

이건 다른 소녀가 그녀에게 설명했던 것이다.

그녀가 깨어난 이후로 계속해서 그녀를 괴롭혔던 사라진 공간의 불쾌한 모습.

그녀는 이제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기 위해 그것들을 사용할 것이다.

유리 조각이 히카리의 옷에 걸리고 치마를 찔러버렸다.

그리고 그녀를 위쪽으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영역까지 끌어올렸다.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며 죽음이 임박해 왔을 때 느끼는 감정으로 마음이 가득 찼다.

이는 두려움이 아니다.

'공포'라는 단어는 설명하기에 너무 부족하다.

'자포자기'? '희망'?

끔찍하게 사로잡히는 느낌이다.

그녀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마치 그녀가 눈에 띄는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그녀가 과거에 이와 비슷한 것을 발견했다는 것을 알려주듯이...

탈출 방법이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검은 폭풍은 자비 없이 몸통을 거의 모두 감쌌다.

순수한 고문의 의도, 점점 더욱 가까워진다.

마치 의도만으로도 그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것처럼...

믿겨지지 않는다.

이 상황은 그녀가 자신의 기억이나 다른 사람의 기억에서

본 것 이상이였다.

미지의 세계를 맞이하는 역겨움의 조화,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그건 '두려움'이 아니다.

'공포'다.

'끔찍한 이해'.

여기서 그녀는 유리 조각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제발, 뭐든, 기적이라도 일어나길 바랄 뿐이었다.

만약 기적 비슷한 것이 일어났다면, 그녀는 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있었다면.

갑자기 세상이 사냥을 시작하는 것처럼 지면이 파열되었다.

지금이다.

지금! 그녀를 구하기 위해 조각이 온 것이다!

그녀는 온 마음을 다 바쳐 세상이 그녀의 곁으로 날아와 그녀를 살려주길 바랐다. 간절하게 기도했다.

운명, 행운의 바퀴 그 자체.

그녀에게 승리의 힘을 부여할 '신'을 창조하기 위해!

애원해라. 희망을 가져라.

너의 피 흘리는 가슴에 구원을 가져다주었던 그 조각을 다시 한번 잡아라.

구제, 구원의 상징을... 틀림없다!

또 다른 조각이 그녀의 몸을 뚫고 들어가, 증오의 말뚝처럼 그녀의 심장에 박혔다.

조각은 그녀의 몸을 관통하지도 심장을 직접 공격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최후의 메시지였다.

그녀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소녀에게서 온 마지막 메시지는 간결하고 무자비했다.

"죽어."

히카리의 가슴에 꽃혀 있는 날은 모든 것을 앗아간 어마어마했던 불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죽음에 매우 가까워지자 그녀는 살아생전의 기억을 상기시켰다.

이윽고 그녀의 동공이 작아졌다.

불꽃의 기억과 같이, 그녀의 몸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우아하게, 잔인하게 불타버렸다.

'고통', '고뇌', 그리고 '피'.

구체의 조각에, 끔찍한 상처에 그녀가 손을 뻗었을 때 그 조각은 그녀의 손에서 떨어졌다.

그런 다음 들쭉날쭉한 유리조각이 소용돌이치며 그 손등에 도달했다.

그녀를 탈출시키려 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의 심장은 두 번 정도 뛴 후 이내 멈추고 말았다.

그녀는 앞에 놓인 생각치도 못했던 세 가지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끔찍하고, 상상도 할 수 없을, 그런 믿기 싫었던 사실, 하지만 이게 현실이라는 것.

그리고 그녀의 생각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
'''VS-???'''
>{{{#!wiki style="margin: 1em calc(2em + 25px) 1em 1em"그리고 지금, 오래되고 잊혀진 생각에 의해 본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하지만 잊혀졌지만 실제와도 같은 감정들을 아직 크게 요동치지 않았다.그저 흔들릴 뿐이었다.그녀는 여전히 두려워했다.그녀는 작은 손가락으로 희망을 놓지 않았다.그녀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어떻게든 10가지 정도의 추억들을 긁어모았고 하늘에서 그녀를 지키고 있던 바늘과 같은 유리 조각에 주먹을 휘둘렀다.그녀는 곧 기형의 지면으로 추락했고 그녀가 선택했던 조각들은 그 후 그녀의 아픈 몸을 맴돌았다.이상하게도, 그녀 역시 지금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그녀는 왼손으로 자신의 몸을 일으켰다.타이리츠의 대상이 된 적에게, 그녀는 상대에게 치명타를 가하는 것보다 적의 몸을 고문하는 것에 재미를 느꼈다.심지어 지금 히카리의 가슴에 있는 조각조차도 그녀의 심장에 가까워지며 격렬한 불곷과 함께 불탔지만, 마무리는 하지 않았다.의도하지 않았던 걸 수도 있다.어쨌든 히카리는 아직 살아있었다.소녀는 힘없이 공격을 지시했고, 그 공격은 그녀 위를 날며 빠르게 공격했다.그 소녀는 이제 히카리가 예진 기억의 이야기 속에서 들었던 악마보다 더욱 사악해 보였다.하루의 세계에서 밤을 지배하는 진정한 어둠의 여왕.황홀하면서도 분명한 텅 빈 미소…….이를 본 히카리는 자신의 감정이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냉혹한 현실은 그녀의 단지 몇 분, 몇 초 전의 두려움보다 더욱 그녀를 냉정하게 하였다.그녀는 이 상황에 각 사실을 대입하기 시작했다.천천히, 타이리츠가 허락하는 한 천천히.그녀의 공격을 끝이 없었다.그녀의 몸은 좌우로 움직이며 기억이 얼마 남지 않는 가장 약한 부분을 지켰고, 히카리는 그들의 전장을 살폈다.전장은 산산이 조각났으며, 이제는 그 어느 때보다 황무지처럼 보였다.군사 폭격이 지나간 마을처럼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그들 주위의 유리는 셀 수 없었다.타이리츠의 힘도 헤아릴 수 없었다.히카리 자신도 매우 약해져 있었다.이상한 능력과 유리 조각에 대한 통제뿐만 아니라 그녀의 몸도 녹초가 되어 있었다.그녀는 피로함으로 혼자가 되어 떨어지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그녀는 아마 이상함을 느꼈을 테지만, 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그렇다면 그 다음은?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다음’은 ‘지금’이 되었다.그래서?길이 완전히 막히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계속…… 가야만 할까?유리 조각이 빛나며 그녀의 어깨를 스친다.히카리는 반사된 빛을 바라보았다.다른 소녀는 이제 빛도 통제할 수 있다.음…….그녀는 자신이 관찰한 내용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로 했다.자신이 여기서 살아남을지 죽을지…….확률은 반반이었고, 그녀는 이 사실을 받아들였다.이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순간에 모든 것이 끝날 수도 있다.그리고 그러지 않는 한, 도울 수 없었지만 생각이 계속 울리고 있었다.“그래, 해보자.”‘생각’, ‘희망’, ‘느낌’ 이후…….‘결심’이 마지막으로 그녀에게서 사라졌다.이것.이것이…….이건…… 항복하려는 것이 아니다.결코…….그녀는 손에 있는 조각을 잡았고 그러자 하얀 불꽃과 함께 그녀의 눈이 잠시 빛나며 상처 가까이까지 타기 시작했다.그녀는 그것을 목까지 누르지 않았다.그녀는 확실히 살고 싶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그녀는 불가능한 확률도 신경쓰지 않았다.히카리는 간신히 자신의 조각 앞에 설 수 있었다.그녀는 더 이상 타이리츠의 얼굴을 식별할 수 없었다.그녀의 영역에는 대혼란이 발생했으며, 그것을 통해 보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결국 유리 조각을 뚫고 가는 동안 히카리는 회오리의 일부분이 역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기괴한 움직임이 너무나 부자연스러웠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 위에 있는 소녀가 의도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건지 진심으로 궁금했다.그녀는 건너뛰는 영상을 연상시킨다고 생각했다.그녀가 지금까지 직면했던 총알 세례보다 낫거나 나쁘지는 않았지만, 꽤 이상했다.지진이었다.“뭐지……?”그녀가 말했다.지, 지진?여기에?지면이 다시 부서질 수도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히카리는 팔로 얼굴과 가슴을 보호했다.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녀는 이 현상에 대해 여전히 궁금해할 것이다.그리고 타이리츠는 지금 날고 있기 때문에 그녀가 아니었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이제 칼날 폭풍은 더욱 매섭게 변화하여 거세게 움직이고 있었다.그녀는 다른 소녀에게 다시 유리 조각들을 던지기로 결심했다.그 조각들은 다시 쉽게 폭풍을 통과했지만 갑자기 빛나며 부서졌다.조각들은 스스로 부서지지 못하는데…….그것들이 사라진 후 마치 금이 간 공간 같은 것이 보였다.일단 그녀가 이것을 보고 인식하면 주변의 모든 것이 멈췄다.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주변을 날고 있던 흑요석 조각들이 현실 속에 빠르게 갇혔다.그녀에게 이 광경은 절대적으로 아름다웠다.그녀가 원치 않아도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아름다워.”그녀는 자신에게 속삭였다.여기는 그녀가 곧 무덤을 찾을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 있었다.하지만 너무 특이해서…… 웃음마저 나왔다.그래서 웃어버렸다.그녀는 진지하면서도 슬프고 건조한 웃음을 지었다.그러나 움직임이 점차 그녀 주변의 물체로 돌아갔고, 그리고 위에 있는…….위에…….하늘……? [4]하늘을 가로질러 균열이 일어났다.그 균열은 마치 천국을 그리며 넓게 퍼졌고, 마침내 거대한 부분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이후 더욱 기괴하게 수많은 이미지가 그곳을 가로질러 빛났고, 하나하나 빠르게 깜빡였다.세상은 이상한 파멸에 빠지기 시작했다.그리고 이 관경을 지켜볼수록 히카리는 더 만족하는 미소를 지었다.폭풍은 여전히 느렸고, 이미지는 너무 환상적이었다.하늘, 인공이 아닌 진자 하늘이 무너졌다.잠시 멈추듯 잠잠해졌지만 다시 무너지기 시작했다.천상의 퍼즐 조각이 움직이는 것처럼, 엉뚱한 신이 장난을 치는 것처럼.그리고…….바라보고 있었다.그녀의 미소는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눈이 차가워지고 숨이 느려지기 시작했다.그리고 이 대격변에 의해 일어난 흥분에 대한 희미한 빛이 사라지자 객관성으로 대체되었다.모든 것을 파괴하는 재난에 대한 그녀의 의견은 단 한마디로 전해졌다.약간의 감사함과 함께 그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기뻐.”마치 그 말에 의미가 있는 것처럼.파멸에 의미가 있는 것처럼.세상에 의미가 있는 것처럼.


3. 사이드 스토리



3.1. 사야



3.1.1. 해금 조건


'''스토리 #'''
'''진행 순서'''
'''해금 조건'''
3-0
Absolute-'''5'''
[image]
[image]
사야Antithese 클리어
3-1
Absolute-1
[image]
[image]
Antithese 클리어
3-2
Absolute-2
[image]
Corruption 클리어
3-3
Absolute-3
[image]
[image]
사야Black Territory 클리어
3-4
Absolute-4
[image]
사야Cyaegha 클리어
3-5
Absolute-'''6'''
[image]
사야Vicious Heroism 클리어

3.1.2. Absolute Reason


=====# 3-0 #=====

또 다른 깨어남이자, 그녀의 첫 번째 깨어남.

모든 이가 머릿속이 텅 빈 채 기억의 세상에서 깨어난다. 그녀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빛이 각막을 통해 쏟아져 들어올 때 그녀를 휘감는 감각은 낮선 것이다. 먼저 그녀의 가슴이 열정적으로 뛴다. 그리고 그녀는 계속 쌓여가는 절망감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녀는 배 주위에 두른 옷을 잡으며 귀가 먹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자기도 모르게 눈을 찡그리며, 그녀는 눈이 두 개가 아닌 하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그녀는 얼굴 여기저기를 더듬어 본다.

"이게 대체...?"

그녀는 기침을 하며 자기 자신을 일으킨다. 그녀가 장갑 사이로 느낀 것은 그녀의 오른쪽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딱딱한 무언가를 둘러싸고 있는 거의 부드러운 물체였다. 그녀는 자신이 장갑을 끼고 있음을 자각한다. 자기 몸을 내려다본 그녀는 왜 자신이 이런 옷을 입고 있는지 의아해한다. 또한, 자신이 입은 옷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고 있는지 의아해한다.

