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육지책

 


1. 개요
2. 유래


1. 개요


'''고사성어'''
'''苦'''
'''肉'''
'''之'''
'''策'''
쓸 고
고기 육
갈 지
꾀/채찍 책
삼십육계의 제34계. 제 몸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꾸며내는 방책이라는 뜻으로, 일반적으로 어려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어쩔 수 없이 하는 계책을 말하며 고육지계(苦肉之計)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런 정의에 대한 오해 때문에 궁여지책이나 차선책과도 헷갈리는 경우가 있는데 일단 고육지책의 문자적인 부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육지책에서 '자해'는 필수요소다.''' 또한 자해를 하는 원인은 "인간은 일반적으로 자해를 하지 않는다"는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므로 누군가를 속이려는 목적이 포함되어야 한다. 하지만 사실 궁여지책을 궁할 때만 쓰는 것은 다 이유가 있어서, 궁여지책은 대부분 고육지책이기도 하다.

2. 유래


삼국지연의》에서, 후한말에 오나라손권형주유비가 연합하여 조조의 100만 대군을 맞아 싸우는 적벽대전이 벌어지기 직전의 일이다.
연합군인데도 주유와 사이가 안 좋던 제갈량이 계책으로 조조군의 화살을 수거해 가자, 그제서야 주유는 제갈량과 진심으로 뜻을 같이하여 조조군을 화공으로 격파하기로 한다. 이에 제갈량의 화살 도둑질 때문에 분노가 극에 달한 조조는 유비-손권 연합군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순유의 제안으로 채중채화를 오나라에 간첩으로 보냈다. 이들은 본래 주유의 계략에 빠진 조조에게 억울하게 참살된 채모의 동생들이었으나, 진심으로 조조에게 충성하고 있었다.
채중과 채화는 주유에게 '채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투항했다'고 둘러대며 안전하게 주유의 진영에 잠입했다. 그러나 주유는 이미 그들의 계략을 꿰뚫어보고 있었고,[1] 이에 감녕에게 그들을 잘 감시하라고 한다. 한편 황개는 주유와는 별개로 혼자 궁리한 끝에 조조를 화공으로 격파할 생각을 품고 있었다. 이를 주유에게 알리자 주유는 흔쾌히 받아들였지만, 노쇠한 황개를 고육지책에 써먹기는 힘들겠다는 판단을 한다. 하지만 황개는 노익장을 과시했고, 결국 주유는 황개를 고육지책에 써먹기로 한다.
주유가 "다른 사람도 아닌 조조를 속이기 위해서라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며 만류하지만 황개는 '''"나는 손씨 3대 일가에게 두터운 은혜를 입은 몸이니 이 싸움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이 한몸 바치겠다"'''며 주유에게 절을 하자 주유도 황개에게 맞절을 하며 계책을 의논하는 장면은 몇 안되는 오나라의 명장면이다.
이튿날 군사회의에서 주유가 "아무래도 싸움이 길어질 거 같으니 장수마다 3개월치 군량을 준비해라."라고 하자 황개가 "이딴 식으로 질질 끌면 3개월이 아니라 3년이 걸려도 조조 못이긴다. 속전속결이 안된다면 차라리 자포(장소의 자)의 말대로 다같이 항복이나 하는 게 낫다."라며 딴죽을 걸었다.
이 말을 들은 주유가 "신성한 군사회의 도중에 그따위 망언을 지껄이고도 무사하길 바라냐!"며 화내자 황개도 지지 않고 "나는 손씨 3대를 대대로 섬긴 충신인데 너 같은 애송이가 감히 날 죽이겠다고?!"라며 받아친다. 이에 주유는 황개의 목을 베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황개가 나이도 있거니와 손견 때부터 일해온 충신이라 다들 말렸고 이 와중에 감녕은 주유의 명령으로 곤봉으로 매를 맞고 쫓겨나는 지경에 처한다.
결국 여러 사람들의 권유로 사형은 면했지만 대신 형벌로 곤장 100대가 내려진다. 하지만 곤장 50대에 황개는 정신을 잃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2][3] 가는데 여러 사람들이 다시 사정을 빌어서 주유는 오늘은 이만 때리겠다고 한다. 이를 본 채중과 채화는 이 소식을 조조에게 전했고, 황개 또한 감택에게 항복 문서를 보내 투항할 뜻을 표한다. 여기에 장간주유 진영에서 빼내온 방통까지 거짓 합류하면서 조조는 완전히 속아넘어가게 된다.
여담으론, 노숙이 이를보고 제갈량에게 주유에게 용서를 구해달라고 말하지않았다는 점에서 질책하나 제갈량은 이는 고육지계라며 노숙을 비웃는다. 연의에선 이부분을 통해 노숙과 제갈량에 관계를 잘 알수있다.
그 결과에 대해선 적벽대전 항목으로.

[1] 투항하면 반드시 죽을 처자식과 함께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2] 곤장은 신체 건강한 사람이 맞아도 50대가 넘으면 반병신이 되는데 하물며 정확한 나이는 알수없으나 손가 3대를 섬겨서 최소 60대는 되었을 황개가 곤장 50대면...[3] 다만 이 당시에는 곤장과 치도곤 등 매질이 법률화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라, 집행관이 정황을 봐서 회초리로 때리는 경우도 있었다. 노인에게는 두꺼운 매를 잘 대지 않았다.