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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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이런 것. (신료들의 인사를 받는 태양왕 루이 14세)
'''절대왕정'''('''絶對王政''')은 중세 후기부터 근세까지 약 3세기간 기존의 봉건제적 관습이 약화되고 왕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을 일컫는 역사학계의 용어이다.
본래는 프랑스 혁명 이후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에서 구제도를 가르키는 앙시앙 레짐과 같이 왕을 폭정의 핵심으로 지목하면서 사용한 용어이나 후에 역사학계에서 단어를 차용해서 근세에 서구에서 진행된 중앙집권화 경향을 가르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전제군주제와 비슷하게 여겨지지만 같은 것은 아니다. 특히, 전제군주제 하에서는 군주가 군림하는 것이 법적으로 명문화 되어있지만, 절대왕정에서는 왕의 군림이 법적으로 명문화 되어있는 것은 아니었다.
중세 유럽은 수많은 공동체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도시 공동체, 장원 공동체, 교회 공동체, 대학 공동체 등이 그것이었다. 이 공동체들은 저마다 외부에 간섭받지 않는 자기들만의 룰을 가지고 있었고, 각 공동체는 다른 공동체들과 상호 협력하기도 하고 경쟁, 혹은 적대하며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이들 중 특히 독자적인 장원을 보유한 교회와 영주들이 중앙 국가권력에 대항해 왕권의 집중을 견제했던 것이 유럽 봉건제의 특징 중 하나이다.
유럽의 경제가 발전하며 가장 두각을 나타낸 공동체는 도시 공동체였는데, 도시는 제조업과 상업을 주 수입원으로 삼는다는 측면에서 봉건 귀족들과, 세속에서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교회와 갈등관계에 있었다. 도시들은 상공업과 시장의 발달을 보장받기 위해 왕권과 결탁할 이유가 있었으며, 왕권은 정책 수행(전쟁 수행과 크게 다르지 않다)에 필요한 자금을 얻기 위해 도시들과 결탁할 이유가 있었다.
봉건제하에서 영주가 군사력을, 교회가 사회질서를 장악하고 왕권을 견제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국가의 최고 권력은 국왕에게 있다는 것은 절대 부정되지 않았는데, 최고 권력이 도시의 상공업 경제력과 결합함으로써 영주의 농업 경제력에 기반한 군사력, 교회의 교회세에 기반한 사회기능을 압도하게 된 것이다.
정리하자면 중세 전성기 체제가 왕:수많은 공동체 간의 세력균형 체제라면 절대왕정기의 체제는 왕+도시:영주, 교회 등 기타 공동체 간의 세력균형 체제라는 것. 왕권을 견제할 수단 중 하나가 왕권과 결합하면서 다른 왕권 견제 수단의 상대적 약화로 이어지고, 그로 인해 기존의 공동체 간의 견제 상황에서 왕권과 시민 계급이 다른 공동체를 압도할 만큼 성장한 것이 바로 절대왕정이다.
따라서 사회 질서에 기반해서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는 절대왕정의 군주는 권력의 기반을 군주 스스로에게(Auto) 두고 있는 전제군주정(Autocracy)의 군주와는 성격을 달리한다. 전자는 후자와 달리 자의적으로 과세, 재산/토지 몰수, 제도 신설/개정 등을 할 수 없었고, 비록 막강한 권력을 보유했을지언정 그 행동은 교회법, 관습법, 도시 법률 등에 의해 제한받았다. 루이 16세가 삼부회를 소집해야만 했던 이유도 그것이다.
교황의 권위에서 각 국가들의 주권이 풀려나는 사태이기에 이것을 근대적 국가 이성의 시작이라고 보는 연구자가 많다.
교황령의 이탈리아 반도 통일을 치세의 목표로 내건 교황 율리오 2세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요약할 수 있는 전쟁. 이탈리아 통일을 위해 율리우스는 먼저 프랑스와 손잡고 베네치아를 격파했으나 이탈리아 반도에 프랑스의 영향력이 필요 이상으로 커져간다고 생각. 다시 스페인을 끌어들여 프랑스를 몰아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스페인이 프랑스 대신 이탈리아 반도에 영향력을 행사. 이에 율리오 2세는 합스부르크를 끌어들여 스페인을 견제하려 했으나, 신성 로마 제국의 합스부르크 황태자와 스페인 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희대의 엄친아 카를 5세의 등장[4] 으로 인해 율리오 2세의 꿈은 실패로 돌아간다. 한편 잉글랜드는 이 전쟁에 처음으로 참가. 이후 간간이 프랑스의 적국으로서 참전하는데, 이는 백년전쟁 당시의 영광을 재현하기를 바랐던 왕 헨리 8세의 야심 때문.
신성 로마 제국 황제 겸 스페인 왕이 된 카를의 세력을 견제하려는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의 20여년간에 걸친 노력의 시작. 하지만 이 전쟁에서 프랑수아는 카를의 세력을 약화시키기는 커녕 3차 전쟁 후반부에 획득한 밀라노를 잃었으며, 1525년의 파비아 전투에서 개발살. 자기 자신도 포로로 잡혀 이듬해에야 겨우 자신의 두 아들을 인질로 맡길 것을 맹세한 마드리드 조약에 서명한 뒤에야 풀려난다.