그녀는 지금껏 벽에 기대어 잠자고 있었다. 주변을 살펴본 그녀는 구석자리 세 곳을 포함해 사각형의 공간에 자신이 있음을 깨닫는다. 모든 구석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망가진 상태다. 그녀는 위를 올려다보지만 거기엔 지붕도 없다. 그녀는 애초에 왜 이런 곳에 지붕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 자문한다. 사실 그녀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 희미하게나마. 그녀는 발을 디딜 만한 곳을 찾아 자신이 기대어 자던 벽을 따라 터덜터덜 걷는다. 벽돌들을 걷어내던 그녀는 벽돌이 새하얗다는 것을 눈치챈다. 위를 올려다본 그녀는 벽뿐만이 아니라 세상 전체가 하얗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곳은 날고, 의지가 사라진, 인간 세상의 끝없는 풍경 혹은 여러 사회를 모방한 공간일 것이다. 이상하다. 게다가 그녀가 이 공간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상하다. 어째서일까?

반사 유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전에, 그녀는 보이는 것들과 자신의 정체에 대해 수십 가지의 이론을 만들어낸다. 비록 그녀가 혼자이고, 자신의 이름도 모르지만, 그녀에게 그럴듯한 진실을 상당 부분 이야기해 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특히, 한 이론을 뒷받침할 더 많은 이유를 발견한다.

그녀는 확신과 호기심을 가지고 태어났다. 하얀 세상은 질문만 던질 뿐 답은 해주지 않는다. 며칠이 흘러도, 폐허 속에는 아무런 답도 보이지 않는다. 몇 주가 흘러도, 유리 안에는 아무런 답이 보이지 않는다. 유리로 가득 찬 세상은 언제나 타인의 모습과 더 선명하고 다양한 장소들을 비추며 그녀를 조롱한다. 진짜를, 특히 하얀 세상 그 자체를 흉내 내는 메아리는 인간의 발명품인 것이 분명한 것들을 모방한 것으로 가득 찼다. 두 달, 혹은 그보다 좀 더 긴 기간 사이에, 그녀는 자신이 무언가를 빋을 수 있을 만큼 많은 것을 보았다고 느꼈다. 그것도 확신을 가지고.

얼마 전인가 그녀가 깨어났던 곳에서 멀리 떨어진 어딘가의 부서진 계단 맨 위에서 있을 때였다. 그녀는 하늘의 굽이치고 나눠진 부분을 응시한다. 그곳은 백 개가 넘는 아르케아의 조각들로 만든 어디로도 향하지 않는 유리창으로, 깨진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그녀는 자기 자신을 분명히 깨닫는다. 그녀는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절대로 부족하다. 추측만으로는 알 수 없다.

따라서 그녀는 맹세한다. 이 왕국은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고 아주 조금밖에 알려주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곳이고, 그렇기에 그녀는 그 수수께끼를 풀고 그 이유를 찾아낼 것이라고.

그렇게 그녀가 아르케아를 완전히 받아들이자...

아르케아도 그녀를 완전히 받아들였다...

읽힐 뿐만 아니라 살아나가야 할, 거대하고 끝이 없을 것 같은 기록의 저장소로서.

=====# 3-1 #=====

이른 저녁이다. 바깥은 태양이 발하는 호박빛의 황혼이 쉼 없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지만, 주변을 둘러싼 초원에 놓인 장치들이 그 빛을 빨아들여 달이 내뿜었을 법한 빛과 비슷한 광선으로 바꾸고 있다.

연회에는 어떤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비록 저택 밖에서 지켜보는 눈들은 없지만, 항상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이 상류층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녀도 이 사실을, 이 모든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어두운 곳에 앉아, 햇빛이 닿지 않는 천장과 계단을 비추고 있는 가운데 그녀는 이 사실이 주는 의미에 대해 차분히, 침묵에 잠겨 생각해 본다.

"라비니아."

술잔을 바라보던 그녀는 고개를 든다.

약혼자(너무 잘 차려입어 답답해 보일 정도지만, 편안한 자세로)가 그녀 앞에 서 있다.

"잔 안에 있는 술은 와인이 아닌 것 같은데, 그렇지?"

그녀는 멀쩡한 눈으로 술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그리고 대답한다. "이건 사과주야... 도노반."

"그렇군." 방의 나머지 부분을 둘러보던 그는 미소를 띠며 이렇게 대답한다.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그 대답을 듣는다. 그가 살짝 웃는다.

"엄마나 다른 사람들은 와인 한 잔 정도는 몸에 좋다고 하지..." 그는 다시 그녀를 바라보며 말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 혹시 술에 취한 남자를 본 적 있어?"

그녀는 움찔하더니 곰곰이 생각해보고 대답한다. "아니."

"잘 됐군.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 편이 나아." 이렇게 말한 뒤 그는 돌아섰다. "모건과 이야기 나누러 갈게. 오고 싶을 때 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도노반은 벽난로 옆에 있는 둘의 유년 시절 친구에게 다가간다.

항상 그렇지만, 이미지는 유지되어야 한다. 난롯불의 불길은 겨우 몇 발자국 주위를 밝혀주고는 사라져, 바닥에놓인 등불로 빨려 든다. 불빛이 닿지 않는 곳은 어둡지만 아늑하다. 느긋하게 있을 수 있는 곳이다. 머리 위에 걸린 등불 몇 개가 내뿜는 빛은 책을 읽거나,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확인하거나, 술 몇 병과 함께 신경 써서 차린 음식들을 겨우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밝기다. 절반이 유리로 된 벽 너머로 보이는 바깥은 야생화와 돌, 개울들과 같은 야생에 가까운 모습이 희미하게 비친다. 새틴의 빛깔과도 같은 한밤의 푸른빛에 싸여 있다. 연회에는 스무 명의 손님들이 왔는데, 절반은 이 방에, 나머지는 홀이나 서재 같은 곳에 있다. 그녀가 아는 것은 여기까지다.

그녀는 사과주를 입안에 머금고 음미해 본다. 사과주를 별로 마신 적 없는데도 그 풍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그녀는 더 나은 맛과 감각을 불러일으켜 보려고 하지만, 그 순간 혓바닥의 타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총평: 굉장히 불쾌한 맛이다. 이것이 그녀의 결론이다.

그녀는 옆에 있던 작은 탁자 위의 화려한 문양의 받침 위에 잔을 내려놓는다. 그녀는 다소 멍한 상태로 그녀의 다른 쪽 눈에서 피어나는 꽃잎들을 매만지며 앉은 채로 듣고, 바라본다.

그녀는 도노반이 말하는 것을 듣는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상당히 많이 해냈어. 처음 그 계획을 들었을 때, 난 당연히 불가능할거라 생각했거든."

"찰스는 아직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라고 다른 손님이 말한다. 모건이 아닌 나탈리아다.

"놀랍군." 도노반은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손으로 빚어낸 온전한 세상이라." 그는 말한다. "인류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

=====# 3-2 #=====

깜빡거리던 등불을 쫓던 그녀의 하나밖에 없는 눈은 이제 곧 남편이 될 남자를 찾는다. 손을 뻗어 술잔을 쥔 그녀는 한 모금을 마신다. 그 한 모금으로 그녀는 자신이 왜 술잔을 내려놓았는지 다시금 깨닫는다.

창조된 세상에 관한 일은 그저 저들의 특별한 관심사도 아니다. 그들은 그 세상에 대해 그리 많이 대화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녀는 사실 이것이 정말 흥미로운 주제였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짜증이 치민다. 때로는 이들이 전혀 대화를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자는 점점 인내심을 잃는다. 그녀는 일어서서 거실을 지나, 좀 더 화려하고 밤 분위기에 맞게 꾸민 홀을 통과했고, 그녀가 좋아하는, 하지만 희미하게만 기억나는 방들을 지나친다. 그녀는 불이 켜지지 않은, 칠흑 같은 어둠이 쭉 뻗은 길을 따라, 열쇠 구멍도 없는 듯한 문들을 열고 나아간다. 문이 열린 곳에서는 몇 명의 남녀가 마주 앉아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혹시 그녀의 존재를 눈치채더라도, 그녀 쪽에 눈길을 한 번 던지고는 다시 대화로 돌아오거나 휴식을 취한다.

그녀는 바깥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

저택은 최신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옛날 '전통'에 얽매인 곳이다. 그렇다. 조광통도 신기하고, 인위적인 느낌을 주는 자연도 특이하지만, 무엇보다 그녀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정원에 있는 빛을 변형하는 기계들이었다. 그녀도 그 기계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본 적은 아직 없었다.

한 마디로, 그녀는 "궁금했다".

따분한 사교 모임이 지겨울 정도로 반복됐고, 오늘도 그저 수많은 또 하나의 '오늘'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녀가 오랫동안 몸담고 싶은 하루는 아니다. 생명과 창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놀라운 것들이다.

하지만 그녀가 정면 진입로로 향하는 문으로 다가서자...

그녀의 손가락이 앞에 놓인 커다란 손잡이의 나무 부분에 닿자...

그녀는 본능적으로 그곳에는 과거가 아무것도 없음을, 그녀를 위한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직감한다. 이 세계 전체에서 그녀가 존재할 수 있는 다른 장소는 없다. 그녀의 자리는 기술을 경배하는 초원이 아니라, 곧 남편이 될 남자가 있는 거실이다.

"바깥"이란 공상에 불과하다. 아무 의미 없는, 스쳐 지나가는 생각일 뿐이다.

별로 기분 좋지 않은 깨달음이다.

손잡이에서 손을 뗀 그녀는 돌아서서 현재 조각 하나하나마다 세상의 다른 곳을 비춰주고 있는 샹들리에 아래에 섰다. 조각이 보여주는 모습은 끝없이 변화하며, 그녀가 다가갈 수 없는 장소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샹들리에가 내뿜는 천상의 빛에 가까운 반짝임은 사라지면서 이 장소와 샹들리에 자체에 너무나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부여하고 있다. 그녀의 눈과 입술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녀는 가슴속에 타오르는 불만의 작은 불꽃을 안고 저택으로 터덜터덜 걸어 돌아온다.

=====# 3-3 #=====

폭풍이 벽 뒤의 지형에 쌓인 꽃잎들을 휘날린다.

하얀빛과 사파이어의 반짝이는 빛이 눈길을 사로잡고, 연회의 젊은이들이 신이 나서 변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치 마법같은. 굉장한.

그녀는 라운지로 돌아와 인공 자연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지켜본다.

그 우스꽝스러운 장엄함을.

그녀는 꽃들이 처음 바람에 흩어지던 날을 떠올리며 생각한다.

그녀는 이제 "기억"해내는 것은 질릴 만큼 했다.

지난 몇 시간 동안, 그녀는 어디까지가 경계일까 시험해 보았다.

창문은 닫혔고, 정원으로 나가는 유리문도 막혔으며, 통풍구는 빗장이 쳐졌다.

여기에 대한 그녀의 물음은

"사람들이 일부러 막아서 일까 아니면 내가 여기에 갇혀서 일까?"

그녀는 은유와 감정이 어린 소녀들의 마음을 뒤흔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실을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여기저기 찔러 보고, 확인해 보고, 뒤집어 보고, 돌아다닌 뒤에,

그녀는 자신과 아는 사이로 여겨지는 지인이나 친구들과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날씨가..."

"왕이..."

"있잖아, 지난주에..."

지루할뿐더러 별 내용도 없다.

몇 가지의 질문은 불신 또는 냉대로 이어졌다.

마치 아무런 질문도 없었던 것처럼, 마치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처럼.

그녀가 주로 궁금했던 공학, 기술, 진보 같은 주제가

다른 손님들에겐 아무런 흥밋거리도 되지 않는 듯싶었다.

커지는 절망 속에서 묵묵히 귀 기울이던 그녀는 마침내 그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은 더러운 행성보단 조금 나은 정도지만, 앞으로 사람이 살 수 있을 거라고 들었어."

거기에 대해 다시 물었지만... 역시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정보였으므로, 그녀는 라운지에 들어섰다.

그녀는 지금 폭풍을 바라보며, 그 세상을 이해하며, 그 세상에 속에 서 있다.

여자는 자신을 발견하고 웃는 약혼자를 지나친다.

그가 "라비니아, 돌아왔구나."라는 말로 그녀를 반갑게 맞자, 그녀는 그의 옷깃을 쳐다본다.

그는 옷깃을 쫓는 그녀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다.

배우들은 언제나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 같다.

눈에 띄거나, 독특한 행동에 대해선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는다.

그녀는 점점 더 과감해지지만, 다른 이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일상대로 움직일 뿐이다.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런 거겠지?

