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CESS PRIN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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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멤버
3. 활동 이력
4. 대표곡
5. 싱글 목록


1. 소개


프린세스 프린세스(PRINCESS PRINCESS)는 1987년부터 1996년까지 활동한 일본의 1세대 걸즈 록 밴드이다.[1]
주로 '프리프리'라는 줄임명으로 불렸다. 공식 페이스북 계정

2. 멤버


  • 오쿠이 카오리(奥居香) - 보컬&기타
    • 1967년 2월 17일생으로 멤버들 중에선 막내이지만 수많은 곡을 작곡하는 등 제일 많은 활동을 펼친 멤버이며 메이저 데뷔 당시 만 20세였다.(후술할 아카사카 코마치까지 고려한다면 만 16세 때 데뷔.)
    • 배우인 키시타니 고로(岸谷五朗)와 결혼하여 이름을 키시타니 카오리(岸谷香)로 바꾼다.
  • 나카야마 카나코(中山加奈子) - 기타&코러스
  • 와타나베 아츠코(渡辺敦子) - 베이스&코러스&리더
    • 1964년 10월 26일생으로 멤버들 중 제일 나이가 많았던 멤버.(프리프리로 데뷔 당시 23세)[2]
    • 현재는 음악 학원의 부교장이다.
  • 토미타 쿄코(富田京子) - 드럼
  • 콘노 토모코(今野登茂子) - 키보드&코러스
    • 1965년 7월 15일생.
    • 1989년 전자악기 회사 Roland신디사이저 'D-5'의 광고 모델이었고(정확히는 카탈로그 모델), 상당히 외모가 출중한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1994년 영화의 주연을 맡았다.
    • 콘노가 스테이지에서 사용한 신디사이저를 알고 싶다면 이 사이트 참조.

3. 활동 이력


'''프린세스 프린세스(이하 프리프리)'''는 1983년에 처음 결성된 '赤坂小町(아카사카 코마치)'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멤버들은 TDK 레코드에서 주최한 여성 밴드 오디션에서 뽑히게 되었다. 상기의 멤버들이 그대로 프리프리의 주축이 된다. 이 명의로 싱글을 하나 발매하였고[3], 아이돌스러운 활동이 잦았기 때문에 1985년에 밴드명을 'JULIAN MAMA'로 바꾸었다. 그러나 앨범의 발매는 없었다.
그리고 1986년 밴드명을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고 메이저 데뷔를 꾀하였다. 이 시기 사무소를 이적하기 위해 오디션을 보았으나 원래의 사무소가 프리프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점이나 오디션의 반응이 영 좋지 않은 이유로 이적은 불발.
하지만 후에 그녀들의 버팀목이자 매니저가 되는 이치무라 에미코는 그녀들의 라이브를 보고 "이 아이들은 반드시 잘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여 사장을 설득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몇 개월 뒤 서로 간의 합의에 의해 사무소를 이적할 수 있었다.
1988년부터 세번째 싱글 <MY WILL>이 스포츠 용품의 CM송으로 쓰이면서 주목을 받게 되고 그녀들의 곡이 메이저 음악 방송과 게츠쿠 드라마의 주제곡 등으로 쓰이는 등 점차 대중적인 지명도와 인기를 얻게 된다.
1989년엔 여성 밴드 최초로 무도관 라이브가 행해졌으며 그녀의 대표곡이 되는 '''<Diamonds>'''가 오리콘 차트 1위와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며 대히트. 성공한 아티스트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이 곡으로 일본 유선 음악 대상을 받고 그 해의 홍백가합전 출연 의뢰도 들어오게 되지만 스케줄이 너무 바쁜 이유로 불발되는 등 커다란 인기를 얻게 되었다.[4]
이와 함께 과거에 낸 음반들도 주목을 얻어 EP판으로 발매한 적이 있던 2번째 싱글 '''<世界でいちばん熱い夏(세상에서 제일 뜨거운 여름)>'''의 CD판을 내고 또 한번 대박 히트. 이 곡은 현재까지도 여름을 대표하는 노래로 자리잡고 있다. 이후에도 청춘을 노래하는 음악들로 계속해서 인기를 얻지만 95년 돌연 해산한다는 뜻을 밝혔는데, 해산의 이유로써 오쿠이가 말하길 "예전에는 곡을 쓸 때 곡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처럼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단박에 써졌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곡을 쓸 때 깊이 생각하게 되면서 고민하게 되었다.", "친구로 남은 그대로 해산하고 싶다."는 의견을 비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토미타는 해산하고 싶지 않았기에 멤버들에게 몇 번이나 전화를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프리프리는 1996년 5월 31일까지의 라스트 투어 콘서트를 끝으로 해산.[5]
해산 후엔 각자 음악 학원의 부사장, 드럼 강사, 타 아티스트들에게 가사와 곡을 제공.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까지 한 명의 멤버도 빠짐없이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프리프리의 평가를 높게 인정하고 있다.
오쿠이와 타 멤버들은 아이돌인 마츠다 세이코, 우치다 유키, 히로스에 료코, 사카이 노리코와 가수들에게 많은 곡을 만들어 주었다. 그녀들의 곡은 YUI, 야마자키 마사요시, 츠루노 타케시, 마나 카나, 타마키 나미 등의 많은 후배 가수들이 커버하였다.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 은퇴 10년 기념 DVD 앨범이 발매되었으며 일본의 촉망받는 여성가수들을 중심으로 PRINCESS PRINCESS CHILDREN이라는 트리뷰트 앨범이 발매되었으며 이 앨범에는 윤하가 DIAMONDS로 참가하였다.
여담으로 프리프리 활동 당시인 1989년 일명 '밤의 히트 스튜디오[6] 소동'이 일어났는데 방송 사회자로 새로 들어온 카가 마리코가 오쿠이에게 "돼지", "생리중 아냐?"라는 발언을 했다. 오쿠이는 방송이 끝난 당일 라디오에서 분노. 멤버들의 애인들 사진이 찍힌 주간지가 발매된 직후에는 카가 마리코가 멤버들에게 생방송 중 애인드립(…). 또 다시 오쿠이는 라디오에서 초분노. 그 사건으로 멤버들이 방송을 보이콧하는 일이 발생했다.
2012년 4월 8일 정열대륙에서 해체 후 16년, 아주머니들이 된 멤버들의 재결성 모습을 방송해 주었다(!) 도호쿠 대지진 자선활동을 위해 1년 한정으로 재결성하기로 했다고. 여세를 몰아서 2012년에 63회 NHK 홍백가합전에도 출전하여 Diamond를 피로하였다.