포로로 잡혔다 풀려난 뒤 복수를 갈망하게 된 프랑수아 1세와 카를 5세의 세력을 견제하려는 교황 클레멘스 7세 등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코냑 동맹' 대 카를 5세의 싸움. 하지만 코냑 동맹은 프랑스를 제외하고는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국가들이 연합한 것이었기에 신성 로마 제국과 스페인을 가진 합스부르크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특기할 만한 점으로, 이 전쟁 중에 신성 로마 제국-스페인 연합군이 '''로마를 초토화시켜''' 로마의 르네상스를 결단내 버렸다 ....
5차 전쟁의 결과 카를의 신하로서 밀라노 공국의 공작으로 즉위한 '프란체스코 스포르차 2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한 것이 계기가 된 전쟁. 프란체스코 사망 이후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는 자기 자신을 밀라노의 공작으로 내세운 반면, 카를 5세는 자신의 아들이자 훗날 스페인의 왕으로 즉위하는 펠리페 2세를 공작으로 임명. 이에 화가 난 프랑수아가 선전포고했다.
이 전쟁 중에 프랑수아 1세는 오스만 제국과 군사동맹을 체결하는데, 이는 이후 이탈리아 전쟁 내내 프랑스의 기본 방침 가운데 하나가 된다.
한편 이 전쟁은 교황 바오로 3세가 중재하여 성립된 '니스 조약'으로 그 끝을 맺는데, 조약이 체결되기까지는 바오로 3세의 노력이 적지 않았다. 서로 전쟁과 강화를 되풀이하는 두 사람의 화해를 위해 노력했다는 점보다도, 니스에 도착한 프랑수아와 카를이 서로와 대면하기를 원치 않았고. 이에 서로 다른 방에 앉고 바오로 3세가 왔다갔다하며 서로의 말을 전달했기 때문.
프랑스와 신성 로마 제국-스페인 사이의 영토분쟁 결과 벌어진 전쟁. 앞서 벌어진 세 차례의 전쟁은 모두 프랑스에게 불리한 쪽으로 끝이 났는데,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가 조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던 것이 전쟁의 한 요인이 되었다. 이 전쟁은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겸 스페인 왕인 카를 5세가 서로와 겨룬 마지막 전쟁이 되는데, 전쟁 종결 1년 뒤인 1547년에 프랑수아가 사망하기 때문. 한편 이 해에 잉글랜드 왕 헨리 8세도 세상을 떠난다.
프랑수아 1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왕 앙리 2세가, 카를 5세에게 선전포고한 전쟁. 앙리 2세의 정책은 프랑수아 1세의 정책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닌데, 따라서 '카를 5세의 세력을 꺾어누르려던 아버지의 유지를 본받겠음!' 하는 식으로 벌인 전쟁이다.
비록 1556년에 카를 5세가 퇴위하며 동생 페르디난트 1세에게 신성 로마 제국을 주고 아들 펠리페 2세에게 스페인을 주어 카를의 제국이 둘로 쪼개지기는 했지만 프랑스는 이번에도 이기지 못했고 , 1559년의 카토-캉브레지 조약으로 스페인과 강화를 체결. 스페인이 이탈리아 반도 거의 대부분을 직접, 간접 지배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한편 잉글랜드가 유럽 대륙에 가지고 있던 마지막 거점인 칼레가 프랑스에게 함락된 것도 이 전쟁에서였는데, 펠리페 2세의 아내가 잉글랜드 여왕 메리 1세였고. 따라서 잉글랜드는 스페인의 동맹으로서 참전했었기 때문.
1595년, 신성 로마 제국에 선전포고한 오스만 제국을 격파하기 위해 신성 로마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신하국이었던 트란실바니아 공국, 왈라키아 공국, 몰다비아 공국들이 체결한 동맹.