그녀는 오랫동안 답을 원했던 한 가지 질문을 단도직입적으로 묻기로 한다.

"인간이 만든 세계...란 유리로 만든 것 아니야?"

"...흐음? 뭐라고...? 아니야, 라비니아. 그런 싸구려가 아니야."

그녀의 하나밖에 없는 눈이 커진다. 동공은 작아진다.

수많은 질문들 중 하필 그 질문이었다.

도노반은 그녀의 어깨너머를, 그리고 벽들을 쳐다보며 말한다.

"어쨌든, 사랑스럽지 않아? 당신의 사랑스러움에 견줄 수 있을 만큼..."

하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의 대답을 사실상의 확인으로 받아들인 그녀는 결정을 내린다.

저 너머의 꽃의 소용돌이가 잔잔하게 공기를 타고 흩어지며 춤추는 동안,

그녀는 음식이 놓인 탁자로 다가가 빵 앞에 멈춰 선다.

도노반이 말을 잇는다.

"그들이 만든 세상은 여기 끝없이 펼쳐지는 계곡 같은 볼거리가 풍성할 거라고 했어.

지금은 황량하지만 말이야. 개념 같은 거지. 이해하겠어?"

그녀는 손잡이를 잡으려던 손을 멈추고, 듣는다.

"하지만 그곳으로 갈수 있는 사람들은 분명 엄청난 세계와 만나게 될 거야.

그 세계의 잠재력을 생각해 봐, 라비니아."

그녀는 한숨을 내쉰다. 또다시 영양가 없는 이야기다.

그녀는 질 좋은, 잘 다듬은 나무에 손을 가져간다.

그녀는 재빨리 돌아 기다리는 남편에게 다가간 뒤,

손을 휘둘러 그의 목으로 가져간다.

빵칼의 날이 그의 목에 닿은 채 멈춘다.

아무런 감정 없이, 심지어 한 점의 반감도 없이, 그녀는 아무 말 않고 소년의 목을 긋는다.

그리고 무엇이 흘러나올지 가까이서 지켜본다.

=====# 3-4 #=====

흘러나온 것은 피가 아니다.

흘러나온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신사의 목은 분명 끔찍한 방법으로 잘렸다... 하지만 기억 속에는 "끔찍함"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목이 잘려나간 처참한 이미지 대신, 그의 잘린 목은 구겨지고 찢겨나간 종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 내부를 채운 것은 "그림자"가 아닌 "부정적인 공간"이다. 그의 몸속을 채운 것은 공허이다. 칼에서 잘려나간 상처 부분이 어떤 하얀 빛으로 희미하게 반짝이고, 그녀가 사용했던 칼의 날에선 진동하는 파편들이 떨어져 나와... 공중에 떠 있다.

도노반은 사태를 이해하지 못한다. 많은 초청객 역시 그녀의 행동으로 공포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흩어지고, 여성들은 기절해 쓰러졌으며, 도노반은 자기 목을 향해 손을 뻗는다. 몇몇 남자들이 그녀게 달려와 그녀의 팔뚝을 끌어당긴 뒤 그녀의 목을 움켜쥔다. 그녀는 칼을 꽉 쥐고, 무감각한 표정으로 남편의 당황한 눈동자 안을 들여다본다.

제지하려고 달려드는 손님들과 몸 다툼을 벌는 와중에, 그녀는 도노반 뒤에서 바닥에 쓰러져 완전한 발작 상태에 빠진 소녀를 발견한다. 소녀의 목소리는 갈수록 왜곡되더니, 갈라지고 제멋대로 요동치기 시작한다. 이미 그때, 기억은 부서지고 말았다.

이건 실제와 많이 달랐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 왜곡된 기억이라고 해도 이 정도로 바뀔 수 없다.

평화로운 한때에 예고 없이 자기 남편을 급습하는 부인이라니...

그녀는 뭔가 반응을 이끌어내고 싶었고, 따라서 지금의 결과에 만족했다. 비록 실내에 있던 소수의 손님들은 이 소란에도 당황하지 않았지만, 일부는 체면도 생각하지 않고 비명을 질러댔다. 기억을 이 정도까지 변형시킨 것은 최초인 것 같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성공이다.

세상이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하고, 그녀가 볼 수 있는 곳에선 갈라진 금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후 현실은 그것으로 인해 거의 구겨져 버린 것 같다.

그녀는 자기 자신에게 말했다. "안락을 위해 모든 세상을 만든다... 분명 그것보다는 더 나은 용도가 있을 거야."

손에 쥔 빵칼을 내려놓은 그녀는 빵칼이 그녀가 내려놓은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쉰다.

"이제 '기억'도, '메아리'도, '실체 없는 상'도 지경겨워. 무엇보다 '유리'가 특히..."

방이 쪼그라든다.

"결국, 또 하나의 의미 없는 꿈이였어."

행성이 갈라진다.

새하얗게 흐려지고 옅어지더니, 이미지가 사라지면서 사방에서 잠시 반짝한다. 이 회상 속에 간직된 모든 소리가 스쳐 지나가는 사이, 유리가 미끄러져 나가는 그 잠시 동안안, 그녀는 빛과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눈을 감은 채로 있는다. 다시 눈을 뜨자 희미하게 빛나는 텅 빈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그녀의 음은 뒤숭숭해지고, 빛나는 고통의 물결이 한 차례 더 밀어닥친 후 그녀는 가장 익숙하면서도 당혹스러운 세계와 마주한다.

하얀 세상과 폐허. 기억으로 재구성된 아르케아의 왕국.

손바닥 위에서 빙글빙글 도는 조각을 바라보며 그녀는 "아르케아 대해서 좋은 감정을 품었었지"라고 중얼거린다. "하지만 이 세상의 창조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어. 게다가 거의 텅 비었지. 흐음. 내가 그것들을 볼 수 있다면, 없앨 수도 있게 해줬으면 좋겠어..."

그녀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유리를 원래 있던 자리로 돌려보낸다. 땅 위를 흐르는 반짝이고 날카로운 강으로. 사야라는 이름의 여자는 평탄한 지평선을 바라보는 가운데 무심결에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최근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건들을 되돌아보며, 수없이 많은 다른 기억들과 비교해 본다.

=====# 3-5 #=====

"이와 같은 다른 곳에서, 인간은 신처럼 군림할 수 있다."

그것이 그녀가 배운 사실이었다.

눈 속에 꽃 한 송이를 품은 소녀는 자기 마음속에 있는 기억의 책을 덮는다. 대부분은 별 가치가 없었지만, 그래도 약간의 소득은 있었다.

사실, 처음엔 실망했다. 그녀가 방문한 세계가 시시한 곳임을 금방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시함도 인류의 잠재력에 대해 뭔가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지금... 그 사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방법'이 아닌 '이유'에 대한 더 많은 이론이 그녀를 앞으로 이끌었다. 이것은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여기저기 흩뿌려진 희망 속에 세상의 폐허들을 돌아다니는 여행일 수도, 혹은 그저 세상과의 극히 표면적인 스침에 불과할 수도 있었다.

그것이 그녀를 움직이게 한 주된 동기였다면, 두 번째 동기는 그녀가 이백 개가량의 기억들을 목격한 뒤 분명해졌다.

"거기엔 실현 가능한 재건에 대한 새로운 내용은 아무도 없었어." 그녀는 넓게 흩어진 유리의 강 가운데 곁에 있는 조각 하나에게 손짓하며 속삭였다. "하지만 거기에도 어떤 가치는 있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녀는 새로운 조각의 빛에 눈을 돌렸고, 그 조각이 비추는 과거의 영상을 꼼꼼히 살피며 무심결에 중얼거린다. "거의 집에 다 왔어..."

그녀는 조각을 손바닥 위에 놓은 채 이제는 아주 익숙한 다리를 건넌다. 그녀의 왼쪽에는 한때는 도시들이었으나 지금은 마구잡이 폐허로 변해버린 잔해들이, 그녀의 오른쪽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유리와 돌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그녀는 얼마나 더 걸어야 할지도 개의치 않고 자신이 "태어난" 장소로 향한다.

그녀는 먼 거리에도 개의치 않고 나아가 무너진 네 개의 벽이 선 장소 앞에 선다. 벽들 사이에는는 빛나는 수정의 거대한 구체가 하나 있다. 마치 깨진 껍데기처럼 미완성 상태로 깨지고 흩어진 구체다. 웃음, 눈물, 죽음, 그리고 축하가 수정의 표면에서 명멸한다. 꽃, 초원, 사막, 대양... 동물, 사람, 기술...

그녀는 기억들을 하나로 엮어서 세상을 재창조할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재창조는 고사하고 이런 식으로 기억들을 이런 식으로 하나로 모아서 진짜로 "연결"할 수 있는 것인지조차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최소한 시도는 할 수 있다.

그녀는 새로 가져온 조각이 내뿜는 빛 때문에 눈을 찡그린다. 그녀는 "네가 보여줄 수 있는 만큼 보여줘"라고 크게 외친다.

그러자 문이 열리며, 그녀는 새로운 시간대로 이동한다. 순식간에 그녀 앞에는 인공적인 빛으로 가득 찬 세계가 펼쳐졌고, 거기엔 인간이 만든 끝없는, 거의 무한에 가까운 숫자의 탑들이 저녁 하늘의 구름들을 가로지르는 높이로 서 있었으며, 어둠에 쌓인 이동 수단들이 하늘을 가로질렀다. 불쾌한 공기가 그녀의 폐 속으로 흘러들어온다. 불협화음이 그녀의 귀를 가득 채운다. 그녀에게 새로운 정체성과 새로운 과거가 생겨나는 모습을,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고 지켜본다. 수십 가지 질문들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녀는 거기에 대한 답을 찾아낼 것이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어떤 일을 해내서라도.


3.2. 코우



3.2.1. 해금조건


'''스토리 #'''
'''진행 순서'''
'''해금 조건'''
4-1
Crimson-1
[image]
[image]
Paradise 클리어
4-2
Crimso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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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우Party Vinyl 클리어
4-3
Crimson-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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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우Flashback 클리어
4-4
Crimson-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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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우Paradise 클리어
4-5
Crimso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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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Flyburg and Endroll 클리어
4-6
Crimson-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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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코우Nirv lucE 클리어
4-7
Crimson-7
[image]
코우Diode 클리어
4-8
Crimson-8
[image]
코우GLORY : ROAD 클리어

3.2.2. Crimson Solace


=====# 4-1 #=====

끝없는 낮은 지루해지기 마련이다.뜨거운 태양 아래에 너무 오래 놓여있으면, 누구든 차가운 달을 갈망하게 된다.

그녀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80일간의 낮?"

"7개월간의 낮?"

"어쩌면... 1년..."

하늘을 물들인 하얀 빛이 그녀의 '집'의 갈라진 벽 틈을 뚫고 스며들어 온다. 온 바닥을 뒹굴뒹굴하며 자던 그녀의 몸은

무심코 들어온 빛에 쪼이고 말았다.

탄식이 새어나온다. "제발 불좀 꺼줘..."

그렇지만 오늘도 그녀는 잠에서 깨어난다.

오늘도 그녀는 눈을 비비며 기지개를 켠다.

그리고 밖으로 나갈 문을 찾는다. 한없이 펼쳐진 아르케아의 세계에서 맞이할 또 다른 '날'을 위해.

여행은 언제나 즐겁기만 한것은 아니다. 언제나 새로운 발견이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백지상태에서 처음 깨어난

그녀가 어떤 사실만큼은 굳게 믿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과 하늘. 이 두 가지는 언제나 밝게 빛난다는 사실이었다.

"좋아...!" 숨을 내뱉으며 한마디를 꺼낸다. "먼저 몸을 움직여보자!"

그녀가 손을 뻗어 내밀자 어떤 유리가 그녀를 향해 날아온다.

기억의 유리조각이 아닌,

'아르케아'가 아닌,

그저 흔하고도 평범한, 넓은 유리판이었다. 빙글빙글 돌면서 그녀의 앞에 다가온 유리판으로 뛰어오르며, 곧장 또 다른

유리판을 불러낸다.

그녀가 발견한 집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황폐한 복합 도시의 흔적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한 외딴섬에 놓인 해변 별장이었다.

해변이라고는 하나 바닷물은 전부 말라버렸고, 별장이라고는 하나 소라게가 버린 껍데기처럼 여기저기 갈라졌으며 , 반대편인

내륙 쪽에는 기괴한 모습의 커다란 백목 기둥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다른 집들은 그녀의 호기심, 혹은 무심코 건드리며

뜯어고친 흔적들로 안팎 할 것 없이 정신없었다. 오늘은 그 집들의 벽과 유리창들을 들어내어 경주로와 계단, 터널들 만들려

하고 있었다. 다리에 살아 있다는 실감을 주려는 듯이,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반짝이는 통로 위를 달려 나갔다.

