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복

 



'''이원복
李元馥 | Rhie Won-bok[1]
'''
<colbgcolor=#0066a2><colcolor=#fff> ''' 출생 '''
1946년 10월 3일 (78세)
충청남도 대전부(現 대전광역시)
''' 국적 '''
[image]대한민국
''' 직업 '''
만화가, 삽화가, 교수
''' 가족 '''
아내 민서영, 슬하 1남 1녀
''' 학력 '''
뮌스터대학교대학원 서양미술사 석사
''' 대표작 '''
먼나라 이웃나라
[image]
작중 오너캐. [2]
1. 개요
2. 학력 및 경력
3. 활동과 작품 특징
3.1. 일생
3.2. 다양한 장르 → 교양물로 성공하다
3.3. 편향적인 면
3.4. 주관적 성향
3.5. 그 외
4. 성향 변화
4.1. 진보 성향 당시
4.2. 우파로의 전향
4.3. 역사관 논란
4.4. 프로파간다 활동
4.5. 기타 성향 변화에 대한 이야기
5. 논란
5.1. 오류, 편향적 사실 전파
5.2. 트레이싱
5.3. 일본 만화 비판
6. 와인사업 시작
7. 작품 목록
7.1. 이원복이 직접 만든 작품
7.2. 이원복이 기획/구성한 작품
7.3. 저서
8. 수상 경력
9. 관련 문헌
10. 관련 문서


1. 개요


李元馥, Rhie Won-bok[3]
대한민국만화가일러스트레이터. 만화가로 활동하면서 덕성여자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석좌교수로 있었고, 이후 동 대학 총장을 역임했다. 본관은 한산.[4] 만화가로서는 상당한 엘리트 출신이라 할 수 있는데 형제들도 대부분 대학 교수[5]여서 교수 집안으로 주간지에 소개된 적이 있다.
칠순이 넘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특히 그의 생애에 있어서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르는 '업그레이드 먼나라 이웃나라'는 한국 독자들의 애정을 받고 있다.

2. 학력 및 경력


  • 학력
    • 대전 선화초등학교
    • 동대문초등학교
    • 경기중학교
    • 경기고등학교[6]
    •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공학과[7] 중퇴[8]#
    • 독일 뮌스터대 Diplom Designer 학위 취득
  • 경력
    • 덕성여자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구 산업미술학과) 교수 (1984~2013)
    • 스포츠서울 신춘문예 만화평론 심사위원 (1991/1995/1997~1998)
    •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윤리위원 (1992~1993/1997~1999)
    •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제2심의위원 (1997~1998)
    •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회장 (1998~2000)
    •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 캠퍼스 객원교수 (1999~2001)
    •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 위원 (2009~2013)
    • 덕성여자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석좌교수 (2013~2015)
    •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 (2013~2015)
    • 덕성여자대학교 총장 (2015~2018)

3. 활동과 작품 특징


[image]
독일 유학시절 이원복 교수. [9]
학습 만화의 대명사로 알려진 작가이지만, 사실 1962년부터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두루 그려온 '''초베테랑 작가'''. 초창기의 만화는 미국 만화의 영향을 받다가 1970년대 초~중반에는 치바 테츠야의 영향을 받은 극화풍 일상드라마였다. 하지만 1975년부터 독일의 뮌스터 대학으로 유학을 가면서 작풍이 바뀌고, 오늘날 잘 알려진 소위 '이원복 스타일'의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사실 현재의 작풍은 유럽만화를 대단히 많이 참조한 스타일이다. 즉, 일본 스타일 → 유럽 스타일로 바꾸고 대박이 터진 셈. 유학을 갔다 온 데다가 유럽 생활을 오래 했으므로, 리즈 시절에는 국내에서 '유럽통'으로 알려졌다. 과거 유럽 방문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에서도 패널로 등장한 적이 있다.
만화평론가 박인하 청강대 교수의 <인물과 사상> 2004년 2월호 비평에 따르면, 흔히들 이원복표 만화 그림 스타일은 2~3등신 캐릭터와 과장된 효과 기호가 첨부되어서인지 '명랑만화'라고는 하지만, 이원복표 그림체랑 기존 명랑만화의 스타일은 천지차이이다. 예컨대 선배 길창덕이나 신문수, 박수동 같은 토종 명랑만화가들이 그린 선은 자유롭고 상황에 따라 왜곡되고 생략되나, 이원복표 만화에 나오는 등장 인물들의 손은 어김없이 다섯 손가락이다. 예컨대 토종 명랑만화가들이 그린 등장 인물들의 손은 동그라미가 되든가, 손가락이 3개가 된다든지, 2개, 5개 등으로 종횡무진하게 변한다. 팔의 길이 역시 이원복표 캐릭터들은 동일한 비례로 그려지지만, 길창덕 등 토종 명랑만화 류들은 필요에 따라 길어지고 짧아지기도 한다.
또 박 교수는, 이원복표 만화는 토종 명랑만화의 맥을 잇지 않고 <스머프> 작가 페요나 <아스테릭스> 작가 우데르조 같은 구미권 작가들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한국 만화계에서 보기 드문 명료한 선의 작화는 매우 안정적이며 가장 친근한 작화방법이며,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되고 수용될 정도로 진입 장벽이 낮은 작화 방식이다. 그 증거로 순정만화의 그림체는 그 스타일에 익숙하지 않는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데 비해 이원복의 명료한 스타일은 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진 것이다. 심지어 독자간 거리를 좁히는 '익숙한 이미지' 기법을 활용하는데, 한국인들에겐 한복을 입히고, 유럽인들에겐 특유의 가발을, 일본인에겐 기모노를, 정치인 및 기업가에겐 양복을, 중국인북한 주민에겐 인민복을 입힌다.
그러나 위와 같이 익숙한 기호는 독자들에게 해석의 여지를 주지 않고 하나의 상징으로 굳어지게 된다. 예컨대 중국인이나 북한 주민이 입은 인민복은 통제와 억압, 그리고 시대에 역행한다는 의미를 담아내며, 기업가가 입은 양복은 주류나 권위, 그리고 가치 있는 일이란 뜻을 내포한다. 해설 부분에선 독자와 친근하게 대화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다'와 같은 설교조나 존댓말 대신 반말을 주로 쓰며, 당대 유행어나 말장난, 패러디 등을 넣어 재미를 더했다. 흑인 묘사 개선 면에서도 한국 학습만화가 중에서 선구적이었는데, 1990년대 중반 현대문명진단 부터 파마머리+시꺼먼 피부로 대변되는 스테레오타입형 흑인상 대신 짙은 피부 및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묘사했다.

3.1. 일생


1946년 10월 4일 충남 대전부에서 공장과 여관을 경영하던 집안에서 5남 2녀 중 막내로 출생했다. 한때 이원복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여관은 유명 영화배우들이 촬영차 내려가서 꼭 묵었을 정도로 크게 번성하여 여유로운 시절을 보냈으나, 1950년 6.25 전쟁이 터지면서 집안이 몰락하여 1955년에 서울로 상경 후 사글세방을 전전하면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 와중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각각 10살 때와 20살 때에 잃는 비극을 겪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1966년에 생계를 위해 큰형 이정복이 서독으로 철학 공부를 떠난 뒤 손아랫 형들도 줄줄이 서독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한편 이원복은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상경한 뒤 동대문초등학교로 전학했고, 그는 어린 시절 내내 만화방을 드나들며 만화라는 만화는 다 탐독했다. 그 중에서도 김종래의 <엄마 찾아 삼만리>를 감명깊게 보았으며, 박기당의 만화도 즐겨 읽었다고 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그는 경기중학교 재학 중에 만화를 보면서 다져진 미술적 감각으로 미술부 활동을 했으나, 집안 사정이 사정인지라 미술 도구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만화에 대한 관심이 커진 탓인지 정물화나 풍경화에도 싫증을 느끼기도 했다. 그럴 즈음에 중2때 학교 신문에 첫 만화 작품이 실리기도 했고, 경기고등학교에 진학하자마자 친구의 소개[10]로 소년한국일보로 오면서 그의 그림 솜씨를 눈여겨본 조풍연(1914~1991) 주간이 어린이 신문 만화를 맡기면서 프로 만화가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63년에 미국 만화 <아이반호>의 트레이싱을 시작으로 <톰 소여의 모험>, <마르코 폴로> 등의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만화를 모사하는 정도에서 그쳤으나 1964년부터 일본 만화의 윤작인 <수나>, <사랑의 선물> 등에 이르러서부터 종이에 펜 스케치 뒤 펜터치로 상세 묘사를 하는 수준으로 발전함으로 그림 실력이 나아지면서 창작만화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고교 시절 학업보다 만화를 그리는 아르바이트에 빠진 탓인지 대학 진학에는 실패했으나, 1년을 재수한 끝에 1966년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공학과에 들어가 6년간 학교를 다녔지만 만화 그리는 작업을 계속하느라 학업(전공)에는 소홀하여 졸업은 하지 못했다. 1970년대 초반부터 <새소년> 등지에서 '성천경', '이상권' 등의 필명[11]을 써가며 활동하면서 일본식 그림체를 차용하여 감동극화물, 모험물, 개그물, 로봇물 등을 전전하며 만화를 그려오다 1975년에 만화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겠다는 일념으로 서독 뮌스터 대학교로 유학을 떠나 1981년까지 6년간 배우면서 자신만의 그림체를 찾아내게 되었다.
1981년에 뮌스터 대학교 졸업 이후 <먼나라 이웃나라>를 그릴 적에도 계속 유럽에 체류하다 형들의 권유로 1984년에 귀국하여 덕성여대 산업미술학과(현 시각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한 뒤 교양만화 하나에 몰두하게 되었다. 또 1986년 서독 뮌스터 시와 코츠펠트 시의 초청으로 자신의 작품들을 내걸어 개인전을 연 바 있다.

