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묘파

 

古墓派
김용무협소설, <신조협려>에 등장하는 문파.
전진교의 본산 종남산 한 가운데 있는 활사인묘에 자리잡고 있다.
원래 활사인묘는 왕중양이 은거하던 곳으로, 임조영이 내기로 활사인묘를 얻은 후 그 안에 은거하게 된다.
제자는 없었지만, 옆에서 시중드는 여자가 있었고 임조영은 그녀에게 자신의 모든 무공을 전수하여 후사로 삼았다. 그리고 나중에 임조영의 제자가 이막수소용녀를 제자로 들였다. 매우 자상한 성격으로 소용녀의 회상으로는 그녀도 반드시 양과를 좋아하고 혼인도 허락했을 것이라고 한다.
임조영의 제자는 이막수가 바깥에서 사고를 치고 적에게 쫓겨 도망쳐 오자, 고묘 안에서 그 적과 싸우다가 옥봉침으로 찌르고 혈도를 찍었지만 이막수가 몰래 적의 혈도를 풀어준 탓에 방심하다가 적의 독수에 당한 것이 원인이 되어 죽음을 맞았다. 양과는 구양봉은 역구음진경으로 혈도를 바꿀수 있으니, 이막수가 혈도를 푼 것이 아니라 원래 찍히지 않았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부는 소용녀가 복수심을 가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 끝까지 적의 정체를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해한 적의 정체는 알 수 없지만 손노파구양봉이라고 추측했다.
전진교와 바로 이웃하고 있지만, 왕중양이 제자들에게 고묘에 간섭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기 때문에 전진교 제자들은 접근하지도 않았다. 고묘파에서도 종남산을 내려가서는 안된다는 규율이 있었고, 임조영이 왕중양과 전진교를 미워하도록 가르쳤기 때문에 바로 이웃에 있으면서도 교류는 전혀 없었다.
입문할때는 임조영과 소용녀의 사부에게 절을 하고, 왕중양의 초상화[1]에 침을 뱉어야 한다. 하지만 왠지 등을 돌리고 서있는 초상화를 쓴 걸 보면 임조영도 제자들이 얼굴에 까지 침을 뱉는건 바라지 않은 모양.(…)
한옥침상 등의 보물이 있다.
이 고묘파가 있는 활사인묘의 입구에 있는 만근이나 나가는 바위인 단용석(斷龍石)이 있다. 떨어지면 활사인묘에 들어오는 좁은 통로를 가로막게 되어 있다. 단용석은 왕중양이 설치한 것으로 만일 군사를 일으켜 실패할 경우, 이 바위를 떨어뜨려 묘를 완전히 봉쇄하고 적들도 다시는 살아돌아갈 수 없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왕중양은 결국 이걸 쓸 일이 없었지만, 소용녀가 사용하여 이막수, 홍능파, 양과와 함께 묘에 갇혀버린다. …그런데 실은 단용석을 떨어뜨려도 나갈수 있는 비밀통로가 또 하나 더 있다. 고묘파 제자들이 묻히는 석관은 본래 왕중양이 쓰려고 준비해둔 것인데, 이 석관을 열고 나오는 비밀지하밀실의 천장에 지도까지 친절하게 그러져 있다. 다만 이 통로는 도중에 지하수맥을 거쳐 계곡물 속으로 나오기 때문에 밖에서는 눈치채기 어렵다. 왕중양은 자기가 살 길을 모색해두었다는걸 알면 임조영이 비웃을까봐 부끄러워서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 뿐이다.
고묘파 무공의 최고 경지인 옥녀심경의 경우, 먼저 고묘파의 무공에 통달하고, 둘째로 전진교 무공의 핵심을 깨우치고, 마지막으로 전진교 무공의 카운터인 옥녀심경을 수행하도록 되어 있다. 임조영은 왕중양과의 인연으로 전진교 무공에 아주 빠삭했지만, 전진교 무공의 핵심을 모르는 몸종은 옥녀심경을 완전히 터득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임조영이 전진파 무공마저 다 전해준 것도 아니고(...). 어쨌든 2대 장문인인 임조영의 몸종과 3대 장문인인 소용녀는 전진교 무공에 어두워서 옥녀심경의 초입 정도만 들어선 상태였는데, 우연히 문하에 거두게 된 양과가 전진교 무공의 핵심적인 구결들을 죽어라고 암기한 상태였기 때문에 소용녀도 옥녀심경을 비로소 제대로 수련할 수 있었다.