이 모든 장난들은 이세계가 그녀에게 배푼 작은 관용이었다. 그녀가 깨어난후, 아르케아의 세계를 어뚱한 생각으로 휘젓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 되어버렸다.

한편,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그녀의 밑에 펼쳐진 상상의 바닷속에서, 무언가 빛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아주 희귀하고도 드문

무언가가, 모래 위에 살포시 놓여 있던 것이다.

그녀는 그 무언가에 눈을 흘기더니, 콧바람을 내쉬며 히죽히죽 웃었다.

=====# 4-2 #=====

그녀에게 유리는 간단히 다룰 수 있는 물건이였다. 하지만 독특한 유리 조각, 아르케아는 어째선지, 아니, 확실히 그녀의 힘으로는 다룰 수가 없었다. 기억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기억들은 그녀의 뜻대로 그녀를 따라다니지도 않을 뿐더러, 그녀가 이를 들여다보거나 그 안을 방문하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숨을 씩씩대며, 소녀는 수정의 발판에서 힘차게 뛰어올랐다. 뛰어오른 그녀의 뒤로 그녀가 만든 구조물이 조각조각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중력이 그녀를 완전히 땅으로 붙잡아 내리기 전, 그녀는 오른손을 뻗어 침대에 있던 담요를 불러온 후 즐겁게 휘둘러댔다. 그러고는 무겁고도 푹신한 무언가를 불러냈다. 공중에서 떨어지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만의 나태의 옥좌가 그녀의 몸을 받아내었다. 그녀가 아끼는 커다랗고 칙칙한 팔걸이의자였다. 그녀는 자세를 고쳐 앉아, 집 위의 하늘을 날며 눈을 반쯤 감은 채, 묘지처럼 늘어진 건물들로 장식된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기쁨과 만족감에 젖은 그녀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오늘의 '아침' 운동도 아주 성공적으로 끝냈다. 그녀는 계속 머나먼 곳을 바라보며, 지금의 기쁨을 조금 깎아 내릴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있는 세계의 크기, 그리고 그 세계에 어떤 것이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지금까지 본 것들이 이 세계의 3분의 1정도는 되는 걸까? 어쩌면 16분의 1일까? 너무나도 광활하고, 너무나도 많은 종류의 기억으로 가득한 세계. 바람 한 점 없는 허공에 떠올라 의자를 흔들며, 눈을 감고 생각해본다.

광대하고도 오래된, 뒤죽박죽으로 뒤섞인 무질서한 세계. 그녀는 이 세계가 자신 이외의 누군가도 있을 지 모를,

기이하고도 신비한 세계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다시 눈을 뜨고는 눈부신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 세계의 어딘가에는 별들로 가득한 하늘이 있지 않을까.

그 하늘 아래에서, 다른 소녀들이 자신처럼 하늘을 올려다보며 낮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붉은 소녀는 어깨까지 걸친 담요의 끝자락을 잡은 채 생각했다.

끝나지 않는 아침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자, 이정표 없는 여행의 출발이기도 했다.

=====# 4-3 #=====

"흠, 어쩌면..."

그녀는 혼잣말로 중얼대며 나는 의자의 등받이에 체중을 싣는다.

"혹시 저쪽에, 태양이 떠있는 걸까...?"

머리 위의 '천국'을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보며 조용히 생각했다.

무엇이 이곳을 빛으로 채우며 환하게 만들어주는 걸까?

지금까지의 여행이 '앞'을 향해간 것이었다면, '위'를 향한 여행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

그녀는 짓궃은 장난꾸러기처럼 씩 웃었다.

의자를 밟고 선 채 담요를 밑으로 떨어뜨리고, 그것이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담요가 땅에 닿을 무렵, 한 나무 기둥이 솟아올랐다. 그녀는 의자에서 뛰어올라 눈앞에 새로이 나타난 기둥의 짧은 강철 막대기를 붙잡았다.

떨어지지 않게 기둥의 옆면에 발을 단단히 고정한 채, 기둥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녀가 알기로는 이것은 다른 세계에서 전기를 보내거나 통신을 하는 데에 쓰이던 기둥이었다.

그녀는 강철 막대기를 쥔 손 아래 또 다른 막대기에 한쪽 다리를 내려놓는다. 그렇게 한쪽 팔다리로만 몸으르 지탱한 채, 구세계의 파괴된 잔해 위에 늠름히 섰다.

그녀는 수평선에 널린 수많은 건물들을 바라본 후,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 정도의 높이까지 날아오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안전하게 오르려면 사다리 같은 것이 필요했다.

그녀 발밑에 놓인, 그녀의 집을 제외한 다른 집들이 다시 무너져 내린다. 판자들과 침대 몸통, 장식장과 창문들,

그녀가 예전에 사용했다가 버려두었던 잔해들이 모래가 흐트러지듯 분해되기 시작한다. 부서지는 모든 것들이 확실하게 모여가며, 하나의 건축물로 형성되어 갔다. 하지만 진짜 건축가의 작품처럼 정교하진 못했다. 그녀가 세우는 탑은 천천히 하늘을 향하고 있었지만, 당장에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위태로웠다. 울퉁불퉁한 면 사이에 날카로운 물건이 삐죽삐죽 튀어나오기도 했으며, 탑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기울어가기도 했다.

불행히도 그녀의 섬에는 더 이상 쓸만한 재료가 남아 있지 않았다. 모든 재료를 끌어다 썻음에도 1킬로미터도 채 되지 않는 높이밖에 되지 않는 결과물을 보며, 그녀는 밀려오는 짜증에 눈살을 찌푸린다.

그녀는 투덜대며 수평선을 바라보고는, 그것을 움켜쥐려는 듯 손바닥을 펼쳐 보인다.

온 정신을 집중하여 당겨보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필연적인 일이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에게 제아무리 강한 힘과 기술이 있다 한들, 전지전능한 신은 아니기 때문이다.

=====# 4-4 #=====

패배감을 맛보며 손을 내린 그녀는, 자신의 계획을 변경하기로 마음먹는다. 탑 대신 나선형의 계단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한 시간하고도 또 한 시간, 그로부터 한 시간하고도 두 시간. 마침내 일을 끝낸 그녀는 자신의 결과물이 만족스러웠다.

외형은 여전히 우스꽝스러웠고, 전에 것보다 훨씬 더 대충 만들어진 것 같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이 설계가 훨씬 더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그녀는 기특하다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새로운 건축물을 만든 그녀는, 한시의 지체도 없이 곧장 계단을 올랐다. 그녀는 한 걸음, 한 걸음씩 계단을 올라갔으며, 팔걸이의자가 그녀의 뒤를 따랐다. 혹시나 그녀가 탑에서 떨어질 때를 대비해서. 그리고 바닥 쪽의 계단을 끄집어 내어 위로 올려 보내는 방식으로, 꼭대기를 향해 계단을 이어나갔다. 머지않아 그녀는 끊이지 않는 건물의 계단을 오르는 자신을 발견했다. 옅은 구름들을 지나며, 정상을 향해간다.

때때로 잠시 앉아 쉬거나 '밤시간'동안 잠을 자야 할 만큼 여행은 길어졌다. 이윽고 4일 정도가 지났을 무렵,

마침내 천국이 눈앞에 보였다. 그리고 하나의 배움을 얻게 되었다. '천국'이란 것은 뚫을 수 없는 거대한 구름의 벽이다.

그녀는 바닥 쪽의 계단 조각이 하늘에 떠다니는 솜털에 걸려 더 이상 위로 올릴 수 없을 때까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그녀는 위쪽으로 올리려던 계단을 자신의 옆에 놓은 채 붙잡았다. 그리고 뭔가를 결심한 듯한 눈빛으로, 자신의 최후의 비행을 감행하기로 마음먹는다.

꼭대기 즈음에 다다르자, 그녀는 모아 두었던 파편들과 판자, 기둥들을 끌어와 자신이 딛고 설 발판을 만들었다. 그리고 머리 위의 구름을 향해, 손을 쭉 뻗었다. 하얀 무언가가 자신의 손길을 거부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밀어내었고, 최대한 발끝을 들어 더욱 높은 곳으로 손을 뻗어갔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곳이 막다른 곳임을.

"정말...?" 그녀는 크게 당황했다.

낙담에 빠지려던 그 순간, 그녀의 눈에 어떤 빛이 비쳤다.

그녀의 바로 오른쪽에서, 어떤 물체가 빛나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녀가 흩뜨려놓고 간 구름에서 떨어져 나온 빛나는 물체들이었다.

스무 개의,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아르케아가 모인 군체가, 그녀를 향해 오고 있었다.

붉은 소녀는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태양도 없는 아르케아의 하늘 속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땅에 선 그녀가 찾은 것이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이 세계의 첫번째 기억들이라는 사실을.

=====# 4-5 #=====

은은하게 떠도는 향냄새.

울려 퍼지는 마을 사람들과 어린이들의 목소리.

밝고도 활기찬 분위기.

요리하는 냄새, 빵 굽는 냄새가 거리를 휘감듯 퍼져 나와 그녀의 코를 한층 더 즐겁게 해준다.

올려다본 하늘은 선명한 햇살을 가리는 구름 한 점 없이 맑고도 푸르다.

이것은 새로운 세상의 기억. 그녀는 천천히 이 기억을 온몸으로 느끼며, 전부 받아들여 보기로 했다.

이 기억은 한창 장인의 심부름을 하던 어느 도우미 소녀의 것이었다. 어떤 장인 밑에서 일하던 도우미였을까?

장밋빛 머리카락의 소녀는 아직 이 기억에 대해 정확히 알아내진 못했다. 그렇지만 그녀의 진짜 관심사는 다른 데에 있었다.

이 세계는...

'저것 좀 봐...!"

...마치 일편의 환상과도 같았다.

닫히지 않는 입과 반짝이는 눈빛. 그녀는 눈앞의 모든 광경에 놀라워한다. 머리 위에는 집들의 지붕과 지붕을 잇는 털실들이, 알록달록한 종이를 받치며 하늘을 수놓듯이 걸려있다. 언뜻 보기엔 치렁치렁한 장식이 달린 전선처럼 보였지만, 이는 전선이 아니라 축제의 분위기를 띄워주는 장식물이었다. 판석이 깔린 거리와 붉은 벽돌집, 굴뚝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검은 연기는 그녀가 지금 서있는 곳이 오래된 옛 마을, 혹은 도시임을 알려주었다.

거리에 즐비한 가판대에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그란 태양 장식의 목걸이, 부적, 예쁜 반지들이 놓여 있엇고, 어떤 가판대에는 그녀가 예전에 다른 기억의 도서관에서 보았던 동굴의 모양을 본뜬 것들도 있었다. 마을 아가씨들의 옷차림은 그녀과 입은 옷차림과 비슷했다. 축제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너무 튀지도 않았다. 포근한 색들로 이루어진 이 알록달록한 세계에서, 때때로 시원하게 퍼지는 푸른빛의 장식들이 그녀를 매료시켰다. 그녀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던 중, 묘기를 부리는 거리 공연가들과 노래하는 음유시인들을 발견했다. 그들의 노래는 듣는 이들을 즐겁게 하면서도, 그 속의 가르침과 충고 또한 녹아들어 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전시된 과자들의 견본을 구경하며 약간의 시간을 보냈다. 사실은 약간이 아니라, 상당히 오랜 시간을 아무런 걱정도 없이 보내고 있었다. 견본을 구경하며 어떤 붉은 한 조각이 그녀의 이목을 끌었고, 곧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딸기 타르트'라고 불리는 음식이었다.

그녀는 도우미 소녀가 갖고 있던 동전을 내밀고 그것을 받았다. 한 입 베어 문 그녀는 이곳이 정말 그녀의 마음에 쏙 드는 멋진 곳임을 실감했다. 말로 다 못할 만큼 멋지다! 인생의 기쁨을 맛 보여주는 달콤한 한 조각과 즐기는 아름다운 풍경의 세계.

이 기억 속의 세계에서 그녀는 분명한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 세계를 더 알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 찬 그녀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가빠 오는 숨도 잊은 채 가벼운 발놀림으로 빙글빙글,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모든 길모퉁이를 돌아다녔다.