==== 1720, 영국의 남해회사(The South Sea Company)의 주식 9배가 됨 =====
대략 이런 것. (신료들의 인사를 받는 태양왕 루이 14세)
1. 개요
2. 이전의 균형상태
3. 균형이 깨지기 시작한 원인: 경제 발전으로 인한 도시 공동체의 발생
3.1. 군사력(영주), 사회질서력(교회) vs. 자본력(도시 공동체)
4. 결론
5. 연표(15세기 ~ 18세기): 프랑스 중심
5.1.2. 1453, 콘스탄티노플 함락, 동로마 제국의 멸망
5.2. 루이 11세(1461 ~ 1483): 절대왕정의 기반, 신중왕
5.3.1. 1492,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원주민에게서 잎담배를 받아옴
5.4. 루이 12세(1498 ~ 1515): 발루아-오를레앙 왕조
5.5.14.1. 1541, 헝가리 삼분할
5.6. 앙리 2세(1547 ~ 1559): 마상창시합에서 사고사
5.8.1. 제1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568 ~ 1570) 시작
5.8.4. 1572,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5.10. 앙리 4세(1589 ~ 1610): 부르봉 왕조의 시작
5.10.1. 투르크와의 긴 전쟁(Long Turkish War, 1591~1606) 시작
5.10.6. 투르크와의 긴 전쟁(Long Turkish War, 1591~1606) 끝
5.10.7. 1609, 암스테르담에 세계최초의 증권거래소가 설립
5.11.1. 30년 전쟁(1618 ~ 1648) 시작
5.11.2. 1623, 암보이나 사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영국 동인도 회사의 주재원들을 처형함
5.11.3. 1637, 네덜란드에서 튤립파동 발생
5.12. 루이 14세(1643 ~ 1715, 72년 3개월 18일간 재위): 태양왕
5.12.1. 30년 전쟁(1618 ~ 1648) 끝
5.12.3. 제3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676 ~ 1681) 시작
5.12.4. 제3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676 ~ 1681) 끝: 무승부
5.12.7. 제4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686 ~ 1700) 시작
5.12.9. 1689, 영국에서 주식투자를 시작함
5.12.15.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1701 ~ 1714) 시작
5.12.17. 제5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710 ~ 1711) 시작
5.12.19.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1701 ~ 1714) 끝
5.12.19.1. 조지 1세 즉위
5.13. 루이 15세(1715 ~ 1774): 루이 14세의 증손자
5.13.1. 1716, 존 로가 프랑스에 새로운 주식제도를 도입함
5.13.2. 1717, 영국의 남해회사(The South Sea Company) 스페인에 의해 이익을 못냄
5.13.3. 1718, 영국의 남해회사(The South Sea Company) 스페인에 의해 200만 파운드의 빚을 짐
5.13.4. 1719, 존 로의 미시시피 거품이 가장 커지는 시기
5.13.5. 1720, 영국의 남해회사(The South Sea Company)의 주식 9배가 됨
5.13.7. 조지 2세 즉위
5.13.8. 제6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735 ~ 1739) 시작
5.13.10.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1740 ~ 1748) 시작
5.13.11.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1740 ~ 1748) 끝
5.13.13. 조지 3세 즉위
5.13.15. 제7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768 ~ 1774) 시작
5.14. 루이 16세(1774 ~ 1792): 프랑스 혁명으로 처형당함
5.14.1. 미국 독립전쟁(1775 ~ 1783) 시작
5.14.2. 미국 독립전쟁(1775 ~ 1783) 종료: 미국의 독립
5.14.4. 제8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787 ~ 1792) 시작
5.15. 이후
1. 개요
'''절대왕정'''('''絶對王政''')은 중세 후기부터 근세까지 약 3세기간 기존의 봉건제적 관습이 약화되고 왕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을 일컫는 역사학계의 용어이다.
본래는 프랑스 혁명 이후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에서 구제도를 가르키는 앙시앙 레짐과 같이 왕을 폭정의 핵심으로 지목하면서 사용한 용어이나 후에 역사학계에서 단어를 차용해서 근세에 서구에서 진행된 중앙집권화 경향을 가르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전제군주제와 비슷하게 여겨지지만 같은 것은 아니다. 특히, 전제군주제 하에서는 군주가 군림하는 것이 법적으로 명문화 되어있지만, 절대왕정에서는 왕의 군림이 법적으로 명문화 되어있는 것은 아니었다.
2. 이전의 균형상태
중세 유럽은 수많은 공동체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도시 공동체, 장원 공동체, 교회 공동체, 대학 공동체 등이 그것이었다. 이 공동체들은 저마다 외부에 간섭받지 않는 자기들만의 룰을 가지고 있었고, 각 공동체는 다른 공동체들과 상호 협력하기도 하고 경쟁, 혹은 적대하며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이들 중 특히 독자적인 장원을 보유한 교회와 영주들이 중앙 국가권력에 대항해 왕권의 집중을 견제했던 것이 유럽 봉건제의 특징 중 하나이다.
3. 균형이 깨지기 시작한 원인: 경제 발전으로 인한 도시 공동체의 발생
유럽의 경제가 발전하며 가장 두각을 나타낸 공동체는 도시 공동체였는데, 도시는 제조업과 상업을 주 수입원으로 삼는다는 측면에서 봉건 귀족들과, 세속에서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교회와 갈등관계에 있었다. 도시들은 상공업과 시장의 발달을 보장받기 위해 왕권과 결탁할 이유가 있었으며, 왕권은 정책 수행(전쟁 수행과 크게 다르지 않다)에 필요한 자금을 얻기 위해 도시들과 결탁할 이유가 있었다.
3.1. 군사력(영주), 사회질서력(교회) vs. 자본력(도시 공동체)
봉건제하에서 영주가 군사력을, 교회가 사회질서를 장악하고 왕권을 견제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국가의 최고 권력은 국왕에게 있다는 것은 절대 부정되지 않았는데, 최고 권력이 도시의 상공업 경제력과 결합함으로써 영주의 농업 경제력에 기반한 군사력, 교회의 교회세에 기반한 사회기능을 압도하게 된 것이다.
4. 결론
정리하자면 중세 전성기 체제가 왕:수많은 공동체 간의 세력균형 체제라면 절대왕정기의 체제는 왕+도시:영주, 교회 등 기타 공동체 간의 세력균형 체제라는 것. 왕권을 견제할 수단 중 하나가 왕권과 결합하면서 다른 왕권 견제 수단의 상대적 약화로 이어지고, 그로 인해 기존의 공동체 간의 견제 상황에서 왕권과 시민 계급이 다른 공동체를 압도할 만큼 성장한 것이 바로 절대왕정이다.
