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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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상북도 경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신라 6성의 하나. 신라 6성은 경주 이씨, 경주 최씨, 경주 정씨, 경주 손씨, 배씨[1] , 경주 설씨[2] 를 말한다
2. 시조
<경주정씨대관>에 보면 "경주정씨는 우리나라 성씨의 대종으로서 가장 오랜 유래를 지닌 씨족의 하나로 신라를 구성한 진한국(辰韓國) 사로(斯盧) 6촌장의 하나인 자산진지촌(觜山珍支村;뒤에 本彼部가 됨) 촌장인 지백호공(智伯虎公; 신라 좌명공신)을 시조로 받들고 있다."고 하였고, 또 "지백호공이 서기전 117년(한무제/漢 武帝 원수/元狩 6년) 경주 화산(花山)에 강림하여 부족국가이던 사로의 여섯 고을 중 자산진지촌을 다스렸으며, 그 뒤 서기전 69년 3월 초하루 다른 다섯 촌장과 함께 자제들을 거느리고 알천(閼川) 언덕 위에 모여 임금을 세울 것을 논의 하다가 이 때 나정(蘿井) 곁에서 난생아(卵生兒;알에서 나온 아이)인 혁거세(赫居世)를 얻어 거슳한(居瑟邯 또는 居西干)으로 추대하고, 서기전57년 그를 왕으로 삼았다"고 하였다.
이로써 경주정씨는 기원전 117년(한나라 무제 6년)에 경주 화산에 강림하여 자산진지촌의 촌장이 되신 지백호 할아버지를 시조로 옹립하고, 그 뒤 서기 32년(신라 유리왕 9년)에 사성(賜姓)을 받았으며, 또한 지백호 할아버지가 다른 5촌장과 함께 신라 건국의 공신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경주정씨대관>의 이 이야기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동경지> 등에 나오는 '신라건국설화'와 '진신전기'(縉紳傳記)를 인용한 것이다. 이들 문헌은 고려 중기 이후에 저술되었고, 또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사이에도 내용이 일치하지 않아 그 진의의 신빙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이는 실제적 역사적 사실이라기 보다는 단군신화 처럼 하나의 설화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지백호 할아버지의 '강림설(降臨說;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설)'이나 박혁거세의 '난생설(卵生說;알에서 나왔다는 설)'은 모두 그들의 탄생을 일반사람들의 '태생(胎生;태에서 나옴)'과 달리하여 신격화 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로써 우리는 후대 어느 씨족이 지백호를 시조로 추대하고 그 계통을 이루어왔음을 알 수 있다. 그 씨족이 바로 경주 정씨이다. 그런데 지백호를 시조로 모신 것은 경주정씨뿐만 아니라 영일, 동래, 온양, 하동, 진주 등 30여 성씨도 그들 씨족의 시조로 지백호를 추대하고 성을 정(鄭)으로 하였다. 그러다 그 뒤 지금의 본관을 가졌다.
이는 제일 먼저 경주정씨가 성을 가지면서 지백호 할아버지를 시조로 옹립했고, 그 뒤 영일, 동래, 온양 등으로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처음에는 모두 자산진지촌(경주지역)에 살면서 그 지역 촌장인 지백호를 추대하며 살다가 지역을 옮겨 다른 곳에 살게 되면서 그곳 지역을 본관으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유래
그러면 경주정씨가 '성씨(姓氏)'를 가진 것은 언제일까? 역시 <경주정씨대관>에 보면, "서기 32년(유리이사 금 9)봄에 그의 현손대(玄孫代;東沖)에 와서 사로 6촌의 촌장들과 사성(賜姓)할 때, 자산진지촌(觜山珍支村)을 본피부(本彼部)로 개칭하면서 낙랑후(樂浪侯) 봉훈(封勳)과 함께 정씨(鄭氏)로 사성(賜姓)되었다."고 하였다. 여기서 '유리시금'은 신라 3대 유리왕(儒理王, 재위 24-34)을 말하는 것이고, '동충(東沖)'은 시조 낙랑후 지백호 할아버지의 현손이며 대장군 빈(彬)의 아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로 볼 때 서기 32년(유리왕 9년)에 유리왕이 시조 지백호의 현손이며 대장군 빈의 아들인 동충 때에 자산진지촌을 본피부로개칭하고 시조 지백호 할아버지에게 낙랑후란 봉훈과 함께 정씨 성을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사성제도가 씨족사회에서 부족사회로 넘어가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경주정씨가 처음으로 성을 가지게된때는 신라 유리왕 9년, 서기 32년이며, 또한 이때 지백호 할아버지를 시조로 삼았다.
그 뒤 지백호 할아버지는 신라를 세운 공훈으로 서기 516년(법흥왕 3)에 문화(文和)로 시호(諡號)를 받았고, 이어 656년(태종무열왕 3)에 감문왕(甘文王)으로 추봉되었다. 그 뒤 시조를 지백호로 추대하고 성을 정씨, 본관을 경주로 한 경주정씨는 고려 때 문정공(文正公) 매포(梅圃) 정진후(鄭珍厚)를 중시조(中始祖)로 하고, 현재 문헌공파(文獻公派), 양경공파(良景公派), 월성위파(月城尉派), 평장공파(平章公派) 등 4파로 분파되어 있으며, 시조를
지백호로 하고 성을 정씨로 하였으나 본관이 다른 정씨로는 영일(迎日), 동래(東萊), 온양(溫陽), 초계(草溪), 하동(河東), 진주(晉州) 등 30여 성씨로 우리나라 모든 정씨의 대종(大宗)을 이루고 있다.
현재 경주정씨 중앙종친회에서는 1996년 지금의 경주시 내남면 노곡리 '''백운대'''를 지백호의 강림지라 여기고 이곳에 강림기적비를 세워 경주정씨의 발원지로 정하였으며, 또한 옛 부터 전해내려오는 그곳의 산소를 지백호 시조 산소라 보고 주위에 추경사(追敬祠)를 짓고, 매년 음력 10월1일 시제를 모시고 있다.
4. 항렬
[1] 현재의 경주 배씨인지는 확인 불가. 유리 이사금 때 배씨 성을 하사 받았으나 경주 배씨의 시조인 배현경은 본래 성이 없던 사람으로, 고려 태조에게서 하사 받은 성이다.[2] 현재는 순창 설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