=====# 4-6 #=====

그녀는 문득 생각했다. '절대 서두르지 말자.' 이 마을의 구석구석까지, 자신의 눈으로 확실히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사각형 건물 밖에 걸린 표지판을 보며, 이곳이 신성한 장소임을 깨닫는다. 이곳은 신과 악마, 요괴와 같은 신적인 존재를 모시는 장소였다. 거리 공연가들이 보여주던 묘기들은 '환상', '이상', '불가능'으로 가득했다. 실제로 모든 공연가들 또한, 자신들의 묘기가 마법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생생한 빛을 띤 가루로 불꽃과 연기, 구름을 만드는 '주문'을 부리고, 물웅덩이에 말을 걸고 수면에 퍼지는 잔물결을 해석해 '운명'을 점치며, 그녀의 눈앞에서 빛을 이리저리 다루어 다른 존재와 '대화'하는 그 모습들은, 한눈에 도저히 어떤 비밀이 숨어있을지 알 방도조차 없었다.

이 세계는 풍요롭고도 믿음이 가득한 곳이었다. 기묘하고도 신비한, 그리고 명확한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

정취로 가득한 길을 산책하던 그녀에게, 기억이 살며시 귀띔해주었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마법들이 사실은 허구이자 인위적인 행위이라는 사실을. 매우 가치 있지만, 절대적인 허구로 이루어진 전통.

그녀는 산책 끝에 도시의 바깥 경계선까지 다다랐다. 정확히는 이 기억 자체의 경계선이기도 했으며, 그녀가 아무리 지나가 보려 해도 정해진 현실의 끝으로 나가는 것을 완강히 막는 방어막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가로막는 낮은 높이의 간이 울타리 너머로, 그녀는 파릇파릇한 언덕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인상적인 늙은 떡갈나무 몇 그루와 함께 맑게 빛나는 호수를 바라보며, 그녀는 어째서 자신의 믿음을 배척하는 확실한 증거가 있음에도 계속 그 믿음을 버리지 않는 이가 존재할 수 있는지를 몸소 깨달았다. 여기 있는 그녀 자신조차도, 유리 조각이 날아다니는 기이한 세계에서 온 존재였다. 그런데 왜, 이런 신비한 호수에 사기꾼 요정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받아들여지지 못할까? 섭리와 논리를 벗어난 생각들이 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걸까?

이 기억의 주인은 장인의 도우미였다. 그리고 그 장인은, 환상 속의 존재를 연구하는 마법사라 불리는 사람이었다. 도우미 소녀는 장인의 연구가 진전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추측하기에, 도우미가 장인을 도운 목적은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더욱 굳세어지도록, 더욱 나아지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붉은 소녀는 그 현실에 아쉬워하듯 농담 섞인 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었다. 참 재미있는 발상이다.. 푯말에 손을 올린 그녀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낀다. 그리고 그녀는 이곳으로부터 서쪽에 고대의 숲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녀가 먼 곳까지 돌아다닐 수 없었던 이유는, 아마도 이 기억이 작은 심부름만을 끝내는 기억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분명 다른 기억을 통해 다시 돌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이 문명과 마법, 공연의 땅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아르케아의 정상에서 맞이했던 그 유리 조각의 군체에는, 이 세계 이외에도 또 다른 다양한 세계들을 비추는 유리 조각들이 있었다. 어지러울 정도로 들뜬 마음으로 그녀는 자신의 앞쪽 옷자락을 잡는다.

정말 굉장해. 미소 짓던 그녀의 얼굴이 애타게 떨리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흥분과 즐거움이 밀려왔다.

=====# 4-7 #=====

스무 번쯤 됐을까? 아니면 더 지났을 무렵, 그녀는 세는 것을 멈추었다.

"좋...았어..."

투박한 나무판으로 만들어진 상자 앞에 앉은 그녀는, 숨을 내쉬며 섞여 나오는 혼잣말과 함께 상자의 윗면을 손바닥으로 털어내었다. 상자에 쌓여 있던 먼지들이 파도처럼 바닥에 떨어져 나갔다. 그녀는 앞면의 자물쇠를 풀고 상자를 열었다.

오늘의 그녀는 홍수로 소실된 북쪽 지방의 어떤 고성을 여행하는 기록 보관원이었다. 다행히도 상자가 외부로부터의 수분을 전부 막아준 덕분에, 안에 든 종이들은 멀쩡했다. 고대 시대의 경첩이 삐걱대는 소리와 함께 동료가 다른 방에서 그녀의 발견에 대해 묻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4시대의 두루마리에요." 그녀가 어깨 너머로 대답했다. 그녀는 두루마리 중 하나를 꺼내어 펼쳐보고, 나쁜 요정들을 상대하던 이들의 역사를 들춰보았다.

그녀는 옛 시대의 사람들이 요정들 때문에 많이 혼란스러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는 옛이야기들은 언제나 그녀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녀는 어제 이야기꾼으로 일하면서,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남들에게 들려주는 기쁨도 체험했다. 옛적의 어떤 남자가, 머나먼 호숫가에서 막대한 보물을 발견해 배에 실었다. 그가 다시 호수를 건너가려 하자 바람의 정령이 나타나 그의 배를 바람으로 뒤흔들었고, 지나가던 물의 정령이 파도를 일으켜 배를 뒤집어버렸다. 그 후로 그 둘은 떨어진 보물들을 나누어 가졌다. 이 이야기에는 조심성 없는 안일함에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 이야기가 이러한 생물들에게도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기록 보관원으로서의 하루를 끝낸 그녀는 아르케아의 세계로 잠시 돌아왔다. 그리고 세워뒀던 건축물을 임시 기지로 삼아 휴식을 취했다. 휴식을 끝낸 후 그녀는 학교 선생님의 기억을 방문하여 무질서한 자연과 갑작스러운 위험, 부주의한 사람들로 가득한 세계에서 아이들과 어른 모두의 안전을 지키는 규칙을 가르치는 수업을 하였다. 마법처럼 술술 풀어나가는 수업은 말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에게 큰 즐거움을 주었다. 기억은 아주 즐겁고 흥미로운 곳이었기에, 그녀는 끊임없이 조각들의 기억을 찾아갔다. 그녀는 아르케아 조각들의 세계에서 만나고 친해지는 사람들의 얼굴, 그리고 보고 듣는 그 모든 것들을 그녀의 기억에 분명하게 새겨나갔다.

더없이 놀랍고도, 어딘가 애수 어린 느낌의 경험이었다.

천국에서 찾은 모든 기억들을 찾아가, 그 기억들의 구석구석까지 최대한 빠짐없이 탐험한 그녀에게, 마침내 시끌시끌하고 북적이는 축제날, 정확히는 한밤중의 축하 행사만이 남게 되었다. 이는 출산과 풍작의 신에게 감사를 올리고, 악령들을 쫓아내는 일종의 의식이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두 신사 건축가인 랭커스터와 샤이아를 발견했다. 그들을 만난 마지막 기억으로부터 수년이 지난 시기의 재회였다. 그렇지만 둘은 그녀를 반갑게 맞이하며 설탕에 절인 사과를 주었고, 그녀는 둘도 없는 귀한 것을 받은 것처럼 행복했다. 그들이 일제히 하늘을 가리킨다. 천 개의 찬란한 불꽃들이 뽐내듯 불타오른다. 신들에게 바치는, 저마다의 삶과 생명들에게 바치는 불꽃들.

그러나 그녀는 이 놀라운 광경을 바라보며... 그리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부풀어 오르는 감동도, 차오르는 희망도, 새로운 경험에서 오는 기쁨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기억해냈다. 왜 모두가 한데 모였는지 알았다.

그녀는 익숙한 기억 속의 마지막 밤을 지새우며, 모든 것에 만족한 듯이 하늘을 칠하는 불꽃놀이를 바라보았다. 가슴을 쿡쿡 찌르는 아픔과, 눈가를 적시며 내리는 눈물과 함께, 그녀는 비로소 마음의 충만함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 4-8 #=====

포근하고도 마음 설렜던 기억들. 그런 기억들 속에서 여러 달을 지내며, 때로는 '영원히 여기 있고 싶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시작에는 끝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지만, 직접 눈으로 보고 싶지는 않았다.

다행히 과거로 남은 기억에서, 그녀가 볼 수 있는 미래는 없었다.

두 번 다시 되돌아갈 수 없을, 그곳에서의 추억들을 간직한 채, 그녀는 하얀 세상으로 돌아왔다. 지나버린 나날이 끝맺은 이야기, 끝나버린 삶과 사랑처럼 돌아올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후회는 없었다.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오면서, 그녀는 자신을 부르던 구름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모든 기억들에서 보낸 매 순간들이 전부 소중한 추억들이었음을 잊지 않으려 했다. 그토록 얻고자 했던 해답을 찾은 것처럼, 그녀의 마음은 행복으로 가득했다.

하늘은 갑자기 그녀를 향해 떨어져 내리려는 것 같았고, 임시 거처로 삼았던 구조물의 모든 조각들도 제각각 다른 속도로 떨어져 나갔다. 그녀는 무언가가 가슴을 찌르는 듯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리고 머리 위의 진짜 하늘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유리창으로 만든 발판에 선 그녀는 하늘에 반짝이는 유리 조각들을 바라보았다. 머리카락이 나부끼며 얼굴을 때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고, 그저 둥둥 떠 있는 조각들을 뒤로 새로운 밤하늘이 펼쳐지는 모습만 그녀의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여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이었다. 구름이 찢겨나가며 떨어지고 도망가듯 사라져가며, 그 자리를 대신하듯 심연과 같은 반짝이는 그림자들이 자리 잡았다. 그림자는 보랏빛의 수평면을 이루어 더 멀리 어둠으로 물들여갔고, 연보랏빛의 거센 파도가 요동치며 이를 뒤따르듯 퍼져나갔다. 그리고 별들이 나타났다. 낮이 끝났다.

가슴이 아파 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름 하나를 마지막으로 속삭이며, 손등으로 두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그녀의 유리가 마침내 두꺼운 구름의 마지막 장막을 뚫었다. 촘촘히 얽힌 잿빛의 풍경이 비로소, 가장 머나먼 부분까지 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그녀의 새로운 삶이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다! 그녀는 손을 맞잡으며 언젠가, 수평선 너머의 어딘가에서, 자신의 손을 잡아줄 누군가를 발견하리라는 확신으로 차올랐다. 그날이 오면, 자신의 손으로 대단한 일을 해내리라 굳게 믿으며.

다가올 그 순간까지, 그녀는 미래를 내다볼 것이다.

아르케아에서, 현재를 살아가며.


3.3. 레테



3.3.1. 해금조건


'''스토리 #'''
'''진행 순서'''
'''해금 조건'''
5-1
Ambivalen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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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테Genesis 클리어
5-2
Ambivalen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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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테Moonheart#Arcaea 클리어
5-3
Ambivalent-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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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테Romance Wars#Arcaea 클리어
5-4
Ambivalen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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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테Blossoms#Arcaea 클리어
5-5
Ambivalent-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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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테corps-sans-organes 클리어
5-6
Ambivalent-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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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테Lethaeus 클리어

3.3.2. Ambivalent Vision


=====# 5-1 #=====

그 절벽은 모든 것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삶의 마지막 날, 속쇠의 번뇌를 떨쳐버린 사람들은 새롭게 태어날 영혼들을 위해 자신들의 영혼을 두고 떠났다.

그 영혼들은 자유롭게 반짝이며 날아올랐다.

물과 같은, 형태도 거의 없는 영혼들. 모든 것이 희고 구름 낀 하늘을 통해 그 공명을 울렸다.

회색 풍경이 다였던 그녀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이 독특하고 화려한 광경을 감히 '경이로움'이라고 불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에게 그것은 평범한 일상이었다. 매일이 똑같았다. 그녀에게는 단지 하나의 '일'에 불과했을 뿐.

"혹시 왼쪽에서 떨림이 느껴지니?"라고 뒤에 있는 동료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바닥에 앉은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의 무릎 위에 놓인 넓고 얕은 검은 물그릇을 보고 그가 방금 점술을 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아니."라고 답한 뒤, "왜? 뭐라도 느꼈어?"하고 가볍게 이어갔다.

"지구가 살짝 흔들린듯한데..." 그가 말했다.

"음, 그다지 좋지 않은 징조인데, 한번 알아볼까?"

"응, 아무래도 균열이 생긴 것 같은데.."라고 그가 계속 이어말했다. "가서 처리하도록 해"

"알겠어." 짧은 대답은 남기고 그녀가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절벽에서 뛰어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주변 영혼들의 밀도 덕분에 땅으로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그녀는 자신의 블라우스와 재킷 그리고 치마를 팽팽하게 유지하고 있는 몇 가닥의 줄을 발견하고 잡아당겼다. 그러자 줄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드레스가 펄럭였고 죽은 자의 영향력도 둔해졌다.

