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노서동 금귀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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慶州 路西洞 金製耳飾. 삼국시대 신라에서 만들어진 금제 귀걸이 한쌍.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보물 제455호로 지정되어 있다.
길이 9cm, 지름 3.4cm.
경주 노서동 215번지 고분[1] 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금귀걸이로 제작 연대는 명확하진 않지만 대략 5~6세기(서기 400~500년대) 사이로 추정된다. 현재 대한민국 보물 제2001호로 지정되어 있는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와 비슷한 양식의 작품이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 4월 3일 경주읍 노서리(현 경주시 노서동) 215번지에 살던 주민 김덕언이 처음 발견한 것으로, 경주경찰서의 보고를 받은 조선총독부 학무국에서 조선총독부박물관 고적조사촉탁인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를 보내 추가로 발굴한 것이다. 김덕언이 발견한 것이 금귀걸이 한 점과 은팔찌 한 쌍, 금반지와 은반지 각 한 점씩과 금구슬 서른세 점이었고, 아리미쓰 교이치가 추가로 발굴한 것이 금구슬 마흔네 점과 굽은옥, 대롱옥, 귀걸이, 금팔찌, 은팔찌 각각 한쌍이었다. 이후 조선고적연구회가 보관하고 있었으나 1934년 8월 23일 조선고적연구회 이사장이자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이었던 이마이다 기요노리(今井田淸德)가 이때의 유물 대부분을 일본으로 몰래 반출하였다.
시대의 아픔이 묻어있는 유물로 이때 귀걸이 한쌍 중 하나도 일본으로 무단 반출되었다. 그러다 1965년에 체결된 한일협정에 따라 이듬해인 1966년에 이 귀걸이 하나가 반환되어 다시 짝을 되찾게 되었다.
경주 노서동 금목걸이, 경주 노서동 금팔찌와 셋트이다. 신라시대 고분에서는 이러한 태환식 귀걸이가 자주 발견되는데, 이 작품은 국보 제90호 경주 부부총 금귀걸이나 보물 제557호 금귀걸이와는 달리 귀걸이내의 장식문양은 없지만, 신라의 정교한 황금 세공 기술을 보여주는 유물로, 신라시대 금세공기술 및 금속공예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대한민국의 유물 관리가 부실함을 꼬집을 때 나오는 대표 사례 중 하나이기도 한데, 위와 같이 귀걸이 하나가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반출되었다는 사실이 기록상에 버젓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담당자들이 이를 전혀 파악하지 못해 현재 보물 제2001호로 지정되어 있는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를 이 노서동 금귀걸이로 착각하여 보물 제455호로 지정해놓고 있었다. 2009년에서야 이를 파악하고 보물 지위에서 해제한 후, 2018년 문화재청이 드디어 원래 노서동 금귀걸이를 보물 제455호로 다시 지정하고 기존 보물 제455호로 지정되어 있던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를 새롭게 2001호로 지정하였다.
1. 개요
慶州 路西洞 金製耳飾. 삼국시대 신라에서 만들어진 금제 귀걸이 한쌍.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보물 제455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내용
길이 9cm, 지름 3.4cm.
경주 노서동 215번지 고분[1] 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금귀걸이로 제작 연대는 명확하진 않지만 대략 5~6세기(서기 400~500년대) 사이로 추정된다. 현재 대한민국 보물 제2001호로 지정되어 있는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와 비슷한 양식의 작품이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 4월 3일 경주읍 노서리(현 경주시 노서동) 215번지에 살던 주민 김덕언이 처음 발견한 것으로, 경주경찰서의 보고를 받은 조선총독부 학무국에서 조선총독부박물관 고적조사촉탁인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를 보내 추가로 발굴한 것이다. 김덕언이 발견한 것이 금귀걸이 한 점과 은팔찌 한 쌍, 금반지와 은반지 각 한 점씩과 금구슬 서른세 점이었고, 아리미쓰 교이치가 추가로 발굴한 것이 금구슬 마흔네 점과 굽은옥, 대롱옥, 귀걸이, 금팔찌, 은팔찌 각각 한쌍이었다. 이후 조선고적연구회가 보관하고 있었으나 1934년 8월 23일 조선고적연구회 이사장이자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이었던 이마이다 기요노리(今井田淸德)가 이때의 유물 대부분을 일본으로 몰래 반출하였다.
시대의 아픔이 묻어있는 유물로 이때 귀걸이 한쌍 중 하나도 일본으로 무단 반출되었다. 그러다 1965년에 체결된 한일협정에 따라 이듬해인 1966년에 이 귀걸이 하나가 반환되어 다시 짝을 되찾게 되었다.
경주 노서동 금목걸이, 경주 노서동 금팔찌와 셋트이다. 신라시대 고분에서는 이러한 태환식 귀걸이가 자주 발견되는데, 이 작품은 국보 제90호 경주 부부총 금귀걸이나 보물 제557호 금귀걸이와는 달리 귀걸이내의 장식문양은 없지만, 신라의 정교한 황금 세공 기술을 보여주는 유물로, 신라시대 금세공기술 및 금속공예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대한민국의 유물 관리가 부실함을 꼬집을 때 나오는 대표 사례 중 하나이기도 한데, 위와 같이 귀걸이 하나가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반출되었다는 사실이 기록상에 버젓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담당자들이 이를 전혀 파악하지 못해 현재 보물 제2001호로 지정되어 있는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를 이 노서동 금귀걸이로 착각하여 보물 제455호로 지정해놓고 있었다. 2009년에서야 이를 파악하고 보물 지위에서 해제한 후, 2018년 문화재청이 드디어 원래 노서동 금귀걸이를 보물 제455호로 다시 지정하고 기존 보물 제455호로 지정되어 있던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를 새롭게 2001호로 지정하였다.
3. 기타
4. 바깥고리
5. 보물 제455호
이 귀걸이는 경주 노서동 215호 고분에서 출토되었으나 귀걸이 1쌍 중 하나가 일본에 반출되었다가 1965년 체결된 한·일 협정에 의거하여 1966년 한국으로 반환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었다.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는 외형상 주고리[主環], 중간식, 마감장식의 전형적인 3단 구조로 구성된 신라시대 5~6세기에 해당하는 유물이다. 귀에 거는 주고리[主環]는 굵고 중간에는 가늘고 긴 이파리 모양의 장식물이 달려 있으며 가장 아랫단에는 나뭇잎형 장식으로 마감하였다.
중심고리는 양쪽 끝을 얇은 금판을 붙여 깔끔하게 마감하였고, 중간의 긴 이파리 모양의 장식물은 주위와 가운데 부분에 새김눈금선을 붙여서 장식하여 매우 화려해 보인다. 또한 하트모양의 나뭇잎형 마감장식은 테두리와 중심선에 모두 새김눈금선을 2줄로 겹쳐 붙여 입체감과 화려함이 돋보인다.
이 귀걸이는 전형적인 경주식 태환이식이라는 점, 제작기법과 조형성이 우수하고 보존상태도 매우 양호한 점, 이후 금조총 및 보문동 부부총 금귀걸이로의 양식사적 발전과정을 보여준다는 점 등에서 그 가치가 높다.
[1] 문화재청이나 두산백과에서는 '215'''호''' 고분'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공식적으로 노서동 고분은 경주고분 일련번호로 128호∼141호인 13기의 봉토분으로 이루어져 있어 엄밀히 말하면 215'''호'''는 없다. 현 노서동 215번지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215란 번호가 붙었으므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경주노서리고분군 항목처럼 여기서는 '215'''번지''' 고분'으로 표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