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버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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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북 버팔로 '''
'''Chonbuk Bufallo Football Club'''
'''정식명칭 '''
전북 버팔로 축구단
'''영문명칭 '''
Chonbuk Bufallo Football Club
'''창단 연도 '''
1993년 1월 16일(31주년)
'''해체 연도 '''
1994년 11월 24일(30주년)
'''법인명 '''
(주)제7전북프로축구단
'''구단형태 '''
기업구단
'''소속리그 '''
코리안리그
'''연고지 '''
전라북도
'''구단명 변천 '''
완산 푸마 (1993.1.16~1993.11.3)
완산 제우 엑스터 (1993.11.4~1994.2.21)
전북 엑스터 (1994.2.22~1994.3.17)
'''전북 버팔로 (1994.3.18~1994.11.23)'''
'''홈경기장 '''
전주공설운동장
'''구단주 '''
문수기
'''감독 '''
김기복
'''마스코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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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팔로'''[2]
'''상징색 '''
'''파랑'''
'''유니폼 '''
'''흰색'''
'''클럽 기록'''
'''기타 '''
K리그 역사상 최다 연패 기록팀 (10연패)[3]
1. 개요
2. 창단
3. 선수단
3.1. 1군 명단
4. 시즌별 일람
5. 해단


1. 개요


전주시를 연고로 했던 축구단. 전주종합운동장을 홈경기장으로 사용하며 K리그에 참가했었다. 호남 지역 최초의 프로 축구단이었지만 창단 첫해에 바로 해체된 구단이다. 해체된 후 사실상 전북 현대 모터스가 승계했지만, 구단을 인수하지 않고 해체 후 재창단 하였으므로 공식적으로는 두 구단은 별개의 구단으로 구분되고 있다. 그러나 창단 초기 주축 선수들 가운데 전북 버팔로의 선수가 많았다는 점과 무엇보다 지역 연고가 일치한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계승 팀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버팔로 팀으로 인해 K리그 가입금 제도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4]

2. 창단


호남 지역, 그중에서도 전라북도를 연고로 한 프로축구단의 창단은 그야말로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1991년 국내 최초로 컨소시엄 형태의 프로축구단을 표방한 '''전라 진돗개'''팀이 출범을 선언했으나 자금 부족으로 처음 목표로 잡은 1992년 리그 참가가 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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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월 스포츠 용품 업체인 푸마를 끌어들이면서 '''완산 푸마'''[5]로 구단명을 변경하여 그 해 리그 참가를 노렸으나 구단을 둘러싼 악성 루머, 제 7구단 입단이 예정된 선수들의 드래프트 거부 등으로 곤란을 겪었다. 이로 인해 황선홍[6]은 완산에 지명되었지만 이흥실 등의 선수들을 상대로 한 사상 초유의 4+4 이적 및 트레이드 합의로 포항 아톰즈에 입단하게 된다. 완산 푸마는 결국 선수 등록 시한을 지키지 못하고 리그 참가를 이듬해로 연기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선수단 월급을 체불한 사실이 알려졌다. 정확히는 월급이 현찰이 아닌 어음으로 지급되었고 이게 부도처리가 되면서 선수 등록 시한을 어겼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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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1일 메인 스폰서가 PC 생산 업체였던 제우정보로 교체되며 구단명이 '''제우 엑스터'''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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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적으로 1994년 2월 16일 법인 설립과 동시에 다시 구단명을 '''전북 버팔로'''로 변경하며, 같은 해 3월 보배주조[7] 대표인 문수기 구단주가 재정을 책임지는 조건으로 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창단 승인을 받게 되어 힘겹게 1994년 K리그에 참가할 수 있었다.[8] 초대 감독은 김기복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3. 선수단



3.1. 1군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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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버팔로 1994시즌 선수단'''
[ 펼치기 · 접기 ]
번호
이름
포지션
국적
생년월일
신체조건

김동훈
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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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9월 11일
180cm / 78kg

성원종
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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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9월 27일
185cm / 79kg

임학양
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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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8월 25일
183cm / 78kg

이태형
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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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9월 1일
173cm

김경래
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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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3월 18일
173cm / 64kg

정한호
MF
[image]



문영래
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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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3월 6일
188cm

이태훈
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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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6월 7일


주경철
F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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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2월 22일
174cm / 68kg

유승관
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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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1월 12일
175cm / 73kg

백송
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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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8월 15일
170cm / 62kg

이주영
MF
[image]



김영진
DF
[image]



강원길
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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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3월 17일
176cm / 75kg

노주섭
DF
[image]



성은준
DF
[image]
1970년 8월 20일
180cm / 78kg

이승규
DF
[image]
1970년


장기정
DF
[image]



오유진
DF
[image]



이경춘
DF
[image]
1969년 4월 14일
183cm / 76kg

이종훈
FW
[image]
1970년 9월 3일
179cm / 76kg

김용훈
FW
[image]



정민
FW
[image]
1970년 11월 29일
181cm / 75kg

김성호
FW
[image]
1970년 5월 16일
175cm / 66kg

김영섭
FW
[image]



당시 정확한 등번호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K리그 기록실에는 경기마다 번호가 다른것으로 작성됨.

※ 주의 이 틀은 기기 환경에 따라 볼 때 상당히 길 수 있습니다.