따라서 사회 질서에 기반해서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는 절대왕정의 군주는 권력의 기반을 군주 스스로에게(Auto) 두고 있는 전제군주정(Autocracy)의 군주와는 성격을 달리한다. 전자는 후자와 달리 자의적으로 과세, 재산/토지 몰수, 제도 신설/개정 등을 할 수 없었고, 비록 막강한 권력을 보유했을지언정 그 행동은 교회법, 관습법, 도시 법률 등에 의해 제한받았다. 루이 16세가 삼부회를 소집해야만 했던 이유도 그것이다.
교황의 권위에서 각 국가들의 주권이 풀려나는 사태이기에 이것을 근대적 국가 이성의 시작이라고 보는 연구자가 많다.
5. 연표(15세기 ~ 18세기): 프랑스 중심
- 나이는 만 나이로 계산
5.1. 샤를 7세(1422 ~ 1461): 백년전쟁 승리, 승리왕
- 1422
- 1423
- 7월 3일: 차대 왕, 루이 11세 태어남.
- 1425
- 1426
- 1427
- 1428: 잉글랜드와 부르고뉴 동맹국의 오를레앙(핵심도시) 포위
- 1429
- 1430
- 5월 23일: 콩피에뉴에 침입한 부르고뉴 선량공 필리프 3세를 잔 다르크가 기습중 사로잡힘
- 1431
- 1432
5.1.1. 후스 전쟁(1419 ~ 1434) 끝
- 1434
- 1435
- 일자미상: 프랑스, 부르고뉴 동맹 체결
- 1436
- 4월: 파리에서 잉글랜드 주둔군에 반대하는 봉기 발생, 이후 아르튀르 드 리슈몽 원수가 파리를 탈환.
- 1440
- 1441
- 1442
- 1443
- 1444
- 일자미상: 프랑스, 상파뉴 점령
- 1445
- 일자미상: 프랑스, 상설군인 '칙령대' 설립(귀족 - 예비군, 평민 - 자유사수대, francs archers)
- 1446
- 1448
- 1449
- 12월 4일: 프랑스 동부방면대, 중부방면대, 서부방면대 노르망디 공격, 루앙 함락
- 1450
- 8월: 폴미니 전투: 프랑스 군대 대포로 영국군 격파, 노르망디가 프랑스의 영역이 됨.
5.1.2. 1453, 콘스탄티노플 함락, 동로마 제국의 멸망
- 1453
- 5월 29일: 제20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동로마 제국의 멸망
- 10월 19일: 보르도, 프랑스군이 다시 뺏음, 백년전쟁의 끝
- 1454
- 1456
- 1457
- 1459[1]
- 1460
- 1461
5.2. 루이 11세(1461 ~ 1483): 절대왕정의 기반, 신중왕
- 1461
- 1464
- 1465
- 일자미상: 불평귀족의 반란 발생
- 1466
- 1467
- 1468
- 1469
- 1470
- 1471
- 1472
- 1473
- 1474
- 1477
- 1478
- 1479
- 1480
- 일자미상: 왕국내 봉건 세력을 무너뜨림.
- 1482
- 1483
5.3. 샤를 8세(1483 ~ 1498): 이탈리아 전쟁 시작, 발루아 왕조 직계 단절, 정중왕
- 1483
- 1484
- 1487
- 1488
- 1489
5.3.1. 1492,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원주민에게서 잎담배를 받아옴
5.3.2. 1차 이탈리아 전쟁(1494 ~ 1495) 시작
5.3.3. 1495, 214대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신성동맹: 대 프랑스 왕국
5.3.4. 1차 이탈리아 전쟁(1494 ~ 1495) 끝
- 1495
- 1496
- 1497
- 1498
5.4. 루이 12세(1498 ~ 1515): 발루아-오를레앙 왕조
- 1498
- 일자미상: 첫번째 부인과의 결혼 무효화
5.4.1. 2차 이탈리아 전쟁(1499~1504) 시작
- 1499[3]
- 일자미상: 두번째 부인과 결혼
- 1500
- 1501
- 1502
- 1503
5.4.2. 2차 이탈리아 전쟁(1499~1504) 끝
- 1504
- 1505
- 1506
- 일자미상: 삼부회 소집, '국민의 아버지' 칭호를 얻음
- 1507
- 5월 11일: 체사레 보르자 사망
5.4.3. 1508, 216대 교황 율리오 2세의 신성 동맹: 대 베네치아 공화국
5.4.3.1. 3차 이탈리아 전쟁(1508~1516) 시작
교황령의 이탈리아 반도 통일을 치세의 목표로 내건 교황 율리오 2세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요약할 수 있는 전쟁. 이탈리아 통일을 위해 율리우스는 먼저 프랑스와 손잡고 베네치아를 격파했으나 이탈리아 반도에 프랑스의 영향력이 필요 이상으로 커져간다고 생각. 다시 스페인을 끌어들여 프랑스를 몰아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스페인이 프랑스 대신 이탈리아 반도에 영향력을 행사. 이에 율리오 2세는 합스부르크를 끌어들여 스페인을 견제하려 했으나, 신성 로마 제국의 합스부르크 황태자와 스페인 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희대의 엄친아 카를 5세의 등장[4] 으로 인해 율리오 2세의 꿈은 실패로 돌아간다. 한편 잉글랜드는 이 전쟁에 처음으로 참가. 이후 간간이 프랑스의 적국으로서 참전하는데, 이는 백년전쟁 당시의 영광을 재현하기를 바랐던 왕 헨리 8세의 야심 때문.