3.2. 다양한 장르 → 교양물로 성공하다


의외로 1970~80년대 초반까지 감동극화물, 모험물, 개그물, 로봇물 등 여러가지 장르를 오간 만화가이다.
1987년에 단행본으로 묶어 나온 먼나라 이웃나라가 대박 히트를 치면서 이후로는 오로지 교양만화만 그리고 있다. 현재까지도 한국 학습만화계의 절대본좌 지위를 차지한 인물. '''학습 교양 만화'''가 출판계의 정언명령마냥 뿌리를 내린 한국 사회에서, 리즈 시절에는 '''한국 출판업계의 아이콘 그 자체'''를 상징하는 사람이었다.
이렇듯 역덕후 기질과 유럽생활을 통한 교양만화로 성공하고 나서부터는, 점점 완고하고 '''학벌에 집착하는 성향'''으로 변해갔으며, 유럽편 뒤부터 점차 과도하고 일방적인 개조식 서술 등 문제점을 보이게 된다. 특히 치바 테츠야의 그림과 캐릭터를 베껴 그렸던 장르 만화가 시절은 본인에게는 '''흑역사''' 혹은 개인적인 수치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3.3. 편향적인 면


1980년대까지만 해도 다소 진보쪽으로 결론을 강조하는 특징이 있었는데, 당시 만화가답게 꽤나 주관적으로 사설이 들어가거나, 싫어하는 대상을 깔아뭉개는 작풍을 사용했다. 사실 당대의 사정을 보면 대놓고식으로 까지는 못했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심의를 지키는 선에서라는 점을 감안하면 은근히 후덜덜하기는 했다. 이원복이 한창 장르만화가로 할동하고 다녔을 당시에는 만화 검열제가 시행되고 있었던지라 원고를 사전심의를 받아야했던 시절인데다가 그나마도 심의기준이 엿가락 바꿔먹기 식이라서 이런 저런 애로사항을 겪어야했고,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까지 만화계를 쥐락펴락했던 합동출판사의 독점과 행패에 대해 간접적이나마 겪어봤아 했던 처지였기도 했으며, 또한 유럽에서 유학하면서 68운동의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적인 풍토를 만끽했던 점을 생각해보면 이원복 입장에서 아니, 만화가들 입장에서는 만화를 천시하고 검열했던 군사정부를 딱히 좋아할 일이 없었기는 했다. 물론 당대에도 반공만화를 그리는 등 반공주의적인 성향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이원복 본인이 북한때문에 어렸을적에 고생했으니 싫어하는것이 당연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들어 성향이 점차 변화하기 시작했는데 이 당시에는 反DJ 성향에 가까운 성향도 있었던데다가 정치혐오 적인 성향도 가지고 있었기는 했지만 어쨌든 보수 성향의 경제학자인 송병락과 같이 작업을 하고, 또한 보수 언론에 만화를 실으면서 우측으로 성향이 기울어지더니. 2000년대 들어서 다른 몇몇 진보 인사와 함께 '''우파'''로 전향했고, 이후에는 <먼나라 이웃나라> 한국편처럼 "1987년 6.29 선언 뒤 사회혼란이 넘쳐났다"거나,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을 비판하면 종북좌파'''라고 주장하는 만화를 그릴 정도로 정치적 극단주의에 빠진 것으로 평가된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부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노무현을 "학벌" 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사회질서를 왜곡하는 만평을 그렸다.
덕분에 2000년대 이후로는 만화가로서도, 교수라는 사회적 포지션으로 보아도 예전처럼 높이 평가받고 있지는 않다. 태세전환이란 말도 듣지만 뭐 개인의 정치 성향이야 자유니까. 하지만 교차검증과 사실확인을 통과했다고 보기 힘든 편향적인 의견을 진영논리인맥에 입각한 사고방식에 푹 담궈서 마치 진실인냥 전파하고 있는 점은 분명히 문제이며, 박인하 교수는 전술했던 칼럼에서 "자기 포지션대로 자기 몫을 다하지만, 작품이 너무 잘 만들어져 당파성이나 특정 정치성향에 공감 안 하는 사람에게까지 읽히고, 특히 어린이들까지 읽히고 있다는 점에선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다만 태세전환이라고 하기엔, 작가가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를 거의 반세기에 걸쳐서(...) 그렸기 때문에, 태세전환이라는 말은 어폐가 있다. 또한 사람은 임종 직전까지 끊임없이 바뀌는 존재이기에 이원복 교수의 경우 그냥 '정치성향이 바뀌었다' 정도의 평가가 적절한 것으로 보여진다.
단 정치적 당파성이 지나치게 개입된 것은 학습만화 분야에서는 나름 잔뼈가 굵은 업계인으로서 분명히 비판받을 만한 요소이다.

3.4. 주관적 성향


편력에서 쉽게 알 수 있지만, 워낙 여러 가지 분야를 시도했던 탓에 각 분야에서 객관적인 전문성이 부족한 편이다. 당시에는 나름 유행하는 스타일이었으며, 80~90년대 학습만화의 유행을 타고 대성공을 거둔 케이스이다.
덕분에, 어린 시절에 이원복 교수의 책으로 기초 교양을 습득했던 학생들은, 진짜 지식을 배우는 과정에서 배신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원복 교수의 만화는 정론이 아니라 사설을 읊어낸 에세이에 가까우므로, 이에 따르는 단점이나 비판도 매우 당연한 수순에 가깝다. 박인하 교수의 말처럼 유럽편 이후 작품부터는 군대 정훈교육마냥 일방적으로 자기 주장을 설파했기에 독자들로부터 '졸립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점차 재미 없게 변해갔다.
어린 시절 <먼나라 이웃나라> 유럽편 열혈 애독자였던 박인하 교수는 그의 과잉적 주장 설파가 2002년 나온 한국편에서 극에 달했다고 견해를 제시했는데, 가령 "한국인의 국민성은 '충(忠)'에서 비롯됐다"고 단순화하든가 고소득 국가를 '나라 꼴 갖춘 나라'라고 했고, "1987년 6.29 선언 뒤 사회혼란이 넘쳐났다"고 했다. 그 외에 <세계사 산책> 등지에서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을 비판하면 종북좌파'''라고 주장하는 만화를 그릴 정도로 정치적 극단주의에 빠졌다.
특히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은, 자기가 편한 대로 결론을 도출하려는 성향. 젊은 시절에는 다소 막 나갈 정도로 진보적 해설을 늘어놓다가, 학습만화로 자리를 잡고나서부터는 편의주의적인 보수주의에 푹 빠졌다. 어느 쪽이든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가장 문제겠지만.
정치적인 변화야 개인의 자유겠지만, 별 관계없는 사안에서도 가까운 학벌을 미화하거나 특정 파벌의 선전을 절대적인 진리인양 포장하는 점에서 왜곡이 종종 일어난다.
초기에는 이슬람교에 대해 몰랐던 탓에 이슬람에는 부정적이었으나, 창작 과정에서 이슬람교에 관한 장점을 연구하고서 2002년 <신의 나라 인간 나라>를 기점으로 서구 편향적인 역사관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이후에는 친 이슬람성향을 보였다. 안티기독교성향이 매우 강하다.

