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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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慶州 佛國寺 金銅毘盧遮那佛坐像.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 불국사 비로전에 있는 8세기~9세기 사이(서기 700~800년대) 제작된 통일신라시대의 금동 불상. 경주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과 함께 통일신라 3대 금동불상으로 불린다. 현재 불국사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국보 제26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내용
높이 1.77m, 넓이 1.36m.
경주 불국사 비로전에 모셔져 있는 금동 불상으로, 높이 1.77m인 거대 불상이다. 광명의 부처인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했으며 원래는 황금으로 만들어진 대좌와 광배가 있었지만 현재는 사라지고 없다. 불상의 눈썹이 길게 반원으로 그려져 있고 이마와 눈두덩을 구별짓는 경계선같이 음각선이 한 줄 조각되었는데, 이러한 특징은 8세기부터 나타나 9세기까지 유행한 양식으로 이 불상의 제작 연대가 서기 700~800년대 사이임을 알 수 있다. 특히 당당하면서 장대한 편으로 떡 벌어진 어깨, 양감 있는 젖가슴, 잘쏙한 허리, 볼록한 아랫배, 얕으면서도 유난히 넓게 앉은 자세 등은 8세기 중엽경의 불상들과 서로 비슷하다. 경주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과 거의 같은 시기에 동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으로부터 1,300여년 전에 만들어진 불상이지만 당시의 황금 도금이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있으며, 불상의 모습 또한 광배를 제외하고는 거의 손상된 부분이 없다.
전신에 위엄과 자비가 넘치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얼굴은 반쯤 뜬 눈, 복스러운 뺨, 군살진 아래턱 등 자비로운 인상을 하고 있다. 남성적인 체구를 연상시키는 당당하게 벌어진 어깨, 양감 있는 가슴, 튀어 나온 아랫배, 결가부좌한 넓게 퍼진 무릎 등은 장중한 이미지를 풍긴다. 얇은 법의는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있으며 옷무늬 처리도 매우 사실적이다. 손 모양은 오른손 검지를 왼손으로 감싸고 있어 후대의 왕조인 고려와 조선에서 제작된 비로자나불 불상들이 취하는 일반적인 손 모양과는 반대 방향이다.
훗날 통일신라 시대의 대표 문인으로, 신라삼최로 명성이 높았던 최치원(崔致遠)이 불국사를 방문해 이 불상을 본 후 "대화엄종불국사 비로자나문수보현상찬"(毘盧舍那文殊普賢像讚) 병서를 지었다. 이 글에 따르면 본 불상은 진성여왕이 화엄사상(華嚴思想)에 의하여 조성한 불상으로 한국사에 있어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큰 성보라 할 수 있다.
1962년 12월 20일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었다.
3. 바깥고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경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
- 두산백과 : 경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
- 한국어 위키백과 : 경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
- 한국 미의 재발견 - 불교 조각 :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
- 미술백과 :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
- 조각史의 르네상스를 꽃피운 '통일신라 3대 불상'
4. 국보 제26호
경주시 토함산 기슭에 자리잡은 불국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 김대성의 발원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삼국유사』에 의하면 김대성은 현세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 석굴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불국사 비로전에 모셔져 있는 높이 1.77m의 이 불상은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의미를 지닌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이다.
머리에는 머리칼을 작은 소라 모양으로 표현하였으며, 얼굴은 위엄이 있으면서도 자비로운 인상을 풍기고 있다.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은 옷은 매우 얇게 표현되어 있다.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있는 옷주름의 표현은 매우 사실적이다. 손모양은 오른손 검지를 왼손으로 감싸고 있어 비로자나불이 취하는 일반적인 손모양과는 반대로 표현되었다.
이 불상은 양감과 적절한 신체비례 등에서 이상적이면서 세련된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모습을 엿볼 수 있으며, 경주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27호),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제28호)과 함께 통일신라 3대 금동불상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