- 1508
- 1509
- 1510
- 1511
- 1514
- 1월 9일: 두번째 부인 사망
- 일자미상: 세번째 부인, 메리 튜더와 결혼
- 1515
5.5. 프랑수아 1세(1515 ~ 1547): 발루아-앙굴렘 왕조, 카를 5세와 라이벌, 성군, 기사왕
5.5.1. 3차 이탈리아 전쟁(1508~1516) 끝
- 1516
5.5.2. 1517, 마르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발표
- 1518
5.5.3. 1519, 카를 5세,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 즉위
5.5.4. 4차 이탈리아 전쟁(1521~1526) 시작
신성 로마 제국 황제 겸 스페인 왕이 된 카를의 세력을 견제하려는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의 20여년간에 걸친 노력의 시작. 하지만 이 전쟁에서 프랑수아는 카를의 세력을 약화시키기는 커녕 3차 전쟁 후반부에 획득한 밀라노를 잃었으며, 1525년의 파비아 전투에서 개발살. 자기 자신도 포로로 잡혀 이듬해에야 겨우 자신의 두 아들을 인질로 맡길 것을 맹세한 마드리드 조약에 서명한 뒤에야 풀려난다.
- 1523
- 1524[5]
- 1525
5.5.5. 4차 이탈리아 전쟁(1521~1526) 끝
5.5.6. 5차 이탈리아 전쟁(1526~1530) 시작
포로로 잡혔다 풀려난 뒤 복수를 갈망하게 된 프랑수아 1세와 카를 5세의 세력을 견제하려는 교황 클레멘스 7세 등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코냑 동맹' 대 카를 5세의 싸움. 하지만 코냑 동맹은 프랑스를 제외하고는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국가들이 연합한 것이었기에 신성 로마 제국과 스페인을 가진 합스부르크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특기할 만한 점으로, 이 전쟁 중에 신성 로마 제국-스페인 연합군이 '''로마를 초토화시켜''' 로마의 르네상스를 결단내 버렸다 ....
5.5.7. 1526, 219대 교황 클레멘스 7세의 신성 동맹, 코냑 동맹: 대 신성 로마 제국
5.5.7.1. 1526, 모하치 전투
- 1526
5.5.8. 1527, 사코 디 로마 발생
- 1527
- 5월 6일: 사코 디 로마
- 1528
5.5.9. 1529, 1차 빈 공방전: 쉴레이만 1세의 철수
5.5.10. 5차 이탈리아 전쟁(1526~1530) 끝
- 1530
- 1531
- 1532
- 4월 25일: 쉴레이만 1세, 제2차 오스트리아 침공 시작
5.5.11. 1533, 장 칼뱅의 파리대학 학장취임 연설문 작성
- 1533
- 11월 1일: 장 칼뱅, 종교 개혁의 시발점, 파리대학 학장취임 연설문 작성
5.5.12. 6차 이탈리아 전쟁(1536~1538) 시작
5차 전쟁의 결과 카를의 신하로서 밀라노 공국의 공작으로 즉위한 '프란체스코 스포르차 2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한 것이 계기가 된 전쟁. 프란체스코 사망 이후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는 자기 자신을 밀라노의 공작으로 내세운 반면, 카를 5세는 자신의 아들이자 훗날 스페인의 왕으로 즉위하는 펠리페 2세를 공작으로 임명. 이에 화가 난 프랑수아가 선전포고했다.
이 전쟁 중에 프랑수아 1세는 오스만 제국과 군사동맹을 체결하는데, 이는 이후 이탈리아 전쟁 내내 프랑스의 기본 방침 가운데 하나가 된다.
한편 이 전쟁은 교황 바오로 3세가 중재하여 성립된 '니스 조약'으로 그 끝을 맺는데, 조약이 체결되기까지는 바오로 3세의 노력이 적지 않았다. 서로 전쟁과 강화를 되풀이하는 두 사람의 화해를 위해 노력했다는 점보다도, 니스에 도착한 프랑수아와 카를이 서로와 대면하기를 원치 않았고. 이에 서로 다른 방에 앉고 바오로 3세가 왔다갔다하며 서로의 말을 전달했기 때문.
- 1536
- 1537
5.5.13. 6차 이탈리아 전쟁(1536~1538) 끝
5.5.14. 1538, 220대 교황 바오로 3세의 신성 동맹: 대 오스만 제국
- 1539
- 일자미상: '오스만 헝가리'의 '야노시 1세'의 아들 '야노시 2세' 출생
- 1540
5.5.14.1. 1541, 헝가리 삼분할
5.5.15. 7차 이탈리아 전쟁(1542~1546) 시작
프랑스와 신성 로마 제국-스페인 사이의 영토분쟁 결과 벌어진 전쟁. 앞서 벌어진 세 차례의 전쟁은 모두 프랑스에게 불리한 쪽으로 끝이 났는데,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가 조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던 것이 전쟁의 한 요인이 되었다. 이 전쟁은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겸 스페인 왕인 카를 5세가 서로와 겨룬 마지막 전쟁이 되는데, 전쟁 종결 1년 뒤인 1547년에 프랑수아가 사망하기 때문. 한편 이 해에 잉글랜드 왕 헨리 8세도 세상을 떠난다.
