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1994년
1. 참가팀
2. 드래프트
3. 개요
공식대회 명칭은 '94하이트배 코리안리그. 이 해 전북 버팔로가 처음 참가하였다. 초대 감독은 김기복으로 정해졌다. 그러나 재정문제로 인해 9월 4일 연맹 직영 체제로 전환하였다. 자세한 사항은 전북 현대 모터스 참조
일화 천마가 두번째 리그 우승을 달성하였다. LG 치타스의 윤상철 선수가 24골으로 득점왕을 차지하였다. 일화 천마의 고정운 선수가 10개 도움으로 도움왕을 차지하였다.
한국프로축구는 전통적으로 월드컵 버프를 받아서, 월드컵이 열리는 그 해에는 리그 열기가 뜨겁다. ('94, '98, '02, '06, '10) 특히 94 미국 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의 선전으로 월드컵 직후 재개된 프로축구는 많은 관중이 몰렸다. 특히 월드컵 때 눈부신 활약을 했던 태극전사들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고, 그 중에도 스페인전,독일전에서 중거리 슛으로 득점한 홍명보, 스페인전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넣은 서정원, 역시 스페인전에서 엄청난 돌파로 상대선수 나달을 퇴장으로 유도하며 본선 내내 저돌적인 드리블과 돌파를 했던 고정운 등은 국가적인 스타로 발돋움을 했으며 이들이 출전하는 경기에 많은 관중들이 모였다.
또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이 컸던 한 해 였다. 당시 포철의 라데는 득점 후 유니폼을 뒤집는 세레모니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고 (당시 KBS스포츠 뉴스의 메인 오프닝 화면에 한동안 계속 나올 정도였다) 일화천마의 사리체프는 신의손이라는 별명과 함께 일화 천마의 리그 2연패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이것은 다른 팀들에게도 영향을 끼쳐서 다음해 95시즌에는 리그 전체 8팀 중 무려 7팀의 골키퍼가 외국인선수로 기용되게 되고 이것이 수년 후 자국 골키퍼를 보호하자는 일종의 쇄국 정책으로 골키퍼 포지션에는 외국인 선수 영입 금지 로컬 규정이 생기는 원인이 된다.
독일 분데스리가 2부리그로 진출했던 김주성이 K리그로 복귀한 해 이고, 최용수가 LG치타스에 입단하여 신인왕을 받았다. MVP는 우승팀 일화 천마의 간판스타 고정운이 수상하였다. 하지만 당시 잦은 국가대표 차출로 팀 기여도가 동료 선수 신태용보다 낮았지만 (실질적인 MVP는 신태용) 월드컵 버프로 고정운이 수상하였고 수상식 직후 고정운이 신태용에게 미안했다라고 기사로 전해졌다.
4. 클럽 순위
- 승리 시 승점 3점, 무승부는 승점 1점을 획득한다.
- K리그 1994 시즌 우승,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1995 시즌 진출
- ⑴ 일화 천마는 K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 출전해 4위로 대회를 마감하였다.
- ⑵ 유공 코끼리는 리그컵(아디다스컵) 3회 대회에서 우승하였다.
5. 다른 시즌 보기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