4. 시즌별 일람



[image]
'''전북 버팔로'''
'''시즌별 일람'''
}}} ||
'''시즌 '''
'''결과 '''
'''리그 '''
'''순위 '''
''' 경기 '''
''''''
''''''
''''''
''''''
''''''
''''''
'''승점 '''
1994
코리안리그
'''7위'''
30
3
5
22
30
62
-32
14
아디다스컵
'''6위'''
6
2
0
4
7
15
-8
6

5. 해단


구단의 만성적인 자금 부족 문제는 시즌 중에도 선수단에게 고스란히 부담으로 전가되어 훈련장은커녕 선수단 숙소도 마련하지 못했고,[9] 홈 경기 수입으로 원정 비용을 마련하는가 하면 담당 기자들이 출장비를 모아 전북 버팔로 선수단의 식사비를 마련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국가대표 선수들을 비롯한 다른 구단 선수단에서 전북 버팔로를 돕는 모금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김기복 감독은 경기의 승패 문제보다, 경기 후 선수들을 어디로 데려가서 먹이고 재워야 하나 같은게 더 문제였다고 얘기했다.
[image]
당시 구단주였던 문수기 보배주조 대표는 사비를 4억원이나 들여 구단을 지원했으나 결국 힘에 부치기 시작했고, 메인 스폰서였던 보배주조 내부에서도 전북 버팔로 지원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가 많았다.[10] 결국 1994년 9월 6일 연맹 이사회에서 구단 해체를 전제로 그 해에 한하여 전북 구단의 운영을 맡는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즉 이 때부터 동년 11월 12일 일화전을 마지막으로 해체할 때까지 전북 버팔로는 K리그 역사상 전무후무한 연맹 직영 구단이었다.
시즌이 끝난 후 현대자동차의 협력업체인 현양이 전북 버팔로의 선수들과 계약하여 1994년 12월 12일부터 '''전북 다이노스'''라는 새로운 구단으로 출범하게 되었다.[11] 이때 전북 버팔로 구단은 직접 인수되지 않고 해체 후 재창단 형식으로 갈곳 없는 선수들만 다이노스에 받아들이는 형식이 되었는데[12] 이는 당시 신인 드래프트에서 신생 팀에게 주어지는 특혜를 노린 결과로 보인다.

[1] 참고로 해당 로고는 한동안 사진조차 제대로 남아있지 않아 임시로 복원한 로고를 사용했으나, 한 축구 팬의 노력으로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블로그 참조.[2] 따를 수 없는 힘과 고고한 정의로움이 함께 교감하는 이름-버팔로!
결속을 지향한다! 결코 흩어지지 않는 버팔로의 단단한 속성처럼 승리만을 쟁취한다!
거친 벌판을 질주하는 버팔로의 강인한 자태를 이어받아 지혜롭게 승부한다!
힘을 삭힐때와 내뿜을때를 바로 아는 버팔로의 영리함을 닮아 시선을 독차지한다!
발딛는 곳마다 활기를 쏟아붓는 버팔로의 힘찬 매력처럼 경기장 마다에서 벌이는 힘찬 걸음질,
각자의 역량보단 팀의 존엄성을 우선하는 곹추, 힘겹더라도 포기할 줄 모르는 강한 불굴의 투지,
버팔로 축구단의 뛰는 경기장에서 직접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3] 2012년 상무의 리그 보이콧으로 인한 14연패 제외. 2024-12-17 20:11:27 기준까지 깨지지 않았다.[4] 2002년 대구부터 시민구단들이 창단하면서 완전히 무시하고 있으며, 연맹도 안 지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유일하게 지킨 시민구단이 광주 FC. 사실 광주도 상무 유치 당시 향후 시민구단 창단을 조건으로 연맹 승인을 받은거라 낸 거였지 상무라는 중간과정이 없었으면 똑같이 안 내고 버텼을 것이다.[5] '완산'은 전주의 옛 지명인 완산주에서 따온 명칭이다. 완산이라는 이름은 현재도 전주시 남부지역의 일반구 명칭으로 남아 있다.[6] 사실 이런 식으로 신생 팀의 지명을 피해 우회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대의의 경우 대전 시티즌에 지명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3년 뒤에 귀국해 성남 일화 천마의 지명을 받는다.[7] 지금은 사라진 전북 연고의 주류업체로 전북지역 소주였던 '보배소주'를 만들어 팔았다. 아랫동네 연고 주류업체인 보해양조와는 다른 회사다. IMF 외환위기 이후 경영난을 겪었고 하이트진로가 이 회사의 권리를 인수한 뒤 2013년 합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8] 이 과정에서 메인 스폰서인 제우정보의 후원 금액이 당초 알려진 12억이 아닌 3억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9] 선수들이 텐트촌에서 자고 식사를 텐트촌 바닥에 돗자리판 깔고 해결하는 일도 있었다.[10] 당시 보배주조도 자금 사정에 큰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전북지역의 열악한 시장성 탓에 지역 주류업체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경영 여건에 놓였고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존폐의 위기에 몰릴 정도로 흔들리고 만다. 결국 하이트진로에 인수 합병돼 사라졌다.[11] 김덕중, '잊혀진 K리그 제7 구단', 《스포츠 2.0》제91호(2008.2.18); 홍재의, <K리그 꿈의 구장> 제9, 10탄 '전주종합운동장'편.[12] 다른 종목에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팀이 만들어진 사례가 있다. KBO 리그SK 와이번스히어로즈다. SK 와이번스는 전북 연고팀 쌍방울 레이더스가 해체된 후 개별 계약 형태로 선수단을 인수하면서 새 구단을 창단했고 히어로즈 역시 현대 유니콘스의 해체 이후 유니콘스 선수단을 승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