- 1542
- 1543
- 1544
- 1545
5.5.16. 7차 이탈리아 전쟁(1542~1546) 끝
- 1546
- 일자미상: 마르틴 루터 사망
- 1547
5.6. 앙리 2세(1547 ~ 1559): 마상창시합에서 사고사
- 1548
- 1549
5.6.1. 제8차 이탈리아 전쟁(1551 ~ 1559) 시작
프랑수아 1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왕 앙리 2세가, 카를 5세에게 선전포고한 전쟁. 앙리 2세의 정책은 프랑수아 1세의 정책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닌데, 따라서 '카를 5세의 세력을 꺾어누르려던 아버지의 유지를 본받겠음!' 하는 식으로 벌인 전쟁이다.
비록 1556년에 카를 5세가 퇴위하며 동생 페르디난트 1세에게 신성 로마 제국을 주고 아들 펠리페 2세에게 스페인을 주어 카를의 제국이 둘로 쪼개지기는 했지만 프랑스는 이번에도 이기지 못했고 , 1559년의 카토-캉브레지 조약으로 스페인과 강화를 체결. 스페인이 이탈리아 반도 거의 대부분을 직접, 간접 지배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한편 잉글랜드가 유럽 대륙에 가지고 있던 마지막 거점인 칼레가 프랑스에게 함락된 것도 이 전쟁에서였는데, 펠리페 2세의 아내가 잉글랜드 여왕 메리 1세였고. 따라서 잉글랜드는 스페인의 동맹으로서 참전했었기 때문.
- 1551
- 일자미상: '동 헝가리 왕국'의 야노시 2세와 그 어머니, '프라테르 죄르지'와의 내전에서 패해 폴란드로 망명
- 1552
- 1554
- 1555
- 일자미상: 쉴레이만 1세, '동헝가리 왕국'에서 합스부르크 군 철수시킴
- 9월 25일: 신성 로마 제국의 로마왕 페르디난트 1세와 슈말칼덴 동맹에 속한 개신교 제후들 사이에 아우크스부르크 화의가 체결. 이후로 신구교간에 서로 인정한다는 내용의 종교 협약임.
- 1556
- 8월 27일: 신성 로마 제국의 카를 5세, 반대하던 아우크스부르크 화의가 동생에 의해 체결된 후, 모두가 자신을 백안시하자 스스로 퇴위하고 은둔함.
- 1557
- 겨울: 카를 5세 퇴위 후, 스페인의 유스테 수도원에 입소.
- 1558
5.6.2. 제8차 이탈리아 전쟁(1551 ~ 1559) 끝
- 1559
5.7. 프랑수아 2세(1559 ~ 1560): 스코틀랜드 왕국 메리 1세의 첫 남편
- 1559
5.8. 샤를 9세(1560 ~ 1574):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위그노 전쟁 발발
- 1560
- 1561
- 1562
- 1563
- 1564
- 1565
- 1567
5.8.1. 제1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568 ~ 1570) 시작
- 1568
- 1569
5.8.2. 제1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568 ~ 1570) 끝: 오스만 제국의 실질적 승리
5.8.2.1. 1570, 트란실바니아 공국 탄생
5.8.3. 1571, 225대 교황 비오 5세의 신성동맹: 대 오스만 제국
5.8.3.1. 제2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571 ~ 1574) 시작
5.8.3.1.1. 1571, 레판토 해전
5.8.4. 1572,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 1573
- 일자미상: '바토리 지기스문트' 출생, 후에 트란실바니아 공국의 사령관이 됨.
5.8.5. 제2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571 ~ 1574) 끝: 루스 차르국 승리
5.9. 앙리 3세(1574 ~ 1589): 발루아 왕조의 끝
- 1574
- 1575
- 1577
- 1578
- 1579
- 1580
- 1581
- 1582
- 1583
- 1584
- 1585
- 1586
- 일자미상: '바토리 지기스문트(14살)' 트란실바니아 공국의 사령관이 됨.
- 1587
- 1588
- 1589
5.10. 앙리 4세(1589 ~ 1610): 부르봉 왕조의 시작
- 1589
- 1590
5.10.1. 투르크와의 긴 전쟁(Long Turkish War, 1591~1606) 시작
- 1591
- 1592
- 일자미상: 제231대 교황 클레멘스 8세 즉위
5.10.2. 1595, 231대 교황 클레멘스 8세의 신성동맹
1595년, 신성 로마 제국에 선전포고한 오스만 제국을 격파하기 위해 신성 로마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신하국이었던 트란실바니아 공국, 왈라키아 공국, 몰다비아 공국들이 체결한 동맹.
- 1595
- 1596
- 1597
- 1598
- 1599
5.10.3. 1600, 영국 동인도 회사 설립
5.10.4. 1601, 미하이 2세 암살
5.10.5. 1602, 최초의 주식회사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VOC) 설립
- 1602
- 일자미상: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설립됨, 최초 투자금은 650만 길더, 이주 25000길더는 정부에서 주주로 참여해서 신뢰를 높임.
- 6월 5일: 영국 동인도 회사의 1차 선단(총 4척), 수마트라 섬 최북단 아체에 도달. 이후 후추로 전부 해우고 귀국함.
