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 st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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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現 디나모 키예프의 직접적인 전신.[1] 나치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위대한 스포츠맨 정신을 지켜낸 일화로 유명하다.
2. 결성
FC start의 전설적인 일화를 소개한 블로그에서 내용을 참조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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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당시 나치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 디나모 키예프 선수들은 독일군과 교전을 벌이며 열심히 싸웠지만 결국 역부족으로 패전하고 도시가 점령됐다.독일계 출신으로 빵집에서 일하던 미콜라 투르세비치가 다시 축구를 하고싶은 마음에 먹고 살기위해 근근히 지내던 선수들을 다시 설득하여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로 FC start를 결성했다.
3. 죽음의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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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이 어찌나 좋았는지 경기를 할때마다 그 지역 일대에서 그들을 이긴팀이 없었고, 이들의 경기를 지켜보던 나치도 나치군인팀들과 시합을 벌였지만 매번 완패를 하였고 이 일들은 슈츠슈타펠의 귀에 까지 걸려서 나치내에서도 최고의 전력을 자랑하는 공군팀'''flakelf'''을 불러 축구 시합을 벌인다.
역시 이 경기마저 이겨버린 선수들을 상대로 열받은 슈츠슈타펠 간부는 재경기를 제의하고 그 경기의 심판을 맡았는데 경기전 FC start 라커룸으로 가서 경기를 할때 우리의 방식대로 할테니 항의하지 마라,(사실상 맘대로 한다는 뜻) 이긴다면 어떻게 될지는 상상에 맡긴다, 라는 협박을 날린다. 선수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경기전 나치의 깃발로 장식된, 무장을 한 나치 군인들이 지켜보는 경기장내에서 나치 경례도 하지않고 경기를 한다.
축구를 빙자한 나치선수들의 무자비한 태클과 폭행에 전반에 한골을 먹으며 하프타임이 되자 경기를 주선한 간부는 선수단에게 지금도 늦지않았으니 경기를 포기하고 몰수패를 한다는 조건에 승낙하라고 협박하지만 선수단은 당당히 싫다며 협박을 거부한다. 후반이 시작되어도 나치 선수들은 무자비한 반칙과 폭력축구를 하지만 선수단의 의지를 막을수는 없었고, 결국 4:2로 극적인 승리를 한다. 경기 후 화를 억누르고 기회를 한번 더 준 슈츠슈타펠 간부는(거의 최후통첩)나치군으로 결성된 루크팀과 재대결을 한다.
이 경기에서 FC start는 '''8:0'''이라는 엄청난 스코어로 승리를 장식하며 슈츠슈타펠 간부를 결국 열받게 한다.
결국 게슈타포를 시켜 선수전원을 체포,취조실로 끌려가서[2] 혹독한 고문을 한다.결국 FC start의 결성을 주도했던 미콜라가 고문끝에 죽고, 나머지는 결국 시레츠 수용소로 끌려가 1943년 반독 파르티잔들과 결투끝에 4명이 죽었고 나머지 선수는 항전을 거듭하며 종전이 된후 고향에 돌아올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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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디나모 키예프 경기장에 세워진 FC start 기념탑으로 디나모 키예프 투어담당자는 구장을 들린 사람들과 원정팀에게 이곳을 들러보라고 권유를 한다고 한다.
4. 엉뚱한 왜곡
사랑의 학교에 나오는 협박을 받고 고의로 경기를 져야 하는데, 결국 이기고 국민에게 기쁨을 준 후, 축구장에서 사살당하는 선수들의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소 과장된 것이라는 주장도 적지 않지만, 어쨌든 우크라이나 전체적으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일화이고 아직도 디나모 키예프 선수들은 이들을 전설로 여기고 존경을 하고 있다.
이원복의 사랑의 학교에서는 폴란드선수들로 나온다. 이원복이 은근히 이런 오류가 많기 때문에 실제로 착각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경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팀원들이 이런저런 핑계로 강제수용소에 끌려갔다가, 마침 수용소에서 발생한 폭동을 틈타 일부 탈출에 성공해서 '''유격대에 합류'''한 것. 실제로 집단처형 명령이 있었는지 여부는 분명치 않으나, 많은 팀원들이 수용소에서 죽은 것은 사실이다.
5. 우크라이나 독립 이후~유로마이단 이후의 평가
그럼에도 1991년 우크라이나가 소련에서 독립하면서 반소성향이 심한 서부에서는 이 일화를 '''소련의 프로파간다'''라며 부정하는 여론이 생겼으며(특히 극우 수정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유로마이단 이후로도 우크라이나 서부의 네오 나치들은 쭉 소련시절의 거짓말이라고 부정하면서(...) 급기야 위키피디아 항목까지 반달하고 앉아있다. 사실 이건 설명하기가 좀 복잡한데, 대충 요약을 해본다면 우크라이나에서 독립운동을 한답시고 나치의 꼬봉 노릇을 하던 인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냉전치하에서 미국과 영국의 지원으로 자유의 투사로 둔갑되고[3] , 이러한 게릴라전이 좌절당하자, 이후 서방각국으로 도주하여 우크라이나 이민자 사회에서 주도권을 차지하는데 성공을 거두면서 우크라이나 극우 민족주의의 토양을 닦아냈고, 소련 붕괴이후 우크라이나에 이러한 사상이 역수입되면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 즉 우크라이나 대기근처럼 진영논리에 따라 평가가 엇갈려버리는 일이 일어난 셈.
6.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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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일화를 모티브로 헐리웃에서 81년에 승리의 탈출이 개봉되었다.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는 영화로 주연은 실베스타 스탤론이고 축구영화라서 그런지 유명축구선수들이 총출동한 영화였다.이중에는 펠레도 있다. 작중에서는 나치하의 파리를 배경으로 다국적 포로[4] 들이 나치와의 축구대결에서 승리하고 무사히 경기장을 탈출한다는 내용이다.
논스톱의 자우메 콜렛 세라가 리메이크 연출을 맡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