3.5. 그 외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 처럼 2000년대 이후, 기존의 흑백 만화에서 본격적으로 컬러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옛날부터 이게 워낙 작업량이 방대한지라, 제자들인 일러스트레이션 팀 '그림떼' 의 도움을 받았으며 머리말에도 이에 대한 감사인사를 삽입했다. '이원복 본인은 콘티만 작성하고 작업은 제자들에게 시킨다' 라는 내용의 루머도 있지만, 펜선까지 이원복 본인이 직접 하고 그림떼는 컬러작업만을 맡고 있다고 한다.
컬러 작업이래봐야 아주 단순한 이원복의 그림체 상 그리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않으면서 작업시키기에는 딱 좋은 잡일이 되기 때문에, 이 정도면 공장 논란의 대상이 될 작가는 분명히 아니다.
어쨌든 이러쿵 저러쿵 해도 교양 만화로써의 재미는 상당한 편. 인터넷에는 먼나라 이웃나라의 장면을 패러디해서 쓴 짤방이 다수 존재한다. 어렸을 적에 구독한 1980~1990년대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으나, 요 최근 만화 그리는 데에 있어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대놓고 드러내는 점이나, 검증이 안된 연설, 일방적인 주입식 서술로 독자를 훈계하는 성향 때문에 그 세대에게서 실망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유학 경험도 있고 여러모로 유럽에 정통한 인물로 낙점되어, 유럽을 테마로 한 교양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한 적이 있다. 방송 출연에서도 드러났는데 자신보다 어리기는 하지만 엄연한 프로페셔널인 여자 아나운서(인터뷰어)에게 시종일관 반말을 했다.
특히 위에서도 언급되었지만, 한국 사회의 학습만화 유행으로 거둔 성공으로 정체성을 확정했는지, 박인하 교수가 지적한 바처럼 자기 주장을 일방적/반복적으로 무차별적으로 세뇌시키거나, 학벌주의에 기반한 편협한 시각에서 정치선전에 빠진 점이 비판받게 되었다.
먼나라 이웃나라, 세계사 산책 등을 마무리한 후 2014년 4월부터 6개월 간 중앙일보에서 '''만화가 아닌''' 칼럼 '이원복의 세계 속의 한국'을 연재했다. 이전에도 여러 번 기고문을 쓴 적은 있지만 본격 칼럼 연재를 한 건 드문 일.
2013년 문화일보 기사에서 동아시아의 경우에는 독존 성향이 강해서 중국중화사상, 일본일본 제국식 파시즘, 한국순혈주의 같은 배타적 민족주의 사상이 존속될 수 밖에 없으며, 서유럽의 경우 공존 성향 때문에 예전 같은 대립각이 생기지 않는다는 발언을 했다. 또 그는 2012년 6월 JTBC <신예리&강찬호의 직격토크>에서 이명박 등 주요 정치인에 대한 인물평을 내놨다.
또 이원복 교수는 자서전인 <만화로 교양하라>에서 본인이 하지 않는 것으로 2가지를 꼽았는데, 바로 골프와 소셜네트워크이다. 한때 자신도 개인 홈페이지(www.won-bok.com)를 운영한 바 있었으나, 2005년경부터 사이트를 접었다.
그의 고향인 대전광역시는 2015년부터 중구 테마근린공원에 '이원복 만화창작관'을 지으려 했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발로 이듬해부터 중단 상태이다.

4. 성향 변화


이원복의 성향 변화는 작가 개인사적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작품의 방향에도 반영되었기 때문에 특기할 필요가 있다.

4.1. 진보 성향 당시


1980년대 《먼나라 이웃나라》 시절만 해도 적어도 '당시로서는'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5공 시절부터 노태우 정부 시절까지 독자들에게 진보적인 사상을 내비치기도 했다. 유럽식 개인주의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점이라든가, 특히 프랑스편에서 프랑스 혁명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며 은근슬쩍 내비친 '''독재자에게는 폭력을 써서라도 맞서 싸워야 한다'''는 메시지는 지금봐도 후덜덜. 사실 따지고 보면 이원복을 제외하더라도 그리 특별한 사례가 아니기는 하다 예를 들어보자면 KBS 시청료 거부운동으로 시청료 징수율이 한때 44%까지 찍었던 건 물론 90년대 중반까지 시청료 징수율이 50%대에 머물렀다는 얘기나, 부산이 한때 야당의 텃밭이었으며, 강남 3구도 이전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을 거둔 적이 있었다거나 뭐, 이런 식
게다가 먼나라 이웃나라 독일 편[12]에서는 당시 남미개발도상국 학자들 사이에서 엄청나게 유행했던 종속이론[13]을 설명하기까지 했다. 확실히 이때는 어린이 신문에 연재하는 상황이었는데도 '''한국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고, 독립한 지도 꽤 됐는데 아직도 이 모양 이 꼴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똑같이 전쟁의 참화를 겪었는데 왜 독일은 잘 살고 한국은 이 모양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위험했던 이론을 설명했다. 당시 어린이들에게 이런 내용은 충격이었다.
또한 세금 50%을 떼어내가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다 지원해주는 '''서유럽사회주의적인 복지정책을 대놓고 지지'''하였다.
특히 보육 정책에 관한 내용은 프랑스의 무상 보육과 독일유치원(킨더가르텐)을 비교하여 대놓고 독일 보육정책을 비판했다.
여튼 적어도 80년대 후반까지는 이원복은 (한국기준에서) '''진보 성향'''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그 자신도 당시 68세대에서부터 이어내려온 매우 진보적인 독일 대학가에서 몇 년 동안 공부했는데 여기서 연유를 찾을 수 있을 듯.
초기작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에서는 시관이와 병호가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중, 한 무리의 공산주의자 시위대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호텔 방 밖의 거리에서 시위를 했다). "또 공산주의자들이 시위를 하고 있군" 이라고 어른들이 말하자, 시관이와 병호는 이불속으로 숨는다. 어른들이 왜 그러냐고 묻자, "공산주의자들은 뿔 달리고 이빨이 큰 괴물이 아닌가?" 라고 되묻는다. 그러자 어른들은 창문을 열어서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임을 보여준다. 사실을 깨닫고 "사상의 차이로 이렇게 괴물 취급하다니!" 라는 대사가 일품. 쉽게 말하면, '''당대의 반공 교육이 어린이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깠던 사람이다.'''
물론 조짐이 없던 것은 아니어서 이미 독일편에서 공산주의의 단점까지 서술한 걸 비롯해 1990년을 전후해 어문각에서 반공만화 시리즈 스토리를 기획한 전적이 있다.[14] 중국 문화대혁명을 소재로 한 "대륙에 부는 바람", 동독을 소재로 한 "엑소더스 1989", 루마니아를 소재로 한 "루마니아와 차우셰스쿠" 등.
이 작품들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려 공산주의를 정말 신랄하게 비판하는데, 특히 "루마니아와 차우셰스쿠"의 마지막 장면은 대놓고 주인공인 독일인 기자가 루마니아를 떠나면서 '다음 차례는 북한!'이라고 한다. 검열이 상당히 풀린 민주화 이후에 나온 작품들인데도 반공 색이 상당히 짙다. 물론 역덕 성향 어디 안 간다고, 사회주의 몰락의 과정을 상세하게 그려내긴 했다.

4.2. 우파로의 전향


하지만 1990년 <자본주의 공산주의>를 기점으로 슬슬 조짐이 보이더니, 현대문명진단을 거치면서 성향이 점점 보수적으로 바뀐다. 이 당시 현대문명진단의 연재처를 보면 알겠지만 보수성향 잡지인 주간조선이나 월간중앙에서 연재한 영향도 있을 것이다. 실제 현대문명진단을 보면 대놓고 보수성향은 아니지만 사실 현대문명진단 연재본을 보면 보수성향 잡지에 연재된 만화답지않게 국내 정치적으로는[15] 의외로 9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정치적으로 회색분자에 가까웠긴 했다.
정치적으로 조금씩 보수화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송병락과 같이 작업한 <자본주의 공산주의>를 비롯해 <한국 한국인 한국경제>, <국제화 시대의 세계 경제>, <부자나라 일등국민> 등을 거치며 경제적으로 보수적인 주장을 했으며, 박인하 교수 논평에 의하면 2002년 <먼나라 이웃나라> 한국편에선 1987년 6.29 선언 이후 벌어진 노동자 대투쟁 등 민주화 진행상황을 단순히 '1945년 8.15 해방 뒤 혼란상황'과 동급으로 두는 등 혼란보다 '국론의 통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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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산책> 단행본 속 추가본에서 대한민국진보종북이라고 그렸다. 여기서는 장군님이라고 하며 김정일을 향해 진보라는 사람들이 깃발을 흔든다. 심지어 해당 만화 에피소드 '이상과 현실' 편에서 칼 포퍼의 격언[16]을 인용하며 경제대국 한국의 좌파 신봉자를 "머리나 가슴 중 어디가 빈 것인가?"라고도 했다.
지금은 인터넷 때문에 이원복 교수식의 문화해설이 주류에서 밀려나면서 잊혀졌지만, 보수로서 나름 전면에서 활동하던 전향초기 언동을 보면 깨는 내용이 많다. 전체적으로 해외통으로 인기를 얻은 유학파 출신이 고생없이 나이먹고 졸부 정신에 빠져서 다른 사회 인사들을 하급 인물처럼 평가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스스로 반감을 키운 사설이 많았다. 게다가 선전 자체는 현재도 이때 내비친 생각이랑 큰 차이가 없는 편이다.