- 1603
- 1604
- 3월 25일: 영국 동인도 회사의 2차 선단, 정향과 육두구를 사러 '암보이나'로 갔지만 이미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게 선수를 뺏겨 상관 개설에 실패함, 대신 몰루카 제도 각지를 전전하며 정향과 육두구를 모아 귀국함.
- 1605
- 일자미상: 교황 클레멘스 8세 퇴위
5.10.6. 투르크와의 긴 전쟁(Long Turkish War, 1591~1606) 끝
- 1607
- 4월: 영국 동인도 회사의 3차 선단, 인도와의 무역을 시도함
- 1608
5.10.7. 1609, 암스테르담에 세계최초의 증권거래소가 설립
- 1609
- 일자미상: 암스테르담의 증권거래소, 영국의 국채 거래로만 매년 2500만 길더 이상의 수익을 얻게 됨. 이후, 실물상품은 물론, 주식, 외환, 신용대출까지 다루게 됨.
- 1610
5.11. 루이 13세(1610 ~ 1643): 공정왕
- 1610
- 1611
- 1612
- 1월 20일: 신성 로마 제국의 루돌프 2세 퇴위
- 6월 13일: 신성 로마 제국의 마티아스(신성 로마 제국) 황제 즉위, 루돌프 2세의 친동생
- 1613
- 일자미상: 영국 동인도 회사, 일본에 도착해 에도 막부의 쇼군을 접견, 하지만 거래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방해로 실패
- 3월 27일: '바토리 지기스문트(41세)' 사망
- 1614
- 1615
- 1616
- 일자미상: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인도네시아 동부 말루크 제도에서 룬 섬을 점령
5.11.1. 30년 전쟁(1618 ~ 1648) 시작
- 1618
- 1619
- 3월 20일: 신성 로마 제국의 마티아스(신성 로마 제국) 사망
- 8월 28일: 신성 로마 제국의 페르디난트 2세 황제 즉위
5.11.2. 1623, 암보이나 사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영국 동인도 회사의 주재원들을 처형함
- 1624
- 1626
- 1628
- 1629
- 1630
- 1631
- 1632
- 1633
- 1634
- 1635
- 1636
5.11.3. 1637, 네덜란드에서 튤립파동 발생
- 1637
- 1638
- 1639
- 1641
- 1642
- 1643
5.12. 루이 14세(1643 ~ 1715, 72년 3개월 18일간 재위): 태양왕
- 1643
- 1644
- 1645
- 1646
- 1647
5.12.1. 30년 전쟁(1618 ~ 1648) 끝
- 1648
- 1650
- 1651
- 1652
- 1653
- 1654
- 1655
- 1656
- 1657
- 1659
- 1660
- 일자미상: '게오르그'(후에 조지 1세) 출생
- 5월 29일: 잉글랜드, 찰스 2세 즉위
- 1661
5.12.2. 1662, 중국에서 남명이 청나라에게 멸망.
- 1662
- 1663
- 1664
- 1665
- 1666
- 1667
- 1668
- 1669
- 1670
- 1671
- 1672
- 1673
- 1674
- 1675
5.12.3. 제3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676 ~ 1681) 시작
- 1676
- 1677
- 1678
- 1679
- 1680
5.12.4. 제3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676 ~ 1681) 끝: 무승부
- 1681
5.12.5. 1683, 240대 교황 '인노첸시오 11세'의 신성 동맹: 대 튀르크 전쟁(1683 ~ 1699, 17년간)
5.12.5.1. 1683, 제2차 빈 공방전
- 1683
- 1684
5.12.6. 1685, 낭트 칙령 철회
5.12.7. 제4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686 ~ 1700) 시작
- 1686
5.12.8. 9년 전쟁(1688 ~ 1697) 시작
5.12.9. 1689, 영국에서 주식투자를 시작함
- 1689
- 1690
- 1692
- 1693
5.12.10. 9년 전쟁(1688 ~ 1697) 끝
5.12.11. 1698, 두번째 영국 동인도 회사 설립됨
- 1698
- 일자미상: 표트르 대제(27세) 서유럽에 사절단 파견 후, 자신도 파견을 감...
- 일자미상: 게오르그(후에 조지 1세)(39세), 하노버 선제후 즉위
- 일자미상: 영국회사(The English Company Trading to the East Indies) 설립. 이후 기존 런던회사에 대한 특허는 1701년 이후 회수되기로 했으나, 기존 런던회사도 로비를 하여 특허권을 연장받음.
5.12.12. 1699, 240대 교황 인노첸시오 11세의 신성동맹, 대 튀르크 전쟁의 끝
5.12.13. 제4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686 ~ 1700) 끝: 루스 차르국의 대승리
5.12.14. 1700, 대북방전쟁(1700 ~ 1721, 22년간)의 시작
- 1700
5.12.15.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1701 ~ 1714) 시작
- 1701
- 1704
- 1706
- 1707
- 5월 1일: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앤 여왕 즉위
5.12.16. 1708, 영국 동인도 회사(EIC)로 런던회사와 영국회사가 합병
- 1708
- 1709
5.12.17. 제5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710 ~ 1711) 시작
5.12.18. 제5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710 ~ 1711) 끝: 오스만 제국의 승리
- 1711
- 1712
- 1713
5.12.19.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1701 ~ 1714) 끝
5.12.19.1. 조지 1세 즉위
- 1714
- 일자미상: 표트르 대제(43세)의 루스 차르국, 핀란드와 오스트로보트니아의 이소퀴레에서 '나푸에 전투' 벌임.