땅에 무사히 착지한 그녀는 큰 낫을 꺼내어 피고 손잡이 부분에 올라타 목적지까지 날아갔다.

그녀는 균열을 닫고 그곳에 갇혀있던 영혼들을 위로했다.

그러고는 절벽으로 돌아와 다른 이상한 현상이 없는지 살펴보았다.

매일이 똑같이 반복됐다. 그렇다. 그건 그녀가 맡은 책임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때가 되면 그녀는 역시 또 다른 형태의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사실, '그 때'는 지난 지 오래였다.

그리고 이제 그녀에게 세상과 삶이란 형체 없는 기억일 뿐이다.

=====# 5-2 #=====

그러나 죽음이란 그런 게 아니지 않는가.

인간들은 죽음을 알고 싶어 한다. 아니, 정확히는 '사후'를 알고 싶어 하다.

그러나 '사후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태어나, 살고, 죽는다. 천국이라던가, 지옥...

연옥은 존재하지 않는 고대 인간들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면 이곳은 어디냐고? 그녀가 깨어난 이 세계는 어디일까? 무엇일까? 왜 그녀는 여기 '존재'하는 것일까?

이 질문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흠..."

등대 위에서 웅크리고 앉은 그녀는 사막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하얗다. 이것도 하얗고, 저것도, 모든 것이 하얗다... 그리고 조각이 보였다.

조각의 또 다른 이름, '아르케아'. 그녀는 턱을 괴고 왼쪽 방향으로 뻗은 다리를 향해 나른한 시선을 던졌다.

그녀는 조각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에휴..." 그녀는 긴 한숨을 쉬며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낫을 꺼내 들었다.

이 낫은 이곳에서 '원래'의 용도와 조금 다르게 쓰였고, 그녀는 주로 멀리 이동할 때 사용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앞머리를 반대로 매만지며 손가락 끝으로 그녀의 왼쪽 뿔의 앞부분을 긁었다.

문득 생각이 났다. 지금까지 그녀가 아르케아에서 본 사람 중 단 한 명도 뿔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는 것을.

이 세계에서 그녀의 유일한 관심거리는 조각들이었다. 그녀는 그 조각들을 분류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기록처럼 보관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그 기록이 있다 한들, 지금의 그녀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인종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인종... 인종이라... 인종?

인종이라고 분류하는 게 맞는 걸까? 그녀가 살아있을 때는 영혼을 가진 '인간'이었을까?

그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지만, '과거'의 그녀에 대한 궁금증을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좋았다.

지금으로써는 어떤 조각이 그녀를 떠나오고, 새롭게 맞이할 '집'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그녀는 등대를 떠나 새로운 방향으로 발을 내디뎠다.

=====# 5-3 #=====

그녀는 낫을 타고 다닌다.

빗자루 위에 앉은 위태로운 마녀처럼, 그녀도 낫 손잡위에 앉아 부서지고 비틀진 거리 위를 날아다녔다.

날은 그녀의 옆과 뒤에 꼿꼿하게 서서 그녀가 회전할 때마다 따라 움직였다.

낫을 조정하는 그녀의 움직임은 타고난 듯했다.

그녀는 그 위에 앉아 날아다니는 유리 조각들을 구경했다. 그중 한 조각은 길 위를 날아다녔다.

그녀는 이 세계에 도착한 이후, 한 번도 유리 조각 '무리'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매일 조각을 확인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오늘도 그렇게 조각을 확인하기 바빴고, 그녀가 이 세계에서 본 조각들에는 이전에 보았던 기억들로 채워져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했던 기억, 노래, 슬픔 그리고 낯설고 빠르게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들에 대한 기억...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는 기억들...

이 기억들은 다양하게 섞여있었고,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다.

그녀는 그 기억들 중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기억을 살펴본다.

수많은 기억들 중 특별한 한 가지의 기억을 찾는 건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찾는 조각 또한 그녀를 그리워하며 찾고 있었다.

한 유리 조각이 그녀에게 다가와 손바닥 위에 내려앉았고 그녀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 속에는 작은 수공예 피리가 완성되는 순간이 담겨있었다.

악기를 만드는 것은 몇 분에서 몇 달이라는 시간이 걸리지만,

피리를 만드는 이는 그 오랜 시간을 한순간으로 압축하였다.

그는 음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끔찍했다.

하지만 소리가 나긴 났다. 그거면 된 것이다.

이 기억은 고된 여정의 끝을 의미하는 동시에 더 웅장한 여정의 시작을 의미했다.

신기했다...

누군가와 무언가를 공유한 다는 게 말이다.

=====# 5-4 #=====

그 기억은 매우 소중했다.

사실, 그 조각을 '소중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이유는 언젠가 그 조각이 그녀에게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첫 반려동물, 누군가의 생존과 다른 이의 희생, 누군가의 첫 단어와 감동적이였던 연설,

누군가에게 중요했던 이야기와 개인적이었던 이야기... 이 모든 것들에 대한 기억들이 그녀가 산책을 하거나 낫에 올라타 어디론가 향할 때면, 항상 그녀의 뒤를 쫓아다녔다.

하지만 그녀는 그다지 조각들에 개의치 않았다. 단지, 이 신기한 세계의 안전한 곳에 소중히 숨겨두었을 뿐.

아르케아는 그럴 수 있는 곳이었다.

왜냐하면 아르케아의 세계는 다양한 기억들을 보관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가 아팠던 기억, 맛있는 걸 먹었던 기억, 말을 탔던 기억, 우유를 쏟았던 기억.

어떤 기억이든 기억할 수만 있다면, 이곳에서 찾을 수 있다.

아르케아에는 특별히 기억에 남은 기억들뿐만 아니라, 정말 모든 기억들이 보관되어 있었고,

그 기억들이 모여 남자와 여자의 모습을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이 누군가가 존재했음을 증명해준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기억이 잊혔을 때에는 기념비와 무덤이 세워졌다... 그녀에게 기억의 상실이란,

죽음보다 더 비극적이고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

그녀는 조용히 멈춰, 한때 마을의 광장이었던 곳에 발을 내디뎠다.

무수한 유리조각이 공중을 떠다니고 있었다.

뭐랄까... 그녀가 느끼기에 이곳은 공원 같았다.

비록 그곳에 있는 '식물'은 어딘가로부터 그대로 가져온 듯한 모양을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녀는 조각들을 독같이 아꼇다.

이 조각들은 그녀가 아르케아에서 '집'이라고 생각하는 조각들이었으며, 처음 그녀가 깨어났을 때는 없었다.

아마 흘러 들어온 것 같았다.

"흠..." 그녀는 코를 훌쩍이며, 조각들을 살펴보았다. 조각들은 사라지진 않지만, 가끔 방황하기도 한다.

그녀는 그게 걱정되었다.

아르케아가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형태로 존재하는 건 어떤 의미일까?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질문도, 답도 하지 않는다.

=====# 5-5 #=====

"어?"

그녀의 시선이 자신의 머리 위에 머물고 있는 아르케아로 향한다.

어디서 온 거지...?

갑자기 그녀에게 나타난 것은, 마치 예의 바른 온화한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아주 작은 기억이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거기 있었는지 확신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확실히 인식하게 되었다.

그녀는 기억을 더듬었고... 결국 기억해냈다.

영혼의 여울이 흐르고 있었던 어느 밤, 한 쌍의 조용한 고목 아래에 앉아 그녀는 동료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넌 이런 모순 안에서 계속 생각하는 법을 배울 거야. 너는 모든 삶이 소중하다고 생각하지만 다 지나가겠지,

하지만 반복되는 일에 너는 지루함을 느끼고 말 거야. 네가 삶의 소중함을 잊어버리는 게 아니야. 단지,

무언가를 아주 소중히 하다 보면 아무 감정 없는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거든."

"하지만 괜찮을 거야." 그가 흘러가는 영혼들을 보고 살며시 웃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무언가를 너무 소중히 하다가는 네 안의 눈물이 다 마르고 말 거라는 말이야. 네가 글렌에 갔을 때,

무엇이 네가 이 길을 걷게 만들었니?"

그녀가 답했다.

"그렇지? 다들 그렇게 말해. 걱정 마. 그것만 기억하고 있으면,

괜찮을 거야."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그녀를 진정시켰다.

그게 끝이었다. 그게 다였다. 그녀의 시선이 다시 머리 위 하늘로 향했다. 그것만 기억하고 있으면?

기억하라고. 기억하다니. 그게... 뭘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거지?

"기억이... 안 나."라며 그녀는 부드럽게 속삭였고, 그녀의 입 밖으로 한 글자, 한 음절이 흘러나왔다.

그가 맞았다. 느낄 수 있었다. 슬픈 깨달음과 함께 느껴지는 둔하지만 따뜻한 비통함이 그녀의 눈동자에 차올랐다.

그녀의 기억 중 한 조각이 그녀에게 다가왔지만 무참히 망가졌다.

자신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수많은 질문에 답할 수 없었던 그녀는 마음이 찢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 고통은 견딜 수 없었다.

자기 자신이 '완전한 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에 느끼는 고통을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가 존재할까?

유리 조각 구름 아래, 그녀는 눈을 지끈 감았다.

머리속을 비워버리려는 듯 웅크리고 앉아 자신의 머리를 주먹으로 계속 때렸다.

그녀는 울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쉽게 울음을 터트릴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나약한 모습을 보일수록, 이 세계는 끝까지 피하고 싶었던 것들을 자신 앞에 대려다 놓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울지 않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이다. 절대 그럴 순 없다. 절대...

하얀 세계에서 외로운 인도자였던 그녀는 스스로를 자신을 웅켜잡고 떨면서 심호흡을 했다.

그녀는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점점 안정을 찾아갈수록 그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만약에 질문에 대한 답이 죽음이라면...

차라리 잊어버리는 게 나았다...

=====# 5-6 #=====

그녀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고, 그녀는 조용해졌다. 예전보다 더.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나았던 그 기억은 왜 그녀가 지금까지 이 세계에 대해 질문을 하지 않았는지 알게 됬다.

처음에는 반감을 불러왔다. 오래된 기억은 쉽게 잊혀진다.

그녀는 잊지 않기로 다짐했지만, 사실 더 많은 것을 잊어버린 후였다...

그녀는 자신이 망가져버린 조각과 같다는 걸 깨달았다.

다 잊어버리자.

그녀는 오늘 다시 한번 거리를 해매던 기억들을 광장으로 인도했다.

계속 반복하다 보면, 습관이 될 것이고, 일상처럼 자연스러워질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아마도 이 지루함이 그녀 뒤에 숨어있는 감정의 동굴에서 그녀를 구해줄 것 같았기에,

그리고 그 비참한 감정으로 가득 찬 깊은 동굴은 그녀를 끊임없이 유혹했다.

그녀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슬픔뿐이라면 잊어버리는 게 나았다.

그녀가 아르케아 조각을 한데 모으고 있을 때, 한 조각이 하늘의 빛을 받아 유난히 반짝였다.

지나칠 수 없는 반짝임에 그녀는 조각으로 시선을 돌렸고, 망설임 없이 조각을 곁으로 가까이 끌어당겼다.

도로변에 웅크리고 앉은 아이가 비쳤다. 아이는 한 손으로 길가에 놓은 무언가를 덮고 있었다.

길을 가던 개미들은 그게 무엇인지 알고 싶었지만, 그녀의 손을 피해 길을 계속 갔다.

아르케아 조각을 모으던 인도자는 그 기억에 좀 더 시선을 담는다.

그리고 아이가 가린 것이 상처 입은 녹색딱정벌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잠시 생각한 후, 양손 안에 작은 조각을 담고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그게 다였다.

어린 관찰자는 잠깐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가 이윽고 히죽거리며 웃었다.

그 기억은 정말... 아무 의미도 없었다.

녹색딱정벌레는 잘 회복했을까? 기억 속 아이는 얼마나 살았을까? 얼마 동안 이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을까?

바보 같았다...

소녀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그녀가 여기에 있었다고 믿었던 이유를 잊기 위해서 다른 무언가를 기억해낸다는 게.

아르케아는 기억의 세계이다.

그 기억은 죽은 자들의 것일까?

아직 살아있는 자들의 것일까?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

누구의 것이든, 아르케아는 잊혀가는 이야기들을 모아둘 뿐이였다.

생각, 육체, 기념비 또는 땅이 간직한 이야기를 아르케아는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모아두었다.