4.3. 역사관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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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은 '세계사 산책'의 '역사의 상처' 편에서 일제침략의 역사적 상처를 잊자는 내용을 실은 것인데, 친일인명사전에 대해 대차게 까는 내용을 다루었다. 참고로 그 '역사의 상처' 편은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날인 2008년 2월 25일자 신문에 나갔는데, 맨 마지막 컷에 '''새 시대가 열렸다!''' 라는 문구와 함께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는 모습을 그렸고,[17] 건국절도 간접적으로 거론했다. 이 에피소드 문제는 2008년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기사와 2014년 국민일보 기사에서도 거론됐다.
실제로 보수주의로 전향함과 동시에 보수 역사관을 대변하는 만화를 쓰기도 한다. 위에서 언급한 <먼나라 이웃나라> 우리나라편 때 1987년 6.29 선언 뒤 상황을 '1945년 해방정국과 똑같은 혼란 상황'이란 평한 것 외에 1995년 <현대문명진단> - '광복은 50년에서 끝내자'[18], 2007년 <세계사 산책> 42회에서도 광복절을 건국기념일로 고치자고 견해를 제시했는데, 핵심 내용은 "일본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건설적인 국가로 나아가려면 '독립기념일'로 바꿔야 된다"고도 밝혔다. 이러한 행위 덕에 현재도 이 인간과 더불어 "만화계의 김완섭"이라 불리기도 하며,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도 위에 언급된 기사에서 독일 정부의 '기억 미래 책임재단' 설립과 비교하며 "이원복 교수도 역사왜곡 세력과 같은 부류이다"라는 식으로 언급했다. 한상권 덕성여대 사학과 교수 역시 '건국기념일' 부분을 가열차게 지적했다.
게다가 이원복이 예시로 드는 "친일파로 억울하게 비난받는" 현대 한국의 엘리트들은, 사실 6.25 전쟁 이후 친일파의 영향력이 약해진 이후 세대들이라 통념과는 달리 친일파와는 거리가 멀다. 정치 논란과는 별개로 전술한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기자 박희정의 견해를 바탕으로 하면 위 만화와 <먼나라 이웃나라> 프랑스편 말미[19] 등지에서 얘기한 '역사의 상처' 얘기는 이견의 여지가 있는데, 위에서 나온 역사의 상처들은 외국인들을 만날 때 대하는 예의가 아니라 '강자의 입장'에 서서 얘기하는 것에 불과하다. 실제 외국인들 중에서 역사 속 비극을 얘기한다고 마음이 상해지지 않고 태연히 대하는 경우도 있다.
또 하나 매우 잘못된 서술이 있다면 '''3.1운동은 실패했다, 실패하는 것이 당연했다'''라는 서술인데,[20] 한번도 아니고 여러번 나타난다. 3.1 운동은 일본이 겉으로나마 통치 방식을 바꾸게 만들었으며, 무엇보다도 열강은 3.1운동 과정에서 보인 일본의 잔학성을 매우 크게 비판했다. 아무리 각주에서 말한 대로 민족자결주의에서 배제됐다 해도 '당연하다'라는 한 마디로 치부될 일이 아니다.
물론 이렇게 자신이 성향을 바꾸기 전에 저술한 먼나라 이웃나라의 '''개정 전판에선 과거사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함을 여러 번 거론'''하였고, 일례로 1998년판까지 프랑스편에서 일본이 과거사를 왜곡하는 점을 거론하면서 이런 식으로 나아간다면 일본의 청년들과 이후 세대들이 왜곡된 역사관으로 한국 등을 하대할 것[21] 등을 심히 염려하고 지적했으며, 덧붙여 "이런 게 멈추지 않는다면 일본은 제국주의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등등의 뼈가 있는 일침도 서슴치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소신있던 사람이 정치관 전향하면서 이렇게 판을 바꾸는 거론을 하고 있어서 실망하고 떨어져 나간 독자들도 많다.
그래도 독자들 보는 눈치는 있는지 몰라도, 2014년에 출간된 가로세로 세계사 4권 호주 파트(191쪽)에서는 일본이 사죄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이 있다.

4.4. 프로파간다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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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나라 이웃나라 프랑스편에서는 '''학벌주의 = 곰팡내나는 사회발전의 적'''이라고 일갈했고, 한국편에선 사교육 및 과외, 선행학습 문제를 비판하던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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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4월호 서울대 동창회보에는 이런 만평을 기고[22]했다. '서울대' 출신 이회창의 대선 재출마 당시, '상고' 출신인 상대 후보(김대중, 노무현)와 대결을 그린 만평. 보면 알겠지만, 대놓고 '''상대 진영을 무슨 기득권 세력인양''' 그려놓은 편파적인 내용이다. 말할 것도 없이, 대한민국의 주류계층을 뒤집어놓는 식으로 사실을 왜곡할 만큼 편향적인 선전활동이 강해졌다는 얘기. 옷에도 서울대를 상징하는 '샤'가 자랑스럽게 그려져있다. 성공한 이후의 성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만평이다.
이에 대해 일부 서울대 동문은 '학벌주의와 패거리 정치를 부추기는 것'이라면서 '이 교수는 지난 대선 때에도 이 전 총재가 졸업한 경기고 동창회보(1997년 8월 10일자)에 경기고 마크 사이로 청와대가 보이는 마크를 그렸다'고 꼬집었다. 더 나아가 서울대 출신의 모 언론인은 프레시안 기사에서 "이 교수의 만평은 전체 서울대를 모욕하는 시대착오적이고 반사회적인 학벌 조장 행위"라고 하여 "이런 만평을 그린 이 교수를 총동창회에서 제명하는 동시에, 이런 만평을 실은 서울대 총동창회 관계자를 문책하고 그동안 명망가들의 사랑방 노릇을 해온 총동창회 조직도 차제에 해체해버려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동창회보 만평으로서 그런 정도는 용인될 수 있다"라거나 "동문의 관심을 대변하는 회보에서 정치 상황을 묘사한 건 창작과 표현의 자유"라는 반론도 제기되었다. 이 사건에 대해 그는 4월 12일 동아일보 기사에서 “동창회보라는 폐쇄된 매체여서 악의 없이 그린 것으로, 특정 후보를 폄훼하려는 의도는 결코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 외에도 김대중 대통령이 내세운 ''''국'''민('''國'''民)의 정부'는 '''궁'''민('''窮'''民:국민을 가난하게 만드는)의 정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參'''與:함께 하는)정부'는 ''''慘與(참여: 비참함을 주는)'''정부'라고 깠다.
사실 위의 학벌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은 먼나라 이웃나라의 초판본에 실린 내용이고, 이후 현대문명진단과 같은 작품에서는 유럽의 명문 사립학교들을 은근히 찬양하는 내용을 싣기도 했다.[23] 즉 '''자리 잡기 이전에는 학벌지상주의를 비판하다가''', 학습만화로 자리를 잡은 90년대부터 학벌주의 만능론자에 가깝게 변했다.
또한 위의 친일옹호 항목에서도 전술했지만 '세계사 산책'에서 일제침략의 역사적 상처를 더이상 건드리지 말자며 친일인명사전에 대해 돌직구를 날리는 내용을 다루었다. 맨 마지막 컷에 새 세상이 열렸다는 문구와 함께 일제시대의 잔재를 잊자며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는 모습을 그렸다. 이런 해설법은 이원복 교수의 친일옹호나 보수주의 전향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원체 이 교수가 하는 해설법의 전반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간단히 말해서, 자신의 프로파간다를 중심으로 편파 해설을 하는 버릇이 젊은 시절부터 변하지 않은 셈이다(…).
문제는 이런 성향이 최근 작품에도 투영되면서, 이원복 교수가 기껏해야 고대사로 동인활동하는 시오노 나나미의 방식을 따른다는 설이 있다. 시오노 나나미도 학창시절 좌익이었으나 현재 하는 극우 옹호 발언 등을 보면 정치적 성향은 비슷하게 흘러간 걸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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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경에는 참여정부가 시행한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세금폭탄"이라고 주장했던 당시 한나라당의 프로파간다를 그대로 옮긴 만화를 그려 비슷한 성향인 월간조선 부록으로 내놓은 바 있다. 훗날 이 짤방은 딴지일보에서 실사 합성을 통해 정반대 성향으로 패러디한 바가 있다. (...)
그런가 하면 2002년에는 주 5일 근무제를 하면 경제가 죽는다는 대한상공회의소와 전경련의 광고 만화를 그린 것으로 드러나 네티즌들로부터 눈총을 받기도 했다...망한다는 기업들 다 어디로?[24]

