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법원(프랑스)

 


Parlement
1. 개요
2. 역사
3. 구조
4. 기타


1. 개요


13세기 프랑스에서 정무를 담당하는 국왕위원회를 세분화하면서 파생된 귀족 중심의 사법기관이다. 귀족 중심의 사법부인만큼 귀족들의 특권들을 지키려는 경향이 강했고, 종종 왕권과 대립하였다.
중세에 만들어진 기관답게 여러가지 특권들을 가지고 있었고,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칙령 혹은 법을 등기하는 것을 거부하여 권할권 내에서 적용되지 못하도록 막는 권리이다. 이는 국왕이 특별 조치를 내리거나 직접 고등법원에 출현할때까지 계속 행사할 수 있었다. 또한 지방 귀족들의 모임으로서 언론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역할은 자신들의 특권들을 침해하려는 왕들을 상대로 여론몰이를 하는 것에 자주 사용되었다.
이들은 개혁을 이루려는 왕들의 최고의 방해물이었고 결국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심히 악용되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는 간접적인 원인 중 하나가 된다.

2. 역사


정무를 담당하는 국왕 중심의 국왕위원회가 세분화되면서 파생되었다.
최초에는 파리 시테 섬의 파리 고등법원이 유일하였으나 백년전쟁이 끝난 이후로 각 지역마다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파리 고등법원의 관할권이 가장 넓었고, 입김도 가장 쎘다.
절대왕정을 추구하는 루이 14세는 고등법원의 권한들을 하나씩 박탈하였고 결국 폐지되는 듯 싶었으나 루이 15세가 즉위하고 나자 섭정인 오를레앙 공작은 이 권한들을 돌려주었고, 또한 루이 15세가 신권을 견제한다는 명목으로 이들을 치켜세우자 더욱 더 활개치게 된다. 결국 말년에는 더 적극적으로 정사를 돌보면서 고등법원들을 모조리 폐지했으나 루이 16세 치세에 부활했다.
여론에 민감했던 루이 16세는 시간이 지나면서 인기가 떨어지자 이를 회복하려고 이들을 부활시켰으나 특권들을 지키기 위하여 비난을 퍼부어 오히려 인기를 최악으로 이끌었고, 정부를 운영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 그렇게 파국으로 치달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게 되고, 고등법원들은 앙시앵 레짐의 잔재로 취급받아 폐지되었다.

3. 구조


고등법원의 관직은 일반적으로 국왕에게 돈을 내서 구입하고, 약간의 돈만 내면 세습되었다. 이들을 '법복귀족'이라 불렀다.
고등법원은 일반적인 사법 기능 이외에도, 칙령의 발효와 관습의 실시를 선언하는 포고를 낼 수 있었다. 세습 관료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사법 기능 이외에도 어느 정도는 의회의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이들은 기존의 법률과 지방의 관습에 위배된다고 판단하면 칙령의 등기를 거부할 수 있는 권한과 국왕에게 조언을 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4. 기타


고등법원들은 프랑스의 왕들의 골치를 매우 썩혔으나 말로 싸우는데만 강했지 실제로는 왕권에 비교할 것이 못 되어 루이 14세나 인기도 권위도 바닥에 떨어진 말년의 루이 15세가 힘으로 이들을 억누르려 하자 별 저항도 못해보고 한동안 사라지게 된다. 그런 와중에도 루이 16세는 당하고만 있다가 결국 망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이러한 고등법원의 전례는 혁명주체들의 사법불신으로 이어졌고, 혁명 이후 나폴레옹 시기에 탄생한 프랑스 행정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까지도 프랑스는 행정재판을 행정부 산하의 국참사원[1]에서 진행하여 사법부의 개입을 막고 있다.
[1] Conseil d'èt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