그녀는 외로움을 느꼈다. 여기엔 함께할 동료도 없었으며 그녀가 깨어났을 때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아무도,

어떤 것도 그녀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동안 그녀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녀는 여기에 존재한다. 그녀의 옛 삶은 끝이 났고, 그게 다였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이 세계를 통제할 수 있었고, 책임감도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왜 영혼의 인도자가 되려고 했는지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 됬든...

망가진 지금의 그녀를 인도자로 만든 이유와 과거의 온전한 그녀가 생각한 이유는 같을 것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삶과 기억은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녀의 기억은 잊혀질 수 있지만,

아르케아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녀는 '영혼의 인도자'에서 '기억의 인도자'가 될 것이다.

그것은 그게 옳다고 생각했다.

여러분은 영원히 기억될 거에요.

제가 아르케아를 지키고 있는 한.


3.4. 시라베



3.4.1. 해금조건


'''스토리 #'''
'''진행 순서'''
'''해금 조건'''
6-1
Scarlet-1
[image]
[image]
Purgatorium#Arcaea 클리어
6-2
Scarlet-2
[image]
Scarlet Cage#Arcaea 클리어
6-3
Scarlet-3
[image]
VECTOЯ#Arcaea 클리어

3.4.2. Scarlet Cage


=====# 6-1 #=====

그녀는 이곳에 사람이 더 많을 거라고 기대했다.

왜 그런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주변은 온통 하얀 황무지로, 퇴색하고 파괴된 건물들만 가득 했다.

그녀를 제외하고는 생명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전에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한 채 이곳에서 깨어난 뒤로, 그녀는 며칠 동안 꽤 멀리 걸어다니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다녔다. 산산이 부서진 건물들은 그녀의 질문에 대답이 되지 못했다. 텅 비어 있는 건물들...

건물 그 자체는 그녀에게 낯이 익다는 사실을 알아냈지만, 그 이름, 그 모양, 그 쓰임새를 언제 알게 되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몇 번이고 생각을 되풀이했지만 결론은 언제나 같았다. 그녀는 "무엇"인가는 알고 있지만 "이유"는 몰랐다.

이 세상에 관한 보다 분명하고 무게감 있는 것들, 그리고 그녀 자신 안에 있는 것들을 위해 곰곰이 생각해 볼 만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그저 정신을 흐트러뜨리는 생각일 뿐일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렇게 말해야 했다. 여긴 정말 혼란스럽고 기이한 곳이네.

그녀가 기타 스트랩을 어깨에 단단히 매자, 다시금 질문이 떠올랐다. 언제 이 기타를 얻게 되었을까?

왜 이 세계에 기타와 함께 있었던 걸까? 기타 옆에서 깨어났지만, 그녀는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가 아는 것이라고는 줄을 튕기면 소리가 나고, 프렛을 넘어 줄을 잡고 있으면 다른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뿐이었다. 박자에 맞춰 기타를 튕기면 리듬, 멜로디, 화음, 조화가 생겨났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녀는 기타를 연주할 때면 위안에 가까운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 그녀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왜 알 수 없을까?

그녀 주변에는 물에 의해 오랜 시간 침식된 모래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 물이란 건 없었다.

액체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다. 어떻게 모래가 존재하는 것일까? 그저 걸을 뿐이다. 그녀는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왜? 그녀는 답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단 한 가지도 답을 알지 못한다.

어떤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지식을 "기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 그녀는 이런 것들을 "기억하고" 있는 걸까? 다른 것들은 전부 "잊어버린" 걸까? 그녀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 같지만, 어쩌면 이 기억상실증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무엇인지는 알고 있지만, 왜 알고 있는지 이유는 모른다는 것, 이것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그녀를 완전히 불안하게 했다. 마치 그녀가 불완전한 인간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마치 누군가가 피부, 근육과 뼈를 전부 제거하고 다른 용기에 자신을 담았는데, 다른 중요한 모든 것을 함께 담는 것을 깜빡한 것 같았다.

그렇게 공허하게 잊힌 존재가 된 것 같았다.

그녀는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만화경이 움직이듯 수많은 질문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형태를 바꾸며 맴돌았다. 그녀는 이 갑작스럽고 압도적인 전환과 관점이 만들어지는 풍경에 집중하도록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그러나 답을 얻었을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니였다. 어느 곳에서도 답을 얻을 수 없었다.

맨발로 떠난 이 여정에서(높은 굽으로 이동하기 불편한 지형이기 때문에, 일찍이 그녀는 신발을 목에 걸기로 했다). 그녀는 거의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사실, 많은 것을 볼 수록 자신이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녀는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그녀는 자신 주변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스스로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본 것들 대부분은 터무니없었다. 특히,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이유 없이 공중을 떠다니는 유리는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유리는 다른 사람, 다른 시대, 다른 세계를 비추었다. 유리에 비친 풍경은, 가장 낯선 방식으로 기억을 상기시켰지만, 그녀에게는 의심의 여지없이 친숙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친숙함 역시 느낌일 뿐이였다. 유리는 결코 그녀는 비추지 않았다.

기억할 수 있는 과거는 한 장면도 나오지 않았다. 이것들은 기억이 아니었다...

최소한, 이 아르케아는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녀의 감정에 변화가 생겼다. 변화와 더불어 걱정, 이질감, 혼란, 희미한 외로움,

그녀 안의 무언가 중요한 것이 사라져버린 것 같다는 느낌이 점점 커졌다. 그녀로서는 달갑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걷는 것은 언제나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녀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그녀의 안이 아니라, 그녀의 바깥에.

=====# 6-2 #=====

그러나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서서히 다가오는 느낌을 한동안 무시하는 것뿐이었다.

결국, 그녀는 비교적 매끄러워 보이는 돌 위에 앉아 불안한 듯 손으로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뒤를 돌아보니, 희미해지는 모래 위에 지평선까지 길게 찍힌 발자국을 볼 수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모래가 있을 수 있을까? 그녀는 점점 모래가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잠시 생각한 후, 그녀는 기타를 가져와 다시 손을 댔다. 그러자 다시금 그 위안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그녀를 달래주는 부모님, 혹은 친구같은 느낌. 한숨이 흘러나왔다.

정말로, 그녀가 계속 나아가는 데 필요한 건 이것뿐이었다.

생각하지 않고도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손가락으로 기타의 줄을 튕기자, 조용하고 간결한 화음이 그녀의 멜로디에 반짝이는 조화를 더했다. 그녀는 어떻게 걷는지, 어떻게 기타를 연주해야 하는지를 기억해낼 수 있었다. 어떻게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두 가지 행동을 해낼 수 있을까, 그녀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 유쾌한 기분이 사라지며 입가의 미소 또한 사라졌다. 단어들이 그녀의 혀, 치아, 입술을 통해 흘러나와 이 노래에 몸을 맡기려고 했다. 처음에 그 단어들은 흩어지고, 소용돌이치며 인식할 수 있는 하나의 온전한 그림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무색의 새장같은 이 하얀 세계 속에서, 검정색과 진홍색 옷을 입고

그녀는 그렇게 노래를 불렀다.

점차 그녀가 내뱉는 단어에는 힘이 실렸고, 그녀의 내면을 휘젓던 감정은 거칠고 강렬히 쌓여갔다.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본능적인 단어들은 새로운 것도, 오래된 것도, 잊혀진 것도 아니었다.

언제나 그녀와 함께였던 그 단어들은 이제 그녀의 가슴을 벗어나며 발톱을 세우고 비명을 질러 댔다.

그저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이 죽어버린 세계의 가장 먼 곳까지 울려 퍼질 수 있도록 소리치고,

울부짖어야만 했다. 그래서 그녀는 할 수 있는 한 큰 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혼란에 대해서 소리쳤다. 알지 못하는 것, 이 암울한 광경, 작은 유리 조각에 잠시 스쳤다 사라지는

여러가지 기억에 대해 소리쳤다.

그리고 그녀는-

공포에 관해서도 소리쳤다.

연주를 하는 그 중요한 순간, 그녀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깨달았다.

이 공허한 세계, 텅 비어버린 기억들...

이것들은 그녀를 두렵게 하고 있었다.

그녀는 누구였을까? 이 조용한 장소는 무엇이었을까?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하지만 그녀는 이미, 그녀는 절대 대답을 얻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곳이 아니야.

목소리가 잠시 끊겼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폐를 한계까지 밀어붙이며 소리를 질렀다.

손가락은 여섯 개의 줄 사이를 미친듯이 오갔다. 그녀는 기타의 힘과 울음, 비명, 진동이 뒤섞인 소리를

마음속으로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녀의 영혼과 음악이 거세게 휘몰아쳤다. 가사는 격정적인 감정을 담았고, 폭발 직전의 공포는 뜨거운 열기가 되어 눈까지 차올랐다.

어떤 이유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이 뜨거워진 폭풍은 그녀의 기분을 조금 낫게 만들어주었다.

덜 혼란스럽고, 덜 두렵게.

시간이 흐르자 그녀의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 흩어졌다. 마지막으로 몇 번 더 줄을 튕기고 줄을 손에서 떼자 그녀가 할 일이 끝났다. 그녀의 노래는 밝은 하늘 속으로 사라졌고, 이제껏 일어났던 일의 흔적 또한 텅 빈 것 같은 그녀의 기억 속에 자리잡았다.

그녀는 자신의 노래를 가져가버린 천국을 보고 싶지 않은 듯, 다른 손을 들어 눈가를 문지르며 몸을 떨었다.

그리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놀랍게도, 그것은 진심을 담은 웃음이었고, 일을 잘 끝낸 것에 대한 미소였다.

드레스 자락에 손을 닦으며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녀는 이곳이 싫었다.

=====# 6-3 #=====

세계가 더이상 혼란스럽지 않다는 것은 아니였다. 덜 위협적이거나, 덜 공허하거나, 덜 가혹해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 두려움이 익숙하다고 맹세할 수 있었다. 이 두려움이 다리를 약하게 만들고, 도망가게 하고, 머뭇거리게 하고, 또 조종한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그녀가 본능을 따라 그 연주 했다고,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 불렀던 노래일지도 모른다.

이전과 비슷한 방법으로 이 두려움을 외쳤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최소한 그녀는 두려움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제 그 뒤틀린 작은 감정을 더 단단히 움켜쥐고 있었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서 제정신을 유지하려면, 그 감정을 견제하고 그 감정이 자신을 조종하지 못하도록 해야만 했다. 그래도, 그 감정은 계속 그녀와 함께 할 것이다.

숨을 한 번 내쉬고, 몸을 돌려 앉으며 돌 위에 조심스럽게 기타를 내려놓았다.

그 순간, 그녀는 무언가 부드럽게 쨍그랑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안주머니에 있던 작은 천주머니가 모래 위에 단단히 자리한 돌 위로 떨어지는 소리였다.

여러 개의 바늘, 작은 가위, 골무, 실타래 몇 개와 계량기가 들어있는 천주머니였다. 반짇고리.

처음 눈을 떴을 때부터 함께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이 반짇고리가 자신의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처음 주머니에서 이 반짇고리를 찾았을 때,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왜 이걸 가지고 있는지 이유를 알 길이 없었다. 반짇고리의 모든 물건은 당연히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이었지만,

그녀가 들고 있는 기타처럼... 어디서부터 들고 있었는지를 설명해주는 아주 작은 힌트도 없었다.

하지만 주머니에 반짇고리를 다시 넣기 위해 손을 뻗었을 때, 그녀는 드레스의 소매를 보고 얼어붙었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소매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녀는 소매의 그 바늘땀을, 모든 주름을 알고 있었다.

정확한 색상을 알고 있었고, 그 소맷자락을 만들어낸 실이 바로 그 반짇고리의 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그녀는 논리적으로 쉽게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석연치 않았다. 경험과 지식 사이의 잔인한... 정말 괴로울 정도로 잔인한 분리.

그래도 이제... 그로 인한 공포에 스스로를 압도되게 둘 수는 없었다. 그녀는 이를 인식하고 사용할 것이다.

기억해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중요한 사실은 그녀가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세한 목표는 확실히 도움이 될 것이었다. 아직 목표를 세우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곧 그 목표를 찾아낼 수 있겠지.

방금 전 그녀를 얼어붙게 했던 반짇고리를 떠올리며 길을 다시 떠나려 할 때, 소리 없는 웃음이 그녀의 얼굴을 스쳤다. 꽤 편리한걸? 이 무의미한 여정에서 최소한 옷을 깨끗하게 유지할 수는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그녀의 복장은 확실히 전혀 실용적이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그녀가 가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가 가진 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 그녀가 가진 것이었다.

이 기억의 황무지에서, 기타와 반짇고리는 그녀가 가진 전부였다.

알고 있다는 것은 작은 도움이 되고, 그 작은 도움은 그녀가 더욱 멀리 갈 수 있게 했다.