4.5. 기타 성향 변화에 대한 이야기


요사이엔 "아시아 파워"에 주목했는지, 미국편부터 오리엔탈리즘을 설명하기 위해 에드워드 사이드를 인용하고 서구 중심의 역사관을 타파하고자 하는 의지가 돋보였으나, 어느 순간 '''중국 공산당 정부의 공식 역사관'''에 대해 대단히 긍정적인 투로 중국편을 만들고 있다.
이원복의 친미-보수적인 성향을 보면 중국식/공산주의적인 마르크스적 역사관을 긍정적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대목이지만, 보수층에는 중국식 제도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송병락과 같이 저술한 한국 한국인 한국경제에서는 국가경쟁력 강화를 국가 제일의 목표라고 서술했는데, 현재 중국 정치야말로 이런 입장과 딱 맞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기준으로 봐도 보수이자 (오히려 수구라고 볼 수 있는) 친미인 이문열이나 조갑제에게도 보이는 성향이며, 나름 일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미국식 민주제도는 이들과 잘 안 맞는다. 20대 성향이 일본 서브컬쳐에 상당히 물들어 일본인들과 동조하여 반중에 가깝기 떄문에 이들을 이해하기 힘들 뿐, 이들의 중국 정치에 대한 호감[25] 이념면에서 상당히 일관적인 것이다. 쉽게 말해 부국강병, 개발 독재를 밀어붙일 수 있는 강력하고 권위적인 체제라면 우든 좌든 안 따지고 좋게 본다는 얘기.
사랑의 학교 재발간본 머릿말에서, 과거 유럽에서 받은 문화충격과 한국적 전통의 충돌로 방황했다는 내용을 보면, 사회발전에 대한 선망을 쫓아서 자신의 입지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출간되는 작품들을 보면 아시아의 전통적 가치를 옹호하고, 서구 그리스도교 문명을 비판하는 듯한 뉘앙스를 많이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서 '''시야 자체가 훨씬 좁아졌다'''는 평이 많다.어찌 보면, 객관적인 연구없이 주제만 다른 걸로 갈아타서 양산하는 작품의 단점이랑 비슷한 양상이다.
이전에는 이슬람교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었지만 에드워드 사이드오리엔탈리즘을 읽은 다음부터는 현재는 지나칠 정도로 이슬람을 옹호하는 데에 급급하다. 사실 90년대 현대문명진단 때를 보면 좀 오락가락하는 모양새다. 어떨 때는 이슬람교를 물불가리지 않고 찬양(...)하지 않나, 사우디아라비아의 사형제도와 마약문제에 대해 서술한 편에서는 사우디의 꼴통스러움을 까대면서 알라를 언급하지 않나(...)
무엇보다 이슬람교 교리에 대해 무지한 면은 신의 나라 인간 나라 이후로 더 심해졌다. 또 그리스도교에 대해서는 과거에는 중립적(이라지만 사실 종교개혁과 개신교에 훨씬 호의적이며, 정교회는 아예 동로마 황제주교로 쳐서 취급도 안하는)이었으나, 현재는 전반적인 안티 기독교-유대교 성향을 강하게 보이기도 한다.
먼나라 이웃나라 한국편에서 박정희에 대해 설명하면서, 한 남성이 '그분의 딸을 대통령으로 삼는게......'라고 중얼거리고 옆의 사람들이 '우리나라가 필리핀, 인도네시아 수준이냐?'[26]라며 한심해 하는 장면이 한 컷 등장한다. 출간 당시에는 화제가 되지 않았지만 박근혜가 몰락한 뒤 재조명받았다.

5. 논란



5.1. 오류, 편향적 사실 전파


책 한 권 읽고 썰을 푸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충분한 전문성이 없는 상태에서, 개인이 접한 얄팍한 정보에 과도하게 의존해서 컨텐츠를 생산하고 그에 따라 수많은 오류들을 양산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먼나라 이웃나라부터가 오류와 사실 왜곡이 많은 것으로 유명해 여러 전문가들에게 계속해서 지적받고 있다. 대놓고 사실과 다른 내용을 서술한 것의 예로는 남유럽 청소년의 신체 발육이 북유럽 청소년들보다 월등히 빠르다고 설명한 부분이 있는데, 실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는 없다고 한다. 또 다른 예로 독일에서 나치가 대두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면서 유럽유대인들을 '''파이를 갉아먹는 쥐'''로 묘사해서 친 나치 독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먼나라 이웃나라/문제점 항목 참조.
2006년 발간된 <가로세로 세계사> 1권 개괄에선 식민지가 된 경험이 없거나, 타국가를 침략하지 않은 나라는 유럽스위스, 아프리카라이베리아, 에티오피아, 아시아태국, 네팔 등 5개국 밖에 없다고 적어놓기도 했다. 스위스 같은 경우는 바다로 나갈 길이 없는 내륙국가에 당시 식민지를 만들 수 없을 정도로 국력이 매우 약한 약소국이어서 넣은 듯한데 사실 리히텐슈타인, 룩셈부르크 등과 같이 식민지배를 받지 않았으면서 식민지를 침략하지 못했던 국가들은 당시 유럽스위스말고도 많이 있었다.
게다가 태국 같은 경우는 아예 19, 20세기 당시 영국, 미국, 네덜란드, 프랑스 등 서양열강들이 동남아시아식민지화하면서 서로간의 충돌을 피하려고 완충지대로 냅두는 바람에 동남아에서 유일하게 주권국가로 남아있던 국가여서 넣은 것 같은데 사실 이러한 인식과 달리 태국도 과거 근대 이전까지 말레이시아, 라오스, 캄보디아와 같은 다른 동남아 이웃국가들을 상대로 침략하고 땅 뺏고 약탈하고 왕과 왕비, 공주 등 왕족들을 죽이고 노예로 팔아먹는 등 온갖 잔인한 행각들을 다 저질렀다. 실제로 태국과 싸웠거나 침략을 받은 적이 있었던 말레이시아나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처럼 태국의 이웃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현지인들에게 태국이 남의 나라 지배, 침략한 적 없는 나라란 식의 소리를 하면 외려 욕 얻어먹거나 돌을 맞을 수도 있다. 그 국가들에게는 근대 제국주의 시대, 제2차 세계대전 시절 자국 국가들을 강점했거나 식민통치했던 일본이나 영국, 프랑스보다 더 악랄한 국가였기 때문이다.
또한 가로세로 세계사 발칸반도 편과 유럽만사 세상만사라는 만화에서는 동유럽 국가 불가리아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독일과 자발적으로 손잡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추축국에 적극 가담하여 나치 독일이나 일본 제국처럼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처럼 두루뭉술하게 묘사해놨는데 제2차 세계대전 초기 유고슬라비아,그리스 침공에서 나치 독일군을 지원해주기도 했으나 실상 전간기 후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불가리아는 사실상 나치 독일군의 괴뢰국 내지는 속국 신세에서 못 벗어난데다 추축 동맹에서의 합류 과정도 나치의 압력에 못 이겨 억지로 끌려가는 등 전범국, 가해국보다는 오히려 전쟁 피해국에 더 가까웠다.[27]
게다가 세상만사 유럽만사에서는 핀란드가 러시아의 식민지였을 시절 핀란드의 강압 식민통치를 펼치던 러시아의 장군 니콜라이 보브리코프가 핀란드 독립운동가의 폭탄에 맞아 폭사당한 것으로 그려놨는데 실제로 보브리코프는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그리고 과거에 러시아의 영토였던 알래스카가 오스트레일리아의 두 배가 넘는다고 했는데 알래스카의 면적은 오스트레일리아의 두 배가 넘기는커녕 4분의 1도 되지 않으며[28] 우랄 산맥 서쪽의 러시아 영토가 우크라이나보다 작다고 하는 등 지도를 본 적이 없는 듯한 서술은 다소 심각한 부분이다.
더불어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이라든지 이라크 전쟁이라든지 미국에 대해서는 쓴소리를 하는가 싶더니만 또한 미국에 대하여 엄청 두둔하는 친미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가로세로 세계사 동남아시아 편에서 캄보디아 크메르 루주 학살은 거론하면서 미군의 베트남 국경지대 폭격으로 캄보디아라오스에서도 피해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은근슬쩍 빼버린다든지, 필리핀에서 미국은 필리핀을 지배하면서 다른 서방 식민제국 국가와 다르게 온건하게 통치했다고, 미국에서도 쉬쉬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기까지 했다. 사실 미국도 필리핀에서 돈 되는 일은 다 악착스럽게 벌여놓고 학살까지 자행하는 등[29] 영국이나 프랑스, 네덜란드 등 동남아시아 나라들을 식민지배했던 다른 서방 제국주의 국가 못지 않게 잔악한 만행들을 일삼았다.
먼나라 이웃나라를 2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새로운 국가들을 냈는데... 문제는, 20년 전보다 떨어지는 필력으로 대상국에서조차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해설서들을 교양만화랍시고 냈다. 이게 중국, 일본, 미국편.[30] 이 작품들은 정말로 지극히 개인적인 해설이 태반이니 주의하자.
이런 것 외에도 넘쳐나는 오류나 사실 왜곡은 분명히 비판받아야 할 점이 맞다.
사실 이원복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중퇴 및 독일 뮌스터대 디자인 및 서양미술사학 수료/전공자로, 주 전공은 미술 쪽이지 해당 전공자들과 동등 이상의 역사, 경제학적 지식이 있다고 볼 근거가 없다.[31] 그의 저서들이 그의 정치적 성향 이전에 당장 사실관계에서도 수많은 오류가 지적되는 것도 그러한 비전문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서울대 출신의 스노브에 지나지 않는다.

