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DT

 

Underwater Demolition Team
1. 개요
2. 미 해군의 수중 폭파대


1. 개요


정식명칭은 수중파괴대다.
현대 수중 침투/파괴 전략의 토대는 2차대전 당시 이탈리아군이 쌓았다. 2차대전 당시 이탈리아군 중 군계일학급의 맹활약을 펼친 부대들이 아리에테 사단이나 폴고레 공수사단 등 몇 있었는데 이 중 하나가 레지아마리나(이탈리아 해군)의 잠수부 수중 습격, 공작 부대인 줄여서 흔히 라 데시마, 혹은 X (로마 숫자의 10을 뜻한다. 열번째라는 뜻) MAS (Mezzi d'Assalto, 즉 강습함정이란 뜻이다) 라고 부르는 제 10 강습소함대, Decima Flottiglia MAS였다. 알렉산드리아 항구 습격, 지브롤터 해협 등에서 상당한 전과를 올린 이들은 이탈리아 왕국 항복 이후 연합군으로 돌아 선 이탈리아 왕국군 해병대와 친무솔리니 잔당인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파로 나뉘어 싸우다가 종전 후 해체되었다. 이들이 사용한 인간어뢰인 마이알레는 이후 특수부대들의 수중 침투용 잠수정의 모티브가 되었다.

2. 미 해군의 수중 폭파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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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8월 15일에 창설되어 제2차 세계 대전, 6.25 전쟁, 베트남 전쟁 등에 참전했다.
2차 세계대전 때 해상/해중 특수작전을 벌였던 미 특수부대가 이 UDT 외에도, 같은 1942년에 창설된 해군 NCDU[1]와 Scouts & Raiders[2]가 별도로 병행해서 있었는데, 전후에 NCDU와 Scouts & Raiders가 해체되고 이 소속 부대원들이 UDT로 흡수되어 일원화 되었다.
그리고 이 UDT(수중 폭파대)를 모태로 1961년에 네이비 씰(해군 특전대)이 만들어졌고 1962년 1월에 정식으로 창설되었다.
한국 해군의 UDT/SEAL에 영향을 준 부대이다. UDT/SEAL 역사기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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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한민국 해군의 특수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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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지휘부에서는 한국 UDT가 창설되기 전 제2차 세계대전 및 한국전쟁 시 미군의 전쟁수행 핵심전략인 상륙작전을 실시하기 위해 적 해안정찰, 첩보획득, 해상정찰, 내륙기습폭파공작, 해안장애물 제거, 기뢰탐색 및 소해, 유격대 및 요인호송, 특공대 철수지원 및 수중파괴 임무를 수행하며 큰 활약을 보인 미 해군 UDT를 모체로 하여 창설을 준비하였다. 이에 따라 미 해군 UDT의 선진 교육을 통한 작전개념 정립과 차기 국내에서 배출해야 될 UDT 요원들의 교관 확보와 더불어 임무수행에 필요한 장비 획득이 우선시 되어 1954년과 1955년에 해군 내 국가관과 군인정신이 투철하고 체력이 우수한 대원을 공개 모집, 미 8군 주도의 영어시험을 거쳐 최종적으로 장교 3명과 사병 4명 등 총 7명을 최종 선발하기에 이르렀다. 해군은 선발된 7명을 두 차례로 나누어 미 해군 UDT 과정(B-6)에 유학을 보냈고 장인표 대위 등 7명 전원이 소정의 미 해군 UDT 과정(B-6)을 수료하여 한국 해군 UDT가 탄생되었다.[3]
해군 특수전전단 문서 참조.

[1] Naval Combat Demolition Units. UDT와 임무가 같은 수중폭파부대[2] 미 육군과 해군의 합동부대로서, 유럽과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적해안 타격작전을 수행하던 부대이다[3]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