- 8월 1일
-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앤 여왕 사망
- 하노버 선제후 게오르그가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조지 1세(55세)로 즉위: 조지 시대 개막
5.13. 루이 15세(1715 ~ 1774): 루이 14세의 증손자
- 1715
5.13.1. 1716, 존 로가 프랑스에 새로운 주식제도를 도입함
- 1716
- 9월 4일: 미시시피 회사의 주가가 액면가 300 리브르의 10배인 5000 리부르를 넘어섬
- 12월: 미시시피 회사의 주가가 액면가 300 리브르의 20배인 10000 리부르를 넘어섬
5.13.2. 1717, 영국의 남해회사(The South Sea Company) 스페인에 의해 이익을 못냄
- 1717
5.13.3. 1718, 영국의 남해회사(The South Sea Company) 스페인에 의해 200만 파운드의 빚을 짐
- 1718
- 일자미상: 미시시피 회사의 주가가 액면가 300 리브르의 40배인 20000 리부르를 넘어섬
5.13.4. 1719, 존 로의 미시시피 거품이 가장 커지는 시기
- 1719
==== 1720, 영국의 남해회사(The South Sea Company)의 주식 9배가 됨 =====
- 1720
- 1월: 영국에서 100파운드로 남해회사의 주식이 판매됨.
- 6월
- 프랑스에서는 미시시피 회사의 주가가 액면가 300 리브르의 2배인 600 리부르까지 떨어짐
- 프랑스 섭정, 존 로를 재무총감에서 해고
- 영국에서는 100 파운드의 남해회사 주가가 890 파운드까지 올라감.
- 영국에서는 100 파운드의 남해회사 주가가 1000 파운드까지 올라감.
- 9월: 영국에서 남해회사의 주식이 150파운드까지 떨어짐.
5.13.5. 대북방전쟁(1700 ~ 1721)의 끝
- 1722
- 1723
- 1724
- 1726
5.13.6. 조지 2세 즉위
- 1727
- 5월 17일: 러시아 제국의 2대 황제, 예카테리나 2세 사망.
- 5월 18일: 러시아 제국의 3대 황제, 표트르 2세(13세) 즉위.
- 6월 11일: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조지 1세 사망
- 6월 11일: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조지 2세 즉위
- 1728[6]
- 1729
- 1730
- 1731
- 1733
- 1734
5.13.7. 제6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735 ~ 1739) 시작
- 1735
- 1737
5.13.8. 제6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735 ~ 1739) 끝: 러시아 제국의 승리
- 1738
- 1739
5.13.9.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1740 ~ 1748) 시작
- 1740
- 1741
- 12월 6일
- 1742
- 일자미상: 러시아 제국의 옐리자베타 여제(34세) 조카 카를 울리히(훗날의 표트르 3세)를 제위 계승자로 임명
- 일자미상: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선거에서 선제후들의 만장일치로 카를 7세가 당선됨: 함께 후보로 나섰던 마리아 테레지아의 남편, 로트링겐의 프란츠 슈테판은 낙마...
- 1743
- 1744
- 일자미상: 러시아 제국의 옐리자베타 여제(36세) 제위 계승자 카를 울리히(훗날의 표트르 3세)와 조피 프레데리케(훗날의 예카테리나 2세)를 결혼시킴
- 1745
- 1746
- 1747
5.13.10.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1740 ~ 1748) 끝
- 1748
- 1749
- 1750
- 1751
- 1752
- 1753
- 1755
5.13.11. 7년 전쟁(1756 ~ 1763) 시작
- 1756
- 1758
- 1759
5.13.12. 조지 3세 즉위
- 1760
- 10월 25일:
-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조지 2세 사망
-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조지 3세 즉위
- 10월 25일:
- 1761
- 1762
5.13.13. 7년 전쟁(1756 ~ 1763) 시작
- 1763
- 1764
- 1766
- 1767
5.13.14. 제7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768 ~ 1774) 시작
- 1768
- 1769
- 1770
- 1771
- 1772
- 1773
- 일자미상: 보스턴 차 사건 발생
5.13.15. 제7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768 ~ 1774) 끝: 러시아 제국 승리
5.14. 루이 16세(1774 ~ 1792): 프랑스 혁명으로 처형당함
- 1774
5.14.1. 미국 독립전쟁(1775 ~ 1783) 시작
- 1775
- 1776
- 1777
- 1778
- 1779
- 1780
- 1781
- 1782
5.14.2. 미국 독립전쟁(1775 ~ 1783) 종료: 미국의 독립
5.14.3. 1783, 아이슬란드 라키 화산 대분화
- 1783
- 1784
- 1785
- 1786
5.14.4. 제8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787 ~ 1792) 시작
- 1787
- 1788
- 1789
- 1790
- 1791
5.14.5. 제8차 러시아-튀르크 전쟁(1787 ~ 1792) 끝: 러시아 제국 승리
- 1792
5.15. 이후
- 조지 시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