5.2. 트레이싱


또한 먼나라 이웃나라에서는 대놓고 프랑스 만화 아스테릭스의 몇 컷을 거의 차이 없이 '''트레이싱'''했다. 작가가 아무리 아스테릭스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 공공연한 팬이라 해도, 오마주임을 어떤 지면상으로도 명백히 밝히지 않고 그냥 무단으로 특정 부분을 가져다 쓴 것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작중의 내용이나 캐릭터를 패러디하는 차원에서 출연시키는 것과 작중에 등장하는 특정 장면의 특정 구도를 베껴쓰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물론, 일본 만화를 그대로 베끼던 '''치바 테츠야 표절 시절'''은 본인도 후회하는 흑역사이다. 당시에는 이원복 교수가 최고의 인기작가였던 만큼, 상당히 문제가 되었던 이야기였다. 사실 웬만한 원로작가들도 그렇지만, 문화개방 이전의 한국작가들의 표절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셈.

5.3. 일본 만화 비판


손상익 등 국내 원로 만화인 대개가 그렇듯 그도 일본 만화를 상당히 비판한다. 덕분에 후배 만화인인 송락현, 박무직에게서 "유럽 만화에 열광하며 표절 논란까지 벌이던 그가 일본 만화를 잘못된 서구풍 영향이라며 까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이를테면 '데즈카 오사무는 '''제작비를 많이 안 들였으니''' 자본이 우월한 월트 디즈니보다 못하다' 거나,[32] 1991년 저서 <세계의 만화 / 만화의 세계>에서도 "디즈니는 예술성 넘치는 불후의 작품이요, 데즈카 작품은 흥미 위주이다"라고 하기도 했다. 전술하듯 '일본 만화를 베낀 순정만화를 그리면서 잘못된 서구풍이 퍼진다' 등, 대체로 일본 만화를 비판하는 관점을 보인다.[33] 사실 비판보다는 얕잡는 투에 가까운 편이다. 게다가 데즈카 오사무는 하숙집에서 문화산업을 일으킨 국민작가다. 자본이 덜 들어갔다고 저평가하는 것은 좀... 사실 이때 교수가 나이를 먹으면서 사회부심을 좀 부리던 시기였다. 특히 <세계의 만화...>에서 선보인 이분법적 시각은 만화평론가 박인하 교수 등이 1998년에 낸 <아니메가 보고싶다>에서 "디즈니는 예술성이 넘쳤음에도 미국식 상업성을 지녔고, 데즈카 작품은 흥미주의 속에서도 따뜻한 감동과 재미를 찾아낼 수 있다"고 반박했다.
과거에는 자신도 일본식 만화를 베껴서 그렸고, 학벌에 대한 예찬을 은근히 표시해온 교수께서 '일본 만화 속 학벌 및 귀족 우월체제가 순정만화에 들어간다!'고 비판했으니 이중잣대라고 비판받을 만하다. 어찌보면 자신의 흑역사에 기반한 동족혐오일수도 있겠다. 그나마 유일하게 호평을 준 작품은 쾌걸 조로리[34] 정도.

6. 와인사업 시작


2011년부터 전부터 관심을 보이던 와인 사업을 개시했다고 한다. LG상사와 손잡고 한국에서 잘 안알려진 한 칠레산 와인을 "이원복 와인"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한 것이다. 수익금은 전액 장학사업에 기부한다고.