4. 대표곡



  • 世界でいちばん熱い夏(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여름)

  • Diamonds

  • 19 GROWING UP

  • M
    • 드럼 담당인 쿄코의 실연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곡이다.

  • 世界でいちばん熱い夏
    • 2008년, 나가세 미유 버전. 드럼과 베이스가 원 프리프리 멤버인 토미타 쿄코와 와타나베 아츠코다.

5. 싱글 목록


  • 1987년 - 恋はバランス(사랑은 밸런스) / ソーロング、ドリーマー(so long dreamer)
  • 1987년 - 世界でいちばん熱い夏(세상에서 제일 뜨거운 여름) / ヴァイブレーション(바이브레이션)
  • 1988년 - MY WILL C/W KEEP ON LOVIN'YOU
  • 1988년 - 19 GROWING UP C/W WONDER CASTLE
  • 1988년 -GO AWAY BOY /恋のペンディング(사랑의 펜딩)(Version 2)
  • 1988년 - GET CRAZY! / ひとりじめ(독차지)
  • 1989년 - Diamonds <다이아몬드> / M
  • 1989년 - 世界でいちばん熱い夏 (헤이세이 버전)
  • 1990년 - OH YEAH! / パパ(파파)
  • 1990년 - ジュリアン(줄리앙) / ROCK ME
  • 1991년 - KISS / バラ色の人(장미빛 인생)
  • 1991년 - SEVEN YEARS AFTER / I LOVE YOU〜窓辺にて(창문가에서)〜
  • 1992년 - ジャングルプリンセス(정글 프린세스) / 空より海より(하늘보다 바다보다)
  • 1993년 - だからハニー(그러니까 허니) / ときめく頃を過ぎても(두근대던 때를 지났어도)
  • 1993년 - ふたりが終わる時(두 사람이 끝날 때) / さよならダーリン(안녕 달링)
  • 1994년 - THE SUMMER VACATION / 片想い(짝사랑)
  • 1995년 - Birthday Song / 悲しみのある風景(슬픔이 있는 풍경)
  • 1995년 - Fly Baby Fly / 純愛(순애)
  • 1996년 - 夏の終わり(여름의 끝) /青春デイドリーム(청춘 데이드림)
[1] 이는 초창기 대성하던 1세대 밴드들 중 일환이란 뜻으로, 이전에 걸즈 록을 창시하던 밴드로는 ZELDA라는 밴드가 따로 있었다.[2] 참고로 나카야마보다 생일이 정확히 1주일(…) 빠르다…[3] '코알라 보이 코키'라는 애니메이션의 오프닝&엔딩 OST였다. 결국 아카사카 코마치는 애니송을 부르기 위한 프로젝트 그룹이었던 것.[4] 여담으로 이 해(1989년) 신인상은 X가 받았다.[5] 콘서트의 캐치프레이즈는 '''해산을 즐기자.''' 근데 이 콘서트 포스터 사진이 멤버들이 줄에 포박당해있는 컨셉이었기 때문에 클레임이 들어와 얼마 못 가 철거했다고…[6] 당시의 유명한 음악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