고묘파의 수련법은 일반적인 무공과는 크게 다르며, 수련자는 고묘파의 공부가 심오해질수록 오직 몸놀림이 빨라지고 손의 움직임이 민첩해져서, 상대가 한 초식을 쓸 동안 서너 초식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경쾌한 출수가 가능하게 된다. 이것은 임조영의 젊은 시절 무공 스타일에 부합하는 바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임조영이 본인의 무공을 심화시킬 시점에 이르러서는 오직 왕중양과의 대결만을 생각하여,[2] 둘이 싸운다면 사생결단을 내기보다 왕중양을 가볍게 건드려서 패배를 승복하게 만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로 양과가 독고구패의 유지를 따라 도달한 '''진력으로 상대의 변화무쌍한 초식을 제압한다'''의 정 반대 극단인, '''오직 초수의 변화와 빠르기로 상대의 진력을 제압한다'''라는 무학 사상이 담긴 셈. 소용녀가 옥녀소심검법을 쌍수호박으로 펼치자 갑자기 무적(...)이 된 것도 이러한 고묘파 무공의 특징 덕분이다. 원래대로라면 두 사람이 펼쳐서 완벽한 한 벌의 검법이 되는 옥녀소심검법을 '''혼자''' 펼칠 수 있게 되었기 때문. 두 사람이 펼치는 위력만큼은 못하더라도 각 초수의 속도와 절묘함은 혼자 펼치는 편이 오히려 빈틈이 없었다. 종남산에서 소용녀를 막아선 윤극서 등은 초식으로 맞상대하기는커녕, 자기들 뒤로 숨는 조지경을 소용녀가 자꾸 칼로 쑤셔대는데도 대응하지 못할 정도였다(...).
단 이러한 임조영의 심경이 무공에 반영된 결과, 빠르기와 변화무쌍함은 천하 일절인 고묘파 무공에 '''결정력'''이 모자라게 된다는 아이러니가 생겼다고 한다. 상대의 목숨을 끊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패배를 승복하게 만드는 초수들이 가득하기 때문. 기묘하게도 옥녀심경에 상성이 더럽게 안 좋은 전진파 무공은 딱히 임조영을 향한 연심 같은 것과 관계가 없어서 이러한 약점이 없고, 천하 무공의 정종으로 칭송받을 만큼 안정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한다.
임조영은 평생 왕중양을 사랑했으나 끝내 그 뜻을 이루지 못했고, 그 결과 왕중양 같은 영웅호걸이 그리도 매정할진대, 속세의 다른 남자들 또한 어찌 이기적이고 매정하지 않겠느냐는 염세적인 마음을 품게 되었다. 그 결과 임조영은 세상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남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었으나, 만일 그런 남자가 정말 있다면 자신의 제자들은 그런 남자와 인연을 맺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지니게 되었다. 때문에 임조영은 고묘파의 무공을 계승하는 사람은 평생 고묘에 살며 종남산을 내려가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도록 규율을 세웠으면서도, 막상 그 고묘파 전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남자가 있다면 맹세를 깨뜨려도 좋다는 예외를 두게 된 것이다. 이막수는 이미 육전원과 관련된 애증이 끓어넘치는 처지라, 이 맹세를 거부한 결과 문파에서 축출되었다.
후에 의천도룡기에서 이 문파의 전인이자 양과소용녀의 후손인 황삼미녀가 등장하기도 했다.

1. 문파 인물


  • 임조영
  • 소용녀
    • 양과(?)[3]
  • 이막수
  • 황삼미녀
[1] 임조영이 그린 것. 또한 전진교의 본당에 장식되어 있는 초상화도 실은 임조영이 그린 것이다.[2] 왕중양에 대한 애정이 지극하기도 했거니와 실력으로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라이벌이었기에 왕중양을 천하 어떤 고수보다도 강렬하게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3] 일단 소용녀의 제자이긴 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