7. 작품 목록



7.1. 이원복이 직접 만든 작품


현재 이원복이 만든 대다수의 작품들은 김영사가 판권을 가지고 있다.
  •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 - 원래 시관이와 병호도 원래는 치바 테츠야 화백의 엑스트라 캐릭터이다.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 자체도 미니바람 꽃 구름의 후속작이라서 앞부분에 미니바람...의 이야기와 등장 인물이 출연한다.
  • 사랑의 학교(만화)
  • 거지황제 나풀대용 - "이상권"이라는 필명과 본명 이원복을 혼용함.
  • 부에노와 말로
  • 먼나라 이웃나라
  • 현대문명진단
  • 통일로 가는 길 - 1990년에 통일원 통일홍보부가 낸 홍보만화 책자로, 해당 작품 내용의 일부는 <먼나라 이웃나라> 우리나라편 '우리의 소원은 통일' 파트에 인용됐다.
  • 펜끝으로 여는 세상 - 이원복 교수가 그간 각종 잡지, 각 기업체 사보 등지에 발표한 작품을 엮은 책이다.
  • 이원복 교수의 진짜 유럽이야기 - C. 하흐트켐퍼 자료협조. 그러나 해당 책에서 나온 몇몇 내용이 영국의 <제노포브스 가이드(Xenophobe's Guides)>(우리 나라에서는 '유시민과 함께 읽는 문화이야기' 시리즈로 번역된 바 있다.)에서 나온 내용을 일부 가져온 것이 밝혀져서 당시 제노포브스 가이드의 한국어판 독점 출판권을 가지고 있었던 도서출판 푸른나무 측에 고소당한 바 있다.
  • 세상만사 유럽만사 - 먼나라 이웃나라의 스핀오프격 작품으로, 유럽편 완결판이라 할 수 있다. '진짜 유럽 이야기'에서 본문을 빼버리고 만화 부분만 추출하여, 동유럽 및 중소국가 등의 없던 내용들을 보강하였다. 2010년에 판권이 두산동아에서 김영사로 넘어갔으며, 2권에서 1권으로 바뀌었다.
  • 만화로 떠나는 21세기 미래여행[35]
  •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
  • 세계사 산책 - 중앙일보 연재작.
  • 세계로 가는 우리 경영 - 김일섭 공저. 최초로 김영사와 판권 계약을 맺은 저서이며 이 책에 소개된 기업은 삼성전자, 오뚜기, 삼성메디슨(당시 메디슨), NEC, MK택시, 월마트 등이다.
  • 송병락 교수와 작업한 만화 대부분
    • 만화로 보는 자본주의 공산주의 - 원전은 송병락 교수가 1987년에 지은 <마음의 경제학>이다. 간혹 불쏘시개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대해 꽤나 상세하고 중립적으로 설명해 놨다. 89~126쪽 분량에서 원전과는 관계없이 마르크스 자본론과 사회주의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면서 공산주의에 대한 장점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초판 발행 시점이 공안정국 시절[36]이던 1990년이라는걸 생각하면 꽤나 멋진 자세이다. 다만 일단은 송병락 교수와의 합작이라 책 후반부의 한국 한국인 한국경제 프로토타입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게 문제.
    • 한국 한국인 한국경제
    • 부자국민 일등경제 - 경제 상식에 대한 정보가 매우 풍부하고 당시로써는 추세도 어느 정도 잘 파악하고 있으나 대단히 편파적이고 아무리 경제나 문화 등을 다룬 것이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다고 해도 현재로써는 정확하지 않은 정보들이 너무 많아 그리 권장할만한 도서는 아니다. 신자유주의를 지나치게 신봉하고 있으며 미국과 일본이 최고로 모범적인 본보기이고 한국의 정치가들은 악의 무리인 것처럼 묘사하는 등 정확도 면에서 객관성과 중립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또한 중국과 인도라는 엄청난 대국의 가능성을 전혀 파악하지 못 하고 경제 모델도 미국, 일본, 한국 세 나라만 삼국지처럼 인용하고 유럽 국가들과 싱가포르를 비롯한 경제강국들은 잘 다루지 않고 있다. 물론 요즘처럼 변화가 빠른 시대에 2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기에 현재에 적용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는 하지만 베이징 올림픽을 불과 몇 년 앞둔 시점에서 중국과 인도의 가능성을 완전히 간과하고 비록 비교적 민주적인 정부과거 정부에 우호적이라는 이유로 드라마 하나를 결단 내는 등 한국 정부의 횡포가 아직까지도 심한 성향이 있다고는 해도 21세기에 발간된 도서 치고는 너무도 1970년대~1980년대의 시각을 추구하는 뉘앙스가 짙어보인다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정보가 아니다. 특히 후진국을 대표하는 캐릭터를 인도인으로 표현한 것도 문제인데 대놓고 인도인이라고 적혀있지는 않지만 터번과 복장 등을 봤을 때 인도를 연상 시키기 쉬운 여지가 다분하다. 그러나 내용의 40% 가량을 받아들인다고 집중해서 보면 제법 좋은 경제 서적이다.
    • 국제화 시대의 세계경제
  • 신의 나라 인간 나라 - 2008년에 판권이 두산동아에서 김영사로 넘어감.
  • 가로세로 세계사 - 먼나라 이웃나라 스핀오프격 작품. 현재 4편 '캐나다ㆍ호주ㆍ뉴질랜드, 태평양의 젊은 나라들' 까지 나온 상태. 2018년 먼나라 이웃나라 시즌2로 다시 출간되어 먼나라 이웃나라에 편입되었다.
  • 만화로 보는 세계사(전 22권)
  • 뉴스 뒤집어보기 - 1993년부터 1996년까지 조선일보에서 연재되었던 '이원복 만화칼럼'을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 이원복 교수의 세계기행 - 1990년대에 대우그룹 사보인 '대우가족'에서 연재되었으며, 2001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 나부터 변하자 - 1994년 삼성경제연구소의 의뢰로 제작한 경영 서적. 삼성그룹의 경영 혁신 이야기를 주제로 하였으며 본래는 삼성그룹 직원들에 대한 내부 교육용 서적이었으나 이후 시중에 팔렸다.
  • 통상교섭본부가 생각하는 새로운 통상 이야기 - 2018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발간한 만화로 한미 FTA, 미중 무역분쟁 등 통상 현안과 정부의 통상 정책과 목표 등을 해설하였다.
  • 자신이 흑역사[37]라고 생각해서 폐기한 작품(주로 클로버문고 출판, 참조자료)
    • 하늘을 나는 자동차(치티치티 빵빵) - 이안 플레밍의 동화.
    • 수나의 일기(이상권이라는 필명으로 발표) - 이 작품은 사연이 되게 복잡하다. 1971년경에 소년한국일보에 일본의 한 작품을 윤작해 연재한 <수나>라는 작품으로 시작하여 1973년에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창작 부분을 더 많이 넣은 <미니바람 꽃구름>을 소년한국일보에 연재했고, 이후 1974년 <새소년>에 <수나>의 내용을 더 다듬은 <푸른 꿈은 가득히>로 1년간 연재한 뒤 구 클로버문고 시절에는 나오지 않았다가 1983년에야 <푸른 꿈은 가득히>를 바탕으로 '새 클로버문고' 전집으로나마 나오게 되었다. 다만 그 사이 이원복이 독일 유학을 간 터라 다른 작가의 손으로 만들어져 완성되었다.
    • 불타는 그라운드(축구만화, 반공만화)
    • 미니바람 꽃구름
    • 백자바위 마인(반공만화, 조풍연 동화 <붉은 마인>의 만화판.)
    • 푸른 꿈 파란 싹
    • 저 높은 곳을 향하여
    • 야망의 그라운드
    • 유쾌한 호마군
    • 화성의 호마

7.2. 이원복이 기획/구성한 작품


  • 학습만화 한국사/세계사 - 박흥용/오수 그림.
  • 루마니아와 차우셰스쿠 - 정일봉 그림.
  • 나란나란 세계사 도란도란 한국사 - 그림떼 글/그림.
  • 미국을 알면 영어가 보인다 - 그림떼 글/그림.
  • 구비구비 옛이야기 - 그림떼 그림.
  • 21세기 우리나라 좋은나라 (우리역사 우리지리) - 본래 1997년까지 최달수서영수가 그림을 그리고, 당시 서울YMCA 명예총무인 오리 전택부 선생(1915~2008)이 감수한 학습만화로 당시의 제목은 '우리나라 좋은나라'. 서울, 경기도, 충청도,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북한 지역의 역사/문화/설화 등을 소개한 작품이다. 각 지역별로 책을 구분하였다. 2006년부터 현재의 형태로 개정되어 2009년부터 글수레에서 김영사로 넘어감. 김승민[38] 글/그림.
  • 한국사를 알면 세계사가 보인다 - 김승민 글/그림.

7.3. 저서


  • 세계의 만화 만화의 세계
  • 만화로 교양하라 - 제목과는 달리 만화는 아니고 박세현이라는 기자와 저자간의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된 대담집. 2010년 말 정도까지 발간된 먼나라 이웃나라에 대한 뒷이야기를 포함하는 역사에 대한 개인 철학이 담겨있다. 이야기꾼으로서의 저자의 면모가 잘 드러난다.
  • 정욱과 대원 - 박석환, 송락현 등과 함께 공저.
  •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 - 2015~2018년까지 KBS 제1라디오에서 방송했던 동명의 프로그램에 같이 출연한 역사학자 신병주와의 방송 대담집.

8. 수상 경력


  • 1979년 한국도서출판잡지주간신문윤리위원회 한국만화상 금상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
  • 1981년 독일 뮌스터 대학교 총장상
  • 1989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한국만화상 금상 (학습만화 한국사/세계사, 박흥용과 공동수상.)
  • 1993년 눈솔상[39]

