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근철
1. 개요
대한민국의 은퇴한 카운터 스트라이크 프로게이머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활동했으며 한국 카스를 대표했고 아시아 카스 최고의 레전드인 선수이다. 아이디인 solo는 본인이 개인플레이를 선호해서 그렇다는데, 실제 게임 하는 거 보면 전혀 안그런 걸 봐서 그냥 별 뜻 없이 짓고 대충 인터뷰에서만 그렇게 둘러대는 것 같다.
중학교 때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처음 접했다. Lunatic-Hai의 전신인 MaveN에서 활동하다가 WEG 2005를 위해 구성된 프로젝트팀인 Project_kr에 입단하여 프로게이머 활동을 시작했다.
1.6 선수 생활을 끝낸 후에는 게임 기획자로 게임사에서 근무하다가[2] 2016년 MVP PK 글옵팀에 입단하여 프로게이머 활동을 하였다. 2019년에 팀에서 나와 은퇴하였다.
발로란트에서 'PROPARTY'라는 팀에 옛날 위메이드폭스부터 함께한 peri, MVP Project 출신 Sound, pk의 CS:GO 클랜원인 allow 등 pk 출신을 주축으로 해서 대회에 출전하는 것이 확인된다. 첫 상대로 하필 현재 아마추어씬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팀 중 하나로 꼽히는 VAC kimchi를 만나서 그대로 탈락했고 다음 시즌에도 첫 상대로 TUBEPLE Gaming을 만나서 또 탈락하는 나쁜 대진운을 겪고 있다.
하지만 며칠 후 설해원 Prince에서 개최한 초청대회에서 Quantum Strikers라는 거물을 상대로 매우 아슬아슬하게 승리를 거두는[3] 좋은 모습도 보여주면서 가능성을 남겼다.
점점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더니 사실상 발로란트 메이저라고 할 수 있는 'First Strike'의 한국선발전 예선에 해당하는 대회인 클랜배틀 막바지에 준우승으로 8강에 합류했고, 한국선발전에서도 8강 방어에 성공하는 호성적을 기록했다.
2. 경력 및 플레이 스타일
MaveN에서 project_kr로, 말 그대로 프로젝트팀이라 그냥 용병으로 갔을 테지만 이 한 번의 대회가 대박이 터지자 그대로 완전히 이적했다. 정확히 말하면 메이븐은 팀이 아닌 클랜이었던 시절이니까 이적이라는 말이 다소 안맞지만 어쨌든 아예 새 둥지로 옮겼다. 이때 원래는 또다른 메인오퍼였던 termi[4] 가 완전히 라이플러로 포지션을 변경하고 본인은 메인오퍼가 되었고 동시에 천부적인 재능이 뛰어난 것을 알아본 팀원들에 의해 세컨오더[5] 를 겸하게 되었다.
이후 기존 오더였던 ryu가 갑자기 은퇴하자 세컨오더였던 본인이 그대로 메인오더까지 하게 되었는데 CS:GO에서도 그렇지만 CS1.6에서는 집중력을 극한까지 쥐어 짜내면서 플레이하는 포지션인 오퍼가 오더를 겸하는 것은 부담이 너무 심하고 그 만큼 리스크도 커서 일부 독특한 팀이 제외하면 오더는 라이플러가 맡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결국 pk가 그 독특한 팀의 대표적인 케이스로 남았다.[6] 원래 샷발이 미친듯이 뛰어나서 'asian monster'[7] 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고 그 만큼 에임에 의존하는 성향이 짙었으나 이 때부터 기본기 위주로 플레이 스타일이 크게 바뀌었고, 오더를 맡은 초기엔 예상대로 그 뛰어났던 퍼포먼스가 꽤나 흔들렸으나 끈질긴 노력 끝에 세계 최고의 오더 중 하나가 되었으며 pk 만의 예측 불가능한 공격적인 팀 컬러를 만들어냈다.[8]
오더를 하면서도 본인의 퍼포먼스 역시 상당히 회복해서, 다른 팀의 경우 오더들의 인게임 기여도가 낮은 편이지만 solo는 말년까지 개인 퍼포먼스가 문제 되거나 기복이 요동치는 일 없이 항상 잘했다. 세계 최강 수준의 저격과 오더를 한 번에 보여주는데 이 인간이 라이플까지 잘 다뤘으니 진짜 괴물소리 들을 만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엔 샷발과 센스를 내세우는 북미, 탄탄한 조직력으로 운영을 중시하는 유럽과 구별되는 아시아팀의 특징은 강한 공격성과 전략의 다양성이었는데 pk는 이게 매우 극단적이었다. 어느 스타일이든 너무 치우치면 안정성도 부족하고 프로씬에선 특히 금방 분석당해서 반짝 뜨고 말텐데, pk는 그러면서도 '''엄청나게 잘했다.''' 공격적으로 플레이하면 필시 방어가 느슨할 것이고, 너무 전략적인 플레이만 하다보면 분명히 헛점이 드러난다는 건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도 당연한데도 pk의 경우 꼭 상대의 머리 꼭대기에 있다는 듯이 상대의 반격에 대응이 너무 적재적소에 완벽하게 딱 맞았다.