...얼마 가지 않아, 무언가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모래 위의 발자국...

그러나 그녀의 발자국은 아니었다.

그녀가 온 길을 가로지르며 왼쪽으로 향하는 그 발자국은 확실히 그녀의 발자국과는 다른 크기였다.

그 발자국들이 향한 방향을 바라보자, 몇 개의 작은 언덕을 넘어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진심 어린, 친숙한 웃음이 그녀의 얼굴을 다시금 스쳐갔다.

하...

결국 그녀의 노래를 들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3.5. 앨리스 & 테니얼



3.5.1. 해금 조건


'''스토리 #'''
''' 진행 순서'''
''' 해금 조건'''
7-1
Ephemeral-1
[image]
[image]
Alice à la mode 클리어
7-2
Ephemeral-2
[image]
[image]
앨리스 & 테니얼Eccentric Tale 클리어
7-3
Ephemeral-3
[image]
앨리스 & 테니얼Alice à la mode 클리어
7-4
Ephemeral-4
[image]
앨리스 & 테니얼Alice's Suitcase 클리어
7-5
Ephemeral-5
[image]
앨리스 & 테니얼Jump 클리어
7-6
Ephemeral-6
[image]
앨리스 & 테니얼Felis 클리어

3.5.2. Ephemeral Page


=====# 7-1 #=====

숲과 꽃밭 사이의 어두운 정원.

유리의 모서리 부분에 은빛 거미줄이 반짝입니다. 잠깐, 유리인가? 돌에 가깝지만, 이 특별한 세계는 다른 세계보다 더 이상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어딘가에서부터 공기를 가득 채워 떠다니는 조각을 통해 온통 폐허로 변한 하얀색 공간에 다양한 색의 기억들을 투사하며 현실이 번져 옵니다. 자수정으로 만들어진 기둥이 온 층을 가득 채우며 쏟아져 내리는 빛을 받아 빛나고 있습니다.

그녀는 연녹색의 작은 테이블 앞에 놓인 연녹색의 예쁜 의자에 앉아, 옆에 놓인 여행용 캐리어에 손을 가지런히 올려놓았습니다. 가죽 캐리어의 끝부분부터 그녀의 손가락이 미끄러져 내려옵니다.

이곳에 다른 사람은 없습니다.

"우린 떠나야 해. 앨리스."

"아무도 없어." - 하지만 최소한 한 명은 있군요.

언제나 그렇듯 한 잔의 차를 손에 든 그가 있었습니다. 앨리스가 눈을 돌리기 전에 다시 차를 따르면서 말입니다.

그녀는 손바닥을 캐리어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들었어?" 라고 앨리스가 묻자,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귀 기울여 듣는 듯 했지만, "아무것도 안 들려."

다른 팔을 들어올려 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올려놓은 채로, 앨리스는 앞으로 구부정하게 앉아 손에 턱을 괘며 말했습니다. "맞아." "이거... 아니면 이것들... 그래, 꽤 그럴듯해."

"그게 무슨 상관이야?"

"언제가 마지막이었어!?" 앨리스는 목소리를 약간 높이며, 그의 질문이 터무니없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침묵과 아름다운 풍경... 정원을 좀 봐, 테니얼. 풍경이 정말... 멋져." 앨리스는 캐리어에서 손을 떼고 자신의 앞에 희미하게 보이는 어두운 숲과 그늘의 점점이 찍히듯 피어난 하늘색 꽃을 가리켰습니다.

"나는," 찻잔을 손에 든 테니얼은 스스로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잘생겼지."

앨리스의 눈썹이 짜증나는 듯 구겨졌습니다.

"주둥이." 앨리스는 손으로 테니얼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죠. "닥쳐."

"진짜 무례해. 너무 무례해." 테니얼이 답했습니다. 앨리스는 머리를 저으며 투덜거리며 의자에 그대로 기대 앉았습니다.

그녀, 앨리스가 이 세계에 갇혀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없게 된 지 정확히 얼마나 지났을까요?

영원히, 성가신 테니얼은 "난 너랑 떨어질 수 없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계속 함께 해왔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그 자체가 고통이라는 것을 증명하기도 합니다. 그녀는 지금 그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검정색과 주황색의 나비가 날개를 팔락이며 테니얼의 눈 앞을 지나가고, 그 후 테니얼은 찻잔 속을 잠깐 바라보더니, 그대로 컵에 담긴 차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땅에 쏟아버렸습니다. 평소와 같은, 정말로 평범한 습관. 심지어, 테니얼은 이런 행동을 계속해왔습니다. 테니얼이 입을 열었습니다.

물론, 남은 차를 핥으려는 것이 아니라, 말하기 위해서. "우리는 정말 가야 해." 라고 앨리스가 먼저 선수칩니다. "네가 말하려던 게 이거 아니니, 응?"

"이해한다면, 신경 좀 써." 테니얼이 답했습니다.

앨리스는 테니얼의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앨리스가 보기에 테니얼이 아무런 이유 없이 그런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하얀 수평선을 향해 테니얼을 따라갑니다. 그들이 지나가자 기억이 주변에서 흩어집니다. 전부 녹아서 흘러내리며,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변하는 거죠. 딱 하나, 앨리스의 어깨를 따라 날아다니는 나비만 빼고요. 그리고 방금, 테니얼이 나비를 다시 보았습니다. 그러면 이 나비도 사라지겠지요.

모든 기억들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 7-2 #=====

그래서, 이곳은 어디일까요? 그리고 “현실”이란 무엇일까요?”

이것 하나는 분명합니다. 앨리스는 세계 사이를 걸어간 적이 있습니다.

여전히 그러고 있지만요. 앨리스에게 있어 이런 삶은 먹고 마시는 것만큼이나 정상적인 삶이지,

최근에 이곳을 찾아낸 후로 필요로 했던 것은 아닙니다. 아르케아 이전의 과거에서, 앨리스가 보았던

새로운 장소와 찾아낸 이상한 식물과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환상의 생물들과 마법 역시, 누군가 한 번이라도 상상했던 모든 것들을 앨리스는 직접 보았고 기록했습니다.

“차원을 넘나드는”백과사전에 대한…? 그게 뭐든간에 말이죠(지금은 잃어버린 듯 합니다).

이런 일의 특성상 앨리스의 사명을 신선하게 느끼도록 해 주지만... 정말 끔찍할 정도로 독특한 곳 이 세계는, 더 먼 세계의 기억들이 이곳에서 춤을 추듯 하고, 단순한 이미지로만 나타나지도 않습니다.

다른 곳의 소리도 들을 수 있고... 이국에서 피어난 자연의 향기를 맡을 수도 있고... 이러한 기억들이 마치 실제인 듯 맛보고 만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질문하죠, 현실은 무엇일까요? 아르케아와 같은 세계에서, 앨리스는 이런 질문이 매우 중요한 질문이라고

느꼈습니다.

만약... 이 모든 걸 제한된 시간 동안이나마 전부 경험할 수 있다면, 이건 환영일까요, 현실일까요?

여행에는 도가 튼 앨리스에게도 이런 세계에 대해 알려주는 기억은 없습니다.

이런 기억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래서 그녀는 함께 걷고 있는 이에게 맥락도 없이 갑자기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래서... 현실은 뭘까, 테니얼? 여기가 현실이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는 거야?”

컵에 차를 따르며 테니얼이, “이게 진짜야.”라며 말을 이어갑니다.

“네 모든 감각이 이게 현실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왜 환영이나 인공적인 걸 궁금해 해?

네 손으로 직접 만질 수 있으면서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거야, 앨리스? 이제 충분한 것 같은데.”

“좋아.” 이제 끝이라는 어조로 앨리스는 흐름을 끊었습니다. 그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소용이 없으니까요.

“끝났으면 저기 좀 봐,” 테니얼이 땅을 가리키며 말한 곳으로, 캠프파이어에 대한 기억 근처를 걸어가,

테니얼은 잔 안의 차로 불꽃을 꺼뜨렸습니다. “어떤 악마가 이딴 짓을 하는 거야?” 테니얼의 푸념.

앨리스는 회의적으로,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라고 반응했지만,.

“내가 파티를 망쳤어...” 옆에서 여전히 중얼거리는 테니얼.

“이 기억도 곧 사라질 거야, 그러니까 침울할 것도 없어, 테니얼.” “우리가 보고 있는 게 현실이야, 앨리스. 네가 멈춰서 무언가를 바라보면 그것도 멈추니?

물론 아니지. 불꽃은 멈춰버렸지만.”

“아무 곳에나 차를 흘리고 다니는 버릇은 고칠 필요가 있어.”

“사과할 거야.”

“아무도 볼 수 없다고! 아무도 여기 없단 말이야!”

테니얼은 패드와 펜을 꺼내며 히죽히죽 웃어 댑니다. 그녀는 끙 소리를 내고는, 테니얼이 무엇을 적는 동안

웃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왜 그녀가 테니얼에게 질문을 하지 않았는지 기억나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정말 드물게 최근에 생겨난

순간이죠. “최근에”, 앨리스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처음에는... 달랐을까요?

그녀는 잠시 깊은 생각에 빠졌지만, 두 사람이 걸으며 나타나는 새로운 풍경이 앨리스의 주의를

흐트러뜨립니다. 그녀는 궁금해하던 것도 잊었죠.

그렇게 하루가 가고 있습니다.

=====# 7-3 #=====

테니얼, 그는 정말로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테니얼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죠, 자신의 몸이 숨을 쉴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도 숨쉬는 법을 아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니면 음식이 필요 없어도 먹는 법을 알며, 물이 필요 없더라도 마시는 방법을 아는것처럼...

앨리스의 옆에서서 그녀를 지켜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뿐입니다.

현실에는 원초적이며, 거의 완벽히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 있음에도 말이죠.

존재한다는 것은 여러분이 보고 느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고 느끼는 것을 안다는 것은 정말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의미하죠. 그렇게 믿으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이런 마음 없이,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스스로를 공포의 먹잇감이 되도록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니면 아마도, 더 나쁘게

말하자면 들을 필요가 없는 진실을 알게 되거나요.

진실은 여러분에게 상처를 줄 겁니다.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 끝이 있고,

그 끝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 그런 진실, 혹은 진실 비슷한 그런 것은 사람을 정말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그러나, 테니얼 자신은 거짓말은 하지 않습니다. “그”가 언제나 그녀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가 그녀에게 언제나 자유를 주었으며, 즐겁고, 새롭고...다양한 세상으로 안내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그녀의 미소 외에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무거움이 자리하고 있고, 그는 앨리스가 더 많은 것들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볼 수 있는 것을 넘어서 말이죠.

“...네가 숨긴 거야?” 두 사람이 떠나온 정원의 기억에서 가져온 꽃 한송이를 앨리스가 건네 주자, 그가

물었습니다.

“너도 알잖아, 내가 이런 색 좋아하는 거... 옅은 색...” 앨리스가 애정을 담아 바라보며 대답했습니다.

“다른 세계에서 봤던 하늘같은 색이야.” 앨리스가 말했습니다. “이름이 뭘까?”

그는 알고 있습니다. “나도 몰라.” 테니얼이 말합니다. “전부 그랬듯이, 사라질 거야. 가지고 있을 필요 없어, 앨리스.”

“... 필요는 없을 지 모르겠지만, 난 마음에 들어.” 앨리스는 테니얼에게 이렇게 말했고,

테니얼은 이미 알고있는듯한 말투로. “이건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 라고 답했습니다.

이윽고 테니얼은 시선을 돌렸습니다. 이유도 없이, 그대로 차를 쏟아버립니다.

테니얼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죠.

앨리스가 맞다는 사실을요. 그건 사라지지 않을 거고, 테니얼이 가장 걱정하는 사실이었습니다.

테니얼이 앨리스에게 말했습니다, “좋을 대로 해... 앨리스.”

그러자 그녀는 귀 뒤에 꽃을 꽂으며 농담하듯 말했습니다, “그럴 거야!”

앨리스는 거만한 모습으로 선언하듯 말했습니다. “넌 내 삶을 결정할 수 없어!”

테니얼은 가슴을 두드리며 허공을 바라보았습니다.

안 됐지만...

그 말 역시 그녀가 전적으로 옳았으니까요.

=====# 7-4 #=====
=====# 7-5 #=====
=====# 7-6 #=====

[1] 2.6.2 업데이트 이후 '''"2-F!t<A\bPDbN_"'''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열이 적혀있다.[2] Ascii85로 코드를 풀면 '''"5YWmU4s2oLI"'''가 나온다[3] 한국어 기준으로 이 부분에 \\가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