9. 관련 문헌



10. 관련 문서


[1] 독일 유학 때 쓰던 로마자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씨들이 쓰는 Lee가 아니다.[2] 바스크 모자를 쓰고 있다. 먼나라 이웃나라 7권(일본-문화편)의 프롤로그에서 이 점을 지적하면서 늙은 오너캐를 그렸는데 독자들도 끔찍해할거라는 자학과 함께 시간은 지났어도 마음은 안 늙었으니까 그냥 그대로 가자고 타협하는 개그씬이 나온다.[3] 독일 유학 때 쓰던 로마자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씨들이 쓰는 Lee가 아니다.[4] 그의 이름자 중 馥자는 穀에서 따 온 항렬자이다. 한산 이씨는 水穀土 삼행법 항렬을 사용한다.[5] 맏형은 이정복 한양대 교수(철학), 셋째 형은 이창복 한국외대 교수(독문학), 넷째 형은 이정춘 중앙대 교수(신문방송학) 모두 독일 유학파 출신이다.[6] 손학규 전 대표, 고 김근태 의원과 경기고등학교 동기이고 손 전 대표하고는 경기중학교 동기인데 이들보다 나이가 1살 위인 걸 보면 이원복이 학교를 늦게 들어갔을 것으로 보인다. 이원복의 말에 의하면 "손학규는 경기고에서도 매우 공부를 잘했고 나는 거의 뒤에서 놀았다"고. 이때가 경기고 리즈시절로 경기고 졸업생 대부분이 서울대 들어가는 시절이라, 이원복이 비록 경기고에서 하위권이어도 서울대 하위 과는 갈 만큼 모두 실력이 좋았다는 의미이다. [7] 1966년 당시는 건축공학과. 1975년에 건축학과로 바뀌어 현재까지 이어짐[8] SBS 좋은아침 제3760회(2011년 11월 15일)에 출연하여 졸업장이 없음을 밝혔다.[9] 사진에 나오는 삼륜차영국 릴라이언트(Reliant)社의 로빈(Robin)'이라는 모델이다. 이 삼륜차는 탑기어에서 우주왕복선된 적도 있고('''실패했지만'''), 제레미 클락슨막 굴려서 수장된 적도 있다.(다만 둘 다 사진의 저 모델보다 후기형 모델) 좀더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10] 그 사람 아버지가 당시 소년한국일보 편집국에 근무했었다.[11] 사실 해당 필명들은 이원복 교수의 친구들 이름에서 따왔다.[12] 초판본과 현재의 판본이 상당히 차이가 난다. 동서독 통일 등 엄청난 역사적 변화가 있었기에 훗날 수정판으로 발매되었기 때문. 이 부분에서 언급되는 부분은 도서관에서 초판본을 찾아볼 것. 현재 이 부분은 스위스 편으로 옮겨져 있다.[13] 식민지 출신이나 저개발 국가는 선진국의 횡포로 선진국에 원자재를 싼 값에 팔거나 저효율 산업만 맡게 되어 거지 꼴을 못 면한다는 이론. 한국에서도 70~80년대 엄청 유행했다.[14] 작화는 오수 화백 등이 맡았다.[15] 해외정치쪽으로는 대놓고 프랑스 사회당을 비판한다거나 했다.[16] "20대에 사회주의자가 되어 보지 않은 자는 가슴이 빈 자이나, 20대 넘어 사회주의를 신봉하면 골빈 자들이다." 물론 실제로 칼 포퍼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가짜 명언 문서 참조.[17] 이러한 작가의 친일 성향 때문에 저 떠오르는 태양이 일본 제국을 가리키는 것이냐는 드립도 있었다.[18] 해당 만화는 조선일보사판 3권에서도 수록됐다.[19] 1998년판부터 추가.[20]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당시 일제하 조선이 민족자결주의에 배제되었기 때문이다.[21] 그 부분에서는 일본 청년이 "한국? 아, 우리가 36년 동안 통치했던 나라? 너네가 그 정도밖에 안 되니 우리 밑에서 노예생활 할 수 밖에 없지. 그러니 지금이라도 다시 우리의 속국이 되어 주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니겠어?" 하고 깔보는 말을 한다.[22] 서울대 졸업은 하지 않았으나, 학사준회원으로서 서울대 총동창회 편집이사직을 맡아 만평을 기고함.[23] 다만 이에 대해 대담집 '만화로 교양하라'에서는 이런 시각을 달리 볼 수 있는 내용이 실려 있다. 판단은 각자 하시기 바란다.[24] 이원복을 비롯하여 한국의 보수 성향 지식인들은 휴일이 늘어나면 나라가 망한다는 괴상한 프로파간다를 외치고 있으나, 정작 그런 사람들이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라고 찬양하는 일본만 하더라도 2021년 공휴일(일요일을 제외한)이 14개인데 반해, 한국은 8개에 그친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일본은 한국보다 휴일이 더 많으니 벌써 망했어야 했는데 아직도 세계 경제 규모가 3위다...[25]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외교적 친중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냥 중국 정치나 거버넌스에 대한 호감이며, 마찬가지의 이유로 이들 및 보수 주류는 싱가포르식 정치제도를 매우 선호한다.[26] 새로 만든 먼나라 이웃나라에는 '제대로 된 선거를 거쳐야지.'로 바뀌었다.[27]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불가리아와 독일의 관계도 딱히 좋다고 볼 수 없다.(자세한 건 먼 나라/안 좋은 사이, 폴란드 제2공화국 항목 참고하시길..)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나치 독일군의 협박에 의해 추축동맹에 참여하기도 했었고 추축국 시기에도 나치군의 주둔지 이하 취급을 받으며 차별적 대우를 받고 걸핏하면 불가리아에 주둔중이던 독일 나치 군 병사들과 장교들이 현지 주민들을 상대로 약탈하고 현지 여성들을 겁탈하고 욕 보이는등 만행이 엄청 심각하여 당시 불가리아 현지인들의 독일에 대한 감정은 그야말로 약탈자, 깡패 그 이상이었다.(이 때문인지 제2차 대전 말기 나치가 패하고 소련이 들어오자 차라리 사람 취급 안하고 약탈만 하는 나치군대 놈들보다는 그래도 해방자 자처하는 소련이 낫다고 자국민들 상당수가 소련군의 진주를 환호했을 정도였다.)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독일이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을 하려고 하자 불가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게 전쟁 피해를 입었던 체코나 폴란드 등 독일의 상임 이사국 진출에 반대하던 동유럽 국가들의 입장을 지지하며 독일이 제2차 세계 대전의 전범국가라는 명분을 앞세워 제2차 대전 당시 나치군이 저지른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와 같은 학살 만행들과 자국에서 자국민들에게 저지른 피해들을 문제 삼으며 독일이 유엔 상임이사국이 되는 것을 반대하기도 했었다. 게다가 2010년대 시리아 내전 발발로 시리아 난민들이 유럽 대륙으로 대거 밀려들어와 유럽 난민 사태가 발생하면서 독일이 중동, 터키와 지리적으로 근접한 세르비아, 불가리아, 마케도니아 등 동유럽 발칸반도 국가들에게 난민 수용을 요구하자 불가리아는 "차라리 돈 많고 더 잘 사는 독일 니네 나라가 받아주지.왜 우리 같이 먹고 살기 어려운 나라가 왜 이딴 무슬림 거지 자식들을 받아줘야 해!"라며 독일의 시리아 난민 수용 요구에 반대, 거부하기도 했다. 심지어 한 불가리아의 여대생은 자국 인터넷 사이트에서 "오스만 제국 때 500년 간 지배하며 착취, 학살 자행하던 터키도 싫지만 나치 시대에 강제로 동맹 조약 맺게 해서 우리나라를 전쟁터 쑥대밭으로 만들고 먹고 살기도 힘든 우리나라에게 전쟁 중인 시리아 피해서 유럽으로 도망쳐오는 시리아 전쟁 피난민들 받아들이라고 강요하고 자기나라 경제력을 악용해 우리나라 등 못 사는 동유럽 나라들에게 상전행세, 내정간섭하는 독일은 더 싫다"는 내용의 글을 작성했을 정도였다. 최근에는 유럽연합의 주도국 역할을 하며 동유럽 여러 나라들에게 내정 간섭을 행하는 독일에 대해 영 못마땅해하거나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커진 편이다.[28] 애초부터 오스트레일리아 자체가 오세아니아에서 별도의 대륙으로 분류될 정도로 크고 알래스카가 비록 미국의 주들 중 가장 크다고 해도 비교가 안 된다.[29] 심지어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도와주겠다고 필리핀을 이용해놓고 스페인이 물러나자 뒷통수를 때리고 독립운동하던 필리핀인들을 죽이고 필리핀을 식민지 합병하는 만행까지 저질렀다.[30] 먼나라 이웃나라 유럽판은 그나마 이원복이 유럽에서 유학하면서 얻은 '실제 체험'이 담겨있어 최소한의 진솔함은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 나온 중국, 일본, 미국은 현장답사와 미국 UC어바인 객원교수 근무 경력이 있었긴 하나, 데이터만으로 읊어낸 이야기다. 유럽 편을 쓸 때와는 달리, 미국편을 쓰면서는 편향적일 정도로 미국에 부정적이다.[31] 이두호, 박시백, 백성민, 오세영 등 역사만화 작가들도 전공이 다르긴 하나, 최대한 고증을 위해 온갖 자료를 섭렵했다.[32] 이것도 제대로 모르고 헛소리한 셈이다. 데즈카 오사무는 장편 TV애니에서 제작비를 아끼긴 했으나 극장판은 결코 제작비를 아끼지 않았다. 결국 무시 프로덕션이 재정난으로 문을 닫아야 하듯이 데즈카가 제작비 문제로 골치를 겪던 일을 깊게 파고들지 않고 티브이 애니 제작 쪽으로 이렇게 써댔는데 이러자면 사실 월트 디즈니도 똑같다. 비극장용 애니들을 중남미에 헐값으로 하청제작하게 하고 제작비를 아끼고자 필사적이었거늘. 즉, 둘 다 같은 문제라고 할 수있음에도 디즈니는 덮어 버리는 발언이다.[33] 만화평론가 손상익도 1998년에 낸 <한국만화통사> 하권 순정만화 파트에서 비슷한 주장을 했다.[34] 애니메이션의 원작인 이건 만화책이기보단 게임북에 가깝지만... [35] 인종차별, 피부색, 남녀차별, 빈부차가 없는 인터넷에 대한 낙관이 넘쳐나던 그 짤이 바로 어기 출처이다.[36] 이 책이 발행되기 1년 전부터 문익환서경원, 황석영, 임수경 등의 무단 방북 사건으로 반공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며 학생시위가 빈번함에 따라 대학가 서점에서 각종 재야계열 사회과학서적이 압수되던 시기였다.[37] 한국의 수많은 만화가들이 이사나 기타 여러 사정으로 원고 자체가 없어서 복간을 하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 지나친 처사라 생각될 여지가 많다.[38] 이원복 교수의 제자들로 구성된 채색 담당 일러스트레이터 그룹 '그림떼'의 리더이다.[39] 색동회의 일원이자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적 있는 아동문학가 겸 국어학자인 눈솔 정인섭을 기리기 위해 1985년에 색동회가 제정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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