물론 이기기만 한 건 절대 아니고 위폭 막바지의 WEM 2010에서 우승할 때 까지 만년 콩라인에 머물렀듯이 마냥 최강으로만 군림한 건 아니었는데, 그래도 언제나 세계 랭킹 상위 10위권에 한 번 들어간 이후로는 위폭 해체 까지 거의 벗어난 적이 없었고 경기를 보면 그냥 잘했다. 전략을 내세운다고 해서 운영이 부실한 게 아니라 오히려 유럽 최상위권 팀을 무난하게 포지션 싸움으로만 압살하기도 하고 샷발은 뭐 솔직히 당시 북미 최강이라던 Evil Geniuses & compLexity 보다 잘 쐈다... 그냥 엄청 잘하는 팀이 과감하고, 전략도 천재적으로 잘 짰던 거다. 이게 다 Hacker.PK 부터 오더를 해온 solo가 만들어낸 팀의 전력이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어릴 때 잠깐을 제외하면 샷발은 그저 그랬던 termi의 숨겨진 기본기를 끄집어내서 최고의 조커 공격수로 탈바꿈 시키고, 반대로 샷발은 무지막지 한데 센스가 부족했던 bail[9] 을 팀의 공격적인 성향에 최적화하여 그 샷발을 적에게 휘둘리지 않고 온전히 게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AWP는 원래 잘 쏘니 넘어가더라도, 라이플 실력도 좋아서 위폭 시절 팀의 슬럼프 원인으로 지목된 전문 라이플러 멤버인 Garsia(LSW)[10] 보다 더 잘하는 것 같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냥 잘했던 선수, 한때 유명했던 선수 같은 개인사에 가까운 묘사가 아니라 정말 위대한 선수였다는 표현이 전혀 틀리지 않았던 선수였다. 루나틱하이가 허무하게 해체하고 중국 조차 wNv.cn의 패망 후엔 과거 중국의 명성은 사실상 타이루 외엔 유의미한 성적이 없으니 이름만 남아서 몰락해가는 중에도 그 타이루와 함께 '아시아 카스는 여전히 세계 최강급'이라는 억지를 계속 외칠 수 있게 해준 한국 유일의 카스 프로팀이자 세계 최강자들 중 하나였고 그 핵심은 당연히 solo였다. 군대에 들어가서 은퇴한 이후로도 CS1.6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자 하는 전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관련 업계에조차 모습을 비추지 않는 것을 아쉬워했고, 폐쇄적인 한국 이스포츠 환경 상 서로 닿지는 못했지만 solo의 팬은 외국에 훨씬 많았다. CS:GO로 복귀했을 때 크게 핫이슈가 터졌던 이유는 한국 카스의 부활이라는 의미와 함께 solo만이 가진 그 상징성과 그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나이 먹고도 나쁘지 않은 실력을 보였지만 결국 세월을 이길 수는 없었다. 어린 팀원들과 본인을 스스로 비교하게 되는 건 당연한 것이고 아무리 소싯적 무서울 것 없이 날뛰던 아시안몬스터라도 이미 나이가 30을 넘은 자신의 한계를 보지 못했을 리가 없다. 은퇴를 준비하겠다고 FA 선언과 함께 탈퇴를 했었는데 이번에도 그 때 처럼 똑같이 어디 코치라도 들어가려는 기미 조차 보이지 않으니까 팬들이 답답해 미치는 것이다. 겨우 그 정도만 하다가 사라질 인물이 아닌데 하면서. 이미 카스라는 게임, 이스포츠로서의 카스에 solo라는 이름은 한 켠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역사에서 없애려야 없앨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3. 수상 기록
[1] solo 경력 상금[2] 이때 제작한 게임이 블랙스쿼드. 시스템디자이너였다고 한다.[3] 2:0으로 패배 없이 격파하긴 했지만 라운드 스코어는 두 경기 모두 13:11로 정말 간발의 차로 이겼다.[4] 현 Vision Strikers 헤드코치[5] CS1.6 대회들은 대부분 사망한 플레이어에게 라운드 종료까지 모든 의사소통을 금지 시켰기에 오더가 일찍 사망한 라운드에만 잠깐 대신 오더를 내리는 플레이어이다. CS:GO에서는 사라진 포지션이다.[6] 나중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나머지 팀원들은 걱정을 많이 했지만 은퇴하는 ryu가 마지막으로 'solo는 진짜배기니까 꼭 오더를 시켜야한다' 라면서 신신당부를 했다고 한다. 이게 진짜라면 팀을 떠나는 맏형의 마지막 당부가 신의 한 수로 돌아온 것이다.[7] 원래는 fucking monster인데 공개적으로 쓸 때 대체하기 위해 순화시킨 것 이다. 상대하는 입장에서 욕 나올 정도로 잘했던 것이다.[8] 그러면서도 세계 최고의 오퍼 중 한 명이기도 했는데, 아시아에서는 루나틱하이의 'okju', TyLoo의 'Mo'와 함께 3대 오퍼였다. 서양까지 포함해도 '세계 최고의 오퍼 5명을 꼽으면?'이란 질문에서 solo는 위메이드 폭스 시절까지 어김없이 끼었다. AWP가 1.6에선 더욱 까탈스러운 무기인 만큼 나머지 오퍼들은 실력 판단의 기준에 샷발의 비중이 큰 반면 solo는 '오퍼는 이런 역할, 이런 플레이를 해야 한다'는 기본기 측면이 크게 부각됐다.[9] 현 Quantum Strikers 헤드코치. 당시에 '우리나라에서 AWP을 가장 잘 쏘는 사람은 솔로, 나머지 모든 총은 바일'이란 식으로 찬양받았다. 약간 pk를 띄워주던 FPS Korea에서 나오던 얘기였던 걸 감안해야겠지만 아무튼 bail은 라이플러 중에서 독보적으로 잘 쏘는 선수라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나이를 먹은 후엔 이런 이미지는 peri가 가져갔다.[10] 물론 서울진화 이후로 가끔 카온 대회 나온 것 말고는 게임을 거의 안하다가 온 거라 전성기 실력을 되찾을 만한 적응시간이 없었던 게 가장 큰 탓인 거 같지만... 아무튼 원래 자신의 자리에 있었던 ari가 워낙 잘하다가 갑자기 나간거라 팬들이 비교를 안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